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시더>
오 덕 렬
벌써 교문 통에는 백일장 참가 학생들이 몰려들고 있다야. 교정에 들어서자 수목들이 오월의 신록으로 반겨주고 있네. 히말라야시더, 소나무, 아카시아, 후박나무, 향나무…. 모두 제 모습들로 한껏 뽐내고 있구나! 그 중에서 위풍을 내뿜는 나무는 히말라야시더 같고…. 그늘을 드리운 밑에는 벤치도 놓여 있다. 시비(詩碑) <무등산>은 그 옆에서 ‘문학의 힘’을 말해주고, 그리고 …. 인솔 교사는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을 생중계하듯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다.
곧 개회식이 있다는 방송이 들렸다. 선생님의 설명으로 학교의 전체적인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진 뒤였다. 구령대 뒤, 그늘로 모였다. 의식은 간단히 마쳐졌다. 백일장 진행상의 주의 사항에 이어 ‘글제’가 발표되었다. <열쇠>·<오늘>·<만남>이었다. 중·고, 운문·산문, 공통이며 택1로 주어진 것이다.
자기를 이겨야 큰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 꼭 일주일 전에 발표되었던 ‘맨 부커 상’을 받은 한강(46) 소설가도 학교 다닐 때는 우리와 똑같은 이 고장의 여학생이었다는 것, 이 학교가 많은 작가를 배출한 것은 아카시아 동산에 앉아 상상을 많이 했던 결과라는 것…. 이런 말들이 가슴에 태풍을 일으켰다. 온 몸이 부르르 떨렸다. 벌렁거리는 감정을 진정시키느라 두 손을 꼭 맞잡았다. ‘극기, 문학상, 상상(想像)….’ 이것들이 오늘 만난 친구들이란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우영아, 히말라야시더 밑으로 가자” 선생님께서 손목을 이끌었다. 정신을 가다듬고 선생님을 따라가며 무엇을 쓸까 생각했다. 나무 그늘에 자리를 폈다. 글제를 무엇으로 할까. 백일장 전용 원고지에 쓸 수 없는 나는 ‘점자정보단말기’를 꺼냈다. 무슨 얘기를 쓸까.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꼼짝 않고 앉아 있다가 히말라야시더를 우러렀다. 한참 만에 <오늘>이라 글제를 칠 수 있었다.
몸통 둘레는 2미터가 넘고, 죽죽 뻗은 가지엔 세월이 버거워 받침대가 받쳐졌다. 가지가 돋아나기 전까지 만해도 내 키의 3배나 되고….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가늠해 본 히말라야시더의 형상이다. 위로 뻗은 만큼 땅속 세계도 있겠지. 뿌리에 손을 대고 땅속 세계로 따라 들어가 생각해 보았다. 드러나지 않은 세계가 엄청났다.
“새벽녘 소리 없이 내려앉은 허연 안개는/ 내 눈 앞을 가려와/ 나는 동트는 오늘 아침을 볼 수 없네.// …중략… 오늘을 볼 수 없는 나는 내일을 보려 하네// 내일을 볼 수 없는 나는 오늘을 보려하네.” -시 <오늘>의 첫 연과 마지막 연-
두 손의 손가락들은 자판을 더듬거렸다. 오늘은 오직 히말라야시더가 불러주는 대로 받아쓰는 느낌이었다. 아니 상상력이 불러주었다고 해야 할까. ‘상상력은 우주를 품고도 남는다.’는 말이 실감으로 다가오는 듯했다. 설산 히말라야에서 여기에 와서 이런 자태를 갖추기까지는 그 고초가 어떠했겠는가. 제 살랴, 이웃 나무들과 조화를 이루랴, 그런 속에서 다른 나무에서 느끼지 못하는 위용을 갖추랴….
이때였다. 선생님께서 제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하셨다. 정해진 시간 안에 제출할 수 있었다. 접수대에서 입상자 발표는 오는 월요일에 하고, 시상식은 금요일에 있다고 다시 설명해 주었다.
드디어 시상식이 시작되었다. 백 명이 넘는 수상자가 호명되었다. 나는 고등부 두 번째로 단상에 섰다. 금상이었다. 벽에는 시상식 및 문학 강좌 안내 플래카드가 내려다보고 있었다. 특히 <우리는 노벨문학상을 꿈꾼다>는 구절이 내 맘속 다짐을 캐묻는 듯했다.
이제 시상식에 이어서 시작된 문학 강좌 내용을 간추리려 한다. 백일장의 목적은 뚜렷했다. 노벨문학상에 도전하는 꿈의 씨앗을 심어주는 거였다. 엄마가 밭에 씨를 넣듯이 그렇게 참가자들에게 문학의 씨를 안겼다. 싹을 틔우고 가꾸고 하는 것은 스스로의 몫이라 했다. 그리고 싹이 잘 자라도록 돕는 것이 백일장의 또 다른 목적이기도 했다. 망망대해, 문학의 바다를 항해하는데 지켜보며 힘을 보탠다니 얼마나 마음 든든한가.
강연도 몇 가지 부탁을 하며 마무리 되었다. 국어사전을 활용하자. 소재를 다른 형상으로 보자. 밥 먹듯이 상상하자. 교과서의 시를 모두 외우자…. 김소월의 <가는 길>을 낭송해주셨다. <봄비>에 이어 두 수째였다.
강사 선생님은 우리가 기념촬영을 청하자 웃으면서 응해 주셨다. “응, 잘 했어! 상상은 눈을 감고서 하는 거야. 여러분은 자나 깨나 상상을 하고 있으니 미적 감각이 뛰어날 수밖에 없어. 위대한 문학가가 될 소질을 타고났다고 위안해야 해. 장우영 박사는 우리나라 시각 장애인 박사 1호지. 장애는 시련일 뿐, 오로지 자기 자신만이 ‘희망’이라고 말했어. 미국의 명사 인명사전에 수록되기도 했지,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차관보를 지냈고….” 이런 격려의 말씀도 해 주셨다.
백일장 당일이었었다. 인솔 선생님의 손을 잡고 계단을 올랐었다. 문학관 입구에서 접수를 마치고, 2층 문학관으로 안내되었었다. “문학관은 내가 설명하지” 우리나라 전체적으로 보면 작년에 학교에서 가 보았던 장흥의《천관문학관》같은 게 한 50여 곳이나 된단다. 그러나 학교 단위 문학관은 이곳 한 군데뿐이야. 여기에는 은사님 열 세분을 포함하여 94분이나 되는 작가의 작품집과 소품들이 전시되어 있단다. 여러 해 인솔 오셨던 선생님의 말씀이었다. 입구에 놓인 방명록에도 우리 이름을 올렸다. 나중에 큰 상을 받게 되면 이 메모가 크게 빛을 발할 거라며 웃으셨다.
나는 ‘나중에 큰 상을 받는다’는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식장을 나서면서 ‘나는 한 그루 히말라야시더야!’ 어느새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래 히말라야시더가 되자’ 두 주먹을 꼭 쥐어보았다. 교문 통을 빠져나는데 뒤에서 누가 손짓하는 느낌이 들었다. 뒤를 돌아다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히말라야시더가 어사화를 쓴 모습으로 다가오는 게 아닌가. ‘어! 히말라야 시더가 장원을…’ 하느님께서 내 시각을 빼앗아 가시고는, 대신 형상력(形象力)을 주셨을까. 히말라야시더는 뚜벅뚜벅 다가와 내 머릿속에 들어박히는 것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