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의 심판을 믿지 않아도 그날은 반드시 옵니다. / 2022년 8월 21일 주일 오후 예배
본문 / 창세기 19:12-29
하나님은 아모스 3장 7절에서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시대마다 선지자들을 부르시고 그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비밀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비밀은 구원과 심판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가까이 왔다는 것과 그러나 회개하면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메시지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내신 종 선지자들의 메시지를 듣고 회개한 사람들은 많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보내지 않고 그냥 심판을 하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공의를 행하시기 전에 반드시 긍휼을 베푸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섬기지 않던 니느웨를 심판할 때에도 먼저 요나를 보내 사랑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니느웨는 회개하였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베푸시는 긍휼과 인자를 깨닫지 못하고 회개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완악함과 강퍅함은 예수님이 오셨을 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게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교회에 던진 첫 메시지는 “회개하라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가까이 왔으니 준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을 듣고 회개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준비한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공의로 심판을 행하기 전에 반드시 인자와 긍휼을 베풀어 회개할 기회를 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심판이 아니라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공의보다 훨씬 강력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자는 천대까지 베풀며 악행을 자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천대와 삼사 대가 비교가 됩니까? 하나님의 공의는 경우 삼사에 불과하고 하나님의 사랑은 천에 이를 정도로 광대하지만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은 안타깝게도 풍성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이르지 못하고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에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마지막 심판의 정확한 시기와 때는 철저하게 비밀에 붙이셨습니다. 그것은 예수님도 모르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미 인간의 역사를 통해 심판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심판의 때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심판을 준비하는 믿음인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저를 요한계시록과 종말론의 권위자라는 어떤 목사님이 지도하는 한 단톡방에 초대를 하였습니다. 목사님이 미안해서 나가지도 못하고 그냥 있는데 종말론의 대가라는 말도 제가 생각하기에는 민망합니다.
사실 저는 종말론에 대한 이론과 학문적인 것에는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종말론에 대해 훤히 알고 있는 사람이 심판을 준비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야구를 해설하는 사람들이 야구의 지식에 대해서는 박사들입니다.
공을 칠 때 하체 밸런스가 일찍 무너진다, 중심이동이 좋지 않다, 공을 끝까지 보지 않는다는 등 타율이 좋지 않은 이유에 대하여 이런저런 진단을 하고 처방을 내립니다. 그런데 타격의 이론에 대해 해박한 그 사람들이 실제로 타석에 서면 자신이 설명하던 그 이론을 그대로 실전에 발휘할 수 있습니까?
자신이 말한 대로 할 수 있다면 해설이 아니라 선수로 뛸 것입니다. 이론에 대해 잘 알고 있지만 실전에서 그 이론을 실력으로 발휘할 수 있는 힘이 없는 것입니다. 속된 말로 입만 산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이래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특히 목회자는 목회를 하면 할수록 입만 산 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가장 위험한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오래하는 사람들도 아주 위험합니다. 머리에 든 것은 많아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쌓여가고 성경은 이렇다고 설명은 잘하지만 정작 자신의 삶에서는 행함과 순종이 없는 빈껍데기만 남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지식이 아니라 순종입니다. 하나님은 읽고 지식을 쌓으라고 성경을 준 것이 아니라 순종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왜 인간의 역사에 물로 심판을 하셨겠습니까? 마지막 불 심판을 보여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아마 물로 세상을 심판하는 것을 보여주시지 않았다면 볼로 심판하겠다는 말씀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을 겁니다.
하나님은 물로 심판하는 것을 보여주었음에도 그래도 불로 심판할 것이라는 말씀을 믿지 않는 자들을 위해서 소돔과 고모라를 통해서 불 심판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소돔과 고모라가 이스라엘보다 더 많은 죄를 지은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네게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게 행하였더라면 그 성이 오늘까지 있었으니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소돔과 고모라의 불 심판이 반드시 이 세상에 임하는 날이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 있을 마지막 불 심판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그 전에 죽어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갈 것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심판을 준비하지 않고 사는 것은 미친 짓인 겁니다. 언제 하나님이 부르실 지도 모르는데 자신이 원하는 만큼 살줄 알고 심판은 안중에도 없고 그저 이 세상에서 사는 것에만 신경을 쓰고 사는 미련한 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교회는 수도 없이 들락거리지만 심판을 준비하지 않고 그저 농담처럼 듣는 사람들이 많은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롯에게 이르되 이 외에 네게 속한 자가 또 있느냐 네 사위나 자녀나 성 중에 네게 속한 자들을 다 성 밖으로 이끌어 내라 그들에 대한 부르짖음이 여호와 앞에 크므로 여호와께서 이 곳을 멸하시려고 우리를 보내셨나니 우리가 멸하리라 롯이 나가서 그 딸들과 결혼할 사위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 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의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겼더라.”
