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거사의 영원한 대자유인에 대한 성법스님의 글인데 여기에 내생각을 넣어보았다
원래 청봉스님의 비판글을 보고싶었으니 이제는 검색해도 찾을수가 없다
그리고 요즘도 청봉카페는 문을 닫았는가? 청봉스님 입적후 폐쇄적이 되었는데 좋지않은 현상이다.
아마도 청봉스님이 입적한후 전국의 화두수행자들의 법거량에 답변할 만한 인재가 없어
공부에 득이 없다는 이유로 부득이 폐쇄조치를 한걸로 예상하는데 그래도 그건 아니지 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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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18쪽>
또한 관법→염법→의심법으로 이어지는 수행방법은 수행단계에 따라 달리하는 것임을 밝혀 성불에 이르는 과정의 실제를 제시할 뿐만 아니라 수행방법에 따라 깨침의 종류가 달라짐을 밝혀 깨침의 실상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비판 : 관법→염법→의심법의 차제가 불교 어디에 있는 법인가? 싯타르타는 지금의 표현으로는 관법에 의해 견성하신 것이다. 의심법이란 간화선을 말하는 듯한데, 싯타르타는 의심법에 도달하지 못했으니 성불한 것이 아니란 것이 되고 말았다.
불법에 관-염-의심의 순서는 없다. 다만 깊이 들어가는 순서로는 이게 맞다
공부를 비교해도 마음 안에서 맴도는것 보다는 염하는게 더 뚜렷하고 왜 이렇지 하고 원리를 의심하고 탐구해
나가면 보다 더 뚜렷해진다. 그리고 의심법의 의정에 드는게 실로 큰일이라 첨부터 잘안되니 단계를 거치자는
이갸기인데 그 속마음은 충분히수긍이 간다
<원문 19쪽>
깨침에는 자나깨나 한결 같은 경지에서의 깨침, 즉 구경각에 이르는 필요조건을 갖춘 깨침과 그 필요충분조건인 내외 명철한 돈오밖에는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비판 : 깨침과 돈오의 차이가 무엇인가? 구경각, 깨침, 돈오에 대한 언어의 선택이 지극히 자의적이라 공부하는 이들에게는 무척 혼란스럽다.
깨침이 돈오에 비하여 조건이 덜 갖추어졌으니 아마도 오매일여나 숙면일여 정도 말하는게 아닐까?
이글만으로는 잘 모르겠다
<원문 19쪽>
점교법은 선지식의 출현이 없을 때 수행이 오랜 세월을 거쳐 관→염→의심으로 자연발생적으로 바뀌어 돈오하게 되는 것입니다.
비판 : 그렇다면 석가모니는 선지식이 없는 시대에 수행하여 관법을 택하셨나? 의심이란 화두를 말하는 것으로 이해되는데 거사의 논리로 “돈오”한 석가모니가 든 화두는 무엇인가?
석가가 뭘로 깨쳤는지는 잘 모른다 단지 회두수행자는 화두로 깨쳤다고 하고 위빠사나 수행자는 그걸로 깨쳤다 한다
이건 정말로 개인적인 견해인데 석가는 생전에 모친을 잃고 감성에 장애가 생긴듯하다
그러면 현재의 자기에 만족을 못느끼고 그걸 벗어날때까지 무언가 해야한다 그래서 이러한 사람중에는
뛰어난 사람이 많은듯하다. 나도 그중의 하나. 하지만 개인에게는 상당히 불행한일이다.
현재를 살아가기가 힘들기때문이다. 비유로 하면 일종의 번뇌의 화살을 맞은 상태라고도 볼수 있다.
수행으로 일찌기 비상비비상처까지 갔으나[이것은 돈오한 상태이다] 자신을 버릴수가 없었다
그래서 석가의 깨침은 심해탈과 혜해탈을 병행한 것으로 보인다. 굳이 따지자면 위빠사나로 깨침을 완성한게 아닐까?
