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1-19
순교자 나봇 / 한서노회
어느 커다란 배에서 한 여자가 떨어졌습니다. 사람들은 '여자가 바다에 떨어졌다'고 야단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여자를 구하러 들어가는 사람이 없습니다. 여자는 살려달라고 발버둥치다가 그대로 물 속으로 쑤욱 들어가 버렸습니다. 잠시 후 다시 물위로 올라왔습니다. 사람들은 모두들 '아이고, 여자가 다시 물 속으로 들어간다'하며 소리치며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어떤 남자가 물 속으로 풍덩 뛰어 들더니, 잠시 후 여자를 물위로 끌어올렸습니다. 사람들은 이 영웅적인 행동을 한 사람을 칭찬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배에 올라오자,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그 사람은 젊은이도 아닌 노인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노인의 용기에 감탄하며, 모두 몰려가 물었습니다. "노인장, 대단하십니다.
그 나이에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습니까? 그러자, 이 노인어른 주위를 매섭게 둘러보며 "누구야? 누가
날 밀었어?" 사실인즉 이 노인어른도 사람들과 함께 구경만 하고 있다가 누군가가 등을 떠밀어 바다에 뛰어들었고, 살려고 수영을 하다가 여자가 앞에 있길래 붙잡은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구경하는 사람이 무척 많습니다. 남의 일 보듯이 구경하는이들이 많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구경꾼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함께 자기 일처럼 관심 갖고, 고민하고, 기도하는 그런 사람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구경꾼이 되어서 구경만 한다면 우리의 의인 나봇은 죽어갑니다.
오늘 본문은 아합왕이 언약의 백성의 왕이되어서 얼마나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자기백성을 착취했는지 나봇의 사건을 통해 잘말해주고 있습니다. 이 사건에는 세사람이 등장합니다.이스라엘왕 아합 그 왕비 이세벨 그리고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성도 나봇입니다.
여러분 돈이면 뭐든지 다됩니까?
1.세상에는 돈으로 안되는 것도 있습니다. (1-3)
" 아합이라는 이스라엘의 악한 왕은 자기궁곁에 있는 나봇의 포도원이 가지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돈을 줄테니 그 밭을 팔라고 요구합니다. 결국 포도원을 팔지 않음으로 왕의 명령을 거절함으로 나봇은 죽습니다. 우리 생각에 쯧쯧 까짓 포도원 팔면될텐데 하는 의심을 가져봅니다. 나봇 당신 너무 어리석습니다 하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 밭이 하나님 거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만약 여러분의 가지고 있는 포도밭 그것이 재산일수도 물건일수도 있고, 여러분이 사랑하는 어떤것이나 생명일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하나님 것이라고 인정한다면 여러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내 마음대로 파시렵니까?
아합은 돈이면 뭐든지 다 되는 줄 알았습니다. 세상에는 돈으로 안되는 일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사랑은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자녀도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더더욱 생명은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돈이면 뭐든지 다 될것으로 생각하지만 돈으로 안되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특히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나봇의 포도밭이 그 중의 하나였습니다. 왜냐면 그것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3절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단순히 유업을 팔지 않겠다는 의미 정도가 아니라 땅 전체가 하나님의 것임으로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려다 나봇은 죽었습니다.
이스라엘 토지는 하나님의 각 지파와 가족별로 하나님께서 빌려준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각자가 하나님으로부터 대여받고 조상들로부터 전수받은 땅을 지켜야 할 종교적의무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중요한 직무중의 하나였습니다. (레25:23-28; 민:7-12) 그런데도 아합은 자기말이라면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까지 쉽게 묵살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1절에 보면 이 일은 그 일후에 있은것입니다. 그 일이란 20장에 나타난 일입니다. 지금 우리는 엘리야의 삶속에 역사하신 하나님을 만나려고 하기 때문에 20장을 건너 뛰었습니다. 20장의 이야기를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아람왕 벤하닷이 이스라엘을 치기위해 32명의 동맹국왕을 이끌도 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를 포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아합에게 승리를 주시고 벤하닷을 그의 손에 붙이셨습니다. 그런데 아합은 하나님이 멸하시기로 작정한 사람을 형제라고 부르면서 살려주었습니다.(20:42) 그 결과 이스라엘은 아합 때문에 고통하고(왕하10:32;13:3) 결국 아합은 또 다른 아람과의 전투에서 전사합니다.(왕상22:29-30)
하나님은 아합의 불순종을 지켜보시고 한 선지자를 보내어 그의 멸망을 선포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왕이 근심하고 답답하여 그 왕궁으로 돌아가려고 사마리아에 이르니라."(20:43)"로 아합이 저주 때문에 근심했다는 내용으로 끝이 납니다.
