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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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붉은 공간.]
땅과 하늘의 구분이 없는 그저 광기와 살의와 같은 위험한 기운으로 가득한 공간 한가운데였다. 거기에 제각각의 성질을 가진 여섯
쌍의 날개를 펄럭인 채 주위를 둘러보는 문준이었다.
(바, 밥에 독을...... 너 설마!)
소리가 들린 곳으로 문준은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하나의 영상과 같은 기억이 움직이고 있었다.
(잘가.)
(스, 승민이......)
[!!!!!!!]
기억을 본 문준은 얼굴을 실룩거린 채 굳어 있었다. 지금 문준이 본 것은 승민의 어린 시절의 기억인데 경악스럽게도 승민의 원래 부
모로 보이는 사람이 독에 중독되어 죽어가는 것을 승민은 웃으면서 작별인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문준이 있는 곳은 승민의 기억의 공간이었다. 그것도 승민의 성정을 반영하는 광란의 기억의 한가운데였다. 거기서 문준이
본 것은 승민이 처음으로 부모를 죽이는 기억이었다. 특이한 것은 승민의 원래 부모가 타카모토 류마와 장희연이 아닌 전혀 다른 사
람이었다는 거다.
[이제야 알겠군. 그 반역자 부모가 승민을 부추켜 살인을 유도한 거였군. 지금 내가 본 것은 승민의 첫 살인 경험이군. .........더 있을
것 같군.]
문준의 말대로 승민의 떠돌아다니는 기억을 하나씩 본 문준은 눈살을 일그러뜨려야 했다. 승민의 인간성이 담겨있는 기억은 하나도
없었다. 오직 살의와 광기, 그리고 천재성으로 비뚤어진 심성으로 가득한 사악한 기억 뿐이었다.
처음으로 부모를 죽인 기억부터 시작해서 심선시 부속 무학교에서 전수자와 직속 교수, 심지어 직속 선배와 후배를 비웃으면서 잔혹
하게 죽인 기억, 살려달라는 애원에도 불구하고 교도소 간수와 죄수를 산채로 해체해 죽이거나 찢어 죽인 기억, 각종 반역 사건에 전
적으로 나서서 핵심 인물을 포함한 주변 사람을 무참히 죽인 기억, 생사를 같이한 동료마저 의리를 저버리고 죽인 기억까지 온갖 악
랄하고도 잔인한 그리고 패륜적인 기억으로 가득했다.
[신 대한제국에 기록된 것말고 다른 것까지 있었군.]
신 대한제국에 저지른 것과 아르카디아, 트루베니아에서 저지른 것 말고 다른 세상에서 저지른 죄의 기억도 들어가 있었다. 모두 하
나같이 광기로 구성된 악마보다 더한 끔찍한 기억들이었다.
[왕국은 기본이요, 제국까지 멸망시킨 기억. ....... 정말 대단한걸? 등심 튀겨먹을 놈이 말했던 악마의 후예가 사실이었어.]
악마의 후예라고 주창한 국군전투대장이자 등심 튀겨먹을 놈을 별명으로 부르는 자신의 친구의 이야기를 떠올린 문준은 그것을 떠올
린 채 수긍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문준은 승민의 기억을 확인할 필요가 없었다. 신 대한제국에서 알아낸 것보다 더한 것을 기억을 통해 알아버린 문준에게 더
이상의 확인은 의미가 없었다. 그것들을 본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화아아아
검게 변한 문준의 눈을 시작으로 전신에 하얀 빛이 폭발하듯 번쩍였다. 그 빛은 검붉은 기억의 공간을 빛에 파묻어 버리기 시작했다.
“이, 이게 뭐야?”
이번에는 승민이 겪을 차례였다. 검붉은 기억의 공간에 있었던 문준처럼 승민 역시 기억의 공간에 있었는데 이번엔 심해의 바다보다
더한 깊이의 어둠의 공간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뭐지?”
그 중에 기억의 공간이 승민의 눈에 들어왔다. 기억의 공간이라는 것을 알아챈 것은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였다.
“뭐야! 이 기억들은? 문준은 인간이 아닌데도 어떻게 이런 기억들을 가지고 있는 것이야? 이건 말도 안돼!”