<원문 20쪽>
특히 후자의 이러한 점은 ①선지식의 대(代)가 끊어지거나 ②오도(悟道) 후에 보아야 할 조사어록을 수행의 초보자가 보고 그것대로 수행하고 있는 점 등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비판 : 오도 후에도 조사어록을 의지해야 하나? 또한 후에 거사는 자신의 화두를 타파하지 못한 이유로 경전을 접하지 못했기 때문이라 했는데, 조사어록도 결국은 부처의 말씀인 경전에 의지하고 그 뜻은 깨침에 목적이 있거늘 초보자는 보면 잘못된 수행에 이르고, 오도 후에나 보아야 한다니 앞뒤를 맞추려 애써도 도저히 방법이 서질 않는다.
<원문 40쪽>
공부가 행주좌와일여함에는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은 말을 할 때[語]나, 말을 들을 때와 같이 침묵을 지킬 때[默]나, 일을 할 때와 같이 몸을 움직일 때[動]나, 사색할 때와 같이 고요히 있을 때[靜]등 의식을 다른 곳에 집중하고 있을 때에는 공부가 한결같지 않았다.
비판 : 행주좌와 일여에 이른 이가 어묵동정에는 한결같지 않다니, 거사는 행주좌와 때면 항상 말하고 움직여서 그것이 장애로 한결같지 않다는 말인가? 거사에게는 어묵동정이 너무 번거롭고 아수라장인 듯 느껴진다. 나는 오히려 어묵동정에는 한결같음을 느끼나, 행주좌와의 적적이 더 어려운데 한소식 주시면 차 한잔 올리겠습니다.
내가 공부할때는 말할때 한결같기가 힘들었다 즉 어묵동정이 더 어렵다는 뜻이다
<41쪽>
폐에 공기가 다 빠져나가 배에 아픔을 느끼게 될 때까지 숨을 들이쉬지 않고 불렀다.
비판 : 안반수의경등 어느 경에도 없는 자기개발 호흡법. 따라하시면 차칫 죽을수도 있습니다.
호흠에 관해서는 강거사의 말이 좀 회의적이다. 특히 겨드랑이에 호흡근육 어쩌고는 더더욱..
전에 읽은 글을 기억에 되새겨 말해보면 이것은 일종의 의식을 남기는 기법같다
잠을 자면 의식도 각성이 흩어진다. 그런데 호흡에 따라 어딘가를 건드린다든가 하면 약간의 의식이
남게된다. 그러면 자면서도 깨어있을수 있다. 하지만 강거사의 호흡편애는 지나치다고 보여진다
이걸 관성이라 표현한거 같은데 극히 일순은 아니다. 어느정도 시간 집중이 가능하다
가끔씩 보면 단전호흡 하는 사람들 중에 육계가 솟는 사람이 있는거 같다
그러니 그런 사람은 공부를 많이 했다고 인정할수 있다. 하지만 깨달음과는 별관련이 없어보인다
<원문44쪽>
그 당시에는 신체적 현상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정신적인 현상들도 나타났다. 예를 들면, 몽중(夢中)에 내가 산꼭대기에 서 있는데 해가 중천에 떠올라 하늘과 땅이 너무나 밝게 보인다거나 밤에 달이 떠오르면서 천지가 밝아지는 것을 본다거나, 밤중에 잠이 깨어 눈을 떠보면 천정과 지붕을 뚫고 하늘의 별들이 보인다거나, 몇백 미터 떨어진 곳에서 오고 있는 아는 사람의 발자국 소리를 듣는다거나 사람의 얼굴을 한번 보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읽어버린다거나, 사람의 걸음걸이를 보거나 말소리만 들어도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거나, 모든 사물에 대한 판단력이 뛰어나게 된다거나 하는 것 등이었다. 또한 뒷날 돈오(頓悟) 이후에 이때의 수행행적을 되돌아볼 때 알게 된 사실이지만, 어묵동정일여에 가까워질 때에는 명멸함으로 감지되던 아뢰야식(阿賴耶識)이 이때부터는 그 감지됨이 정착되었다는 것이다.
