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도서는 저자가 인도에서 직접 체험한 이야기, 직접 연구할 자료, 참가한 축제 등에 대한 종합적인 보고이다. 특히 “overnight concert."에 대한 글은 감동스럽다.
밤새워 화투놀이를 한다든지 술을 마셨다든지 춤을 추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전통음악을 들으면서 밤을 새운다는 것이 상상이 되지 않았다. 나는 음악을 듣는다기보다 ‘밤샘음악회 구경’하기로 마음먹었다. 시간표를 보니 저녁 8시부터 다음날 6시까지 그야말로 밤을 새우는 음악회였다. 인도가 자랑하는 최고의 성악가 Bhimsen Joshi, 반수리의 Chaurasia 등 거물급 연주자들 이름이 보였다. 나는 8시에 시작을 한다고 하지만 좀 쉬었다가 늦은 시간 밤 9시에 현장으로 출발하였다. 도착하고 보니 정규 공연장은 아니고 공원에 천막을 친 임시 공연장이었다.
매표구에 와서 놀란 일은 놀랍게도 입장료가 100루피라는 거금이라는 점이었다. 간단한 점심 값이 10루피 정도이니 대강 어림잡아 우리나라의 7만원 쯤 되는 돈이다. 더 놀라운 일은 ‘sold out' 매진이라는 것이다. 아니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내가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나는 늦게 온 죄로 비싼 암표를 사가지고 들어갔다. 그런데 웬걸 들어가 보니 좌석 반이 비어 있었다. ‘내가 인도 사람에게 또 한 번 속았군’하며 앉아 음악을 들었다. 그런데 12시가 가까워지자 비었던 자리가 모두 채워졌다. 그리고 빔셈죠시가 한방중의 라가(midnight raga) 바가쉬리(Bhageshiri)를 느린 알랍으로 시작하였다. 1000여명의 청중이 조용히 한음도 놓치지 않으려고 음악을 듣고 있었다. 빔셈조시의 연주는 장장 한 시간이나 계속되었다. 연주가 끝나자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났다. 그리고 환호와 박수를 아낌없이 보내고 있었다.
호텔로 다시 돌아오면서 끊임없이 질문을 해 보았다. 기악도 아닌 성악가가 무슨 힘으로 사람들을 한 시간 동안이나 청중을 붙잡고 있는 것일까? 전통음악의 어떤 힘이 인도 사람을 저토록 휘어잡고 있는 것일까? 인도 음악을 공부해 보면 전통음악에서 떠나버린 한국 사람을 다시 불러올 수 있지 않을까? 밤샘음악회를 다녀온 후 나는 인도 음악을 사랑하게 되었다. 사랑하면 알게 된다더니 이게 빈말이 아니었다. 이제 더위도 참을만하고 인도 사람과 사귀어보니 좋은 사람도 많이 만나게 되었다. 인도 음악의 비밀을 캐려고 우선 악보를 구해 보려고 노력했다. 학생들이 가지고 다니는 공책을 얻어 보기로 하였다. 그런데 그들이 가지고 다니는 공책에는 몇 년간 공부했다는 것이 겨우 10여 쪽을 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의 수업을 유심히 관찰해 보았다. 인도에서는 7-8명이 그룹 지도를 받는다. 선생이 오면 한 사람씩 선생에게 나아가서 연주를 해 보이고 약간의 지도를 받고 잘 되면 다음 과제를 준다. 처음부터 끝까지 완성된 작품을 배우는 것이 아니고 토막토막을 배운다. 그리고 다양한 즉흥연주를 위한 짧은 악절을 배우고 있었다. 이 후에는 스스로 이 구절 저 구절을 모으거나 변형시켜서 음악을 완성시킨다.
