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세계」2005년 2월호 발표작 【여행수필 / 남도 기행 - 거제도편】
【여행수필 / 남도 기행 - 거제도편】 / 도이 김재권
밀양에서 마산, 마산에서 통영을 거쳐 드디어 거제도 입도(入島)!
우리나라 섬 중에서 제주도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섬 거제도에 닿았다. 동부, 남부, 중부, 서부로 구분하고 있다.
신거제대교를 건너자 야자수 형상을 한 네온 조형물이 반갑게 맞이한다. 묘하게도 8월 8일 밤 8시다.
‘아, 아. 나는 왜 이렇게 ‘8’ 자가 좋더냐! 내 생일이 정월 8일, 아내 순애 생일이 정월 28일, 우리가 처음 만난 날이 10월 18일. 아, 아. 좋다! 좋다! 나는 ‘8’ 자가 좋다!’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의 바다 야경이 참으로 이국적이어 멀리 떠나 왔음을 실감하게 한다. 종점인 장승포에서 하차한다.
‘이제는 저녁을 먹자! 저, 살아 꿈틀대는 바닷장어를 구워 먹자! 장어야, 장어야, 나오너라!’
龜何龜何 거북아 거북아
首其現也 머리를 내어놓아라.
若不現也 만약 내놓지 않으면
燔灼而喫也 구워서 먹으리.
-「구지가(龜旨歌)」
長何長何 장어야 장어야
首其現也 머리를 내어놓아라.
若不現也 만약 내놓지 않으면
燔灼而喫也 구워서 먹으리.
-「장지가(長旨歌)」
장어 양념구이 정식으로 식사를 하며, 손님들이 떠드는 경상도 방언에 귀 기울여 메모를 시작한다. ‘습니꺼?’, ‘안 까지노?’, ‘아이가?’, ‘축하한데이!’, ‘돌아뿐다마!’, ‘안 쓰놨나?’, ‘니 어데고?’, ‘그제?’ ‘장어 안 묵나?’, ‘어데 가노?’, ‘이리 온나, 요리 온나.’, ‘와 인자 연락하노?’, ‘됐다! 그마해라!’
거제도 해수 온천 찜질방에서 깊은 명상에 잠겨 본다. 인연은 언제 어디서든 만나지고 헤어지는 구름과 같은가. 처음엔 유별한 색깔인 줄 알고 혹(惑)하지만, 지나고 보면 매양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새로운 것에 미혹(迷惑)해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새로운 것을 기웃거리다 소중한 먼저 것을 잃어버린다면, 아, 아 그래도 기어이 새로운 것이 좋다고 뜬 구름을 쫓으려 하겠는가. 연리지(連理枝)의 깊은 의미도 모르는 무지(無知)함, 또 다른 악연을 찾아 나서는 어리석음, 인연의 소중함도 모르면서 무슨 시를 쓰겠다고 이리저리 기웃대는지...... 피와 땀의 삶을 유배시킨 무능을 철저하게 위장하고는 끊임없이 숙주(宿主)를 만들어 기생(寄生)하려는 위선, 물밑작업으로 미끼를 던지고는 끊임없이 먹이가 될 부나비를 찾으려 헤매는 아, 아 저 가여운 인생... 신중하지 못했던 지난겨울의 악몽(惡夢)을 미련없이 지워버린다.
1998년 처음 남도 기행을 기획했을 때엔, 일상의 삶 속에서 기행이라는 직접적 체험을 통하여 인(人)과 물(物), 즉 사람의 정리(情理)와 자연의 섭리(燮理)를 배우고 익히며 그곳에서 조금이라도 내기(內氣)를 얻으려함이었다. 그러나 해가 거듭하면 할수록 깨우치는 게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내 안에 있는 많은 번뇌(煩惱)와 괴리(乖離) -욕(慾), 정(情), 집(執), 망(望)- 등을 하나 둘씩 버리고 오는 ‘나’를 발견하게 된 것이었다. 기행을 통하여 ‘실아(實我)’를 찾는 일, 한여름 뙤약볕을 온몸으로 받으며 혼자 묵묵히 걸어다니는 일은 어느새 내 삶의 일부분이 되어있었다. 얻으려 다니는 것이 아니라 버리려 다니는 것이다. 아마 나는 죽는 날까지 이 버림의 기행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 예감한다.
