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일 수요일 맑음, 비 한 차례
2013년도는 가고 이제 2014년도다. 먼 이국땅 멕시코에서 새해를 맞이한다. 이제 시작하는 나그네는 연말이나 연초의 의미가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냥 시간의 연속일 뿐이다. 아침을 준다고 해서 식당에 가보니 빵 몇 개와 잼, 바나나 몇 송이다. 빵 한 조각을 먹고 숙소로 돌아왔다. 아침 8시에 숙소 앞에서 투어 버스가 데리러 오기로 했다. 체크아웃을 하고 가방을 메고 숙소 앞 공터에서 기다린다. 20분 정도 늦어서 셔틀이 왔다. 버스에는 몇 사람이 타고 있다. 버스는 다른 숙소도 골목골목을 찾아가며 신청한 손님을 태웠다. 재래시장 공터를 지날 때는 어젯밤 신년 축하 폭죽놀이로 불타버린 시장 임시 천막이 모두 불타버려 광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주인은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우리가 탄 셔틀은 손님을 가득 태우고 호텔 존 10km 지점 근처에 있는 Mexican outlet 이라는 현대식 상가 몰에 도착했다. 모두 내렸다. 단층에 예쁜 가게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디자인과 색상이 선명하고 깔끔해 보이는 예쁜 상가들이다. 주로 식당 기념품 가게, 옷 가게 등이다. 투어 상품을 신청한 모든 사람들이 여기모여 장소별로 나뉘어져 밖에 세워진 대형 버스를 올라탄다. 우리는 치첸이차로 간다. 9시에 출발이다. 이제는 얼굴이 검게 그을린 통통한 가이드가 우리를 안내한다.
버스는 출발해서 메리다 방향 고속도로에 접어들더니 또 차를 세운다. 카르멘이나 툴룸에서 모집된 투어 객들이 또 올라탄다. 대형버스가 가득 찼다. 제일 앞에 앉아서 가니 시야가 좋다. 가이드가 어느 나라냐고 묻는다. 한국이라고 하니 하나, 둘, 셋 까지 센다. 한국 사람들이 많은가 보다. 스페인어로 숫자가 궁금해서 책을 보니 우노, 도스..........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나와 차는 잠시 멈춘다. 잠시 휴식이란다. Autopista Merida-Cancun 이라고 써 있다. 버스에서는 과자와 음료수 종류를 버스 짐칸에서 꺼내 팔고 있다. 기사가 판다. 재미있는 버스다.
버스는 출발한다. 가이드가 오늘 일정을 설명하는데 저녁 9시 30분경에 칸쿤에 도착한다는 소리가 진하게 들린다. 저녁 9시 버스를 타야하는데 걱정이다. 여행사에서는 저녁 8시 경에 끝날 것이라고 해서 여유를 두고 9시 표를 끊은 것이다. 일단 투어를 진행하며 생각해 보기로 했다. 먼저 멈춘 곳은 용설란 밭이다. 이곳 멕시코의 술인 데킬라의 원료로 쓰인다. 차는 이제 대형 기념품 가게에 있는 식당으로 들어섰다. 거의 11시가 다 되어 식사를 하고 간단다. 먼저 내려서 기념품 가게 직원의 설명과 가이드이 설명을 들었다. 검은 돌로 만들어진 조각품과 은세공, 은세공은 자기 생일에 해당하는 날을 마야어로 만들어준다. 모두 유료다. 거기에 풀과 연기로 치료하는 우리말로 하면 주술의료행위도 있다. 자연치료주술사란다. 커다란 매장에는 깔끔하게 만들어진 민속품들이 종류별로 많이 전시되어있다. 접시, T셔츠, 가면, 조각품, 그림 등 다양한데 멕시코 민속풍이다. 섬세하고 화려하며 고급스럽다.
연못(수영장) 건너편에 있는 식당으로 옮겨 자리를 잡았다. 뷔페식인데 급식 같다. 날아가는 밥과 고기와 야채를 갖고 와서 먹는다. 배가고프니 맛있다. 음료수는 주문을 받는데 주문하면 유료다. 값도 비싸다. 음료수 값이 식사 값 정도다. 음료수를 팔아 식사 값을 대신하는 것 같다. 대충 밥을 먹고 가게에 들어가 또 기념품을 구경한다. 풍속화가 맘에 든다. 대리석을 이용해서 색상별로 만들어 놓은 가면이 많다. 비취 가면이란다. 태양과 달을 형상화한 작품들도 많고 나무 가면들은 참 특이하다. 정원의 야자나무는 잘 가꾸어 놓았고, 풀장도 있고, 주차장도 넓다. 차가 출발하기를 기다리며 그늘에 서 있는데 작은 도마뱀 한 마리가 기어온다. 도망가지도 않고 겁도 없이 접근해온다. 손에 잡아 팔뚝에 얹어놓으니 가만히 있다. 꼬리를 잡아도 끊고 도망가지 않는다. 꼬리를 잡으면 끊고 도망간다는 이야기도 열외가 있나보다.