인도음악의 선법인 라가도 고정된 것이 아니다. 한 옥타브를 22로 나누는 수르띠를 이용하여 수많은 라가를 만들어 낸다. 어떻게 라가가 많은지 라가 사전이 200여 쪽에 달한다. 라가는 계속 새로 만들어지고 인기가 없으면 사라진다. 인도음악의 장단인 딸라도 계속 만들어 진다. 물론 유행하는 딸라가 있기는 하다. 한 사람이 구사할 수 있는 딸라는 대개 20여종이 된다. 비나 연주가인 자얀띠(Jayanthi)는 15박 딸라를 잘 구사하여 인기가 높다. 15박은 여러 가지로 조합된다. 3+3+4+3+2 또는 3+3+3+4+2 등으로 자유로 조합할 수 있다. 이러한 리듬을 1분에 130박 이상의 속도라면 여간한 공력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인도 사람들은 이것을 즐긴다. 동일한 즉흥연주로 시작한 한국의 판소리나 산조는 어떤 상황일까? 옛 산조 선생은 매일 똑같은 음악을 연주하지도 않고 가르치지도 않았다. 선생에게 똑같이 배운 것을 그대로 따라하는 소리꾼은 ‘사진소리 쟁이’라 하여 음악계를 빨리 떠나야만 하는 대상이었다. 선생은 학생에게 가르칠 만큼 가르치고 나서는 더 큰 선생을 찾아가라고 학생을 보냈다. 이렇게 몇 선생을 거치는 동안 기량이 늘어나면 이제 독공(獨工)이라는 단계가 있다. 혼자서 폭포나 토굴 속에서 연습을 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자신의 음악을 만들어 냈을 때 이를 ‘득음’(得音)이라 하고 이러한 경지에 이르러야 명창이 되는 것이다.
요즘 선생은 제자를 붙들어 놓고 다른 사람에게 보내지 않는다. 제자가 선생을 떠나 다른 선생에게 배우려고 하면 엄청난 각오를 해야 한다. 이 사람은 우선 ‘의리없는 제자’가 되고 소위 ‘버릇없는 사람’으로 낙인찍힌다. 그리고 음으로 양으로 압력이 들어와 홀로 서기가 여간 버겁지 않다. 그래서 우리 중앙대학교 대학원에서는 이 고리를 끊어보려고 대학원에서 학기마다 다른 선생님께 배우도록 하는 강제 규정을 만들었다. 학생들이 스스로 끊을 수가 없기에 학교에서 제도적으로 끊을 수 있도록 만들어 준 것이다. 우리나라 유명 콩쿠르에서 벌어진 일이다. 지정곡은 ‘김죽파가야고산조’였다. 한 참가자는 참으로 잘 탔다. 모두들 대상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채점표를 수합해 보니 한 심사자가 실격이라고 점수를 주지 않았다. ‘김죽파 산조가 지정곡이라면 그 산조를 충실히 타야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참가자는 김죽파 산조에 없는 가락이 들어있었다’라는 것이 실격 판정을 한 근거였다.
이를 듣고 필자는 ‘이제 산조는 이 시대의 음악이 아니고 과거의 음악이 되었구나’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이런 분위기라면 선생의 선율을 충실히 보존하는 사람이 가장 훌륭한 연주자로 평가받는다. 이렇게 되면 앞으로 새로운 산조의 출현이 무척 어려워진다. 세상의 취향은 바뀌는데 음악이 굳어있으니 사람들은 음악을 점점 더 멀리하게 된다.
원래 산조는 김창조가 약 100년 전에 만든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새롭게 많은 유파가 탄생하였다. 이것은 김창조의 제자들이 각각 창의력을 발휘하여 자신의 산조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선생과 사회가 이러한 새로운 산조의 출현을 용인한 결과이다.
서울대 음대와 동 대학원을 졸업(1970)하고 델리 간다르바 마하 비디알라야에서 수학(1986)한 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문학박사를 취득(1999)하였다. 중앙대 국악대 학장을 역임하였고, 현재는 중앙대 명예교수로 재직 중이다.