"처사께서 억지 비우신다 하여 비워지는 것이 아니지요. 또한, 처사께서 허(虛)를 만들고 싶다 하여 일부러 만들어지는 것 또한 아니지요. 그냥 다 절로 그리 되는 것이지요.”
-1999년 8월 남도기행 중, 행각승 지산(紙山)스님과의 대화 중에서-
거제도! 거제도의 모든 길은 ‘고현’으로 통한다. 거제시 최대의 번화가이자 거제시청이 있는 곳. 시내버스요금은 800원, 거제시 전 지역이 당일 요금 800원이다. 그러나 버스 시간을 기다리는 것은 상당한 인내가 필요하다. 하늘이 많이 흐리다. 장승포항에서 거제문화예술회관을 둘러보고 학동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거제도 동부에서 남부로 이어지는 해안도로... 옥포만, 멀리 ‘골리앗’이라 불리는 대우조선해양의 크레인이 그 위용을 과시하고 있다. 옥림아파트를 지난다. ‘옥림APT... 그래, 19년 전 거기서 이틀 밤을 묵었지.’ 그러나 이제는 영겁이어도 연(緣)이 닿고 싶지 않은 인연이 되어 버렸다. 옛 기억을 지우며 해변이 울창한 해안도로를 바라본다. 바닷바람과 바다 냄새, 유람선과 고깃배들, 그리고 수평선의 바다 정경들... 천주교 마산교구 지세포성당의 적별돌 건축 양식이 온유하다.
산 너머 등대가 있다는 와현 해수욕장을 지난다. 고운 모래, 조용한 바닷가. 구조라 해수욕장을 지난다. 예전에 큰딸 보령이를 보트에 앉히고 노를 저어 배를 타던 바다, 구조라. 버스는 거제도 남부 끝 해금강을 향해 계속 내려간다. 구조라→ 망향→ 망치→ 양화→ 학동→ 동백림과 팔색조 도래지→ 남부면 함목 해수욕장→ 도장포 신선대→ 해금강. 바다를 끼고 있는 곳곳의 크고 작은 많은 펜션의 모습이 아름답다. ‘아, 아 펜션! 펜션! 언제든 나는 너를 잊지 않으리!’
해안도로의 가로수는 동백과 목백일홍이 전부라 하여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천연기념물 제233호로 지정된 학동 동백림과 팔색조 도래지는 해금강으로 가는 국도 변에 있다. 숲의 길이는 4㎞나 이어져 있는데, 이 숲 속에 세계적 희귀조인 팔색조가 대만, 일본, 인도, 보르네오 등지에서 월동하다가, 매년 6월 중순에 찾아와 아늑한 산세 안에 보금자리를 마련한다. 남쪽의 극락조와 함께 새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조(美鳥)다. 빨강, 노랑, 파랑, 자주, 흰색, 회색, 보라, 검정 등의 무지개 색깔에 검은색을 더 가지고 있다 하여 팔색조라 한다. 그러나 나는 보지를 못하였다. 학동만 해변에 자생하는 동백은 11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꽃이 피며, 꽃은 10여 일 만에 낙화한다.
해금강에 도착하니 선착장 가는 안내판 옆에 ‘거제 노래비(거제의 노래)’가 우뚝 서 있다.
거제 노래비(거제의 노래)
무원 김기호 선생 작사/ 금수현 선생 작곡
섬은 섬을 돌아 연연 칠백 리
굽이굽이 스며 배인 충무공의 그 자취
반역의 무리에서 지켜온 강터
에야디야 우리 거제 영광의 고장
구천 삼거리 물 따라 골도 깊어
계룡산 기슭에 폭포도 장관인데
갈곶이 해금강은 고을의 절승
에야디야 우리거제 금수의 고장
동백꽃 그늘 여지러진 바위 끝에
미역이랑 까시리랑 캐는 아기 꿈을랑
두둥실 갈매기의 등에다 싣고
에야디야 우리 거제 평화의 고장
해금강은 거제시 남부면 갈곶리 갈개마을의 남쪽 약 500m 해상에 위치한 섬으로, 동백나무와 해송나무가 자생하는 아름다운 바위섬이다. 해금강 3호 유람선에 올랐다.
