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4월 6일 청림회(2)
···그 하루에 여섯 때[六時] 예불은 안 해도 되는데. 교만만 안 하면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그러니까 너무 잘 할라, 해 가지고 형식적으로 잘 하기는 하는데. 옆에서 보다 보면은 실상은 아무 것도 없어요. 왜? 모르고, 업식(業識)에 따라서 하는 게, 이렇게 쳐다보면은 격식이나, 형식이야. 그렇게 하면 안 돼요. 부처님 앞에 딱, 서면. 까치발로 서 가지고. ‘거짓말 안 해야지···’, 그리고 조용히 자기를 좀, 다지고 그래야지. 짧은 순간이지만, 찰나 순간 속에서도 자기를, 고요로 밀어 넣는, 그런 연습을 자주 해야 됩니다. 성질난다, 해 가지고. “이리 온나, 저리 온다, 해 가지고 아이, 막, 머리 쥐어박아 가면서, 너희 엄마 데려온나, 아버지 데려온나.” 그래 가지고 될 일이 아니거든. 뭔가 걔가 이래 가지고. 니도 부처제, 나도 부처다, 이래 가지고. 부처 대 부처로 얘기가 이렇게 되야 되거든요? 공부도 못하제, 속만 썩이제. 그 놈을 제도하고 나면은 얼마나 좋습니까.
말 안 듣는 공양주, 한 번 제도하고 나면 저도 그만, 흐뭇~하거든요. (웃음) 제가 행자 때, 함 실험 해 봤거든요. 우리 공양주는 얼마나···70 다 돼 가시는, 60 좀 넘으신 할머니였는데. 행자하고 싸우고·우리 스님한테 앵겨 붙고·오는 신도마다 앵겨 붙고·· 말 안하고 좋은 거만·좋은 거만 주니까, 어때요? 맛있는 거만, 제게 다 주는 거라. 저도 만만찮은 성격인데. 좀 까칠~한데···그렇게 한번씩 자기를 고요 속으로, 밀어 넣는 연습을 해야 무아(無我)를 자꾸 체득합니다.
21. 有智若聞(유지약문)하면 則能信解(즉능신해)하고
지혜 있는 사람이 만약에 이 법을 들을 것 같으면. 어떨 것 같애요? 바로, 신해(信解). 믿고, 이해해 버린다는 거죠.
無智疑悔(무지의회)하야 則爲永失(즉위영실)이라
그런데 무지(無智)한 우리 같은 사람들이 이걸 들으면은 ‘진짜 그럴라꼬···’ 이 “<법화경> 한 권”이 비싸겠습니까, 여러분 전 재산이 비싸겠습니까? (법화경) 그러면은 전 재산, 나한테 다 주이소, <법화경> 한 권 드릴께. (웃음) 진짜라요? 진짜는 아니죠? 예? (예) 진짜는, 집이 더 비싸겠지, 그렇죠? (대답 없음) 예, 하세요. (예~) 여러분들 속 심정인데 어떻게 해. 그렇지만 그것을 이제, 나중에. 천칭 저울에 올려놓고 서로 저울질 하듯이, 조금씩·조금씩, 자기 업쪽을···(<법화경> 책을 펼쳐 드시며) 이게, 여러분들이 오직, 의지하고 기대어 가야 되는. 진짜 이거 얼마나 행운입니까? 이 시절에. <법화경>을 만났다는 게. 우리를 만난 게 쪼끔, 옥의 티지마는··· 그러니까 오늘 집에 가셔 가지고, 아침·저녁으로 <범어사> 쪽을 향 사르고 기도하시는 겁니다. ‘큰 스님, 빨리 나으셔 가지고 저 못난 용학이좀 쫓아 보내 주세요.’ 그렇게 기도하세요. 그러면 하늘도 알고·부처님도 아시는데, 그거 안 들어 주겠어요?