동아음악콩클 심사위원, 중앙음악연구소 소장, 문화재청전문위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심사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아시아 음악학회 회장으로 영문 음악학술지 Asian Musicology 발행인이다다. 대한민국작곡상(1981), KBS 국악대상(1998), 난계음악학대상(2003), 기독교문화대상(2004), 한국 음악상(2015), 서울음악대상(2018)을 수상하였다.
중앙대 교수(학장), 문화재청 문화재 전문위원, 국립극장 자문위원, UNESCO world cultural heritage(세계문화유산) 심사위원을 역임하였다. 현재는 영문학술지 Asian Musicology 발행인, 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 한국음악평론가협회 회장, 한국국민악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제1편 인도를 알아보자 1. 인도의 자연환경 37 1.1. 인도의 지리 /37 1.2. 인도의 기후 /44
2. 인도의 문화 45 2.1. 인더스 문화와 아리안의 문화 /45 2.2. 페르시아(Pers영향 /48 2.3. 회교(Muslim) 문화의 영향 /51 2.4. 무굴(Mughul)제국의 문화 /54 2.5. 현대 인도 문화 /55
3. 인도의 종교 63 3.1. 힌두교 /65 3.2. 이슬람교 /67 3.3. 시크교 /68 3.4. 기독교 /69 3.5. 불교 /69 3.6. 자이나교 /70 3.7. 인도 고대의 서사시 「마하바라타」 /72
4. 인도의 역사 76 4.1. 선사 시대의 인도 문명 /76 4.2. 인도문명의 전개(BC 1750 ~ AD 1200) /78 4.3. 고대 도시국가의 성립 /79 4.4. 마우리아 제국 /80 4.5. 굽타 왕조 /82 4.6. 이슬람 시대(1200-1680) /84 4.7. 델리 술탄국 /85 4.8. 유럽 제국의 인도 진출 /99
제2편 왜 인도음악인가? 1. 〈영산회상〉에 대한 의문 111 2. 밤샘 음악회의 쇼크 115
3. 「나티야 사스트라』(Natya Sastra)의 장단과 한국의 장단 118 4. 거문고와 비나 124 5. 구루와 음악가 128 6. 인도와 한국의 즉흥음악 130 7. 남도의 비나 마에스토로 발라챤더 133 8. 인도의 재미있는 음악 주변 이야기 137 8.1. 황제의 보물 그리고 저당잡힌 음악 /137 8.2. 바울의 노래 /138 8.3. 음악가와 도둑 /140 8.4. 접시와 가난 /141 8.5. 무식한 사람 /141 8.6. 만가람(mangalam) 일화 /142 8.7. 지루함 /142 8.8. 바이올린 연주자의 지혜 /142 8.9. 침해 /143 8.10. 즉흥적인 감사 /143 8.11. 한 공연에 두 바르나(varna) /144 8.12. 눈에는 눈 /144 8.13. 시원한 바람 /145 8.14. 인도의 궁중음악 /146
제3편 인도음악의 매력
1. 인도음악 개관 152 1.1. 인도 음악의 종교성 /157 1.2. 인도 음악의 종합성 /159 1.3. 인도 음악의 적응성 /160 1.4. 힌두스탄 음악과 카르나틱 음악 /163 1.5. 생활 음악 /168
3. 다양한 장단 구조: 딸라 216 3.1. 크사나와 아크사라 /216 3.2. 남인도 음악의 장단구조 /217 3.3. 북인도음악의 장단구조 /222 3.4. 유파(가라나)에 따른 양식의 차별성 /226 3.5. 인도 음악의 악파(ghrana) /228