비판 : 거사도 인정 했듯이 이것은 일시적 현상이다. 나도 이정도 이상의 것도 경험했지만, 이것은 識 자체가 맑아지면 오는 현상으로 집착하면 곧 마에 이른다. 이것을 “아뢰야식의 감지됨이 정착”이라했는데 “감지됨이 정착” 이말 자체도 이해가 안되는데, 이해를 하려든다면 “마에 마음을 빼았김”으로 풀이하고 싶다. 기억나는 조사의 말씀 중 “수행은 귀신도 모르게해야 한다” 했거늘 거사는 이뜻을 아는가?
식이 맑으면 여러 정신적인 현상이 나타난다. 물론 깨침 자체와는 무관하다. 암튼 공부는 많이 했다는 증거이다
아뢰야식의 번뇌는 세번뇌이다. 의식을 가로지르는 어떤 느낌들을 저장한것이다
원시적이라 단순한 인식인데 그게 6/7식으로 표현하면 구체화되고 그렇지 않으면 곧 별의미 없이 사라진다
나도 돈오후에 아뢰야식이 감지된거 같다. 가슴을 콕콕 찌르는 느낌.조금 묵직한 느낌. 싸아 한 느낌 등
하지만 가슴에서 인식하는건 이미 한단계를 거친거 같다. 불쾌한 감정이 일어나니 말이다.
의식에서 원시적인 사념들이 일어났다 사라지기도 하는데 그건 감정이 없어 그냥 지나친다
<원문45쪽>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읽어보는 불교 서적이 불교의 최상승법문(最上乘法門)을 발췌해 놓은 책이었다는 데 대하여 몹시 기뻐했고 석가모니 부처님과의 깊은 인연이 있음을 알았다. 더욱이 이 『선문촬요』는 나의 인생의 방향을 확정짓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 책을 읽고 난 후부터는 일어나던 여러 가지 현상들에 대하여 신경쓰지 않고 담담한 자세로 돌아오니 그러한 것들은 대부분 저절로 없어지는 일과성(一過性)의 현상들이었다.
비판: 그런 현상들은 대부분 저절로 없어지지 않는다. 현상에 집착하고 즐기면 그것이 곧 魔가 된다.
나의 경우 30대초에 절에 오는 신도들의 업은 물론 영가까지도 눈에 성성히 보였는데, 수개월이 지속되도 사라지질 않아 “금강경” 독경과 사경기도를 한동안 하니 그제서야 사라졌다. 법기거사는 저절로 사라졌다하니 삼매관성은 있어도 이것에는 관성이 없는 모양이다.
뭐 이건 뭘 비판하는건지 모르겠다. 그러한 현상은 대부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없어지는게 정상이고
업이나 영가가 보이면 그것대로 맞추어 살면되지 구태여 없앨것은 또 무엇인가.
공부에 방해가 되어서라면 할말은 없다
<48쪽>
수행자 중에는 몇십 년씩 장좌불와(長坐不臥)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러한 수행자들이 잠을 자면서도 방심하지 않고 수행에 대한 집념이 흐트러지지 않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을 처음부터 알았다면 “살아서는 눕지 못하고 죽어서는 앉지 못한다”는 그런 어리석은 자세는 취하지 않았을 것이다.
비판 : 장좌불와란 대수행을 어리석은 자세라 단정해 버리고, 자면서 부처님의 열반상의 모습으로 잠을자는 자세로 방심하지 않는 수행이 좋은 방법이라 권장하는데 거사는 왜 33세에서 45세까지 하루 18시간 후엔 20시간씩 “좌선”을 했다고 하였는가?(표지 뒤 저자 소개란에서) 이건 대단한 오류이다. 기존 스님들의 “구태의연”에 싫증을 느껴 거사의 기발한 “가르침”에 넘어간 이들도 이 문제에 대해선 변명하기 어려울 듯하다.
장좌불와에 대해 선악을 따지는것은 좋지않다.
