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성장의 생명과기초인 ‘다음세대 살리기’ 운동절실
주일학교 미래의 소중한 자산
주일학교는 교회성장의 생명이며 기초이다. 그럼에도 한국교회는 주일학교의 발전에 대해서 매우 인색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그것은 교회가 현재의 교회운영에 급급한 나머지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대부분 교회의 주일학교와 중고등부의 학생이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는 결과를 가져다가 주었다. 여기에다 물질문명의 발달과 입시경쟁으로 인해 주일날 교회에 가는 것을 기피하고 있다.
한국교회 목회자와 교회학교 교육관계자들은 교회학교의 성장이, 곧 교회성장으로 이어진다는 것에 대해서 공감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교회학교와 중‧고등부의 활성화에 대한 정책을 전혀 내놓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오히려 교회학교와 중고등부가 위축되는 것을 외부적인 요인으로 돌리고 있다. 치열한 입시경쟁, 물질문명의 풍요로움, 주5일 근무제 실시, 저 출산 등이 바로 그것이다. 아이들이 없는 교회는 미래가 없다.
교회성장의 기초인 다음세대 양육
교회학교와 중고등부를 책임지고 있는 교사들은 한국교회 성장의 기초를, 교회학교와 중‧고등부가 성장해야 교회가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교회는 주일학교와 중‧고등부의 학생 수가 줄어들면서, 성장의 생명력을 잃어버린 지 이미 오래되었다. 교회마다 주일학교의 어린이와 중고등부의 학생들이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다. 때문에 교회마다 교회성장을 위한 주일학교 어린이와 중‧고등부 학생들을 전도하는데 비상이 걸렸다. 각 교단 교육부에서 만들고 있는 교육교재로는 무너지고 있는 주일학교와 중‧고등부를 회생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교회성장의 경쟁력을 가져다 줄 수 없다는 것이다. 이 같은 현실을 직시한 일부교회는 교회학교와 중고등부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대안을 찾는데 고심하고 있다.
어린이 주일학교를 비롯한 중고등부 학생회 등은 교회 성장의 기초가 되고 있음에도 한국교회의 주일학교와 중‧고등부 학생은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다. 교회들이 이들에 대한 선교전략을 내놓지 못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또한 한국교회 마이너스성장의 주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대부분의 교회들은 당장 교회의 재정에 보탬이 되지 않는 주일학교를 비롯한 중고등부 학생회의 재정을 삭감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 마디로 한국교회가 미래를 준비하지 않고, 현실에 안주하고 있다.
또한 현재 경쟁사회의 입시제도가 주일날 어린이와 중고등부 학생들을 학원 등으로 내몰고 있다.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교회보다는 입시학원으로 이들을 내몰고 있는 것이다. 부 모들마저도 자녀들이 교회보다는 공부에 충실하기를 바라고 있다. 이것은 목회자의 자녀들도 마찬가지이다. 교회의 신앙생활은 좋은 대학에 입학한 다음에 시작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주일학교와 중고등부의 성장을 기대한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지적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성경을 가르치는 유일한 기관
1780년에 영국의 한 자선사업가로부터 시작된 교회학교의 모태인 주일학교는 1820년대 미국 전역으로 퍼져 이어오다가 미국인 선교사들에 의해서 우리나라에서 시작됐다. 주일학교는 성경을 가르치는 유일한 기관이었고, 교회의 가장 근본을 이루며 한국교회의 버팀목을 만들어 내는 산실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주일학교는 최근 그 명칭이 교회학교로 변하게 되었고 한국교회의 신앙교육을 담당하며 명맥을 이어오고 있었다.
이는 모든 교파에서 교인의 75%가 교회학교를 나왔고, 교회지도자들의 85%, 목사와 선교사들의 95%가 교회학교를 거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교회학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오고 성경말씀을 올곧이 전함으로써 막무가내식의 신앙교육이 아니라 체계적인 교육이 가능하게 된 순간이었다. 이는 단순히 신앙교육의 변화뿐만 아니라 한국교회 전반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 사건이었다. 각 교회는 교회학교를 구성하기에 전념하였고 교회의 모든 초점을 거기에 맞추었다.
