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립학교인 ‘푸트룸 학교’의 학습 공간의 배치와 수업 방식은 매우 자유로와 보였다. 이곳의 유아교육은 폭넓은care와 부모들 간의 협력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Futurm학교에서 는 교육환경이 너무나 쾌적하고 안락하다는 느낌을 갖게 했다. 자연의 일부가 교실에 들어온 거처럼 교실 중간에 나무와 안락한 의자와 쇼파가 눈에 들어온다. 특이한 점은 교실 곳곳에 무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이곳에서 아이들이 여러 가지 공연과 학습이 이루진다고 한다. 이 무대에 선 아이들의 느낌은 어떨까? 모두가 주인공이 되는 학교, 그 주인공을 위해 학교는 열심히 돌보고 배움을 나눈다. 무대에 선 모든 배우들이 자신의 열정을 끌어내고 있듯이 말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주인공은 몇 명의 소수만 정해져 있고 나머지는 들러리로 만든다. 들러리의 비애, 이러한 현실은 아이들의 상상력과 꿈을 빼앗아가고 몸과 마음이 분리되는 자아분열을 양상해 내고 있지 않는지 가슴 씁씁함을 몰고 온다. |
꿈을 만들어낸 무민의 나라 핀란드
‘무민’동화는 핀란드의 동화 작가이자 화가 토베 얀손(Tove Jansso )의 1945년 작품이다. 무민마마를 중심으로 모여드는 스노크 아가씨, 스니프, 스너프킨, 꼬마 미, 필리정크스, 등의 인물은 제각기 고유의 개성과 철학을 지닌 존재들이다. 토베 얀손이 이들을 주인공으로 하여 쓴 총 9 권의 무민 동화는 전 세계 33 개국 언어로 번역되어 우리나라에도 서점에서 흔희 볼 수 있는 동화이다. 얀손은 뭐 인터뷰에서 “그 아름다운 어린 시절이 없었다면 결코 무민 동화를 쓸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아름다운 어린 시절이 만들어낸 무민 동화는 인간 사회의 축소판을 재미있는 이야기로 풀어낸다. 사람 같기도 하고 동물 같기도 하고 요정 같기도 한 이들의 모 습과 행동은 인간과 동물 나아가 모든 자연의 생명체 들이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무민의 이야기에는 꽃과 나무와 노래와 시와 사랑과 자유, 따뜻한 모성애가 넘쳐난다. 또한 얀손의 동화에 깔린 철학을 보면 우리는 누구나 서로 다른 존재이며, 서로 다름과 함께 살아가는 어울려 살아가는 모습을 동화를 통해 들려주고 있다. 이 동화에는 이 동화의 철학이 핀란드의 교육철학과 일맥상통하고 있으며, 다양성과 배려, 소통의 아름다움 실현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갖게 되었다.
스스로 서고, 서로 돌보는 Hӧsmarinpulston학교
유치3세 아동부터 초등학교 2학년과정이 있는 이 학교는 배려와 돌봄의 정신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핀란드인과 결혼하여 핀란드에서 생활한지 8년째 되었고 두 아이의 엄마인 한인교포 곽수현씨는 핀란드의 교육은 유치원에서 철저히 시작되고 유아교육을 중시 한다는 것이었다. 이점은 스웨덴을 방문했을 때, 스웨덴 교민이 말씀하신 것과 같은 내용이다.
우리나라의 유아교육현실에 비추어 본다면 꿈같은 이야기이긴 하지만 교육운동을 고민하는 분들에겐 교육운동의 출발이 유아교육에 있음을 일깨워주는 시간이었다. 철저한 아이를 중심으로 놓고 교육을 하고 있는 핀란드와 스웨덴에서의 교훈은 평생교육관점에서 교육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점이며, 여성의 취업을 돕기 위한 유아교육으로 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아이들을 양육하는 것에 있어 철저히 1차적 책임을 부모 그리고 사회라는 관점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곽수현 교포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린 자녀들이 유치원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배우는 것은 "소리를 지르지 말라" "내 물건이라도 남의 손에 있는 것은 빼앗지 말라" "담을 넘지 말라"를 가장 먼저 배운다고 한다. 또한 아이들이 두 살이 되면 옷 입는 것에서부터 밥 먹는 것이 까지 스스로 하는 법을 익히고, 놀이를 통해 사회성을 배우도록 한다고 한다.
어린아이들이 밖에서 놀 때 충분한 에너지를 발산하게 되면, 공부 할 때 차분해지고 학습에 집중하게 되고, 밤에 잘 자기 때문이라고 한다.
스웨덴 프레네 학교에 딸린 유치원에서도 거의 모든 시간을 바깥에서 놀고 잠자고 미술, 음악과 같은 예술 활동을 한다. 글자를 가르치다거나 학습지를 하는 일은 없다고 한다. 이러한 유아교육기관의 특징은 유아시기에 공부가 아닌 철저한 놀이에 기초한 학습을 강조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아이들이 잘 놀 수 있도록 배려를 하고 있었는데 겨울에 아이들이 눈싸움과 썰매를 하고 나면 옷이 젖게 되는데 학교에 옷을 말리는 건조실이 설치되어 있었으며 개인용 썰매와 겨울의 두꺼운 옷을 걸어두기에 편한 큼직한 옷장 등이 비치되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교육과정에 놀이를 중시하고 있지만, 현장을 그렇지 못하다. 당장 영어교육의 광풍에서 유아교육은 제일먼저 영어유치원부터 시작해서 온갖 영어 프로그램이 어린이집, 유치원을 휩쓸고 있다. 이러한 폐해는 공립기관보다 사립기관으로 운영되어지는 한국의 유아교육현실이다.