눈앞에 바로 보이는 작은 무인도가 해금강인데 거기에는 기도하는 소녀바위가 있고, 사자바위가 있고, 천년적송이라 불리는 소나무가 돌장승미륵바위에 있다. 신랑바위(촛대바위), 곰바위(두꺼비바위), 사랑바위(사모바위)가 있고, 섬 가운데 있는 계곡을 지나면 십자동굴이 있다. 우제봉이 보인다. 해금강 선상에서 둘러보는 남쪽바다의 절경. 아, 아 여기는 한려수도 청정해역이다. 멀리 멸치잡이 배 두 척이 지나간다. 멸치잡이 배는 멸치가공선과 멸치 잡는 어선이 항상 같이 다닌단다. 제목이 무엇인지 가수 또한 누구인지 알 수 없으나 선상에는 “천상에서 그대를 만나면......”이란 애절한 노래가 가슴을 후린다.
여름바다의 천국 ‘외도’에 닿았다. 외도해상농원, 섬에 가득한 꽃향기에 취하고 해금강의 절경과 남해의 푸른 바다에 취한다는 외도이다. 드라마, CF촬영지로 많이 이용되고 있는 곳인데, KBS 드라마 〈겨울연가〉 마지막회가 이곳 외도해상농원에서 촬영(2002.3.18)되었단다. 섬 전체가 식물원이다. 관람권은 1인 5,000원. 소 떼를 몰고 휴전선을 건넌 사람이나, 섬을 통째로 매입하여(약 4만4천 평의 개인 소유) 개발을 한 사람이나 참으로 대단한 사람들이다. 내가 일찍이 20대에 이런 곳에 왔다면 ‘아, 이런 데서 살고 싶다.’ 했을 텐데, ‘아, 아 이거 관리하려면 엄청나겠구나!’ 싶은 생각이 먼저 드니, 인간의 사고(思考)는 나이가 들면서 참으로 현실적이 된다 싶다.
먼저, 야자과의 코코스 야자(브라질)가 눈앞에 펼쳐진다. 선인장 동산은 신선의 손바닥 같은 선인장이 군무를 이루고 있는데, 노랑꽃이 피고는 그 열매를 맺고 있는 선인장도 있다. 비너스 가든으로 이어지는 오솔길 사이에 제작 연도가 BC 3세기경인 사모트라케의 니케, 얼굴 없는 천사 등의 복제품이 있다. 비너스 가든이란 곳은 말 그대로 정원인데 다윗, 비너스의 탄생을 비롯한 기타 조각 복제품 등이 있는 곳으로, 작품성과는 거리가 먼 완전한 관광용이다. 그러나 푸른 바다와 흰색의 조각품이 아주 잘 어울린다. 화훼 단지에는 용설란과 유카, 진분홍빛 유도화나무가 있는데, 파인애플이 농익어 그 향이 하냥 싱그럽다. 제주도 참꽃나무, 은환엽 유카리가 인상적이다. 야자과의 당종료나무 숲길을 지나니 ‘대죽로’라는 대나무 숲길로 이어지고, 대숲의 터널을 지나니 전망대가 있다. 전망대 망원경으로 해금강, 홍도(갈매기섬) 안경섬은 물론 날씨 좋은 날에는 대마도까지 보인단다.
워싱턴야자와 종려나무와 대숲이 잘 어우러져 또 다른 도원(桃源)인 듯싶다. 용설란이 신선하다. 용설란을 보니 제주도 신혼여행 길에 본 허니문하우스의 용설란이 생각난다. 싱그러운 기억이다. 명상의 언덕 아래에는 사각정 위에 십자가가 있는 아담한 건물이 있는데, 바다를 바라보며 기도하는 곳인 듯 찬송가와 성경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조각 공원에는 천진난만한 어린이들의 모습을 조각한 ‘동심 시리즈’ 작품이 여럿 있다. 편백나무 숲으로 만든 천국의 계단을 지나니 외도에서 자생하는 두룹나무과의 송악이 있고, 종려나무에 넝쿨을 이루고 있는 만개한 능소화는 참으로 환상적이다. 작은 연못 수련꽃에서 20년 전의 순애를 떠올려본다. 청초한 수련의 지순한 꽃향기까지 온전히 내게 쏟아 부은 아, 아 지고지순한 내 사람......