드디어 차에 올라탄다. 오후 1시가 다 되어 가는데 언제 치첸이트사에 가는가? 짜증이 난다. 오후 2시가되어 치첸이트사에 도착했다. 어디에서 왔는지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유명하긴 유명한가보다. 매표소에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있다. 개인적으로 표를 끊는데도 길게 줄을 서야한다. 우리는 가이드가 표를 끊어 와서 나눠준다. 일단 영어와 스페인어로 나우어 입장을 한다고 설명을 들었다. 우리는 가이드에게 얘기해서 이곳만 구경하기로하고 단체에서 떨어져 나와 독자적으로 버스를 타고 칸쿤으로 가기로 했다. 서둘러 버스 매표소에 가서 칸쿤가는 버스표를 예약했다. 직접 가는 4시, ADO 버스표가 매진되어 3시 30분에 출발하는 오리엔테 버스표를 끊었다.
드디어 치첸이트사로 들어간다. 입구에는 식당, 슈퍼, 선물가게 등, 편의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다. 아내와 서둘러 치첸이트사로 들어갔다. 중앙아메리카의 밀림에서 번영한 마야 문명, 기원전 3세기경부터 이미 이 거대한 피라밋 군은 하나 둘씩 이 땅에 존재하기 시작했다. 치첸이트사는 그 중에서도 뛰어나게 아름다운 유적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치첸이트사란 마야어로 우물가의 집이라는 의미다. 유카탄 최대의 세노테(성스러운 샘)가 있어서 그렇게 불렸다고 한다. 메리다 에서 정글 속으로 난 국도를 동쪽으로 120km 정도 가면 나타난다. 칸쿤 에서는 200km 정도 거리다. 옛날 국도를 사이에 두고 북쪽이 13세기 토르테가 족의 침입 후 신 치첸, 남쪽이 그 이전에 세워진 구 치첸의 피라미드로 나누어진다.
유적을 향해 간다. 정글 길을 따라 잠간 걸어가니 잔디가 깔린 넓은 초원에 등장하면서 멋진, 유별나게 눈길을 끄는 카스티요 성이 나타난다. 여기는 이트사 족이 세운 도시 유적으로 3세기부터 세워지기 시작해 7~8세기에 쇠퇴했다가 10세기 전후로 재건되었다. 11세기 이후는 마야문명의 종교중심지로 번영하였다. 13세기 초에 이트사 족은 아즈텍-토르티가 족의 연합군에 패하였으나, 이후 또 한 번 번영시대를 맞아 많은 건물이 세워졌다. 그러다가 15세기 무렵에 갑자기 폐허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래서 흔히 마야 유적지로 알려져 있지만 치첸이트사는 엄밀히 이야기하면 마야와 토르테가 문명이 공존하는 유적지다.
6㎢에 달하는 유적지에 들어서면 드넓은 들판에 우둑 서 있는 피라미드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스페인 군대에 의해 카스티요 성으로 불린 이 피라미드는 마야인의 완벽한 우주관을 엿볼 수 있는 유적이다. 바닥의 한 변이 55.3m 에 달하는 정사각형 형태로 이루어진 이 성의 높이는 24m 에 달한다. 이집트 피라미드에 비해 규모면에서는 훨씬 작지만 전체적인 짜임새와 외관은 훨씬 세련된 건축물이다. 이 유적지가 발굴된 당시에는 정확히 무슨 용도로 쓰이던 건축물인지 알 지 못했다. 뒷날 여러 학자들이 이곳에 새겨진 상형문자와 마야인들 에게 전해진 이야기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밝혀진 것은 마야력을 형상화한 건축물이란다. 똑같은 정사각형으로 이루어진 카스티요 성의 4면은 모두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한 면 당 계단은 91개이며 계단 위에는 정 사각가형 건물이 세워져 있다. 그리고 정상에는 재규어(표범의 일종)석상이 안치되어 있단다. 사면의 계단과 정상에 세워진 건물의 수를 합하면 365라는 숫자가 나오는데 이것으로 마야인들도 현재 인류가 사용하고 있는 태양력을 사용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카스티요 성의 기단은 아홉 개로, 이를 2등분해 1년을 18개월로 나눈 것으로 보인다. 또한 각 기단에는 움푹 파인 면이 52개씩 있는데, 이는 마야력의 한 주기로 마야인들은 52년마다 세상이 바뀐다고 생각했다.
