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만용/신승혜, 송병훈/박보순, 이진성/유진미 님 가정이 추가되었습니다.
보실땐 셀 주소록(포켓용)을 옆에 두고 보시면 조금 들 헷갈리십니다. >
< 서병무/안선미 가정이 추가되었습니다.>
기원전 5만년경 : 오세일 집사님의 직계 선조인 ‘오스트랄로 피테쿠스’가
에덴 동산 철조망을 넘다가 여호와에게 들키다.
그 죄의 대가로 바로 인간이 되지 못하고 오랑우탄을 거쳐 인간이 되다.
그러나 인간이 된 후에도 신실하게 살지 못하고
종족의 구호를 '오 마이 갇'으로 하다 다시
‘너희 자손은 희귀하고 마를 것이다’ 라는 여호와의 벌을 받으니
‘휘귀파’의 원조는 희근으로 하고
‘마른파’의 원조를 승식으로 하였다.
기원전 2만년경 : 고유진 집사님의 직계 선조인 ‘고인돌’ 에덴 동산에 돌을 던지다가
당직 천사인 가브리엘 에게 들키다.
기원전 1만년경 : 주께서 흙을 새로이 뿌리시며 땅을 다질 때 한 무리들이 딱딱한 돌을
만드매 그것을 쇠(金)라 이름을 붙이다.
말리며 만드는 방식을 ‘金 건식’ 이라 하였고
쇠로 종을 만들어 그 소리로 운을 떠보는 사람을 ‘金 종운’ 이라 하고,
이걸 먹으면 바로 아기를 가질 수 있다고 떠드는 자가 있었으니
그를 ‘金 태기’ 라고 한다.
주님께서 그들이 노는 걸 보시고 미쁘게 여기시어
그들이 사는 땅에 지팡이를 꽂으시고 돌아가신 후
그 자리에 샘이 솟아 오르니 이를 ‘金 성수’라 한다.
후에 그들이 나라를 세우니 국호를 당근 ‘金’이라 하였다.
첫 도읍은 착한 땅에 세우니 이곳을 ‘선경’이라 한다.
후에 으뜸인 땅으로 천도를 하니 그곳을 ‘수경’이라 불렀다.
시간이 흘러 ‘金’나라 최초의 여자 황제인 ‘혜선’이 통치 하고
그의 자매인 ‘혜란’이 이어받으니 이 때가 ‘金’나라의 최전성기 이었다.
이 때 모든 도량을 측정하는 ‘도형’제가 완성되었고
나라의 아름다운 고을인 ‘미현’에서
영롱한 빛을 발산하는 ‘미옥’이 발견되어
막대한 부를 안겨 준다.
그러나 시간이 점점 흐르며 사람들이 무거운 쇠대신
가벼운 양푼을 쓰기 시작하며 나라는 쇠약해 진다.
백성들은 과거의 영화를 생각하며 절망 해 갔고
이를 극복하고자 최전성기의 황제인 ‘혜선’,’혜란’ 자매를 생각하며
또 다시 여자 황제를 세우니 ‘명숙’,’경숙’자매이다.
그들은 분위기를 일신하고자 국호를 ‘金’ 에서 ‘철’ 로 바꾸니
그 주창자가 바로 ‘철민’이다.
철민은 그 당시 거의 말라 버린 ‘성수’를 손 봐 영구히 마르지 않는
샘물로 보수하고 그 샘물에 아름다운 배를 뛰우니
사람들은 물은 ‘영수’로 불렀으며 배는 ‘미선’이라 하였다.
이 때 사회 풍속으로는
은은히 화장한 여자를 최고의 미인으로 쳐 주는게 유행이었는데
이를 두고 사람들은 ‘은미’다 라고 규정하였다.
기원전 8천년경 :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이 알을 깨고 나오다. 둥지 주위에 둘러 앉아
깨고 나온 알 껍질을 박박 긁는 행동을 계속하자 사람들은 그들을
‘박박 긁는 사람’ 즉 ‘박가들’ 이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다.
나중에 그들이 무리가 많아지매 나라를 세우니 국호는 당근 ‘朴’이라
하였다.
그들은 알을 깨고 나오는 방식에 따라 두 파로 나뉘니
알 위쪽을 조심스레 깨고 나오는 파를 성스럽다 해서 ‘성파’로 부르니
이 파의 중심 인물으로는 ‘성순’,’성태’ 등이 있다.
알 가운데를 정면으로 깨고 나오는 파를 ‘정파’로 부르니
이 파의 주요 인물중에는 ‘정복’정숙’ 등이 있다.
그들은 알 태생 즉 난생을 함으로 종족의 수는 그리 많지 않았으나
주위 나라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니
그 비결은 알 박기 였다.
박가들만이 할 수 있는 알박기는 남의 나라의 중심부에
무조건 일정 땅을 점유하여 아무도 못 건드리게 하니
그 당시만 해도 소유의 개념이 그리 강하지 않던 이방인들에겐
엄청난 충격이었다.
이를 최초로 고안 해 낸 사람이
그 유명한 노란손수건의 ‘자영’이며
‘혜정’은 이를 전 세계로 확산시킨다.
그들은 알 박기할 땅의 사람들이 저항하면
미인계로 현혹하기도 하였는데
그 때 제일 유명한 여인이 보배 같은 미소를 지닌
‘보순’ 이라는 여자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들의 풍습으로는 한 낮에 비가 오면 모두 나와 하늘을 향해
손을 치켜 들고 비를 맞으며 춤을 추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 때 오는 비를 ‘중우’라 하였다.
기원전 7천년경 : 이 당시 ‘철’ 나라와 ‘朴’ 나라 사이에 사는 한 무리들이 있었다.
천 여년간 두 나라의 간섭속에 속국처럼 지내다가
죽음의 결의를 한 열 여덟명의 청년들이 뜻을 뭉쳐 나라를 세우기로
결의하니 이를 ‘十八子 決意’라 한다.
이들이 결국 임전무퇴의 정신으로 ‘철’ 나라와 ‘박’나라를 상대로 싸워
그들의 영토를 인정 받으니 싸운 지 90년 만이다.
처음 열 여덟명으로 시작 했던 청년들은 셋만이 살아 남아
재차 도원 결의를 거치며 나라를 세우니 이 삼형제의 이름은
‘상헌’,’상복’,’상전’ 이다.
그들은 국호를 처음 같이 했던 ‘十八子 決意’를 잊지 않기 위해
‘十八子’를 합자해 ‘李’라고 하였다.
그들은 도읍을 ‘창수’가 흐르는 ‘랑경’으로 정하고
선정을 베푸니 모든 백성이 그들을 칭송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삼 형제는 항상 백성의 생활이 어떨까 궁금해 하며
밤이면 변장과 미복을 하고 저자로 나가
백성과 함께 하려고 부단히 노력 하였다.
그리고 삼형제는 수비를 더욱 튼튼히 하기 위하여
성을 더 높이 쌓고 성을 관리할 장수를 임명하였는데
그를 ‘진성’이라 하였다.
삼형제는 저자로 나가면 각각 자기 특색에 맞게
백성과 어울렸는데
전하는 이야기로는 다음과 같다.
맏형 ‘상헌’은 ‘상’인이 되어 백성의 ‘헌’옷을 새옷으로 바꾸어 주었으며
둘째 ‘상복’은 ‘상’인이 되어 백성에게 ‘복’음을 전파하였으며
막내 ‘성전’은 ‘상’인이 되어 시장바닥에서 ‘전’을 부치었다.
기원전6천년경 : 갑자기 세상이 추워지기 시작하였다.
모든 것이 얼어붙었다. 동물들도 어디론가 다 사라져 버렸다.
‘朴’나라 사람들은 다시 알로 들어갔으며
‘철’나라 사람들은 ‘철’을 만들지 않았다.
그러나 이 때 혹독한 자연에도 굴하지 않고
산 밑자락에서 꿋꿋이 살아 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너무 추워 산의 나무에서 얼어 뚝뚝 떨어지는
새들을 주어 먹으며 생활하였다.
사람들은 그들을 山(산)밑에서 隹(새)를 잡아 먹는 人間들이라 해서
이를 합자해 ‘崔’가라 불렀다.
이들이 날이 다시 따듯해 짐에 따라 산에서 내려와
나라를 세우니 국호를 그대로 ‘崔’라고 하였다.
그들은 도읍을 ‘미경’에 세우고 생활하였다.
그들의 주 생산품은 병이었다.
그들이 만든 병은 매우 견고하고 실용적이어서 각 나라들이
다투어서 사갔다.
병의 용량은 당시 도량 단위로 한 말(斗)짜리가 가장 많이 나갔다.
이에 ‘崔’나라는 병의 용량을 정확히 한 말 단위로 측정(衡) 하는
‘衡斗(형두)’라는 사람을 두었다.
또한 깨진 병을 처리하는 ‘병철’이라는 사람이 있었으며
모아진 병 조각을 태우는 ‘병화’라는 사람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기원전4천5백년경 : 날이 따듯해지며 인간들이 급속도로 늘어 나기 시작하였다.
이즈음 '崔'나라 사람들이 나라의 발상지로 여기며 신성시 하는
'수리산' 정상에 살던 무리들이 있었다.
그들은 고산 지대에만 사는 백향나무의 고귀한 이슬과
참솔나무 잎사귀에 맺히는 정결한 이슬만을 먹고 살았다.
그들이 가끔 먼 길을 여행할 때 휴대하는
비상식량 '램바스'는 떡갈나무의 떡잎에 상수리 열매를 으깨어
참솔나무 이슬로 반죽을 한 것을 싼 것이다.
'램바스' 하나를 그들이 먹으면 한 달, 산밑의 족속들이 먹어도 일주일 동안은 허기가 지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산 밑의 사람들은 그들의 호칭을 두고 한동안 논란이 많았으나
산밑 사람 누구에게나 친절히 대하는 그들을
누가 이름 붙인 것도 없이 情人이라 부르기 시작하였다.