교회학교를 다니고 있는 학생들이 장차 그 교회학교가 소속된 교회를 젊어지고 나아갈 중심인물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어릴 때 교회학교에서 받은 영향은 성인이 될 때에는 매우 막중한 것임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오늘날 교회 학교는 그 기능을 잃어버린 채 오리무중 상태에 빠졌다. 여기에는 많은 문제점들이 산재해 있다. 교회, 교사, 학생, 학부모 등은 모두 교회학교 문제의 전반에 기여하며 한국교회의 마이너스 성장을 재촉한 일등공신인 것이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교회교육에 대한 우려의 시각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문제시 되는 것은 뉴미디어 시대를 맞은 한국교회 교육의 변화된 모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는 교회학교의 학생들이 점점 줄어드는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특히 교회학교 학생 수의 감소가 한국교회의 미래와 직결되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는 심각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때문에 시대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학생들의 발길을 되돌리기 위해서 교회교육의 변화를 모색하고, 좀 더 다양한 교회교육의 길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아울러 정보화시대를 걷고 있는 사회를 반영하기 위해서는 획기적인 대안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교회교육의 변화를 꾀하기 위해서 현재 한국교회 전반에 획일화된 교회교육의 문제점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교육비전의 결핍과 응용 실패
근본적인 한국교회 교육의 현실적 문제의 원인에는 교육적 비전의 결핍과 교육을 폭넓은 교회적 응용에서 보지 못하는 데에 있다. 더 나아가 교회의 유기체로서의 기능약화, 교회와 가정사이의 연결 약화, 개 교회 주의, 가치관의 혼란, 유해 문화 환경에 대한 올바른 정보와 개선을 위한 행동력의 부족, 교사들의 신앙교육에 대한 열정 부족과 결단력의 결여, 교육환경의 열악과 담당자의 비전문성, 프로그램 부족, 문화시설과 공간 부족 등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천주교의 경우 한해 교회학교 학생 수가 2배 가까이 급증했으나 기독교의 교회학교 학생 수는 과거를 답습한 채 오히려 감소추세를 보이며 현실에 안주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한 정확한 문제 인식과 이러한 문제점은 어디에서 발생하는 것인가에 대한 반성과 발전 방향의 모색이 시급한 실정이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핵가족화의 현상이 크게 일어나 가정마다 자녀의 수를 점점 줄이고 있다. 자녀를 많이 가지는 가정이 줄어들기 때문에 당연히 교회학교 학생들의 숫자가 감소하는 것은 순리이다. 하지만 다른 종교에 비해 개신교의 학생들의 감소폭이 더 크다는 것은 사실이다. 사회적 현상으로 아이들의 숫자가 줄어드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현상이라고 하더라도 다른 종교보다 더 많은 감소폭을 보이는 것은 분명 교회 안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교회학교를 찾은 아이들 중 대 다수는 교회학교에서 뭘 가르치려고 하는지 그 근본을 알지 못한 채 출석에만 열중하고 있다. 일반학교에서 출석하듯이 교회학교를 찾은 아이들은 출석에만 문제가 없으면 그곳을 놀이터 삼아서 신나게 뛰어놀기에 바쁘다. 물론 교회학교 교사들이 체계적으로 아이들을 관리하겠지만 그 통제를 벗어나는 것은 언제나 아이들의 몫이다. 아이들은 성경말씀을 배우는 시간에도 떠들기 일쑤고 더 나아 가 자신을 가르치는 선생님에게 대들기까지 한다. 이미 교회학교는 아이들에게 배움의 장소가 아닌 웃고 떠들고, 소리치고 뛰어노는 한낱 놀이터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무엇을 배워보겠다는 관심은 없고 오로지 자기만을 위한 하나의 장소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들의 책임이 크지만 이를 모른 채 신성함을 해치고 막무가내로 휘젓고 다니는 아이들에게도 일말의 책임이 따르는 것이다.