승민의 살인과 광기로 가득한 기억과는 정반대로 문준의 기억은 하나같이 사람을 구해준 기억과 그 사람들 속에서 즐기고 있는 기억
들 뿐이었다. 그 중에 마족과의 싸움에서 상대하기 힘든 신족과의 싸움까지 들어있는 기억도 있었다.
“이, 이럴 수가!”
신족과의 싸움이 있는 기억을 집중적으로 본 승민은 크게 놀라야 했다. 문준 혼자인데도 강하다고 알려진 신군들은 힘도 제대로 쓰지
못한 채 몰살을 당하는 광경을 보고 있었다. 그것도 문준이 화가 잔뜩 난 상태에서 말이다. 간혹 강한 신군 구성원 중 하나가 문준의
몸에 상해를 줬긴 했지만 실질적으로 심각한 상처를 주지 못했다. 빛, 신성력, 심지어 금기의 힘인 혼돈까지 썼는데도 일절 통하지 않
고 오히려 문준의 힘이 더 강해져 버렸다.
[네놈들이 내 몸을 해하는 힘은 내 소중한 것을 잃은 상처 앞에는 아무 것도 아니야!]
“뭐? 소중한 거?”
소중한 거란 말에 승민은 확인을 멈추고 기억을 다시 확인했다. 기억 속에 소중한 뭔가가 있을 거란 예상을 하며 서둘러 기억을 찾아
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한참 기억을 찾던 승민의 뒤를 향해 갑작스레 빛이 그를 덮쳤다.
“헉!”
화아아아
“이런다고 못 찾을 줄 알아? ...................................................................!!!!!!!”
빛이 승민을 덮쳤긴 했지만 승민은 그것을 찾아보고 말았다. 하지만 승민이 문준의 기억공간에 머물렀던 때는 그때뿐이었다.
후우우웅
서로 등을 내보이면서 검을 휘둘러 멈춘 채 서 있는 문준과 승민이었다. 그들을 뒤덮었던 빛은 사라졌고 멈춰있던 모든 존재들도 움
직이기 시작했다.
훙
스릉
철컥
먼저 움직인 존재는 눈을 감은 채 백명 3세를 검집에 집어넣고 단단히 감아둔 문준이었다. 행동 하나하나가 조용하면서도 침착하게
움직이는데 반해 승민은 봐선 안되는 것을 보고 말았는지 표정뿐만 아니라 몸까지 크게 경직되어 있었다.
그것을 증명하는지 승민이 먼저 말을 꺼냈다.
“너, 너! 우리의 건국신을!”
[덕분에 좋은 정보를 얻었다. 이자나미라고 알려진 망할 마녀신, 아조테논이 어디에 있는지를.]
“.......!”
[그리고, ........ 내가 기억하기 싫은 기억을 꺼내본 죄도 성립되었으니 말이다.]
문준이 말한 기억하기 싫은 기억은 바로 친구를 잃은 기억과 자신이 인간이 아닌데도 사랑하며 받아준 여인을 잃은 기억이었다. 특
히, 지난 번 레온을 도와준 이유를 대답한 것 중에 세 번이나 여인을 잃었다는 것은 바로 그것과 같은 거였다. 비록 인간이 아니거나
거기에 가까운 존재라 해도 바로 앞에 있는 문준을 사랑하겠다는 말을 한 채 죽어간 것이 문준이 가지고 있는 애인을 잃은 상실감. 바
로 이것이었다.
“크아아악!”
푸화아아
콰콰콰쾅
승민이 문준에 대해 말을 하려는 순간 외마디 비명을 지른 채 문준의 앞을 향해 거세게 나가 떨어져 버렸다.
“끄어어어, 커어억!”
승민과 문준의 검이 충돌하여 거대한 구덩이로 만들어버릴 정도의 위력은 아니었지만 대신 승민을 불구로 만들어버리기에는 충분한
위력이었다.
챠챠챵
승민의 일부인 천추검은 이제 승민의 손에서 벗어나 버렸다. 승민의 손은 뼈까지 없어질 정도로 흔적없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또한 승민으로서는 이제 마천사로서의 힘까지 과도하게 낭비하여 제대로 회복할 수조차 없게 되었다.