먼저 온 관광객들에게 세노떼를 물으니 알려준다. 정글 사이로 이어진 길을 따라 북쪽으로 300m 정도 걸어간다. 길가에 있는 노점상들이 불어대는 장난감에서는 맹수 재규어의 울음소리가 나서 우리를 깜짝 깜짝 놀라게 한다. 정말 소름끼치는 소리다. 걸어가기를 다하니 거대한 샘인 세노떼가 나온다. 샘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크고, 연못 같은 느낌이다. 직경 60m, 당의 수면까지 22m, 물의 깊이는 12m 정도란다. 마야인들은 이곳에 비의 신 차크가 산다고 믿었다. 그래서 마야인들은 한 해 동안 비를 많이 내려달라고 젊은 처녀를 차크에게 재물로 바쳤다고 한다. 요즘 같은 과학문명시대에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당시에는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행사였다. 일종의 기우제인 의식을 마치고 나면 젊은 처녀를 세노떼에 던졌다고 한다. 이 기우제 풍습은 미국의 외교관이자 역사학자인 톰슨이 주도하는 발굴 작업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1911년 초 톰슨이 이끄는 발굴단은 보물을 찾기 위해 80m 깊이의 세노떼 바닥을 조사했다. 황금으로 만든 귀금속을 비롯해서 옥, 접시, 항아리 같은 보물뿐 아니라 42구의 뼈 유골도 함께 발견했다. 기우제에 제물로 바쳐진 젊은 처녀의 유골과 함께 성인 남녀의 유골 21구도 함께 발견했다. 젊은 처녀의 유골은 하나같이 밧줄로 꽁꽁 묶여 있었지만, 성인 남녀의 시신에는 그러한 흔적이 없었다. 이로 볼 때 처녀의 부모들이 딸을 구하러 세노떼로 뛰어들었다가 함께 죽었거나, 딸을 잃은 슬픔에 자살을 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치첸이사 유적은 마야인들이 뛰어난 과학적 지식을 가졌던 한편 얼마나 섬뜩한 의식을 치르던 문명이 있는지를 보여주는 유적이다. 이 유적에는 아직도 풀지 못 한 흥미로운 유적들이 많단다. 세노떼의 샘은 물이 별로 깨끗해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서둘러 돌아섰다. 여기서 발견된 유적들은 메리다에 있는 유카탄 고고학 박물관에 있단다. 실제로 우리가 방문하고 싶어 했던 세노떼는 이곳이 아니다. 여기서 몇 km를 더 가야 있단다. 시간이 없어 방문하지 못함이 아쉬웠다. 거기에는 샘으로 내려가 수영도 할 수 있다는데...........
다시 돌아 나온다. 길가에는 기념품 노점상들이 줄지어 있다. 색상, 디자인이 화려하다. 재규어 소리에 놀라면서 구경하는 것도 즐겁다. 비가 내린다. 등에 맨 배낭에서 우산을 꺼내 펼쳤다. 들판에 다시 나와 동쪽으로 간다. 그리스 신전을 연상시키는 화랑과 1000여개에 이르는 기둥이 나열되어있는 ‘전사의 신전’이다. 마야인들이 얼마나 전사들을 숭배했는지 알 수 있는 장소이다. 현재는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되어 내부를 살펴 볼 수 없지만 신전 안에는 전사들의 여러 모습이 부조로 조각해 있다고 한다. 전사의 신전이 다른 나라와 지역에 조성된 유적지와 뚜렷하게 구분되는 점은 기둥과 재물을 바치던 조형물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리스와 로마 신전의 기둥은 보통 원형이지만 이곳의 기둥은 모두 사각기둥이다. 이런 형태는 멕시코 중앙 고원에서 번영한 토르테가 유적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으로, 치첸이사가 마야 문명 뿐 아니라 토르테가 문명을 동시에 수용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전사의 모습이 조각되어있는 기둥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신전 오른편에는 수많은 기둥들이 모여 있고 그 안에 공터로 들어가면 아픈 사람들을 정화하거나 의식을 치르기 전 사용했다는 증기탕과 시장터가 있다. 카스티요 성의 서쪽에는 마야의 젊은 전사들이 생 고무공으로 경기를 벌인 구기장이 남아있다. 