우리말 산책
한자든 고유어든 김장은 우리 문화다
입력 : 2021.11.29 03:00 수정 : 2021.11.29 03:01
엄민용 기자
지역 또는 가정마다 차이가 있지만 이맘때가 김장철이다. ‘입동이 지나면 김장도 해야 한다’는 속담처럼, 김장은 신선한 채소를 구하기 어려운 겨울철에 대비해 미리 김치를 담가서 저장해 두는 우리 고유의 풍습이다. 한국인의 지혜가 담긴 김장문화는 세계 인류무형문화유산이기도 하다.
‘김장’이란 말의 어원을 두고는 여러 설이 있다. 그중 하나가 한자말 ‘침장(沈藏)’이 ‘팀장’과 ‘딤장’을 거쳐 ‘김장’으로 바뀌었다는 설이다. ‘김치’의 어원을 침채(沈菜)로 보기도 한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있다.
우리 선조들이 처음 먹던 김치는 지금의 김치와 사뭇 달랐다. 그도 그럴 것이 김치에 빠질 수 없는 고추가 한반도에 들어온 것이 임진왜란 이후다. 고추의 전래 시기를 놓고도 주장이 엇갈리지만, 임진왜란 이후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고추가 들어오기 전의 김치는 채소를 소금물에 절인 것으로, 오늘날 같은 발효식품이 아니었다. 채소를 오래 보관하기 위해 소금을 뿌려 두면 채소 안의 수분이 빠져 나와 채소가 소금물에 잠기게 되는데, 이를 ‘침채’라 불렀다. 이견도 있다. 김치는 원래부터 순우리말로, 옛말 ‘딤채’가 바뀐 것이라는 주장이다. 모 회사의 김치냉장고 이름이 여기서 나왔다.
김치와 김장의 어원이 무엇이든 김치와 김장이 우리 고유의 문화인 것만은 확실하다. 특히 고추가 도입된 이후 소금의 양은 줄고 새우나 황석어 등 젓갈류가 첨가되면서 그 맛이 더욱 깊어졌다. 고추가 해산물의 비릿함을 잡아준 덕분에 식물성 재료와 동물성 재료가 알맞게 섞인 독특한 채소발효식품으로 거듭난 것이다.
이런 김치는 뭐든 다 맛있지만, 그중 최고는 김치를 담그는 중에 어머니가 입에 넣어주던 빨간 ‘김치속’을 싼 노란 ‘배추속’의 맛이다. 다만 너나없이 쓰는 ‘배추속’과 ‘김치속(김칫속)’은 바른말이 아니다. “배춧잎 가운데에서 올라오는 잎으로, 빛깔이 노릇노릇하고 맛이 고소한 것”은 ‘배추속대’이고, “김치를 담글 때 파·무채·젓갈 따위의 고명을 고춧가루에 버무린 것”은 ‘김칫소’이다.
우리말 산책
우리 고유어를 밀어낸 한자말 ‘총각무’
입력 : 2022.11.28 03:00 수정 : 2022.11.28 03:01
엄민용 기자
겨울 김장을 담그는 주재료 중 하나인 무는 삼국시대부터 우리 밥상에 오른 먹거리다. 오랫동안 먹어온 만큼 ‘무우’ ‘무수’ ‘무시’ ‘남삐’ 등 무를 부르는 이름도 다양하다. 하지만 그중 표준어는 ‘무’ 하나뿐이다.
무를 한자어로는 나복(蘿蔔)이라 한다. 표준국어대사전을 보면 ‘나복’과 ‘무’의 뜻풀이가 똑같다.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나박김치의 유래를 이 ‘나복’에서 찾는 사람들이 있다. 이와 달리 조선시대 요리서 <산가요록>에 ‘나박(蘿薄)’으로 표기된 점을 들어, 그냥 “무를 얇게 썰어 담근 김치”를 뜻한다는 주장도 있다. 한자 蘿는 ‘무’를 뜻하고, 薄은 ‘얇다’를 의미한다. “야채 따위를 납작납작 얇고 네모지게 써는 모양”을 뜻하는 부사 ‘나박나박’에서 나박김치라는 말이 만들어졌다는 설도 있다.