그 다음. 무지(無智)한 사람들은 의심을 품어 가지고. 그러니까 무슨 일 할 때요. 의심이, 의심하는 사람은 욕심이 많거든요. 그걸 갖다가, 절하고 뭐하고 할 때도 겸손한 척 하지 마세요. 어떤 때, 겸손한 척 하면서. 제가 쓰윽 뒤쪽으로 돌아보면, 전부 의심 덩어리라. 특히 선생님들, 더해요. 제일 많아. 그래, 선생님, 제가 별로 안 좋아하죠. 선생님이라고 하는 것은. 하여튼 하늘에서 내린 벼슬, 천작(天爵)임에도 불구하고. 하~도 그, 애들이라든지, 말 안듣고고 다스리고, 이렇게 하는 속에 살아가다 보니까. 그게 자기도 모르게 상즉상입(相卽相入)으로 찍혀 가 있어. 그래 그걸. ‘아! 내가 상즉상입(相卽相入) 돼 가지고···’ 이렇게 간파하시고 절대 물들지 않는 쪽으로 자꾸 회향해야, 아름다운 인생이 되는 거야, 아름다운 인생이.
세상에. 그 맹자 3락(孟子 三樂)이라 해 가지고. 천하 영재를 교육시키는 것[득천하영재 이교육지(得天下英才 而敎育之)]보다 더 보람된 일이 어딨습니까? 제가 선생이라서 하는 소리가 아니구요. 이, 학교 선생님, 최고 좋은데도 불구하고. 그게 이제 잘못하면은 무지(無智)한 선생이 돼 가지고 업식()에 기대 가지고 고질병만 잔~뜩 안고, 인생은 별로 활발발하지를 못해요. 좀 초잡아 지죠, 선생이. 좀 녹음을 지워 주세요. 여러분들은 안 그런데 불교 공부 안 하시는 선생님들 보면, 좀 초잡은 사람, 있지요? (예) 그걸 경상도 사투리로 좀 ‘다랐다’옆에 그래요. 사소한 거에 막, 목숨을 건다, 보면은. 그래 복사기 들어오면 칼같이 자기 쪽으로 가까운데 땡겨 가고~.
즉위영실(則爲永失)이라. 의심을 해 가지고 참 안타깝게도 자기의 마음 보배를 영원히 잃어버린다. 무간지옥(無間地獄)으로 떨어져버린다. 아비지옥(阿鼻地獄)
是故迦葉(시고가섭)아! 隨力爲說(수력위설)하야
이러한 까닭으로 가섭아! 이게 남의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리 된다니까요. 저는 지옥, 가겠습니까, 안 가겠습니까? 안 갑니다. (예) 왜 그렇습니까? 저는 가기 싫은 데는 어릴 때부터 한 번도 가지를 않애요. (웃음) 가기 싫은 데는 안 가기 때문에. 내, 가기 싫은 데, 제가 뭐 하러 가겠습니까. 극락 가는 거도 조금 귀찮은데 지옥까지··· 너무 힘들어요. 그래, 이렇게 살면 갈 리가 없습니다. 갈 리가 없습니다. 갔다가도 저 쪽에, 동동 떠다닐 거야. 갈 수가 없어요.
수력위설(隨力爲說)하야. 그 역량을 따라서. 역량을 봐 가면서. 가섭아! 역량을 따라서 위하여 설법하여
以種種緣(이종종연)으로 令得正見(영득정견)케하나니라
갖가지 인연으로, 갖가지 연(緣)으로 하여금. 그 모든 중생들을. 하여금 바른 견해를 얻게 하나니라.
22. 迦葉當知(가섭당지)하라 譬如大雲(비여대운)이
136페이집니다. 가섭아! 마땅히 알아라. 이러한 도리는 어떠하냐? 비유컨대, 마치 큰 구름이
起於世間(기어세간)하야 徧覆一切(변부일체)어든
세간에 일어나서. 세간에 큰~, 어떤 구름이 일어나서. 온~ 동서남북으로 가득~히 덮거든
慧雲含潤(혜윤함윤)하고 電光晃曜(전광황요)하며
혜윤(慧雲) 지혜의 구름이 모두다. 어때요? 윤택하고. 전광(電光)이. ‘황[晃]자(字)’입니까? ‘황홀할 황[晃]자(字)’‘광 자(字)’입니까, ‘황 자(字)’입니까? 황요(晃曜). 아! 밑에 글 있네. 한문으로 읽었네. 전광황요(電光晃曜). 사람이. 여기서 한 군데 집중하니까, 바로 밑에 있는 그 한글이 안 보여··· 아이구, 나도 어리석네. 한글로 볼 걸 그랬네. 아니, 그 위에서부터 한글이 안 보였습니다. 그러니까, 한문으로 읽어야 뜻이 내려가니까, 그렇죠?
