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현] DJ DJ 그 호감을 틀어줘요

[여울과 겨름]

* 플러스편 있습니다! 빠른 시일내에 가져올게요.

쓰다보니 길어져서 애매하게 잘라서 올립니다......

DJ DJ 그 호감을 틀어줘요 

이재현

 "누가 그 새끼 쓰자고 추천했어!"

 개빡친 피디님의 샤우팅이 회의실을 가득채운다. 좀처럼 소리를 지르지도, 남한테 비수를 꽂는 분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 사고 같은 경우에는 어쩔 수 없었다. 누구에게 상처를 주려고 뱉은 말은 아니지만 나는 가슴이 수억갈래로 찢어졌다. 박박 찢긴 마음은 목공풀로도 안붙여질 거 같다. 순간접착제도 절대 불가능. 나는 마스크 안으로 이빨을 꽉 깨물었다. 당장이라도 트위터나 블로그에 쌍욕이라도 싸지르고 싶었다. 이미 기사를 본 친구들이 하나둘씩 카톡을 보내왔다. 확인 할 정신이 없다. 회의실 분위기는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김한남, 방역수칙 위반에 성매매까지 적발? 참여 프로그램 하차 요청 '쇄도']

우리는 DJ를 잃었다. 나는 최애를 잃어버렸다. 저새끼 나를 잘도 속였어. 우리를 속아넘겼어. 나는 아까부터 미친듯이 울리는 폰화면을 봤다. 미리보기로 보니 이미 트위터판이 난리가 났다. 이미 트위터 비계에서는 풍부한 어휘력이 쏟아졌다. 이새끼가 이런 새끼일줄 저도 몰랐다고요. 피디님은 마른 세수를 열번쯤 했다. 우리 주말은 아이디어 회의 하지말고 푹 쉬자며 녹방도 하루에 몰아서 했다. 어쩐지 평소엔 녹음 하루에 몰아서 하는 거 싫어하는 김한남이 오케이했다. 차라리 녹음 나눠서 하자고 할걸. 우리가 쉬는 틈에 저새끼는 대형사고를 쳤다. 나는 망연자실하게 잠금화면을 봤다. 누가 볼세라 기본 우주사진으로 바꿨다. 썅.

 "일단 녹음한 거 폐기처분합시다. 당장 스페셜 DJ 찾아볼게요. 일일 DJ로 해서 일주일정도 돌린 다음에 후임 찾아봅시다."

 "...네."

 나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다행히 피디님도 여자여서 다행이지, 개한남 피디였어봐 여기서 개 털리는 건 바로 나였다. 포스 개쩌는 메인 작가님을 턴다? 말도 안됨. 그렇다고 울망울망한 막내 작가를 혼낸다? 이건 인간 말종임. 그러니까 제일 화내기 편하고, 김한남 (구)팬이었던 서브작가인 나에게 미친듯이 화풀이를 해댔을거다. 하지만 PD님은 여자였고 상식이 있는 분이셨다.

 "그래. 이번에는 사고 안칠 놈으로 잘 찾아봐요. 우리가 잘못해서 벌어진 일도 아니니까. 일단 국장님한테 구두 보고 드리고 올게요."
 "네. 알겠습니다."

 메인 작가님은 가족분들이랑 글램핑 예약해놓으셨댔는데. 막내 작가는 처음 받아서 본가에 내려간다고 했는데. 내 잘못은 아니지만 모두 내 잘못처럼 느껴졌다. 

 "죄송해요. 제가 김한남 추천했는데, 반년도 안돼서……"

 "그게 뭐 여주 작가 때문인가. 됐어요. 일단 막내가 오늘 저녁 먹기 전까지 대충 리스트업 해서 보내줘요."

 "네."

 "여주 작가는 일단 보도자료 낼 거 써서 저한테 좀 보여주고요."

 아까부터 한국일보 김기자는 계속 전화하네. 내 트위터 알림만큼이나 메인 작가님 핸드폰은 더 불이났다. 피디님은 더 그러시겠지. 나는 주머니에 꽁쳐둔 새콤달콤 포도맛을 꺼냈다. 시무룩하게 회의실 책상에 엎어지는 막내 작가님께 건넸다.

 "본가 못가서 어떡해요..."
 "괜찮아요. 작가님도 호캉스 취소 하셔야하잖아요... 예약금도 못받으실텐데."