이처럼 나박김치의 유래담이 여럿인 것과 달리 “소금에 절인 통무에 끓인 소금물을 식혀서 붓고 심심하게 담그는 김치”인 ‘동치미’의 어원은 분명한다. 바로 ‘동침(冬沈)’이다. 김치의 어원이 침채(沈菜)로, 겨울 동(冬)자가 붙은 ‘동침’은 “겨울에 먹는 김치”라는 뜻이다. 여기에 접미사 ‘이’가 붙어 ‘동침이’로 쓰이다 지금의 ‘동치미’로 굳어졌다.
무는 품종에 따라 부르는 이름도 다양한데, 그중 사람들이 흔히 틀리는 말로는 ‘알타리무’가 있다. 알타리무로 불리는 무를 보면 아랫부분이 알처럼 둥그렇다. 이 때문에 ‘알달리’로 불리다가 ‘알타리’가 됐다는 설이 있다. 이를 ‘알무’ 또는 ‘달랑무’라고도 하는데, 이들 또한 모양새가 알처럼 생겼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으로 본다. 그러나 이들 말 모두 표준어가 아니다. 1988년 표준어 개정 때 “고유어 계열의 단어보다 한자어 계열의 단어가 널리 쓰이면 한자어 계열의 단어를 표준어로 삼는다”라면서 알타리무·알무·달랑무 등을 버리고 ‘총각(總角)무’만을 표준어로 삼았다. ‘총각’은 “머리털을 좌우로 나눈 뒤 하나씩 묶어 마치 양의 뿔처럼 보이는 모양”을 뜻한다. 무청(무의 잎과 줄기)이 이러한 총각과 닮았다고 해서 나온 말이 ‘총각무’다.
우리말 산책
중국에서 건너와 한국 토종이 된 ‘배추’
입력 : 2022.11.21 03:00 수정 : 2022.11.21 03:04
엄민용 기자
김장철을 맞아 ‘귀한 몸’이 된 배추는 한자어 ‘백채’가 변한 말이다. 채소는 대부분 녹색을 띤다. 하지만 배추는 겉만 녹색이고 속은 흰색이다. 그래서 백채(白菜)다. 훈몽자회에 ‘숭채(崇菜)’로 올라 있는 것을 비롯해 옛 문헌에서는 백숭·배차·배채·벱추 등 다양한 이름을 볼 수 있다.
배추가 우리나라에 전래된 것은 고려 때로 추정된다. 고려 고종 때 발간된 ‘향약구급방’에 배추를 뜻하는 ‘숭’이란 글자가 나오는 것이 그 근거다. 그러나 이때의 배추와 지금의 배추는 사뭇 다르다. 옛날의 배추는 지금의 배추에 비하면 몸통 둘레가 절반도 안 되는 등 아주 ‘빈약’했다. 따라서 ‘국민 채소’ 배추의 품질 개량이 절실히 필요했고, ‘한국 농업 기술의 아버지’ 우장춘 박사가 지금의 배추로 개량했다. 중국 배추에서 한국 배추로 ‘독립’한 셈이다.
국제식품규격위원회도 과거 국제식품분류상 ‘차이니즈 캐비지(Chinese Cabbage)’ 중 하나로 다루던 한국산 배추를 지금은 ‘김치 캐비지(Kimchi Cabbage)’로 구분해 등재하고 있다. 이집트에서는 우리의 배추를 ‘하스 쿠리’, 즉 ‘한국 상추’로 부르는 등 배추는 이제 우리 고유종이 됐다.
배추는 재배 시기에 따라 봄배추·여름배추·가을배추·겨울배추로 나뉜다. 요즘 같은 김장철에 생산되는 것이 가을배추이고. 지금 같은 늦가을이나 초겨울에 심는 것이 겨울배추다. 겨울배추는 ‘얼갈이배추’라고도 하며, 이것으로 김치를 담그면 ‘얼갈이김치’가 된다.
