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30일에 출발한 여름 휴가, 어제 집으로 돌아왔다.
일주일간의 긴 휴가였다.
몸은 지치고 피곤하지만, 여행은 역시 삶의 재충전의 기회도 되는것 같다.
7월 30일, 새벽일찍 일어나 전라도로 향하였다.
새벽공기는 서늘하고, 지나쳐가는 아름다운 풍경들.......
산위의 구름은 각자 흩어져 똑바로 일어선 채 하늘로 날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새하얀 구름의 날개옷이 눈부셨다.
코스모스는 귀엽게 길가에 피어있고, 해바라기도 가끔씩 눈에 띄었다.
전라도 쪽으로 가면서 느낀점은, 경상도에서는 아담한 들판너머 반드시 병풍처럼 산이 둘러 싸여 있는 풍경이 보이는데, 전라도에서는 눈에 보이는 끝까지 벌판인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최고의 곡창지대로서 역시 손색이 없다 할 만 하였다.
그리고 전라도 음식은 경상도 음식보다 가짓수도 많고 담백하여, 맵고 짠 경상도 음식보다 훨씬 맛있었다.
저녁무렵이 되어서야 변산반도에 도착하였다.
인터넷에서 잠잘 곳을 예약하고 갔는데, 집의 모양만 보고 예약을 했더니, 집안은 지저분했다.
화장실과 부엌, 침실이 함께 있는 원룸으로 되어 있는 2층이 우리가 묵을 곳이었다.
모항 해수욕장에 부엌, 침실이 함께 있는 원룸으로 되어 있는 2층이 우리가 묵을 곳이었다.
모항 해수욕장에 있는 별장같은 건물이 열채정도 모여있는 바로 그곳이었는데, 지은지 오래되어 보였다.
그래도 바다에서 바라보는 숙소의 모습은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저녁무렵이 되자 바닷물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소라인줄 알고 집었더니, 집게 한마리가 조개 안에서 깜짝 놀라 튀어 나왔다.
예쁘고 못난 여러 모양의 껍질속에 자기를 숨기고, 갯벌을 열심히 기어 다니는 집게들......
모래사장 여기저기 집게들이 아이들 손에 건져 올려졌다.
관호는 처음에는 겁을 냈지만, 나중에는 집게를 많이 주워 숙소에 가지고 왔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잠자리에 누우니, 바닷물이 빠져 나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나무와 풀잎들 우거진 해변아래 조그맣던 바위는 물이 빠지면서 큰 바위가 되었다.
보이지 않던 바위까지 나타났다.
바닷물이 빠져 나가는 소리는 우기가 잠들때까지 계속 들려왔다.
쏴르르척, 쏴르르척.......
파도 소리는 해변을 치며 바다로 멀어져 가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바닷물은 다시 해변에 가득차 있었고, 배한척 하얀 거품 일으키며 숙소아래 바다를 달려가고 있었다.
뱃전에 하얗게 일어나던 거품은 온 바다로 끝없이 퍼져나가고, 새 아침은 바다에서부터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아침식사를 하고, 다시 갯벌에 갔다.
이제는 어제처럼 무작정 집게를 잡는게 아니라, 예쁜것 하나씩만 잡았다.
관호는 집게를 키우고 싶다며, 한마리를 들고 숙소로 향했다.
그리고 마이산으로 향했다.
소백산맥과 노령산맥, 금강과 섬진강의 분수령에 있는 마이산은 기가 세어 옛날 선비들이 기도하며 공부해, 재상등 많은 인물을 낳았다고 한다.
조선시대말 이갑용이라는 사람이 자연석을 그대로 쌓아 만든 돌탑이 있었는데, 태풍이 불어도 넘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솔잎으로 생식하며, 시국과 민생을 위해 기도하며 30년 동안이나 이 탑을 쌓았다고 한다.
탑의 모양은, 피라미드형, 일자형등이 있었다.
마이산을 내려와 새만금 갯벌로 갔다.
바다를 메워 옥토를 만든 곳이었다.
갯벌이 없어져 영세 어민들의 생계가 막막해지고 생태계가 파괴되는 등의 부작용이 있으나, 국토가 좁은 우리나라에서 바다를 메워 땅을 만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이런일을 해 낸 사람에게 경의를 표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역사는 수만의 어리석은 대중보다 한사람의 천재에 의해서 바뀌어 진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안면도 근처 자연휴양림 입구에 있는 콘도형 민박집에서 짐을 풀었다.
휴양림 안에 통나무집들이 많이 있었다.