 "일단 수습하고 좀 괜찮아지면 피디님이랑 메인 작가님이 일정 조정해서 다시 휴가 주실 거니까..."

 "네......"

 나도 회의실 책상에 엎어졌다. 이마를 나무 책상에 꽝꽝 박았다. 이제 진짜 얼굴에 분칠한 사람들은 믿으면 안된다 .김한남은 평소 행실도 나쁘진 않았다. 막 천사같이 착한 건 아니지만 일에 대한 욕심도 있었다. 라디오 DJ 업무도 우리가 예상하는 것만큼 해줬다. 입담도 어느정도 있어서 여초 커뮤니티에 몇 번 인기글로 올라간 적도 있고 아는 연예인이 많아서 섭외도 난항이 아니었다.

 그러면 뭐해. 무용지물이었다. 요즘 같이 매니악해진 라디오 시청률은 올리기가 힘들었다. 이 불황 시장 속에서도 우리 프로그램은 소소하게 우상향을 유지했다. 국장님이 지난번에 밥먹을 때 칭찬도 해주셨는데. 말짱꽝이다 꽝. 우리는 널브러진 핸드폰을 챙기고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분노의 타이핑은 멈출 줄을 몰랐다. 막내는 섭외 리스트업에, 나는 최대한 중립적이면서 욕을 덜먹고 책임을 덜 질 수 있는 문장들로 보도자료를 채웠다.

 "안녕하세요! 다정다감 데일리의 스페셜 DJ!"

 온에어 버튼이 켜졌다. 일단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대타는 구했다. 국장님과 장시간 회의 끝에 모두 녹방으로 돌리기로 했다. 일주일 결방안도 나왔지만, 국장님과 피디님은 결사반대했다. 라디오 청취는 습관이야. 안그래도 타 방송사 같은 시간대에 유명 아이돌로 DJ 온대잖아. 기존 청취자들 절대 뺏기면 안돼. 녹방으로라도 돌려. 우리 모두 수긍했다. 다행히 윗분들 인맥을 싹싹 긁어모아서 무난한 분들 네 분을 섭외했다. 한참을 미간을 구기며 폰을 만지던 메인 작가님이 안도의 숨을 뱉었다.

 금욜 구하셨어요?
 엉. 김한남 전전에 했던 배우 친구 있잖아. 그 사람이 해준대.

 다행이다. 진짜 고생 많으셨어요 작가님.

 토, 일 단 48시간이었다. 우리는 주말에 무슨 호랑이에 쫓기듯 하루종일 일했다. 당연히 집은 못갔다. 숙직실에서 자거나 듀얼 모니터 앞에 엎어져서 잤다. 처음에 KBS 입사했을 때 도대체 샤워실이 왜이렇게 많지? 했는데 이유가 있었다. 샤워실마저 없으면 다들 도망갔을테니까. 나는 오늘은 집에 들어갈 수 있을까, 작은 기대를 머금었다.

 "감사합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저야 뭘요. 피디님이랑 작가님들이 고생 많으시죠. 이번에……"

 한시간 가량 이어진 녹음이 끝났다. 월요일 DJ분은 팟캐스트 경험도 있고, 40대를 바라보고 있는 여성 배우분이셔서 좋았다. 발음도 듣기 편했고 좋았지만 우리가 추구하는 영한 이미지랑은 조금 달랐다. 제일 급하게 섭외된 분이기 때문에 와주신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한다. 메인 작가님은 배우님의 어깨를 감싸면서 녹음실 바깥으로 나가셨다. 피디님은 쉴 새가 없었다. 막내의 노트북을 보면서 볼펜을 앙 깨물고 계셨다.

 "여주 씨. 이 사람 어때요?"
 "누구요?"

 "이재현...이라고. 아세요 작가님?"

 앞에건  피디님. 뒤에 말은 막내 작가분이었다. 컵라면도 안먹고 열심히 섭외 자료조사 하더니 그새 인물을 찾았나보다. 나는 모니터 쪽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초면이었다.

 "모델에서 배우로 전향한지 얼마 안된 사람이래요. 제 친구가 모델 때부터 팬이었는데 성격도 쾌남 스타일?이고 괜찮대요. 뮤직뱅크 MC 땜빵 경력도 있다고. 영상 함 보실래요?"
 "예. 함 틀어보셔요."

