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량. 한산에 이은
김한민감독의 마지막 이순신장군 시리즈.
가오가 있지 꾹꾹 참아보려 했습니다만
장군의 피격직전과 유언까지의 오랜 Delay.
끝내 뜨거운 무언가를 쏟아내고야 말았습니다.
한숨자고 담날 아침에 후기쓰려다
여운이 식어지는게 싫어서
감히 장군의 마지막 전투였던 노량
감상후기를 적어보자 합니다.
긴 서술형보다
장군의 기백처럼 짧고 굵게
요점과 느낀점을 젹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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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짝 쫄은 김한민감독
비판을 잘 수용하는 김한민감독의 성장한 연출.
그러나 역사가들의 뒷담화와 덕질 때문인지
이순신을 함부로 대해선 안되겠다 싶었던건지
이순신장군 역할배우를 배우아닌 진짜 장군처럼
어렵게 대하고 마음껏 부리지(?) 못했다.
성웅을 위인전 안의 성웅으로 조심스럽게 모셨다.
1차 명량 (한번 이순신영화 만들어보자 했겠지)
처음이니깐 명배우 최민식의 빽을 의지했고
2차 한산 ( 거북선이라는 기가막힌 템빨이 있다 )
한산도대첩 전투자체 부각. 거북선이 더 빛났고
3차 노량 ( 이젠 나도 마지막 각성이다 )
이제 이거 정말 마지막이다. 최선을 다해 찍었다.
런닝타임 2시간30분의 배분
1시간은 정치와 외교의 흐름을 위한 빌드업.
1시간은 명량과 한산을 합친 최고의 전투씬.
나머지 30분은
찌질한 진린 이야기.
아들 면이 사망하는 가슴아픈 꿈이야기.
그리고 나머지는 끝없는 북소리.
둥둥둥~~~둥둥둥~~~~(30번 까지 세다 포기)
노력이 보이는 고증
세종때 만들었던 다연발 속사포 신기전
어쩌면 16세기의 크레모아. 비격진천뢰
한방만 제대로 맞아라. 승자총통
(승자총통은 개인화기.천자총통으로 수정합니다)
조선의 각궁 사거리 350m
왜의 활 사거리 60m
대한민국은 역시 활의 나라
삼나무 왜선 세키부네에
기름 쏟아붓고
불화살 쏘아
아작을 내고.
다인칭시점
장군에 바짝 쫄아서 일까.
마지막 해전이라 여러 입체적 시각을 표현했을까
고향으로 돌아가기위해 악만 남은 일본시점.
의미없는 전투. 머다러 싸워야 하는가 명 시점.
이대로 그냥 돌려보낼수 없다.열도끝 조선시점.
국뽕부담속에 우리의 시각안에만 가두지않았고
여러 입체적 시점을 통해
왜(why)라는 명분을 주었다.
거북선의 침몰
앞서 칠천량전투에서
거북선은 모두 침몰되어
한 척도 남아있지 않았다.
어라(?)
노량에서 거북선 한 척이 돌격하다
어이없이 한방맞고 침몰한다.
그 아까운 구선이...말이다.
고증이 잘못되었을까...?
그럴리가...
일본수군의 처절한 바램을 빗대어 표현했겠지.
아니라면 희대의 고증실패다.
모두 끝내고자 했던 전투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철군명령에
모든걸 끝내고 처자식있는 고향가고싶었던 왜.
조선을 구원하라 황제의 명을 받았다지만
편한 부귀안위. 이제는 끝내고 싶었던 명 진린.
모두들 이전투를 끝내고 싶어했지만
열도끝자락까지 쫒아가 한명남김없이 섬멸하라.
정말 리얼리 ...
이 전쟁을 끝내고 싶었던 사람은
다름아닌 이순신장군 이셨다.
처음 노출된 방씨부인
말로만 듣던 이순신장군의 부인 방씨.
대중매체에 처음 등장시키는
차별화도 보여 주었다.
이 와중에 장군께서 아들꿈 혼자 꿨다고...
바가지를 긁으시는데...
서울의봄과 노량의 차이
전쟁의 수뇌부
고니시도 살아 돌아갔다.