구시대적 신앙전달 방식 고수
지금까지 교회학교의 교육은 책 중심의 교육이 다반사다. 더욱이 언어를 통한 직접적인 전달방법이 주류를 이뤄왔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은 뉴미디어 시대에 적합하지 않는 구시대적 발상이다. 오늘날 아이들은 태어나자마자 언어를 습득하기 전에 텔레비전을 보면서 자란다. 결국 다양한 화면변화에 익숙한 아이들이 영유아부에 출석하면, 답답함과 지루함을 겪게 된다. 평소 스마트폰 통해 빠른 화면을 보면서 자랐기 때문에 언어와 책으로만 진행되는 성경공부와 기타 활동시간은 금방 싫증을 낸다. 때문에 성경을 보다 재미있게 배울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 줄 필요가 있다. 문제는 이러한 요구에도 대다수의 교회들이 시대적 변화를 민감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아이들의 교회 출석률은 점점 줄어들게 되는 양상을 띠게 된 것이다. 또한 현재 교회교육은 일방적인 내용전달의 역할만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더욱이 인격향상을 위한 교육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입장도 나오고 있다. 자녀의 수가 줄어들고, 친구들과 이야기할 시간이 적어지면서, 인간관계를 자연스럽게 배우거나 훈련할 기화마저 없어졌다. 하지만 교회에서 실시되는 교육은 교사들이 일방적으로 이야기하고, 학생들을 그저 듣는 입장에서 멈춘다는 점이다. 이러한 문제는 점차 흥미를 감소시켜, 학생들의 감소를 부채질하는 사태를 가져왔다. 때문에 학생들을 가르칠 교사들은 이러한 부분을 대신 충족시켜줘야 한다. 이처럼 주일학교 문제점 중 교사의 양적, 질적 문제는 심각하다. 중대형교회 정도가 되어야 교사의 수급이 어느 정도 가능하고, 중형교회라 할지라도 노령화된 교회는 여전히 주일학교 교사지원자가 부족하며, 교사가 선발되어도 질적으로 교육과정을 거친 교사로서의 수급은 아직도 부족한 현실이다. 주일학교 교육현장에서 참된 기독교교육을 통해 어린이를 양육하려면, 교사 자질은 너무나 중요한 문제이다. 성령으로 거듭난 교사로 구원의 확신이 있는 교사라야 구원의 진리를 가르칠 수 있다.
학교교육에 밀린 신앙교육 문제
한국교회의 마이너스 성장의 원 인으로 여러 가지 문제점이 제기 되고 있다. 학교교육에 치우친 결과 교회교육에 무관심하게 되면서, 학교수업의 정규과정 외에 학원과 과외공부로 고입, 대입시험 등을 준비하는 것은 이미 초등학교에서부터 시작되는 양상이다. 이로써 주일학교 교육의 침체는 교역자의 목회철학에도 기인하고, 가정의 학부모에게도 그 원인이 있다. 물론 몇몇 교회에서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접목하고 공부방, 어린이영어교실 등의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지만, 이러한 대안으로는 극복하기 힘들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기독교교육은 이 기독교철학을 근거한 기독교 교육철학의 범주를 떠날 수 없다. 이것이 교회교육만아 갖는 독특성이다. 그래서 기독교교육의 내용은 인간의 사고와 경험, 그리고 역사 등으로 얻어진 지식을 다루는 일반교육과는 달리, 하나님 중심의 말씀을 근거한 교육이다. 교회내 주일학교 교육은 발달단례에 따라 영아부에서 노년부까지를 연령별로 구분하여 교육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특히 장차 한국교회를 이끌어갈 어린이들 교육에 중점을 두고 문제점들을 극복해야 한다.
주일학교 교육과정상의 문제점도 들 수 있다. 다양한 지역 환경에 있는 아동과 다양한 지식수준, 문화 환경에 있는 교사들의 질적 수준을 감안하지 못한 점은 더욱 보완해야 한다. 또 유‧초등부 어린이들의 교회 출석일수와 교육시간이 매우 부족하다. 일반 학교교육과 주일학교 교육의 차이점 중에 하나는 교육활동 시간의 차이에 있다. 교육이란 적극적인 참여와 자세에서 그 효율성이 높아진다.
그러나 부모가 믿지 않는 불신 가정에서 출석하는 어린이 경우에는 출석이 불확실한 경우가 많다. 또한 주일학교 교육은 종교교육이라는 차원에서 일반 학교와는 달리 의무감이 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앙인의 과정조차도 교회에 모든 것을 맡겨버리는 경우가 있어 교육 내용 하나를 배우면 하나를 까먹는 어린이들이 대부분이다.
