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옴] 하시리야 & 도우게 (스피드 매니아의 세계)

[초절정과격남]

내용이 재미있어서 퍼왔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주세요.. (⌒, ⌒*)

인적이 끊어진 새벽 어두운 서울 남산 순환도로, 차 두대가 시속 60킬로미터 속도로 다가옵니다. 멀리서 볼 때는 흔히 길을 달리는 차들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러나 바로 눈 앞에 차가 다가오면 잠이 확 달아납니다. 차들이 트렁크를 앞세우고 후진으로 달려옵니다. 두 차는 경주중입니다. 특정한 날짜, 시간에 주기적으로 벌어지는 일입니다.
자동차에 관해 이런저런 글을 쓰다보면, 자동차와 연관된 사람들의 다양한 면면을 접하게 됩니다. 그중에는 전문레이서도 있고 자동차회사 엔지니어도 있고 수입차회사 CEO도 있고 홍보사직원도 있고 유능한 미캐닉도 있고 재야의 고수도 있고 외국 전문기자도 있습니다. 그때마다 느끼는건 ‘자동차의 세계는 넓고 내가 아는건 너무나 적다’입니다. 지금 하려는 얘기 역시 전문지식에 근거한 것이라기보다 그저 조금 들은 것들을 모아놓은 것에 불과합니다. 사회부적 시각으로 ‘조지려는’ 것도 아니고, 무슨 거창한 산업적 전망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다름 아닌 스피드 매니아의 세계입니다.


이들을 부르는 말로 가장 먼저 ‘폭주족’이라는 단어가 떠오릅니다. 일본말로도 똑같이 ‘보우소우조쿠(暴走族)’라고 하는데요. 한국에서나 일본에서나 사회적 골치거리인 것 같습니다. 흔히 9시뉴스에 거리를 무법천지로 만드는 철없는 아이들로 묘사되곤 하지요. 오오토모 가쓰히로 감독의 애니메이션 ‘아키라’에 나오는 오토바이 탄 10대들을 연상하시면 되겠습니다. 저도 심야에 신촌이나 대학로 마포 등을 지날 때 몇번 마주친 적이 있는데요. 오토바이에 요란한 치장을 하고 뒷 쇼바(쇼크업소버·충격흡수장치)를 한껏 올려 위태위태한 모습으로 거리를 누빕니다. 너무 위험하게 움직이기 때문에 아예 한동안 차를 움직이지 않고 서있을 때도 있었습니다. 저는 이들이 얼마든지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적어도 도심에서 그렇게 위험하게 오토바이를 모는 것만큼은 용납하기 힘듭니다. 자동차의 경우도 흔히 ‘칼질’(자동차의 엔진회전수게이지의 바늘 모양이 마치 칼로 썰듯이 급격하게 오르락내리락하도록 운전하는 행위)이라고 하는 급가감속·급차선변경을 시내에서 버젓히 자행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자기 혼자 다치거나 죽는건 어쩔 수 없다해도 애꿎은 다른 사람 목숨까지 위협하는 것은 역시 받아들이기 힘들죠. 이런 이들을 통칭해 폭주족이라 부르는데, 스피드 매니아의 자격은 없는 이들입니다. 어떤 것을 즐길 때는 그에 따른 규칙과 매너가 있는 것이니까요.