그러니까 여기서 ‘비가 온다.’ 이러면. 번개가 번뜩번뜩 치고, 우레가 번뜩번뜩 울고, 그렇죠? 여러 가지 진동을 하고. 요렇게 하는 거는 하마, 이제 미리, 어때요? 여러 대중들은 즐거운 일이 있을 거니까. ‘비가 내린다.’ 이러면, 온갖 만물들이 좋아하잖아요? 예를 들어서 한 섣달쯤 지나고 나면, 이른 초봄이 오기 전에, 저 먼 하늘 끝에서 “우르릉~”하고 우레가 함 울고 나면. 여기 땅에 들렸는지 안 들렸는지 모르지마는. 그 우레가 나중에 자라고 자라서 여름에는, 장맛비가 되잖아요, 그렇죠? 큰~ 비가 되듯이. 미미하지만···
그러니까 겨울에 한 번 울어주는, 그 초봄에 한 번, 저 아득한 우주 먼 곳에서, 하늘 먼 곳에서 한 번 슬쩍 울어주는 그 우레 소리를 감지할 수 있다, 이러면은. 어떠한 못된 악업이든지 이런 걸 자기가 짓지 않고. 지금처럼 이렇게. <법화경> 선근의 쪼그만 공덕이라도, 심어 놓는 거죠. 그러면 종내는 그것이 큰 장맛비가 돼서 일체 중생을 부처님처럼 만덕(萬德)으로 후덕하게, 복되게 남을, 할 수 있지. 그런데 여러분들이 생각할 때는 ‘내가 우리 집에 살고, 학생들하고 사는 것도 골치 아파 죽겄는데, 스님, 다른 중생들 돌아볼 게 뭐 있습니까?’ 이런 생각 하지마는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 <법화경> 한 번 본 인연으로, 우리 빛은 이미 다 대한민국을 관통하고도 남았습니다. 그럼, 제 이름은 언제까지 남을 것 같습니까? 모르긴 해도 한 3천년 뒤에까지 남을 것 같습니다. 맞습니까? (예~) 대답이 와 이리 시원찮습니까? (웃음) 그렇게 하시고 살아 가셔야 됩니다.
雷聲遠震(뇌성원진)하야 令衆悅豫(영중열예)하며
뇌성원진(雷聲遠震)하야 중생들로 하여금 모두 기뻐하고 준비하게 하며. 하~, 이, 지혜로운 법비[法雨]를 내릴 건데 준비하라, 이거죠.
日光掩蔽(일광엄폐)하고 地上淸凉(지상청량)하며
그런데, 쨍쨍 내리쬐던 뙤약볕이, 뙤약볕을 착 가리고. 구름이 화악, 하늘에 덮이니까 시원~해졌다는 것. 이런 것은 부처님의 자비로운 묘한, 자비로운 큰 구름이 번뇌로 끓는, 이 열탕같은 대지를 갖다가 식혀주는, 청량산, 그런 역할을 한다고 비유를 해 놨어요. 번뇌를 사~악, 없애준다.
靉靆垂布(애체수포)호대 如可承攬(여가승람)하며
구름이 수포(垂布)라. 꽈~악, 덮여 가지고 내려 온 것이. 마치 승람(承攬)이라. 손에 잡을 듯이, 눈에 잡힐 듯이. 손에 잡힐 듯이, 이어서 잡힐 듯이 그렇게 가득찼다, 이 말이야. 그래, 온 천지에 가득한 그 구름이.