짜장면과 짬뽕을 따지는것과 다를바 없다. 그냥 수행하다보면 자기의 마음에 필이 꽂히는 부분이 있고
그에따라 장좌불와로 나가기도 한다.그게 발전이 있다. 수행에 고정된 뭔가는 없다
<원문 49쪽>
따라서 열심히 공부하는 수행자가 잠잘 때는 부처님의 자세를 따른다면 언젠가는 잠이라는 무기(無記)의 공간을 삼매관성으로 채울 날이 올 것이다.
비판 : 삼매관성이란 신조어를 즐겨 사용 하고 있는데, 그 의미와 범위가 충분히 이해된다. 하지만 삼매관성이란 用은 “마음의 일여”라는 體가 성성할 때 살아나는 단어이다. 단순히 자세로 잠이라는 무기의 공간을 채운다니, 그렇다면 거사가 생각하는 수행이란 도대체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 또한 책에서는 일관되게 돈오법만을 주장하는데, 돈오법과 삼매관성은 공존할수 없는 단어이다. 44쪽 에서 이미 “모든 사물에 대한 판단력이 뛰어나게 된다”라는 거사가 수행 자세에 대한 견해가 이 정도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오른쪽으로 누우면 소화방향과 일치하여 편안하다. 밥먹고 왼쪽과 오른쪽으로 누워보라. 금방 알것이다.
오른쪽으로 누으면 편히 눕는거 보다는 의식의 각성력이 조금 더 있다. 하지만 구태여 그럴 필요는 없어보인다
그냥 이렇게도 자고 저렇게도 자자
그러면 각성력도 약해진다. 손가락으로 세는게 더 나은건 틀림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의 삼매력으로는 육신과 마음의 족쇄를 벗어날수 없다. 병을 빠져나갈수 없다는 이야기다
이런 신심이나 간절함이 일어나는 것을 인연이라 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방편이란게 있다. 나는 근기가 수승하지 못하여 내힘으로는 불가능한걸 인식하고 잠을 이용해서 깨쳤다.
미친듯이 잠오는 과정에서 육신은 자더라도 정신은 깨어있겠다는 의지로 6개월 노력하여 돈오했다
대나무가 쪼개지고 꽃병이 깨지는 소리에 깨쳤다는건 선정에서 한번더 깊이 들어간 것이다. 그걸 인연이라 해야할지..
<원문 58쪽>
그렇지만 ‘옴마니반메훔’을 염하면서 익혀놓은 24시간 끊어지지 않는 오매항일(寤寐恒一)함 삼매 덕분으로 의심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화두가 염으로 이어져 오매일여(寤寐一如)를 더욱 다져주는 계기가 되었다.
비판 : 화두(의심)가 염으로 이어지다니, 처음에 수차 수행차제를 관→염→의심 이라 단정지어 놓고 어찌 의심에서 염으로 역행하는 경계를 오매불여를 다져주는 계기라 하는가? 거사는 참으로 특이한 수행법을 경험하고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현재 강거사의 단계는 7지 혹은 8지로 보인다.
아직 의식을 말하지 않으니 7지 같은데 이러한 오매일여는 돈오후의 점수에 대단히 도움이 된다
<원문 61쪽>
오히려 출가하게 되면 절생활에 적응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려 수행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 싶어 스님의 갑작스런 출가 권유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비판 : 58쪽에 이미 오매일여에 이르렀다는 거사가 절생활 적응에 시간이 걸려 수행에 방해가 될까 당황 했다는데, 정작 당황스러운 것은 나다. 그 적응에 몇 년이라도 걸린다는 말인가? 아니면 자신은 스님 체질이 아니라는 말인가? 차라리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었다”라는 상식적인 고백이 수행자 답지 않을까 한다.
<67쪽>
이 화두를 타파하고도 오랜 후에 조사어록을 보고 알게 된 사실이 있다. 그것은 원문에서 ‘유별전지법하야(有別傳之法何也)’ 다음에 가섭 존자께서 “아난아!”하고 부르니, 아난 존자께서 “예!”하고 대답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이 부분이 빠져 있었다. 이 부분이 있으면, 첫째, 화두로 들 때 말이 너무 많아 산만하여 집중력을 떨어뜨릴 염려가 있었으며, 둘째, 의심이 방향이 여러 곳으로 분산되어 구경각(究竟覺)에 이르지 못할 가능성이 있었다.
