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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에 하나되어
그 사랑이 될 것입니다.
이희영 세실리아 56세, 대구대교구 형곡성당
†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 살게 하신 영을 열렬히 갈망하신다.”(야고보 4,5)
‘네, 하느님 아버지께서 저를 부르셨고 당신은 저를 한 번도 떠난 적 없으시고
한순간도 저를 잊지 않으셨습니다.
아빠를 알아드리지 못해, 그 사랑을 알아드리지 못해 참으로 죄송하고
지금 이순간 그리고 영원히 참으로 감사합니다.
하느님 아버지, 사랑합니다!’
저는 <거룩한 내맡김 영성>을 알기 전까지, 여러 신심단체에 속하여 활동을 하며
나름 열심하고 성실한 신자라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중학교때부터 학생 레지오를 하였고 청년 레지오, 전례, 조배회, 재속회, 위령회,
성경대학, 성령기도회(봉사회) 등등의 활동을 하고 매일미사를 다녔습니다.
내 손과 발과 입과 머리가 엄청 바빴던 신자였지요.
그러나 저는 매일미사와 주요 신심단체 활동 시간을 기다리며 나머지 시간을 사는,
'성당에서만 신자'인 엉터리 신앙인이었습니다.
'주님, 주님!'만 하는 그 자가 바로 저인지도 모르고, 진정한 신앙을 갖고 살아간다 여겼습니다.
성령기도회에서, 그리고 온갖 9일 기도와 각종 기도문으로 바친 제 기도의 지향은
'지난 날의 상처와 이 육신의 치유와, 내 앞길을 열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매달리고 울부짖으며, 끝이 없을 것 같은 힘겨움과 내 맘에 들지 않는 환경과 사람들과
상황들을 바꾸어 주시기를 청하고 또 청했던 날들이었습니다.
왜 그토록 기도하고 기도했을까 하며 지나온 제 삶을 돌아보았어요.
누구나 그렇듯 제 인생에서도 큰 전환점이 되었던 순간들이 있었지요.
청소년기의 학업과 성인이 된 후의 사랑과 저의 부모님이 떠오릅니다.
저는 16세(여고 1년) 때에 갑자기 어려워진 집안 환경으로 자퇴를 하고
산업전선에 뛰어들어 주경야독해야 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당시엔, 우리 집안 상황이 그렇다면 그리고 내가 조금이나마 보탬이 된다면
'나 하나 희생할 수 있지'라는 씩씩한 마음으로 참 꿋꿋했었다라고 기억됩니다.
늘 성당-학교-집만을 오가며 성당에 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던 저는
가슴에 알 수 없는 희망이 가득했었는데, 모태신앙으로 세례(6세)와 견진(중1)을
받으며 제게 주어진 은총이라 여겨졌었어요.
2남 1녀 중 둘째로 고3 오빠와 중2 남동생이 학교에 갈 때 저는 비록 일하러 가야
했지만, 틈틈이 공부해 ‘고졸 검정고시’를 치며 다 잘 될거란 생각으로 힘들다고는
전혀 생각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대학 진학을 하고 직장생활 중 필요에 의해 뒤늦게 대학원을 다니게 되었을 때,
나보다 앞서 있는 듯한 사람들을 보며 '내가 편히 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면~ '
뭐가 되었든 더 성공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한 켠에 생겨났음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어느새 원망과 불만이 제 맘 깊은 곳에 드리워져 있었던 것이지요.
그리고 사랑, 그 사랑이 뭔지, 남녀 간의 사랑이 도대체 뭔지...
이성과 만나 시간을 보내는 것이 나에겐 사치스런 일이라 여기며 바쁘게만 살다
31세에 만나 미래를 함께하기로 약속했던 한 사람.
당시 공무원이었던 저는 퇴직까지 감수하며 새로운 출발을 꿈꾸기도 했었으나,
몇 개월로 끝난 약속, 그 헤어짐은 제게 큰 상처가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나의 선택이니, 결국 내 자신을 많이 자책하며 스스로를 괴롭혔습니다.
사랑의 약속이란 다 부질없고 나라는 사람도 또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다는 생각 또한
제 안에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저의 부모님은, 누구보다 성실하고 진실된 삶을 사셨고 다른 사람에게 따지거나
하기보다는 늘 손해 보는 쪽을 택하셨던 분들이라고 지금껏 기억됩니다.
심지어 아버지는 차 사고로 다치거나 하실 때도 ‘내 아이들도 이럴 때가 있을 텐데.’
하며 상대방을 그냥 보내시곤 했다고 언젠가 말씀하시더군요.
내가 좀 참아서 그 복이 자녀들에게 가기를 바라며 그렇게 하셨다고요.
저는 ‘그렇다고 그들이 결코 고마워 하지 않아요. 따질 건 좀 따지며 사세요.’라고
말씀드리며 속으로 울었습니다. 약간의 울분과 속상함과 고마움이 뒤섞여서요.
그러나 어릴 때부터 무릎 꿇고 밥을 먹었을 정도로 엄하게 저희를 훈육하셨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저는 사실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를 때 따뜻하게 느끼지 못했고
주님의 기도 안에서만 부르는 하느님 아버지였음을 고백합니다.
몇 년 전, 코로나 시기와 맞물려 많이 노쇠해진 부모님...
특히 저에게 신앙을 물려주시고 이웃사랑을 실천하며 살아오신 어머니의
척추협착 등의 지병 악화와 함께 저 또한 심신이 지쳐갔었습니다.
저와 친구처럼 늘 대화가 많았던 어머니는
호스피스, 사회복지, 재속회, 레지오 등의 많은 신심단체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셨었고
위령회 활동을 하며 항상 장지까지 빠짐없이 다녀오시던 분이셨어요.
그런데 코로나 시기에 갑자기 몸이 더 안 좋아지시면서 집에만 계시게 되어
제 마음도 너무나 많이 슬프고 아팠습니다.
이렇듯 저는 청소년기부터 내 바람이나 꿈이 제대로 펼쳐지지 않았다는 아쉬움이
한 켠에 있었고, 뭔가 확 펴지지 않는 듯한 환경과 현실은 짐이 되어 어깨가 무거웠습니다.
그 언젠가부터 하루를 살고 나면 자책과 미움과 분노가 남았고, 묵주기도를 하며
잠들면서도 걱정 가득 근심 가득한 아침을 또 꾸역꾸역 맞이하였습니다.
