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왔네요.
오랫만에 글을 쓰기 시작했으나 저의 삶이 늘 그랬듯이 게으르고 핑게가 많고 그리고 사실 아픈 일도 많고 힘든 일도 많고 실제 바쁘기도 합니다. 그런중에 밭에서호미를 놓고 밭뚝에서 이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일단, 제가 초고를 써서 몇 꼭지 정도 올려 놓으면, 상규님이 읽어 보고 의견, 보완, 수정 등을 거쳐가며 올 가을까지는 글을 마칠가 합니다.
지금 저는, 농사일 잘 한다지만 82세라는 체력의 한계와 와 있음을 절실히 느끼지 않을 수 없군요. 그래서 여러 분들의 권유로 그간의 생각을 정리하려는 것입니다.
의견들 많이 주시고 또 격려와 질책도 많은 도움이 되리라고 봅니다.
인서점아저씨가
산으로 간 인문학 농장 ㅡ두렁농ㅡ에서 올림
제목은
「우주농장의 머슴들」
진행 메모- 나무, 농사꾼, 이야기하는 사금파리 둠벙, 감 씨의 귀향, 나의 학교 농장 두렁농 주민등록증, 가족, 파문, 머슴과 주인, 몸. 학교, 인문학 산으로 가다, 역사의 반환점. 호미의 시간이 인간의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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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농장의 머슴들」
<나무> 시골사람들은 도토리나무를 참나무라고 부른다. 그러다가 가을이 되어 도토리가 떨어지는 무렵쯤엔 상수리나무니 까도토리나무니 선비나무니 하면서 나무를 중심으로 부르던 참나무라는 이름을 버리고 참나무의 자식이자 열매인 도토리를 중심으로 부른다. 그리고 열매인 도토리의 모양에 따라 또는 맛에 따라 몇 가지 이름으로 부른다. 상수리 도토리 까도토리 선비도토리가 그것이다. 참나무는 모두 여섯 종류라고 한다. 그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나무는 나무껍질이 멋있는 토종 코르크 굴참나무와 그 키 큰 굴참나무나무나 상수리나무의 밑둥 어림에서 애들 나무로 자라는 키 작은 관목 까도토리나무다. 특히 까도토리나무는 가을이 채 도착하기도 전 숲이 이제 막 가을을 준비하려는 때에 초록색 풋기를 머금고 있는 자잘한 도토리를 제발치 아래 햇살 좋은 곳에다 소복하게 쏟아놓고 가을 햇쌀에 사랑하는 자식들을 익히는 다정한 녀석이어서 좋다. 그러나 늦도토리는 계절이 늦가을의 으름장 무서리와 된서리가 떨어지느니 마느니 할 때쯤 돼서야 여기저기서 후두둑 투닥 딱 하고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여기저기 사방에다 심술을 부리고 떨어뜨려 놓는다. 그런데 정말 재밌는 것은 이렇게 먼 산 높은 산의 늦도토리까지 다 떨어지고 이산 저산으로 떠돌며 도토리를 줍던 시절이 다 가고 나면 시골사람들은 다시 도토리나무라는 이름을 버리고 다시 참나무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도토리나무는 참나무가 도토리를 떨어뜨려서 그 도토리를 수확하는 시기에 잠시 부르는 참나무의 별칭이라고 볼 수 있다. 나무의 가치와 도토리의 가치를 따라 이렇게 참나무가 되기도 하고 도토리나무가 되기도 하는 이 참나무의 나무 이름 앞에 우리의 선조들이 붙여 놓은 참자는 어떤 의미가 담겨있을까 생각해 본다.