4. 인도음악의 형식 233 4.1. 열린 형식과 닫힌 형식 /233 4.2. 열린 형식의 여러 가지 /234 4.3. 대중 음악 형식의 여러 가지 /240 4.4. 북인도 음악과 남인도 음악 /245 4.4.1. 서양음악과 인도음악 /249
제4편 인도의 악기
1. 동양악기의 뿌리: 인도의 악기 253 2. 인도 악기의 분류법 254 3. 체명악기(體鳴樂器 ghana vadya) /255 4. 피명악기(皮鳴樂器 avanadha vadya) 262 4.1. 따블라 /269 4.2. 무리당감(mrdangam)과 파카바즈(pakhavaj) /269 4.3. 모래시계형 북 /270 5. 공명악기(空鳴樂器, sushira vadya) 270 5.1. 상크(sankh)와 하노니움(harmonium) /271 5.2. 쉐나이(shenai) /272 5.3. 반수리(bansuri) /273 6. 현명악기(絃鳴樂器, thata vadya) 273 6.1. 현명악기의 기원과 발전 /273 6.2. 비나의 발전 /274 6.3. 시타르 /282 6.4. 산뚜르와 스와라만달 /287 6.5. 땀부라(tampura) /287 6.6. 사라스바티 비나(sarasvati veena) /288 6.7. 사랑기(sarangi) /289 6.8. 그 밖의 여러 악기 /290
제5편 인도음악의 미학
1. 인도 음악미학의 독창성 292 2. 라사 297 3. 「나티야 샤스트라」를 통해본 인도음악의 아름다움. 298 3.1. 「나티야 샤스트라」와 라사 /298 3.2. 라사 이론 /300 3.3. 다양한 인간 정서의 조합과 공감(共感) /305 3.4. 라사를 구성하는 음악적 요소 /307 3.5. 스와라 /308 3.6. 앙샤 스와라 /314 3.7. 구도(求道) 방법으로서의 음악 /317
제6편 인도음악의 역사
1. 인도음악사 개관 320 1.1. 아리안 침입 이전의 음악 /320 1.2. 베다 이후와 중세의 음악 /322 1.3. 중세 후기의 음악 /324 1.4. 북인도 음악과 남인도 음악의 분화 /326 1.5. 서양음악이 인도음악에 미친 영향 /329
2. 악보의 발달 334 2.1. 고대와 중세의 기보법 /335 2.2. 근대의 기보법 /336 2.3. 음높이의 표기법 /337 2.4. 장단의 기보법 /338 3. 석각자료에 나오는 음악사 자료 /338
4. 음악가 339 4.1. 고대의 음악가 /341 4.2. 인도음악의 유파 /343 4.3. 중세의 음악가 /344 4.4. 근대의 음악가 /359
5. 현대 인도의 음악 372 5.1. 현대음악과 고전음악과의 관계 /372 5.2. 현대인도의 민속음악 연주자 /373 5.3. 종교와 민속 문화 /374 5.4. 대중적 종교음악 /375 5.5. 축제 음악 /380 5.6. 노동요 /381 5.7. 민속 음악의 특징 /381
제7편 인도음악과 한국음악(논문편)
1. 인도음악과 한국음악 385
1.1. 선율 구조의 비교 /388 1.2. 본청과 바디 쌈바디 /389 1.3. 장단 구조의 비교 /391 1.4. 음악의 빠르기 /393 1.5. 악기의 비교 /395 1.6. 느린 음악의 묘미 /402