희망이 넘실대던 내 젊은 날이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저는 ‘이런 형편에 내가 뭘~’하는 움츠린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평생 내 자신을 위해서는 뭔가를 하거나 즐기거나 하지 못했습니다.
나를 위해 영양제 하나를 챙겨 먹기 시작한 것도 불과 몇 년 안되었어요.
30대 이후의 저는 주로 부모 형제의 안위와 내 삶의 필요를 청하며 성체조배와
성경통독, 향심기도 피정, 2박 3일 치유피정, 철야기도회를 다녔습니다.
내 현실의 답답함과 목마름과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삶의 흐름 속의 뭔가를, 그리고
내가 믿는 하느님을 더 밝히 알고자 하는 갈망이 더해져 전국의 유명한 피정지를
늘 찾아다녔고, 먼 지역의 철야는 퇴근하며 갔다가 다음 날 바로 출근하기도 하였지요.
그리고 2-3시간씩 본당에서 성체조배를 하곤 하였습니다.
어쩌면 그때는 이러한 '찾아다님'으로 연명하듯 살았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물론 순간순간의 뜨거운 체험과 은혜도 많았습니다.
30대 중반의 성령세미나 후 성경에 맛들여 성경통독도 여러 번 하였고,
살아계신 말씀 체험에
내 모든 것이 없어진다 해도 성경책 하나만 있으면 된다 생각하였습니다.
성체조배를 할 때는 마치 천국에 있는 듯 영원히 머물고 싶었습니다.
아팠던 곳이 놀랍게 낫는 체험도 있었습니다.
향심기도 피정 중 침묵 속에 떠오른 한 단어에 집중해 보라 할 때, 저에게 떠올려진
그 단어는 신기하게도 따스함이 가득 담긴 ‘아빠’라는 단어였습니다.
그럼에도, 늘 '내 탓이오'를 하고 또 '어제의 치유를 청하는' 날들의 반복은
섬광처럼 비추어지는 빛을 등지고, 체험들을 삶으로 녹여내지 못하였습니다.
어릴 적 별명이 히죽이였을 정도로 잘 웃던 저는, 어른(?)이 되어 일상의 기쁨을
잃어버리고 심각한 표정으로 있을 때가 더 많아졌습니다.
늘 죄인인 내 자신에게 몰두해 있으니 하느님이 주인이 아니었던 것이지요.
오히려 모든 것을 더 더 내 것으로 가져와, 머리도 마음도 이 육체도 쉬지 못하게
스스로 묶어 놓고 있었던 것이었어요.
그렇게 제 기도의 대부분은 '나의 힘듦'이 주제였습니다.
모든 것이 나의 참된 구원을 위한 안배이며 사랑이기에, 바로 그것에 감사해야 함에도
오히려 반대로 ‘피하게 해달라’는 기도를 했습니다.
마지못해 머리로만 ‘그러나, 하느님 당신 뜻대로 하소서.’를 덧붙였습니다.
몸은 좀비처럼 여기에서 흔들고 있으며 이 마음은 늘 먼 곳을 헤매었습니다.
과거의 아픔을 곱씹고 불안한 미래를 걱정하며 내 필요를 청하느라 진을 빼며
기도를 참말 '해대었던' 날들이었습니다.
정작 내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모르는 채로요.
신앙인으로서 무엇이 참으로 우선인지 생각도 하지 않은 채로 말입니다.
어쩌면 생각하고 싶지 않았을 수도요.
내 바람이 아닌 다른 것이 또 내게 덜컥 주어져 감당해야 할까 두려워서요.
그렇게 내 뜻에 완전히 먹혀버린 날들이었으니, 가끔은 내 영혼의 눈물을
느낀 적도 있으나 그것을 깊이 알려고도 하지 않았어요.
저는 겉으로는 열심한 신자라는 허울을 입고 서서
그렇게 하느님 뜻과는 정반대로 달아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다 내가 느낀 힘겨움의 정점을 찍은 시기는 바로
어느덧 나이가 들어 찾아온 갱년기였습니다.
그 때에, 그동안 살아오며 눌려져 있던 부정적인 생각들이
끝없이 올라오기 시작하며 점차 우울감까지 느끼게 되었어요.
내 전부인 듯 애정을 쏟았던 신심단체도 서로 옳다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하나 하나 회의만 가득 밀려왔습니다.
그러면서 왜 난 평생 내가 결코 원치 않았던 환경, 그 순간들에 존재해야 했나
싶기도 했습니다.
까맣게 잊고 있던 어린 시절의 기억까지 생생하게 떠올랐습니다.
9세 쯤에, 옥상에서 놀다 추락한 일(그 때 뒷마당 공사로 벽돌이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었는데, 그 많은 돌들을 피해 폭신한 흙 위로 떨어져 별로 다치거나 하지는 않았지요.).
저는 아마도 이때부터 한 층 이상에서 난간이 얕거나 없는 뻥 뚫린 공간에 있게 되면
불안을 느끼게 된 것 같습니다.
10세 쯤엔 운동장에서 놀다 엄청 큰 나무에 머리를 세게 부딪혀 겪었던 뇌졸중 증상
(책을 읽다 말이 안 나오고 힘이 스르르 빠져 주저 앉았던).
이 때도 다음 날 멀쩡했었지요.
아마도 신체적으로 활발한 성장기라서 그냥 지나간 것도 같습니다.
12세 때 수학여행 전날 밤에 연탄가스를 마셔서 못 가게 된 사건.
밤중에 깨지 않았다면 어찌 되었을까하며 그 때의 힘들었던 기억과
수학여행 불참으로 아쉬웠던 마음이 느껴져 새삼 아이처럼 울음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저는 심한 멀미와 어지럼증이 있는데 이런 사고들과 전혀 무관하진 않을 것이라
가끔 생각하곤 했습니다.
성인이 되어 종합검진시 다른 이상은 없었지만요.
이후의 기타등등, 그리고 지금의 나.
오빠도 동생도 다 가정을 꾸려 살고 있는데 나는 여전히 혼자고,
30여년만 되어도 퇴직을 하고 축하를 받는데, 나는 얼마 후면 40여년이 되어가나
여전히 일만 하고 있고 또 언제까지일지도 모르겠고.
나는 또 여전히 부모님과 함께인데, 이제는 내가 도움을 더 드려야 하는 상황이고......
부모님을 도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 기쁘고 감사하면서도, 예측불가한
많은 상황들은 저를 지치게도 하고 가슴 조이며 불안하게도 만들었습니다.