또 신앙과 삶을 연결해 주는 현장교육의 부재를 들 수 있다. 예로 사랑을 이론적으로 아무리 주입시켜도 그것은 사랑에 관한 지식일 뿐 사랑을 학습 시킨 것이 아니다.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양로원, 고아원 등 소외받고 고통당하는 사람들로 찾아가 예수의 사랑을 배울 수 있도록 그 현장을 마련해야 한다.
한국교회 성장에 큰 기여
오늘의 한국교회의 성장의 배후에는 과거 주일학교의 어린이교육이 기여한 바가 크다. 대부분 유‧초등부 시절 주일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자란 학생들이 한국교회의 역량 있는 일꾼이 되었음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성장한 교회는 과거 많은 수의 주일학교 학생들이 출석했다. 현재의 어린이교육은 미래 교회의 일꾼을 양성하는 일이고, 한국교회의 미래를 준비하는 중차대한 일임에도 교회교육에서 교육재정은 심히 열악한 게 현실이다. 교회의 침체된 원인 중의 하나가 주일학교 교육에 투자하기보다, 외형적인 성전건축에만 주력하는 교회의 행정방침이 가장 큰 문제이다. 현재 교회들은 각종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실행하고 있다. 영성교육 프로그램은 물론 취업, 입시, 음악, 미술, 율동 등의 일반적인 교육프로그램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이러한 일반교육 프로그램들은 영성교육과 연계하여 흥미를 이끌 수 있는 보조적 성격이 강했다. 또 불신자들에게 신앙의 계기를 마련해 줄 수 있는 매개체적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시간아 점차 지나면서 영성교육의 비중보다는 흥미위주의 교육이 늘고 있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심지어 일반교육프로 그램과 영성교육프로그램이 서로 연계가 되지 않고, 각기 다른 형태로 변질되고 있는 것이 문제화되고 있다. 교회는 일반교육 프로그램 중 가장 보편적으로 음악교육을 사용하고 있다. 피아노, 드럼, 기타 등 교회에서 사용하는 악기는 물론, 보컬과 율동 등 다양한 음악교육프로그램이 생겨났다. 음악을 이용한 교육프로그램은 교회복음과 관련되어 영성향상에 기여할 수 있다. 또 선교교육과 부합하기 때문에 예전부터 애용한 교육방법이다. 하지만 너무 보편적인 교육방법이기 때문에 다른 교회들과 차별성이 떨어지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많은 교회들이 다양한 일반교육을 시도하고 있다.
영성향상 위한 교육지원 시급
일반교육의 비중이 늘어나는 또 다른 원인으로 현 교계상황이 작용하기도 했다. 기독교는 교회의 역사에 비해 어떤 종교보다도 부흥의 속도가 빨랐다. 수많은 교회들이 생겨나고, 신자의 수도 급속하게 늘었다. 하지만 현재 교회는 포화현상으로 제자리에 머물고 있다. 교회들은 이러한 답보상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교회의 새로운 부흥의 대안으로 일반교육 프로그램이 가장 많이 거론됐다. 교회들은 각종 교육프로 그램을 개발해 부흥의 역사를 이루려고 했다. 하지만 교회의 부흥을 위한 의도가 앞서다보니, 주객이 전도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교회교육의 주목적은 영성향상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 그런데 부흥에만 치중하다보니, 영성교육과 일반교육이 연계가 되지 않는 상황이 발생했다.
특히 가장 문제되는 것은 영성교육보다 일반교육이 우선시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됐다. 이러한 현상은 사람들이 가장 큰 관심의 대상에 편중됐다. 입시와 같은 교육 현안은 물론,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춤이나 취업교육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교육프로그램은 흥미위주이다. 그들이 교회에서 더 이상의 만족을 얻지 못하거나 흥미를 잃게 되면 신앙의 의미를 잃을 수도 있다.
흥미위주의 교육프로그램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은 줄 수 있다. 하지만 영성향상을 동반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단발성 이벤트로 끝날 수 있다. 더 나아가 교회가 영적인 인재를 길러내는 장소가 아닌 행사장으로 인식되는 폐해가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교회가 각종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사람들에게 보람된 일을 하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하지만 영성교육이 우선적으로 선행돼야 한다는 진리는 변함이 없다. 교회가 부흥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영성교육과 일반교육의 체계를 확립해야 할 것이다.
(기독교신문 2015. 12. 제226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