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밤 평화로운 깊은 꿈에서 깨어났을 때,
달빛 가운데 그의 방안을 보았네,
풍요로운 백합꽃 다발과 같이,
천사가 황금의 책 속에 글을 쓰네.
넘치는 평화는 벤 어드헴을 대담하게 만들었네,
방안에 천사의 임재 가운데 그는 물었다네,
"무엇을 쓰고 있나요?" - 계시가 머리 속에 떠오르고,
모든 달콤한 조화 가운데 바라보며 대답하네,
"주님을 사랑하는 자들의 이름을."
"내 이름도?" 아보우는 말했네.
"아니, 아직은." 천사는 대답했다네.
아보우는 나지막하게, 그러나 아직 기쁨으로 말했네.
"그럼, 내가 기도할께요. 동료를 사랑한 자라고 나를 적으세요."
천사는 이름을 적고 사라졌네.
다음날 밤, 또다시 나를 깨우는 빛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으로 축복을 받은 자들의 이름이 보이네
보라! 벤 어드헴의 이름도 그 가운데 있도다.
우리는 이 시에서 무엇을 알 수 있을까요? 입으로 주님을 믿노라고 입술로만 하는 성도들은 생명책에 그의 이름이 기록되지 않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신앙은 말로 깊어지지 않습니다. 신앙은 기도로 만들어집니다. 기도함 없이 신앙을 선물로 받으리라는 기대는 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기도는 모든 일을 가능케 합니다.
간절하고 신실한 기도는 불가능한 일을 가능케 합니다: 한 가난한 가족이 생활이 어려워 작은 마을로 이사를 가게 됐다. 그런데 일 곱살 된 딸이 근심스런 표정으로 어머니에게 물었다. "그곳에도 예배당이 있나요. 주일학교에 못 가면 어떻게 하지요". 어머니는 슬픈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곳은 아주 작은 마을이란다. 아직 예배당이 없단다". 가족들이 열심히 이삿짐을 챙기는데 딸이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가 방으로 들어가 보니 딸이 무릎을 꿇은 채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저희는 교회가 없는 곳으로 이사를 간답니다. 하나님, 안녕히 게세요". 어머니는 딸의 기도하는 모습을 보며 함께 무릎을 꿇었다. 그런데 이 가족이 작은 마을로 이사를 간 지 두 달만에 교회가 세워졌다.
기도는 모든 일을 가능케 합니다. 진실한 기도는 땅에 떨어지는 법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순진 무구한 어린이의 기도에 가장 먼저 응답하십니다.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하는 기도는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기도해야 할 이유가 있다.
얼마 전에 개봉된 한 영화가 있었습니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현 미국이 독립을 위해 싸우던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어린 딸아이를 가진 부모의 입장에서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영화이었습니다. 이 영화 중에 머리에 오래 남을 한 장면이 있습니다. 미국 독립전쟁당시 영국군에 반대해 마을에서 자원한 민병대(民兵隊)를 마을 주민들은 돕고 있었습니다. 이 사실을 영국군대는 알게 되었습니다. 민병대가 집결지로 모인 사이 영국군대는 마을로 와서온 주민을 교회로 모이게 하였습니다. 영국군 장교는 묻습니다: "만일 민병대의 아지트를 알려주면 그 사람은 살려준다." 이에 겁에 질린 한 주민이 이 장소를 말하고 맙니다. 살려준다는 말 대신에 교회에 있는 모든 문을 닫으라고 사병들에게 명령합니다. 쿵하고 교회 정문이 잠깁니다. 창문이 닫힙니다. 한국교회는 없지는 문입니다만 창문밖에 나무로 된 이중문이 또한 닫힙니다. 캄캄하여집니다. 교회밖에는 영국군인들이 손에 횃불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국장교는 명령합니다.
