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살이 마지막 날입니다.
아침 먹고 부모님들이 챙겨주신 반찬들을 남김없이 버무려서 맛있는 비빔밥을 점심 도시락으로 챙깁니다.
이틀간 묵었던 숙소도 다같이 뒷정리하고 출발하기 전 마지막 사진을 찍었습니다.
삼랑성
강화 삼랑성은 오래된 옛 고성 중 하나입니다. 삼랑성이라는 이름은 단군이 세 아들을 시켜서 성을 쌓았다고 해서 석 삼(三), 사내 랑(郞) 자를 써서 붙은 이름이에요. 또 다른 이름으로는 정족산성이라고도 하는데 성이 위치한 세 봉우리가 꼭 세 발 달린 솥 모양을 이룬다고 해서 붙은 이름입니다.
삼랑성은 1866년 병인양요 때 조선군과 프랑스군이 싸웠던 곳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던 양헌수 장군의 승전비가 놓여있었어요. 승전비 앞에서 삼랑성과 병인양요, 전등사에 대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전등사
전등사는 삼랑성 안에 위치한 오랜 절입니다. 기록에 따르면 고구려 소수림왕 때 처음 건축되었다는 우리나라의 오랜 절들 중 하나입니다. 고려시대 잠시 수도를 강화도로 천도하면서 고쳐짓기도 하였고 광해군 때 큰 불이나 대부분이 불에 타고 다시 짓기도 하는 등 오랜 역사의 흔적이 담겨있는 절이기도 해요.
전등사 안에는 3가지 재밌는 볼거리가 있었습니다. 역사 설명을 먼저 듣고 전등사를 둘러보며 찾아보았습니다.
하나는 대웅전(절의 가장 중심이 되는 건물) 처마에 있는 나부상(벌거벗은 여인상)인데요. 전설에 따르면 광해군 이후 불에 탄 절을 다시 지을 때 건축을 맞은 도편수가 절 아랫마을에 주막집 여인과 사랑에 빠져 장래를 함께한다는 약속을 믿고 공사비 전액을 맡겼답니다. 그러나 큰 돈은 맡은 여인은 마음이 변해 도편수가 잠든 틈을 타 야반도주해버렸고, 이를 알게된 도편수는 배신당한 사랑에 앙갚음하기 위해 여인상을 조각하고 무거운 추녀(지붕)를 떠받을고 있도록 저주를 내렸다는 설이 있어요.
둘째는 대웅전 기둥에 있는 낙서입니다. 병인양요 때 프랑스 군과의 전투를 앞두고 승리와 안전을 기원하기 위해 병사들이 자기 이름을 적어둔 것인데요. 아쉽게도 찾아갔을 땐 대웅전 내부는 청소 중이어서 둘러볼 수가 없었습니다.
셋째는 종루에 있는 종이에요. 특이하게 이 종은 중국의 종인데요. 일제강점기 때 전쟁 막바지 일본은 전쟁에 필요한 철을 구하기 위해 식민지 곳곳에서 철로 된 건 무엇이든 수탈하였어요. 원래 전등사 종도 이때 빼앗겼었지요. 해방 이후에 전등사 주지 스님이 빼앗긴 종을 찾기 위해 이곳저곳 수소문하던 중에 ‘인천항에 군수물자를 보관 중이던 창고에 왠 범종이 하나 버려져있더라’는 소문을 듣고 찾아가요. 가서 보니 본래 전당사에 있던 종이 아니고 이 중국 어느 절인가에 있던 것 같은 종이었어요. 주지스님은 군수물자 창고에 있던 종이면 머잖아 녹아 무기가 될 종이니 가져오자 하여 지금 전등사에 놓였다고 해요.
끝으로 노송나무, 동승나무 라고도 불리는 커다란 두 은행나무에 관한 전설입니다.
각 각 암,수 나무인 두 나무는 조선시대까지 매년 많은 은행열매를 맺었다고 해요. 그러다가 조선 말 강화도령 철종 때 관리들이 기존에 열매 맺던 열 가마니의 은행에서 그 두배인 스무 가마니를 공물로 바치라고 명령을 합니다. 자연히 열매를 맺으면 열 가마니가 한계인데 어떻게 두 배의 열매를 맺을까요.
이 지시를 듣게 된 동승이 노스님께 고했어요.
“스님! 정말 관가에서 너무들 하는 것 아닙니까요?”
“허허, 참으로 난감한 일이다. 얘야, 그렇다고 그 사람들을 미워해선 안 되느니라. 참아야 하느니…….” 노스님은 이렇게 타일렀지만 자신도 깊은 고민에 빠졌답니다.
은행 스무 가마를 내놓을 수도 없었고 관리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더욱 더 탄압할 것이 분명했어요. 노스님은 하는 수 없이 백련사에 있는 추송 스님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했어요. 추송 스님은 도력이 높기로 소문이 난 분이었습니다. 며칠 후 추송 스님이 전등사에 나타났어요. 곧 전등사 일대에 ‘전등사 은행나무에서 은행이 두 배나 더 열리게 하는 기도가 있을 것’이라는 소문이 퍼졌어요.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어 추송 스님의 3일 기도를 지켜보았습니다. 그 중에는 은행 2배로 내라고 명령한 관리들도 섞여있었어요.
“어떻게 은행이 두 배나 많이 열린단 말인가?”
“맞아! 추송 스님이 제 아무리 정성을 드려도 소용없는 짓이겠지.”
사람들은 저마다 이렇게 수군거렸어요.
이윽고 기도가 끝나는 날이었어요.
갑자기 추송 스님의 기도를 지켜보던 관리들의 눈이 얻어맞은 것처럼 퉁퉁 부어버렸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이제 두 그루의 나무에서는 더 이상 은행이 열리지 않을 것이오.”
추송 스님이 기도를 끝내고 사람들에게 말하였지요.
사람들은 저마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어요. 두 배로 열리는게 아니라 더 이상 은행이 맺지 않다니요?! 바로 그때 때 아닌 먹구름이 전등사를 뒤덮더니 비가 무섭게 내렸어요.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며 일제히 땅에 엎드렸지요.
얼마 후 사람들이 고개를 들었을 땐 추송 스님은 물론 노스님과 동자승까지 모두 사라졌어요. 사람들은 보살이 전등사를 구하기 위해 세 명의 스님으로 변해 왔다고 믿게 되었어요. 그 때부터 전등사 은행나무는 열매를 맺지 않는다고 하네요. 열매를 더 이상 맺지 않으니 관리들도 공물을 요구할 수 없게 되었답니다.
전등사를 둘러보고 삼랑성 3개 봉우리 중 하나에 올라 맛난 점심을 먹었어요.
탁트린 하늘과 산 아래 보이는 풍경이 예뻐서 점심 다먹고는 같이 사진 찍으며 시간 보냈습니다.
즐겁게 사진찍다보니 어느새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네요.
아쉽지만 봄 들살이는 이렇게 끝맺었습니다. 하지만 들살이 때 받은 좋은 기운 받아안고 힘차게 여름학기를 시작해보아요!
첫댓글 친근하고 준비된 역사 해설가 선생님들 덕분에 더 풍성한 나들이였죠^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