암튼, 난 왜......의 생각이 그렇게 수도 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습니다.
내 생애의 좋았던 순간들, 기쁘고 행복했던 순간들은 마치 하나도 없었던 것처럼
온통 암흑인 것 같았습니다.
젊었을 적의 엄마 아빠가 기타를 배워 가족들이 둘러앉아 동요부터 가요까지
함께 부르며 즐거웠던 순간부터, 친구들과 그리고 직장과 성당에서
행복해하고 보람을 느끼고 감사했던 기억들은 몽땅 다 지워진 듯했습니다.
세상 모두에게 큰 재앙이었던 코로나 시기,
저는 그렇게 하나에서 열까지 모든 것에서 허무와 불행만을 느끼며 무기력과
우울감이 한없이 밀려왔습니다.
성경을 읽고 쓰면서도, ‘제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십니까?’라며 하느님을 부르면서도,
차라리 죽어가는 세상 저 한가운데로 나아가서 봉사라도 하다가 나도 함께 죽었으면
좋겠다 싶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때에, 저는 오히려 죽음에서 일으켜진 새 생명의 시기를 맞았습니다.
오래전에 가톨릭 굿뉴스 게시판을 통해 읽고 기억했던 한 권의 책
(‘창에 찔린 예수 화살에 꽂힌 신부’
- 하느님께 온전히 자신을 내맡긴 한 사제의 고백)을
한 자매님으로부터 받게 되었고, 무심코 펼쳐본 그 장에는 '유유상종(類類相從)'에
대한 말씀이 있었습니다.
마치 커다란 현판이 눈앞에 놓인 듯, 너무나 선명하게 이 두 눈과 마음에 가득 들어온
'유유상종', 그 순간 저는 뭔지 모를 안도감 그리고 너무나 큰 평화를 온 마음으로 느꼈습니다.
모든 것이 한꺼번에 정리되는 듯한 느낌. 기나긴 터널 끝 빛을 본 느낌이었어요.
‘하느님께서 나를 확 끌어당겨 주셨다’라고 그냥~ 그냥, 믿어졌어요!
왜냐하면, 그 만남 몇 개월 전부터 신기한 일이 있었거든요.
예전에 굿뉴스 링크를 통해 잠시 까페에 가입하고 눈팅만 하다 프린트 해놓았던,
'화살기도'가 갑자기 생각이 나고 너무 하고 싶어져 책상을 뒤져 찾아내어 기도를
하고 있었어요.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전능하시고 자비하시고 거룩하신 하느님아버지,
저의 모든 것을 당신께 맡기오니
저를 이끌어 주소서.’
아멘!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을 결코 잊지 않으심을 가슴 가득 안듯이 느끼며,
그렇게 책을 읽은 당일에 바로 무형의 성전, 까페 ‘마리아처럼’에 가입을 했습니다.
그리고 <거룩한 내맡김 영성>봉헌을 하며
‘하느님께 모든 것을 내맡긴 영혼’으로 저는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무소유 고백>과 더불어
저는 그 어느 날의 상쾌함, 그 자유함의 감격이 밀려온 아침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평소처럼 출근, 운전을 하는 중에 이 눈에 보이는 모든 것 - 내가 해야 할 일,
그리고 존재하는 이 시간, 그리고 이렇게 화살기도를 하고 있는 나라는 존재조차도 -
다 내 것이 아니구나라는 그것을, 정말 파도가 덮쳐오듯이 그렇게 느낀 순간이었습니다.
'내 것이라 여긴 것... 그 모든 것이, 또한 그 어떤 것도 내 것이 아니라는 것에서 오는
그 자유함'에 저는 너무나 감격스러웠어요.
정말 감격이라는 단어 하나에 이 마음을 담을 수 있을까라고 할 정도로
벅찬 감동이 밀려왔고, 그날 이후로 더욱 더 많은 것이 달라졌습니다.
거내영을 산지 3년이 된 지금,
저는 비록 외적으로는 살고 있는 모습도 하는 일도 똑같은 것처럼 보이나,
더 이상 내 뜻 가득 담아 머리 싸매고 고민하고 걱정하며 동동거리지 않습니다.
일어나는 모든 일을 사랑이신 하느님 아버지의 뜻으로 받아들이며
'예'와 '감사합니다'만 뜨겁게 외치고 있는 저를, 아빠아버지께서도 기뻐하시리라 믿습니다.
이끌어 주시는 대로 신자분들이나 지인들에게 ‘창.화살’ 책을 전해주며
< 거룩한 내맡김 영성 >과 나의 체험에 대해 얘기하곤 하는데 이 또한 이전과 다릅니다.
이전 같았으면, 이 좋은 것을 당연히 함께 해야지하는 마음으로 내가 안간힘을 쓰고
어떻게 이 사람을 이끌어 올까하며 마음도 몸도 머리도 바빴을 테지만, 지금은 그저
하느님께 내맡겨 드리고 그때 그때 느낌대로 하려 합니다.
그래서 '바쁘다'라는 단어를 입에 올린 지가 언제인지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이제는 부산스럽게 이리저리 돌아다니지 않고 잔잔히 흘러가는 이 삶이 좋습니다.
끊임없이 바치는 화살기도로 ‘기도가 삶이 되고, 삶이 기도가 되는’ 매일을
살아 가고 있음을 굳게 믿으며 감사드립니다.
'제발~ 나처럼 해보세요~!'라고
애타는 사랑으로 말씀하시는 지도신부님께도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 하느님의 이끄심에 따라 "물 흐르듯, 바람 불듯",
물을 타고 바람을 타고 "하느님 뜻을 타고(대로) 사는 삶" 이
얼마나 자유롭고 행복한 삶인지
저를 알고 있는 모든 분들과 정말로 이 삶을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
하느님은 이미 벌써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우리의 선택만이 남아 있습니다.
"지금 여기"를 선택하시길 간절히 빕니다.
지금 여기서 "거룩한 내맡김"을 선택하시길 빕니다.
내맡김으로 "하느님"을 선택하시길 빕니다.
"하느님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하느님의 것"이 되시길 빕니다.
