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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케주조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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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의 겟케이칸 사케
'치즈와 사케?' 뜻밖의 궁합에 놀랄 걸요!
사케와 치즈 페어링
‘치즈는 와인 안주’라는 고정관념 때문에 사케와 치즈를 함께 즐기는 경우가 아직 많지는 않다. 그러나 이 두 가지를 실제로 같이 먹어보면 예상 밖의 궁합에 깜짝 놀라게 된다. 치즈와 사케는 서로 다른 문명권에서 발달해온 음식과 술이지만 ‘발효’라는 공통분모가 있다. 사케와 치즈의 만남에서 의외의 마리아주를 발견해 보자.
사케와 치즈, 국경을 넘나드는 마리아주
일본에서는 ‘소금만 있으면 사케가 술술 넘어간다’는 말이 있다. 염분이 있어 짠맛이 나는 치즈는 기본적으로 어떤 사케와도 좋은 궁합을 보여준다. 일본에서는 굴에 치즈를 얹어 구워내는 ‘치즈노가키’, 말린 명란을 치즈 안에 넣어서 말린 ‘치즈타라’ 등 치즈를 활용한 메뉴가 사케 안주로 대중화됐다. 일반 소비자들도 사케에 간단한 치즈 요리를 곁들이는 등 치즈와 사케의 조합이 자연스럽다. 원래 일본에서는 마요네즈를 안주로 삼아 사케를 마시는 경우가 많은데, 사케에 치즈를 곁들이는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잘 어울린다.
일본의 프렌치 레스토랑 역시 사케를 페어링하는 등 국경을 넘나드는 ‘마리아주(Mariage)’를 선보이고 있다. 서양에서 만들어진 치즈가 일본의 사케와 어울려서 독특한 맛을 살려내는 것이다. 와인의 경우 치즈와 함께 먹어 온 역사가 긴 만큼 어느 정도 페어링 원칙이 정해져 있는 반면, 치즈와 사케 페어링은 막 연구가 시작된 단계다. 치즈와 사케의 맛있는 궁합을 찾아내려면 치즈와 사케 각각의 맛을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다.
지켜주고 돋워주는, 치즈&사케 페어링의 매력
사케의 특성과 치즈 페어링에 관한 설명을 듣기 위해 일본의 겟케이칸(月桂冠)을 찾았다. 겟케이칸은 교토의 유서깊은 사케 메이커로서, 1637년에 설립돼 오늘날까지 전통 방식과 동일한 과정으로 술을 생산하고 있다. 사케 판매량으로는 일본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며, 1989년에 미국에 진출하면서 ‘겟케이칸’이라는 브랜드명이 니혼슈의 대명사가 됐을 정도로 서양에서도 잘 알려진 브랜드다. 영국의 ‘Japan Center’에서는 일본을 알리는 행사의 일환으로 ‘사케와 치즈 페어링’에 관한 세미나도 진행한 바 있다.
겟케이칸의 주조를 총괄하는 아이카와 도지(杜氏)는 “어떤 사케와 먹느냐에 따라 항상 먹던 치즈도 새로운 맛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사케와 치즈 페어링의 매력“이라며, “치즈와 사케 페어링은 와인과는 다른 관점에서 치즈의 맛을 느끼게 해준다”고 전했다. 와인 페어링의 경우 와인의 맛과 치즈의 맛을 서로 살려주는 것이 기본 원칙이다. 와인과 치즈가 서로 같은 레벨에서 상생한다면, 사케는 치즈와 같은 레벨에서 대응하는 것이 아닌 치즈가 지닌 맛을 지켜주고 돋워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정미율, 제조 방식에 따라 나뉘는 사케의 종류
‘니혼슈(日本酒)’라고도 부르는 ‘사케(酒)’는 쌀을 발효해 만든 ‘청주(淸酒)’를 가리킨다. 치즈의 세계가 깊고 넓듯이 사케 역시 유구한 역사와 다양성을 지니고 있다. 사케의 종류는 수만 가지에 이르며, 원료가 되는 쌀의 정미율에 따라, 알코올의 첨가 여부와 살균 여부 등 제조 방식에 따라 종류가 나뉜다.
낱알의 겉부분을 30% 깎아내면 ‘혼죠조(本釀造)’, 40% 깎아내면 ‘긴죠(吟釀)’, 50% 깎아내면 ‘다이긴죠(大吟釀)’ 등으로 등급이 나뉜다. 기본적으로 정미율(精米率)이 낮을수록, 즉 낱알의 겉 부분을 많이 깎아낼수록 백미 본연의 섬세한 향을 느낄 수 있는 고품질의 사케가 만들어진다. 여기에 알코올을 첨가하지 않고 쌀과 누룩으로만 발효해 만든 술에는 준마이(純米)를 붙여 부른다. 열처리 방법을 기준으로 가열 살균하지 않은 술을 나마자케(生酒)라 하며, 숙성 기간을 기준으로 오래 숙성한 술을 고슈(古酒)라 한다.
