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묘수
남정언
과연 지킴이답다. 허방한 웃음을 날리는 동물의 몸매가 예사롭지 않다. 코는 크지만 콧구멍이 없고 뭉툭한 입을 벌린 입술엔 붉은 안료가 남아있다. 작은 귀에 비해 몸통은 거대한 하마를 닮았고 머리 위에는 올록볼록한 쇠뿔이 꽂혀있다. 옆구리엔 불꽃을 연상하는 날개가 금방이라도 하늘로 날아갈 듯 기운이 넘친다. 등에는 돌출모양 갈퀴가 달려 있어 옹골차게 균형 잡힌 몸집인데 꼬리까지 포함해도 50센티미터가 되지 않는 크기다. 사방으로 보니 강단 있게 우뚝 서 있다. 무려 천년이 넘도록 왕릉을 수호해 온 석수는 돌로 조각한 작고 귀여운 상상의 동물이다. 피카츄도 아니고 포켓몬의 형태도 아니면서 무덤을 지키고 악귀를 쫓으며 천오백 년 세월을 견딘 진묘수이다.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것을 취하면서 안락한 곳에 사는 일은 드물다. 하물며 이승이 아닌 저승 세계의 상징인 석물은 더욱 그러하다. 벽사 의미를 지니고 지하공간을 지키는 용도로 만들어진 석수는 뒷다리 하나가 부러진 상태로 무덤 속에 봉인되어 무덤을 지키는 임무를 완수해야 하는 운명이다.
국립공주박물관에 전시된 무령왕릉전을 찾았다. 백제 수도인 공주는 역사 문화 유적지로 송산리 고분군을 비롯하여 일제에 의해 허다하게 도굴당했다. 유일하게 도굴 피해를 보지 않은 곳이 있는데 1971년 7월 6호분 배수로 공사 중 벽돌벽이 나와 파고 보니 바로 제25대 무령왕릉이었다. 진묘수는 왕릉을 완벽한 상태로 지켰던 늠름한 무덤 지킴이다. 죽은 사람의 영혼을 저승의 신선 세계로 인도하는 큰 역할에 비해 몸집은 엄청 작았다. 무엇에 놀란 듯 눈을 부릅뜬 표정과 둥글둥글한 몸체는 군더더기가 없는 옛날 옛적의 디자인이다.
진묘수는 마을과 공동 구역을 지켜주는 수호신을 닮았다. 누구라도 무덤에 손을 댄다면 꽉 깨물어 버릴 것 같은 사나움을 몸 안에 숨기고 있다. 오래 켜켜이 쌓인 먼지와 거미줄같이 얽힌 풀더미에서 묵묵히 백제왕을 지키며 살아왔다. 자신을 믿지 못하고 오른쪽 뒷다리 하나를 일부러 부러뜨린 어리석은 인간을 위해 세 개의 다리로 왕릉을 수호해 온 진묘수는 서양의 유니콘 전설과는 다른 동양의 새로운 캐릭터가 아니었을까.
무덤에 진묘수를 넣는 풍속은 중국에서 시작하였다. 돌과 흙 나무로 만들거나 물소 돼지의 다양한 모습을 나타냈던 중국 장례 풍습이 백제에 전해졌다고 한다. 무령왕릉 진묘수만큼 귀여우면서 동시에 위엄을 갖춘 매력적인 진묘수는 없다. 대체로 중국 진묘수는 사자 얼굴에 거목, 큰 코에 입을 벌리고 이빨이 날카롭고 머리엔 쌍뿔이 우람하고 등에는 갈기가 강렬하다. 날개 모양의 긴 털을 가지고 네모난 받침대에 앉아 기백이 웅장하고 형상이 사나운 편이다. 모든 진묘수는 뒷다리 하나가 부러져 있는데 도망가지 말고 무덤을 지키라는 의미란다. 그러나 62세로 사망한 백제 무령왕의 무덤을 발굴했을 때 진묘수는 웃으며 사람들을 맞이하였다. 왕과 왕비의 비석을 나란히 내어놓은 진묘수, 오수전, 은팔찌와 금장신구, 금송으로 만든 관이 있는 벽돌무덤을 속속 안내한다. 봉인했던 무덤의 시간이 열리자 진묘수는 자신의 임무가 끝이 났음을 알고 홀가분하게 여기지는 않았을까.
지킴이는 어떤 곳을 지키고 있는 사람이자 집이나 마을, 공동 구역을 지켜주는 신이다. 무령왕릉을 지킨 진묘수가 어찌 무덤에만 있겠는가. 진묘수 같은 이가 우리 주변에도 있었다.