노아가 전하는 물 심판을 그 수많은 사람들 중에 단 한 사람도 믿지 않은 것처럼 소돔과 고모라에 있는 사람들도 하나님이 곧 불로 심판하실 것이라는 말씀을 농담으로 여긴 것입니다. 말 같지도 않게 생각한 것입니다. 롯의 사위들은 장인의 말이 어이가 없었던 것입니다.
심판의 메시지는 많은 성도들에게 사실 농담 같이 들리는 것입니다. 현실성이 없는 것입니다. 산 사람에게는 죽는 날까지 자기가 죽는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내가 세상에 이렇게 숨을 쉬고 보고 먹고 마시고 살아있는데 그것을 못하고 죽는다는 것이 실감이 나겠습니까? 사람들이 내 몸을 관에 넣고 불에 태우고 땅에 묻는 것이 실감이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심판을 모르고 심판을 준비하지 않고 사는 성도들을 그저 세상을 사랑하며 육체의 정욕과 탐심을 위해 살았던 한 어리석은 부자로 비유하셨습니다.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이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힘들다고 하셨습니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하셨습니다. 그 부자가 누굽니까? 돈 많은 사람이 아닙니다. 천국에 들어간 부자도 많고 지옥에 간 가난한 자들도 많습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부자입니다. 세상의 신인 돈과 재물과 힘과 영광으로 자신의 영혼을 섬기는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세상의 힘과 영광과 재미와 즐거움과 쾌락으로 육체의 정욕과 탐심을 섬기는 자아숭배자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들인 것입니다. 이 세상의 것으로 자신의 영혼을 섬길 수 있겠습니까? 자신을 하나님을 만들기 위해 사는 불쌍한 자들인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은 믿고 싶지 않은 농담처럼 들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마치며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느니라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지금부터 심판을 준비해야 한다고 아무리 말을 해도 안 듣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아직도 나는 살 날이 많이 남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나를 위해 더 즐기고 산 다음에 준비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나이가 든 사람들은 지금까지 살아온 것처럼 앞으로도 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기와 때는 하나님이 정해놓으셨습니다. 아니,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온 집에서 자다가 갑자기 내린 폭우가 들이닥쳐 일가족이 사망할 줄을 알았겠습니까? 내 집은 자하가 아니라 안전합니까? 차를 타고 가다가 물에 빠져 죽을 것을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건장한 남자가 비가 온 날 맨홀에 빠져 죽을 것이라고 누가 생각이나 합니까?
우리는 언제 어떻게 죽을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지금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것을 미리 준비해야 하는 겁니다. 나는 지금 이 시간 하나님이 나를 부르셔서 심판대 앞에 선 다면 하나님이 내 믿음을 받아 주실까 이것을 생각하고 준비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심판을 준비하며 산다는 것은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쉽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이미 죽어서 심판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한 번 기회를 주셔서 세상에 온 다면 그 사람들은 정말 미친 듯이 하나님을 섬기며 심판을 준비할 것입니다.
제가 그걸 믿음으로 압니다. 이 세상에서 태어날 때부터 부자 집안에서 태어나 한 평생을 재벌로 살며 손에 더러운 것을 한 번 만지지 않고 좋은 옷만 입고 귀한 것만 먹고 궁궐 같은 집에 살며 많은 사람들을 종으로 부리며 수많은 사람들에게 칭찬과 사랑만 받고 살았지만 지옥에 떨어져 물 한 방울도 축이지 못하는 그 부자에게 앞을 보지 못하는 소경에다 두 손이 없고 다리도 없는 장애에 돈 한 푼 없는 병든 거지로 세상에 나가 살아보겠냐고 했을 때 거절하겠습니까?