2. 인도음악과 한국음악의 교류와 영향 403 2.1. 서론: 인도음악과 한국음악과의 인연 /403 2.2. 인도 음악과 한국 음악의 역사적 교류 /405 2.3. 인도 음악의 한국 음악에 대한 영향 /409 2.4. 두 나라 음악의 세틀형식으로 본 영향 관계 /421 2.5. 두 나라의 악기로 본 영향 /422 2.6. 인도와 한국의 악기 비교 /439 2.7. 맺음말 /445
3. 실크로드를 통하여 전파된 인도 음악 형식 446 3.1. 머리말 /446 3.2. 인도 음악의 3단계 형식 /447 3.3. 인도네시아 음악의 3단계 형식 /453 3.4. 베트남의 닙(Nhip) /458 3.5. 태국 음악의 3단계 형식 /463 3.6. 캄보디아 음악의 3단계 형식 /465 3.7. 중국 남부 〈강남사죽〉의 3단계 형식 /468 3.8. 한국 음악의 3단계 속도 형식 /470 3.9. 맺음말 /473
4. 인도와 한국의 드론(지속음) 악기 비교 478 4.1. 머리말 /478 4.2. 인도와 한국의 드론 악기 비교 /482 4.3. 맺음말 /490
5. 인도의 판차마에서 중국과 한국의 반섭조, 일본의 반시키까지 495 5.1. 머리말 /495 5.2. 인도의 판차마(panchama) /496 5.3. 중국의 반섭조 /497 5.4. 한국의 반섭조 /501 5.5. 현대 한국 범패의 악조 /503 5.6. 맺음말 /506
6. 나티야 사스뜨라의 인도 고대음악 511 6.1. 머리말 /511 6.2. 극장 오케스트라(Natya Kutapa) /512 6.3. 성악곡의 형식 /514 6.4. 기악곡 연주의 실제 /519 6.5. 악기론 /521 6.6. 합주 /532 6.7. 음악가론 /543 6.8. 맺음말 /545
7. 불교음악 기원 영산회상 장단과 인도의 딸라 547 7.1. 머리말 /547 7.2. 인도와 한국의 장단 연주 악기와 기법 /548 7.3. 「나티야 사스트라」 딸라와 영산회상 장단의 세 가지 분화 /551 7.4. 영산회상 장단의 세 가지 분화 /562 7.5. 현행 영산회상의 세 가지 빠르기 /564 7.6. 「나티야 사스트라」 딸라와 「동대금보」 영산회산 장단의 비교 /567 7.7. 맺음말 /570
8. 인도음악 형식의 한국 중국 일본음악에 미친 영향 573 8.1. 머리말 /573 8.2. 인도음악 라가(raga)의 형식 /574 8.3. 중국의 大曲 /577 8.4. 韓國音樂의 大葉 /579 8.5. 日本의 大曲 /581 8.6. 맺음말 /581
9. 실크로드를 통한 악기의 전래와 한국 음악에 대한 영향 584 9.1. 머리말 /584 9.2. 발현악기 비파의 전래와 한국 음악에 대한 영향 /585 9.3. 발현악기 거문고의 인도 전래 가능성 /599 9.4. 타악기 장구의 전래와 한국 장단에 대한 영향 /606 9.5. 안악3호분에 나타나는 실크로드 음악의 한국 음악에 대한 영향 /608 9.6. 맺음말 /512
책 속으로
머리말 - 인도 그리고 인도음악
필자는 1985년 인도 음악 연구를 시작한 이후 벌써 30년이 넘었다. 이제 필자는 70을 넘어선 할아버지가 되었고, 인도도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다. 미래학자들은 21세기의 선도 국가로서 중국과 인도를 꼽는데 주저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인도인의 심성은 지금도 전통에 훈습되어 있다. 필자가 미국에서 만난 인도인 무드갈라야가 있다. 그는 일찍 미국에 유학을 와서 소위 잘 나가는 금융인이 되었다. 그는 이러한 잘 나가는 생활을 접고 인도로 돌아가려고 준비하고 있다. 필자가 물었다.
