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시를 지나 안강방면으로 나가다 조교동 삼거리에서 임고방면으로 들면 영천댐 가는길. 4㎞쯤 임고면 소재지에 있는 임고서원은 입구가 확실치 않아 자칫하면 지나치기가 쉽다. 포은 정 몽주선생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서원을 지나쳐 버릴 수는 없는 일.
영천댐을 우측으로 해 조교동 기준으로 23㎞정도에 이르러 거동사(주지 보운스님)를 알리는 표지 판이 나온다. 왼쪽으로 접어들어 2㎞정도를 오르면 보현산 한 기슭에 자리한 고즈넉한 사찰이 바 로 거동사다. 너무 조용해 대밭 바람소리도 숨을 죽이고 있는 것같다. 익숙지 않은 이들에겐 오히 려 거북함을 줄 것같기도 하다.
의상대사가 창건하고 조선때까지만 해도 대찰이었다고 전하는 것이 대웅전앞에 층계를 이룬 터를 봐도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넓지는 않으나 우람한 대웅전은 바라만 보아도 천년세월은 족히 지켜왔음을 금새 알 수 있다. 대 웅전 앞에서 훤히 바라보이는 전경은 「무심」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출출할 때 쯤이라 마음씨 좋은 보살에게 공양을 부탁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천년세월 버텨온 통일신라 돌탑들
잘 닦여진 5번국도를 달려 군위읍에서 의성 금성 방면으로 6㎞ 지점 군위읍 상곡리에 있는 지보 사 3층석탑(보물 제682호). 통일신라때 석탑으로 옥개석 일부가 파손되기는 했으나 기단 면석에 조각된 12지상이 비교적 선명하게 보존돼 있다. 윗기단과 1층 옥신사이 별석에 새겨진 연화문은 석탑의 장식으로 특이하다.
지보사의 대웅전 불사가 한창 추진되고 있어 나중에는 훨씬 더 편안 한 마음으로 탑을 대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지보사에서 나와 한산한 지방도를 따라 의성 금성면으로 향한다. 20분 정도 걸려 금성면 소재지 내에 위치하고 있는 탑리 5층석탑. 국보77호 석탑이라는데 기대가 크다. 이 탑은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높이가 9.56m이고 기단의 폭이 4.51m이다. 경주분황사의 탑을 본 뜬 것같으나 천여년 동안 이탑에 얽힌 온갖 사연들을 들을 수가 없음이 안타깝다. 기단구조와 옥개석 상하면에 전탑의 양식을 볼 수 있고 목조건물의 양식도 겸하고 있어 이 탑이 있기전에 목탑이 있었을 것이라는 추정도 가능하다. 기단이 14석으로 된 지대석과 24석의 면석으 로 구성돼 있고, 모두가 별석으로 구성돼 건축기단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합천 영암사지
쌍사자석등. 88고속도로 고령IC에서 내려 합천으로 국도를 달리면 양쪽으로 숱한 비닐하우스들이 펼쳐진다. 다름아닌 딸기하우스들. 바깥 세상과는 무관한 듯 파란 싹들을 피우고 있는 것이 정겹기도 하다. 합천읍에서 진주쪽으로 계속 방향을 잡으면 삼가면. 여기서 진주방향을 버리고 전형적인 농촌마 을 가회면으로 들면 둔내리 영암사지에 닿는다. 절터를 한참 앞두고 입구에서부터 펼쳐지는 산세를 보는 순간 범상한 절터가 아니라는 짐작이 간다.
황매산을 뒤로 병풍처럼 둘러치고 세월을 버티어 온 영암사터. 반듯하게 놓인 주춧돌들이 그 위 에 건물이 있는 듯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절터 앞에 있어 더 많은 풍상을 견디어 온 듯한 영암사지 3층석탑(보물 480호)은 2층기단위에 3 층탑으로 구성돼 있다. 통일신라시대 것으로 지금은 탑꼭대기의 상층부가 없어져 아쉬움을 준다. 절터의 한가운데 앞쪽에 두마리의 사자가 앞발을 들어 힘있게 상대를 받치고 있는 쌍사자석등(보 물 480호). 두 발을 쳐들어 위의 상대석을 떠받드는 형상이 여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석등이 아 니다.
영양에 가면...