其雨普等(기우보등)하야 四方俱下(사방구하)하며
널리 비를 내려서. 우보등(雨普等). 여기서 ‘널리 비 내린다.’는 말은 뭡니까? 이익을 아주 균일하게, 차별없이 나눠준다, 그런 말이죠. (책장을 급히 넘겨보시며) 마치겠나? 이거 KTX 타도 안 되겠다. 사방에 모두 다 구하(俱下)라. 비 내렸다. 사방에 모두 내렸다는 것은 태·란·습·화(胎·卵·濕·化), 어떤 중생도 가리지 않고. 그 다음에 성문(聲聞)·연각(緣覺)·보살(菩薩)도 가리지 않고, 다 나눠 준다, 그런 말이죠.
流澍無量(유주무량)하야 率土充洽(솔토충흡)할새
그 내리고, 비 내리는 양이 한량이 없어서 모든 국토에 모두 충흡(充洽)할 새. 가르침의 가피가 3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를 뒤덮었다, 이 말이죠. 충흡(充洽). 좋은 말입니다. 모든 국토, 솔토(率土)에 충흡(充洽)할 새.
23. 山川險谷(산천험곡)에 幽邃所生(유수소생)인
산과 내[川]와 험한 계곡과. 유수(幽邃). 그윽하고 깊고 깊은 소생(所生)인
卉木藥草(훼목약초)와 大小諸樹(대소제수)와
풀이나 나무나 약초나. 크고 작은 모든 나무와
百穀苗稼(백곡묘가)와 甘蔗蒲萄(감자포도)가
온갖 곡식과 그 싹들이. 온갖 곡식들이. 감자와 포도와
雨之所潤(우지소윤)에 無不豐足(무불풍족)하며
비를 내리면서. 거기에 비를 내림에. 윤택해 지는 것에. 무불(無不). ~아닌 것이 없더라. 풍족하지 아니한 것이 없으며
乾地普洽(건지보흡)하야 藥木幷茂(약목병무)하며
건지(乾地). 하늘과 땅이 널리 적셔져서. 약초와 나무가. 뭐, 온갖 것, 다 들어갔죠? 아울러 무성해지며
24. 其雲所出 一味之水(기운소출 일미지수)에
그 구름이 소출(所出). 나툰 바에. 한결같은 맛에. 그, 비가 한번 쪼~옥, 내리니까. 그 기운에
草木叢林(초목총림)이 隨分受潤(수분수윤)하며
초목총림(草木叢林0이 그 분수를 따라서, 그 역량, 힘만 따라서 수윤(受潤)이라. 윤택함을 수(受). 감수하며
一切諸樹(일체제수)에 上中下等(상중하등)이
일체의 모든 나무에. 나무가 큰 놈·중간 놈·작은 놈 등이
稱其大小(칭기대소)하야 各得生長(각득생장)하며
칭(稱). 이 때 ‘칭[稱]자(字)’라고 하는 것은 칭합(稱合)한다, 딱 들어맞는다, 이 말이야. 그, 크고 작은 것에 딱, 칭합(稱合)해서. 각기 생장(生長). 생육(生育)되고 장성(長成)하는 것을 얻는다. 장성(長成)하게 된다. 이 때 ‘득[得]자(字)’도 사실은 가능 조동사로 봐서 ‘능[能]자(字)’나 이런 거나, 같이 새겨도 괜찮습니다.
根莖枝葉(근경지엽)과 華果光色(화과광색)하야
뿌리와 줄기와 가지와 잎사귀와 꽃과 열매와. 그 열매가 빛나고 아주 색이 고와서
一雨所及(일우소급)에 皆得鮮澤(개득선택)호대
그만 하까요? (아니요) 열강을 했나, 열이 좀 올라오네. 저는 열강이 아니라 좀 발광을 한 거 같습니다, 발광. 이 강의라는 것이 점잖~게. (곧추 세워 앉으시며 라디오 DJ처럼 낮은 목소리로) “아,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렇게 해야 되는데, 이게 되지를 않애. 일우소급(一雨所及)에. 한 번 비를 내림에. 모두가 선택(鮮澤)을 얻었다. 선택(鮮澤)하게 된다. ‘고울 선[鮮]자(字)’ ‘윤택할 택[澤]자(字)’ 비 한 번 내리니까 풀빛이 새롭더라, 는 거지.