"자 횃불을 던져라. 먼저 교회에..." 다음날 소식을 전한 남자들이 마을로 왔을 때는 이미 교회는 종탑에서 바닥까지 다 불에 타버린 후였습니다. 민병대를 이끄는 이 영화의 주인공 벤자민 마틴은 자신의 며느리를 잃어버립니다. 이는 자신의 아들은 아내를 잃었다는 의미입니다. 교회 안에 있던 주민들은 어둠 속에서 무엇을 하였을까요? 영화에서는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이들은 기도하였을 것입니다. 신실하였던 주민 모두는 기도하였을 것입니다. 물론 영화이었습니다만 지금까지 해온 같은 질문을 계속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이들의 기도를 들으셨을까? 아니면 외면하셨는가? 그러면 하나님은 기도하며 영국 왕의 이름으로 싸운 그들의 기도를 과연 들어주셨는가? 이 미국 독립전쟁에서 승리하여 독립선언을 하게 이릅니다. 그럼 지금의 미국이 되게 한 그들의 기도만을 들으셨고, 영국 국왕과 전장(戰場)에서 기도를 하며 싸운 이들은 어찌 된 일이까? 이들의 기도가 미국 독립전쟁을 이끈 자들 보다 못하였나? 정성이 적어서인가? 목소리가 작아서이었던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두 진영의 기도를 모두 들어주셨습니다. 인간의 방법대로가 아니라, 인간들의 원함대로가 아니라, 인간이 하나님을 꼭두각시로 만들대로가 아니라, 하나님 그분의 방법대로 응답하여주셨습니다. 다른 쉬운 말로 표현하면 하나님 맘대로 응답하셨습니다. 어려운 표현을 쓰면 하나님의 원대한 섭리와 계시 안에서 응답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은 모든 기도가 다 응답 받으셨다고 믿고 생활하십니까? 아니면 늘 하나님은 나의 기도만 안 들어주신다고 착각하십니까?
왜 우리는 신앙을 간직하고 있으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안 들어주신다고 생각을 할까요? 이 장로님, 저 집사님의 기도만 들어주시고, 왜 내 기도만 안 들어주신다고 착각을 하게 될까요?
일반적으로 응답을 받지 못하는 기도에 대해 다음의 성경으로 답합니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약 4:2-3)" 정욕 때문에... 정욕은 무엇일까? 어원적으로 기쁘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기쁨은 긍정적인 동시에 부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어떤 일이 잘 되지 안다가 급전환되어 모든 사람에게 좋게 해결되면 이는 기쁨의 긍정적인 면입니다. 그러나 타인이 잘못되고 나만 잘되어 기뻐하는 면은 부정적인 기쁨입니다. 우리 선조는 다음의 격언을 남기고 있습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다른 이들이 잘되는 모습 속에서도 우리는 기쁨을 느껴야합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들은 그러하지를 못합니다. 일반적으로 내가 잘되고 남이 잘못되어야 기쁨을 느끼고 있습니다. 나에게만 좋은 일들만 생겨야합니다. 위의 구절에서 말하고자 하는 의미가 이것이 아닐까? 하나님의 계획하심은 저리 비켜놓고, 내 뜻대로 나만 좋아야하는 내용을 지닌 기도는 기도가 아니라 함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내 마음대로 바꾸는 수단이 아닙니다. 우리는 소돔성을 놓고 하나님께 간구 하는 아브라함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소돔성이 망하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해서 하나님께 간청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소돔성을 멸망시키셨습니다. 아브라함이 기도를 약하게 했습니까?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그리 가깝지 않았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아브라함의 생각이 달랐습니다. 진정한 신앙은 하나님의 계획을 마음속에 품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을 우선합니다. 하나님의 섭리하심을 기다립니다.
예수님께서 대속적 구원의 사건이 있기 전 하신 눈물어린 기도를 우리는 기억합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신 기도입니다. 십자가의 길이 얼마나 힘이 드셨으면 주님은 고민하고 슬퍼하셨습니다(마 26:37). 주님은 "잔이 지나가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자신의 뜻을 고집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즉시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였습니다: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이것이 바로 진짜 기도입니다. 우리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기도입니다. 내 뜻이 그대로 되는 기도는 기도가 아닙니다. 우리 아버지가 원하시는 일을 위하여 하는 기도가 진짜 기도입니다.
기도는 여러 요소를 가집니다. 그 중의 하나가 간구입니다. 간구는 나의 사정을 아뢰는 일입니다. 이는 내 계획이 그대로 즉시 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마치 자녀가 부모에게 말하듯이 하소연하는 모습입니다. 이런 어려움이 있습니다. 저런 고통이 있습니다. 나의 모습을 그대로 내어놓는 일입니다. 한 걸음 나아가 어려움 들이 이러 저렇게 바뀌었으면 합니다라고 진정으로 내 소원을 털어놓는 모습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멈추어야합니다. 자녀는 부모에게 소원을 말합니다. 그러나 모든 원함이 다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이유는 여러 가지일 것입니다. 아직은 필요치 않으니까, 너무 크니까, 너무 작으니까, 때로는 경제적인 이유로 들어주지를 못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부모의 마음을 보아야합니다. 해주고 싶은데 그러하지 못하는 그 마음을.... 얼마나 아플까요? 우리는 기도할 때 나만을 보아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혼자 살지 않습니다. 혼자 생활 할 수 있다고 보이지만, 아닙니다. 필자는 혼자 있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돈은 얼마든지 줄 테니 무인도에서 혼자 살라고 하더라도 안 할 겁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같이 살아야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혼자 살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와 함께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야합니다. 이런 간구를 주님은 원하십니다. 이런 기도가 진짜입니다.