 피디님 다리 떨기 속도를 보니 맘에 드시나 보군. 나는 슬쩍 곁눈질로 보고 다시 노트북에 집중했다. 뮤직뱅크 남MC가 사고쳐서 잠시 땜빵으로 들어간건데 그럭저럭 잘했다. 다리도 길고 얼굴도 훤칠하니 거적떼기 같은 옷이나 웬 이상한 컨셉충 옷을 입혀도 트름할 정도로 잘 소화했다. 트위터에 슬쩍 검색하니 이재현 씨 얼굴을 인장으로 달고 있는 사람이 꽤 있었다. 막 반응이 온 배우는 아니지만 라이징 스타 직전정도 온 것 같았다. 모델 때부터 좋아한 코어팬도 꽤 있어보였고, 무엇보다……

 "예쁘게 생겼네."

 "동감합니다."

 "그쵸. 저도 친구가 영업할 때는 그냥 그렇군 하고 넘겼는데 이만한 인물 없는 거 같아서……."
 "메인 작가님 오시면 얘기해볼게. 국장님이랑 얘기해보고 괜찮으면 바로 섭외 전화 넣을게."

 "그럼 더 조사 하지말까요?"
 "일단 우리 오늘은 집에 좀 갑시다. 내일 세시에 녹음 있으니까 두시까지 녹음실로 오고요."

 다행히 퇴근 명령이 떨어졌다. 오늘은 집가서 민트샴푸로 머리 박박 감는다. 회사에 혹시 몰라 갔다놨던 샴푸는 영 안시원했다. 

 "피디님 그러면 저 먼저 퇴근합니다! 머리 간지러워요!"

피디님이 모니터를 보며 우리쪽으로 훠이 저었다. 그래 피디님이 나보다 연봉 높으니까 더 일하시는거지. 부담가질필요 없어. 이건 막내 작가에게도, 나한테도 하는 말이었다. 원래 상사분 두고 퇴근할 때 찾아오는 지리는 죄책감. 나는 서브작가 단지 2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못 벗어났다. 우물쭈물 망설이는 막내 어깨를 잡고 엘베로 달렸다. 나도 저랬었지.

 "작가님 낼 봬요. 들어가세요!" 

 "옙 작가님도요."

 오늘은 나를 위한 소비다. 간만에 택시를 잡아탔다. 안 막히면 이만원, 막히면 이만 칠천원이겠지만 오늘은 꼭 타야했다. 콩나물 시루 같은 버스 타고 집에간다? 게다가 두 번이나 갈아탄다? 절대 불가능이었다. 맨날 운전면허 따야지 하면서도 바빠서 갈 시간이 없었다. 매번 필기시험 앱 깔았다가 지웠다가를 반복했다. 마치 배달음식 이제 그만 먹을거라면서 지웠다가 까는 거랑 똑같았다. 

 "아 기사님. 저 요 앞 카페에서 세워주세요."

 오늘은 진심 과식 파티다. 어차피 내일 오후 두시 출근이니까 대충 열두시에 일어나야지. 그러면 오늘 끝장나게 맥주랑 엽떡 먹고 디저트까지 야무지게 조지고 자겠어. 갑자기 없던 힘이 솟았다. 활기차게 카페 문을 열어젖혔다. 케이크와 구움과자들이 쇼케이스에 얼마 안남았다. 그냥 다 사갈까. 나는 언니한테 전화를 걸면서 메뉴를 고민했다.

 - 왜

 "짐 집앞 카펜데 뭐 사갈래?"
 - 니 오늘 퇴근?

 "어 머리 간지럽다고 집가서 씻고 싶다함."

 - 아메랑 니 먹고 싶은 디저트 사와. 맥주 집에 있고 엽떡 시킨다?
 "중당도 추가 점."

  친언니랑 살면 좋은 점. 메뉴를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전화를 끊고 사장님을 불렀다. 오늘은 제대로 시발비용 써보는 거야.

 "마카롱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하나씩 다주세요!"

 "가는데 얼마나 걸리세요?" 

 "걸어서 오분, 어?"

 세상은 좁다. 대한민국은 더 좁다.

 "......?"

 "......이재현 씨?"

 아까 막내작가 노트북 너머로 봤던 총각이었다. 이재현. 확실했다. 라디오 작가 짬바가 몇년인데 안면인식을 못할까. 남자는 놀란듯 토끼눈을 떴다.

 "...어. 제 팬이세요?"

 순간 머리가 회전했다. 지금 내 백팩에 있는 노트북 쿨러처럼 탈탈탈탈 돌아갔다. 공중제비 같은 두뇌회전을 마치고 나온 답은 이거였다.