약 백여년이 흐른 후 그들은 주변 나라의 도움으로
나라를 세우게 되는데
천지창조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들은 국호를 산밑의 사람들이 붙여준 '情'이라 하였다.
그들의 영토는 수리산 슬기봉에서 태을봉까지 였다고 전해진다.
기원전 4200년경 갑자기 엄청난 폭우가 쏟아지고
배 한척이 태을봉에 머물다 떠났는데
비가 그치고 물이 마른 후 엄청난 광채가
태을봉에서 슬기봉까지 일주일간 이어졌다.
광채가 사라진 후 정인들이 태을봉 밑을 파 보니
일곱색깔 광채를 내는 영롱한 보석이 나오니
이를 '영옥'이라 이름 붙히고 나라의 국보로 삼았다.
'정'나라에는 슬픈 전설이 내려오는 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원래 정인들의 수명은 산밑 사람보다 3배이상 길었다.
그러나 정인들이 산밑 사람과 혼인을 하여 산밑으로 내려가 살면
수명이 산밑 사람보다 겨우 2-30년정도밖에 더 못사니
'情'나라에서는 산밑사람과의 혼사를 국법으로 금하였다.
이를 어긴자는 그 자손까지도 영원히 '情'나라로 돌아 올 수 없었다.
기원전 3800년경 산밑에서 세상을 뒤흔드는 대혼란이 있었다.
온 땅에 탐욕과 폭력이 가득 차 있었으며 그 검은 구름이 온 세상을 뒤엎어 백성들은 숨조차 제대로 못쉬는 고통에 시달렸다.
그 검은 구름은 세상의 가장 정의로운 나라인 '李'나라까지 뻗치어
'李'가 3형제는 백성을 이끌고 마지막 남은 깨끗한 땅인
'情'나라로 향한다.
그러나 '情'나라는 산밑사람과의 교통을 절대 허락할 수 없는지라
극력 거부하였고
두 백성은 산 밑과 산 위의 경계인 수리산 만남의 광장에서
지루한 협상을 계속하게 된다.
협상이 계속 되면서 '李'나라의 맏형인 '상헌'과
'情'나라의 공주는 사랑에 빠지게 되고
이를 알게 된 '情'나라의 국왕은 공주를
태을봉 꼭대기 소나무에 매어 놓는다.
공주가 협상에 나오지 않자 '상헌'은 크게 상심하여 석달하고도 열흘을 더 목놓아 우니 그 눈물이 지금도 수리산 약수로 흐르고 있다.
이에 '情'나라의 국왕이 감동하여 마음을 움직이니
'상헌'만의 입산을 허용하였다.
그사이 세상의 구름은 걷히고 '상복','상전'이 백성을 이끌고 자기 나라로 돌아가매 '상헌'은 그들을 쫓지 않고 수리산에 남아 공주와 사는 것을 택했다.
'情'나라의 국왕은 둘의 사랑을 지극히 여겨 공주에게 태을봉에서 끝까지 임을 기다렸다는 뜻의 '태임'이라는 이름을 새로 하사하니 두 사람은 사랑은 드디어 결실을 맺는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규정하신 규칙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情'나라의 국왕은 본인이 입산을 허용했으므로 그와 그들의 자손은 영원히 산 위에서 살 권리를 가지게 되었다.
이 때부터 '情'나라 사람들의 수명은 급격히 축소돼어 300년이 지나자 산밑의 사람과 똑같아 지며
나라는 점점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들의 생활상을 보면 점점 세상과 섞여 살게 되자.
그들만의 고고한 삶을 더 이상 영위할 수 없게 되었다.
결국 정인들은 수리산 등산객 및 고개를 넘어가는 여행객을 상대로
객주업을 하게 되는데 그 객주의 이름은
좋아하는 사람들이 묵어가는 곳이란 뜻을 가진
好宿(호숙)이란 객관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기원전3천년경 : 당시 ‘박’나라와 ‘최’나라 사이에는 큰 강이 있었고
이 강으로 두 나라의 경계선을 삼았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강 양쪽을 지키며 사는 무리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박’나라 사람도 아니었고 ‘최’나라 사람도 아니었다.
강 상류에서 내려온 사람들로 추측만 될 뿐
정확한 태생은 두 나라 사람들 중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두 나라 사람들과 무역상등 강을 건너는 사람들을
건네주고 삯을 받아 생활하였다.
시간이 흘러 가며 그들은 도강의 권리를 ‘박’나라와 ‘최’나라로부터
인정받으니 이는 두 나라가 이들을 완충지대로 설정하려는
의도와 일맥상통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마침내 두 나라의 동의하에 조그마한 소국을 만드는 데 성공한다.
그들은 국호를 강 양쪽에 사는 사람들의
나라라는 뜻인 ‘양’나라로 하였다.
그러나 대외적으로는 나라이름의 뜻이 촌스럽다고 생각하여
강(水)을 뗏목으로(木) 노를 저어 힘든 걸 참고(忍) 건네주는
사람들이란 한자를 합자하여 ‘梁(양)’나라로 칭하였다.
그들의 생활 풍습으로는
항상 힘든 일을 하기 때문에 틈만 나면
배불리 먹고 실컷 마시고 노는 문화가 발달하였다.
양인들은 부업으로 도축업을 겸하였는데
도축업을 하게 된 경위는 이렇다.
원래 양인들은 도축보다는 강 위에서 쉽게 할 수 있는
낚시나 족대,견지잡이를 많이 했으나
점점 물고기에 물리게 되었다.
양인들은 상인들이 몰고 다니는 소나 돼지,양을 건네 주다
발작을 일으키거나 날뛰다가 물에 빠져 죽은 동물들을
뱃삯대신 받아서 먹어 보게 되었는데 그 맛이 일품이었다.
그 후론 양인들은 동물을 몰고 가는 상인들에게
노골적으로 동물을 뱃삯으로 요구하였으며
뱃삯으로 받은 송아지를 선착장 뒤편에 매어 기르기 시작하였다.
양인들은 송아지 먹이로 강에서 흔히 나는 물고기를
주었고 이를 먹고 자란 송아지는 몸에 털 대신 비늘이 생기며
반짝반짝 거렸는데
당시 세상에서는 이 소를 영험한 소로 취급하여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값이 당시 배 열 척 값을 호가하였다.
이 소의 이름은 털이 윤기가 난다 하여 ‘윤모’라 하였다.
양인들은 무척 호기심이 많은 족속이었다.
양인들은 배의 노를 젓기가 힘들어 지자
강 양편에 솟대를 박아 이를 삼끈으로 연결하여
배를 묶은 후 원하는 쪽에서 당기면 움직이게 하였다.
얼마 후 양인들은 이마저 불편하다고 느꼈고
솟대에 연자방아를 연결하여 이를 ‘윤모’가 끌면
자동으로 삼끈이 연장방아에 감기며 배를 끌게 하는
장치를 발명했으니 이 기계를 ‘승기’라고 했다고 전해진다.
기원전 천년경 : 이 때부터 천년동안 세상은 전국시대를 맞이 한다.
만년제국을 자랑하며 맹주로 군림 했던 ‘철’나라가
철이 없어지면서 소국으로 전락해 버리자.
도처에서 우후 죽순으로 소국들이 봉기하였다.
각각 나름대로 사연으로 건국을 하였으니
후세 사람들을 위해 소국열전을 기록하여 그들을 잊지 않게 하려고 한다.
‘道(도)’나라 사람들이 있었다.
도나라의 위치는 정인들이 수명이 짧아 지며 산 밑으로 내려와
세상 사람들과 섞이며 살아 가자
수리산 슬기봉쪽이 텅 비게 되었고 그 곳을 은거지로 삼았다고 한다.
그 당시만해도 태을봉 쪽에는 상당수의 정인들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
도인들은 주로 길(道)을 닦으며 사는 무리들이었다.
각 열방간의 모든 도로를 유지 보수 하였으며
신성한 산인 수리산의 산길도 정비하다가
그 한 봉우리인 슬기봉을 근거지로 삼았다.
도인들은 항상 힘든 일을 하였기 때문에
노동요(勞動謠)가 발달 하였는데
그 대표적인 노래가 ‘영란(永難)가’ 이다.
전해 내려오는 ‘永難歌’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못살겠다~ 갈~아~보~자.
안된다.안된다. 니 디질라카나~
이 길을 언제 또 가노?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이 험난한 길…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이 험난한 신세..
<중략>
이제 가면 언제 오나~
<후렴> 어~~이~~,어~~이~~
나는 있고 너는 가고~
<후렴> 어~~이~~,어~~이~~
<생략>”
도인들은 나중에 생사에 심취하여
세상 사람들은 절대로 보지 못하는 신비한 길을 만들어 내는데
사람들은 이 길이 세상을 버려야만 볼 수 있는 길이라 하여
‘황천길’로 불렀다고 전해진다.
‘양’나라 사람들에게 배를 젓는 노를 만들어 공급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이들이 바로 ‘노’나라 사람들이다.
노인들이 만든 노는 정말 노가 났다고 전해진다.
기원전 500년경 교통문화에 일대 혁명을 일으킨 발명품을
노인들이 만들어 내는데
이걸로 노를 저으면 한번에 5Km씩 나아갈 수 있었다고 전해지나
안타깝게 현세에 남아 있지 않는다.
다만 그 노의 이름이 ‘명기’였다고만 전하여진다.
수리산 동쪽 끝에
먼 옛날 ‘김’나라때부터 전해 내려오는 ‘성수’를
‘철’나라때 보수하여 ‘영수’라 하였는데
시간이 흘러 일부 사람들이
그 곳을 백운연못으로 칭하며 모여 살았다.
사람들은 그들을 연못(池)을 근거지로 모여 산다 하여
‘지’족이라 불렀다.
지인들은 아직까지 영험한 물로 대접받고 있는
백운연못에 물을 뜨러 오거나 발을 담그러 오는 사람들에게
자리를 잡아 주거나 숙식을 제공하며 생활하였다.