2023년 설날, TV를 통해 자기 의지대로 지킴이 역할을 해 온 어른 한 분을 알게 되었다. 진주에서 한약방을 운영한 ‘어른 김장하’이다. 그의 이름 앞에는 ‘위인’도 아니고 ‘인물’ ‘영웅’도 아닌 ‘어른’이라는 제목이 붙은 다큐였다. 화려한 언변도 없고 언론매체에 나서는 일조차 거부하는 그저 수수한 할아버지였다. 허름한 한약방을 운영하며 평생 번 돈을 기부하고 교육 장학사업을 지속해 온 점잖은 팔순의 어른은 자신이 설립한 고등학교를 국가에 헌납하였다. 100년 전부터 모든 백성이 평등하기를 바라는 ‘형평운동’ 기념사업을 이어왔으며 지역문화 발전과 지역문인을 후원하는 일에 앞장서서 아낌없이 나눔을 실천한 어른이었다.
일생을 자신이 행하는 일에 전면 나서지 않고 조용히 봉투를 건네는 어른. 명예나 권력에 관심 없는 어른. 말 한마디도 아끼는 어른. 사람이 사람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인재로 키워내신 어른. 경남 최초 여성운동의 대부. 이 세상은 평범한 사람들이 지탱하고 있는 거라며 누구나 아는 흔한 진리를 심심하게 말해도 전혀 평범하지 않은 특별한 어른이었다. 방송에서 그분 말씀은 몇 마디 밖에 나오지 않았는데 어두운 밤하늘에 떠 있는 별과 달 같은 절대적 수호자 역할을 하신 어른으로 인식되었다. 그가 낸 기부금은 개인의 삶에 기름진 거름이 되어 환산할 수 없는 수백억의 가치를 만들어내었고 그의 도움을 받은 인재는 다시 지역의 일꾼을 만들어 내었으니 외유내강의 표본이 되는 이 시대의 진묘수가 틀림없었다.
지킴이의 모습은 다양하고 그 역할도 쉽지는 않다. 지하 세계의 진묘수와 현실 세계를 지켜준 어른이 있지만 나 역시 사이버공간에서 지킴이를 한 적이 있다. 며칠 전 문인단체 카페지기 2년 임기를 마치며 2,000명이 넘는 회원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 비록 비대면 카페이지만 코로나 시대를 사는 불안을 넘어 회원의 안부를 묻고, 수상을 축하하며 꽃다발을 보내는 기쁨을 누렸다. 성실맨 열정맨 온돌맨을 비롯하여 출근 도장 찍는 단골의 참여와 훈훈한 회원의 관심 덕분에 무사히 지킴이의 약속을 지켜낼 수 있었다.
카페지기로서 730일 결석 없이 회원 수를 늘리며 등단작가의 자긍심을 높이는 데 한몫하고 싶었다. 매일 회원 수필을 올리고, 매주 연재수필과 추천 명수필, 인문학 산책에 좋은 글을 소개하며, 매달 100편 이상 수필독서의 즐거움을 주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였다. 카페에 입장한 분들이 행복하기를 소망하였다. 특히 음란물 유포 가입자가 발붙이지 못하는 청정카페가 되어 보람은 있었지만 졸지에 사망한 회원과 표절작가로 인해 눈물 흘린 적도 있었다. 지킴이라고 해서 모든 것을 다 잘할 수는 없었다. 생업에 몸과 마음이 바빴고 삶의 본능이 강하여 자발적 인간관계를 차단하는 아픔도 있었다. 다만 문학의 품위를 지키며 수필의 가치를 찾아가는 온화한 수필 지킴이가 되고 싶었을 뿐이었다.
생각해보니 건강한 사회를 지키는 진묘수가 그리운 시대에 살고 있지는 않은가. 고대 백제의 무령왕릉과 왕릉원을 다시 살펴본다. 안내판 사진에 새겨진 진묘수가 의젓하다. 상상의 동물이지만 뭉텅한 그의 웃음은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다. 천오백 년의 역사를 품었다가 고이 지상에 내어놓은 진묘수의 가치는 변하지 않을 터이다. 수십 년 동안 지역을 돌본 어르신과 사이버공간의 작은 일부를 지킨 나 같은 카페지기도 언제 어디서나 필요한 존재이다.
과거와 현재를 이어온 역사는 특별한 권력을 가진 누군가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보통 평범한 사람이 만들어낸 기록의 축적물이다. 시대가 바뀌었지만 고대의 진묘수가 부활하여 현실에선 친근한 진묘수 어른이 많아지고 가상공간을 지키는 눈 밝은 진묘수들이 민들레 꽃씨처럼 멀리 날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은 유독 나만 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