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 산딸나무 꽃 –
바람이 쥐락펴락 출렁대는 초록 강을
흰 나비 가득 싣고 줄지어 떠내려 간
잘 접은 하얀 종이배 건들건들 떠있다
수해(樹海)의 격랑 속에 부침(浮沈)을 거듭하며
한바다 이르르니 일진광풍(一陣狂風) 휘몰아쳐
화들짝 놀란 나비 떼 망망대해(茫茫大海) 떠돈다
배달9200/개천5901/단기4336/서기2003/06/01 이름없는풀뿌리 라강하
* 쥐락펴락 : 자기 손아귀에 넣고 마음대로 휘두르는 모양
덧붙임)
요즘은 거의 달리기를 못한다.
아내와 동네 운동장 10바퀴 돌거나 배드민턴이나 치고
주말에야 이따금 계족산 산림주에 나서는 정도이다. 달리기 대회 참석은 나에겐 사치이다.
아내와 이따금 가는 갈마공원은 어느덧 초록의 수해(樹海)가 펼쳐졌는데
그 초록 잎에 하얀 나비 떼가 닥지닥지 붙어있어 가만 자세히 살펴보니
나비가 아니고 누가 정교하게 하얀 종이를 접어 올려놓았다.
그런데 그것도 아니다. 꽃이다.
세상에 이런 꽃도 있었나 싶다.
임제(林悌, 1549-1587)가 서도병마사로 임명되어 부임하는 길에
황진이의 묘 옆에 핀 이 꽃을 보고 시조 한 수를 읊었으니...
『청초 우거진 골에 자느냐 누웠느냐
홍안은 어디 가고 백골만 묻혔느냐
잔 들어 권할 이 없어 그를 서러워하노라.』가 그것이다.
배달9200/개천5901/단기4336/서기2003/06/01 이름없는풀뿌리 라강하
산딸나무
익은 열매가 산딸기를 닮았다 하여 산딸나무라 하며 딴이름으로 산달나무,
들매나무, 박달나무, 쇠박달나무, 미영꽃나무, 딸나무, 산여지, 소차축, 사조화 등이 있다.
산딸나무는 층층나무과에 속하는 나무로서 나란한 잎맥과 윤기 나는 잎 표면도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하얀 꽃과 붉은 열매, 그리고 가을에 붉게 물드는 단풍 모두
관상용 가치로 뛰어나서 비싼 값에 팔리는 정원수입니다.
그러나 일반인들이 잘 모를 정도로, 현재 인공적으로 심어진 것은 거의 없고
자생하는 몇 나무만 간신히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우리 나무 중에 경제적 가치 개발이 유망한 종류 중 하나라 한다.
묘목은 많은데 성목(어른나무)이 별로 없어서 현재는 아주 비싼 값에 팔리고 있다.
아주 신나는 소식 한 가지는, 요즘 "나 하나 나무 하나" 운동의 붐이 일어나서,
충북에서는 사과나무 같은 유실수를 인연 맺게 해주고
서강대학교 같은 곳에서는 캠퍼스 내에 각종 기념의 의미를 담은 나무를
학생과 인연지어 심게 하는 등 우리 주변을 자연으로 가득 채우고
관심을 자연스럽게 유발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산딸나무의 꽃이 흰색이라는 것은 외관상의 관찰일 뿐 실제로는 전혀 아니다.
네 개의 꽃잎은 엄밀히 말하면 잎이 변한 "포"일뿐 꽃잎이 아니다.
꽃은 가운데 열매에 작은 점처럼 보이는 부분에서 아주 작게 피는데
그 작은 꽃이 지면 흡사 조그만 골프공 같은 모양의 열매가 된다.
잎은 마주나고 매끄러운 줄기는 단단하기도 하여 공업용 목재로 예부터 쓰였다.
토종 산딸나무는 위 사진처럼 꽃잎(사실은 "포"라고 했지요.)의 끝이 뾰족하고 길쭉한데 비해
미국이나 기타 외국에서 들어온 것은 끝이 둥글고 마치
사과의 윗부분처럼 움푹 들어가 있어서 아주 특이한 아름다움을 지녔다.
마치 둥근 만두피를, 반으로 접어 반원형으로 만들지 않고,
동서남북 사방의 네 군데만 잡고 살짝 들어올린 것 같은 모습의 꽃봉오리는
정말 요상한 모양이라고 딸아이와 웃은 적이 있다.
또한 서양산딸나무(또는 미국산딸나무, 꽃산딸나무)는 잎이 나기 전에 꽃만 가득 가지에 피는데
꽃 색깔은 흰색 외에 연한 붉은 색이 잎맥을 따라 물들여진 게 있어서 더 아름답다.
아쉽게도 관상용이기 때문에 그 아름다움에 대한 대가로
맛을 잃었는지 좀 길쭉하게 생긴 열매는 먹을 수 없다.
꽃에 관심을 갖고 있다면 경험적으로 몇 가지 자연의 섭리를 깨닫게 된다.
꽃이 지나치게 크고 아름다우면 그 대신 열매를 못 맺거나 부실하거나
아니면 맺어도 발아가 잘 안된다는 것도 그런 과정에 얻는 깨달음 중의 하나이다.
백합이나 목련이나 태산목, 겹치자, 겹벚꽃, 겹황매화, 겹벚꽃, 겹홍도 같은 꽃들은
아름다움 대신에 성(性)이라는 성스러운 생명의 기능을 잃어버린 것들이다.
반면에 아주 하찮은 꽃이라고 외면하는 잡초(잡초라는 공식적인 식물은 없지만요)들은
아주 많은 후세를 남기는 내실을 택한다.
어떤 게 더 나은 인생인지는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다르겠지만...
쉽게 말해서 굵고 짧게 사느냐, 가늘고 길게 사느냐 하는 문제일 테니까.
평범한 진리 중에 "장사꾼은 절대 남에게 이익 되는 일은 안 한다."라는 것과
"꽃은 십일 이상 가는 게 없다[花無十日紅]"라는 게 있는데,
쉬우면서도 생활 속에서 실천하기란 참 어렵다.
이 산딸나무는 기독교인들에게 특별한 나무라고 한다.
실제로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크리스마스 장식에 사용되는 호랑가시나무의 잎을
예수님이 못 박힐 때 머리에 썼던 가시관이라 하며
빨간 열매를 그 때 흘린 예수님의 열매라 하여 특별한 의미로 취급하듯이,
이 산딸나무는 예수님이 못 박히신 십자가 나무와 같은 종류라 하여 신성시 한다고 한다.
꽃과 잎을 야여지라 하며 지혈과 수렴의 기능이 있어서 약으로도 쓴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