비판 : 이 말의 요지는 “화두가 길면 산만하고 의심이 방향이 분산된다, 그래서 화두는 길면 안된다”라고 이해해도 무방할 것 같은데 공안 중에는 잘 알려진 <무문관> 제1칙인 조주구자(趙州狗子)에서 나온 “무”를 비롯해 “이뭣고”, “시심마”, “뜰앞의 잣나무”같이 거사의 요구에 맞는 것도 있지만 단하소불(丹霞燒佛)이나, 더욱 제42칙인 여자출정(女子出定)등의 이야기 같은 허다한 공안들은 어찌 처리할꼬. 이곳에서도 역시 거사의 개인적 취향(?)을 보편화 시키려는 노력이 보인다. 그 노력과 받아들임이야 거사의 문제이지만 이것을 “구경각에 이르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는 선언적 단정은 불교의 헌법인 삼법인의 “제법무아”는 안중에도 없는 과감하지만 뒷감당하기에는 곤란한 용감성 아닐까?
별로 말할게 없음
#참고---무문관 제42칙 여자출정(女子出定) 화두
세존께서 계시던 때 문수(文殊)가 모든 부처님 모인 곳에 이르니 모든 부처님께서 각기 본래 처소로 돌아갔는데 다만 한 여인만이 부처님 가까이에서 삼매에 들어 있었다. 이에 문수가 부처님께 "왜 여인은 부처님 가까이 있는데 저는 그러지 못합니까?"라고 물었다. 부처님께서 문수에게 "이 여인을 삼매로부터 깨워 그대가 직접 물으라."라고 하셨다. 문수가 여인을 세 번 돌고 손가락을 한 번 탁 퉁겨서 범천(梵天)에 이르러 그 신통력을 다해도 깨울 수 없었다. 세존께서 "가령 백천의 문수라도 이 여인을 정(定)에서 나오게 하지는 못하리라. 아래로 12억이란 모래 수와 같은 국토를 지나 망명(罔明) 보살이 있는데 그가 능히 이 여인을 정에서 나오게 할 것이다."라고 하셨다. 잠깐 사이에 망명 보살이 땅에서 솟아 나와서 세존께 예배를 하였다. 세존께서 망명에게 명을 내려 망명이 여인 앞에 이르러 손가락을 한 번 퉁기자 여인이 정에서 깨어났다.
<원문71쪽 ~72쪽>
그 당시 몸만 약간 피곤한 정도였으므로 잠을 전혀 자지 않는 것이 어디까지나 한계인가를 보려고 했었는데 그렇게 할 수 없었던 것이 아쉬웠다. 보통 때에도 정진하는 것은 잠이 들어 꿈을 꾸거나 깊은 잠이 드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지만 몸을 전혀 쉬지 않고 얼마나 지탱할 수 있는가를 보고 싶었던 것이다.
비판 : 책 41쪽에서 이미 “수행이 어묵동정일여에 이르렀다”고 하신 거사가 술집과 다방 좀 다녔다고 심신이 피곤하여 용맹정진이 끝나버렸다 하였다. 솔직히 나는 이 비판을 쓰면서 몇번씩 확인한 것이 있다. 이 책이 정말 법기거사가 직접 쓴 것인가 하는 의문이 가라앉지를 않기 때문이다. 혹, 출판사에서 기술한 것은 아닐까? 그 제자가 들은데로 쓴다는 것이 아직 불문에 든지 오래지 않아 거사의 뜻을 잘못 표현한 것은 아닐까? 그런데 분명 거사가 쓴 것인데도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그리고 더욱 한심하고 피곤한 일은 왜 나 같은 변변한 수행력도 없는 중이 와병중에 이짓을 해야한단 말인가? 하지만 나는 이미 육신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원력으로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니, 거사의 책을 “요약경”으로 부르는 이들을 위해 요藥만 좋은 것이 아니라 내藥도 중생들에게는 쓸만하다라는 것을 보여줄 것이다. 요약경이라 감히 經을 표방한 <영원한 대자유인>의 마지막 페이지까지 나의 비판은 계속될 것이다.