백운연못에는
예전 ‘철’나라때 보수한 후
놀이를 위해 ‘미선’이라는 아름다운 배를 띄웠는데
이 당시만 해도 낡은 상태이긴 하나
아직 운행을 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지인들은 ‘철’나라 사람들과
글을 읽는 방법이 정 반대로 하였기 때문에
‘미선’을 ‘선미’로 읽었고
후세 사람들은 백운연못에 떠 다니는
이 아름다운 배를 ‘선미’라고 부르게 되었다.
‘박’나라 최남단에 중앙공원이라는 곳이 있는데
이 당시만 해도 중앙공원은 버드나무 숲이었다.
그 곳에는 무우 농사를 지으며 사는 족속이 있었는데
사람들은 그들을 버드나무 사람들이란 뜻인
류족(柳族), 또는 무우 농사꾼들이란 뜻인 무족으로 불렀으나
그들은 무족이라 불리는 걸 싫어했기 때문에
후세 사람들은 류족으로 호칭하였다.
류족들은 무우를 재배하는데 특출난 기술을 가졌으며
류족들은 무우의 무게가 정확히 한 근이 되면
무우를 뽑아 이를 저자에 내다 팔았는데
이 무우를 정확히 한 근 짜리 무우라 하여
‘근무’라 하였다.
그들은 또한 무우를 갖고 요리를 하는 것도 즐겼는데
그들이 만든 요리를 한 번이라도 먹어 본 사람은
그 맛에 취하여 사지를 부들부들 떨며 뻗기 일쑤였다.
류족중 ‘진미’라는 여자가 최고의 요리사로 꼽혔는데
그 솜씨는 전설적인 명인 ‘장금’이와 비견될 정도였다고
전해진다.
지금은 산림욕장으로 불리는 수리산 북쪽 산비탈은
‘서족’ 과 ‘편족’의 근거지였다.
이 두 종족은 말을 기르며 생활하였다.
‘서족’은 말을 길들이는 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능력을 가지었다.
그들이 ‘서~’ 하면 말은 그 자리에 서는 정도이다.
사람들은 말로 ‘서~’하면 말이 서는 그들을
‘서족’이라 부르며 그들이 길들인 말을 최고로 쳐 주었다.
세상의 명마는 다 ‘서족’의 손에서 나왔으니
그 명마들 중 유명한 명마만 손꼽어도
‘쉐마’,’늘이엄마’등이 있고 불후의 명마로
하룻 밤에 삼천리를 간다는 ‘섀도팩스’도 서족의 손에서 나왔다.
‘섀도팩스’는 서족의 ‘혜정’이란 자가 30년 동안 길들였다고 전해진다.
30년간 길들인 '새도팩스'를 이끌고 뛰어난 용병술과 무예로
세상을 호령한 자가 있었으니 그를 '병무'라 한다.
‘서족’ 근거지 한 켠에서 서족과 같이 생활하는 ‘편족’은
서족이 길들인 말이 사람들에게 팔릴 때 편자를 만들어
말발굽에 달아 주며 생활하였다.
사람들은 아무 주저함 없이 편자를 만드는 그들을
‘편족’ 또는 ‘편인’이라 호칭하였다.
편족이 만든 편자를 말에 달면
말이 똑바로 나아간다 하여
이 편자를 ‘정진(正進)’이라 하였다.
수리산 서쪽 안산 땅 산 절벽에 사는 족속들이 있었으니
사람들은 그들을 ‘조인(鳥人)’이라 호칭하였다.
당시 장의 풍속은
매장보다는 평장을 선호했으며
자연주의 사상에 따라 다시 자연에 돌아간다는 의미인
‘조장(鳥葬)’이 성행하였다.
조인들은 죽은 사람들의 ‘조장’을 치루어 주고
그 대가를 받아 생활하였다.
조인들은 또한 죽은 사람에게 마지막으로 입히는
옷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팔았는데
조인들이 만든 옷을 입고 가면
편안히 웃으며 갈 수 있다 하여
그 옷을 ‘수희(壽喜)’라 하였다.
그러나 이것이 후세에 와전되며 본 뜻이 바뀌어서
‘수의(壽衣)’라고 불리웠다.
또 ‘조인(鳥人)’ 중에 온갖 재주로
이미 혼이 빠진 사람들을 꼬셔서
다시 혼을 빼는 이가 있었으니
사람들은 그를 만가지 재주를 쓸 줄 안다 하여
‘만용’이라 불렀다.
수리산 동쪽 지금의 소각장 근처에는
당시만 해도 하늘이 안 보일 정도의 울창한 숲으로 덮여 있었다.
이 곳에는 수리산 아름드리 나무를 베어
문짝을 만들어 팔며 생활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사람들은 그들을 ‘문족(問族)’ 이라고 호칭하였다.
문족들은 문틀을 다 짜고
마지막으로 얇은 창호지를 덮어 문을 완성시키는데
이 때 호흡을 세 번 가다듬어
한 번에 불어 창호지를 문틀에 붙이는 데
문족들은 이런 행위를 ‘‘삼심(三心)’ 한다’ 라고 칭했다고 전해진다.
이 때에는 여러 종류의 문화가 발달하기 시작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연극이다.
이 때 유행한 연극이 머리에 커다란 모자를 쓰고 나무를 옮겨 다니며
소리를 지르고 열매를 땅으로 던지는 수준이었다.
지금으로 치면 거의 써커스나 쇼 수준이었다.
그래도 당시에는 굉장한 인기였으니
이 연극만 하면 주위 나라 사람들이 전부 몰려 들 정도였다.
사람들은 연극하는 이들을
머리에 모자를 쓰고(갓머리) 나무를 뛰어 다닌다 해서
‘송족(宋族)’ 또는 송인이라 불렀으며
송인들은 연극 중간에 관객들에게
나무위에서 딴 열매를 즙 낸 물이라며 팔았는데
이를 ‘경수’ 라 하였다.
이 때 곰쇼로 유명한 사람이 있었으니
‘병훈’이다. 그는 몸 자체가 곰이었으며
행동도 곰이었다.
안타깝게 그는 온 몸이 병투성이었으며
거의 병원에서 살다시피 하였다.
그러나 타고난 낙천적인 성격으로
병원을 훈훈하게 만들었으며
그래서 후세 사람들은 그를 ‘병훈'이라 부르게 되었다.
수리산 남쪽 지금 도장터널이 뚫려 있는 산 비탈에
사는 무리들이 있었는데
사람들은 그들을 ‘엄(嚴)족’ 으로 부르며
무서워 하여 가까이 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도저히 자신들의 의술로 고칠 수 없는
병자가 생길 때면 죽음을 무릎쓰고
엄족이 사는 동네에 데려다 놓고 떠났다.
사람들이 엄족을 무서워하게 된 연유에는
이런 전설이 전해진다.
엄족이 사는 마을 뒤편에 자라는 나무가 있었는데
사람들이 이 나무를 스치기만 해도
살갗이 부풀어 오르는 증상이 생겼다.
이에 사람들이 그 나무를 두려워 하여 가까이 하지 않고
다시는 그 근처를 지나다니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 나무를 가리켜 재수에 옴 붙는 나무라 해서
‘옴나무’라고 불렀다.
그러나 유일하게 옴나무 군락지 바로 밑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옴나무에게 다가가도 아무런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이후론 사람들은 그들을 ‘옴족’으로 부르다가
세월이 흐르며 ‘엄족’ 으로 불려졌다.
엄족은 옴나무의 성질을 이용하여 이를 음식에 이용하였다.
옴나무에 꿩이 둥지를 치는 걸 보고
꿩과 옴나무 가지를 함꼐 삶으니
거의 만병통치약 수준이었다.
이를 다 죽어가는 사람에게 먹이니
바로 일어나 줄행랑을 치는 일이 벌어질 정도였다.
‘엄족’은 마음씨가 고와 이 음식을
‘엄족’마을을 방문하는 사람에게 아끼지 않고 대접하였다.
이에 여호와께서 크게 만족하여
‘엄족’중 매년 한 사람씩을 천국으로 끌어 올리시니
엄족들은 하늘나라로 올라가는 사람을
‘신선’처럼 되었다고 하여 이를
‘은선’이라 칭했다고 전해져 내려온다.
지금의 6단지 세종아파트와 을지아파트 사이,
즉 테니스코트장 위에 조그마한 동산이 있었는데
이 동산에 토굴을 파고 생활하는 무리들이 있었다.
그들은 그 당시만 해도 갈대가 우거졌던 신흥초등학교,도장중학교 터에
무리지어 살던 커다란 들쥐들을 잡아 먹고 살았다.
그들은 다른 물품을 구하기 위해
들쥐 가죽으로 신을 만들어 팔았다.
그들이 만든 신은 튼튼하고 질기기로 이름이 났다.
사람들은 그들을 ‘신족’ 즉 신을 만드는 사람들로 불렸다.
그들이 만든 신은 대대로 물려주며 신을 수 있다 하여
‘승혜(承鞋)’라고 불렀다고 전해진다.
지금은 12단지로 불리고 있지만
12단지가 있는 지역은 옛날 수리산 자락이 거기까지 뻗어
울창하여 '팡고른 숲'이라 불렸었었다.
이 팡고른 나무에 매일 하릴없이 앉아 있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대부분 여자였다.
사람들은 이들을 나무 밑에 마치 갓을 쓰고 앉아 있는 여자들이라 하여
안(安)족이라 불렀다.
이들은 대부븐 할 일 없이 앉아 있었으므로
심성이 착하고 고왔다. 안그러면 밥을 안주기 때문이다.
그중에 제일 착한 사람을 으뜸이라 하여
'선미'라고 불렀다고 전해진다.
서기 0년 :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내려 보시니 가관이셨다.
하나님께서 보시면 하나도 다를 게 없는 인간들이 서로 자기가
제일 잘 났다고 싸우는 것은 차라리 희극이었다.
