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야! 우린 모두 성공적인 삶을 산 거야!
몇 년 전 우리 십오야 전국 모임을 경기도 수원에서 가졌을 때 어떤 친구가 우리 학교 다닐 때 영어를 가르치셨던 이영주 은사님에게 자기의 신세타령(?) 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 친구 말인 즉슨 젊었을 때 남들처럼 도서벽지를 다녀왔으면 그동안 장학사도 하고 교육계에서 컸을 터인데 그렇지 못해 광주 시내에서 교장으로 정년퇴임하고 말았다는 이야기다.
우리들에게 주어진 자유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나는 부득이 그 자리를 떠날 수밖에 없었지만, 그 친구와 나의 생각은 너무 달라 언제 한 번 조용히 만나서 이야기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졌지만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던 차에 얼마 전 그 친구 부음을 듣게 되었다.
살아 있을 때 만나 이야기했더라면 상호 의견이 달라 얼굴을 붉히는 경우도 있었겠지만 지금은 듣는 이도 없는데 혼자 지껄이고 있으니 정말 쓰잘데기 없는 말이 되고 말았다.
친구야!
우린 경쟁률이 높은 빛나는 광주사범학교에 입학 하고, 또 3년 후 졸업하여 바라는 대로 교사가 되었으니 우리는 모두 성공적인 삶을 산 거야. 자네가 이영주 은사님께 말하는 것을 잠깐 들으니까 장학사 못해 본 것이 좀 서운한 것 같던데 자네가 장학사를 좋게 본 것은 남의 손에 있는 떡이 더 크고 맛있게 보이는 것과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
자네도 알다시피 학교에 학생이 있고 선생님이 계셔야 교육이 이루어지니까 교육현장의 주인공은 학생과 선생님이네.
장학사는 학교 현장을 돕는 도우미로서 지원하는 역할을 하는 분이기 때문에 교육현장에서 볼 때 선생님은 주연 역할이고 장학사는 조연 역할을 하는 셈이지
따라서 교육현장에서 당당히 주연 역할을 한 사람이 조연 역할을 부러워해서야 되겠는가?
또 장학사가 교육현장을 지원해 주려면 수업 기술면에 많이 알고 있어야 하므로 경륜이 많은 선배님들이 장학사를 하는 경우가 많은 편이긴 하지만 교장과 장학사 직위의 높고 낮음을 말할 수 없네. 職列이 서로 다르니까--
나의 경우, 실력도 없는 사람이 우연찮게 장학사를 몇 년 하다가 학교로 돌아오니 시집간 딸이 친정에 돌아온 것처럼 마냥 기쁘기만 하데. 그래서 난 교육청 체질이 아니라 학교 체질이구나 하는 걸 느꼈네.
우리가 어린이들로부터 선생님! 교감 선생님! 교장 선생님! 이라 불리울 때 우리 모두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감도는 걸 보면 우리가 선생님으로 태어 난 것은 어쩔 수 없는 운명인가 보네
친구야! 자네는 그동안 교감, 교장으로 교육현장의 주연 역할을 하면서 산 거야. 당당히 주연으로! 또 성공적인 삶을 산 거야!
늦었지만 이제라도 장학사에 대한 미련은 버리고 “내가 한 때는 교육현장의 주연이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마음 편히 영면하시게나.
친구 고광창이 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