말할게 없음
하지만 몸상태가 여느때나 다름이 없는데 코피가 세번 났다면 그순간은 자기에게 맞지 않다고 생각할수도 있다
사람에 따라 계속 정진할수도 바꿀수도 있겠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라 많이 수행했다고 성과가 커지지는 않는다
2보 전진을 위한 일보후퇴도 있는것이다. 그리고 쉴때 돈오하는 사람도 있다
<원문73쪽>
24시간 노력하는데도 안되니 방법을 연구할만도 하다.
아직 강거사는 2프로 부족한 모양이다. 꽃병이나 깨졌다면 바로 깨치지 않았을까?
그만한 정진력을 얻은 상태에서 새로운게 효과가 있는것이다
좋은 스승이 있어 열흘이고 한달이고 참구하여 계합시키라고 했으면 바로 일대사를 끝낼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스승은 평상시에는 별볼일 없더라도 크게 공부가 나누어지는 순간에는 결정적인 역할을 할수도 있다
깨치지 못했거나 깨침이 미약해보인다
대부분 돈오후에는 점수가 따라야 한다
<원문81쪽>
나도 화두 잘모른다 구태여 알아야 할 이유도 없다 그것과 깨침은 근본적으로는 무관한 것이다
강거사의 글은 실참에서 나오는것인데 성법스님은 좀 관념적으로 보인다
대가는 기초에 약한건가? 하하 선사들은 깨우치기 위한 자기의 수행에 대하여 잘 말하지 않는다.
이유는 모르겠다. 현재를 사니 그럴수도 있는데 구도기 같은게 없다
후학이 배울게 없다는 것이다. 고난이 닥칠때 절망도 하고 일시적으로 타락도 하고 하는 생생한 뭔가가 빠져있다
그냥 열심히 간절히 하니 이렇게 되더라 저렇게 되더라..이렇게 저렇게 안되는 후학은 절망한다
이렇게 저렇게의 글은 후학에게 오히려 독이 된다. 강거사의 글은 명저라 보여진다.
<원문89>
거기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 불성이란 정의가 있고 둘로 나누면 자성과 망념으로 나눌수도 있고
셋으로 가르면 자성과 번외와 무기로 나뉠수도 있고 열로도 나눌수 있을것이다. 모두 손가락이다
#참고자료1-- 달마어록 本性論 중
자신의 본성을 보는 사람은 누구든지 부처다. 그렇지 않은 자는 누구든지 중생이다. 그러나 중생의 본성과 따로 떨어진 곳에서 부처의 본성을 찾으려고 한다면 그런 것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 중생의 본성이 곧 부처의 본성이다. 이 본성을 벗어나서는 어떤 부처도 없다. 부처는 우리의 본성이다. 이 본성 외에 더 이상의 부처도 없고 부처 외에 더 이상의 본성도 없다.
본성을 봐도 망념이 남아있으면 사는게 힘들다
점수가 되지 않으면..죽고나선 불멸자가 될수는 있지만 현세의 삶은 쉽지않다는 것이다
#참고자료2--돈황본 단경 중
*사람의 성품은 본래 청정하되 망념이 있어서 진여를 덮고 있으니 망념이 없어지면 본래의 성품이 깨끗하니라.
人性(姓)은 本淨이로되 爲妄念故로 盖覆眞如하니 離妄念하면 本性(姓)이 淨하니라 -敦 298
성철 해설: 망상이 소멸하면 본래로 청정한 자성이 스스로 드러나니, 이것이 식심(識心 마음을 앎)이며 견성이다.
*자성(자기의 성품)이 미혹하면 부처가 곧 중생이요, 자성이 깨치면 중생이 곧 부처니라.