“미, 믿을 수 없어! 국군 전투대장도 맥을 못추는 검술이면서 마족도 신족도 없앨 수 있는 검술인데 어떻게?”
[이유는 단 하나다. 인간성을 버렸기 때문에 나한테 진 거다.]
“그런 쓰레기같은 말은 집어치워라! 모든 무공은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면서 인간을 초월하여 신이 되도록 만들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인간성을 만들거나 지켜라는 무공은 없어!”
[그건 네가 해석을 잘못한 것이다. 모든 무공이 인간을 확실하게 해하게 만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소중한 것을 지킬 수
있도록 항상 인간성을 유지하면서 배워 써라는 비급에 없는 뜻이 있거든.]
“하지만 넌 인간이 아니잖아?”
[그런 건 나한테 의미가 없어. 넌 내 기억을 봐서 잘 알겠지만 날 이 자리에 있게 만들어줬고 인정해준 먼저 가버린 내 친구와 애인만
은 기억해두는 것이 나에게 의미가 있다. 항상 그들을 생각하면서 하나씩 앞으로 나아가 어떠한 세상에서도 이겨낼 수 있는 새로운
나를 만들며 단련하는 그 자체만으로 나에게 의미가 있지.]
“미친 놈! 네가 무슨 인간이 되겠다고 별 짓을 다하려나본데 어떻게 해도 넌 인간이 아니야! 인간이 아니면 인간이 아닌 것 답게 사는
것이 도리야!”
[흥! 말 아주 잘 했다, 승민. 인간이 아닌 것 답게? 맞아. 그래야 하지.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의미가 있는 거 하나 더 말해 주지.]
쓰러져 있는 승민을 향해 문준은 성큼성큼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 사이, 문준의 창백한 양손바닥이 번들한 검은 빛으로 변해 있었고
검은 빛 사이에 검푸른 빛줄기가 분산하면서 흘러가고 있었다.
[난 오래도록 사람이 사는 세상에 살면서 다른 개성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며 친분을 쌓는 것이 서로 간에 생기는 좋은 의미면, 너 같
이 몸만 인간이지 인간 말종보다 더하거나 인간이 아닌 녀석을 세상에서 흔적도 없이 지워 없애버리는 것이 나만의 좋은 의미라는 거
다.]
“........!”
[해서 널 없애는 방법을 결정했다. 명세성검으로 처치하는 건 편안해서 안 돼! 그렇다고 명무도로 흠씬 두들겨 패서 고기즙으로 만드
는 것도 안 되고, ...그럼 이거다.]
스윽
“끄으, 뭐, 뭐하려는?”
문준이 손을 내밀었다. 걸레처럼 널브러진 승민의 육체가 저절로 떠올라 문준의 손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네놈의 영혼을 강제로 빼내 너 같은 놈이 두 번 다시 환생할 수 없도록 오직 내 명령 만으로 움직이는 그 자체로 네 영혼에 남은 자아
를 영원한 정신적 고통을 선사해주는 어둠의 인형으로 만들어 주겠다. 네놈의 신인 이자나미를 네 손으로 죽이도록 만들어 줄 것이니
어디 한 번 겪어 봐라!]
“!!!!!!!!”
문준의 말이 사실이면 승민은 자신을 강하게 해준 건국신을 언젠가 자신의 손으로 죽이게 만드는 꼴이 될 것이고 그 이후부터도 문준
의 명령에만 따르는 전투노예가 된 채 영원히 고통스러워 할 운명이 될 것이다.
“놔! 그 손 놔!”
목을 잡힌 승민은 어린애처럼 발버둥을 치지만 이제 검푸른 빛으로 일렁이는 오른손을 잡을 손이 없었다. 곧이어 사신이 왔다는 의미
의 으스스한 문준의 목소리가 승민의 뇌리에서 울려퍼졌다.
[자아, 인형이 될 시간이다.]
치아아아
“끄아아악!”
빛이 타들어갈 것 같은 소리와 함께 울려 퍼지는 승민의 비명소리를 짜증나는 표정을 짓고 있는 문준의 오른손에 승민의 영혼으로 보
이는 투명하면서도 하얀 모습의 승민의 얼굴이 잡힌 채 육체 밖으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모든 걸 죽이겠다는 보복어린 원한이 짙군. 스스로 악마의 후예가 아니랄까봐?]