내가 이 산골짜기에 와서 자고새면 만나는 나무, 밭으로 가면서 또 밭에서 집으로 오면서 만나는 나무, 눈만 뜨면 만나는 이 나무는 어쩌면 우리 조상들이 나처럼 그렇게 만나면서 느끼고 좋아하면서 생각했던 경외하는 마음을 참자에 담아 나무 이름앞에 올려놓아 나무중의 나무 나무중의 으뜸이 되었으리라. 그래서 참나무는 나무가 아니다. 나무들의 의미, 나무들의 뜻을 간직한 깃발이 되었을 것이다. 참나무는 그래서 풀들과 나무들과 새들과 동물들과 벌레들의 마음으로 저렇게 오늘도 늠늠하게 서서 자연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집을 돈의 액수로 따지는 시대에 땅이라기 보다 지구 자체를 두서너 길 파서 지구의 온기가 날아가지 않게 하늘 쪽에다 비닐을 치고 사는 집에다 무슨 사치스럽게 집이라거나 농막이라는 이름을 붙이기가 민망하지만 그래도 사람이 사는 곳이라는 의미를 담기에는 농막이라는 이름쯤은 돼야한다는 생각에 우리 가족은 우리의 이 집을 감히 농막이라고 부르고 있다. 허진 집이란게 별게 아니다. 밥끓여 먹고 편히 자는 곳이면 집이 아니겠는가 더구나 우리 가족은 이 곳이 눈만 뜨면 농삿일에 따르는 온갖 자잘한 일을 해내야 하는 작업장이기도 하다. 먹고 자고 쉬고 얘기하고 놀고 토론도 하고 손님이 오면 접대도 하는 곳이니 인간이 주거공간으로 갗춰야 하는 모든 것을 다 갗추고 있는 곳이니 최고집이 아닐까 싶다. 어느 고관대작의 저택이나 어느 나라 임금의 대궐인들 이보다 더 좋으랴싶게 우리 가족에게는 남부럽지 않은 지상낙원이 아닐 수 없는 곳이다. 그래서 나는 이곳으로 오던 날 대문을 달아야 하는 곳에 대문 대신 ‘인문학 산으로 가다’라는 좀 과하기도 하고 나해하기도 한 알송달송한 간판을 예쁘게 새겨서 지게에다 올려놓고 지게작대기로 바쳐놓았다. 그랬더니 가끔 지게가 짊어지고 있는 이 간판의 ‘인문학 산으로 가다’의 의미를 대충 짐작하겠다는 사람도 있고 어떤이는 미주알고주알 캐물어서 그 이면에는 내가 40년이나 되는 긴 세월을 ‘인문학의 고향 인서점’이라는 서울의 대학가에서 인문학서점을 운영해왔다는 것에서부터 그 때문에 이런저런 고생도 하게 되었다는 내가 살아온 자초지종의 이야기를 들려주느라 진땀을 빼기도 하는 일이 자주생겨서 막내 아들로부터 “아버지 벌써 해가 넘어가는 것 같은데 서둘러야겠어요.”하는 재촉 핀잔을 들어야 하는 일도 자주 있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여담 아닌 진담으로 이 간판 ‘인문학 산으로 가다’라는 말을 듣고 “아! 정말 말 되네요.”하고 놀라움에 눈을 감는 듯 하더니 “제가 꼭 한 번 가봐겠어요.”하면서 갑자기 무릎까지 탁! 치던 내가 존경하고 좋아하던 한 유명한 시장님의 말을 잊을 수가 없다. 그 분은 다시는 못 올 저 먼 나라로 갔지만 지금 쯤 그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아픔과 함께 그리움이 울컥 솟는 걸 느낀다. 그는 끝내 이 곳에 오지 못했지만 나는 그 분과 함께 나무처럼 늘 푸르른 그런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던 나의 삶을 참나무가 많은 이 산골짜기의 숲에서 나무들과 함께 농사를 지으며 그런 분들을 그리워하는 게 내가 과분한 복을 누리는 것만 싶기도 하다.