"하느님의 자녀"가 되시길 빕니다.] -지도사제-
지난 날은,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랑의 선물을 한 트럭으로 갖다주셔도
'그거 아니고요~'하며
사람의 눈과 세상 속 사라져 갈 것들에 얽매여 있었던 저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주신 선물을 제대로 알아보는 눈이 떠졌으니,
모~~~든 것을 소중히 여기며 예수님.성모님 따라쟁이, 신부님 따라쟁이,
선배님들 따라쟁이로 아버지의 뜻만을 바라고 이끌려 가려 합니다.
< 내맡김의 영성은,
'예수님의 삶'을 따라쟁이 하는 삶일 뿐입니다, 따라쟁이 하는 삶! > - 지도사제 -
<거룩한 내맡김 영성>을 살게 되니,
정말 평생을 '주세요, 주세요'만 하고 살았던 저에게서 청원 기도가 사라진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내가 청할 것이라곤 하느님 아버지를 더욱 뜨겁게 사랑하게 해달라는 것 뿐,
무엇이 더 있겠습니까.
하느님 아버지께서 이렇듯 다 아시고 하시는데요.
어느 때는 퇴직 후 노후준비가 짱짱하게 되어있다는 친구들이 참 부러웠지만,
'하느님께 내맡긴 영혼'으로 살면서는
어찌 아버지 친히 거내영으로 준비해 주신 내 노후를 따라갈 수 있겠나 하며
웃음짓습니다.
혹여 내가 굶어 죽는다 해도, 그것이 아버지의 뜻이라면 참으로 기쁘게 '예'하며
감사찬미만을 드릴 것입니다.
아~ 어쩌면 주님의 기도 안에서만 나의 아버지였던 그분, 그 하느님이 나의 참주인이며
나의 아빠아버지라는 것을 알고, 또 가까이 느끼고 매일매일 <끊임없는 화살기도>를
드리며 살고 있는 지금,
내 하느님 아버지를 ‘사랑으로 부르며’ 기쁘게 매 순간을 살고 있다는 이 사실이,
저는 참으로 참으로 놀랍기만 합니다.
예전엔 죽을 듯이, 숨 넘어갈 듯이 헐떡이며 수많은 기도를 하면서도 내 뜻은 내 뜻대로,
기도는 기도대로인 느낌이 많았습니다.
반면에 참으로 아름답고 사랑으로 벅차오르는, 쉽고 단순한 '화살기도'로
내 하느님을 얻어 하나 되어 살 수 있다는 이 감격은, 날이 갈수록 커져만 갑니다.
평생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거룩한 지향,
'하느님 아버지를 내가 사랑해 드리려는' 이 지향을 가지고 살고 있구나 하는.
알고는 있지만 멀리 있었던 것 같은 그 '영원한 생명과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정말 쉼 없이 샘솟는 기쁨과 감사를 안고 살게 되는구나 하는 감격.
뭔가가 있어서가 아니라, 내 아빠아버지와 함께 한다는 이 기쁨으로
내가 겪는 어떤 상태와 무관하게 평화를 누리는 이 신비!
참으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아버지의 뜻으로 받아들이며 감사드리고 또 감사드립니다.
‘끊임없는 화살기도’가 이 가슴에 늘 흐르며 이제는 걱정과 불안과 두려움에서 벗어나,
어떤 상황에도 내일 걱정 없이 편히 잠들고, 어린아이처럼 기쁘게 잘 웃는 나를 되찾았습니다.
불이익이라도 있을까 싶어 세상 속 다른 이들의 말에 이리 저리 휘둘리던 제가,
'그러려니'하고 '아님, 말구!' 하며 모든 것 속에서 아버지를 부르니,
사람 눈치 보느라 전전긍긍하거나 스트레스 받거나 하지 않게 되어
이 몸도 더 건강해지고 있음을 또한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럴 수 있냐고 서러워 울던 내 눈물은, 가슴이 아프도록 죄송해서 흐르는 눈물로
바뀌었습니다. 지금은 또, 순간 순간 너무 감사해서 자꾸만 자꾸만 눈물이 납니다.
이렇게 저는 변화하고 또 변화하고 있습니다.
저의 모든 것이 진화하고 또 진화하는 느낌입니다.
결국 저는 무엇이 될까요? 아버지의 사랑에 하나되어 그 사랑이 될 것입니다.
한 발이라도 들여 놓았으면 그 존재의 이름이 바로 제 이름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지금 여기에서 아버지께서 허락하신 하느님 나라를 살고 있다고 저는 확신하며,
아버지 외 '그 무엇도 구하거나 바라는 것 없이' 아버지만을 더욱 더 뜨겁게 사랑하렵니다.
'살아계신 하느님을 향하여 제 마음과 제 몸이 환성을 지릅니다.' (시편 84, 3)
ㅡ 저는 오래전(2008~2010년 즈음) 어느 날,
가슴속 말씀과 찬미가 흘러넘쳐 흥얼거린 적이 있었지요.
'내가 알아 너의 슬픔 / 내가 알아 너의 아픔
내가 있어 지금 여기 / 너와 함께 하려고
이제 울지 마 / 모든 것 내 안에 있으니
뒤돌아 보지 마 / 모두 나의 것이니'
'내 사랑! 이 세상 기쁘게 살아 주겠니?
내 사랑 조금만 알아준다면 더 좋겠어.'
'그리워하라 / 그리워하여라
내가 너의 모든 것 알듯 / 너도 나의 모든 것 알아다오
나는 너의 전부가 되어 / 너는 나의 전부가 되어'
이런 내용들이었어요.
심지어 나누고 싶어 만든 표지는 '너, 나의 기쁨이어라’
오, 아버지!
십수 년이 지난 이제서야, 거내영을 살며
'하느님, 저도요. 당신만이 저의 기쁨입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라고
매일 이 영혼육으로 고백하고 있음에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이제야 일방통행이 아닌 서로가 기쁨이 되는 참사랑 안에서,
'네, 모두 하느님 당신 것입니다.'라고 모든 것 내맡겨 드리고 저 여기에 있습니다.
고민하고 걱정하고 고뇌하며, 내가 열심히 판단하고 구분하는 것이
잘하는 것인 줄 알았던 제가, 좋다 나쁘다가 아닌 모든 것에서
‘네, 하느님 당신이십니다!'라고 감사찬미만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부족한 죄인인 저를 한시도 잊지 않으시고 끊임없이 부르셨던 하느님 아버지,
이제는 제가 '아버지를 끊임없이 부르며' 오직 아버지 한 분만을 뜨겁게
사랑하고자 여기에 있으니,
사랑하는 아버지께 참으로 감사와 찬미와 영광을 드립니다!