섬을 돌아 나오기까지 1시간 반 동안에 못내 아쉬운 것이 있었으니, 끝내 청마 유치환 선생의 시 한 편을 스쳐보지도 못한 것이었다. 식물 키우기와 너무 상업적인 것에만 온통 신경을 쓰는 것 같아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이유야 어떻든 이 넓은 외도 어디에도, 거제도가 고향인 청마 선생의 흔적 하나 없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학동 몽돌 해수욕장은 거제시 동부면 학동리에 소재한 해수욕장이다. 지형이 학이 비상하는 모습과 비슷하여 그 이름이 유래하였다고 한다. 검은빛이 몽글몽글한 몽돌의 해변, 낮에는 몽돌에 파도가 구르는 소리가 나고, 밤에는 파도에 몽돌이 구르는 소리가 나는......
동부면 구천리 노자산 자연휴양림을 지나 선자산 기슭에 자리 잡은 거제 자연 예술랜드에 왔다. 이번 남도 기행엔 식물 구경을 원 없이 하는 듯싶다. 수필가이며 시조 시인, 거제도 능포 출생인 능곡 이성보 선생이 설립한 인간(人間)과 자연(自然)이 만난 곳이다. 입장권은 1인 4,000원이다. 수석과 식물이 잘 어우러진 작품들이 있다.
제1전시실에서는 자연이 빚은 갖가지 형상석과 석, 목부작의 조화, 남근석과 여근석인 성석(性石)의 음양조화 ‘너는 내꺼.’, ‘고개 숙인 남자’ 등의 작품과 ‘분기탱천(憤氣撐天)’은 글지이들 특유의 에로 특성을 잘 엿볼 수 있다. 제2전시실은 돌과 풀이 들려주는 자연 이야기로
분재의 제목도 시조 시인답다. 윤회(輪廻)의 강(江), 사무사(思無邪), 천애(天涯), 담쟁이 사랑, 진달래의 꿈, 해고목의 재생(再生), 사후천년(死后天年), 미망(迷妄)의 세월... 분경(盆景)이란 것이 있다. 분(盆) 위의 절경(絶景). 자연의 아름다운 경관을 ‘대형 수반’이라는 제한된 공간 위에 연출한 작품들이 마치 한 폭의 풍경화를 보는 듯하다. 제3전시실은 풍란 석, 목부작(風蘭 石, 木附作)이 어우러진 자연의 향연. 수석 또는 고목에 풍란을 비롯한 착생식물을 부착하여 만든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석림지실(石林之室)에는 길쭉한 조각조각의 돌들을 하나하나 이어 붙여 만든 작품이 ‘돌의 숲’을 이루고 있다. 목공예전시실은 고사목을 다듬어 최대한 자연미를 살려 만든 추상적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민속관은 옥의 티다! 차라리 없는 것이 더 나을 뻔했다. 그러나 사람이 하는 일인데 한 가지 흠 없는 것이 어디 있으랴, 전문(專門)으로만 향하는 것이 더 나을 듯싶다. 통나무 휴게실에서 잠시 쉬었다 간다. 5,000평의 땅, ‘글지이는 가난하다.’라는 일반적이자 보편적 통념을 여지없이 깨트린 능곡 선생, 본디 여유가 있으신 분이었는지는 잘은 모르겠으나, 적어도 선생의 후손들은 여유롭게 살겠구나 싶다. 본인이 좋아하는 그 모든 취향을 사업적으로 이끌어내는 것 또한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거제도 신현읍 고현리 포로수용소 유적공원 관람한다. 6. 25 전쟁 참전 16개국의 국기와 유엔기, 태극기가 분수 광장 앞에서 펄럭인다. 6. 25 전쟁의 참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포로수용소 유적관은 포로들과 포로수용소의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고, 야외에는 포로들이 사용하던 막사와 수용소, 병원, 식당 등을 재현해 놓았다. 당시의 잔존 건물 일부가 아직도 곳곳에 남아 있다. 이곳 거제도 포로수용소는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에 의한 포로들을 수용하기 위하여 1951년 2월부터 고현, 수월지구를 중심으로 설치되었다. 당시에는 여군과 중공군, 소련군 포로까지 모두 17만8천 명의 포로가 수용되었다고 한다. 포로수용, 포로의 소요와 폭동, 반공 포로의 투쟁, 포로의 송환으로 이어진 역사의 현장이다. 국내최초, 세계최대의 단일 디오라마관이라는 포로수용소 '디오라마관(Diorama of POW CAMP)’이 인상적이다. 포로수용소의 배치 상황, 생활상, 폭동 현장이 생생하게 재현되어 있다.