강 나루 긴 언덕에. 뭐죠? 서러운 풀빛이 짙어 오면은. 처녀애들 짝하여 새로이 서고. 뭐고, 그거, 아닌데? 서러운 풀빛이 짙어 오겄다, 그게 제일 마지막 아니예요? 그래, 사실은 대동강수하시진(大同江水何時盡)~. 해 가지고 정 지상(鄭 知常:?~1135) 의 제일 아름다운 이별시 아닙니까? 그거까지 하다보면 시간이 없을 것 같고. 갑니다.
如其體相(여기체상)하야 性分大小(성분대소)나
마치 그 체상(體相)과 같아서. 성분(性分)은 대소(大小)나 모두다
所潤是一(소윤시일)이라 而各滋茂(이각자무)하나니
윤택함은 한결같다. 제 역량만큼 한다, 해 가지고 이만큼 자세하게 해 놨네. 그러니까 얼~마나 자세하게 해 놨어요? 반복하고~·반복하고. 각기. ‘자[滋]자(字)’는 요게 아주, ‘기름질 자[滋]자(字)’거든요. 아주 촉~촉~하게, 이렇게 습기를 머금은 걸, 그런 걸 ‘자[滋]’라고 그럽니다. 무성한 걸 갖다가, 풀이 아주 건장하게 자라는 모양을 자무(滋茂)라고 그렇게 얘기를 하죠. 각기 자무(滋茂)라. 잘~ 성장을 하는데
25. 佛亦如是(불역여시)하야 出現於世(출현어세)는
비유하면 이것은 뭐냐? 부처님 또한 그 큰~ 비 내리는 거와 같아서. 부처님께서, 큰 비가 이 세상에 내리는 거와 같다는 거죠. 부처님의 장맛비는 지금도, 계속 됩니다. 계속 되고 있지요. 언제까지요? 영원무궁토록. 그런 걸 영원무궁토록. 출현어세(出現於世). 이 세상에 나오심에 비유하건대
譬如大雲(비여대운)이 普覆一切(보부일체)요
마치 큰 구름이. 널리 일체를 덮는 거와 같고.
旣出于世(기출우세)에 爲諸衆生(위제중생)하야
이미 우세(于世). 이 때 ‘우[于]자(字)’는 전치삽니다. 어세(於世), 우세(于世), 다 똑같은 말이예요. ‘어(於)’ ‘우(于)’ ‘호(乎)’, 다 똑같은 말입니다. 세상에, ‘에’자(字)가 어디에 떨어졌어요? ‘우[于]자(字)’에 떨어졌습니다. 이미 세상에 출현하심에. 모든 중생을 위하여
分別演說 諸法之實(분별연설 제법지실)하나니
제법(諸法)의 실상(實相)을 잘 분별해서 연설하셨나니. 그건 그렇게 떨어져야 돼요. 제법(諸法)의 실상(實相)을 갖다가, ‘분별(分別)’이라는 것은 아주 지혜롭게 잘 가리는 것을 ‘분별(分別)’이라 그래요. 잘 분별(分別)못 하는 사람을 뭐라 그럽니까? 숙맥(菽麥)이라 그러죠. ‘콩 숙[菽]자(字)’ ‘보리 맥[麥]자(字)’ 콩하고 보리하고 갖다 놨는데, 엄청 다른 걸 갖다가 구분을 못해내고, 그걸 갖다가 숙맥(菽麥)이라 그래요, 숙맥(菽麥).
26. 大聖世尊(대성세존)이 於諸天人(어제천인)과 一切衆中(일체중중)에
참 크고도 거룩하신 부처님께서. 어(於). 어(於)는 뭐라 그랬어요? ‘~에’ 그랬죠? 모든 천인(天人)과 일체 대중 가운데에, 이렇게 ‘어[於]자(字)’가 여기에 떨어지는 거예요.