그러나 싸움의 정도가 점점 심각해 지고 드디어 살육을 하매
그 썩은 냄새가 여호와의 궁전에 까지 이를 정도였다.
이에 여호와께서 분노하시어 모든 집에 공기정화기를 설치하라고
명령하시니 이 때 설치된 제품이 우직한 곰족이 만든
웅진코웨이 제품이었다.
그러나 일부 종족들이 여호와를 부정하고 자신들이 만든 우상을 숭배하는
최악의 일들이 벌어지고 만다.
그들이 우상에게 절하고 제물을 태우는 검은 연기가
온 세상에 준동하매 여호와를 받드는 자들도 질식할 지경에 이른다.
여기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힌 것은 사악한 선지자들이다.
원래 선지자들은 여호와의 말씀을 인간들에게 전달하며
그들이 여호와께 제물 바치는 것을 관리하러 이 세상에
내려온 자들이었는데 이들 중 극히 일부가 권력의 울무에 잡히면서
탐욕스러워졌다.
여호와께서는 세상을 몇 개 지역으로 나누어 각 지역마다
선지자를 두어 인간들을 다스리셨는데
한 말 또 자꾸 하기가 번잡스러워서 선지자들에게
신비한 돌을 하나씩 주시어 그 돌 앞에 서게 하였는데
사람들은 그 돌을 ‘팔란티르의 돌’이라고 불렀다.
‘팔란티르의 돌’을 요즘 인간들이 주로 당구다이에 깔아 당구를 치는
융 이란 천으로 곱게 닦으면 영롱한 빛이 발하며
“호환,마마를 주의 하십시다” 라는 메시지가 지나간 후
바로 여호와의 모습이 나타나 말씀을 하시면 선지자들이 그 말씀을
다시 인간들에게 전달하는 방식이었다.
선지자중 ‘사루만’이란 자가 있었으니
이 자가 처음에는 제일 열성으로 일을 하여 선지자협의회 의장까지
오른 인물이었다.
어느 날 그는 방 청소 중 여호와처럼 애지중지 떠 받드는 ‘팔란티르의 돌’을
정성스레 융으로 닦던 중
갑자기 돌이 ‘지지직’하며 여호와가 아닌 누군가를 화면으로 보게 되었다.
그 누군가는 여호와께서 잠시 조는 사이에 나타난 악의 제왕 ‘사탄’이었다.
‘사탄’은 사루만에게 유혹을 하고 사루만은 그대로 넘어 가고 만다.
‘사탄’은 사루만에게 하늘과 땅을 나누자고 제의를 한 것이다.
사루만이 세상에 나누어져 있는 ‘팔란티르의 돌’ 다섯개를 다 차지하면
여호와의 말씀은 사루만의 입을 통해서만 인간들에게 전해지는 것이었다.
이 때 사루만이 여호와의 말씀을 몇 번만 거역하면
여호와의 성격에 그대로 있을리가 없으셨다.
불같이 화를 내며 시내산을 통해 지상으로 내려 오실 것이고
이 때를 통해 사탄은 하늘을 접수 하고
사루만을 통해 여호와의 말씀을 들었던 인간들이었기에
사루만이 인간들에게 ‘이 여호와가 그 여호와가 아니다’하면 게임 오바다.
먼저 사루만이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하였다.
그는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고 에덴동산의 수비를 게을리 했다가
인간의 침입을 허용하여 여호와의 진노를 불러 일으켜
결국 지상으로 쫓겨나 인간과 함께 살고 있던
반요정족 우르크하이족을 포섭하는데 성공하였다.
그 당시 ‘팔란티르의 돌’은 철나라와 박나라,최나라,이나라,정나라에
각각 하나씩 있었다.
사루만은 아직 까지 최대 판도를 형성하고 있었던 철나라에 있었다.
그는 철인들이 제일 좋은 철로 정성을 들여 지은 ‘철밥통’에 들어 가 있었다.
사루만은 우르크하이족을 동원하여
정인들이 사는 수리산 아래에서 시위를 하게 하였다.
슬기봉과 태을봉을 향해 갖은 욕을 해대고
온갖 배설물을 수리산 계곡에 뿌려 대기를 일 년동안 계속 하니
그 지독함과 더러움은 이루 말 할 수가 없었다.
결국 정인들이 굴복하고 ‘팔란티르의 돌’을 내어주게 되니
사루만은 귀중한 돌을 큰 희생없이 차지하게 된다.
정인들은 이 치욕을 잊지 않기 위하여
태어나는 자손들이 일 년이 지나면 돌상을 차려 주고 그 때를 회상하였다.
그리고 배설물의 후유증으로
물이 더러워졌고 사람들은 오랫동안 식수로 고통받아야 했다.
이 때 웅족들이 다시 인간을 위해 정수기를 만들어 줌으로
그 고통을 면케 하였다.
‘박’나라와 ‘최’나라는 사루만의 위협과 우르크하이족의 공격에 몰리게 되자
‘팔란티르의 돌’을 당시 가장 용맹하였던 ‘이’나라로 옮겨 보관하였다.
그러나 얼마 안가 그 사실이 발각되고
오히려 사루만은 한 번에 얻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생각하고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전력을 동원하여 ‘이’나라로 밀려 들어갔다.
‘이’나라의 상헌,상복,상전 삼형제가 분투하였으나
우르크하이족들의 더러운 전쟁(찌른데 또 찌르기,인사하고 찌르기,
뛰어 가는 데 발걸기,밥 먹는데 싸움 걸기,일 보는데 목 자르기 등..)
에 점점 후퇴하고 만다.
‘이’나라 전사들은 후퇴하다 어느 해안가에 다다르게 되는데
인간들은 그 해변을 후세에 ‘이’나라 전사의 영혼들이 팔랑거린다 하여
‘팔랑기르의 해변’이라 한다.
‘이’나라 전사들은 해변에 살던 부족을 설득하여 잠시
그 곳에 은신을 하게 된다.
그 부족은 원래 거기 살던 사람들이라 ‘원족(原族)’ 이라 불리웠다.
그들은 미개하여 이름의 개념이 없었고
단지 해안선 가까이에 사는 동족들을 통틀어 ‘일선’에 사는 사람들이라 하고,
뒤에 사는 사람들을 통틀어 ‘후선’ 에 사는 사람들이라 불렀다.
원족은 우르크하이족의 악행을 익히 아는지라 ‘이’나라 전사들에게
빨리 마을을 떠나 줄 것을 요구하였고
더 이상 물러 날 곳이 없는 ‘이’나라 전사들은 모두 배를 드러내 째며
원족에게 구원을 호소하였다.
원족은 ‘이’나라 전사들의 무식한 호소에 혀를 내두르며
다시 도와 줄 방법을 강구하기로 하였다.
이 때 원족의 여자들이 불쌍한 ‘이’나라 전사들을 위해
짼 배를 꼬매 주었는 데, 뛰어난 바느질 솜씨를 가지고 있던 원족 여자들은
‘이’나라 전사들의 째진 배를 흉터없이 한 곳으로 몰며 꼬매 주었다.
‘이’나라 전사들은 가슴에 아무 흉터 없이 배 아래쪽으로 몰아 가며
예쁘게 꼬매 준 원족 여자들에게 감사하며 배아래 모아진 흉터를
‘배를 꼬맨 곳이다’라는 뜻인 ‘배꼽’으로 부르며 원족 여자들이 베풀어 준
은혜를 기억하였다.
한 편 원족 남자들은 ‘이’나라 전사들을 구원해 주기 위해
모든 장정들이 동원되어 ‘이’나라 전사들이 ‘팔라티르의 돌’을 실고
먼 서쪽나라로 떠날 수 있게 대형 범선을 만들었다.
대형 범선이 완공 되고
‘이’나라 전사들의 배꼽도 모두 아물어
두 나라 사람들은 팔랑기르의 해변에서 모두 포옹하며 뜨거운 석별의 정을
나누고 헤어진다.
그러나 ‘이’나라 사람들이 모두 배에 오르고 닻을 올릴 무렵
원족의 ‘일선’ 사람들이 해변가에서 배를 향해 손짓을 하며
출항을 만류하였다.
원족들은 ‘팔란티르의 돌’은 없지만 육감적으로 바다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끼고 배의 출항을 만류한 것이다.
그러나 ‘이’나라의 전사들은 더 이상 원족에게 폐를 끼칠 수 없어
출항하기로 결심하고 그대로 배를 몰고 나간다.
배는 팔랑기르의 해변을 벗어난 지 1시간도 채 안돼
북쪽에서 불어 오는 엄청난 한파에 버둥대다가
바다가 그대로 얼어 붙으니
원족들이 팔랑기르의 해변에서 손을 쥐어 뜯으며
발을 동동 구르는 중에 한 바다에 침몰하고 만다.
아! 이로써 세상에 ‘팔라티르의 돌’은 두 개만 남게 되고
그 두개는 사루만의 손에 들어 가게 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세상이 평온해 진 후
여호와께서 보내신 한 현자가
팔랑기르의 해변을 지나치다
원족들을 모아 놓고 말씀을 하시매
“너희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어라~” 하매
‘일선’이 그대로 따르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그 현자가 이적을 행하매
바다 위를 걸어서
‘이’나라 전사를 태운 배가 침몰한 근처에 서시매
“내 너희를 갸륵히 여겨 추운 곳에서 일어나라 명하노니
바다 밖으로 나와 온 세상의 소금이 될찌어다.” 하니
‘이’나라 전사의 영혼들이 바다 밖으로 나와
팔랑기르의 해변에 소금을 산더미 같이 쌓아 놓았다고 전해진다.
이에 원족들은 원 없이 잘 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현자는 이에 그치지 않고
깊은 바다 속 심연에 잠들어 있던 ‘팔란티르의 돌’을
세상에 꺼내시니
‘팔란티르의 돌’ 세 개는 바다위로 솟구치며 그대로 흩어져서
인간들 가슴속으로 스며드니
바로 ‘믿음’ 과 ‘소망’ 과 ‘사랑’ 이었다.