청마 유치환 선생의 생가 가는 길, 청포마을 고갯마루에서 바라본 거제 바다, 요트장이 있는 바다 위에는 마치 십여 마리의 노랑깃나비가 바다 위를 나는 듯 수상 요트가 바다에서 너울댄다. 바다와 붙어있는 사등초등학교 울타리는 온통 방풍림으로 둘러 있다. 앞에 작은 갯바위 서너 개가 있고, 그 앞에는 너른 바다가 펼쳐져 아이들의 푸른 꿈을 키우고 있다. 아사→학산(학산리 지석묘)→내평→술역→호곡→녹산→하둔. 호곡마을 왼편에는 바다가 한눈에 펼쳐져 가슴이 탁 트인다. 성포 구거제대교 쪽에서 청마 생가까지는 12km, 폐왕성은 14km. 방하에서 하차한다. 아, 아 지칠 줄 모르게 다니더니 드디어 다리에 무리가 온 듯 걸음걸이가 많이 무겁다. 기어이 폐왕성은 오르지 못하고, 그저 방산교를 건너며 올려다보았을 뿐... 폐왕성은 둔덕면 거림리의 뒷산 우두봉(牛頭峰)의 중허리에 있는 산성(山城)이다. 이 성은 1170년(고려 제18대 의종 24년) 9월에 상장군 정중부(上將軍 鄭仲夫)등 무신(武臣)들이 경인란을 일으켜 왕이 거제도로 쫓겨 와서 3년간 살았던 산성이라 한다.
청마생가는 들깨꽃이 하얗게 피어 보랏빛 달개비꽃과 어우러져 상큼하다. 길 숲에 핀 달맞이꽃을 보니 문뜩 사반세기 전의 일이 생각난다. 강릉으로 가는 야간 열차, 동해 바다... 달맞이꽃만 보면 그녀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다. 아, 아 그녀의 청순함... 완도에서 느껴보던 이 논 냄새, 한가로운 시골길을 거닐며 청마 유치환 선생의 생가를 찾으니, 마을 어르신 몇 분이 마을 수호목(守護木)인 듯한 정자나무 그늘에서 쉬고 계신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드렸더니, “이 땡볕에 걸어오능교, 예 앉아 쉬었다 가이소마.” “예, 감사합니다, 어르신.” “어디서 왔능교?” “서울서 왔습니다.”
덕분에 마을 어르신들로부터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생가는 4년 전쯤 새로 지었는데, 원래 집 기둥은 그대로 두고 복원해야 하는 건데, 기둥까지 철거하고 엉성하게 개조하여 비가 새고 보기도 안 좋다. 옛날 집보다 작게 지었고 벌레가 생기고 하여 이웃에도 영 안 좋다. 옛것을 그대로 보존하려면 차라리 갈대 짚으로 하든가, 아니면 시대의 흐름에 따라 아예 기와로 하면 더 좋았을 것인데 아무튼 잘못되었다.” 마을 어르신 ‘제형덕’ 옹의 말씀이다. 자상하신 말씀과 음색이 꼭 내 아버님의 모습을 뵙는 듯싶어 한참을 앉아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생가 터는 예전의 둔덕면사무소 자리였단다. 또한, 이 오래된 나무는 포구나무인데, 그만 너무 오래되어 나무속이 썩어 최근에 속을 파내고 보수공사를 했다고 말씀하셨다.