폭주족은 기본적으로 스피드를 즐기는 매니아가 아닙니다. 매니아로서 지켜야할 기본매너조차 지키지않기 때문이지요. 폭주족과는 차별화되는 사람들로, 자신들만의 세계를 추구하며 스피드를 즐기는 이들을 일종의 스피드매니아라 부를 수 있겠는데요. 크게 두 종류가 있습니다. 첫번째는 직선주로에서 스피드를 즐기는 이들이고요. 두번째는 코너 공략을 즐기는 이들입니다. 차에 관심없는 이들이 보기엔 그게 그거같지만, 이 둘의 세계는 많이 다릅니다. 성능을 높이기 위해 차를 개조하는 부분에서도 차이가 있고요.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있어서도 좀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첫번째, 직선주로에서 초고속의 세계를 즐기는 이들은 우리말로는 뭐라 부를지 적절한 말이 잘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만, 일본말로는 ‘하시리야’라고 합니다. ‘달리다’는 뜻인 ‘하시루’의 명사형에 ‘어떤 것을 하는 사람이나 가게’ 등을 뜻하는 ‘야’를 붙인 것으로 ‘죽어라 달리는 인간’ 정도로 이해하면 될듯 합니다. 이 하시리야들은 자동차가 낼 수 있는 한계속도까지 밀어붙이는데서 일종의 엑스타시를 느낍니다. 달리는 곳으로는 한국의 경우 인천공항고속도로나 서해안고속도로 특정구간이나 수원 외곽의 일부 구간 등이 애용하는데요. 주로 사용되는 차종은 투스카니 터보튜닝카에서부터 BMW M버전, 메르세데스-벤츠 AMG버전, 포르쉐 911터보, 페라리 360모데나, 575마라넬로 등이 있습니다. 차종에서 볼 수 있듯이 고가의 차들이 많은 편입니다. 고속으로 달리려면 그만큼 차체강성이나 엔진출력이 받쳐줘야 하는데, 이건 대부분 돈과 직결된 문제이거든요. 따라서 하시리야들 중에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좀 되는 이들이 많습니다. 투스카니의 경우도 초고속주행을 견딜 수 있도록 하체를 보강하고 엔진출력을 극한으로 끌어내려면 튜닝에 수천만원은 우습게 들어갑니다. 911터보는 순정차값만 2억원이 넘습니다. 여기에 튜닝까지 하면 그보다 더 비싸지겠지요. 일본의 경우도 닛산 스카이라인GTR이나 도요타 수프라 같은 차에 1000만엔(9000만원) 이상 돈을 들여 600~700마력 이상의 출력을 내는 괴물차로 변신시키기도 합니다. 차값의 2배 정도를 튜닝비용으로 쓰는 셈입니다.

이들은 한번 속도를 내면 시속 250km 이상, 도로상태가 좋으면 300km 내외까지 넘나드는데요. 말할 것도 없이 극히 위험한 속도이긴 합니다. 제 경험으로 볼 때, 일단 200km를 넘어가면 마치 터널을 지나는 것처럼 운전자 시야가 좁아지고 유사시 차를 통제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게 됩니다. 이는 아무리 차량성능이 뛰어나도 마찬가지입니다. 완만한 코너를 초고속으로 도는 중에 작은 돌이나 도로의 아스팔트와 아스팔트판 사이의 이음새에 타이어가 부딪쳐 살짝 뜨기라도 하면 차가 도로 바깥으로 그대로 밀려나갈 수도 있습니다. 적절한 예는 아닙니다만, 과거 F1의 영웅 아에르톤 세나도 그와 비슷한 상황에서 목숨을 잃었지요. 초고속에서는 제 아무리 운전실력이 뛰어나도 어찌할 수 없는 경우가 생긴다는 얘기입니다. 최근 인천공항고속도로에서 페라리 한대가 새벽에 초고속주행중 타이어 파손으로 가이드레일을 들이받고 전소돼 운전자와 동승자가 사망한 일도 있었습니다.