반변천 가에 나란히 자리한 선바위와 남이포.
고려시대인 940년 영양으로 이름 붙여진 이 고을에는 가치있는 불교유적으로 분류되는 모전석탑 (模塼石塔)이 많다. 영양의 문턱 입암면 산해리 반변천 가에 자리잡고 있는 봉감모전5층석탑(국보 187호)은 그 늠름한 자태가 주위 반변천과 어우러져 한폭의 그림을 연출해 낸다. 입암면사무소 앞을 지나 청기로 가는 지방도 2.6㎞ 지점의 연당리에 가면 조선시대(광해군 5년에 조성) 민가 정원의 백미라 할 수 있는 서석지(瑞石池· 중요민속자료 제108호)가 나온다.
인근 개 울 물을 끌어들여 만든 연못에는 여름철이면 연꽃이 만발하다. 마을로 향하는 길 목에는 촛대처 럼 불쑥 솟은 「선바위」가 있고 그 건너편에는 조선 세조때 역모를 꾀했다는 모함을 당해 사약 을 받고 억울하게 죽은 남이 장군의 전설이 새겨진 남이포(南怡浦)가 자리하고 있다.
연당1리 한 전각에는 그다지 크지 않지만 몸체와 광배, 대좌를 모두 갖춘 석불좌상(경북도 유형문화재 제111 호)이 있다. 신라 진성왕 때 조성된 석불로 전체 높이는 2.23m.
조선시대 민가 정원 서식지
입암에서 31번 국도를 따라 영양읍 쪽으로 9㎞쯤 가다 나오는 현1리 표지판을 따라 8백m쯤 들어 가면 논 가운데 십이지삼층석탑(보물 제610호)이,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모전5층석탑(경북도 유형문화재 제12호)이 서 있다. 영양읍 화천리에는 민가에 파묻혀 아담하다 싶은 3층석탑(보물 제 609호)이 나타난다. 규모는 작지만 지붕 처마선 뻗친 모습이 당당한 데다 몸 전체에 장식한 도드 라진 조각은 애써 이곳을 찾은 사람들의 눈길을 빼앗기에 충분하다.
봉감모전5층석탑.
영양읍에서 4.8㎞달린 일월면 소재지, 도계삼거리에서 좌측으로 청량산(봉화)방면 지방도를 따라 가다 보면 주실마을에 닿는다.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으로 시작하는 「승무」로 유명한 시인 조지훈(1920~1968)의 생가인 주실조씨의 종택(경북도 기념물 제78호)이 있다. 최근 이 집 앞에 조 지훈 시비가 마련된 이후 문학기행을 하는 사람들이 자주 찾고있다. 되돌아 나와 수비면을 향해 가다 문암삼거리서 좌측으로 난 31번 국도를 따라가면 여름철이면 울창한 활엽수림이 맑은물에 얼굴을 담그고, 가을철이면 온몸을 불그레하게 화장한 용화계곡이 펼쳐진다. 내친 김에 이곳을 따 라 오르면 일월산 정상이 나온다.
수비면 소재지에서 좌측으로 난 수하계곡과 울진 백암온천 쪽으로 펼쳐진 본신계곡은 태고의 신 비로움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계곡 한 가운데 수백년된 소나무 향기에 도취 할 수 있는 검마산 자연휴양림이 있다.
영양의 최 남쪽 석보에는 소설가 이문열의 고향이자 그의 소설 무대가 된 재령이씨 동족마을(두 들마을)이 형성돼 있다. 인근 화매폭포나 삼의계곡은 여름철 물놀이 장소로 제격이다.
팔공산에 가면...
팔공산은 주봉인 비로봉(1천1백92m)을 중심으로 동쪽으로 동봉~관봉(갓바위), 서쪽으로 서봉~가산산성에 이르는 30km의 긴 산맥을 이룬다. 웅장한 산세가 경산· 영천· 칠곡· 군위에 까지 이르는 대구의 진산이요 명산이다.
팔공산의 불상들. 좌로부터 동봉· 신무동· 염불암· 동화사 입구에 있는 마애불좌상. 곳곳에 남아있는 숱한 약사여래상은 팔공산이 우라나라 약사신앙의 발원지임을 말해준다.