그는 이스르엘의 별궁에 가서 채소밭이나 가꾸면서 남은 생을 살고싶었습니다. 죽을 때 죽더라도 즐길 것을 즐기고 먹고 싶은 것 실컷 맛보고 살겠다는 두둑한 배장을 가진자였습니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사는 자는 오늘의 아합입니다. 하나님의 저주를 받고도 잠시 동안만 근심하고 답답해 했을 뿐 나물밭만 있으면 그 마음은 다시 태평해 질수있다는데 아합의 문제점이 있습니다.
2. 잘 짜여진 각본( 4- ) 법이면 다됩니까?
아합은 위대하고, 이세벨 참으로 대단한 여자입니다. 오해마십시오. 여기서 위대하다는 말은 위가 크다. 그래서 먹는 것 밝히다 죽었다. 대단하다는 말은 짐승의 머리를 대가리라고 하는데 짐승만도 못한 이세벨은 대가리가 단단하다는 말입니다.
1) 아합의 근심
4절 "근심하고 답답하여 식사까지 못하였습니다." 반찬의 꿈이 깨어지니 근심이 되었습니다.
5절 " 무엇이 근심스러워 식사를하지 않느냐고 이세벨이 묻습니다." 이세벨은 아합의 근심을 알아내고 "내가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원을 왕께 드리겠나이다."(7절)하고 약속하였습니다.
2) 이세벨의 각본
법이면 다됩니까? 법은 이혼을 허락하지만 하나님은 이혼은 안된다 하십니다. 낙태를 미국법은 인정하지만 그것 때문에 한해에 생명이 1,800만명이나 죽어갑니다. 나치가 유태인 600만명을 학살했는데 그 보다 더 많습니다.이세벨은 완전한 각본을 짰습니다. 먼저,
(1) 합법적 일을 꾸몄습니다.(8)
먼저 아합의 이름으로 편지를 썼습니다. 그리고 어인을 찍었씁니다. 편지를 받는 관리인들이 거절하지 못하도록 공권력을 남용하였습니다.씨랜드 사건 처럼 말입니다.
(2) 친구들을 통해 죽이도록 했습니다. (8)
"그 성에서 나봇과 함께 사는 장로와 귀인들에게 보내니"(8) 서로 알력이 생기도록 작전을 구사했습니다. '저를 끌고 나가서 돌로 쳐 죽이라"(10) 는 살인 청탁을 했는데 그 담당자를 나봇의 이웃과 친구들이었습니다. 나봇은 이스르엘 사람이고 왕궁옆에 있었던 것으로 보아 이곳에서 대대로 살아온 동네 유지중 한사람이었습니다. '장로들이란 동네 사정을 잘아는 자들이며 성문에 앉아 백성들의 민원과 형사문제를 처리하고 판결하는 지도자들이었습니다.
나봇을 죽이는데 참여한 배신자들은 다른사람이 아니라 바로 가장 친한 죽마고우들이었습니다. 우리가 배신을 당할 때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배신을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가까운 친구나 잘 아는 사람으로부터 배신을 당합니다. 나봇의 친구들은 애매한 나봇을 편들었다가는 이세벨과 아합의 미움을 받느니 보다는 나봇을 희생시키고 왕의 특혜를 받는 편을 택하였습니다.
(3) 신앙을 이용하였습니다.
"금식을 선포하고........... 비류 두사람을 그 앞에 마주 앉히고 (9-10)
금식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살피거나 주의 뜻을 헤아리거나 혹은 하나님께 참회할 때 하는 신앙적 행위입니다. 그런데 장로와 귀인들은 갑자기 금식을 선포함으로 종교적 위기의식을 조장하여 하나님을 노엽게했는지를 알아보게 하였습니다.
각본은 잘 짜여져 있었습니다. "나봇을 백성가운데 높이 앉혔습니다."(9)
두 사람의 강패를 동원하였습니다. 강패둘은 나봇을 향해 말합니다. '네가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13) 모세에 율법에 사형을 시키려면 두명의 증인이 필요했습니다. (민35:30)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면 돌로 쳐 죽여야 했습니다.(레24:15-16)
그리고 나봇을 성 밖으로 끌고나가 서(13) 돌로쳐 죽였습니다. 돌로 쳐 죽이기 위해서는 여러 사람이 달라붙어야 합니다. 결국 의인 나봇의 죽음에는 여러사람이 가담하게 되고 당연한 죽음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우리의 친구 나봇은 하나님 말씀을 지키려다 친구에게 배신 당하고 왕과 이웃의 미움을 받아 죽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왕으로부터 사람들로부터 친한 제자로부터 배신을 당하고 말씀을 이루기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오늘에 순교는 말씀을 지키려는데 따르는 십자가가 순교입니다.