而宣是言(이선시언)호되
이러한 말을 이선(而宣). 펼치시되, 베푸시되, 선설(善說)하시되. 그렇죠? 설법하시기를.
글이 자꾸 바뀌는 거는 요, 번역해 놓은 사람이 글재주 한다고 이래 놨어요. 글 자랑한다고. 문장력, 자기 자랑 한다고. 잘 다듬는다고. 그러니까 얼마나 거룩한 분들입니까? 온갖 기교를 갖다가 문장 속에서 다 부려 놨습니다. 고맙고도 고마운 분들이죠.
27. 我爲如來 兩足之尊(아위여래 양족지존)이라
나, 여래(如來)는.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나는 여래(如來)다.” 나, 여래(如來)는. 나는. 여래(如來)로서, 양족지존(兩足之尊)이다. 두 발이 다 존귀한 사람이다, 맞습니까? ‘발 족[足]자(字)’ 아닌가, 양족(兩足). 양족(兩足). 양족(兩足)이 뭡니까?
“귀의불 양족존(歸依佛 兩足尊)” 양족(兩足). 복과 지혜가 구족되어 있다. 양족(兩足). 지혜(智慧)라고 하는 것은 자리(自利)요, 복(福)이라고 하는 것은 남을 복되게 하기 때문에 이타(利他)가 되는 거죠. 자각각타(自覺覺他). 자리이타(自利利他). 이게 부처님이 갖추신 양족(兩足)이라고. 이런 것을 이엄(二嚴), 두 개의 장엄한, 이엄지(二嚴?), 극과(極果). 지극한 열매다, 극과(極果). 극과(極果)라는 것은 바로 열반이거든요. 그게 이제, 극과(極果)라고 하는 것이 바로, 부처님의 지혜와 복덕. 다른 말로 하면은 양족(兩足). 복이 없으면 좀, 지혜라도 있든지. 아이고···
나는 여래(如來)로서 양족(兩足)의 존귀한 사람이다.
出于世間(출우세간)은 猶如大雲(유여대운)이
그래서 세간에 출현한 것은 비유하건대, 마치 큰 구름이
充潤一切(충윤일체)어든 枯槁衆生(고고중생)이
일체를 충윤(充潤). 충분히 윤택하게 하거든. 고고(枯槁)한 중생이. 아주 마음이, 말라비틀어진··· 마른 나무를 가지고, 아무리 그거, 물을 짠다고 하더라도 거기서, 마른 나무에 물이, 나겠습니까? 안 나지요? 빼~짝, 말라 가지고. 지식적으로 자꾸 불교를 접근할라고 하면은, 그리 밖에 안 되는 거예요. 책을 봐야 알고, 책을 안 보면 강의도 안 되고, 원고 잃어버리면 안 되고. 이렇게 해 가지고는 되지도 않애요. 책을 안 보면 배웠던 거 홀딱 까 먹어버리고. 노트에 적어 놓고. 그거는 안 된다고요. 오늘 했던 거는, 뭐, 적기도 하지마는. (책을 툭, 건드리시며) 여기는 설핏, 찍어 놓지마는. (가슴을 톡톡 치시며) 가슴에는 (손을 가로 저으시며) 지워지면 안 돼요. 그거 어떻게 지울 수 있어요? 어떻게 안 지워야 되느냐? 신혼 첫날밤처럼 지우지 마세요. 똑똑히 기억하세요, 예? (예~) 기억나지요, 그거? 시집 간 날, 기억 안 나세요? 나지요. 그러니까 오늘도 그렇게 좀, 기억 해 주세요. 거룩한 날. 이 고고(枯槁)한 중생들은 안 되는 거라. 고고장에나 가고··· (웃음) 빼~짝 마른 중생이
皆令離苦(개령이고)하고 得安隱樂(득안은락)인
모두 다, 진짜 제도(濟度) 안 될 사람들이. 여기서 “미도(未度)를 영도(令度)”라고 써 놔요. 미도(未度) 영도(令度). 제도(濟度)못 할 중생들을 하여금 제도(濟度)하게 된다, 이 말이야. 모두다 고통을 떠나서 득 안은락(得安隱樂)이다. 이걸 줄여서 뭐라 그럽니까? 이고득락(離苦得樂)이라.