앞으로 저에게 허락되는 모든 시간,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존재할 것입니다.
나보다 더~~~ 이 모든 것을 원하셨을 아버지께,
부족한 저의 모든 것을 내맡겨 드립니다.
오직 아버지의 거룩하신 뜻대로 이끌어 주시고,
부족한 저의 모든 것을 통하여 아버지 홀로 무한찬미영광 받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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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 감사합니다!
< 중학교때부터 학생 레지오를 하였고 청년 레지오, 전례, 조배회,
재속회, 위령회, 성경대학, 성령기도회(봉사회) 등등의 활동을 하고
매일미사를 다녔습니다.
내 손과 발과 입과 머리가 엄청 바빴던 신자였지요. >
사랑하는 그대로되었다님,
아버지를 향한 마음에 손과 발과 입과 머리가 엄청 바쁘셨네요.
그 덕분에 오늘 이렇게 기쁨을 누리고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니겠지요.
저와의 인연이 참으로 깊네요.
10년이 넘었네요.
제가 처음 님의 본당에 한 달에 한 번씩 주임 신부님 주제로
열리는 은혜의 밤에 갔었지요.
사실 저는 아버지를 만나고 싶은 열망이 그때 강렬했습니다.
봉사 회장을 맡고 얼마나 정성스럽게 잘도 이끌어 가는지
제가 감탄을 하였답니다.
어느날 우연히 거내영 화상 영성포럼을 통하여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유유상종으로 만났지요.
제가 참으로 좋아했던 동생입니다.
희망이 있는 거룩한 곳에서 함께 하니 더욱 반갑답니다.
그 예쁜 모습 저도 닮고 싶습니다.
우리 서로 기대며 이 길을 힘껏 달려봅시다.
우리 생명 다하는 날까지. . .
사랑하는 아버지,
그대로되었다와 < 딸랑2 증언 >을 아버지께 맡기오니
아버지의 거룩하신 뜻을 이루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하느님아버지, 한 영혼의 귀한 증언을 통하여 아버지의 영광이 울려퍼지게 하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 저는 변화하고 또 변화하고 있습니다.
저의 모든 것이 진화하고 또 진화하는 느낌입니다.
결국 저는 무엇이 될까요?
아버지의 사랑에 하나되어 그 사랑이 될 것입니다.
한 발이라도 들여 놓았으면 그 존재의 이름이 바로 제 이름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지금 여기에서 아버지께서 허락하신 하느님 나라를 살고 있다고 저는 확신하며,
아버지 외 '그 무엇도 구하거나 바라는 것 없이' 아버지만을
더욱 더 뜨겁게 사랑하렵니다.
'살아계신 하느님을 향하여 제 마음과 제 몸이 환성을 지릅니다.' (시편 84, 3)]
아멘!아멘!
사랑하는 그대로되었다님,
참으로 거룩하고 귀한 증언글 감사드립니다.
거내영을 통하여
암흑과도 같았던 길고 긴 어둠의 터널에서 빠져나와
사랑하는 아버지 품에 쏘옥 안기신 복된 영혼의
당당하고 확신에 찬 우렁찬 외침이
참으로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증언글을 읽는 내내 제 입에서는
'내 생애의 모든 것' 성가가 흘러나오면서
아버지를 향한 감사와 사랑의 마음이 물결치듯 함께 했답니다.
삶이 기도가 되고 기도가 삶이 되는 일상의 신비를 살아가는
복된 영혼으로 이끌어주신 아버지께 무한감사찬미 드리며,
변화된 사람만이 남을 변화시킬 수 있듯이
거내영을 통하여 아버지를 찾아 얻은
님의 거룩하고도 복된 증언으로 말미암아
내 뜻에 묶여 힘들게 살아가는 수많은 영혼들에게
기쁜소식으로 자리매김 하게되리라 확신합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감사합니다.
그대로되었다와 < 딸랑 2 증언 >의 모든 것을 통하여
무한찬미영광 받으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아빠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 거내영을 산지 3년이 된 지금,
저는 비록 외적으로는 살고 있는 모습도 하는 일도
똑같은 것처럼 보이나,
더 이상 내 뜻 가득 담아 머리 싸매고 고민하고 걱정하며
동동거리지 않습니다.
일어나는 모든 일을
사랑이신 하느님 아버지의 뜻으로 받아들이며
'예'와 '감사합니다'만 뜨겁게 외치고 있는 저를,
아빠아버지께서도 기뻐하시리라 믿습니다. >
< 지금 여기에서 아버지께서 허락하신
하느님 나라를 살고 있다고 저는 확신하며,
아버지 외 '그 무엇도 구하거나 바라는 것 없이'
아버지만을 더욱 더 뜨겁게 사랑하렵니다. >
< 앞으로 저에게 허락되는 모든 시간,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존재할 것입니다.
나보다 더~~~ 이 모든 것을 원하셨을 아버지께,
부족한 저의 모든 것을 내맡겨 드립니다. >
아멘 아멘~!!!
사랑하는 그대로되었다님,
참으로 닉네암처럼 아버지가 원하시는 그대로,
그대로 되었네요.
아버지로만 꽉 차 있는 님의 마음이 읽혀져
부족한 저의 마음 또한 충만함을 느낍니다.
세상적으로 꿈 많던 그 시절 꿈대로 살지 못했으나
아버지를 온전히 소유한 거룩한 영혼으로 살고 있으니
이 보다 더한 성공적인 삶이 있을까요.
세상 무엇보다 든든하고 큰 하느님이 우리의 아버지이신데
그 무엇이 불안하고 두려울까요.
그 아버지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 또한 아버지를 죽도록 뜨겁게 사랑하는 데
이렇게 꽉 채워지는 사랑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는지요.
부족한 저도 님과 함께
아버지만을 죽도록 뜨겁게 사랑해드리며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렵니다.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감사합니다.
< 거내영 >과 모든 사제와 그대로되었다의
모든 것을 통하여 아버지 마음껏 찬미영광 받으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귀한 한 영혼의 증언을 허락하신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확 끌어당겨 주셨다’
반면에 참으로 아름답고 사랑으로 벅차오르는, 쉽고 단순한 '화살기도'로
내 하느님을 얻어 하나 되어 살 수 있다는 이 감격은, 날이 갈수록 커져만 갑니다.
어린아이처럼 기쁘게 잘 웃는 나를 되찾았습니다.