당시의 전사들은 손을 쓰지 않고 몸과 발만 이용해 공을 골문에 집어넣었는데, 경기의 룰이 지금의 축구와 비슷했던 것으로 보인다. 길이 150m의 볼 경기장. 양쪽으로 평행한 벽 위에 공을 넣는 골대가 있다. 이 경기가 축구와 확연히 다른 점이 있다면 골을 넣는 골대가 운동장이 아닌 돌로 쌓아올린 9m 높이의 벽면에 설치돼 있다는 점이다. 지금의 골문과는 비교가 안 되는 작은 구멍에 공을 집어넣어야 했는데, 전체 1m도 안 되는 돌에 30cm 정도의 구멍이 뚫려있다. 그 안으로 골을 넣기가 얼마나 어려웠을지 상상이 된다. 아래쪽 경사면에는 경기모습을 새겨 놓았다. 제물로 바쳐진 자의 목에서 흘러내린 피가 7마리 뱀이 되어 용솟음치는 장면이 매우 인상적이다. 경기에서 이긴 팀 주장의 심장을 신에게 바쳐 풍요를 기원했다는 무시무시한 이야기다. 왜 진편이 아니고 이긴 편일까? 제물로 바쳐진 전사의 가족에게는 아주 많은 재물과 최고 전사의 가족이라는 영광이 주어졌다. 조금은 이해가 되는데 도저히 알 수 없는 이야기다. 경기장 안에서는 소리가 매우 크게 울리기 때문에 박수를 쳐보는 관광객이 많다. 수많은 해골 모양의 조각이 남아있는 솜빤뜰리 유적, 독수리와 재규어의 제단, 금성의 제단 등 주변에는 유적이 많다.
카스티요 성의 정식 이름은 성이라는 뜻이지만 꾸꿀칸(캐살코아틀의 마야 이름)의 피라미드라고 더 많이 불린다. 피라미드 정면에서 박수를 치면 동물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가이드의 설명, 워낙 사람이 많아 들을 수 없다. 비는 오다 말다를 계속한다. 아쉬움이 남지만 시간이 없어 치첸이차를 나왔다. 관광객이 많이 오가는 길목에서 직접 만든 민속품을 판매하는 상인들도 재미있다. 이제 우리 관광버스를 넓은 주차장에서 찾아 가방을 맸다. 버스가 선다는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린다.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3시 30분 버스가 40분이 지나서 4시 10분에야야 도착했다. 엄청 많은 사람들이 질서도 없이 올라타려고 해서 겨우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표에는 좌석번호가 있는데 무용지물이다. 서서 가기도 힘들 정도로 사람이 많고 버스는 좌석번호도 정확히 표시되어 있지 않다. 다리는 것을 보니 오리엔테는 로컬 완행버스다. 그래도 버스에 탔다는 안도감에 차창 밖을 보며 간다.
멕시코 시골은 조용하다. 작은 마을에 들러서 사람들을 또 태운다. 연말연시를 집에서 보내고 다시 직장이나 학교로 돌아가는 젊은이들이 많이 탄다. 등에 메고 손에 든 가방이 제법 크다. 오후 6시 해가 질 무렵 Valladolid 마을에 도착했다. 버스 정류장에 서니 사람들이 많이 내려 겨우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새로운 사람들이 많이 탄다.
Valladolid는 500년 전에 만들어진 스페인 정복 시절 조성된 마을이다. 일방통행이 많은 좁은 골목길이 거미줄 같다. 멋진 성당이 있다. 마을 색깔은 파스텔 톤으로 칠해져 예쁘다. 소깔로를 중심으로 한 마을로 멕시코 전형이다. 바둑판 모양으로 조성되어 있다. 코르테즈의 멕시코 정복 이전 최초 선발대에 끼어 있던 Montejo 가문의 역사가 서려있는 곳이다. 이 도시를 건설할 때인 1543년 스페인의 수도 이름을 따서 명명된 곳이다. 내려서 도시를 둘러보지 못한 것이 아쉽다.
차는 또 출발한다. 에어컨이 너무 강해 춥다. 차는 참 느리게 간다. 좋은 고속도로 놔두고 마을과 마을을 잇는 국도 좁은 길로 간다. 속도를 좀 내는가 싶더니 마을이 나오고 마을에서 또 손님을 태워 출발하는가 싶더니 과속 방지턱이 서 너 번 연달아 나와 속도를 낼 수 없다. 왠 과속 방지턱이 이렇게 많은지.......... 열불이 난다. 고개를 쑥 빼고 앞에 길을 본다고 목 길이가 늘어난 느낌이다. 목도 늘어나고 눈알도 빠지는 것 같다. 손목시계를 쳐다보며 시간을 계산한다. 잔머리 굴려 표를 예매해 놓은 것이 엄청 후회된다. 누가 오라는 사람도 없고 가라는 사람도 없는데, 그냥 하루 더 머물면 될 것을, 후회해도 소용이 없다. 그러나 아직도 시간이 남아 있어 기대를 해본다.