<기신론(起信論)> 같은 데는 “이일체고 득구경락(離一切苦 得究竟樂)”, 그렇게 얘기하죠. 이고득락(離苦得樂).
<반야심경>에는 뭐라 해 놨어요? “원리전도몽상(遠離顚倒夢想)” 전도몽상(顚倒夢想)을 멀리 하고. 그래 일체 고통을 떠나는 거지요, 그렇지요? 그래서, 구경열반(究竟涅槃)하는 거. 똑같은 말이예요. <화엄경>도 그런 구절 없나, 기억나는 거 없나? 없으면 마, 넘어 갑시다.
世間之樂(세간지락)과 及涅槃樂(급열반락)이니
세간의 즐거움과 출세간의 즐거움. 그러니까 열반락(涅槃樂)이라고 글자 맞추려고 그래 버렸어요. 예? 예. 그런 것이니. 그러니까 깨치고 나면은. 중생 세계에 살아도 좋고 부처 세계에 살아도 좋고. 여기 가도 희희낙락, 저기 가도 희희낙락이예요. 성질 못 된 놈은 여기서도, 집에서도 새고·나가서도 새고. 예? 그렇죠. (예) 가리사(家裏事)와 도중사(途中事)가, 길 가던 일이든지 집에서 일이든지 안팎이 내외명철해서 투명한 사람은··· 생각이, 그 무심한 사람은 그렇게 된다는 거예요. 그 전에는 생각이 복잡한 사람들은 안에서 새고 나가서 부딪치고, 뭐. 옆으로 보면 알아요, 대충 누군지. 집에서도 별로 인기 없고 학교에서도 별로 인기 없으면 돌아봐야 돼요.
28. 諸天人衆(제천인중)은 一心善聽(일심선청)하며
제천(諸天)과 대중들은 모두 일심(一心)으로 잘 들으며
皆應到此(개응도차)하야 覲無上尊(근무상존)이니라
모두다 응당히 이에 이르러서. 무상존(無上尊). 참, 내보다 더 거룩한 사람이 있네··· 나를 친견할 지니라.
29. 我爲世尊(아위세존)하야 無能及者(무능급자)니
나는 세존(世尊)으로서. 무능급자(無能及者)라. 불능급(不能及)이라는 말, 아시겠죠? 족탈불급(足脫不及). 불급(不及). 불급(不及), 알죠? 미치지 못한다. 그러니까 나는 세존(世尊)이시니. 무능급자(無能及者)라. 나한테 능히 따라올 사람이, 있다·없다? 나한테 미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내까지 올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이니
安隱衆生(안은중생)호려 故現於世(고현어세)하야
중생을 편안~하게, 고통을 떠나게 하여, 안은(安隱)~하게 이렇게 감싸 주려고 현어세(現於世)라. 세상에 출현하시었다. 출현해서
爲大衆說 甘露淨法(위대중설 감로정법)호니
대중을 위하여 설(說). 뭐합니까? 감로(甘露)의 청정한 법문을 설하노니.
30. 其法一味 解脫涅槃(기법일미 해탈열반)이라
그 법은 한결같은 한 맛이다, 이거야. 무슨 말이냐? 해탈열반(解脫涅槃)이라. 그러니까, 불교보다 쉬운 거, 없어요. 해탈열반(解脫涅槃)만 잘 파악하고, 생멸법(生滅法)만 파악하고 이러면은. 마음 일어나는 거, 이거보다 더 쉬운 게 어딨습니까? 너무너무 재밌고 너무너무 쉽고. 가끔씩 성질났다가도. <법화경> 한 번 읽었던 공덕으로 성질은 어디 가 버리고 없어요. 성질 꼭다리를 떼는 방법이야, 이것이요. 콩나물 대가리 떼듯이.
