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베토벤은 피아노를 가장 친밀한 악기로 생각했으며, 청년 시절까지는 천재적 재능을 가진 피아니스트로 높은 평가를 받았기 때문에 당연히 피아노를 위한 작품을 많이 썼다. 그 중에는 자신의 정신적 삶을 기록한 것이라 할 수 있는 피아노 소나타가 대부분이지만, 피아노 협주곡 또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전반에 걸쳐 피아노 협주곡은 빈, 파리, 런던 등의 대도시에서는 작곡가가 자신의 존재를 인식시킬 수 있는 장르이면서도 경제적으로 필요한 장르였기에 많은 작곡가에 의해 작곡되었다. 모차르트가 빈에 머루를 때의 협주곡들이 그 전형적인 예이며, 베토벤도 예외는 아니었다. 당시 작곡가들의 협주곡은 바로크 시대의 협주곡 양식에서 벗어나 소나타 형식을 확립하였으며, 소위 고전파 협주곡의 틀 안에서 작곡되었다.
특히 제1악장은 관현악으로 시작하여 그대로 관현악 제시부를 마치고, 이어서 피아노가 가세하여 독주 제시부로 들어간다. 그리고 재현부와 코다 사이에는 피아노 독주에 의한 카덴차가 주어진다. 제시부가 관현악 제시부와 독주 제시부로 구성되는 것은 제시부 끝에 반복기호가 있는 소나타를 답습한 흔적이다. 이런 구성은 베토벤에 이르기까지 유지되었으며 여러 작곡가들은 이런 틀안에서 자신의 음악을 펼치기 위해 고심한다. 그리고 제시부의 피아노 도입부, 관현악 제시부와 독주 제시부의 균형으로 신선한 느낌을 주는데 성공한다. 또한 카덴차의 경우, 본래의 독주자가 즉흥적으로 연주하도록 맡겨졌으나 차츰 작곡가 자신이 그것을 작곡하는 경향도 나타나게 된다. 이런 전통을 깨뜨린 사람이 베토벤이었다. 그러나 그도 초기의 제1번이나 제2번 협주곡에서부터 갑자기 혁신적인 서법을 보였던 것은 아니었다. 카덴차의 경우, 제1번이나 제2번 협주곡에 베토벤이 쓴 것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독주자에게 꼭 그것을 연주하도록 했던 것은 아니다.
카덴차가 작곡가가 작곡하는 것은 의도하고자 하는 악장의 음악적 흐름이나 서법적인 통일성이 독주자의 즉흥연주로 깨지는 것에 대한 우려에서 비릇되었다. 베토벤은 협주곡 제5번에 이르러서 "연주자가 즉흥적으로 연주하는 카덴차는 필요없다" 고 말한다. 이런 결단은 당시의 시대 상황에서는 힘든 결정이었지만 그는 서서히 그 길을 개척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베토벤은 협주곡 제5번을 직접 연주할 의지를 갖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제4번까지는 스스로 초연하였지만 제5번은 귀가 잘 들리지 않았기 때문에 공개 연주는 할 수 없었다) 필요 이상으로 카덴차를 걱정했던 것 같다.
제1악장을 관현악 제시부로 시작하는 전통을 깨뜨린 것도 베토벤이었다. 협주곡 제4번에서는 전통적 형식에서 일보 전진하였으며 제5번에서는 대담하게 시작하는 서법을 구사한다. 그렇지만 시작 부분에서 피아노가 끼어들기는 기존 협주곡과 마찬가지로 관현악 위주로 연주되는 제시부가 펼쳐지고, 이후 독주 제시부가 이어진다. 소위 소나타 형식에서의 제시부의 반복이라는 관습을 베토벤은 아직 깨뜨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은 낭만파의 피아노 협주곡에서 크게 변화한다.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은 후세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것은 단순히 카덴차의 즉흥 연주를 폐지하고 피아노를 시작 부분부터 도입한 것에 그치지 않는다. 예를 들면 협주곡 제4번 이후에 두드러진 관현악의 충실한 사용은 브람스를 비릇한 많은 작곡가들에 의해 '교향적 협주곡' 을 낳게 했다. 또한 협주곡 제5번에서 보이는 거장적인 피아노 연주 양식은 낭만파 시대에 이르러 한층 더 진척된다.
베토벤 이전 시대의 피아노 협주곡은 독주자(대부분 작곡가 자신)의 기교를 과시하고 독주자를 두드러지게 하는 동시에 화려한 분위기를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한 과제였다. 이 때문에 장조 곡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사상적인 깊이나 내용적인 충실함은 부차적인 것으로 여기는 경향을 띠고 있었다. 이런 경향에 반기를 든 작곡가는 모차르트였다. 그는 두 곡의 단조 협주곡을 섰으며, 심각한 정서를 표출하였으을 뿐만 아니라 느린 악장에서 깊은 내면성을 드러내어, 전체적으로 단순히 외면적인 효과에 치중하지 않는 작품을 썼다. 음악에서의 내면적인 표현을 중시한 베토벤은 물론 이런 모차르트의 의도를 무시하지 않았다. 또, 베토벤은 협주곡을 독주자의 화려한 연주력이라는 기존 요소와 함께 순수음악적인 표현이라는 점에서도 높은 가치를 갖도록 만들었다. 이런 베토벤의 협주곡은 후배 작곡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독주자의 존재를 과시한다는 면에서 베토벤 협주곡에서의 피아노는 모차르트 협주곡 이상으로 자유롭게 움직여 관현악과 적극적으로 얽혀나간다. 관현악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교향곡적이다. 이것은 피아노라는 악기가 베토벤 시대에 기능적으로 현저하게 개량된 것과 관계가 깊다. 특히 1805년 이후 피아노는 음량이 증대되고 기교적으로도 다량한 기술 발휘가 가능하게 되었다. 베토벤은 이런 피아노의 새로운 장점을 피아노 협주곡에서도 살리는 것을 잊지 않았다. 때문에 그만큼 피아노를 능숙하게 다루려면 마찬가지로 관현악도 충실하게 처리해야 했다.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은 보통 제1번에서 제5번까지 5곡이 있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본래 피아노 협주곡으로 의도된, 즉 오리지널로 완성된 피아노 협주곡은 확실히 5곡이다. 그러나 그 외에도 다른 곡에서 편곡한 피아노 협주곡이 있으며, 미완성 피아노 협주곡도 있다.
베토벤은 피아노 협주곡 제5번이 나온 후, 1815년 피아노 협주곡 제6번을 작곡하기 시작했다. 베토벤은 60쪽에 달하는 총보를 남겼는데 결국 완성을 하지 못했다. 베토벤이 왜 미완성으로 남겼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하지 않다. 협주곡 제5번에서 협주곡이 나가야 할 방향을 이미 모두 제시하였기 때문인 것 같다.
피아노 협주곡 장르는 베토벤에게 있어서 피아노 소나타 만큼 의욕을 불러 일으킨 분야는 아니었다. 그러나 음악계에 자신의 존재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필요한 장르였다. 그리고 베토벤이 공개 무대에서의 피아노 연주를 중단하면서(1814년 4월 11일 피아노 3중주곡<대공> 초연이 마지막 연주였다고 한다) 피아노 협주곡은 더 이상 작곡되지 않았다. 이것도 피아노 협주곡에 대한 베토벤의 생각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인다.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은 협주곡이라는 장르를 이야기 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