“아아악! 내 영혼! ......내 놔!”
[시끄럽다. 넌 이미 인간으로서의 모든 자격을 잃었다.]
키아아아
“아아아아아악!”
승민의 영혼을 강제로 빼내기가 쉽지 않은 문준이었다. 명혼강탈(冥魂强奪), 인간부터 시작해서 실존하지 않을 거라며 거론된 신, 마
의 영혼 등을 강제로 빼내 손에 잡을 수 있도록 하는 능력이다. 강한 의지력이나 목표에 대한 의식이 확고하면 빼내기가 쉽지 않은 것
이지만 문준은 승민이 가지고 있는 목표는 모든 살아움직이는 존재들을 죽여 없애겠다는 악질적인 목표였기 때문에 승민의 영혼을
빼내는 힘을 더 강하게 했다.
영혼이 반 이상 문준의 힘에 의해 빠져나오다가 승민의 저력도 만만치 않은지 다시 되돌아오는 게 반복되었다.
“아아악! 안 돼!”
[흐으읍!]
파아아악
마침내 승민의 영혼이 육체로부터 떨어져 나갔다. 묵직한 저음의 기합을 낸 채 영혼을 빼낸 문준의 손에 승민의 몸과 같은 크기의 영
혼이 하얀 빛을 내고 있었다.
쿠우우우
이번엔 승민의 영혼을 잡은 문준의 오른손에 검푸른 빛과 섞인 검은 어둠이 뿜어져 나왔다. 순식간에 어둠이 영혼 안까지 빠르게 퍼
져나가 영혼의 외형과 동화되어 색이 변한 곳에서 검푸른 빛이 타들어가듯 번쩍이고 있었다.
구현(具顯)의 손길, 사물이건 생물이건 그 수준에 관계없이 원하는 모습대로 새로이 만들어내는 능력이다. 강제성이 강력해 그걸 가
한 자의 생각에 맞게 그 존재를 새롭게 만들어버리기 때문에 가한 자가 직접 원래대로 돌려놓지 않는 한 영원히 그런 상태를 유지해
야 한다.
푸화아아
검게 변한 승민의 영혼은 이제 검은 어둠에 폭풍처럼 휩싸여서는 몇 분 후, 문준의 손에 매끈하게 다듬어진 작은 석상이 들려 있었다.
영혼이 구현의 손길에 의해 완벽하게 변한 검은 어둠의 인형이었다. 광란의 학살자인 고승민의 영혼이 결국 문준의 인형이 된 것이
다.
[악마의 후예다운 모습이군.]
승민의 인형은 사람의 형상으로 된 게 아니었다. 정확히 마천사가 된 승민의 모습 그대로 인형화된 것이다.
화아아아
이번엔 문준의 모습이 검은 어둠이 폭풍처럼 휘몰아쳐서는 그 자리에 바뀌었다. 여섯 쌍의 날개와 백발, 창백한 피부, 번들거리는 암
백색의 옷, 검은 눈은 온데간데 없고 변하기 전의 모습인 인간의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승민의 인형을 본 문준은 무정한 눈을 하면서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인간은 인간이다라고 생각하지마.”
승민의 인형을 향해 말한 것이지만 계속해서 문준의 혼잣말과 같은 말이 들렸다.
“인간답게 생각하고, 인간답게 행동하고, 인간답게 살아야 인간이면서 인간성을 가진 인간이야말로 진짜 인간이건만.”
비록 문준 자신은 인간이 아니지만 인간의 삶 속에 오래 살아 거의 인간과 같은 생활을 하게 된 문준은 하늘을 향해 고개를 올리면서
눈을 지그시 감아 이렇게 있게 해준 자신의 절친한 친구의 이름을 불렀다.
‘영식아, 넌 어떻게 생각하냐?’
어렸을 때부터 대학생이 되어 자신이 인간이 아니란 정체를 알고서도 항상 신경을 써서 가르쳐 줬던 친구의 이름을 되뇌었다. 아무
것도 몰랐다가 친구가 위험에 처해서야 깨닫고 그 이후부터 서로를 신경쓰는 관계가 되었었지만.