좋다 나쁘다가 아닌 모든 것에서
‘네, 하느님 당신이십니다!'라고 감사찬미만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아멘, 아멘!!!
사랑하는 그대로되었다님,
<거내영>을 통하여
아버지께서 님을 확! 끌어당겨주신 그 날부터 지금까지
참으로 오직 아버지만을 부르시고 살아오신
모든 여정이 참으로 아름답고 거룩함으로 다가오네요!
얼마나 기다리고 찾았던 아버지이십니까!
그 아버지와 함께 아버지의 것으로 살아가시는
지금, 참으로 화안하고 기쁘게 웃고 있는 님을
꼬옥 안아드리며 축하한다고 말하고 싶어요!
그 아버지만 죽도록 뜨겁게 사랑하며
아버지의 영광의 도구가 되어 함께 잘 가십시다!
사랑하는 아버지!
모든 사제와 <딸랑2증언>과 그대로되었다의
모든 것을 통하여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크게 드러내소서!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오, 아버지!
십수 년이 지난 이제서야, 거내영을 살며
'하느님, 저도요. 당신만이 저의 기쁨입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라고
매일 이 영혼육으로 고백하고 있음에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이제야 일방통행이 아닌 서로가 기쁨이 되는 참사랑 안에서,
'네, 모두 하느님 당신 것입니다.'라고 모든 것 내맡겨 드리고 저 여기에 있습니다.
고민하고 걱정하고 고뇌하며, 내가 열심히 판단하고 구분하는 것이
잘하는 것인 줄 알았던 제가, 좋다 나쁘다가 아닌 모든 것에서
‘네, 하느님 당신이십니다!'라고 감사찬미만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부족한 죄인인 저를 한시도 잊지 않으시고 끊임없이 부르셨던 하느님 아버지,
이제는 제가 '아버지를 끊임없이 부르며' 오직 아버지 한 분만을 뜨겁게
사랑하고자 여기에 있으니,
사랑하는 아버지께 참으로 감사와 찬미와 영광을 드립니다!
앞으로 저에게 허락되는 모든 시간,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존재할 것입니다.>
아멘 아멘!!
오~~ 놀라운 아버지의 이끄심으로 이렇게 변화되어 가는 식구님들의 나눔을 보면서 감사, 감사의
눈물이 흐릅니다.
본당 일에서나 여기저기 뛰어 다니며 봉사와 아버지에 대한 앎(성경공부) 이 전부가 아니라는것을
깨닫게 되는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요.
<거내영> 의 가르침을 깨닫고서는 아버지를 먼저 사랑하는것이 최우선 임을 알게 해주신 아버지를 찬미합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고통중에 있으나 아버지께 내맡겨 드리고 사는 방법들을 모른채 헤매고 다니는 영혼들이 얼마나 많은 세상이지 않습니까?
우리는 너무나 많은 복 중에 최고의 복을 받은 하내영들이어라~
많은 고난 속에서도 잘 이겨 나올수 있도록 손잡아준 아버지께서 이제는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삶으로 살아가거라 하시며 안아 주셨네요.
사랑하는
그대로되었다님~^^
너무나 감사하고 감사한 님의 마음에 공감하며 아버지께 감사와 찬미영광을 드리는 내맡긴 영혼답게 살아가는 씩씩한 모습에서 박수를 보내 드립니다.
우리 함께 손잡고 아버지의 기쁨이 되는 삶으로 정진합시다.
사랑하는 아버지,
그대로되었다 의 모든 것의 모든것이 되어주신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을 통하여 계획하신 당신뜻이 이루어 지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아빠아버지, 아버지께서 변화 시켜 주신 이 내맡김의 삶에
참으로 감사합니다!
< 이럴 수 있냐고 서러워 울던 내 눈물은,
가슴이 아프도록 죄송해서 흐르는 눈물로 바뀌었습니다.
지금은 또, 순간 순간 너무 감사해서
자꾸만 자꾸만 눈물이 납니다.
이렇게 저는 변화하고 또 변화하고 있습니다.
저의 모든 것이 진화하고 또 진화하는 느낌입니다.
결국 저는 무엇이 될까요?
아버지의 사랑에 하나 되어 그 사랑이 될 것입니다. >
[ ■ 내맡김 영성 ■
< 斷想 > 11. 관상가가 되지 맙시다?
지도사제 10.06.12 08:26
하느님은 바라보고 생각하는 하느님이 아니라 느끼는 하느님입니다.
인간의 보잘것없는 지식으로 결코 얻어질 하느님이 아닙니다.
이제 하느님을 끌어 껴안읍시다.
살아 있는 송장이 되어 끌어 껴안지 말고
원초적 느낌, 거룩한 느낌으로 하느님을 끌어 껴안읍시다.
원초적 느낌을 되찾으려면 어린이가 되어야 합니다.
지혜롭다는 어른이, 슬기롭다는 어른이,
느낌의 킬러(killer)인 지식인이 어린이가 되는 방법은 "철부지"가 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철부지가 되기 위한 최고의 방법이 바로 "내맡김"입니다.
하느님도 우리의 부족함이, 더러움이 드러나도 모든 것을 다 껴안아 주십니다.
그리고 하나하나, 나날이 조금씩, 그리고 때로는 왕창 정화 시켜 주시고
당신 가까이로 더 힘 있게 꼬옥 껴안아 주십니다.
하느님의 거룩함에 더욱 일치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하느님의 뜨거운 사랑에
내 영혼은 그분께 한없는 "감사"와 "찬미"를 올려 드리게 되며,
그럼으로 영혼이 받게 된 모든 "영광"을 다시 남김없이
그분께 되돌려 드리게 됩니다.
이에, 하느님은 더욱 기뻐하시고
내 영혼에 당신의 모든 것을 다 열어 보여 주십니다.
이것이 곧 하느님의 "뜻"이요, "섭리"요, 거룩하신 당신의 "계획"이십니다.
하느님의 뜻이 이 땅의 모든 사람들 안에서 이루어질 때,
그때 새 하늘 새 땅 위에 "하느님 나라"가 건설 되는 것입니다. ]
아멘, 아멘!
사랑하는 그대로되었다님,
아버지께서 변화시켜 주신 새 생명의 삶이 참으로 감사히 공명됩니다.
아버지만을 뜨겁게 사랑하게 된 영혼은 < 하나 >임을
기쁘게 확인하며, 함께 가는 길이 벅차고 기쁩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감사합니다.