초고속을 즐긴다는 것 자체가 무척 위험한 일이긴 합니다만, 이들에게도 원칙이 있습니다. 다른 차들이 거의 없는 새벽시간대에 그것도 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 도로만을 골라 고속주행을 즐긴다는 것이지요. 일본의 경우에도 도쿄시내를 도는 환상(環狀)도로인 수도(首都)고속도로가 있는데요. 이곳의 제한속도가 아마 시속 60~70km정도 될겁니다. 그런데 밤 12시 정도를 넘어서면 이 도로를 시속 200km정도로 달리는 이들이 나타납니다. 바로 ‘하시리야’들이죠. 마쓰다 RX-7, 닛산 스카이라인 GTR, 실비아 등의 일본차와 독일 스포츠카들이 다양하게 등장합니다. ‘수도고(首都高) 배틀’이라는 플레이스테이션2용 게임으로도 나와있을만큼 이곳은 일본에서도 꽤 유명합니다. 또 도쿄의 국내선공항인 하네다공항 부근에서 요코하마까지 이어지는 완간(灣岸) 고속도로도 초고속주행을 즐기는 장소로 유명한데요. 주말 새벽이면 요코하마의 명물 다리인 베이브릿지 아래 주차장에 이런 하시리야들이 운집한다고 합니다. 차가 거의 없는 시간대만 달린다는 것은 다른 차들과의 충돌위험을 최소화하겠다는 뜻일겁니다. 물론 100% 사고예방이라는 것은 불가능합니다만.


두번째는 직선주로의 스피드, 속칭 ‘직발’보다는 코너를 좀더 빠르게 돌아가는 것을 즐기는 이들이 있습니다. 일본말로는 ‘도우게’라고 합니다. 고개 언덕배기를 뜻하는 말인데, 고개길 코너를 즐기는 인간들을 지칭할 때도 씁니다. 시게노 슈이치의 만화 ‘이니셜 D’를 보면 꼬불꼬불한 산비탈 도로를 누가 먼저 내려 오는가로 승부를 내는데요. 주인공인 타쿠미가 전형적인 도우게입니다. 이들은 직선주로에서 누가 더 스피드를 내느냐는 차에 얼마나 돈을 들이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에 재미가 덜하다고 주장합니다. 그보다는 코너를 공략하는 기술로 승부를 내는 것이지요. 자동차도 고급 스포츠카보다는 운동성능이 뛰어난 일반차량을 튜닝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니셜D에도 주인공 타쿠미는 도요타 트레노(속칭 하치로쿠·86)를 타고 나오는데요. 객관적인 성능으로 보면 보잘것 없는 차입니다. 차의 한계를 실력으로 극복한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후륜구동차의 뒤바퀴를 의도적으로 미끄러뜨려 코너를 탈출하는 드리프트주행도 즐깁니다.


서울 근처의 경우 경기도 양평 일대나 인천 항만쪽의 특정지역에 이들이 자주 나타나고요. 서울의 경우 남산순환로나 북악스카웨이 같은 곳에서 일합을 겨루기도 합니다. 특히 남산순환로는 서울 도심에 위치한 곳으로는 거의 유일하게 특정일 밤 늦은 시간에 번개형식으로 모여 레이스를 벌이는 곳입니다. 물론 차가 거의 없는 심야시간대이긴 하지만 이 경우에도 많이 위험한게 사실입니다. 게다가 남산순환로는 도로구조가 기형적인 곳이 적지 않습니다. 고속으로 달릴 경우 앞의 장애물 파악이 잘 안되는 사각(死角)지대도 적지 않고, 결정적으로 코너 바깥쪽의 높이가 더 낮은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코너가 존재하거든요. 자칫 잘못하면 차가 코너 바깥으로 날아가버리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 레이스를 벌이는 차들은 하시리야들이 고급 스포츠카를 선호하는 것과 달리, 국산 엑센트나 아반떼 티뷰론 같은 비교적 연식이 좀 된 중소형차를 튜닝한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차 자체의 성능이 너무 뛰어날 경우 레이스에 붙여주지 않습니다. 이곳의 레이스중 가장 충격적인 것은 이 위험한 코너에서 후진으로 실력을 겨루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후진기어는 대강 전진 1단 정도의 기어비라고 보시면 되겠는데요. 후진기어를 넣고 엔진회전수의 레드존을 넘기며 레이스를 벌이는데, 시속 60km 정도까지 올라갑니다. 보통 2대가 약간의 간격을 두고 출발하고요. 간격이 좁혀지면 뒤차가 이기는 거고 벌어지면 앞차가 이기는겁니다. 혼자 몰기도 하고, 동승자가 타고서 차의 오른쪽 상황을 크게 떠들어주는 코드라이버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레이스를 벌이기 전에 무전기 연락을 통해 외부 차량 소통이 없는 것을 확인하다고는 하지만, 후진 50~60km의 속도로 그것도 남산순환로를 달린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미친 짓일 수도 있지요. 하지만 실제로 벌어지는 일입니다. 최근엔 안전상의 이유로 후진 레이스를 벌이는 이들이 많이 줄었습니다.