‘이렇게 해 봐야 돌아오는 건 침묵 뿐이니.’
오랜 세월이 지났고 이미 문준이 아는 친구는 하나를 뺀 나머지 모두 세월에 의해 저 세상 사람이 되었다. 또한 자신을 받아줬던 여인
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거기에 주눅들지 않았다.
‘잘 지켜보고 있어. 너희들 덕택에 이 자리에 있게 한 은혜를 사람을 구하는 것으로 갚아 줄게.’
그러면서 오른손에 쥐고 있는 승민의 인형만은 싸늘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너 같은 놈은 빼고.”
쿠우우우
“엉? .........!”
별안간 동쪽에서 천둥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인데 소리가 난 곳으로 고개를 돌린 문준은 그 자리에 한숨
을 쉬어야 했다. 멀리서 보이는데 그것은 무섭게 쏟아져오는 바닷물이었다.
문준과 승민의 싸움에서 가라앉았던 아르카디아 대륙 일부가 벽 역할을 했는데 벽이 바닷물의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문준이 있는 곳
을 향해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
스스스스
휘몰아치는 번개소리와 함께 몰려오는 바닷물을 무시하고 모래처럼 부서져가는 승민의 껍데기같은 육체를 바라보았다. 이미 영혼을
잃어 재처럼 흔적없이 사라져가고 있었다.
“볼 것 없군. 벌써 이 손에 있는데.”
푸스스스
색까지 탈색되어 새하얀 재로 변한 승민의 육체는 문준이 손을 놓자마자 땅으로 떨어져 흔적도 없이 사라져갔다.
쿠콰콰콰
“아트모스, 거기서 기다려라.”
순간 문준은 마법수레가 있는 곳으로 가려는데 눈에 띈 게 있었다. 주인을 잃고 땅에 박힌 천추검이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다. 문준은
생각하지 않고 손을 내밀어 환자검을 이용하여 천추검을 거두었다.
척
“흐음. 일단 거길 가야겠군.”
슈팟
쿠콰콰콰
콰아아아
문준이 없는 자리에는 바람에 의해 흩어져가는 승민의 육체의 재 밖에 안 남았고 곧이어 바닷물이 뒤이어 쏟아져오고 있었다.
쿠아아아
승민과 문준의 싸움이 벌어졌던 곳은 바닷물에 의해 묻혀 흔적조차 남지 않게 되었다. 누군가가 파악해내지 않는 한 이곳은 그저 새
롭게 생긴 바다라고 알려질 터였다.
슈팟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군.”
탁탁
드륵
탁탁
트르르륵
“자아, 고승민. 이제 죄수 인형들과 동행할 시간이다.”
승민과 문준의 싸움터로부터 멀리 떨어진 작은 평원 한가운데에 서랍 손잡이가 사방에 있는 마법수레에 문준은 손잡이를 두드려 조
합하고 있었다. 승민의 인형을 특별한 보관함에 집어넣기 위해 그러고 있었다.
네 개의 손잡이를 동시에 열어두자 네 개의 서랍이 열리는 게 아닌 같은 자리에 있는 모든 서랍들이 동시에 열리면서 그 안에 검은 금
속질의 상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상자에 손잡이가 있으면서 손잡이 옆에 열쇠구멍이 있는데 구멍 주위에 번호가 새겨져 있었다.
틱
삑
삐익
호주머니를 뒤져 열쇠를 꺼내 끼워두고는 번호에 맞게 이리저리 돌린 문준은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것을 무시하고 열쇠를 뽑아 손잡
이를 돌려 상자를 열었다.
그런데,
끼아아악
아아아악
크우아아
(다 죽여라!)
(거슬리는 놈은 죽이면 그만이야.)
상자를 연 순간 바람소리만 가득한 평원에 무시무시한 유령의 함성이 별안간 울려 퍼지고 있었다. 소리만큼은 그야말로 지옥 한가운
데를 연상할 법했다.
