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늦게 련습을해서 그럴까싶었는데 그건아니고 소주와 지저분한환경때문인건 올드들은 당연히알겄이다. 그중 권혁락은 후자에만 해당된다.
얼마후 문화회관에서 사군자콘서트를 했는데 귀가 멍한가운데 자리를 뜰줄몰랐다.
수많은 관중과 더높은 곳을 향해 나아가려는 메탈사 운드는 항상귓가에 멤돌았다.
사군자를 좋게본 또다른이유는 흰색정장을 입은 이해조선배가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심란했다.
전기대원서를 쓰야하는데 성적은 변동이 심해 담임은 원서와펜을 무심히 건네며 너쓰고 싶은데로 해라 라는 이말에 화가나서 증지값 25000원으로 술을 실컷마셨다.후회없다
그해12월 이런저런 핑계로 돈을모아 베이스를 구입했다,그날은 기타감상하는데 거의 밤을 샛다.
2월에 입시를 마치고 나쫒아다니는 여학생까지 협박해서 돌려보내고 그여학생이 사다준 오징어땅콩을 와작와작먹으며 기타만쳤다.
3월초 오디션이있었다.
시간을 엄수하기위해 밥을 굶으며 기다렸다 .
내차례가되어 연습실에 들어섰을때 인상더러운 선배들이 빽빽하게앉아 질문을 던졌다.
그날, 지금은 워낙유명해진 금종수선생과 나만 오디션에 통과했다.
그때경쟁률은 1:1이었다.
곧바로 시내의 중국집에서 신고식을 했는데 강제로 권하는 술을 다받아마시고 변기에 머리를 쳐박고 토했다.
방을 일서설때이미 면발이 입밖으로 나와 고무줄처럼 달려있던 기억이 생생하다.
교동에서 선배들과 함께살았다
그즈음 기타의 서영권이 들어왔다,
족히서른<30>은 되어보였으며 이북말씨가 섞인듯했다
우리는 금새 가식적으로 가까워졌고 3월말에 신입생환영회가 있었다.
12기는 악기만 날랐다.
김광희 선배가 그녀는 가버렸다 를 불러 하루아침에 스타가 되었다.
우리도 82무대에서고 싶었다.
얼마후 설악으로 사군자 엠티를 떠났다.
기차에서 내내 술을 마셨고 민박집에 짐을 풀었다.
이튿날 울산바위로 향하면서 광희선배의 어처구니없는 울산바위 전설을 들었는데 다른사람에게 이 이야기해줬다가 욕만얻어먹었다. 난 진짜인줄알았는데.....
이때 선배는 백수였기때문에 같이온거였다. 호조선배도 마찬가지였다.
돌아오는 길에 병화선배 결혼식에 갔다가 선배들은 좋은데가고 현역들만 내려왔다.
그즈음 가장절실한것이 드러머와 보컬을 뽑는 것이었다.
학교를 뒤지고다니다가 황민수를 드럼에 안혔지만 며칠안돼 탈퇴했다.
간전축제때 첫무대를 어설프게 마쳤다.
본조비의 리빙인 씬이기억난다.
그다음 드럼주자 서영태를 만났다.
춘계삼락제때 12기는 두곡을 했다.
아침이 밝아올때까지....
그리고 서영태는 탈퇴했다.
멤버문제로 매우힘들었다
혁락선배가 멤버뽑으라고 자주갈구었다.
이시기에 술을 굉장히 많이마셨다.
실의에 빠져살아갈때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다.
가스펠음악으로다져진 드럼의귀재 안찬우와 본조비곡을 완벽하게 소화해내는 정형준이들어왔다.
뒤풀이로 천생연분에서 술을 마시고 돌아오는 길에 찬우에게 딱지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더니 성질을 내는 것이아닌가?
하지만 난 참을수밖에없었다.
나를 죽일지도 모른다는 위협감을 느꼈기때문에.....
그의 과거를 형준이에게서 들은 뒤였었다.
많은 연습을 할수있는 방학을 맞아 잔뜩기대에 부풀어있는데 형준이가 탈퇴선언서를 남기고 잠적했다.
많은걱정을 했지만 형준이는 약속날짜에나타났는데 얼마후 느닷없이 찬우가도망을갔다.
우리는 잽싸게 없어진것이 있는지 살피고 경찰에 신고를 하여 전국에 수배령을 내렸다.
여기서 재미있는건 찬우가 형준이를 꼬셔서 들어왔는데 찬우가 먼저도망간적이있었고 두번째 그런겄이었다.
내가 찬우와 애정문제로 자주 타투었는데 그것때문일까?고민도 많이했다.
나중에 찬우가 돌아왔을때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했다.
탈퇴이유는 ?< 이거정말지겨운 레파토리다.> 탈퇴이유는 시대를 앞선 자신의 실력을 몰라주는 멤버들에 대한 미움때문에..........몇초가흘렀을까? 소주병으로 대가리를 가격하고말았다
찬우가 복귀한기간에 11기베이스 병헌선배가 탈퇴하고 9월말 상주대 황금물결콘서트에 참여했었다. 그후 드럼 강도일이 탈퇴하는 바람에 어수선했다.