기와집이 세채 있어. 많은 단체손님이 함께 묵을 수 있는 곳도 있었다.
저녁식사를 끝내고, 안면도 꽃박람회 하던 곳으로 갔다.
거기에 바닷물이 빠져나가고, 바다에 길이 하나 생긴곳이 있었다.
그 길을 걸어보고, 관호는 변산반도에서 주은 집게를 안면도 바다에 놓아 주었다.
너무 예뻐 포항에 가지고 가서 키운다더니, 바닷물을 못 먹고 공기중에만 너무 오래 있으면 죽는다는 아빠의 말에, 혼자서 바닷물이 있는 곳까지 걸어가더니, 소중히 들고 있던 집게를 물속에 놓아주고 왔다.
안면도에서 일몰을 보았는데, 바다 색깔이 너무 아름다워 언제까지나 잊혀지지 않을 것 같았다.
숙소에 돌아와서 일찍 자고, 다음날 아침 남편은 깨워도 안 일어 나길래, 아침 여섯시 30분쯤 한시간 20분쯤 되는 산책코스를 아이들과 걸었다.
안개가 짙게 끼어 있었다.
여기저기 들꽃들이 피어 있고, 산새 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도 없는 새벽 산길......
조금은 무서웠지만, 상쾌했다.
아침 식사 후, 강원도로 향했다.
가는 길에 서해대교 근처에 바다를 메워 만든 휴게소가 있었는데, 굉장히 넓고 아름다운 건물이었다.
손님이 너무 많아 거기서는 점심을 먹지 못하고, 다시 고속도로를 달렸다.
용평 스키장 입구에서 잠을 자고, 다음날 아침, 안동에 사는 지은이네 가족과 만났다.
허브마을에 갔는데, 계곡이 무척 아름다웠고, 안개가 끼어 있어, 신비스러운 느낌마저 들게 했다.
허브마을 안에서, 향기나는 야생화를 구경했다.
가수 이문세씨가 허브마을과 무슨 관계가 있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허브마을내, '별빛무대'라는 무대이름도 이문세씨가 직접 지었다고, 팻말에 써져 있었고, 또 거기에서 우리가 이문세씨를 직접 보았기 때문이다.
이문세씨는 우리를 알 리 없지만, 우리는 그의 노래를 좋아하여 자주 듣고, 그의 얼굴을 알 고 있었다.
허브마을 입구에는 예쁜 펜션이 곳곳에 있었는데, 남편이 내년에 이곳에 다시 오자고 했다.
거기서 나오면서 이효석 생가에 갔다.
'메밀꽃 필 무렵'의 물레방아간을 그대로 재생하여 셋트를 만들어 놓았다.
거기서 사진도 찍고, 이효석의 생애를 적어 놓은 곳을 둘러 보았다.
소설이 아니라 한편의 시처럼 아름다운 '메밀꽃 필 무렵'을 떠올리며 차를 달리니, 길가에, '충주댁 집터'라는 팻말이 있는 곳이 있었다.
시장이었다.
소설의 처음 시작부분에 나오는 곳이었다.
옛날의 그 장터는 아니었지만, 이효석도 그 옛날 이 곳에 서 있였을 생각을 하니, 마치 내가 소설속에 들어온 기분이 들었다.
다시 오대산으로 향했다.
거기서 석가 여래의 사리를 봉안한 월정사 팔각 구층석탑과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상원사 동종을 보았다.
오대산에서 내려오다 식충식물원에 들러, 식충식물과 들국화등 야생화가 넓게 자란 꽃길을 걸었다.
다시 양떼목장에 들러, 양떼들과 사진을 찍고, '화성에서 온 남자'의 촬영지인 원두막을 배경으로 또 사진을 찍었다.
'가을동화' 촬영지인 벤치에 앉아 사진을 찍고, 들꽃이 바람에 흔들리는 목장의 아름다운 모습을 바라보다, 목장을 내려왔다.
강원도는 생각보다 관광지가 많은 것 같았다.
경주밖에 없는 우리 경상도에 비하면, 강원도는 깊은 역사보다도, 새로 개발한 관광지가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면, 허브마을이나, 용평스키장, 효석생가, 양떼목장, 대관령목장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강원도에서는 주로 서울의 거대한 소비시장을 겨냥한 근교농업이 많고, 산이 많은 지형관계로 고냉지 농업을 많이 하고 있었다.