이러한 현자의 노력으로
인간은 사악한 선지자에게 속아 여호와를 배신한 것을 용서받고
새롭게 출발하게 되었다.
여호와께서는 요즘 인간들의 세상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끼고 계셨다.
‘팔란티르의 돌’을 통해 선지자들에게 한 마디만 하면
바로 온 땅에 영광이 가득 차는 것이 보였으나
근자에 들면서 그 영광이 굴비만 못하다는 걸 느끼기 시작하셨다.
처음에는 ‘정’나라의 정인들만이 조금씩 늦게 반응하거나
가끔은 반응을 아예 안 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여호와께서는 인간의 족속들 중에 정인들을 제일 신뢰하셨기
때문에 그리 심려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박’ 나라와 ‘최’ 나라에서도 점점 여호와의 말씀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일이 발생 하자
여호와께서는 걱정어린 마음으로 세상을 내려다 보시기 시작하셨다.
수리산 서쪽 벌판에 뽀얀 연기가 뭉개뭉개 오르는 것이 보이셨다.
여호와께서는 즉시 적외선 투시 각막으로 안구를 교체하신다.
거기에서는 반요정족인 우르크하이족과 ‘박’나라 사람들이
치열하게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여호와께서는 분노하셨다.
매주 정례 모임에서 어떤 보고도 받지 못하셨기 때문이다.
싸움은 ‘박’나라 사람들이 점점 밀리고 있었고
결국은 박 터지게 깨지며 몰리고 있었다.
여호와께서는 즉시 선지자들을 소집하셨다.
‘팔란티르의 돌’ 앞에서 여호와께서는 선지자들에게 엄중히 경고하셨다.
“인간 세상이 어지러우면 제일 먼저 선지자들에게 죄를 물을 것이니
선지자들은 인간들의 싸움을 못하도록 말려라~”
그러나 이날도 ‘정’나라 선지자는 칭병하고 나오지 않았으며
여호께서 사라지신 후 네 명의 선지자들이 작금의 사태에 대해
논의를 했으나 이미 간악한 마음을 가지고 있던 사루만의 간계에
아무런 결론도 내지 못하고 헤어 진다.
여호와께서는 인간들 걱정에 식사도 제대로 못 하시고
세상을 내려다 보시는 일이 잦아지셨다.
그러던 어느 날 잠도 못 이루시고 뒤척이다가 일어나셔서
또 습관적으로 세상을 내려다 보시는 데
갑자기 반짝거리는 빛이 있어 그 곳을 유심히 쳐다 보시니
어느 해변가에서 인간들이 ‘팔란티르의 돌’을 배에 옮겨 싣고 있었다.
여호와께서는 손에 쥐고 계시던 笏(홀)이 떨어지는 것도
모르실 정도로 부르르 떠시며 인간들이 ‘팔랑기르의 해변’이라 부르는
바닷가를 뚫어지게 보셨습니다.
해변가에서는 원주민인듯한 사람들의 환송속에
이방인 같은 인간들이 배에 물건을 실고 한편으론 배에 올라타고 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보시매 배에 오르는 족속들은 ‘이’나라 백성이었습니다.
‘이’나라 백성들은 ‘블레셋’인 처럼 용맹하였으되 마음씨는 ‘정인’들처럼
고와서 여호와께서 특히 사랑하는 족속이었습니다.
그런 사랑하는 백성이 ‘팔란티르의 돌’을 자기 족속 몫 하나가 아니라
세 개씩이나 배에 옮기는 것을 보자 여호와는 분노하셨습니다.
‘이’나라 사람들이 시험이 들어 배신을 하는 것이라 생각하신 여호와께서는
그냥 두지 않겠다고 결심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이’나라 사람들이 배에 오르고 해안가를 떠나는 것을 보시자
세상의 사계절 중 겨울을 맡고 있는 북방대신 ‘엄동설한’을 부르셨습니다.
“지금 당장 계절을 겨울로 바꾸어 온 바다를 얼어 붙게 하여라~”
북방대신이 여호와의 명대로 수행하니
바다는 순식간에 서리 기운을 일으키며 몰려 오는 북풍 앞에 그대로
얼어 붙고 말았습니다.
여호와는 아무 거리낌 없이 배를 침몰 시키라고 명령하셨고
북방 대신의 특수 참모인 ‘고드름’은 ‘이’나라 사람들이 탄 배
밑창을 고드름으로 뚫었습니다.
그렇게 ‘팔란티르의 돌’ 세 개는 ‘이’나라 사람들과 함께
여호와의 진노를 사서 팔랑기르의 해변 앞 바다에 수장이 된 것입니다.
여호와꼐서는 ‘팔란티르의 돌’ 에 의한 관리시스템이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여호와는 즉시 ‘팔라티르의 돌’ 앞에 서시어 선지자들을 ‘콜’ 했습니다.
그러나 ‘정’나라,’이’나라,’박’나라,’최’나라 선지자들이 모두 ‘다이’ 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오히려 ‘철’ 나라 선지자는 ‘레이스’ 를 걸어 왔습니다.
이에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으신 여호와께서는 ‘팔란티르의 돌’ 을 모두
회수하시기로 결심하셨습니다.
3개는 이미 바다에 수장되었고 2개도 판이 돌아 가는 것을 보니
‘철’ 나라 선지자 사루만이 갖고 있다는 것을 여호와께서는 아셨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여호와의 통로인 시내산으로 내려 가실 준비를 하였습니다.
‘팔란티르의 돌’을 회수하러 직접 세상에 내려가시기로 한 것입니다.
암만해도 사루만이 그냥 반납할 놈으로 안 보였기 때문입니다.
방을 정리하고 시내산으로 연결 된 사다리로 가시려고 3층천 입구로
가실 때였습니다. 갑자기 창문 틈에 무언가 어른거리는 것을 여호와께서
눈치채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즉시 위치추적시스템을 가동하시니 그 어른거리는 물체는
악마왕 사탄의 심복인 ‘골룸’ 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즉각 데프콘 3을 발동하였습니다.
데프콘 3이 발동되면 모든 천사들은 자기 업무를 중단하고
여호와 앞에 집결하게 되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모든 천사들에게 주위경계를 엄중히 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꼐서는 천사들만 갖고서는
악마왕의 공격을 막기 힘든다는 걸 깨달으셨습니다.
여호와께서 고민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고민에 빠지시자 하늘 나라 전체가 고민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 여호와의 하나 밖에 없는 아들로써
하늘나라의 ‘젊은 천사들’이란 그룹을 이끌며 세상의 사악한 기운을
몰아 내려 애쓰시던 ‘예수님’이 그 소식을 듣고
일층천을 통해 곧 바로 여호와께 달려 오셨습니다.
“아버지여! 여호와 나의 아버지여! 어찌 그리 근심에 쌓여 계신지요?”
“알면서~!@#$%, 어찌 하면 좋겠느냐~”
“아버지여! 여호와 나의 아버지여! 제가 가겠나이다.”
“어쩌면 네 목숨과 맞바꿔야 할 지도 모르는 심각한 일이다.
그래도 가겠느냐?”
“아버지여! 여호와 나의 아버지여! 제가 원하는 대로가 아니라
여호와 나의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하옵소서~”
여호와께서는 가슴이 미어지셨습니다.
아직 철 모르는 아들 ‘예수’가 아비가 안쓰러워
대신 세상에 내려간다고 하자
그의 앞날에 예정된 일이 감당 될 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마음을 결정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세상에 내려가시면
여호와의 성격에 거의 인간들은 떼죽음을 당할 운명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절대 지존하신 존재이셨기 때문에
영생할 수 없는 인간들을 정리함으로 다시 질서를 세우는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내려가시면,
그간에 세상에 널리 회자되었던 전설속의 현자가 나타나
인간의 모든 죄를 대속하고 돌아가신다면,
그것이 인간들에게 끼치는 영향은 실로 막대하여
온전히 여호와께 경배드릴 수 있을 정도로 회복 될 것을
여호와께서는 알고 계셨습니다.
그런 마음을 ‘예수님’께 단번에 들켜버린 여호와께서는
세상을 내려보시며 눈물만 뚝뚝 흘리고 계셨습니다.
‘아~ 내가 저지른 죄(인간을 만듬) 때문에 내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형장의 이슬로 보내는 구나~’
‘왜 내가 창조한 피조물 때문에 나의 아들을 보내 피로써 다시 피조물을
구해야 하나?’
…..
…..
여호와께서는 결국 리콜을 결심하셨습니다.
그것도 출장 리콜을 하시기로 하셨습니다.
자기의 목숨을 온전히 아버지 여호와께 바치며 당신의 도구로 써 달라는
아들 ‘예수’의 말이 못내 아쉽고 섭섭하게 느껴지셨지만
여호와께서는 여호와의 책임을 다하시기로 결정하셨습니다.
드디어 ‘예수님’께서 내려가시는 날이 밝았습니다.
여호와께서 조용히 예수님을 부르셨습니다.
이미 인간세상에서 ‘미스란디르’라는 현자로 사랑을 받고 있는
‘예수님’이었지만 이번 임무는 성격이 완전히 틀린 새로운 일입니다.
여지껏 현자의 일이 선의 인간을 만나 선을 지키고 보호해 주었으면
되었으나 이제는 악과 싸우러 가야 합니다.
여호와께서는 ‘예수님’에게 인간세상에서 주의할 점을 일러 주셨습니다.
첫째. 욕하지 마라, 특히 ‘애비만도 못한 놈’이란 욕은 절대 하지 마라.
둘째. 가슴의 상처를 주지 마라
셋째. 족구를 열심히 해라, 너와 함께 세상을 구원할 사람이 거기에 있다.