드디어 칸쿤 시내에 들어섰다. 이미 날은 어두워 거리에는 가로등으로 훤하다. 8시 30분 버스다. 버스표를 들고 가서 기사에게 보여주며 안타까움을 전해보았으나 그때가지 도착하기는 어렵단다. 결국 10분 늦게 도착하고 말았다. 서둘러 내려 버스터미널 내를 살펴보았지만 팔란케 행 occ 버스는 보이지 않았다. 이제 교통비 15만원이 날아가는 순간이다. 터미널로 들어서니 제복입은 아가씨가 보인다. 차표를 보여주며 차를 놓쳤다고 말하니 우리를 데리고 매표소로 간다. 매표소 직원은 표를 살펴보고 컴퓨터를 검색해 보더니 오늘 밤 팔란케로 가는 버스는 없단다. 팔란케 인근 도시인 비야에르모사까지 가는 야간 버스가 있는데 요금을 50% 할인해 준단다. 요금이 11만원인데 5만원을 더 지불하니 별로 손해는 없었다. ADO 중에서도 플랫티넘으로 최고급 버스다. OCC와 ADO가 같은 회사 같지는 않았다. 아니면 비어가는 차량이라 할인을 해서라도 태우려는 것일까? 여기서 하루 더 자면 숙박비에 시간과 경비가 낭비라 생각되어 고급 ADO를 타기로 했다.
9시30분 비야에르모사행 표를 손에 쥐었다. 내일 아침 10시 30분에 도착 예정이다. 우리는 대기실도 아닌 특별실로 안내되었다. 고급스러운 대기실이다. 서둘러 밤 버스를 탈 준비를 한다고 가지고 있던 옷 중에서 제일 두꺼운 옷을 챙겨 입는다. 화장실에 들어가 반바지를 벗고 긴 바지로, 반팔 위에 바람막이 옷과 긴팔 파카를 걸친다. 양치질을 하고 세면을 하고 나오는데 사람들, 특히 여자들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본다. 낌새가 이상해서 뒤를 돌아보니, 지금까지 여자 화장실에 들어가서 볼 일을 본 것이다. 어찌나 민망하고 미안하던지........... 어쩌겠는가! 저질러진 일인데 웃음으로 때울 수밖에, 서두르니 실수가 나오는구나. 그냥 웃고 말았다. 여행자, 외국인이니까!
볼보회사에서 만든 ADO 밤 버스는 고급에 새차다. 옆으로 3좌석에 뒤로도 넓어 누워갈 정도다. 승차할 때 물과 이어폰도 하나씩 준다. 음식을 주지않는게 좀 서운했다. 어렇게 해서 칸쿤을 떠난다. 55$ 투어상품에서 시작되어 메리다도 포기하고, 예약 버스표도 날아갔다. 투어도 제대로 못했다. 비 맞은 후에 또 에어컨 바람에 벌벌 떨고, 맘 조리고 고생을 엄청했다. 멕시코 흐름에 익숙해 져가는 것 같다. 저녁 8시까지는 돌아온다는 투어 아저씨의 말도거짓이었고, 버스표에 적힌 좌석 번호도 통하지 않고, 도착시간은 연착되고, 4시간 걸린다는 매표소 직원의 말도 거짓, 조심해서 예약하고 다녀야겠다.
차에서 막 잠이 들려고 하는데 메리다에 도착했다. 메리다에서 1박을 하며 주변을 둘러보려고 했는데 이렇게 스쳐 지나가는구나. 멕시코 이면서 동시에 유카탄이라는 독특한 색깔을 보여주는 유카탄 반도의 매력적인 관문 도시가 메리다다. 뜨거운 햇살과 시원한 바람, 사람들이 모여드는 도시, 하얀 도시라고 한다. 하얀 벽의 집들, 주민들의 하얀 복장 그리고 도시의 청결함이 사람들에게 하얀 도시라는 이미지를 준다고 하는데 우리는 까만 밤에 도착하여 보이는 것이 흐릿한 가로등 밑에 검은 빛 가득한 잠들어 있는 도시다. 이제 다시 눈이 감기면서 또 차는 달려간다.
1월 1일 경비- 음료수 70, 버스비 250, ADO버스비 1050.
계 1370페소=137000원.
누계 549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