일본의 경우도 도치기현 이로하자카라든가, 이바라키현 쓰쿠바산, 군마현 우스이고개 등 도우게들의 순례코스가 많다고 합니다. 하시리야들에 비해 ‘헝그리 레이서’들이 많은 편입니다. 주로 혼다 시빅이나 유노스 로드스터 같은 차를 많이 몬다고 하더군요. 만화에서처럼 두대가 동시에 출발해 좁은 코너를 달리는 것은 너무 위험하기 때문에 시간차를 두고 출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또 일본 도우게들의 말에 따르면, 만화에서처럼 바퀴를 미끄러뜨려 코너를 탈출하는 드리프트 주행은 보기에만 멋있을뿐 시간단축에 그리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그립(타이어의 노면 장악력)을 최대한 이용해 달리는 쪽을 선호하는 경우가 많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뭔가 ‘특이한’ 짓을 하면 우선 배척하고 비판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회적 풍토가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보통사람들은 이런 스피드 매니아들은 이상한 족속으로 취급하고 범법자처럼 생각하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조용한 성품에 지적수준도 뛰어나고 버젓한 직장이 있는 이들입니다. 자동차회사 엔지니어나 수입차 딜러·미캐닉 등 자동차관련업 종사자들이 가장 많지만, 평범한 직장인, 전문직 종사자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중엔 대기업 전자회사 연구원으로 거의 레이서 수준의 운전능력을 지닌 여성 매니아도 있고요. 직접 만나본 사람들 중엔 40대의 개인병원 원장과 스트리트 레이스에서 ‘차 따먹기’를 일삼던 재야의 고수 출신으로 현재 자동차전문지 기자인 분도 있었습니다.

이들의 일반적인 특성이라고 하면, 사교적이지 않고, 뭔가 하나를 정해 깊게 파고드는 성격이 강하다는 것입니다. 현대인에게 도드라진 특성중 하나이기도 한데, 어쨌든 고수일수록 별로 말이 없습니다. 저처럼 잘 모르는 사람이야 이렇게 저렇게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만, 정말 조용한 분들이 많습니다. 저런 사람들이 어떻게 자동차로 저런 하드코어적인 행동을 할까 의문이 들 정도이지요. 하지만 자동차로 달린다는 것은 일상생활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풀거나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것을 좀더 적극적으로 행동에 옮기는 것일 뿐입니다. 처음에 언급했던 폭주족같은 일을 일삼지만 않는다면, 적어도 고속주행이나 코너링을 즐긴다고 해서 비난받아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남산 후진 레이스같은 것은 물론 해선 안되겠지요) 이들은 대부분 정말 차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공도 레이싱이나 튜닝의 세계에 대해 무조건 백안시하는 경향이 있지만, 자동차에 애정을 쏟고 드라이빙 기술을 연마해 가는 이들이 있기 때문에 자동차문화도 함께 발전해갈 수 있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너무 과도하게만 하지 않는다면 말이죠. 일본 자동차 산업의 저력은 일본 전역에 깔려있는 자동차 매니아들의 집요한 자동차 사랑에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차를 너무너무 좋아하는 인간들이란 어디에나 있게 마련이죠. 겉으로 드러나있지 않을뿐 한국에도 이미 많이 존재하고 있고, 자동차문화가 점점 성숙해져감에 따라 그 인구도 늘어날 것이라 생각합니다. 앞에서 소개한 것들이 자동차 생산 세계 6위국가의 위상에 맞는 건전한 놀이문화로 발전해 나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출처: 조선일보 편집부 최원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