“왜 이렇게 아늑하고 편안한 자리를 박차고 열악한 인도로 돌아 가려는 가요?” “나는 장남입니다. 내가 지고 있는 다르마(dharma)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면 인도인이 그토록 집착하는 ‘다르마’란 무엇일까? 네루는 인도의 사회 구조를 자치적인 촌락 공동체와 카스트 제도와 공동 가족 제도에 기초를 두고 있다고 하였다. 이것은 동시에 힌두교의 성립 기반이기도 하다. 따라서 인도를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도 사회 곳곳의 기초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
인도 가족 제도의 특징은 부부 또는 자식을 단위로 하지 않고, 대가족이 한 집단을 이루는 데 있다. 이와 같은 가족 형태는 일반적으로 공동 가족(gotra) 이라 부른다. 이 공동 가족에서는 자식이 결혼하더라도 부모와 세대를 따로 구성하지 않고 부모 집에서 형제 가족과 함께 생활한다. 공동 가족에서 아버지는 가장으로서 모든 가족을 통제하지만 여기서는 가족회의가 가장 권위를 가지며, 식량 재산 가옥은 가족 모두가 공동으로 소요한다. 이 공동 가족 제도는 고대에 토지를 함께 소유하고 경작해야 했던 필요성에서 기원하였고, 온 가족이 함께 일하여 얻은 수확물은 공동으로 누린다. 이렇게 그들은 가족 집단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다르마란 사람이 살아가면서 지켜야 할 도리, 그리고 각각 자신이 위치한 자리에서 자신을 역할을 다하는 것이다. 이러한 가족 구성원에서 장남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장남으로서 가족 구성원을 이끌고 그들을 책임져야 한다. 이것이 장남으로서의 다르마이다. 이 의무감이 바로 미국에서의 안락한 삶을 떨치고 인도를 향하게 만든 것이다. 이처럼 인도 사람들은 아직도 이처럼 전통 사고에 묻혀 살고 있다.
이 책은 지난 30여년 세월 동안 인도에 대하여 썼던 여러 글을 모은 것이다. 신문 잡지에 실었던 평이하게 읽게 하려고 썼던 잡문, 인도 음악을 더 잘 알아보려고 인도 문헌을 번역한 글, 대학 교수로 살아가는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써야 했던 논문, 간혹 요청해 오던 특강을 위하여 만든 자료도 들어 있다. 가장 힘들게 고생해서 쓴 글은 논문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논문을 읽는 사람은 별로 없는듯하다.
이렇게 인도를 연구한답시고 인도를 30번 넘게 드나들었다. 우리나라에서 인도 음악 연구는 필자가 처음으로 시도한 것이다. 인도에 대한 관심은 많았지만 막상 실행에 옮긴 것은 필자가 처음이었다. 지난 30년 동안 귀신에 홀린 것처럼 인도에 빠져 있었다. 이처럼 인도를 드나들면서 나는 깨달았다. 선생은 학교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길 위에 선생이 있었던 것이다. 군중으로 바글거리는 역 광장이나 시장에서 만난 사람들 그리고 2박 3일의 기차 안에서 만난 사람들이 바로 나의 선생이었다.
이번에 나오는 3판 증보판은 그동안 30년여 년 인도 음악 연구 중 모아놓은 잡동산이 성격의 책이다. 필자가 초기에 인도음악을 연구하던 때, 우리나라에는 인도 음악 전문가가 없어서 인도 관련 일이라면 수시로 필자를 사람들이 찾았다. 그리고 사람들이 교양 강좌 잡문 등을 부탁하고 방송 인터뷰, 특강을 요청하거나 학술회의 발표 등을 부탁받았다.
여기 실린 글은 이런 여러 활동 중에 쓴 여러 글을 모은 것이다. 그래서 어떤 글은 수필형식으로, 어떤 글은 강연 형식으로 또 어떤 글은 논문 형식으로 작성되었다. 이렇게 다양한 종류의 글을 모은 것은 이러한 여러 글들이 모두 인도음악을 이해하는 중요한 요소기 된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책을 매만지며 많은 부분을 수정하였다. 그럼에도 중복이 많고 특히 논문 부분에는 중복 내용이 많다. 중복 부분은 글이 맥락에서 이해에 필요한 부분은 번거롭더라도 남겨 두었고, 많은 부분이 과감하게 삭제되었다.