이러한 분류법을 숙지하면 ‘준마이 다이긴조’, ‘긴조 나마자케’ 등 사케 이름을 통해 정미율과 제조법 등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분류 방법은 사케의 맛이나 향을 모두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가지 맛 타입에 따라 어울리는 치즈를 골라보자
음식과 술의 페어링은 무엇보다도 맛이 중요한 요소이므로, 제조법에 따른 분류보다는 맛과 향을 기준으로 나눈 분류법을 참고하면 어울리는 치즈를 고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전통적으로는 사케에 함유된 당분수치를 기준으로 단맛이 강한 ‘아마구치(甘口)’, 쌉쌀한 맛의 ‘가라구치(辛口)’ 등으로 맛을 표현하기도 했으나 이것만으로는 맛의 특성을 충분히 설명하기 어려웠다.
최근에는 맛과 향에 따라 사케를 4가지 타입으로 나누고 있다. 화려한 향이 특징인 쿤슈(薰酒), 깔끔하고 상쾌한 소슈(爽酒), 고급스런 감칠맛을 느낄 수 있는 준슈(醇酒), 복잡한 향과 숙성미가 우러나는 쥬쿠슈(熟酒) 등이다. 테이스팅에 의한 분류법이므로 어떤 타입에 속하는 사케인지를 알면 어울리는 치즈의 종류를 대략적으로 추려볼 수 있다.
‘쿤슈’의 과일향과 같은 화려한 풍미는 흰곰팡이 치즈처럼 비교적 짧게 숙성한 크리미한 치즈, 밀키한 풍미가 입안에 남는 비가열 압착 타입 치즈와 궁합이 맞다. 물처럼 후루룩 마실 수 있는 ‘소슈’에는 숙성하지 않은 프레쉬 타입 치즈가 어울린다. 사케 본연의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는 ‘준슈’에는 숙성감이 있는 흰곰팡이 치즈나 쉐브르 치즈, 장기 숙성한 가열 압착 타입 등 폭넓은 조합이 가능하다. ‘쥬쿠슈’에는 강한 풍미의 치즈, 즉 블루치즈나 숙성이 진행된 흰곰팡이 치즈, 농후한 맛의 워시타입 치즈를 추천한다.
사케 전문가가 추천하는 ‘치즈&사케 페어링’
사케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케 전문가들은 사케와 치즈를 어떻게 즐기고 있을까? 겟케이칸에서 주조를 담당하는 전문가들에게 조언을 들어봤다. 겟케이칸의 주조를 총괄하는 아이카와 도지는 ‘생주인 나마겐슈(生原酒)와 흰곰팡이 치즈인 카망베르 치즈’를 최고의 궁합으로 꼽았다. 카망베르 치즈의 크리미하고 농후한 맛을 나마겐슈의 높은 알코올 도수와 강한 산미로 확 잡아주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주조부의 야마나카 부장은 훈제 고다 같은 숙성기간이 길고 향이 깊은 치즈와 장기 숙성한 고슈를 추천했다. 또, 목넘김이 좋은 가벼운 사케라면 어떤 치즈를 꼬집어 추천하기보다는 거의 모든 치즈와 잘 어울릴 것이라 조언했다. 주조부의 사카모토 과장은 “나마자케는 프랑스 요리와도 무리 없이 페어링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나마자케의 산미가 성분은 다르지만 화이트 와인과 같은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냄새가 강한 워시타입 치즈나 독특한 향이 있는 쉐브르 치즈에는 ‘당질제로’ 사케를 권했다. 당질이 없어 매우 드라이하기 때문에 입안에 남은 치즈의 강한 향기도 씻어줄 수 있어서다. 블루 치즈처럼 향기가 강하면서 짠맛이 강한 치즈에는 니고리자케(濁り酒)를 추천했다. 고형분이 남아있어 바디감이 강하고 단맛이 나기 때문에 블루 치즈와 잘 어울린다.
마지막으로, 아이카와 도지는 “어떤 사케에 어떤 치즈가 어울린다,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은 절대적인 원칙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음식과 술의 페어링은 그것을 즐기는 사람의 기호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규칙에 따라 사케를 페어링하는 것보다, 자유롭게 자신만의 조합을 찾아가길 권한다”고 덧붙였다.
글·사진 치즈마스터 강진명 / 출처 조선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