청마 유치환 선생은 거제시 둔덕면 방하리 507-5번지에서 출생. 1931년『문예월간』제2호에 시 「정적(靜寂)」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단하였다. 1967년 부산 남여자상업고등학교 교장 재임시 부산 좌천동에서 교통사고로 생을 마쳤다. 거제도 둔덕골은 8대가 살아온 고향이다. 돌담엔 담쟁이가 둘러 있고, 대문은 나무 울타리로 되어 있다. ‘ㄱ’자형 초가집. 방으로 향하는 벽에는 선생의 시「출생기」가 표구 되어 있고, 텃밭엔 깻잎 향이 가득하고, 가지와 토마토가 주렁주렁 열려 있다. 우물 곁에는 장광이 있고 뜰에는 봉숭아, 맨드라미꽃이 피어 있다. 주황색 석류꽃이 활짝 피어 있는데, 어찌나 현란하던지 잔돌을 주어다 꽃잎을 으깨고 꽃즙을 내어 주홍글씨를 써 본다. ‘過도이, 現도이, 來도이(과거의 도이, 현재의 도이, 미래의 도이), 시인 청마 유치환, 시조 시인 정운 이영도, 시인 도이 김재권, ... ... ...
돌아 나오는 길 오른편 비닐하우스에서 음악 소리가 들렸다.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아마도 포도 나무에 음악(찬송가)을 들려주는 것 같다. 재미있는 풍경이다. 찬송가 소리를 들으며 자라 영적으로 익은 포도는 또 어떤 맛일까?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말씀으로 알알이 싱그러우리라. 그럼에도 저 포도 세상에서조차 시기와 질투와 미움으로 알알이 번뇌하겠지? 믿음이 있어도 인간이기에 어찌할 수 없는 벽을 만들어 놓듯이. 모다 100년도 살지 못하고 헤어지고 말 부질없음인 것을. 늘 외고 다니는 법구경의 말씀을 새겨 본다.
‘사랑하는 사람을 가지지 말라. 미운 사람도 가지지 말라. 사랑하는 사람은 못 만나 괴롭고, 미운 사람은 만나서 괴롭다. 그러므로 사랑을 일부러 만들지 말라. 사랑은 미움의 근본이 되느니, 사랑도 미움도 없는 사람은 모든 구속과 걱정이 없다.’
아, 아 도이야, 이제 그만 집착(執着)의 바랑을 놓아라!
청마 생가에서 오는 길에 기성관(岐城館)에 들러 본다. 거제면 동상리에 소재하고 있다. 조선조 거제현에는 왜구를 방어하기 위하여 옥포, 조라, 가배, 영등, 장목, 지세포, 율포에 7진을 두었다. 조선 성종 원년(1470)에 거제현은 거제부로 승격되고 문무를 통괄하게 되었으며, 당시 고현성에 거제 7진의 통제영으로 기성관을 건립하였다. 임진왜란 중, 고현성이 함락되고 1663년 현령 이동고가 부임하여 거제현을 거제면에 옮기면서 기성관도 그때 옮겨졌다. 조선 시대 거제현의 부속 건물 객사(영빈관)로 사용하던 곳으로, 경남 4대 누각(촉석루, 세병관, 영남루, 기성관) 중의 하나이다. 거제면사무소 바로 옆은 거제초등학교, 그 옆이 기성관이다. 기성관 주변에 피어있는 무궁화꽃의 색이 유난히 짙어 잠시 마음을 두었다. 아무래도 수술한 다리에 무리가 오는 듯하여 옥산금성은 오르지 아니하였다. 장평 오거리에서 하차, 거제 어촌 민속 전시관을 둘러보았다.
거제도 동부, 남부, 중부, 서부 기행을 모두 마치었다. 아침 7시부터 밤 9시까지의 여정, 내일은 동부 끝으로 가자! 고현의 한 모텔에 들었는데 어찌나 넓고 쾌적하고 좋은지, 바닥은 온통 나무로 되어 있다. 그것도 기찻길 침목과 같은 생나무여서 밞고 다니는 촉감도 아주 좋다! 에어컨 성능도 Gut! Gut! 샤워 시설 완벽하고, 넓은 침대에, 창가엔 등나무로 만들어진 티 테이블이 있고 의자까지 아늑하다. 작은 냉장고에는 캔 음료수와 피로 회복 음료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가히 호텔급이다. 혼자 자기 너무 아깝다. 북적대는 현지 민박 값의 반값으로 이런 쾌적함을 누릴 수 있다니. 잠자리 선택을 아주 잘한 듯싶었다. 아내 순애에게서 휴대폰 문자 메시지가 왔다.