팔공산은 대구시 동구와 경북 4개 시군에 걸쳐있는 만큼 오르는 길도 다양하다.
동화사에서 주능선으로 오르는 코스로 △부도암~염불암~동봉 △폭포골~신령재~염불봉~동봉 코스가 있고 △수태골에서 서봉을 거쳐 동봉으로 가는 등산로도 있다.
그밖에 △파계사~파계재~파계봉~서봉 △갓바위 집단시설지구~관봉(갓바위)~인봉~신령재~동봉 △ 은해사~중앙암~능성재~신령재~동봉에 이르는 코스등 등산길 마다 나름대로의 정취가 있다. 계곡이 수려하고 산봉이 웅자하여 수많은 사적을 품고 있는 팔공산의 옛 이름은 공산(公山)· 부 악(父岳). 고려 태조가 후백제의 견훤에게 역습을 당해 신숭겸· 김락등 8명의 장수가 전사한 곳 이기도 하다. 그때문에 팔공산(八公山)이라 부른다는 설도 전한다.
팔공산은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桐華寺)를 비롯, 고려대장경 판본을 소장했던 부 인사와 파계사· 관암사 등의 사찰과 비로암· 부도암· 양진암등의 암자가 골짜기 마다 불법의 등을 밝히고 있다.
한티순교성지.
팔공산 남쪽자락에 자리잡은 대가람 동화사는 「오동나무 꽃」이란 절 이름부터가 다분히 시적이다. 신라 헌덕왕의 셋째 왕자인 심지스님이 절을 중창하던 어느 겨울 오동나무 꽃이 가득하여 동화사로 불렀다는 유래가 전하는 고찰이다.
천왕문격인 옹호문을 넘어서면 봉서루라는 독특한 이름의 문루가 의젓하게 순례자를 맞는데, 봉 서루 뒷면에 걸린 영남치영아문이란 현판이 임진왜란때 사명대사가 지휘한 경상도 승군의 총지휘 소였음을 되새겨 준다.
동화사의 주건물은 봉서루 정면의 괘불대와 노주 건너편 축대에 반듯하게 앉은 대웅전. 법당안에 서 예불을 올리는 불자들의 머리위 천정에는 세마리의 용과 여섯마리의 봉황이 화려하게 조각되 어 있다. 봉황의 날개를 달고 극락세계에 이를 것 같은 환상에 빠질법 하다.
동화사에는 근래 조성된 세계 최대규모의 석조약사여래불상이 눈길을 끈다. 12층 아파트와 맞먹 는다는 33m 높이에다 둘레 16· 5m의 거대한 불상 「통일약사여래석조대불」. 석불의 몸체 안에 미얀마 정부가 기증한 부처님 진신사리 2과를 모셔 그 웅장함에다 신비로움까지 더했다. 대불 앞 에는 국내 최대 규모인 17m의 통일석탑 2기와 7· 6m의 통일석등 2기를 세워 민족통일을 염원 하는 불자들의 간절한 발원을 모았다.
동화사의 주건물 대웅전. 축대아래 한쌍의 괘불대와 노주가 보인다. 반원형의 층계도 독특하다. 팔공산은 갓바위라 불리는 석조여래좌상을 비롯해 도처에 수많은 약사여래상이 남아 있어 우리나라 약사신앙의 대표적인 발원지임을 말해준다.
팔공산 만큼 약사여래불상이 집중된 산악도 없다.
해발 8백50m의 관봉 정상에 자리한 갓바위 부처에는 입시철을 앞두고 전국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팔공산 동쪽 기슭은 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銀海寺)를 품고 있다. 호방한 품세를 자랑하 는 은해사는 백흥암· 운부암· 거조암· 백련암등 여덟 부속암자를 거느린 고찰. 암자로 오르는 널찍한 산길을 따라 걷다보면 팔공산 자락의 청정한 가을색에 흠뻑 젖는다. 은해사는 찾는이로 하여금 그만큼 넉넉하고 여유로운 마음가짐을 요구한다. 팔공산 서쪽은 한티재를 분수령으로 칠곡 동명과 군위 부계가 반대편 산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동명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아름다운 5층전탑을 가진 송림사가 있고, 재너머 부계 에는 제3석굴암으로 불리는 군위 삼존석굴이 있다.