그대로되었다의 모든 것을 통하여 무한찬미영광 받으소서.
아버지의 완사완영을 위하여!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 고민하고 걱정하고 고뇌하며, 내가 열심히 판단하고 구분하는 것이
잘하는 것인 줄 알았던 제가, 좋다 나쁘다가 아닌 모든 것에서
‘네, 하느님 당신이십니다!'라고 감사찬미만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
아멘 아멘!
사랑하는 그대로되었다님, 진솔하고 거룩한 증언글을 잘 보았습니다.
진심으로 축하하고 감사드립니다.
고단하고 짐이 되었던 모~든 것을 내맡겨 드리니
아버지의 사랑이 되었습니다.
축하하고 축복합니다!
아버지의 크옵신 사랑만이 만사형통임을 늘 체감하고 살아가는
저희들임에 아버지, 영원히 뜨겁게 사랑드립니다.
우리 그대로 되었다님을 처음 뵈었을때가
설레는 마음으로 아버지미사 갈려고
식구님들과 함께 하는 들뜬 버스 안이었죠!
엄청 피곤함이 역 역했던 말도 별로 없던 기억이
제일 인상에 팍팍 들어왔었지요.
지리산 엄마 집에서의 거룩한 2박 3일의 피정 안에서,
님을 잘 알 수 있는 시간들이었고 정이 갔습니다.
아버지의 사랑받고 사랑받을 수 밖에 없는 아름답고
귀한 영혼임을 부족한 저는 알아보았답니다.
< 아빠아버지와 함께 한다는 이 기쁨으로
내가 겪는 어떤 상태와 무관하게 평화를 누리는 이 신비! >
아멘!
사랑하는 아빠아버지,
그대로되었다의 모~~ 든 것을 맡아주셔서 예전의 모습을 찾아 지니고
거룩한 아버지의 지향으로 유유상종을 이루며,
아버지의 기쁨으로 새 땅 새 하늘을 건설하는 영광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부족하고 부족한 철부지들에게 베풀어주시는
모든 은혜에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사랑하는 아빠아버지, 감사합니다.
모든 사제와 < 딸랑 2 증언 >과 그대로되었다의 모든 것을 통하여
홀로 마음껏 무한찬미영광 받으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 '내 것이라 여긴 것... 그 모든 것이,
또한 그 어떤 것도 내 것이 아니라는 것에서 오는
그 자유함'에 저는 너무나 감격스러웠어요. >
<이렇게 저는 변화하고 또 변화하고 있습니다.
저의 모든 것이 진화하고 또 진화하는 느낌입니다.
결국 저는 무엇이 될까요? 아버지의 사랑에 하나되어 그 사랑이 될 것입니다.
한 발이라도 들여 놓았으면 그 존재의 이름이
바로 제 이름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
아멘, 아멘~!!!
사랑하는 그대로되었다님,
거룩한 증언글 감사히 읽었습니다.
어린 시절에 어려워진 가정 형편에 따라 스스로 도움이 되기를 선택하셨고
결혼도, 그 외의 모든 것을 님의 의지로 선택하고 살았지만
후회와 공허함과 자책만 남게 된 상황을
부족한 제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뭐든지 열심히 하며 살았던 삶의 태도의 일부분이
저랑 비슷한 면이 있는 것 같아요.
지금은 잘 알게 되었지만
내면이 채워지지 않아서 사랑을 바깥에서 구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내 선택으로 열심히 하였지만
돌아오는 것은 늘 저의 기대와 다른 일들이 펼쳐지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거든요...
그것을 아버지께서 알려주셨습니다.
저의 가슴 속 깊이 갈망하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를요...
저의 생각과 행동은
제 가슴 속에 깊이 숨겨진 것을 표출하는 것의
다른 모습임을 알았습니다.
사랑이 비워져 있었고 사랑의 갈급함으로
자꾸 외부의 다른 것을 통해서 받으려는 보상심리였습니다.
님의 지나간 삶에서 얼마나 힘들었을지
충분히 짐작이 되네요.
히죽이를 잃어버리고 심각한 사람으로 변하게 된 것이
그 증거이구요.
잘 버티고 잘 지나오셨습니다.
지나간 시간이지만
그래도 제 사랑의 마음을 담아서 님을 꼬옥 안아드리고 싶습니다.
꽁꽁 얼어버린 마음이 해동이 되고
차가운 물이 끓어넘쳐 천상으로 올라가는 수증기가 되도록요..ㅜㅜ
거내영으로 이끄신 아버지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사랑하는 아빠아버지,
철부지 똥싸개들의 모든 것을 이끌어주시니
더 바랄 것이 없나이다.
그대로되었다와 <딸랑 2>의 모든 것을 통하여 무한찬미영광 받으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누구보다도 저를 훤희 잘 아시는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늘 죄인인 내 자신에게 몰두해 있으니 하느님이 주인이 아니었던 것이지요.
오히려 모든 것을 더 더 내 것으로 가져와, 머리도 마음도 이 육체도 쉬지 못하게
스스로 묶어 놓고 있었던 것이었어요.
그렇게 제 기도의 대부분은 '나의 힘듦'이 주제였습니다.
모든 것이 나의 참된 구원을 위한 안배이며 사랑이기에, 바로 그것에 감사해야 함에도
오히려 반대로 ‘피하게 해달라’는 기도를 했습니다.
마지못해 머리로만 ‘그러나, 하느님 당신 뜻대로 하소서.’를 덧붙였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감사와 찬미를 바쳐드립니다.
사랑하는 그대로되었다님, 진솔하고 거룩한 증언글을 잘 보았습니다.
굴곡진 삶의 고단함을 통하여,
아버지를 뜨겁게 만나고
아버지의 거룩하신 뜻을 따라 모~든 것을 내맡겨 드리는 삶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는 시련과 고난을 통한 진정한 은총을 들려주셨음에 감사드립니다.
축복합니다!
저 역시 살아온 삶을 통하여 공감되는 부분이 겹치기에,
뜨겁게 공감하며 아버지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 아버지를 모시고 아버지의 뜻을 따라
함께 살아가는 우리는 형제요 자매며,
천상의 한 가족임을 믿습니다.