3. 사건의 결과(15-16)
아마 여러분은 혹시 이세벨 같은 여인을 얻었으면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세벨은 남편을 위한 철저한 헌신적 여인이었습니다. 남편을 기쁘게 해 주기 위해서는 못할것이 없는 여자였습니다. 남편의 수심을 금방알아 차렸고,(5) 위로도 할 줄 아는 여자 였습니다.(7) "식사도 하시고 마음을 즐겁게 하소서." 왕이 원하는 나봇의 포도원도 주겠다고 약속도 하였습니다.
"왕이 이제 이스라엘을 다스리니까?" 당신이 이스라엘 왕이 맞습니까? 충고도 하는 적극적인 여자였습니다. 이세벨은 아합편에서 본다면 그야말로 남편을 위한 해결사 였습니다. 남편이 가장 원하는 것을 손에 쥐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나봇의 포도원은 아합과 그의 가문을 파멸시키는 사약이었습니다. 그것이 결정타가 되어 인생을 끝장나고 말았습니다.( ) 근심과 답답함에 누워있던 자가 나봇이 죽었다는 말에 "곧 일어 났습니다."(16) 인간이 얼마나 간사합니까? 남의 불행을 보고 기뻐하다니요? 다른 사람을 불행하게 해놓고 얻은 명성이나 재물을 기뻐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는 돈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하고 소중한 것은 삶에 애착을 가지고 일하는 터전과 일할수 있는 기쁨과 보람이 있는 삶입니다. 오늘도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는자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개들은 나봇의 피나 이세벨과 아합의 피나 죽은몸이라면 달려듭니다. 그러나 의인 나봇이 흘린 피와 아합과 이세벨이 흘린 피는 다른것입니다.
가인이 죽였던 아벨의 피는 이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피였습니다."가라사대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창4:10) 아합과 이세벨은 나봇의 피를 흘리기 위해서 두명의 증인으로 내세웠지만 아합과 이세벨이 피를 흘릴때는 하나님이 증인이셨습니다.
왕하9:35-37)
결론) 순교자 나봇
이러한 일은 일어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왜 이러한 일이 일어납니까?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없기 때문입니다. 나봇의 죽음은 순교입니다. 나봇의 죽음은 나의 신앙자세와 직결됩니다. 내가 진리에 대해서 외면하면 우리의 친구 나봇이 피를 흘립니다. 나의 이익만 추구하기 위해서 등을 져버린 친구들이 될 때 우리의 친구 나봇이 신음하며 돌에 맞아 죽습니다. 내가 신앙으로 나태해지고 죄인에 길에 들어설 때 나봇과 그의 포도원은 탈취당합니다.
내가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지켜야 만이 나봇이 살아날 수 있습니다. 나봇을 나의 친구로 삼고 껴안아야 합니다. 우상 앞에서도 여호와의 법으로 살고 목숨걸고 왕 앞에서도 믿음을 고백하며 살았던 그래서 왕의 요구를 거절하였던 사람 나봇, 그는 우리의 살아 있는 양심입니다.
장로와 귀인들 앞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친구로부터 배신속에서 죽어간 사람 나봇, 아합이 다스렸던 악한 시대에 의연히 여호와 편에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려고 항거하다가 죽어간 사람 나봇 그는 순교자 였습니다. 돈으로도 안되는 것이 있음을 보여준 사람이었습니다. 법이면 다인 것 처럼 사는 시대에 법으로도 어절 수 없는 일이 있음을 하나님은 나봇을 통해 나타내셨습니다.
오늘 이렇게 나봇 처럼 다른 사람이 다 악으로 달려가도 나만은 하나님 편에 설 수 있는 대대한 일이 아니어도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말씀"을 지키려고 애쓰는 나봇을 하나님은 찾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그러한 사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지키다 사라진 사람 나봇 처럼 말씀을 지키다 죽어갈 각오를 하는 절개있는 순교자들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얼떨결에 물에 뛰어든 노인이 아닌 진리 앞에서 자신있게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이 되십시다.
출처 한서노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