영동고속도로가 바로 강원도에서 생산한 농산물을 서울에 빨리 수송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용평 스키장 입구에 있는 숙소인, '눈꽃펜션'에 도착하여, 남편과 나, 동생과 제부는 짐을 풀고, 지은이, 기찬이, 관호, 승희, 영은이는 넓은 거실에서 장난을 치다, 침실에 갔다 즐겁게 놀았다.
주인 아주머니는 서울 사람이었는데, 무척 교양있고 착한사람 같아 보였다.
이것저것 자세하게 배려해 주고 신경써 주었다.
남편은 서울에서 사업하고 주말에만 내려온다고 했다.'
그리고 아주머니는 시어머니와 함께ㅐ 이곳 용평스키장 펜션옆 전원주택에서 산다고 했다.
펜션을 지은 이유는, 나이들어서 형제들과 모여 살고 싶어서 미리 지어 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펜션안은 호텔보다도 더 정갈하여, 마치 우리가 오래 살던 집처럼 편안했다.
저녁식사를 하고, 펜션옆 공터에 모닥불이 있어 그 곳에서 놀고 있으니, 서울 영우네 가족이 왔다.
영우네 가족과 부엌식탁에 않아 이런저런 얘기 나누다 모두들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 양떼 목장에 다시 가니, 주인 아저씨가 양이 있는 목장안에 들어가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예약한 설악산 백담사 근처, '곰두리 산장'에 갔다.
산장옆에 계곡물이 흐르고 아이들은 영우, 영섭이, 승희.영은이, 관호, 지은이 기찬이 모두 옷을 폭삭 적셔가며 돌로 물속에 댐도 만들고, 전망대도 만들며 신나게 놀았다.
저녁무렵 백담사 입구에 가니, 백담사로 가는 마지막 버스가 출발해 버렸다고 했다.
저녁 7시가 되면, 마지막 버스가 백담사에서 내려온다고 했다.
시간이 여섯시쯤밖에 되지 않아 걸어 올라가 마지막 버스타고 내려올까 하다가, 피곤해서 그만두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서울 영우네 가족은 서울로 돌아갔다.
안동 지은이네 가족과 함께 백담사에 갔다.
아침 7시에 백담사로 올라가는 첫 버스가 있다고 했는데, 우리는 여덟시쯤에 버스를 탔다.
백담사 계곡은 흰돌들이 많았다.
전두환 대통령이 백담사에 살게 되면서부터 일반인들의 계곡 출입을 막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물이 굉장히 깨끗해 보였다.
너른 바위가 많아 계곡물이 흰 바위위를 흘러가고 있었는데, 역시 다른 산에서는 볼 수 없는 절경이라 할 만 했다.
백담사는 만해 한용운이 기거하면서 나룻배, 님은 갔습니다.등 좋은 시를 많이 쓴 곳이다.
만해 한용운은, 민족 대표 33인의 독립 선언서를 쓴 분으로 승려이며 시인으로 우리 민족 독립을 위해 애쓰신 분이다.
백담사를 마지막으로 우리 두 가족은 안동 지은이네 집으로 향했다.
오는 길에 강원도 내린천에서 돌던지기 놀이를 했다.
돌이 물위에서 몇번 물을 치는지 세어서,. 돌이 물위에서 튀는 숫자가 많은 사람이 이기는 것이다.
이것을 잘 하려면, 먼저, 납작한 돌을 골라야 하고, 던질때도 수면에 수평선 방향으로 돌을 던져야 한다.
돌던지기 놀이를 하고 나서, 예쁘고 작은 돌하나 주워서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안동 동생네 집에 도착했다.
안동 동생네 집에서 밤늦도록, 현 교육제도와 과외실태에 대해 토론을 벌이다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우리 가족은 포항으로 향했다.
오는 길에 내 고향에 있는 '삼의 계곡'에 들렀다.
내가 살던 고향 동네에서 6km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폭포인데, 초등학교때 걸스카웃에서 단체로 한번 가 본 게 전부였다.
그래도 언젠가 한번 가 보고 싶어 마음에 두고 있었는데, 마침 남편이 그쪽으로 차를 몰아 기분이 좋았다.
깊고 깊은 산골짜기라고만 기억하고 있었던, 그 골짜기에 멋진 산장이 들어서 있었다.
폭포는 그 위치가 잘 기억나지 않고, 안내 표지판도 없어 가 보지 못했다.
계곡 물가에 자갈돌도 있고 물도 깨끗하여 다음에 한번 더 오기로 했다.
오는 길에 영덕 길가에 복숭아 한상자를 사 차에 실었다.
이렇게 하여 우리의 일주일간의 긴 여름휴가는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