인문학 산으로 가다라는 간판이 있는 곳에서 불과 서른 발짝만 걸어 들어가면 나의 농막이다. 농막의 마당으로 들어서기 전 바른쪽에 서 있는 커다란 참나무는 우람하고 덩치 가 커서 금방 눈에 띈다. 정확한 나무의 학명의 모르지만 나는 그냥 참나무라고 부르기도 도토리나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도토리가 떨어질 때쯤이면 이 나무를 졸참나무일거라는 좀 애매한 규정을 하면서 사람들이 좀 낮게 치는 상수리나무는 아닐거라는 점에서 그냥 까도토리의 범주에 넣어서 사람들이 부르는 도토리 또는 까도토리라고 부른다. 이 참나무는 우람해서 사람 십여명이 올라가서 놀아도 될 굵은 가지가 세 개나 되는데다 자리가 넓은 덕에 위쪽으로 올라갈수록 잔가지들이 퍼져서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주변의 다른 나무들의 범접을 허용하지 않고 혼자서 주변을 호령하는 독불장군형이다. 그런데 이 녀석이 지난해부터 뭔가 우리가족을 향해 서운한 감정을 나태내고 있다. 해마다 가을만 되면 땅바닥이 안보이게 도토리를 쏟아놓곤 했는데 지난 해부터 도토리를 떨어뜨리는 양이 영판 다르다. 가을만 되면 우리 가족은 날을 받다시피해서 자루와 함지와 깔개까지 준비해서 아예 엉덩이를 깔개에 내려놓고 앉아서 두런두런 얘기얘기 하면서 좋다고 깔깔대면서 주어 담는게 연례행사가 되었다. 그런데 그렇게 우리 가족에게 즐거움을 주고 그 댓가로 사랑을 독차지해 오던 나무가 지난해부터 눈에 띄게 도토리 숫자가 적어졌다. 특히 함지의 도토리 양에 서운한 아내의 마음은 이만저만이 아니어서 나는 “여보! 올해는 이 참나무가 좀 쉬어가려는가 보구려!”하고 참나무 변명을 해주기까지 했다. 그런데 요즘 이 도토리나무의 흉년을 보면서 문득 ‘대추나무를 너무 가까이 심은게 탈이 났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지난 해 대추나무를 심을 떼 내가 장광이 있는 산 뒤쪽으로 심자고 하던 대추나무를 막내가 길가에 심어야 보기도 좋고 따먹기도 좋을 것같다는 말에 나까지 얼른“그러면 아예 이 퇴비장도 옮길겸 이 퇴비장자리에다 심자”고 했던게 잘못된 것이 다. 마당 가까이 있던 퇴비장을 멀리 좀 멀리 옮기는데만 생각이 미쳤지 그 게 참나무의 목줄을 죄는 것이란 생각에는 전혀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그 자리에 껑충하게 자라서 이미 어른나무가 다된 대추나무 한 그루를 심을 때부터 잘못된 조짐은 나타나기 시작했었다.
대추나무를 심을 때 땅을 파기 시작하자 퇴비를 빨아먹던 참나무의 솜같이 보드라운 뿌리들이 끊겨 나가고 애들 팔뚝만한 뿌리도 톱까지 동원해서 두어 개나 잘라내야 했는데 나는 그 때 도끼와 톱으로 그 굵은 뿌리를 잘라내면서 참나무가 이 퇴비장에서 거름기를 모두 뽑아가느라고 이렇게 엄청난 뿌리를 내서 해마다 그렇게 많은 도토리를 만들어 냈었구나 하면서 늘 언젠가는 퇴비장을 옳겨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게 옳았구나 하는 생각을 다시 떠올리기도 했었다. 그러나 지금 참나무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자신의 뿌리를 자르고 자신의 밥상을 대추나무에게 주어버리는 우리 인간의 처사가 얼마나 부당하고 괘심 하였겠는가 집주인을 하늘같이 믿고 사랑하는 자식들을 아낌없이 떨어뜨려 주면서 살아가던 참나무가 아무리 착하다한들 가만히 서서 그 많은 도토리들을 어떻게 그 아픈 기억을 잊어버리고 다시 자식들을 키워서 인간들에게 내어 줄 수 있겠는가 거기다 참나무가 눈 환하게 뜨고 도저히 지켜볼 수 없었을 것은 주인이란 작자들이 한 순간에 마음이 바뀌어서 뻔질나게 오고 가면서 자신에게는 눈길 한 번 안주고 사나운 가시로 위협하는 대추나무에만 온갖 정성을 다 퍼붓는 꼴이 얼마나 보기 싫었을까 그동안 우리 가족에게 자신이 그 뜨거운 여름날을 견디며 낳고 키운 자식들을 아낌없이 주었는데...