이런 기도는 올바른 신앙에서 나옵니다. 다른 성도를 위한, 나를 미워하는 사람을 위한 기도는 진정한 믿음과 신앙에서 출발합니다. 이런 신앙을 가져야합니다. 원칙을 지닌 신앙을 가져야합니다. 하나님의 뜻, 그분의 섭리, 나에게 우리에게 주신 그 사랑에 따라 실천하는 신앙을 지녀야합니다. 이 신앙의 실천도 내가 할 수 없습니다. 그분께서 함께 하여야 가능합니다. 우리는 돈으로 어려운 이들을 얼마간 도와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돈으로 그들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주님처럼 문둥병자를 만져야합니다. 그냥 마지못해 만져서는 안됩니다. 마음으로 손을 꼭 잡아주어야 합니다. 이런 마음은 내가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의 마음이 내 속에, 우리 속에 있어야합니다. 무엇으로 가능할까요? 기본 원칙대로 하면 됩니다. 그분께 아뢰면 됩니다.
마가복음 9장은 주님의 변화한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후 산에서 내려오시니 제자들이 땀을 뻘뻘 흘리고 있습니다. 한 벙어리 귀신이 들린 아이를 고치려 하는데 못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이 아이를 깨끗이 고치십니다. 제자들은 묻습니다: "왜 우리는 못 고쳤습니까?" 이에 대해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고 답변하십니다. 제자들은 주님께서 이런 권능을 자신들에게 주셨음을 잊었습니다. 과거에 고쳤던 일만을 생각합니다(막 6:7, 13). 주님은 빠지고 자신이 자리를 대신합니다. 신앙에 게으름이 찾아옵니다. 기도를 하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을 자랑합니다. 다른 사람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주님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나태하여집니다. 주님은 계속 경고하며 교훈 하시며 깨우쳐주시는데 이를 무시합니다. 오히려 "주님, 그것은 틀렸습니다. 내가 맞습니다."고 주장합니다.
주님의 능력을 소유하시기를 바라십니까? 기도하세요. 진짜 기도를 하세요. 주님의 마음으로 기도하세요. 주님께서 기도하신 대로하세요. 가짜 기도를 하지 마세요. 세상이 원하는 기도를 하지 마세요. 이럴 때 우리는 주님께로부터 놀라운 능력을 소유합니다. 보이기 위해, 자신을 내세우기 위해 기도하지 마세요. 이런 기도를 하며 긍정적인 응답을 받을 줄로 생각하지 마세요. 착각하지 마세요. 이런 기도를 안 들어주심이 축복입니다. 영원한 신앙 가지기를 원하십니까? 기도하세요. 기도하지 않고 우리는 작은 일 하나를 할 수 없습니다. 하루가 평안하기를 바랍니까? 기도하세요. 자녀가 귀한 신앙 갖기를 소원하십니까? 기도하세요. 신앙인은 기도하여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기도해야합니다.
기도의 원칙
기도는 성실하고, 분별 있고, 다정하게 마음과 영혼을 하나님께 내어놓는 대화입니다. 또한 우리는 기도할 때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성령 안에서 그의 인도하심에 따라 해야합니다. 이렇게 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모든 일들을 받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성실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다.
성실 혹은 신실은 하나님의 모든 은혜를 통해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의 모든 행위를 통해 우리 안에서 역사 하는 그러한 은혜입니다. 그리고 이 성실은 그리스도인 안에서 커다란 영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리스도인들의 삶과 행동은 하나님으로부터 왔다고 여겨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위대하였고 성실하였던 다윗은 성실에 대해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내가 내 입으로 그에게 부르짖었으며 내 혀로 높이 찬송하였도다.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시 66:16-17)." 계속 그는 고백합니다: 기도 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는 성실함, 신실함이다. 이것 없이는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받지 않으신다(참고 시 16:1-4). 또한 선지자 예레미아도 고백을 합니다: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전심으로 기도하는 자는 응답을 받지만 그러하지 못할 때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거절하심을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호세아는 경고합니다: "성심으로 나를 부르지 아니하였으며 오직 침상에서 슬피 부르짖으며 곡식과 새 포도주를 인하여 모이며 나를 거역하는 도다(호 7:14)." 성실함으로 하지 않는 기도는 오히려 핑계이며 또한 위선에서 나오는 한탄이며, 사람에게 보이기 위함이며, 이러한 자들을 칭찬하는 모습이 됩니다.