自性을 迷하면 佛卽衆生이요 自性을 悟하면 衆生이 卽佛이니라 -敦 315
성철 해설: 불(佛)은 구경묘각(究竟妙覺)이며, 십지(十地),등각(等覺)도 미혹중생이니, 정오정각(正悟正覺 바르게 깨치고 바르게 깨달음)이 아니다. 식심견성은 정오정각을 말함이니, 그것은 구경묘각이라야 한다.
비판을 마치며 告함
법기 강정진거사의 <영원한 대자유인>(이하: 대자유인)은 확실히 유별난 책이다. 적어도 지난 10여년 동안 나는 이와 같은 책을 접한 일이 없다. 유별나다는 말은 긍정과 부정의 극단을 보이기 때문에 궁여지책으로 생각해낸 말인데, 이제 대자유인의 비판을 마치며 보다 큰 문제제기를 하고자 한다.
사실 나는 대자유인을 사두긴 했어도 읽어보지는 않았다. 솔직히 관심 밖이었다. 특히 앞에 ‘서울대생을 출가시킨’이란 붙임이 상업적인 그저그런 책이려니 하는 생각이 앞섰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최근에 대자유인을 비판하는 책이 출간되어 구입하였다.
출가자가 출간한 비판서이니 그 책을 보면 대자유인의 내용과 비판을 함께 볼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나는 그 비판서를 보며 상당히 의아스러웠다. 비판서에 쓰여진 대자유인의 내용이 그 정도 수준이라면 그 비판의 어리숙함에 출가자로서 부끄러움을 느끼기에 충분하기 때문이었다.
대자유인의 서문과 수행모임 대표의 글을 보면 이 책은 1996년 봄에 처음 출간된 것으로 되어있다. 그 후 지난 5월 개정판을 내며 불교수행에 관한 본격적인 내용의 책으로는 드물게 지금까지 베스트셀러를 기록하고 있는 유별난 책이다. 나는 한번의 비판의 글을 쓸때마다 자유인을 거의 한번씩 읽다시피 하였다. 이것은 나로서는 대단히 예외적인 경우이다. 물론 남의 책을 비판한다는 것이, 그것이 일반 교양서적이나 소설의 비평이 아닌 불교의 핵심을 다룬 책이라면 그 정도의 수고는 당연할 수 도 있다.
가감없이 말하건데 내가 소장하고 있는 서적은 전집을 제외하고도 3000권을 훌쩍 넘는다. 그리고 본 “불교경전 총론”의 자료를 올리기 위해 최근 2~3년간 본 책만 해도 500권에 족히 이른다. 이제는 책을 보는 이력이 붙어 웬만한 단행본은 목차와 각 章별로 몇페이지만 읽어도 그 뜻이 파악된다. 그런 의미에서도 대자유인은 역시 유별나다.
대자유인은 거사의 수행의 과정을 묘사하고 있는 1부와 그 후 수행불행(修行佛行)의 경지에 이른 거사가 수행방법에 대해 이끌어 주는 나머지 부분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수행불행이란 깨달음을 얻은 후에 부처로서 행하는 일을 말한다. 정리하면 자유인은 2부 이후의 법기거사의 성불선언과 교화와, 자신의 성불하기까지의 과정을 묘사한 1부로 확연히 나눌 수 있다.
나의 비판은 1부에서 그치고 있는데, 이것은 계획된 일이 아니다. 비판을 하다보니 1부와 나머지 부분의 비판이 상당부분 중복되기 때문에 더 이상의 비판은 무의미하다는 판단에서 이다. 물론 1부 이후의 부분에서도 내가 동의 할 수 없는 부분이 여전히 있다.