 "와. 진짜요 너무요. 저 뮤뱅 MC때부터 팬이었어요. 반가워요 재현 씨!"
 "진짜요? 안녕하세요……"

 이재현은 노동에 찌든 얼굴에서 환하게 웃는 얼굴로 바뀌었다. 와 방금 조명 켜진줄. 몇몇 영상에서 본 것처럼 웃을 때 형광등이 켜지는 얼굴이네. 보이는 라디오 하면 청취율이 많이 오르겠군. 붉은끼 쫙 뺀 애쉬 갈색이 잘어울리네. 이제야 선배님들이 해줬던 말이 실감났다. - 뜰 애들은 딱 촉이와. 그 싹수가 보여 뜰 거란걸 - 나는 그 말을 곱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재현이 그에 해당하는 사람 같았다. 우리 프로그램 대박나게 해주세요. 아니 대박은 아니어도 명예를 찾을 수 있게 해주세요. 그러면 국장님이 우리 성과급 더 챙겨주지 않을까? 시무식할 때 우수 라디오 프로그램상 받을지도 몰라. 벌써 욕망이 그득그득했다. 이재현을 보자마자 든 생각은 하나였다. 이 남자를 잡아야한다. 꼭 섭외해야한다.

 "진짜 너무 반가워요 .제가 너무너무 좋아하거든요! 재현 씨 여기서 일하세요?"

 "아...아뇨. 누나가 하는 카페인데 조카가 아파서 잠깐 봐주는 중이에요." 

 "그렇구나...저 여기 되게 자주 오거든요. 너무 맛있고, 재현 씨는 너무 맛, 아니 멋있어요."

 미남을 보면 참지 않는 주접이 이렇게 도움이 될 줄 몰랐다. 트위터에서 주접으로 한딱까리 했던 실력을 살려 온갖 미사여구를 붙였다. 이재현은 쾌남처럼 하하하 웃으며 마카롱 두어개를 더 넣어줬다. 나는 핸드폰 케이스 뒷편에 넣어둔 명함을 스윽 건넸다.

 "언제 한 번 놀러오세요. 저 케베스 라디오국에서 일해요. 재현 씨 꼭 모시고 싶어요! 그러면 저 완전 성덕."

 "너무 좋죠... 안녕히 가세요!"

 "안녕히 계세요!"

 순조로운 출항이다. 나는 당장 우리 프로그램 단톡방을 켰다.

 << ㅈㅇ젷ㅍㅂ하

 << 저 이재현 씨 봤어요 팬이라고 학 ㅗ명함도 ㅁㅈ서성요

 >> ??

 >> 진짜?

 역시 피디님. 빠른 답장을 보니 아직 퇴근 안하셨구나.

 << 네ㅠ 제가 자주가는 집앞 카페 사장님 동생이래요

>> 주소 찍어줘봐요

메인 작가님도 바로 확인하셨다. 화려한 언변과 설득의 귀재. 메인작가님과 피디님이 있으니 섭외에는 걱정이 없었다. 그리고 내가 깔아둔 밑밥도 있는데 설마 거절하겠어. 나는 살짝 뒤돌아봤다. 이재현 씨는 카운터에 서서 내쪽을 보고 있었다. 나는 오바해서 양 팔을 흔들었다. 제발 도와주세요. 김한남 사건사고로 타격받은 불명예 프로그램 딱지를 떼게 해주세요.

 나는 양손 가득 마카롱과 음료를 들고 집으로 달려갔다. 문을 열자마자 나를 확 감싸는 엽떡향에 침이 고였다.대충 반팔만 허물처럼 벗어던지고 식탁에 앉았다. 언니는 짐승돌처럼 엽떡 봉지를 찢어 발겼다.

 "니 수습은 했냐?"

 "대충. 오히려 잘된듯."

 그래. 김한남이 이재현보다 인지도는 있지만 약간 배우 필모로 봤을 때 우하향 곡선이었지. 어쩌면 신이 내린 기회일지도 몰라. 나는 어묵에 감싼 주먹밥을 입에 밀어넣었다. 인스타그램에 이재현을 쳤다. 시작한지 얼마 안되고, 소속사가 관리하는듯 사진은 몇 장 없었다. 문제 될만한 발언도 보이지 않았다. 제발 우리 디제이 해주세요. 나는 아무 사진이나 눌러서 언니 얼굴 앞에 들이 밀었다.

