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에서 리유는 신문 기자 랑베르와 사랑과 죽음 그리고 영웅주의 대해 논쟁을 벌인다. 리유는 역병과 싸우는 자신의 행위가 영웅주의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한다.
"이건 품위의 문제입니다. 비웃을지 모르겠지만, 페스트와 맞서 싸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품위입니다."
"품위가 뮌데요?"
랑베르가 갑자기 진지한 태드로 물었다.
"저도 그게 일반적으로 무슨 뜻인지는 잘 몰라요. 하지만 제가 지금 처한 상황에선 품위가 무엇인지 알아요. 제 본분을 끝까지 수행하는 것이지요."
리유는 의사로시 이웃들이 겪는 고동을 없애거나 최소한 완화시키고자 노력한다. 그의 직업은 꽤나 유용한 수단이기에 이 수단을 십분 활용한다. 그는 타인의 고통을 보고도 무감한 사람이 아니므로 자신의 본분을 기꺼이 수행하며 그들의 고통을 덜고자 한다. 그는 근본적으로 타인과 연대감을 느끼며 다른 이들의 고통에도 함께 괴로워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 사태를 가만히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이런 이유에서 리유는 자신의 일을 끝까지 해낸다. 침착하고 냉정하게 그리고 객관적이며 적극적인 자세로말이다.
나치 점령 시절 카뮈가 레지스탕스 지하 신문사에 기고했던 편지글은 <독일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제목으로 1943년과 1944년에 출간되었다. 그는 이 글에서 "부조리한 운명에 대항하여 싸우려면 사람들이 연대 의식을 되찾아야 한다"라고 말하며 자신 또한 이에 부합하는 행동을 하겠다고 다짐한다. 라디쉬는 카뮈 평전에서 이렇게 적는다.
시대가 시대인 만큼 당시에는 인간으로서 갖추어야 할, 지극히 기본적인 품위와 존엄이 요구되었다. 카뮈에게 인생 철학은 그저 하나의 시민이자 인간으로서 인간다운 존엄과 명예를 갖추는 것이었다. 그는 "한 인간이 그 무엇도 하지 않고" 무심코 시대를 지나친다면 아무런 가치도 없다고 여겼다.
우리는 이 책을 시작할 때만 해도 품위라는 개념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내릴 수 없었다. 그런데 여기까지 다다르니 그 개념에 조금은 가까워진 듯하다. 한 인간이 스스로를 통제하는 행위라고 말이다. 아니면 살을 좀 더 붙여서 이렇게 표현하는 건 어떨까. 품위란 다른 이들과 기본적으로 연대 의식을 느끼는 것이며, 우리 모두가 생을 공유하고 있음을 느끼는 것이라고. 또한 삶에 대한 근복적인 문제의식은 크든 작든 모두 동일하게 중요하며, 이를 일상의 모든 상황 속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마음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p.206-208
- 악셀 하케, [무례한 시대를 품위있게 건너는 법]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