점심시간에 아이들에게 제공되는 음식에 대해서 잠시 원장에게 물어보다가 옆에 있는 안해경씨는 아이들이 먹는 음식에 어떻게 농약을 친 음식이 제공 될 수 있냐고 여기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해서 무척이나 당황했다. 그렇다면 친환경 급식을 해달라고 아우성치는 우리나라의 현실은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반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이 학교에서는 특수학급과 어린 유아들은 교사들이 매일 매일 그들의 생활을 기록하고 있었다. 무엇을 하고 놀았는지 아픈 곳은 없었는지? 재미있는 일화는 어떤 것이 있었는지 등등 매일매일 적는다고 한다. 사실 10권정도 되는 아이들의 생활 기록을 매일 적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교사와 학부모의 신뢰를 쌓는 길이기도 하며 아이들의 생활에 있어서 작은 변화라도 놓치지 않고 교사들이 알고 있다는 것은 칭찬할 만한 일이다,
아이들에 대한 끝없는 국가적 배려
1차적 책임은 부모 그리고 2차는 사회구성원모두가 책임지는 양육과 교육, 교육현장에서는 구성원간의 끝없는 협력과 소통을 위해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실천적 지식을 강조하고, 교육 자율성을 보장하며, 교육의 통합성으로“모든 사람을 위한 교육”이 스웨덴과 핀라드교육의 핵심이다라는 생각을 한다. 사회적 약자에게 배려하고 가진자들은 그 배려를 대해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국민성은 바로교육의 힘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오직 아이의 올바른 성장과 충분한 학습이라는 목표를 위해국가의 예산과 자원을 기꺼이 아이들을 위해, 그리고 뒤처지는 아이들을 위해 투자하는 것이었다.
스웨덴도 그렇지만 특히 핀란드의 문화가 부러웠다. 핀란들인이 모두 지니고 있다는 정직성 신뢰성, 채무에 대한 혐오, 겸손 등이 뿌리 깊게 박혀있고 이는 핀란드란는 국가에 대한 이미지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한다. 여행 중 누군가 범생이 국가 자체였다. 하지만 그것이 고루하다거나, 건조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들이 예술교육을 곳곳의 아트센터를 운영하여, 국민들의 개개인의 심성을 아름답게 가꾸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민주주의란 결국 개인, 개체가 주인 주체가 되는 것을 의미하기에 올바른 민주주의 실현은 결국 개인의 민주주의고 완성이란 생각이든다. 우리나라의 입시제도와 고등학교 정책에 묶여있는 학교정책에서 예술교육은 사라진지 오래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국민모두의 교육을 위해 소통하고, 배려하는 두국가의 여행은 오랜 기억이 될 것 같다. 다시 한 번 강조하자면 교육의 기초는 유아교육임을 여행자 모두 느낄 수 있는 여행이고 향후 국가정책에서도 유아교육을 교육운동의 출발로 삼기를 기대해 본다.
첫댓글 잠시 울산이라는 도시에서 떠나 좋은 유치원(?)이라 이름 붙여진 곳만 가보아도 입이 다물어지지않을 정도로 감탄할 것들이 많은데, 북유럽이라는 먼 나라 이야기에 한동안 깊은 생각의 늪에 빠져봅니다. 우리는 너무나 깊숙히 몸을 담그고 있다는 생각...아주 미련한 뚱뚱한 한마리의 개구리같다는 부끄러운 마음이 듭니다. 뚱뚱하다 못해 이끼 낀 우물에 몸이 퉁퉁 부어오른 못난 개구리...!!! 아주 그럴듯한 이상을 품고 있으면서도 늘 현실 핑계를 대는 많은 이들이 있기에 여전히 우리는 어둠의 베일을 벗기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는 아침입니다...
변화는 늘 나부터 시작해야합니다만, 그 변화를 시도하려다 여전히 찬밥을 면치못하는 저는 또 이렇게 현장 밖에서 물끄러미 점점 지쳐가는 가엾은 아이들을 힘없이 바라보기만 하고,,, 집 앞 강가에서 벌거벗고 멱감던 내 어린 시절의 그곳은 온데간데없고 20층 아파트만이 하늘을 찌를듯 솟아있지만, 그래도 나는 그 아름다웠던 기억을 잊을 수 없네요... 선생님 말씀처럼 그 기억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나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두나라의 아름다움은 높은 도덕성에 있었습니다. 개인이 자유롭고 각 개인이 배려에 대한 높은 인식과 실천 이론은 실천에서 빛난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좋은 이론과 철학이라도 현장에서 실천되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사람들에게 꼭 실천하리라 그렇게 살아보리라 하는 마음을 움직이는 그 무언가가 필요합니다. 저는 요새 사람이 언제 아름답게 보이는가? 언제 미적인간이라는 생각이 드는가? 이것이 화두입니다. 아름다움은 화려한 수사에 있지 않습니다. 삶 자체에서 묻어나오는 겸손, 배려 약자에대한 존중 높은 도덕성! 타협하고 대충 얹혀서 사는 모습과는 다릅니다. 아무리 나는 다르다라고 해봐야 소용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