대표적인 것이 무기(無記)란 용어의 사용처 중 일부는 무기공(無記空)이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논쟁의 대상”이지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우선 자유인에 대해 아직도 가시지 않는 의문은 수행의 과정을 기술한 1부와 그 후의 내용이 전혀 다른 사람이 쓴 것 같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1부의 용어를 보면 도무지 일관성이 없고, 더더욱 그 표현과 언어의 구사가 어설프기 짝이 없다. 그 자체 문맥으로 보아도 앞뒤가 맞지 않는 곳이 허다하다. 예를 들어 돈오 후에도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는 식인데, 거사는 분명 돈오는 성불의 경지인 구경각이라고 밝히고 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거사가 스스로 수행불행에 이르렀다는 표현을 쓰고 있는데, 이 말은 “나는 부처가 됐다’는 선언과 같다. 禪家의 상식은-거사의 경계에서 상식을 논하는 것은 우습겠지만-깨달음이란 그 자체를 이루었을 때 주변사람은 물론 정작 당사자도 모른다고 한다. 나는 이 두 가지만 제외하면 법기거사와 대자유인은 오히려 폄하되고 있다고 확신한다.
거사의 사상은 육조와 성철스님의 “돈법(頓法)”을 충실히 계승하고 있다. 어느 부분에서는 성철스님과는 또 다른 “섬세함”도 지니고 있다. 특히 돈오점수란 말은 있을 수 없고, 굳이 표현하자면 점수돈오라 해야 한다는 말과 조사의 格外에 대한 언급, 현재 한국불교에 대한 거침없는 비판은 통쾌하기까지 하다.
그렇다고 거사의 말과 경계가 거사가 주장하듯 성불에서 나온 것은 아니다라는 것이 나의 생각인데, 이것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비판의 대상이 아니라 출가와 재가를 떠나, 법거량의 “논쟁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근세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견성”(이 말은 육조나 성철스님, 법기거사 모두 돈오,구경각과 함께 성불과 같은 의미로 쓴다. 나는 견성만은 다른 개념으로 정리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했다 하는 자칭 타칭 선지식들과 오도송이나 열반송을 남길만한 어느 스님에게서도, 또한 현존하는 어느 큰스님에게서도 참다운 의심이 제기되는 법문이나 글을 본적이 없다. 물론 성철스님의 경우는 예외이지만. 이 말은 그 분들의 불교는 경전과 조사어록에 너무나 충실하고 당연한 말이어서 따로 가슴에 와 닿지 않는다는 참으로 불경스럽고 외람된 표현이다. 하지만 사실인 것을 어찌하랴!
성철스님의 위대함은 우리에게 살아있는 불교를 열어 주셨다는 점이다. 보조를 주장하는 이 들에게야 청천병력 이었겠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나는 성철스님이 달라이라마보다도 훌륭하시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이것은 법기거사의 경우에도 적용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렇다고 내가 바람 난 사람 감시하다가 같이 바람난 것과 같은 경우는 분명히 아니다.
다만 출가해 계를 받고 몇 년만 지나면 중 된 것이 마치 신분상승이나 큰 벼슬이나 한 듯이 생각이 굳어져 가는 현실속에, 단지 재가자라는 이유만으로 또 허물이 있다 하여, 그의 수행의 경계까지 무시하고 냉대하는 그야말로 속된 일이 佛家에서는 있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이것이 내가 비판을 마치는 변이며, 그러한 의미에서 돈점의 논쟁과 같이 대자유인도 “쟁점의 대상”이 되어 실종되어가는 한국의 불교를 살아 숨쉬며 성성한 불교로 되돌릴 수 있다는 것이다
영원한 대자유인에 대해 성법스님이 비판을 함으로써 자기의 사상도 정립하고
중생들이 한번더 이글을 눈여겨보며 인연을 쌓게 해주는 공덕도 있고
강거사의 글에서 얻은 바도 있었으리라
이미 세월이 많이 흘렀는데 이제 성법스님은 위없는 경지를 이루셨는가?
이루셨다면 참으로 좋은 일이고 아니라면 열심히 정진해야 할것이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성법스님은 지금 투병 중이시며 안팎으로 어려움을 겪고 계십니다. 그 와중에도 불법을 바로 세우고 전하시려고 애를 쓰고 계시는데 현재 한국불교가 처한 상황에 비추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