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향기
이종희
날아가는 화살같이 빠른 것이 세월이다.
뭔가 휙 하고 지나간 듯 하여 뒤돌아보니 여름이 저만치 가고 있었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왜이리 시간은 빨리 가는지 그래서 사는 것이 더욱 더 절
실해지고 조심스러워지고 아까운 시간 앞에 겸손해 지기까지 하는가 보다.
요즘은 아침저녁으로 제법 쌀쌀한 것이 가을이 성큼 우리 앞에 다가왔음
을 느낀다. 옷장을 정리할 시간이 없어 급한대로 긴 옷을 몇 벌 꺼냈다.
아들은 낯익은 만화 캐릭터가 그려진 옷을 보고 몸에 대 보기도 하고 입어
보기도 하며 옷이 작아졌단다. 옷이 작아진 것이 아니라 네 몸이 커졌다는
말에 “이젠 형이 되는 거야”라며 신이 나있는 아들녀석을 보고 그 옛날 나도
저랬었지 하며 어린 시절로 추억 여행을 떠나본다.
유난히 입이 짧았던 나는 키만 멀쑥하니 살집이 없었다. 엄마를 따라 빨
래터에 가면 비쩍 마른 나를 동네 아주머니들이 보시고 있는 집에서 사흘에
피(잡초)죽 한 그릇도 못 먹이는 것 같다는 말들을 하셨다. 평소 엄마는 나
름대로 먹거리에 신경을 쓰셨고 밥 잘먹게 원기소도 사다 주시며 정성을 다
하셨지만 난 여전히 살이 오를 기미가 없었다. 오빠들만 스케이트 사주셨을
때도, 막내라는 보호막 안에 있으며 뭔가 내 스스로 하고 싶었던 때도, 진정
나이를 먹어간다는 의미도 모른 체 빨리 세월이 흘러 어른이 되고만 싶어
썼다.
사람은 시간과 세월에 따라 싫던 좋던 누구나 나이를 먹는다. 나는 아들
이 어려서인지 젊은 엄마들과 자주 어울릴 기회가 많다. 그럴 때 간혹 나이
를 물어오는 사람에겐 '언제나 스물 일곱’이라고 대답하던가 혹은 묻는 사람
과 비슷하다고 얼버무린다 어떻게 내 나이를 알고는 10여살 넘게 차이나는
것에 당황해 하고 그 동안 무례했다며 미안해한다. 그러면서 친구처럼 잘
지내오던 사이가 갑자기 언니라고 호칭부터 달라지고 서먹해진다. 아이들이
친구면 엄마들도 친구지 엄마 나이 아무 소용없다고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
다고 말하지만 내심 당황해 하는 것은 사실 나다. 내 나이가 그렇게 많은가
하고.
언제나 스물 일곱이라며 나이를 의식하지 않고 생활해 왔는데 어느 때부
터 인가 나이가 짐이 되고 부담스러워졌다. 늘 긴장하며 생각 속에 묻혀 살
아가고 있지만 아무 것도 이뤄 놓은 것이 없어 정신적인 시장 끼나 공허함
으로 더욱 그런가 보다.
철학자 조지 버나드쇼는 중년에 접어들어서야 인생의 참 기쁨을 발견하게
되었다면서 “이 세상이 자신을 행복하게 해 주지 않는다고 불평하기보다. 인
생의 주최가 되어 스스로 깨달은 목적을 위해 사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기쁨
이 된다.” 또 “난 내가 철저하게 활용된 다음에 죽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열
심히 일하면 일 할수록 그 만큼 내가 더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삶 자
체를 즐거워한다. 삶은 잠깐 타고 마는 촛불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쥐고
있는 활활 타오르는 횃불과 같은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젠 사십을 훌쩍 넘긴 인생의 중년인 만큼 보다 더 신중하고 진지하며,
충실(充實)하게 성찰(省察)해야겠다. 작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알고 겸손하며
항상 배움의 자세로 살아간다면 스무 살의 총명함도 좋지만 마흔 어느 날의
원숙함이, 모나리자의 은은한 미소의 중년 여인이, 20대의 젊고 발랄한 소녀
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지 않을까?
얼굴에는 그 사람의 인생 역정과 세월이, 내면적 삶이, 고스란히 묻어나게
마련이다. 외적인 것보다 내적인 아름다움을 소망하며 나이에 맞게 무게와
질량으로 숫자를 대신하고 싶다. 나만의 향기와 고운 빛깔로 소박한 미래를
위해 한 폭의 눈부신 비단을 짜내듯 한올 한올 엮어 나아가야겠다.
2003 17집
첫댓글 삶은 잠깐 타고 마는 촛불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쥐고 있는 활활 타오르는 횃불과 같은 것이다.” 라고 말했다.
얼굴에는 그 사람의 인생 역정과 세월이, 내면적 삶이, 고스란히 묻어 나게 마련이다. 외적인 것보다 내적인 아름다움을 소망하며 나이에 맞게 무게와 질량으로 숫자를 대신하고 싶다. 나만의 향기와 고운 빛깔로 소박한 미래를 위해 한 폭의 눈부신 비단을 짜내듯 한올한올 엮어 나아가야겠다.
얼굴에는 그 사람의 인생 역정과 세월이, 내면적 삶이, 고스란히 묻어나게
마련이다. 외적인 것보다 내적인 아름다움을 소망하며 나이에 맞게 무게와
질량으로 숫자를 대신하고 싶다. 나만의 향기와 고운 빛깔로 소박한 미래를
위해 한 폭의 눈부신 비단을 짜내듯 한올 한올 엮어 나아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