………
<중략>
<예수님 구원과 부활편은 다음 각 편에 올리겠습니다>
<갑자기 느껴진 소재의 진부함에 더 이상 진행이 안됩니다>
<기원후 시대로 들어가겠습니다.>
서기 500년 : 악의 세력 완전히 소멸하다.
서기 1420년 : 여호와의 명성이 차츰 퍼지매 그 소식이 명나라까지 전해지다.
서기 1790년 : 청나라 연경사로 간 사람들에 의해
’정’인의 선조 정약종,정약용,정약전 3형제와
‘이’나라 사람들인 이벽,이가환이 주님을 영접하다.
서기 1956년7월 고인돌의 후예 고유진 집사님이 경기 가평에서 태어나다.
서기1958년8월 오광 오씨의 선조 오세일 집사님이 서울 불광동에서 태어나다.
서기1959년8월 교회종 전문 제작가 김종운 집사님이 전남 여수에서 태어나다.
서기1960년3월 여왕의 후손인 김혜선 집사님이 경기 여주에서 태어나다.
서기1960년5월 알 윗부분을 치고 나온 박성순 집사님이 서울 노량진에서 태어나다.
서기1960년8월 모래를 말리어 쇠를 마드는 김건식 집사님이 전북 김제에서 태어나다.
서기1962년3월 여왕의 후손인 김혜란 집사님이 강원 양구에서 태어나다.
서기1962년6월 문족의 유일한 핏줄 문삼심 집사님이 전남 여수에서 태어나다.
서기1962년7월 ‘이’나라의 창시자인 이상헌 집사님이 충남 서산에서 태어나다.
서기1963년1월 아명이 말복인 박정복 집사님이 경기 평택에서 태어나다.
서기1963년2월 ‘이’나라의 실세 이상복 집사님이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다.
서기 1963년4월 '서'나라의 광개토 서병무 집사님이 서울 시흥에서 태어나다.
서기1963년5월 두만강 푸른물의 조만용 경북 포항에서 출생하다.
<위대한 해인 1964년이 시작되다>
서기1964년2월 ‘박’나라 정파의 후손인 박정숙 집사님이 경북 영주에서 태어나다.
서기1964년3월 성스러운 물을 관리하는 김성수 집사님이 대구 조야동에서 태어나다.
서기1964년6월 영험한 쇠를 만지는 김태기 집사님이 경북 영주에서 태어나다.
서기1964년8월 ‘정’나라 비운의 공주 정태임 집사님이 서울 돈암동에서 태어나다.
서기1964년8월 전설의 명장 노명기 집사님이 서울 봉천동에서 태어나다.
서기 1964년8월 아름다운 보석의 주인공인 김미옥 집사님이 서울 흑석동에서 태어나다.
서기1964년10월 온 몸이 이상 증세인 송병훈 집사님이 전북 정읍에서 생산되어 전북 전주에서 재배되다.
서기1964년9월 맑고 선한 눈매의 이창수 집사님이 충북 청원에서 태어나다.
서기1964년12월 악동 최형두 집사님이 서울 신촌에서 태어나다.
<위대한 해인 1964년이 이로써 저물다>
서기1965년12월 보배로운 미소의 박보순 집사님이 전북 진안에서 태어나다.
서기1966년1월 윤기나는 피부의 양윤모 집사님이 대전 유성에서 태어나다.
서기1966년4월 특파원 겸 첩보원 김철민 집사님이 충남 홍성에서 태어나다.
서기1966년8월 사고뭉치 양승기 집사님이 충남 천안에서 태어나다.
서기1966년10월 은은한 미인 김은미 집사님이 대전 가수원동 용수터에서 태어나다.
서기1966년12월 정호숙 집사님의 부군인 장주현 집사님이 대구 만촌에서 태어나다.
서기1967년1월 아름다운 도읍 최미경 집사님이 전남 영암에서 태어나다.
서기1967년3월 최미경 집사님의 부군인 김영수 집사님이 경기 평택에서 태어나다.
서기1967년6월 한낮에 오는 비 박중우 집사님이 대구 산격동에서 태어나다.
서기1967년6월 수수한 웃음 조수희 집사님이 충북 영동에서 태어나다.
서기1967년8월 부의 상징 현주 엄마 송경수 집사님이 대전 문화동에서 태어나다.
서기1968년4월 안나라의 으뜸 착한이 안선미 집사님이 서울 도림동에서 태어나다.
서기1968년5월 ‘영난가’의 주인공 도영란 집사님이 서울 영등포에서 태어나다.
서기1968년7월 정확한 무게와 길이 김도형 집사님이 부산 청학동에서 태어나다.
서기1968년8월 아름다운 도읍 김선경 집사님이 서울 대방동에서 태어나다.
서기1968년8월 말광량이 길들이기 서혜정 집사님이 대전 문화동에서 태어나다.
서기1968년8월 알박기의 달인 박혜정 집사님이 부산 영도에서 태어나다.
서기1968년12월 오세일 집사님의 조부인 오희근 집사님이 충북 청원에서 태어나다.
서기1969년1월 ‘이’나라의 성주 이진성 님께서 강원도 두메산골에서 태어나어 곧바로 경기 여주로 옮겨져 양육되다.
서기1969년6월 근해어업인 메루치 마른업에 종사하시는 오승식 집사님이 경북 김천에서 태어나다.
서기1969년7월 일곱색깔무지개의 영롱한 보석인 정영옥 집사님이 대구 내당동에서 태어나다.
서기1969년8월 넉넉한 신발 류승혜 집사님이 강원 원주에서 태어나다.
서기1969년12월 모든이들이 좋아하는 쉼터 정호숙 집사님이 울산에서 태어나다.
< 다시 한번 위대한 해인 1970년이 시작되다.>
서기1970년3월 노란손수건의 박자영 집사님이 대전 대사동에서 태어나다.
서기1970년4월 정확한 무게인 류근무 집사님이 충북 옥천에서 태어나다.
서기1970년4월 아름다움이 깃든 도읍 이랑경 집사님이 경기 평택에서 태어나다.
서기1970년6월 맛의 창시자 유진미 님께서 경기 안양에서 태어나다.
서기1970년5월 위대한 ‘김’나라의 왕족인 김명숙 집사님이 충남 홍성에서 태어나다.
서기1970년9월 ‘이’나라의 좌충우돌 이상전 집사님이 충북 옥천에서 태어나다.
서기1970년11월 병조각을 모아 태우는 최병화 집사님이 울산에서 태어나다.
서기1970년12월 착한일을 하다 하늘로 올라가는 영광의 엄은선 집사님이 대구 모처에서 태어나다.
<이로써 또다시 위대한 해인 1970년이 끝나다.>
서기1971년2월 아름다운 배의 주인 지선미 집사님이 충남 부여에서 태어나다.
서기1971년5월 항상 똑바른 길을 걷는 편정진 집사님이 전남 함평에서 태어나다.
서기1972년3월 ‘김’나라 마자막 여왕 김경숙 집사님이 경북 김천에서 태어나다.
서기1972년5월 병조각을 모아 처리하는 최병철 집사님이 울산 모처에서 태어나다.
서기1972년7월 빼어난 도읍지 김수경 집사님이 부산 기장에서 태어나다.
서기1972년11월 JC CELL의 모태가 된 세린교회 서울 신림3동 새마을난민촌에서 천막교회로 개척되다. (담임 : 주성훈 전도사)
서기1974년5월 세린교회 서울 신림8동으로 이전하다.
서기1986년1월 고인돌의 후손 고유진 집사님과 ‘김’나라 초대 여왕 김혜선 집사님이 서울 서교동 청기와예식장에서 백년가약을 맺다. 신접살림을 안양 호계동에다 차리다.
서기1986년12월 종장사 김종운 집사님과 문족의 장녀 문삼심 집사님이 전남 여수 행복예식장에서 행복을 약속하다. 신접살림을 서울 구로 시흥동에서 차리다.
서기1987년2월 고유진/김혜선 가정 산본 구주공으로 이전하며 영준을 중앙병원에서 낳다.
서기1987년11월 오광의 오세일 집사님과 말복의 박정복 집사님이 서울 강남 궁원예식장에서 주님께 의지하다. 신접살림은 홍순원빵집이 있는 서울 성산동에 차리다.
서기1987년12월 김종운/문삼심 가정 장사가 날로 번창하여 안양 석수동으로 옮기다.
서기1988년5월 ‘박’나라 대빵 박성순 집사님과 ‘김’나라 여왕출신인 김혜란 집사님이 서울 신길에서 혼례후 청주 분평동에서 신접을 차리다.
서기1988년7월 오세일/박정복 가정의 증명 오하나 서울 서대문에서 태어나다.
서기1989년10월 ‘이’나라 황제 이상헌 집사님과 ‘정’나라 공주 정태임 집사님이 서울 신림동 왕성교회에서 무언의 언약을 한 후 서울 봉천동에서 소꿉장난을 하다.
서기1989년12월 쇠구이의 대가 김건식 집사님과 옥의 상징 김미옥 집사님이 서울 여전도회 백주년기념관에서 백주년을 맹세한 후 경기 부천에서 신접하다.
서기1990년3월 박성순/김혜란 가정 청주에서 상경하여 서울 가락동에 터를 잡다.
서기1990년7월 김종운/문삼심 가정의 장남 경휘 안양 중앙병원에서 태어나다.
서기1990년12월 이상헌/정태임 가정 서울 구의동으로 천도하고 그 달에 재형이 서울 봉천동에서 태어나다.
서기1991년1월 박성순/김혜란 가정의 애벌레 주형이 서울 강남에서 태어나다.
서기1991년2월 동네 친구 김태기 집사님과 박정숙 집사님이 경북 영주에서 결혼하다. 결혼하자 마자 서울과 경북 상주로 헤어져 주말 부부하다.
서기1991년3월 박성순/김혜란 서울 봉천동 친정으로 콜 당하다.
서기1991년4월 고유진/김혜선 가정의 막내 지연이 안양 중앙병원에서 태어나다.