以一妙音(이일묘음)으로 演暢斯義(연창사의)하며
한결같은 묘한 음성으로써. 이 때 ‘이[以]자(字)’는 ‘써 이[以]자(字)’있지요. 이것은 ‘~으로써’ 이렇게. 써 이[以]자(字)’는 ‘~으로써’ 일묘음(一妙音)으로써. 용학이으로써, 하면 어때요? 이용학(以龍?), 이렇게 되는 거라. 이 묘한 음성으로써. 그 다음에 ‘이 사[斯]자(字)’있지요? 연창사의(演暢斯義)할 때의 ‘사[斯]자(字)’는 지시 대명사예요. 이 뜻을 연창(演暢)하며. 연설해서 드날린다, 이 말이죠. 연설한다는 말하고 똑같애요. 연설하며. 묘한 음성으로써 연설한다, 이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 조금 모자란 놈도 알아듣고·잘난 놈도 알아듣고·큰 놈도 알아듣고·적은 놈도 알아듣고··· 이리 다 알아듣는다, 이런 말을 가지고, 그게 이제 묘한 거죠.
우리가, 청정하다는 것은. 허공 속에서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깨끗한 것을 청정하다하지마는. 묘정(妙淨)이라고 하는 것은. 묘하게 깨끗하다고 하는 것은. 그 오염되어 있는 연꽃이 마치 진흙탕 속에 있으면서도 물들지 않는 것을 묘정(妙淨)이라고 하는 거예요, 묘정(妙淨). 그래, 텅 비어 있는 가운데서도 도저히 한 물건도 있을 것 같지도 않은데, 삼라만상이 다 벌어지니까, 묘하게 있다, 해서 묘유(妙有)라. ‘묘(妙)’라고 하는 것은. 적재적소에··· 마치 물이 세모난 컵에 담기면 세모가 되고 네모난 컵에 가면 네모가 되듯이. 그 그릇에 따라서 맞춰 주듯이 부처님의 설법도 그와 같고. 일반 비 내리는 것도 풀은 풀만큼, 소나무는 소나무만큼 먹는 것이 똑같다, 해서 여기 묘음(妙音). 그런 뜻이예요.
常爲大乘(상위대승)하야 而作因緣(이작인연)호라
항상 대승(大乘)을 위해서 이러한 인연을 짓노라.
我觀一切(아관일체)호대 普皆平等(보개평등)하야
나는 일체를 관(觀)하되. 널리 모두 다 평등하게 일체를 관(觀)하되.
無有彼此 愛憎之心(무유피차 애증지심)하며
내 잘났다·니 잘났다. 피차(彼此)의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없다. 이게 본심(本心)입니다, 본심(本心). 본심(本心)에 가면은. 6조(六祖) 스님, 첫 설법이 그렇잖아요. “불사선불사악(不思善不思惡)하라.” 착한 것도 생각하지 말고 악한 것도 생각하지 마라. 우리, 선악(善惡)빼면, 이 세상에 법(法), 하나도 없습니다. 오로지 모든 것은 선악법(善惡法)에 귀결됩니다. 그렇지요? (대답없음) 또 대답이 없으시네. (예~) 벙어리지요? (예~) (웃음)
我無貪著(아무탐착)하고 亦無限礙(역무한애)라
그래서 나는 탐착이 없고. 탐착이 없다, 이런 말들이 <금강경>에서는 다시 반복합니다.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 탐착(貪著)이라는 거는, 어디 눌러 붙는 데도 없어요. 무한애(無限礙)라. 한정이 없고 장애도 없다. 무한한정으로 일체 중생을, 한도 없고 끝도 없이,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시방삼세(十方三世)에 무조건적으로, 조건 없이 사랑하겠다. 무엇으로써? 저 하늘에 구름이 아무 조건 없이 비를 내려서 세상만사에, 자라는 식물들을 윤택하게 하듯이. 나도 대자대비의 법비[法雨]를 내려서 일체 중생의 메마른 마음을 흥건히 적시겠노라. 이런 뜻이지요? (예~)
오늘 여기까지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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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有智若聞하면 則能信解하고...가을햇살님! 고맙습니다.._()()()_
가을햇살님 ! 수고하셨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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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햇살님! 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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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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