그렇다. 문준이 연 그 상자는 승민을 포함한 그 외의 악인과 인간에 적대적인 신족과 마족, 심지어 신계의 주신과 마계의 마신까지 어
둠의 인형화되어 보관할 수 있는 보관함인 것이다. 도저히 용서 자체가 안되고 환생해도 그 죄를 되풀이할 그런 존재만 영원히 보관
할 수 있게 만든 특별한 보관함인 것이다.
악령 합창곡이라도 부르는 평원 한가운데의 분위기를 무시한 문준은 승민의 인형을 집어넣으면서 말했다.
“신입이다. 열심히 지껄여 봐라.”
툭
텁
찰칵
(......)
끔찍하게 울려퍼지던 악령들의 함성이 보관함을 닫는 순간 조용해져 버렸다. 다시 조용하고도 시원한 바람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트르륵
퉁
“표시는 해둬야겠군. 어어, 그리고.......”
탁
탁
드르륵
보관함을 집어넣고 다시 손잡이를 두드린 문준은 이번엔 승민의 정보가 기록된 문서를 꺼냈다. 승민을 두 번째로 만났을 때 봤던 문
제의 검은 서류봉투를 꺼내려는 것이다. 또한 수레 위에 놓여진 천추검에 꽂을 임시 검집도 꺼내야 했다.
스윽
“이걸로 중요한 거 하나는 해결했고, 남은 건 아조테논을 잡을 차례로군.”
승민의 정보가 기록된 서류를 훝어본 문준은 손을 들어 문서를 쓸어내렸다. 승민의 얼굴 뿐만 아니라 특성과 죄목, 무장, 전투기술 등
모든 게 기록된 문서에 문준의 손길이 닿자 그 문서 위에 다른 글자가 크고 검게 씌여 있었다.
<의뢰 완수!>
사실 문준은 신 대한 제국을 떠나기 전 비밀 정보성인 흑주작국에게 고승민을 처치해달라는 의뢰를 받은 상태에서 오랫동안 잊혀져
왔다가 처음으로 만났을 때 새록새록 기억이 떠올라 이런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오백 년 넘게 몰랐다가 이제야 해결하다니. 교수이면서도 징벌의 어둠인 나도 바보 다 되었군.’
한심과 푸념 등이 뒤섞인 마음으로 말한 문준은 절로 한숨이 나왔다. 의뢰는 빠른 시간안에 하면 할수록 의뢰를 받은 사람이 유리해
지는 것이 문준의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늦게 의뢰를 완수한 것은 그 동안 승민이 이런 죄를 계속 쌓게 내버려 뒀다는 것과 많은
희생이 일어나게 방치를 했다는 뜻도 포함되었다.
‘엎질러진 물인 이상, 어쩔 수 없군.’
승민을 어둠의 인형으로 처치했긴 했지만 문준도 알다시피 그 피해는 엄청났다. 십여 개의 왕국과 제국이 승민의 손에 멸망당했고 수
천만을 넘는 사람의 목숨과 그 외의 생명이 희생당했으며 그들을 상징하는 존재 또한 재로 흩어져 버렸던 것이다.
그래도 문준은 그러한 피해에 가만히 있어야 하고 그런 피해를 만드는 자를 서둘러 처치하는 것이 문준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었다.
스르릉
‘.......’
써엉
척
“천추검이라......”
찰칵
써엉
붕
부웅
“거 재밌는 검이군.”
쓰릉
철컥
잠시 천추검을 다뤄본 문준이었다. 검신을 길게 만드는 자유식 잠금 장치로 되어있는 천추검을 보고는 다시 짧게 만들어 임시 검집에
거두고 서랍에 집어넣었다. 언젠가 쓸 일이 있을 것 같아 잠시 그 안에 넣어두었다.
“어이, 거지 깜상!”
“......! 왔군.”
문준의 뒤에 소리없이 누군가가 다가왔다. 놀리는 투로 말한 누군가였지만 문준은 누군지 알고 있는 눈이었다. 뒤돌아서며 그 누군가
를 본 문준은 코웃음까지 치면서 맞대답했다.
“등심튀겨먹을 놈.”
“으휴, 넌 언제까지 나를 별명으로 부를 거야?”