성실과 신실은 주님께서 나다나엘을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 보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던 그러한 모습입니다: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간사함이 없는 모습이 바로 성실한 모습입니다. 건전하고 맑고 주님이 원하시는 신앙도 바로 이러한 모습이 되어야합니다. 간사함이 없는, 계산됨이 없는 이런 신앙이 진짜입니다. 이러한 신앙에서 참된 기도는 나옵니다. 나다나엘과 같은 신앙인들이 하는 기도는 진정으로 영혼으로부터 나올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성실하게 서 있게 됩니다. 성실한 기도는 하나님을 인정합니다. 그러므로 정직한 자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잠 15:8).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참 신앙은 하나님을 인정합니다. 진실된 신앙은 그분은 우리를 지으신 자시오, 지금도 우리를 지켜보시며, 우리의 모든 일에 간섭하시는 분이라 인정합니다.
그러면 신앙을 도와주는 기도의 모습에서 왜 성실함이 필요할까요? 성실은 꾸밈없이 마음을 하나님께 열어 온 영혼을 드리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에게 솔직하게 허위 없이 고백하는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또 속이지 않고 명확하게 자신의 잘못을 내어놓기 때문입니다. 겉치레 없이 하나님께 간절하게 아뢰는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에브라임이 스스로 탄식함을 내가 정녕히 들었노니 이르기를 주께서 나를 징벌하시매 멍에에 익숙지 못한 송아지 같은 내가 징벌을 받았나이다. 주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시니 나를 이끌어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돌아오겠나이다(렘 31:18)." 성실함은 많은 사람이 있는 곳에서뿐만 아니라 홀로 있는 구석자리에서도 늘 동일한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성실함은 두 가지 마스크를 가지지 못합니다. 하나는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요, 다른 하나는 혼자 있을 때 간직하는 그러한 두 모습을 성실함은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신앙은 잘못되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있을 때나 사람들과 있을 때나 홀로 있을 때나 동일한 모습이 신앙입니다. 이런 신앙을 우리는 소유해야합니다. 어떻게 소유할 수 있을까요? 어렵다고 생각되십니까? 아닙니다. 열쇠는 하나입니다. 바로 기도입니다. 진짜 신앙을 소유하시기 바랍니까? 그럼 기도하십시오. 신실한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칼빈은 기독교강요 3권 20장에서 기도에 대해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원칙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경외 : 합당한 기도를 드리기 위한 첫째 원칙은, 하나님과 대화하려는 사람에게 합당한 정신과 마음을 가지라는 것이다. 즉 우리의 마음과 정신을 가다듬는 것이다. 우리의 신앙이 깊어지는 기도를 하고자 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고 기도하여야한다. 참으로 하나님을 바르고 순수하게 묵상하지 못하게 만드는 육적인 염려나 생각에서 벗어나 기도에만 마음을 기울일 뿐 아니라 가능한 한 자기를 초월하여 마음을 높이 들도록 하자. 여기서 칼빈은 어떠한 불안으로도 찔림을 받거나 괴로움을 당하지 않을 정도로 마음이 초연하기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심각한 근심거리 인하여 기도할 열심을 가지게 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말이다.
궁핍과 회개의 마음 : 우리는 기도할 때 항상 자신의 무력을 느끼며 우리가 구하는 모든 것이 얼마나 필요한가를 진심으로 생각해서, 그것을 얻고자 하는 진실한, 아니 강렬한 소원을 기도에 첨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기도를 드릴 때 마치 하나님께 대한 의무를 이행하는 듯이, 일정한 형식에 따라 기계적으로 읊어 버리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라고 칼빈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겸손 : 우리는 겸손하게 자비를 빌기 위하여 기도해야한다. 즉 기도하기 위하여 하나님 앞에서는 사람은 겸손하게 영광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돌리며, 자기의 영광을 전혀 생각하지 않으며, 자기의 가치를 일체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 곧 자기 신뢰를 전적으로 버려야한다. 그렇지 않고, 자기의 가치를 티끌만큼이라도 주장해서 허영과 교만이 부푼다면, 하나님 앞에서 멸망할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죄의 용서를 비는 것이 기도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칼빈은 주장하고 있다.
