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균 시인의 사설시조집 [말뚝이 가라사대]가
2009년 10월, 동학사에서 나왔다.
이달균 시인은
1957년 경남 함안에서 출생하여
1987년 [지평시선집]과 시집 [남해행]을 출간하여 문단활동을 시작하였으며
1990년 {시조시학} 신인상으로 시조 창작을 병행하였다.
중앙시조대상 신인상, 마산시문화상, 경남시조문학상 등을 수상하였으며
시조집으로 [장롱의 말] 등을 낸 바 있다.
'시인의 말'에서 시인은
'말뚝이 아뢰오'라는 제목으로
자신이 이 시조집을 엮게 된 배경 또는 과정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다음은 그 일부이다.
"...
소인놈이 펼친 마당은
사연 많은 우리네 삶의 상처와 얼룩
어루만지는 난장이믄 됐소
지 아무리 고되고 힘들어도
매구치고 놀다 보믄
종국엔 영롱한 눈물만 남던 것을
그런 법석 한판을 벌이고 싶었던 게요
어떻소? 그러면 된 것이 아니오?
결국은 지지고 볶아도
어울더울 살자는 게지
표창 던져 니 죽고 내 살자는
악다구니는 아니니
구경꾼은 앉아도 좋고 서도 좋소"
다음은 김열규 서강대 명예교수의 작품해설
'한국다운 폴키즘의 깨춤-이달균 사설시조집 [말뚝이 가라사대]에 붙이는 산문'의
일부이다.
"...
폴키즘은 저 양것들 꼬부랑 말로는 'POLKISM'이라고 쓴다....
...폴키즘의 말뿌리는 물론 '폴크'다.... 민속, 민중, 서민, 평민의 모든 것, 그 이념,
그 행동짓거리, 그 속내, 그 말투 등등....
...탈춤은 고성 오광대가 그렇듯이 모두 '폴키즘'의 극치다. ...
... 한데 그 폴키즘의 난은 사회 상층에게는 잘난 척 구는 못난이들,
높은 척 버티는 저질들에게는 고난이 되고 난관이 되고 난처함이 된다...
... 이 모든 언어와 연기의 폴키즘을 그리고 정서의 폴키즘을 이달균 시인은
꿰뚫어 보고 있다. 말마다 몸짓마다, 사설마다, 몸 사위마다, 대사마다 표정마다
구석구석 남김없이 이 잡듯 잡아내고는 그 모든 것을 그의 시법으로, 시학으로
드디어는 시 정신(포에지)으로 삼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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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떠나는 광대들 - 여는 노래 / 이 달 균
한 무리 광대패들 훠이훠이 재 넘는다
꽹과리 징소리에 마음은 바쁘지만
장고야 뛰지도 말고 날라리야 날지 마라
꽃 지는 등성으로 별 먼저 돋아 오고
해 지는 마을에도 쉬어갈 집 있으니
한세상 펼치면 마당이요 접으면 외줄타기
강물 가고 산벚 져도 강산엔 눈물 없다
어절씨구, 사랑이야! 꽃이 져야 열매 맺지
내일은 말뚝이 되어 장마당을 울려 볼까
고성만 자란만에 차오르는 밀물처럼
산첩첩 무량산을 광대패 넘어온다
굽이진 생의 끝자락 바람에 펄럭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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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 / 이 달 균
아무도 보리밭에서
날 보았다 하지 마소
지난 밤 들바람이
왜 비리고 붉었는지
들물댁
속곳 푸는 소릴랑은
들었다 하지 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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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소연 / 이 달 균
삼천리
방방곡곡
면면촌촌
다 다녔소
강원도 금강산 일만이천봉 팔만 구암당 유점사 법당
뒤 칠성단에 홀로 앉아 집 나간 영감님 찾아달라 빌고빌
며 도톨밤으로 점심 먹고 찬 샘물로 저녁 때우다 급기야
부황들어 부기 다 빠지니
얼굴은
수세미 같고
팔다리는
수숫대 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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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 이 달 균
횃불은 사위고
광대놀이 끝났건만
신명은 신명대로
취기는 취기대로
흥타령 사랑타령에
삼삼오오 몰려간다
봄밤은 깊어 가고
달은 이지러진다
광대놀이 끝나고 나니
개구리만 청승인데
멀리서 별똥별 하나
벽방산을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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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조집은
'고성 오광대놀이를 주제로 한 이달균 사설시조집'이라는
설명이 제목 위에명기되어 있다.
이 시집을 집어드는 순간 고성 오광대놀이에서 시적 동기를 얻어
집필하였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시집 전권이 한 판 오광대놀이를 옮겨적은 것이라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므로 이 시집을 제대로 알려면
1번부터 54번까지가 한 생애라고 이해하여야 한다.
고성 오광대놀이의 출발부터 도착까지를 한 줄에 꿰어놓았다고 하겠다.
우선 이 시집을 받아들고
나의 첫마디는 이것이었다.
"시원하시겠구만! 하고픈 말 다 해버렸으니!"
시집을 읽기도 전에
그 말이 튀어나왔다.
탈춤이라는 배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방만한 농지거리며 몸 사위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것들을 시로 풀어냈을 것이니
시인으로선 이 아니 시원스러우랴!
부럽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천성이나 말부림이나 탈춤에 대한 애정이 갖춰지고서야
가능한 일일 것이니
이달균 시인이 지닌 소양에 대한 부러움이 생기기는 한다.
나는 사설시조와도 거리가 멀고
탈춤과도 거리가 멀고
이달균 시인을 처음 본 것은
등단하고 얼마 안 되어서인 것 같다.
광주에서 무슨 행사가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처음으로 만났다.
달변에 기지까지 갖춘 시인이어서
분위기를 순식간에 경쾌하게 바꾸는 재주가 있었다.
지금도 눈에 선하다.
탬버린을 쳐대던 젊은 이달균 시인의 모습이.
시조행사의 뒤풀이에서 으레 진행을 맡으시는데
매끄럽고 활달한 진행이 탈춤판에서 얻어진 것임을 진즉에는 알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