‘지금은 너무 먼 곳에 계시네요. 오늘은 너무 더웠어요. 내일 뵈요. 김치찌개 맛있게 해 놓을게요. 푹 주무시고 나머지 여정도 많은 것들 가슴에 가득 채워 오세요.’
오랜만에 숙면을 취하고 이른 아침을 맞이하니 다시 힘이 솟는 듯했다. 아, 아 좋다! 좋다!
첫차를 타고 들어간 거제도 동부 도로의 끝점 유호마을. 유호는 전형적인 어촌이다. 마을 바로 앞까지 바다가 있어 고기잡이 배가 포구에 가득 진을 치고 있다. 이 동부 끝쪽은 남부 쪽과 달리 평범한 어촌 풍경을 고스란히 그리고 있다. 해금강 관광 코스로 이어져 북적대는 남부 쪽보다 훨씬 한가롭고 여유롭다. 거제시 장목면 농소리. 궁농에서 임호, 간곡, 농소 앞 바닷가까지 거제에서 가장 긴 몽돌로 된 해변이 이곳에 있다. 이름하여 거제 농소 몽돌 해수욕장. 길이는 약 2km정도로 해변에는 새알같이 둥글고 작은 몽돌이 늘어져 있다. 말 그대로 해변이 참으로 길고 아름답다. 몽돌밭 위에 텐트를 친 청춘 남녀가 싱그럽다. 원피스 차림의 여인이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해변을 거닌다. 아, 아 해변의 여인아......
‘물 위에 떠 있는 황혼의 종이배... 말없이 거니는 해변의 여인아... 바람에 휘날리는 머리카락 사이로... 황혼빛에 물들은 여인의 눈동자... 조용히 들려오는 조개들의 옛이야기... 말없이 바라보는 해변의 여인아......’
장목진객사(長木鎭客舍)는 장목면 장목리 강서마을에 있는 건물로 거제 7진 중의 하나였던 장목진 관아(官衙)의 부속 건물이다. 이 장목진객사의 자리는 삼도수군통제영이 설치되기 전에 진해를 마주 보는 거제도의 북단에 위치한 군사적 요충지로, 진해항 일대를 방어하고 대한 해협을 바라보기 위한 전략지였다. 특히 임진란 당시 이 충무공과 이영남 장군이 전략을 숙의하였던 장소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객사는 정조 9년(1785)별장 어해 장군 이진국이 중건하고, 순조 2년(1802)에 다시 중수되었는데, 건물 형식은 조선 후기의 것이라 볼 수
있다.
히치하이크(hitchhike)로 다시 고현으로 나왔다. 손 한번 흔들자 선뜻 태워 주신 고현 시내 아파트에 사신다는 노부부께 감사 드린다. 곧바로 통영으로 해서 다시 마산에 도착하니 서울행 기차를 한 시간 반이나 남겨두고 있다. 애초 계획엔 거제도 장승포항에서 배를 타고 동백섬 지심도까지 가 보고자 했는데, 그곳은 일부러 가지 않았다. 조용하고 평온하다는 동백섬 지심도는 왠지 아내 순애랑 같이 거닐고 싶은 곳으로 남겨 두고 싶었다.
동백섬 지심도, 이른 새벽 동박새와 직박구리의 노랫소리가 들려오면 잠에서 깨어 그녀를 바라볼 수 있는 곳, 쪽빛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활주로 잔디밭에서 두 손 꼭 잡고 일출을 바라볼 수 있는 곳, 몽돌밭을 거닐며 고동이나 따개비, 굴, 홍합들의 바다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곳, 오솔길을 따라 아름드리 동백나무가 터널을 이루고 있는 자연 휴양림 속으로의 산책......
아, 아 가능한 머지않은 시기에 그녀와 함께 동행하리라! 언제가 좋을까? 그래, 4월이면 좋겠다. 동백꽃이 한창 만발해 있을 때 그녀의 머리에 붉은 동백꽃을 꽃아 주리라!
‘지심도에 가면 머리에 동백꽃을 꽂으세요.(Jisimdo - Be sure to wear some Dongbaek flowers in SoonAi's hair.)’
마산역 광장에서 뜨거운 커피 한잔을 마신다. 뜨거운 남자! 아, 아 비둘기와 매미 소리와 분수와 도이가 하나가 된다. 가자, 서울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끝〉
-월간「문학세계」2005년 2월호 발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