한티재 정상 조금 못미친 곳, 구한말 천주교도들의 순교지. 한티순교성지가 있으므로 인해 팔공산 은 종교적으로도 편협된 산이 아님을 말해준다. 천주교의 박해를 피한 신자들이 은신하던 초가 주변의 갈꽃이 순교자들의 넋인 양 하얗게 피어있다.
군위에 가면...
▨삼존석굴 군위 부계면에도 석굴암이 있다. 팔공산 북쪽 기슭에 제2석굴암으로 불리는 삼존석굴이 바로 그 곳. 천연절벽의 자연동굴속에 만들어진 삼존석굴은 493년(소지왕15)에 극달이 창건했다고 전해지나 학계에서는 7세기후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경주석굴암보다 조성연대가 앞선 것으 로 한국 석굴사원 사상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지상에서 약 20m 높이에 있는 동남향의 자연 석굴은 평면향의 네모 반듯한 바닥에 천장은 한가운데가 가장 높고 사방주위는 차차 낮아지는 하 는 형상이다. 이곳에 아미타삼존불이 모셔져 있다. 본존불인 중앙 여래상의 높이는 2.88m이고, 양 옆 협시불 가운데 왼쪽 보살상은 1.92m, 오른쪽보 살상은 1.8m에 이르는 큰 석불들이다.
▨대율마을
대율리라는 행정지명보다 「한밤마을」로 불리는 것이 더 익숙한 이 마을은 제2석굴암에서 북쪽 으로 내려오다 노송숲이 있는 바로 그 마을이다.
도로 양쪽 5천여평의 터에 수령 2백년이 넘는 노송 수백그루가 두터운 그늘을 만들고 있다. 노송 아래엔 운동기구들과 벤치, 놀이터 등이 있어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나들이엔 더없이 훌륭한 쉼터를 제공한다.
대율리 어디를 가나 제주도로 착각할 만큼 돌담이 흔하다. 그 이유는 70년전 수해로 마을 전체가 돌로 뒤덮였기 때문이라고 전 해진다.
▨인각사
고로면 화북동에 신라 선덕여왕때 의상대사가 세웠다는 절 인각사가 자리잡고 있다.
지금은 도로 변에 위치한데다 쇠락해 조금은 서글프게 보이기도 하는 이 절은 고려시대 말엽 일연이 주지로 머물면서 「삼국유사」를 썼던 곳으로 유명하다. 역사적으로 이처럼 가치있는 인각사가 댐건설로 수몰을 면치 못한다는 이야기엔 안타까움마저 든다. 일연의 흔적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유물인 탑과 비는 탑은 몇차례나 허물어졌으며 비석은 그 글씨 를 깎아먹으면 반드시 합격한다고 믿었던 과거길의 선비들에 의해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있다.
▨화산산성
고로면에 위치한 화산은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험악산 산이나 산정은 평탄한 분지를 이루고 있 어 속세를 떠난 선경이며 또한 전투기술을 연마하는 훈련장으로도 최적지인 요새이다. 숙종35년 병마절도사 윤숙이 병영을 건설하기 위해 사문(四門)의 기초공사를 하고 먼저 홍 예문을 지었다. 홍예문에서 수구문에 이르는 성을 구축하는 중에 전례없는 심한 흉년으로 공사가 중단돼 3백년이 지난 지금까지 전한다.
봉화에 가면...
봉화군청에서 5분 거리면 닿는 석천계곡(봉화읍 삼계리)은 맑은 물과 자연석, 노송이 조화를 이룬 경관도 일품이지만 1백여곳을 웃도는 정자를 보유, 전국에서 가장 정자문화가 발달한 봉화의 또다른 일면을 엿볼 수 있는 곳. 계곡 상류에 자리잡은 석천정사는 조선 명종때 청 암 권동보가 부친 충재 권벌선생의 유덕을 기려 세운 정자로 오랜 세월이 지나도 변형되지 않는 춘양목으로 지어져 본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북지리 마애여래좌상
물야면 북지리 지림사터 옆의 마애여래좌상은 감실(龕室)안의 본존불로 만들어진 신라시대 작품. 감실의 돌벽이 무너지고 불상에도 군데군데 금이 가 있지만 고졸한 미소와 위엄은 그 대로여서 많은 불자들이 찾는다. 호골산이라 불리는 인근 야산에도 유사한 기법의 불상과 석탑이 부조로 제작돼 있어 눈길을 끌지만 연구가 제대로 이뤄지지않아 막연히 같은 시대의 것으로 추정될 뿐.