하지만 얼갈이배추를 ‘얼갈이’로 줄여 “얼갈이를 살짝 데쳐서” 또는 “얼갈이로 담근 김치” 따위로 써서는 안 된다. ‘얼갈이’는 “논밭을 겨울에 대강 갈아엎음”을 뜻하는 말로 배추와는 전혀 상관없기 때문이다.
한편 “배추의 잎”을 뜻하는 의미로 ‘배추 잎’을 써야 할지 ‘배춧잎’으로 써야 할지 헷갈리던 시절이 있었다. 국어사전에 ‘배춧잎’이 등재돼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표준국어대사전에 ‘배춧잎’이 표제어로 올랐다. 만 원짜리 지폐를 속되게 이르는 말 역시 ‘배춧잎’이다.
우리말 산책
‘토끼젓’은 있어도 ‘창란젓’은 없다
입력 : 2022.11.14 03:00 수정 : 2022.11.14 03:01
엄민용 기자
김장철이 다가왔다. 전국 곳곳에서 ‘사랑의 김장 나누기’ 행사도 벌어진다. 마음의 추위가 유난히 심할 것 같다는 올겨울, 맛깔스러운 김장김치가 많은 사람에게 훈훈한 기운을 불어넣어 줬으면 좋겠다. 김장 하면 무엇보다 먼저 ‘젓갈’이 떠오른다. 젓갈은 보통 어패류를 이용해 담그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토끼·사슴·소 등의 육고기로도 담근다. 토해, 녹해, 탐해, 치해, 담해 등이 그것이다. 토해는 토끼고기, 녹해는 사슴고기, 탐해는 소의 어깨살, 치해는 꿩고기, 담해는 돼지고기나 노루고기로 담근 젓갈이다. 이 중 토해와 녹해는 표준국어대사전에도 올라 있다.
또 담해는 한국고전용어사전이 “돼지나 노루 고기를 이용해 만든 젓갈”로 설명한 반면 표준국어대사전은 “쇠고기를 썰어 간장에 넣고 조린 반찬”이라고 풀이해 놓았다. 하지만 “포를 떠서 말리고 잘게 썬 고기를 누룩과 소금에 섞고, 항아리에 100일 동안 두면 만들어진다”는 구체적인 설명이 옛 문헌에 나오는 것을 보면 담해라는 젓갈도 있음이 분명하다. 이 대목에서 문득 ‘돼지고기를 먹을 때 새우젓을 곁들이는데, 새우구이에 돼지고기 젓갈을 곁들이면 그 맛은 어떨까’ 하는 좀 엉뚱한 생각이 든다.
담해나 토해 등에서 보듯이 ‘해’가 붙는 음식은 젓갈을 뜻한다. 따라서 “가자미에 조밥과 고춧가루, 무채, 엿기름을 한데 버무려 삭힌 함경도 고유의 음식”은 ‘가자미식혜’가 아니라 ‘가자미식해’로 써야 한다. 가자미 외에 명태·오징어 등에 ‘식해’가 붙은 것은 젓갈류이고, 소리가 비슷한 ‘식혜’는 엿기름을 우려내 ‘달달한’ 맛이 나는 우리나라 전통의 음료다.
젓갈과 관련해 흔히 틀리는 말에는 ‘창란젓’도 있다. 명태의 알로 담그는 ‘명란(明卵)젓’이 눈에 익다 보니 ‘창란젓’으로 쓰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이 젓갈은 명태의 알이 아니라 창자로 만들므로 ‘알 란(卵)’ 자를 쓸 이유가 없다. 바른 표기는 ‘창난젓’이다. ‘창난’이 바로 명태의 창자다. 이 밖에 ‘멜젓’은 ‘멸치젓’, ‘황새기젓’은 ‘황석어젓’이 바른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