제1편은 인도를 이해하기 위한 기본 사항을 다루었고, 제2편은 인도음악에 대한 초보적인 내용을 쉽게 쓴 글이다. 인도음악에 대한 궁금해 하는 일반인을 위한 쉬운 내용이다. 제3편부터는 전문가를 위한 내용으로 인도음악을 심도있게 논의한 부분이다. 제4편은 인도음악의 악기를 다루었고, 제5편은 인도음악의 미학에 관한 부분으로 우리나라에서 산스크릿 전문가인 이재숙의 글을 본인의 허락을 받아 전재하였다. 제6편은 인도음악의 역사를 다룬 부분이고, 제7편은 한국음악과 인도음악의 영향 교류 현황을 다룬 논문이다. 매우 난해한 부분이지만 전문가를 위한 부분이다. 이 부분에는 전문가를 위한 각주가 달려 있어 논거의 자료로 삼은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이곳에 수록한 논문 중에는 다른 책이 이미 수록된 논문도 세 편 들어 있다. 여기에 중복하여 수록한 이유는 인도음악과 한국음악과의 관계를 좀 더 구체적으로 알려고 하는 독자들에게 논증 근거를 제공하기 위함이다. 사실 논문은 읽는 독자가 극히 제한되어 있고, 대학교수라면 반드시 학문적 성과를 나타내기 위하여 써야 할 글이다. 논문을 학자로서 굉장히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 쓰는 글이지만, 읽는 독자가 매우 적다. 그러나 꼭 필요한 글이라고 생각하여 중복되는 부분이 많지만 수록하였다.
인도음악 연구를 시작하면서 처음에는 인도에서 한국 불교 음악의 뿌리를 찾아보려는 생각으로 시작하였다. 연구를 진행하면서 인도음악을 더 잘 알게 되면서 인도음악을 즐기게 되었고 인도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인도음악을 공부하면서 한국음악이 다시 보이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다른 나라 음악을 공부하면서 한국음악을 객관적으로 보는 안목이 생기면서 한국음악을 더 잘 이해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아시아 여러 나라 음악의 상호 관련성과 영향 관계가 보이는 것이었다.
인도음악과 아시아음악을 연구하면서 제일 어려웠던 일은 주위 학자들의 몰이해였다. 논문을 학회지에 제출하면 심사를 하게 된다. 심사자들이 논문을 이해하려며 심사 대상 논문 이전의 논문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대부분의 심사자들은 이러한 선행 연구를 이해하지 못하고 심사를 하는 바람에 ‘게재 불가’라는 판정을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였다.
인도음악에 관한 책으로 윤혜진의 「인도음악」이 있다. 인도 유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가 많은 문헌을 참고하여 저술한 역작이다. 특히 인도음악의 역사 구조 의미 등과 사상적 배경과 미학적 관점을 깊이 천작한 책으로 인도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고 있다.
이제 다시 여러 글을 읽으면서 느끼는 것은 아마도 내가 인도음악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인도음악을 객관화하지 못한 면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나이 70을 넘고 보니 그 동안 40년 연구 성과를 정리하는 일이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이라는 사명감을 갖게 되었다. 훗날 인도 음악을 연구하려는 후학들이 나의 연구를 비판해주고 오류를 바로 잡아주고 한 발자국 더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이 과정에서 필자의 오류가 자연스레 수정될 것으로 기대한다.
이렇게 아시아음악 연구를 하면서 엄청난 경비가 들었다. 30년 동안 겨울방학 여름방학 동안 아시아 지역을 돌아다니며 음악인을 만나고 문헌을 수집하는 작업을 하였다. 그동안의 경비를 대강 계산해 보아도 아파트 한 채 값과 맞먹는다. 이러한 출혈을 이해해 주고 연구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한 집사람에게 무한한 감사를 보낸다. 그리고 아빠의 무관심에도 두 딸과 아들이 잘 자라 가정을 잘 꾸려 나가는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럽고 자랑스럽다. 그리고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