서기1991년6월 ‘최’나라 관리 최형두 집사님과 ‘김’나라의 수도 김선경 집사님이 서울 해군회관에서 물에 빠지지 말자고 약속한 후 서울 반포에 횟집을 차리다.
서기1991년12월 김태기/박정숙 집사님의 큰 친구 정아 충북 청주에서 태어나다.
서기1992년1월 이상헌/정태임 가정 적들의 추격을 피해 서울 봉천동으로 이주하다.
서기1992년2월 ‘이’나라 실세 이상복 집사님과 수줍음의 송경수 집사님이 충남 논산에서 사랑에 관한 편지를 읽은 후 서울 봉천동에 신혼방을 얻다.
서기1992년3월 김건식/김미옥 가정 가정이 안정되어 경기 안산으로 이주하고 곧 바로 의현이를 광명에서 태어나게 하다.
서기1992년5월 ‘양’나라 테크니션 양승기 집사님과 은은한 미소의 주인공 김은미 집사님이 천안 중앙교회에서 주님께 의탁한 후 천안에 식탁을 차리다.
서기1993년1월 양승기/김은미 가정의 첫 딸 현진 천안 성모병원에서 태어나다.
서기1993년2월 최형두/김선경 가정 청운의 꿈을 안고 뉴질랜드로 떠나다.
서기1993년2월 이상헌/정태임 가정 적들이 다시 추격하자 경기 안양으로 피하다.
서기1993년3월 박성순/김혜란 서울 당산동 시댁으로 리콜 당하다.
서기1993년3월 종합병원 출신의 송병훈 집사님과 보배로운 미소 박보순 집사님이 전북 전주 신성예식장에서 피검사를 한 후 대전 판암동에 말뚝을 박다.
서기1993년3월 ‘이’나라의 너른 강 이창수 집사님과 조인의 선조 조수희 집사님이 경북 구미에서 가약을 맺은 후 경기 부천에 짐을 풀다.
서기1993년5월 오세일/박정복 가정의 큰 돌 원석이 서울 서대문에서 태어나다.
서기1993년6월 박성순/김혜란 가정 드디어 독립하여 서울 논현동 AID아파트로 이주하다.
서기1993년7월 김건식/김미옥 가정 밝은 곳인 광명으로 이주하다.
서기1993년9월 고유진/김혜선 가정 영광의 땅인 산본7단지 대림아파트에 입주하다.
서기1993년11월 전설의 나라 ‘노’나라의 노명기 집사님과 명마의 산실 ‘서’나라의 서혜정 집사님이 서울 봉천동 성당에서 주님 앞에 무릎을 꿇은 후 서울 사당동으로 걸어가다.
서기1993년11월 이창수/조수희 가정의 장남 은찬이 경기 부천에서 태어나다.
서기1993년12월 길 잃은 사람의 친구 정호숙 집사님과 그의 평생지기 장주현 집사님이 동대구역 앞에 있는 귀빈예식장에서 예를 올린 후 서울 신길동에 살기 시작하다.
서기1993년12월 주님의 지팡이를 뽑은 김성수 집사님과 영롱한 보석 주인 정영옥 집사님이 대구 명성웨딩에서 웨딩한 후 광명에 신접을 차리다.
서기1993년12월 송병훈/박보순 집사님의 말뚝 송정곤이 대전 을지병원에서 태어나다.
서기1994년3월 오세일/박정복 집사님이 영광의 땅 산본9단지 동성아파트에 입주하다.
서기1994년3월 박성순/김혜란 집사님이 영광의 땅 산본7단지 우륵아파트에 입주하다.
서기1994년3월 이창수/조수희 집사님이 영광의 땅 옆 땅인 의왕 삼동으로 이주하다.
서기1994년5월 JC CELL의 모체 세린교회 영광의 땅 산본으로 이전 입당하다.
서기1994년7월 최형두/김선경 집사님의 증거 윤영이 뉴질랜드에서 태어나다.
서기1994년8월 이상복/송경수 집사님의 장남 태영이 서울 보라매병원에서 태어나다.
서기1994년9월 박성순/김혜란 집사님 공부한다고 영광의 땅을 떠나 미국으로 들어가다.
서기1994년9월 김종운/문삼심 집사님이 영광의 땅 산본9단지 롯데아파트에 입주하다.
서기1994년9월 양승기/김은미 가정의 자존심 현모 천안 성모병원에서 태어나다.
서기1994년10월 김성수/정영옥 집사님이 영광의 땅 산본6단지 세종아파트에 입주하다.
이 후 6단지 을지를 거쳐 12단지 목련에 거하다.
서기1994년10월 서병무/안선미 집사님이 구로 구민회관에서 구민들에게 일일이 신고를 한 후 바로 산본9단지에 영광의 신접을 차리다.
서기1994년11월 김건식/김미옥 집사님이 영광의 땅 산본6단지 세종아파트에 입주하다.
이 후 6단지 세종에서만 두 차례 돌아디니며 거하다.
서기1994년11월 이상복/송경수 집사님이 영광의 땅 산본6단지 세종아파트에 입주하다.
이 후 9단지를 거쳐 떠날 때 까지 12단지에 거하다.
서기1994년12월 한낮의 빗줄기 박중우 집사님과 ‘영란가’의 주인공 도영란 집사님이 서울 교원노총회관에서 손가락을 걸고 맹세한 후 영광의 땅 산본6단지 세종아파트에 입주하다.
서기1995년1월 김건식/김미옥 가정의 말괄량이 나현이가 산본에서 태어나다.
서기1995년2월 김성수/정영옥 가정의 큰 아이 하림이가 산본에서 태어나다.
서기1995년2월 노명기/서혜정 가정의 큰 손 태영이가 서울 봉천동에서 태어나다.
서기1995년3월 김태기/박정숙 집사님이 영광의 땅 산본6단지 세종아파트에 정착하다.
서기1995년4월 김태기/박정숙 가정의 둘째 채현이가 충북 청주에서 태어나다.
(짐을 덜 푼 관계로 청주에서 낳다)
서기1995년4월 김종운/문삼심 가정의 둘째 경현이가 안양 중앙병원에서 태어나다.
서기1995년5월 노명기/서혜정 집사님이 영광의 땅 산본6단지에 정착하다.
이 후 2003년3월에 도봉산으로 이주하다.
서기1995년5월 장주현/정호숙 가정의 기둥 민석이가 서울 강남 성심병원에서 태어나다.
서기1995년5월 ‘철’나라의 주창자 김철민 집사님과 편자의 달인 편정진 집사님이 충남 홍성에서 결혼하시어 서울 구로 구일에 신접을 차리다.
서기1995년5월 송병훈/박보순 집사님 대전 판암동에서 말뚝을 뽑아 영광의 땅인 산본 13단지 옆 곡란중학교 근처의 단독주택 단지에 말뚝을 옮겨 박다.
서기1995년9월 이상복/송경수 가정의 삐삐 승현이가 산본 산본산부인과에서 태어나다.
서기1995년9월 ‘김’나라의 원칙 김도형 집사님과 부동산의 거물 박혜정 집사님이 부산 새마당 예식장에서 새 길을 약속한 후 영광의 땅인 산본3단지에 신접을 차리다.
서기1995년11월 ‘양’나라의 자존심 양윤모 집사님과 ‘이’나라의 수도 이랑경 집사님이 서울 신림동에서 결혼하여 영광의 땅인 산본 5단지에 짐을 풀다.
서기1995년11월 서병무/안선미 집사님의 너무 큰 확인 정환이가 산본 제일 사부인과에서 태어나다.
서기1995년12월 이창수/조수희 가정의 신동 은진이가 의왕에서 태어나다.
서기1996년1월 ‘이’나라의 삼형제 중 막내인 이상전 집사님과 백운호수의 주인공 지선미 집사님이 충북 옥천에서 혼례한 후 청주에 첫 살림을 차리다.
서기1996년1월 박중우/도영란 가정의 큰 딸인 주연이 산본 제일산부인과에서 태어나다.
서기1996년6월 이나라 성주 이진성 님과 ‘니들이 맛을 알어’의 유진미 님이 서울 강남 태극당에서 빵빵하게 결혼한 후 경기 의왕 포일에서 신접 살림을 차리다.
서기1996년7월 박성순/김혜란 가정의 공주 주은이가 서울 차병원에서 태어나다.
서기1996년7월 두만강 출신의 조만용님과 신발공주 류승혜 집사님이 호루라기의 사회로 청담동 Top웨딩 갤러리에서 웨딩한 후 평촌에 웨딩샾을 차리다.
서기1996년10월 양윤모/이랑경 가정의 장자 희규가 산본 모처에서 태어나다.
서기1996년10월 조만용/류승혜 가정 울려오는 도도한 함성에 곧바로 영광의 땅인 산본6단지 을지아파트 처마 밑으로 이주하다.
서기1996년11월 장주현/정호숙 집사님이 영광의 땅인 산본에 정착하다.
서기1996년12월 희근파의 선조 오희근 집사님과 엄족의 후예 엄은선 집사님이 대구 서문교회에서 주님께 경배한 후 서울 군자동에 신접을 차리다.
서기1996년12월 송병훈/박보순 집사님의 미소 송소희가 안양병원에서 태어나다.
서기1997년3월 김철민/편정진 집사님이 영광의 땅인 산본6단지 세종아파트에 정착하다.
서기1997년3월 박성순/김혜란 집사님이 영광의 땅인 산본9단지 백두아파트에 정착하다.
이 후 동성아파트에 거하다.
서기1997년4월 이상헌/정태임 가정의 귀염둥이 윤형이가 산본에서 태어나다.
서기1997년4월 카페운영자 오승식 집사님과 ‘철’나라 마지막 황제 김경숙 집사님이 경북 김천에서 하례한 후 대전 둔산동에 살림을 차리다.
서기1997년5월 야채업을 하던 류근무 집사님과 김경숙 황제의 선황인 김명숙 집사님이 대전 명문예식장에서 대례한 후 경기 수원을 신접 할 곳으로 택하다.