나와 우리 가족이 이렇게 참나무와 대추나무의 밥상을 두고 몇 해 동안 우리 인간의 간사한 마음으로 사랑을 저울질 하는 사이에 대추나무는 우쭉 자라서 서너길 가까이 커서 제법 길에다 그늘을 만들어 주기까지 했다, 그러나 기대했던 대추는 단 한 해를 매달리더니 그나마 직박구리와 까마귀에게 다 주고 정작 우리에게는 그놈들이 먹던 지치래기 몇 알을 주었다. 어느 핸가 아내가
“그런데 여보!”하고 이제는 대추나무 옆에 있는 도토리나무를 올려다보며 말한다.
“정말 알 수가 없는 일이잖아요, 퇴비장이 없어졌는데도 올 핸 저렇게 도토리가 엄청 많이 달렸네!”
아닌게 아니라 참나무에는 까도토리가 주덕주덕 달린게 보통이 이나었다. 그러구 보니 우리가 여기서 십년넘어 살았다지만 아직도 모르는게 너무나 많았다. 아니 모르는게 점점 더 늘어가는 것만 같았다. 이제보니 아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것만 같았다. 이 도토리나무만 해도 그렇지 올해에는 도토리가 전혀 달릴 수 없는 상황이었다. 왜냐하면 지난 해 여름 큰 장마에 대추나무를 심은 반대쪽 낮은 곳을 장맛물이 훑고 가면서 사람 한 길쯤을 파가면서 큰 뿌리가 두 개나 허공에 들어났는데다가 폭풍에 큰 가지 하나가 뚝 부러지기까지 한 것이다. 그러니 이 참나무는 자식들을 만들어 내기는커녕 사실 생존 자체가 위협을 받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건 우리가 대추나무를 심으려 팔뚝만한 뿌리 한 개와 잔뿌리 몇 옹쿰을 잘라낸 것과는 비교도 안되는 생명을 위협하는 심각한 사태인 것이다. 우리가 이 산골짜기에 와서 십년을 넘기고서야 이제 겨우 뭔가 아주 조금씩 느끼고 보이고 들리고 깨달아지는 걸 느끼고 있다.
나와 우리 가족이 참나무와 대추나무가 주는 이해득실을 계산하면서 사랑을 저울질하는 우리 인간의 가랑잎 같은 알량한 마음이 참나무와 대추나무를 볼 때마다 부끄러웠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지금 우리 가족이 이렇게 참나무와 대추나무를 마당 앞에 두고 이 두 나무에 마음을 쏟아 부으며 인간의 사랑이 저들의 한 알 도토리나 대추알보다 가벼운 무게임을 깨닫게 헤 주는 우리 인간의 부끄러움 어찌 이것 뿐이겠는가 우리가 밭을 일구어 땅을 갈고 거기에 씨앗을 뿌리고 잘 자라라고 거름을 주고 물을 주며 온갖 애를 쓰는 농사가 모두 우리 인간의 부끄럽기 짝이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허기야 지구와 우주의 자식이자 머슴인 나무의 뜻을 우리가 어찌 알겠는가 생명이 생명을 사랑한다는 우리 인간의 변명은 참으로 아픈 말이 아닐 수 없다.
(2023년 3월 5일)
첫댓글 우리 동창의
영원한 회장 오세천 형!
힘들어도
병마와 잘 싸우며
승리하는 모습
보여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