사랑하는 그대로 되었다님~
맑게 찬양하는 님의 모습을 통하여 아버지께
영광을 바쳐드리고 계심에 감사드리고,
기뻐하시는 아버지의 거룩하신 뜻이 곳곳에 울려 퍼지고 드러나시기를 기도드리오며,
진솔한 고백을 통하여 아버지를 증거하며
님의 아버지께 향한 뜨거운 사랑과 믿음을 드러낼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심에 감사와 찬미를 바쳐드립니다.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 저는 16세(여고 1년) 때에 갑자기 어려워진 집안 환경으로 자퇴를 하고
산업전선에 뛰어들어 주경야독해야 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당시엔, 우리 집안 상황이 그렇다면 그리고 내가 조금이나마 보탬이 된다면
'나 하나 희생할 수 있지'라는 씩씩한 마음으로 참 꿋꿋했었다라고 기억됩니다.>
사랑하는 그대로되었다님,
우선 진심으로 꼭 안아드리고 싶습니다.
굴러가는 낙엽만 바라보아도 웃음을 참지 못하는
꿈많은 여고시절에 어려워진 집안에 보탬이 되고자 산업전선에
뛰어든 용기에 큰 박수를 보내드립니다.
지리산 엄마 집에서의 피정때 짧으나마 증언을 들었는데
이렇게 글로 생생하게 접하니 그저 고맙단 말밖에 더 할말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힘듬을 잘 견디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부모님을 원망할 법도 하신데 온 정성으로 부모님을 모시는 효녀시지요.
간혹 그대로되었다님을 생각하면 미모며 모든 것이 참 아깝다고
혼자 생각을 할 때도 간혹 있습니다.^^
어려움에 굴복안하고 당당하려고 애쓰던 님이 그려져 더욱 마음이
안타깝고 애가 타는 듯합니다.
잘 참고 잘 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 결국 저는 무엇이 될까요? 아버지의 사랑에 하나되어 그 사랑이 될 것입니다.
한 발이라도 들여 놓았으면 그 존재의 이름이
바로 제 이름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
참으로 아멘입니다!!
오묘하신 아버지의 사랑꾼으로 불림 받으셨으니 성공하셨습니다.
<거내영>에 발을 들여 놓았으니 아버지의 것이지요.
내맡김으로 불림 받으려면 고난은 감수해야 되는 것같습니다.
우리 딸이 증언글을 읽으면서 <거내영>은 고통이 없으면 들어올 수
없는 것 같다고 하네요.
고통속에서 희망의 싹이 돋아나 더욱 더 뜨겁게 뜨겁게
아버지만 찾으면서 진실한 사랑을 하게됩니다.
사랑하는 그대로되었다님, 진심으로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거내영으로 이끌어 주신 아버지께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감사합니다.
당신을 증언하는 철부지들을 이끌어 주시니 엎드려 감사드립니다.
사랑하는 아빠아버지,
그대로되었다의 모든 것을 통하여 무한찬미영광 받으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 내 것이라 여긴 것... 그 모든 것이, 또한 그 어떤 것도 내 것이 아니라는 것에서 오는
그 자유함'에 저는 너무나 감격스러웠어요.>
사랑하는 그대로되었다님,
진솔하신 글을 읽고존경하고 사랑하고,
같이 무형의 성전에 있음이 감사합니다!
12시에 복음의 말씀을 올리면,
항상 세세하게 지도해주시고,
실수할까 두려운 맘 안심시켜 주시는
그 사려깊은 사랑과 봉사 정신은
모두 그대로되었다님의 하느님과 함께 하신
시간에서 스며나오는 따뜻함임을 알게 됬어요.
가족을 위해 참 많은 부분을 희생하셨는데도,
오히려 그 속에서 자유함을 깨닫고,
아버지의 뜻대로 사시는 모습에 저도 감격이고,
가족을 위한 작은 희생에도 생색냈던
저를 부끄럽게 돌아봅니다.
저도 그대로되었다님과 공명해서,
아버지를 사랑하지 못했던 죄송함의 눈물을
진화하고 변화되는 기쁨과 자유로움을
공감하고 따라쟁이 할께요. 사랑합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그대로되었다의 모든 것을 통하여
무한찬미 영광 받으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아빠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 이럴 수 있냐고 서러워 울던 내 눈물은,
가슴이 아프도록 죄송해서 흐르는 눈물로 바뀌었습니다.
지금은 또, 순간 순간 너무 감사해서
자꾸만 자꾸만 눈물이 납니다.
이렇게 저는 변화하고 또 변화하고 있습니다.
저의 모든 것이 진화하고 또 진화하는 느낌입니다.
결국 저는 무엇이 될까요?
아버지의 사랑에 하나 되어 그 사랑이 될 것입니다. >
사랑하는 그대로되었다님,
잔잔히 자세히 써내려간 글들이
님의 모습 그대로임을 느끼게 됩니다.
사랑은 말로 만이, 글로 만이 아닌 행동으로 해야함을
일찍이 알고 계셨고 그 사랑으로 한 가정이
질서를 잡아가는 듯한 깊이를 느끼게 됩니다.
그대로되었다님의 지금 모습은
많은 사랑이 담긴 이야기의 결정체가 되어있네요.
부모님과 함께 하신 신앙생활이 그래도 제겐 부러움입니다.
고단하고 아픈 시간들을 한 아버지를 두고,
나누고 함께할 부모님이 계셨기에
일어나는 일에 대한 순응이 가능했으리라 생각이 되어 졌어요.
늘 조용조용 차분함 속에 담긴
깊고 깊은 아버지를 향한 큰 사랑을 품고 계셨던
그 순간들을 함께 공감하는 이 시간에 감사를 드리게됩니다.
그대로되었다님,
'아니오'를 모르고 '예'라 답하셨던 님이 제 마음에 담겨있어요.
그 마음은 아버지께서 제게도 허락하신 사랑이라 말합니다.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아버지,
그대로되었다와 < 딸랑 2 증언 >의
모든 것을 통하여 무한 찬미 영광 받으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무식한 제가 이 글을 쓸 자격이 있나 모르겠습니다만
그대로되었다님 글을 읽다보니 집안환경이나 사회환경에서 겪었을 역경이 보이며 글로써 다 할 수 없겠지만
고통을 인내와 지혜로 극복하신 걸 보고 꼭 한 말씀 드리고 싶어 이렇게 자판을 두드려봅니다.
참으로 고생 많으셨습니다. 잘 이겨내셨고요.
하느님 안의 영성이 그대로되었다님과 가족 모두에게 충만하시길 기도합니다.
사랑하는 하느님 아버지.
그대로되었다와 가족의 모든 것을 통하여 무한 찬미영광 받으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