서기1997년5월 이상전/지선미 가정의 자랑 운형이가 청주 분평동에서 태어나다.
서기1997년5월 송병훈/박보순 집사님 가정이 세종으로 이주하여 이후 세종에서만 3차례를 옮겨다니며 버티다.
서기1997년5월 이진성/유진미 가정의 첫 결실 승현이가 수원에 있는 성빈센트 병원에서 태어나다.
서기1997년9월 조만용/유승혜 가정의 버팀목 인준이가 산본 제일산부인과에서 태어나다.
서기1997년10월 김미옥 집사님 세린교회 제235구역 구역장에 취임하다.
서기1997년10월 ‘최’나라 병공장 책임자 최병화 집사님과 노란손수건의 박자영 집사님이 울산 목화예식장에서 맞절한 후 영광의 땅인 산본 11단지로 바로 들어 오다.
이 후 산본10단지를 거쳐 12단지에 거하다.
서기 1999년2월 이진성/유진미 가정의 열매 지은이가 경기 수원 성빈센트 병원에서 태어나다.
서기1999년9월 박성순/김혜란 집사님이 세린 교회에 출석하다.
서기1999년10월 세린교회235구역 여자분들의 남편들이 처음 조우하다.
(김건식,이상복,김성수,양승기)
서기1999년10월 영원한 성수 김영수 집사님과 아름다운 고장의 최미경 집사님이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천상의 연을 맺고 영광의 땅인 산본에 정착하다.
서기2000년1월 이상전/지선미 가정의 둘째 건형이가 부천 상동에서 태어나다.
서기2000년1월 최형두/김선경 가정이 귀국하여 분당에 첫 터를 마련하다.
서기2000년1월 이상복/송경수,김성수/정영옥,양승기/김은미 가정 제주도로 믿음의 여행 떠나다.
서기2000년3월 세린교회 CELL체제 출범하다.
2000년3월 장주현/정호숙 가정의 둘째 흥석이가 산본 모자병원에서 태어나다.
2000년4월 이상헌/정태임 집사님이 안양으로 이주하다.
2000년5월 오승식/김경숙 집사님이 부천 상동으로 이주하다.
2000년8월 오승식/김경숙 가정의 소망 윤석이가 부천 상동에서 태어나다.
2000년9월 김건식/김미옥 집사님이 속한 남상자 셀이 해체되다.
2000년10월 이상복/송경수,김성수/정영옥,양승기/김은미 집사님이 속한 임윤빈 셀이 해체되다.
2000년11월 박성순 집사님이 속한 최형표 셀의 최형표 집사님 이주로 인하여 박성순 집사님 셀장이 되고 셀을 JC CELL로 하다. 김건식/김미옥,이상복/송경수,김성수/정영옥,양승기/김은미 JC CELL에 속하다.
2000년11월 오희근/엄은선 가정의 깐따빌라 윤서 수원 봉담에서 탄생하다.
2000년12월 오세일/박정복,박성태/김미현 JC CELL에 출석하다.
2000년12월 최병화/박자영 가정의 똑순이 정인 산본 모자병원에서 태어나다.
2001년2월 이상전/지선미 집사님 영광의 땅 산본5단지에 정착하다.
2001년2월 김영수/최미경 가정의 큰 친구 대하 산본 제일 산부인과에서 태어나다.
2001년2월 병공장 실력자 최병철 집사님과 ‘김’나라의 빼어난 수도 김수경 집사님이 부산 기장군청에서 군민들의 성원속에 가약을 맺은 후 바로 영광의 땅인 산본11단지에 정착하다.
2001년3월 양윤모/이랑경 가정의 자존심 지원이가 산본 모처에서 태어나다.
2001년4월 류근무/김명숙 집사님이 영광의 땅인 산본6단지 세종아파트에 정착하다.
2001년4월 이상복/송경수 가정의 부의 상징 현주가 산본 제일 산부인과에서 태어나다.
2001년6월 세린 CELL축제시 JC CELL이 ‘봉숭하 학당’을 공연하다.
2001년6월 ‘봉숭하 학당’이 끝난 후 김건식/김미옥 셀 분립을 위한 합심 기도를 하다.
2001년8월 오희근/엄은선 집사님 영광의 땅인 산본7단지 우륵아피트에 정착하다.
그 후로 8단지 한양으로 이주하여 거하다.
2001년8월 CELL하계 수양회를 예산 박성순 집사님 본가에서 행하다.
2001년10월 JC CELL의 초신자였던 이상래 집사님 지병으로 소천하다.
2001년10월 노명기/서혜정 가정의 막내 서경이 산본 제일산부인과에서 태어나다.
2001년11월 양윤모/이랑경 가정 JC CELL에 출석하다.
2001년12월 류근무/김명숙 가정의 깜찍이 채연 산본 모처에서 태어나다.
2001년12월 최병철/김수경 가정의 든든함 민섭이 산본 제일산부인과에서 태어나다.
2002년1월 김종운/문삼심 집사님 JC CELL에 출석하다.
2002년2월 최형두/김선경 집사님 영광의 땅인 산본9단지 롯데아파트에 정착하다.
2002년2월 이상복/송경수 셀 분립하다.
2002년2월 오승식/김경숙 가정 영광의 땅인 산본 7단지에 정착하다.
그 후로 7단지 대림으로 이주하여 거하다.
2002년4월 CELL춘계수양회를 예산에 있는 천안중앙교회 수양관에서 행하다.
2002년5월 노명기/서혜정,김철민/편정진 가정 JC CELL에 출석하다.
2002년5월 최병화/박자영,김태영/이상은 가정 음보현 CELL에서 JC CELL로 편입되다.
2002년6월 박성태/김미현 셀 분립하다.
2002년6월 최형두/김선경,이창수/조수희 가정 JC CELL에 출석하다.
2002년8월 CELL하계 수양회를 양평 광탄레저파크에서 행하다.
2002년9월 이상복/송경수 가정 서울 북한산으로 이주하다.
2002년10월 이상복/송경수 셀이 박성순/김혜란,김건식/김미옥 셀로 분산 통합되다.
2002년10월 셀 행사 및 셀원간의 글 모음집인 ‘오래오래’ 가 양승기 집사님의 감수와 이랑경 집사님의 그림으로 출간되다.
2002년10월 김태기/박정숙,오희근/엄은선,최병철/김수경 가정 JC CELL에 출석하다.
2002년10월 김영수/최미경 가정의 작은 친구 두하가 산본 제일 산부인과에서 태어나다.
2002년12월 이창수/조수희 집사님이 영광의 땅인 산본12단지에 정착하다.
2002년12월 JC CELL망년회를 세린교회 유년부방에서 행하다.
2003년2월 유지홍/한영숙 집사님 서경선 셀로 전출하시다.
2003년3월 노명기/서혜정 가정 서울 도봉산으로 이주하다.
2003년3월 서병무/안선미 가정 수원 살아봤자 뻔한 걸 알고 신본 12단지로 돌아오다.
2003년5월 CELL 춘계 수양회를 예산에 있는 천안중앙교회 수양관에서 행하다.
2003년7월 류평립 셀 해체로 최성수/김미선,이상전/지선미,오승식/김경숙,류근무/김명숙 가정이 JC CELL로 편입되다.
2003년7월 JC CELL이 세린교회의 열 두 준원형 셀 중 하나로 비준되다.
2003년7월 JC CELL 카페를 DAUM에 개설하다.
2003년8월 JC CELL 족구리그를 개최하다.
2003년8월 박성태/김미현 셀을 박성순/김혜란 셀에 통합하다.
2003년8월 엄은선 집사님이 JC CELL 로고를 제작하다.
2003년10월 김철민/편정진 집사님의 살인미소 민영이가 제일산부인과에서 태어나다.
2003년11월 최병철/김수경 집사님의 자존심 승연이가 제일산부인과에서 태어나다.
2003년11월 추수행사를 성공적으로 마치다.
2003년12월 양승기 집사 중등부 교사가 되다. 기존에 이미 계시는 오희근 부장선생님,김혜선 정교사를 합하여 중등부를 거의 책임지게 되다. 또한 김미옥 유년부 부장선생님, 김경숙 영아반 선생님등 최대의 교파를 형성하다.
2003년12월31일 셀 망년회를 개최하다.
특별순서로 아이 공기대회를 개최하다.
2004년1월 2004년1월1일부로 고유진 집사님, 오희근/엄은선 집사님, 오승식/김경숙 집사님, 류근무/김명숙 집사님, 최병철/김수경 집사님께서 세린교회로 부터 정식으로
서리집사 직분을 받으시다.
이로써 기존 17명을 포함하여 당 셀 서리집사의 수가 26명으로 늘어나다.
첫댓글 헉~~ 양작가님 기대하고 있습니다.
요즘 글 읽느라 일도 몬하고.. 아 책임져요..
이어지는 글 좀 빨리 보여주세요... 정말 되게 궁금하네...
일리아드 오딧세이를 능가하는 대서사시 !!! 삼국지 같기도하고... 암튼 대단합니다.
오~~~삼겹살,주물럭...다 책임짐! 이보다 더 나은 표현은 없다!! 최고의 찬사!!!-`은미`의 뒤를 잇는...
놀랍다네. 놀랍단다. 놀라워라. 아름다운 구절 구절속에 스며든 양집사님의 배려를...
!!!, @@@@ ,, %%%% ,,,, 인류의 역사를 다시쓰다니 !!!!!!!!!!!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겠네요. 계속되는 내용을 기대하겠습니다.
아 눈 빠지게 읽었네. 긴 역사소설 잘 읽었습니다. 다음편은 언제 나올까요?
하이구 점점 어려워 진다. 눈도 아프고... A4용지로 뽑아서 읽어야 겠다. 읽고도 이해가 잘 안가는데 이걸 쓴 사람은 대체 ???
정말 대단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