▨오전약수탕
봉화읍에서 16km 떨어진 물야면 오전약수탕은 시원한 계곡과 약수의 명성으로 알려진 곳.
조선 성종때 보부상들이 발견한 것으로 전해져오며 지난 85년 교통부에 의해 관광지로 지정 됐다. 약수는 탄산성분이 많아 사이다처럼 톡 쏘는 맛이 아주 강하다. 피부병과 위장병에 효 험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사이다처럼 톡 쏘는 맛이 일품인 오전약수.
▨각화사
오전약수탕에서 주실령(780m)을 넘어 군도를 20분가량 타고가면 왼쪽에 각화사 안내판이 보인다. 각화사(춘양면 석현리)는 신라 원효대사가 창건한 고찰로 한때 8백여명의 승려가 수 도, 전국 3대 사찰로 손꼽힌 곳. 최근 증축공사중이어서 고즈넉한 분위기를 찾기 어렵지만 부도, 귀부, 석탑 등은 눈여겨볼만하다. 절집 북쪽 1km지점엔 조선 5대 사고(史庫)중 하나인 태백산 사고의 터가 남아 있다. 북지리 마애여래좌상.
▨청량산도립공원
지난 82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청량산은 봉화군 명호· 재산면과 안동시 도산면에 걸쳐있 는 수려한 산. 해발 870m로 높진 않지만 옛부터 「소금강」이라 불릴 정도로 산 전체가 기 암괴석으로 이뤄져 있어 연간 20만명이 찾는 명산. 청량산 중심에는 원효대사가 창건한 청 량사 유리보전(琉璃寶殿)이 있다. 고려말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한동안 머무른 곳으 로 뒤로 기암괴석을 두르고 앞으로는 탁트인 경관을 자랑한다. 유리보전 현판은 공민왕의 친필. 청량사에는 절에서 직영하는 전통찻집도 있어 피곤한 다리를 쉬어갈 수 있다. 청량사에서 1백m 떨어진 곳엔 퇴계 이황이 성리학을 집대성하고 후학을 배양하던 청량정사 가 있다. 변변한 마당조차 없는 작은 집이지만 찾는 이가 거의없어 호젓한 분위기를 맛볼 수 있다. 「오산당」이라고도 불린다.
창녕에 가면...
화왕산 60만평 억새밭 바람따라 흰물결로 출렁...
창녕에 가면 십리 억새평원을 자랑하는 화왕산이 우뚝 섰고, 생태계의 보고인 우포늪이 태 고의 숨결을 지니고 앉았다. 신라고찰 관룡사를 품고, 부곡하와이를 신기루처럼 보듬고 있는 곳이 창녕이다. 해발 7백57m의 화왕산은 창녕을 상징하는 명산. 화왕산의 가을은 억새가 지천이다. 정상의 60만평 억새밭이 흰 파도처럼 출렁댄다. 해마다 10월이면 이곳에서 갈대제가 열리고, 음력 정월보름이면 국내 최대의 억새풀 태우기로 장관을 이룬다.
드넓은 화왕산 억새평원. 소슬바람이 산마루를 스치면 하얀 억새의 손짓과 노래로 가을의 서정이 무르익는다.
화왕산은 호국의 영산이기도 하다. 홍의장군 곽재우가 임진왜란때 왜군을 격파한 화왕산성 이 아직도 산 정상으로 오르는 관문 역할을 하고있다. 억새평원 안에 있는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는다는 용지(龍池)와, 산성 동문쪽에 자리한 창녕조(曺)씨 득성비도 눈여겨 볼만하 다. 동문에서 산성을 따라 배바위로 오르는 길은 드넓은 평원을 한눈에 조망하며 화왕산의 숨결을 느껴볼수 있는 헌걸찬 등산로. 화왕산 동쪽 구룡산 기슭에 고즈넉히 자리한 관룡사(觀龍寺)는 원효대사가 화엄경을 설파한 신라고찰이다. 입구의 가파른 돌계단과 돌담으로 세운 입구가 특이한데, 대숲과 노송이 에워 싼 절집 뒤로는 구룡산 병풍바위가 절경을 연출한다. 언제 찾아도 아담하고 정감나는 고찰, 관룡사에도 언뜻 가을빛이 어린다.