확실한 소망 : 우리는 참으로 겸손한 마음에 정복되고 압도되더라도, 동시에 우리의 기도에 대한 응답이 있으리라는 확고한 소망을 품고 기도하도록 용기를 내어야한다. 그러므로 기도는 우연히 나오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인도를 따른 다는 것이 기도를 위한 한 법칙이며, 이 법칙을 확립하는 것이 기도의 본질과 잘 조화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모두 이 원칙에 유의하도록 우리의 주의를 환기시키신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 11:24)". 그러므로 기도가 허락된다는 확신을 부정하여서는 안 된다 (마 21:22, 약 1:5-6). 시편 50:15에서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고 하나님께서는 명령하십니다. 이 명령에는 약속이 함께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마태 7:7,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기도의 명령과 이에 대한 약속은 항상 함께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확신을 가지고 기도하여야합니다. 동시에 경외심을 가지고 기도하여야합니다. 우리는 많은 성서의 구절(잠 18:10, 요엘 2:32, 롬 10:13, 사 65:24, 시 91:15)에서 하나님께서 얼마나 친절하게 우리를 자신에게로 이끄시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런 하나님께 우리는 그저 나아가면 됩니다. 우리가 여전히 태만하여 머뭇거릴 때에 우리의 죄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 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 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 도다(시145:18)"라는 말씀을 항상 귀에 쟁쟁하게 들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염려를 다 주께 맡겨버리는 것(벧전 5:7, 시 55:22)을 향기로운 제물같이 기뻐하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러기에 우리는 하나님께 대한 공포심이 아니라 경외심을 가지고 기도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기도를 하고 있습니까? 굳센 신앙 안에서 기도하십니까, 아니면 의심하며 기도하십니까?
나가는 말
우리 신앙인들은 기도를 먹고삽니다. 기도 없는 신앙은 완전히 죽었다 말하여도 옳습니다. 한국기독교 역사에서 우리는 살아있는 기도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다른 이들은 일본에 굴복하여 신사를 찾아 참배하였지만 하나님만을 바라본 많은 성도들은 기도하며 이를 반대하였습니다. 이들에게 다가오는 것은 죽임이었습니다. 이들 중에 우리는 목사 주기철을 기억합니다. 이 목사님에 대해서는 너무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 중에서 목사님의 기도와 관련된 일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1940년 29회 총회 전 일본은 신사참배를 반대하는 많은 신앙인들을 잡아들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이해 6월에는 목사 손양원을 비롯하여 많은 목사님들이 유치장에 잡혀 들어갔습니다. 주목사님에게도 경고가 시작되고 일본순사들은 꼬투리를 잡기에 혈안이 되었습니다. 이런 분위기를 파악한 산정현교회 교인과 가족은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이때 주목사님의 모친기도는 이러하였습니다: "하나님 나는 지금 늙었습니다. 그런데 나를 안 데려가고 내 아들 주기철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 산정현교회 목사는 지금 젊었습니다. 내가 고생하고 당하는 고통은 좋으나 내 아들 하나님의 종이 당하는 고통을 볼수가 없습니다. 이 고통의 길을 할 수만 있으면 주여 막아주소서. 그러나 인간의 생각대로 마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옵소서." 얼마 후 순사는 주목사님을 잡으러 집으로 일찍 왔을 때 목사님은 어머님을 위해 기도를 하였다: "하나님 아버지 불효자식 어머니를 봉양치 못했습니다. 우리 어머니 하나님께서 돌봐주시사 불효한 이 자식의 봉양보다 자비하신 하나님의 돌보심이 함께 하실 줄 믿습니다. 어머니를 주님께 부탁 드립니다." 이 기도 소리는 밖에서 기다리는 형사들에게까지 들렸고, 모여든 교인들을 울리고 말았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모든 일을 심지어는 부당한 구속까지도 이겨내는 힘은 과연 어디서 나올까? 이는 신앙이며 바로 끊임없는 기도에서 나온다. 이런 기도의 모습을 우리는 신앙의 선조들에게서 수 없이 발견할 수 있다. 우리가 할 일이 있습니다. 바로 이런 기도를 실천하는 일입니다. "아! 선조들은 훌륭한 기도를 했구나." 감탄에 머물러서는 안됩니다. 신앙의 선조들이 기도하였듯이 현재를 사는 우리 또한 기도를 해야합니다. 기도 없이 신앙이 튼튼히 유지되리라는 망상 속에서 생활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마더 테레사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모든 것은 다 기도로부터 시작됩니다. 우리는 사랑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 청하지 않고서는 사랑을 지닐 수가 없으며, 다른 이에게 줄 수 있는 사랑의 정도 또한 극히 적습니다.