시마즈도 살아 돌아갔다
진린도 살아 돌아갔다
많은 아군이 살아 이 전쟁을 끝냈다.
딱 한사람 이순신장군만 돌아가셨다.
그분만 영원히 역사의 성웅으로 기억되고 있다.
똑같은 역사적 하룻밤 전투인데
살인마 전대갈과 이순신장군은
비교대상 논할 가치 자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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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피해서 영화끝나고
붉게 젖어든 눈시울을
참석자에게 드러내보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참는다고 억제시킬수는 없었습니다.
노량이 7년전쟁을 끝낸 마지막해전이 아니라
장군이 돌아가셨기에 노량이 마지막인겁니다.
장군이 안계시면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순신장군께서 남기고 가신
Delay 속의 메세지
그리고 북소리가 아직도 쟁쟁합니다.
둥
둥
둥
둥
둥
같이 보시징~ ㅠㅠ
승자총통 개인 화기이고요 천자총통같은대 천자총통은 그대시 조선시대 대형화기였습니다~
대장군전에 한방맞으면 일본 누각대선을 물속으로 꼬르륵~
ㅋㅋㅋ
와우. 이런 댓글 좋아요.
디테일한 일각연이 있으시네요
수정하겠습니다
@테란 저가 잘난척 하는것 같고 아는척하는것같아 부끄럽고 죄송합니다~
@쥬신 별말씀을..
역사는 정확해야 합니다
@테란 좋은 말씁입니다
예전에 tv 드라마가 고증 오류 정도가 아니라
감독 마음인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잘못된인식이 고정관념이되어 안고처지고있고 또한 그렇게 가르치내요
요즘은 영화가 고증이 잘되어 나온것같습니다
울라나 정통무예시범단들 보면~
참~
저는 실제로 일본활쏴 봤습니다 넘무길엇 활이 좌우로 휘청휘청 그냥 직사로 쏘면 파운드와 사람나름이지만요 거의 30미터쯤명중해봤어요
그거야 40파운드 정도밖에 안되는것이라서요~ 현대 계량궁으로 145미터 관녁 을 명중해야됩니다 직사가 아니라 곡사
관녁을 넘어가면 180미터정도 날아가더군요 더멀리쏘기할수도있자만요 그리고 각궁은 계량궁보다 사거리가 짧지만 활에 따라서
300미터 이상 날아간다고 하더군요 근디 각궁은 장마철 못쏘고! 한파에 못쏘고! 활쏘기전 불에 달구는 도지기 해야되고요
그래서 조선시대 각궁 [군궁] 군용활은 일부이고요 대부분 병사들은 목궁을 사용했다고합니다
지금도 연천에 목궁 만드시는 목궁장분이있는대 오히려 목궁이 더실용적인것같아요
글구 예기살 쏴보니까 화살 날아가는것 안보여요 탄속 엄청 빠르더군요 한번은 화살이 넘 오래되고 날아서 과녁을 관통못하면 터저요
애기살관통력 장난 아니더군요
글구 영국중세 시대때 사용하던 오리지널 영국장궁[롱보우] 쏴볼려고했는대 못쏴서요
활이 넘무쎄서요 그때 장력이 120파운드요 국궁은 남자들평균 파운드 45~55파운드입니다
저는 51파운드 애용하다가 활쏘기 할시간이 없어서 잠시 접었다가
그러시군요
다양한 경험이 있으시군요
@테란 아차!
일본활 30미터 이하에서 명중한것같아요 워낙 오래되어서요
그당시 하까마 반쪽까고 활쏘고 일본활 활한방 쏘는대 무슨놈의형식이 길은지 보는것만으로도 답답하고 속터지내요
저는그래서 국궁으로 빨빨리 쏴서 맞추던 기억이떠오르고요 일본유학생도 어의가 없는지 웃더군요
갑옷입고 활쏘기 조선시대 복장으로 활쏘고 검술하고 예전기억들이 떠으로는대요~
요즘은 저도 저활을 지대로 못당겨서 파운드 낮추었어여 글구 활쏘기 할시간도 없고요
이것은 남들에게 주어 들은 말이 아니라
순전히 저의 경험입니다
더많은 경험담도있는대요 여기까지만할께요 ㅋㅋㅋ
기회될때 다음에
차근차근 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