가을축제때 12기는 두곡을하고 정기공연준비를 했다.
문화원 보수공사때문에 학교강당에서 하게되었는데 외부인들이 낯선 강당을 찾아올리 없었다. 그렇게 한해를 마쳤다. 그해가1991년도 스무살
겨울 방학때 졸업한 선배들이 음악을 계속하겠다며 연습을하러 내려왔었다.
교동의 찬우,형준이방에서 10명이 생활을 했다.<부곡동에서 쫒겨났기때문에..>
얼마후 그집주인도 달갑게 생각하지않아 연습실에서 라면에 고추장먹으며 두달을 살았다.
종수,찬우의 유급에 이어 나도 유급을 당했다
인구대비 유급비율이 사상 최고에달했다 5명중3명이라..... 형준이는 코스모스....
92년 신입생환영회때 미시타 크라운베이커리를 했고, 야외강당에서 공연도 했다.
4월초 13기오디션전날 찬우가 강제징집되었다.
곧바로 전선으로.....살아오기는 힘든 상황이었다.
다음날 13기 희재,성신이,현덕이를 뽑았으나 대호선배가 군기를 심하게 잡는 바람에 희재는 며칠안가 탈퇴하고말았다.
조만간 이진욱을 뽑고 또 설악으로 엠티를 갔다.돌아올때 돈이모자라 짜장면도 배불리 먹지못하고 강남터미널애서 지금재수씨가된 진욱이애인이 와서 밥을사주고 갔다.
92년 여름방학때 집에가려고 터미널에 갔다가 진욱이,종수한테 잡혀 노가다를 했다.
도립병원 정화조를 지었는데 굉장히더웠다.
간조를하고 형준이,영권이 내려오는날 술마시고 똥집골목뒤 그랜드장여관에 1박했다.
그때 우리가본 비디오가 사랑과 영혼이었지
얼마후 나는 병이나서 한달간 입원을 했었다.
10월26일 전야제때 찬우가 휴가를 나왔다
후배들이 술자리를 빠져나가자 찬우는 매우섭섭해했다.
몇명의 후배가 있는 자리에서 이런말을 했다.
선배가 몸담았던 사군자가 그리워서 찾아왔는데 하루정도 지새워줄 수 있어야 되는것 아니냐?
다른 뜻이 있는것 같았다.
다음날 찬우는 갔다
또 없어진 물건,현금이없는지 살폈다.
전날 찬우가 조명대에서 웃다가 가볍게 떨어졌는데 다음날은 내가 떨어져 병원으로 실려갔다.
이틀후면 정기공연인데 팔도삐고 얼굴도 말이아니었다.
그날멤버들의 다된 청춘사업은 물거품이되었고 욕만 뒤지게 얻어먹었다.
다친얼굴로 정신없이 공연을 마침과동시에 우리는 빚더미에 올라앉게 됐다.
이렇게 2년동안의 사군자 생활도 끝이다.
그동안 많은것을 잃고 소중한것을 얻고 이젠 떠나야한다.
많은것을 잃었음에도 우린 결코 무의미하지 않았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소중한 그무언가를 얻었음이다.
당시로선 힘들고 아름다웠던 생활이었다.
그건 신이 내린 축복이었다.
음악엔 후회가 없다는 것을.....................................................
돈조 얼마만에 보는 돈조의 글이냐... 돈조야 나의 손버릇은 여전하다. 아니 이제 남들은 신이 내린 저주의 손이라고들 한다. 청주한번 널러와라 슈퍼도 때려치웠다며.... 슈퍼팔고 남은돈으로 술한잔 찐하게 하제이... 농담이다. 그냥와라... 아마 나찾으면 없을겨..ㅋㅋㅋ
첫댓글 흐미~ 길다,길어....짜증나.
고생했다!!
대단하다 내이름도 자주나오네 ㅎㅎ
돈조 얼마만에 보는 돈조의 글이냐... 돈조야 나의 손버릇은 여전하다. 아니 이제 남들은 신이 내린 저주의 손이라고들 한다. 청주한번 널러와라 슈퍼도 때려치웠다며.... 슈퍼팔고 남은돈으로 술한잔 찐하게 하제이... 농담이다. 그냥와라... 아마 나찾으면 없을겨..ㅋㅋㅋ
병원 물리치료실에서 이글 보면서 혼자서 키득키득 ㅋㅋㅋㅋ 웃어 죽는줄 알았습니다...ㅋㅋㅋㅋ;;; 동조선배의 글에 별 다섯개 드립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눈이 아프네......자넨 지금 뭐하나????
sono5당신누구세요.5자가 거슬려 정중하게 물어보는데 5기아이죠잉?
동조선배님~~~슈퍼주인이라고 한 닉네임은 12기 베이스 최동조"라고 바꿔주시구요....sono5 를 닉네임으로 쓰고계신 10기 고문 이대호"라고 바꿔주세요...후배들을 생각해서라도 말이죠...네에? ㅋㅋㅋ
나바꿀줄몰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