신앙이 적다고 생각되십니까? 다른 일을 다 접어놓으시고 아버지와 대화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신앙이 많이 부족합니다. 새로운 영을 계속 부어주십시오." 신앙이 성장하기 바라시는 분들은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이때 주님은 모든 일을 가능케 하십니다.
진정한 신앙에서 나오는 기도를 소개하며 이 작은 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또한 우리와 동행하시는 성령님이시여!
우리 기도를 성삼위께 올려드립니다. 아버지는 늘 우리 곁에 계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아버지 안에서 생명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의 보호 안에서 우리는 생활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집에 지금 모여 주님의 말씀을 듣고, 우리 소원과 믿음 안에서 주님께 찬양을 드립니다. 또한 우리를 도와주시며 힘을 주시는 주님의 손길을 경험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때가 되어 아버지는 우리에게 아버지의 계획하심과 경영하심을 미천한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알려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안에서만 우리는 주님을 따라 갈 수 있습니다. 또한 주님 안에서 살 때 우리가 어떻게 되어야함을, 주님의 계획하심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본을 보이신 봉사와 자기부인, 능력과 기쁨의 삶 안에서 우리는 매일의 삶 속에서 애쓰는 이유와 목적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의 고난과 죽으심으로 우리는 영원한 사랑과 주님이 우리 죄를 대신 지셨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매일 살면서 주님께 감사해야합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심으로 우리는 악한 세력을 승리하신 주님의 선하심을 찬양해야합니다.
성령님께서 우리를 주장하게 하여주십시오. 그리하여 올바른 말을 하게 하시고, 우리의 생각을 바르게 하여주십시오. 또한 우리가 바르게 행동하도록 도와주십시오.
주님께서 얼마나 우리를 위해 참으셨으며, 기다리셨는지 너무나 잘 압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 하늘의 보좌와 영광을 버리셨습니다. 주님은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땅에 내려오셨습니다. 이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셨으면 우리와 같은 형상으로 오셨습니까? 이러한 주님의 마음을 품게 하소서. 우리로 하여금 주님께서 이미 우리의 모든 필요를 알고 계시며, 사랑의 마음으로 이를 가득 채워주심을 알게 하소서. 주님 안에 있으면 우리는 부유하게 됨을 깨닫게 하소서.
하나님 아버지, 아버지는 우리가 잘못함과 세상에 살 때 만나는 어려움을 잘 알고 계십니다. 전지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하늘의 지혜와 권능을 주셔서 이를 이기게 하여주십시오.
하나님 아버지, 세상을 위해 기도합니다. 온 나라가 하나가 되게 하여주십시오. 전쟁이 있는 곳에 주님의 평화를 주시고, 자유함이 없는 곳에 주님의 자유함이 거하게 하소서. 주님의 법도를 따르며 자기를 부인하며 경배하는 백성들이 승리하게 하소서. 주님 이름을 사랑하는 곳에 사는 백성들이 인간 됨을 회복하게 하소서. 주님의 영을 주님의 백성들에게 부어주소서. 그리하여 주님께서 주시는 놀라운 비전을 보게 하시며, 주님께 헌신하게 하소서. 또한 이 성령 안에서 주님과 함께 늘 동행하게 하소서.
마음을 들어 주님의 크신 은혜를 체험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시험과 유혹이 닥쳐와도 승리하게 하소서. 죄와 근심과 끊임없는 고통 속에 있는 자들로 주님의 은혜를 만나게 하소서. 주님의 삶 속으로 들어가게 하셔서 우리로 깨끗하여지고, 치유되게, 새롭게 되게 하소서.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 기도에 관한 추천 책 몇 가지 *
E.M. 바운즈 지음, {기도 1 2}, 크리스천 다이제스트.
마더 테레사, {모든 것은 기도에서 시작됩니다}, 황금가지.
뮬러에게서 배우는 기도의 파워포인트, 홍일권, 생명의 말씀사.
첫댓글 감사드립니다. 이 글을 통하여 진실한 기도를 올림이 무엇인지 조금 알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