 "어때?"
 "예쁘게 생김."

 "그치? 딱 요즘 한녀를 울리는 얼굴임."

 "동감."

 그말을 끝으로 미친듯이 엽떡을 먹었다. 아까 사오자마자 냉장고에 넣어둔 마카롱까지 작살내고 샤워를 마쳤다. 불룩하게 나온 배를 두드리면서 머리를 말렸다. 요 몇달 새 정신 없어서 미용실을 못갔더니 숏컷이 숏단발이 됐다. 이번에 사건 좀 정리되면 커트부터 해야겠다. 알람 때문에 번쩍이는 핸드폰을 차마 확인하지 못하고 잠들었다.

 "...와."

 "인사해요. 오늘부터 우리 프로그램 DJ 이재현 씨. 배우예요."

 "안녕하세요. 잘부탁드려요! 잘하겠습니다. 작가님!"

 이재현이 라디오 부스 안으로 들어왔다. 쾌남 호남처럼 말을 하고 마지막 작가님을 외칠 때는 내쪽으로 시선을 쓱 돌렸다. 메인 작가님이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처럼 존나게 빨리 타자를 치셔서 보여주셨다. 메모장에 쓰인 글은 [작가님이 재현 씨 완전 덕후인 컨셉으로 가줘^^;; 그걸로 설득했으니까...]. 내게는 서브작가 외에도 새로운 임무가 주어진 것이었다. 이재현의 시선은 계속 이쪽으로 닿아왔다. 그래. 별로 안유명할 때 카페에서 알아보는 코어팬이 얼마나 좋겠어. 나는 이재현과 시선이 얽힐 때마다 왕따봉 쌍따봉을 날렸다. 이게 감정노동이 아니라면 뭐란 말인가.

 "고생하셨습니다!"

 "오늘 이DJ 처음 왔는데 회식 할까요?"

 "무조건 맛있는 거요." 

 "미안합니다. 비싼 건 못사주고 가까운 이자카야 가서 좀 먹다가 갑시다."

 피디님...국장님 법카 못받으셨군요. 움츠러든 피디님의 어깨가 안쓰러웠다. 오늘 생방송은 나쁘지 않았다. 청취율도 완전히는 아니었지만 김한남이 맡아서 했을 때와 비교했을 때 많이 떨어지지 않았다. 우리의 1차 목표는 한참 커뮤에 흥했을 때만큼 청취율을 올리는 거였다. 국장님도 그만큼 기대하고 계실 거라고 예측했다. 막내 작가님의 친구의 공이 크긴 컸지. 그냥 이재현의 팬이 아니라 쌉고인물 코어팬이었다. 막내 작가님이 자료조사 하다가 알고 싶지 않은 친구 트위터 아이디까지 알아버렸다고 하니 말을 다했지 뭐.

 "전 오늘 애기 숙제 같이 해줘야해서 먼저 갈게요. 카드 여주 작가님한테 맡기고 갈테니까 더 먹고 와요." 

 "나도 가야돼. 같이 가."

 "앗 오늘은 저도. 언니 생일이라......"

 피디님. 메인 작가님에 이어서 막내 작가님까지 그러실 거예요? 다들 이재현이 화장실 간 사이에 슬쩍 일어났다. 역시 서브 작가는 둘째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응팔 덕선이처럼 중간에 껴서 샌드위치 신세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팀 법카를 받았다. 다들 훌쩍 떠나고 나서야 이재현이 들어왔다.

 "다들 가셨어요?"

 "하하. 제가 재현 씨 팬이니까 다들 쫓아냈어요!"

 눈물난다 내 사회생활. 하지만 (탈덕한지 오래인) 김한남과 둘이 앉아있는 거보다는 이재현과 앉아있는 게 나았다. 아까부터 앞 뒤 옆 테이블에서 힐끔힐끔 보던데 역시 연예인은 달라 달라.

 "역시 재현 씨. 첫방송인데 이만큼 기량 뽑아내시면 앞으로 더 잘하실 거예요!"

 "진짜요? 저 오늘 잘했어요?" 

 완전 굿. 이보다 더 잘할 수 없다. 연어 오백만개 사주고 싶은 실력이었어요. 막내 작가님께 배운 주접을 써먹었다. 실제로 청취자 반응도 나쁘지 않았다. 내일 막내 작가님 친구분이 온갖 커뮤에 영업을 하러 다닌다고 하니, 믿음이 갔다.