하나님이 그렇게 할 일은 없겠지만 만약 그런 기회를 주신다면 그 부자는 정말 하나님이 주시는 그 기회가 고맙고 감사하여 미칠 듯이 기뻐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왕 노릇하며 온갖 부귀와 영화를 누리고 말 한마디에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살리기도 한 사람이 지옥에 떨어져 고통을 받는 중에 하나님이 세상에 나가 아무 힘도 없이 살다가 사람들에게 억울하게 당하기만 하는 자로 살아보겠느냐고 한다면 목을 놓아 엉엉 울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자신에게 잘 못한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고 미워하며 증오를 품고 지옥에 간 사람에게 하나님이 전에 만난 원수보다 더 훨씬 악한 원수를 만나 그 원수에게 죽어야 하는데 그래도 한 번 세상에 나가보겠느냐고 기회를 준다면 눈물이 바다가 될 것입니다.
지옥은 그런 곳입니다. 거지여도 병들어도 원수에게 죽음을 당해도 한 번 기회만 준다면 살고 싶은 곳이 세상인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그런 엄청난 기회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낫다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살아 있는 자들에게 누구나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소망이 무엇입니까?
심판을 준비하며 심판을 받지 않고 영원한 기쁨만이 있는 천국에 들어갈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심판을 준비하지 않고 죽은 재벌과 대통령과 인기스타보다 이 세상에서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살아 있어 심판을 준비하는 내가 훨씬 낫은 것입니다.
훨씬이 무엇입니까? 세상 무엇으로도 비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 세상에 살아있는 나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준비하며 천국을 소망할 수 있는 기회는 이 세상을 다 준다고 해도 바꿀 수 없는 엄청난 은혜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놀라운 축복과 기회를 많은 성도들이 먼저 세상을 떠난 사람들처럼 놓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절대로 구원을 받고 천국에 가는 기회를 놓치면 안 됩니다. 한 번 심판을 받으면 다시는 기회가 없습니다. 그러니 천국에 가는 길이라면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것입니다.
롯의 아내를 생각해 보십시오. 정말 롯의 아내처럼 안타까운 사람이 또 있을까요? 의롭게 살던 사람을 남편으로 만나는 복을 받았습니다. 순전히 롯의 아내는 롯 때문에 유황불이 떨어지는 소돔과 고모라에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천사들은 빨리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고 했습니다. 돌아보지 말고 도망가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롯의 아내는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께로부터 유황과 불을 소돔과 고모라에 비같이 내리사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주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 말씀합니다.
오늘날 교회에도 롯의 아내와 같이 안타까운 성도들이 얼마나 많을까요? 구원으로 초대는 받았지만 순종하지 못하며 구원을 이루어가지는 못하고 결국에 심판을 받고 지옥에 떨어지는 사람들이 많은 것입니다.
예수님도 롯의 처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부터 불과 유황이 비오듯 하여 그들을 멸망시켰느니라 인자가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 그 날에 만일 사람이 지붕 위에 있고 그의 세간이 그 집 안에 있으면 그것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 것이요 밭에 있는 자도 그와 같이 뒤로 돌이키지 말 것이니라 롯의 처를 기억하라 무릇 자기 목숨을 보전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밤에 둘이 한 자리에 누워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얻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함께 맷돌을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얻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남편과 아내가 함께 잠을 자도 심판을 준비한 사람은 구원을 받지만 심판을 준비하지 않는 자는 구원을 받지 못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어머니와 딸이 함께 맷돌을 갈아도 한 사람을 구원을 받고 한 사람은 구원을 받지 못하는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하면 얼마나 큰 고통입니까? 반드시 심판의 날은 옵니다. 이것을 분명히 믿고 준비를 해야 합니다. 다른 것은 준비를 안 해도 됩니다. 그러나 심판만은 준비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미련한 성도들이 세상의 일은 준비를 철저해 해도 정작 영원한 세계를 결정하는 심판은 준비하지 않는 자들이 너무 많은 것입니다.
심판을 준비하는 것을 뒤로 미루지 마십시오. 십자가에 빨리 정욕과 탐심을 숭배하고 세상을 사랑하는 모든 죄악을 회개하며 못을 박고 마음과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에 순종하며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좁은 길만을 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