약간 거칠면서 티격태격할 것 같은 말투였다가 평상시의 말투로 바뀐 누군가였다. 윤기가 흐르는 하얀 백발에 은색 바탕의 하얀 빛줄
기 무늬가 움직이는 신발, 문준과 비슷한 강인하면서도 수려한 외모의 인물이 서 있었다.
바로 문준이 알고 있는 별명의 소유자인 등심튀겨먹을 놈이었다. 동시에 대한민국을 강대국으로 만들어 준 국군전투대장이기도 했
다.
“네가 여기 웬일이지?”
“웬일이긴! 이거 주려고 온 거지.”
착
양날에 육각모의 날끝을 가진 기다란 직선검이었다. 일반적인 한손형 장검과 비슷한 검이었다.
“너어.”
실망의 의미가 담긴 낮은 목소리로 대답한 문준이지만 그는 사용법에 대해 간단하게 말했다.
“공력양에 따라 검강은 기본이고 무기형태에 크기까지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어. 거기다 증폭능력이 있어서 강한 적을 상대할 때 오
랜 시간을 버틸 수 있도록 크세티아 원석으로 만들어 낸 거야. ......여태 만든 창 중에서 유일하게 처음이면서 특급에 해당되는 창이
야.”
“....흐음, 천추검보다 더 재밌을 것 같군. 그럼 뭐, 시연할 필요 없겠군. 등심튀겨먹을 놈이 말한다면.”
“야, 나는!”
“나쁜 뜻으로 말한 게 아니야. 어쨌든 고맙다. 그........!”
“.........!”
순간 문준과 그는 뭔가를 감지했는지 눈을 가늘게 뜨며 그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특히 문준은 한쪽 눈을 손으로 가린 채 느끼는데 표
정이 영 좋지 않았다.
“어이, 깜상. 여기 마계가 시끄러운 것 같은데?”
“당장 가야겠군.”
“아! 맞다! 너, 고승민 그놈. 처치했어?”
“그걸 꼭 말로 해야 알아?”
“하하하, 괜히 물었군. 너 바쁠 것 같으니 나 먼저 갈게.”
그의 말이 끝나는 순간 그의 몸에 눈부신 하얀 빛이 번쩍이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떠오른 게 있는지 그는 문준에게 걱정하는 투
로 말했다.
“아아! 네 마누라들이 걱정하고 있으니까 빨리 끝내고 돌아가는 게 좋을 거야.”
“알고 있어. 여기에 오래 있으니까 마누라들이 그립더라고.”
슈팟
강렬한 섬광과 함께 그는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문준은 거기에 관심을 끊고 다급히 정리하며 마법수레를 잡고 바로 변신까지
하였다.
[준비하도록 해라. 너도 나서야 할 것 같으니까.]
쿠우우우
문준을 포함한 마법수레 주위에 검은 어둠의 기운이 짙게 뿜어져 나와 그들을 감싸기 시작했다. 날개까지 크게 펼쳐져 있어 멀리 갈
의도인 것 같았다.
지금 문준이 하려는 것은 바로 차원이동이었다. 그것도 목적지가 데이몬이 머물렀던 마계로 말이다. 그곳에 문준이 처치해야 할 또다
른 자를 찾았기 때문이다. ‘구현의 손길’, ‘명혼강탈’과 같은 능력인 ‘존재의 눈’을 통한 차원을 넘나드는 무제한 관측 능력으로 말이다.
동시에 지금 문준이 하려는 행동도 마찬가지로.
[거기에 있었군. 기다려라. 아조테논!]
자아아아
파앗
검은 폭발과 같은 자그마한 검은 기운의 분산. 그 자리에는 문준을 포함한 마법수레도 흔적없이 없어졌고 조용한 정적만이 그곳을 지
킬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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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최악의 초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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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 아니잖아!?
첫댓글 아조테논에게 원한이 있는거 같군요. 문준은. 근데 데이몬 마계로 돌아가면 난리 나겠네요. ㄷㄷㄷ 그리고 문준의 친구는 인간인가요? 인간이면서 인간의 경지를 뛰어넘은 인간임? 왠지 강해 보임.
잘봤어요.
이걸로 끝인가요. 아쉽군요. 다음 작품을 기대하겠습니다. 수고하셨어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