 "저... 제 팬이라고 하셨잖아요."

 "네. 그쵸 제가 완전 재현 씨 좋못사죠."

 "좋...좋못사요?" 

"좋아하다 못해 사랑한다구요."
"아 진짜!"

 이재현은 또 호쾌하게 웃었다. 생각보다 대화하는 게 나쁘지 않았다. 근처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이 하나 둘 씩 일어나도 우리는 일어나지 않았다. 앞에 둔 술이 아깝기도 했고, 술을 더 먹자니 안주가 모자라서 시키고. 안주가 남아서 술을 더 시키기니 술비우스의 띠가 된 것이다. 이미 내 양 볼과 이재현의 볼은 빨개졌다. 이재현은 아까부터 젓가락으로 타르타르 소스를 툭툭 찍었다.

 "아까부터 물어보시려고 한 게 뭐예요?"

 "그...제가 곱슬이 심하잖아요."

 아 시발 그랬던가. 이거 더 물어볼걸. 오늘 집가면서 나무위키 다시 정독해야겠다.

 "하하. 그쵸그쵸. 근데 왜요?"
 "곱슬 심한 거 숨기려고 모자 많이 쓰는데, 라디오에서 쓰긴 좀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무게 잡길래 제가 왜 좋아요 이런 거 물어보는 줄 알았다. 뭐 엄청난 고민인 줄 알았는데 그렇게 깊은 질문은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나는 마지막 남은 소주를 내 입에 털어내며 시원하게 말했다.

"어휴 .무슨요. 그것도 재현 씨의 모습이잖아요. 팬들은 완전 사랑해요." 

"...진짜요?" 

"예. 완전 완전요." 

"그런 제 모습까지도 사랑하는 거예요?"

 진지해진 이재현의 목소리에 조금 죄책감이 들었다. 하지만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재현은 감동 받은 눈빛 전방에 3초 발사!를 시전하더니 그대로 테이블에 머리를 박았다. 호두 잣됐다. 어쩐지 많이 취해보이더라니. 젓가락을 아까부터 계속 가만 못두고 떨어뜨리더라니. 나는 노트북이 든 오조오억키로 백팩과 함께 이재현의 팔을 들쳐멨다. 어쩌겠나. 쓰러진 사람 버리고 갈 순 없으니 언니한테 연락을 했다. 그마저도 계속 웅얼대면서 안겨오는 이재현 때문에 카톡을 치지도 못했다. 결국 전화를 걸었다. 겨우 어깨로 핸드폰을 지탱했다.

 "언니 집?"
 - 노. 나 오늘 나이트 땜빵

 "나 그럼..."

 "우웅...작가.니임."

 설명하기도 전에 찬바람에 살짝 술기운이 깬건지 이재현이 말을 했다. 

 - 뭐냐

 "아 회식했는데 넘 취하셔서...내 방에서 재울게."
 - 그러든가

 이럴 때 호적메이트가 쿨한 게 좋았다. 울언니를 나이트 땜빵으로 불러주신 모성병원 수간호사님 감사합니다. 나는 택시에 짐과 이재현을 구겨 넣고 나도 탔다. 이재현은 꾸벅꾸벅 졸면서 기사님 좌석에 머리를 박아댔다.

 "저. 손님. 애인분 머리 좀 어깨에 기대든지 해봐요."

 "아 예..."

 이재현의 꺾이는 고개가 불쌍해서 기대게 해준다. 회식에서 날 버리고 간 세 명을 저주했다. 택시는 텅 빈 한강대교를 누비며 달렸고 이재현은 자꾸만 내 어깨에 볼따구를 부볐다. 혹시 집안에서 막내인가? 나같은 K-차녀는 이런 애교 주사를 감당하기엔 버거웠다.

[구일]

헉헉 다음편 언능요 젭알.. 아냐 근데 피곤하실 테니까 천천히 아니 근데 언능 아 아니 아; 모르겟가 한 번 더 읽어야지 우히

[여울과 겨름]

ㅋㅋㅋㅋㅋ아 넘 귀여운 거 아니냐잔아 ㅋ 쪽 우히

[NCT127 DOYOUNG]

아ㅏ아아아아아아아악!!!!!! 재현아? 너 왜케 귀여워? ㅜㅜㅜㅜㅜㅜㅜ진짜 귀엽다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너무 귀여ㅝ우ㅜㅜ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