가을빛이 어리는 관룡사 대웅전 앞마당. 뒤편 구룡산 병풍바위가 절경이다.
관룡사 서쪽 봉우리인 용선대 마루에는 석조석가여래좌상이 동향으로 가부좌하고 있다. 천 년풍상에도 변함없는 자비 가득한 미소. 특히 동지달에 불공을 드리면 한가지 소원은 성취 된다고 하여 「팥죽부처」라는 별명도 가진 석불이다. 용선대로 오르는 길은 솔내음 은근한 오솔길이다. 영산읍내에 있는 영산연지에는 5개의 섬이 있는데, 다리가 놓인 북쪽 섬에는 향미정이란 정 각도 서있다. 가족들과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며 한바퀴 둘러볼만 한 호수다. 연지 바로 동쪽에 있는 영산호국공원은 입구의 다리부터 잘 살펴 보아야 한다 . 1780년에 조성된 것으로 조선말의 한 이름난 석수가 남긴 무지개형 석교이다. 만년교란 석비는 13세 의 천재소년이 쓴 것이라 전한다. 오수에 잠긴 영산연지.
영산호국공원은 영산 3· 1민속문화제의 발상지이다. 그래서 이지방에서 유래된 중요무형문 화재 영산쇠머리대기와 영산줄다리기 놀이에는 창녕사람들의 낭만과 애환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공원 안에는 임진왜란 호국 위령비가 있고 그뒤로 물레방아가 돌고 있다. 창녕의 관광 명소 부곡하와이가 여기서 멀지않다.
창녕에는 세계적인 생태계의 보고인 우포늪이 있다. 1억4천만년 전의 원시적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마지막 자연늪. 우포늪은 사람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동식물의 천국이다. 대합· 이 방· 유어면 일대에 걸쳐있는 광활한 천연 늪속에는 3백50여종의 희귀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마지막 남은 자연 생태계의 보고 우포늪. 인간의 탐욕이 미치지 않은 희귀 동식물의 천국이다. 가시연꽃과 부들· 창포· 마름· 올방개· 벗풀등 수많은 물풀들이 곳곳에서 무리지어 자 라고, 쇠기러기· 물닭· 댕기 물떼새· 청머리오리등 숱한 철새들이 철따라 찾아든다. 우포 늪에는 원초적인 먹이사슬과 생명의 신비가 고스란히 살아있다. 창녕의 환경운동가들은 올 봄부터 국립자연사박물관을 우포늪에 유치하려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창녕의 가야시대 고분군들은 창녕읍과 계성면· 영산면 일대에 많이 흩어져 있다. 크고 작 은 봉분들이 구릉처럼 이어진다. 그러나 이 가야의 무덤들은 거의가 빈속. 일제시대 이래의 무차별적인 도굴로 귀중한 유물 들을 다 잃어버렸다. 제것을 지키지 못한 회한. 텅빈 고분이 알맹이 없는 오늘 우리네 삶같 아 씁쓰레한 마음이다.
가야시대에 세워진 석빙고,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비인 진흥왕척경비, 이방초등학교에 있는 산토끼노래비도 지나칠수 없는 창녕의 문화유적이다. 돌아서면 화왕산 억새의 노래가 귓전을 맴돌고, 우포늪의 이름모를 물풀과 새떼의 손짓이 눈가에 어른대는 곳. 낙동강이 굽이도는 풍요로운 터전, 창녕에 가면 깊어가는 가을과 함께 자연과 역사의 향기에 흠뻑 젖는다.
경산에 가면...
경산에 가면 「갓바위 부처」가 있다. 우리나라 약사신앙의 1번지인 팔공산과 더불어 대구 의 불교적 상징물로 널리 알려진 「갓바위 부처」가 자리한 곳은 경산시 와촌면 대한리. 해발 8백50m의 팔공산 관봉에 병풍처럼 둘러쳐진 암벽을 배경으로 조성된 갓 바위 부처의 본디 이름은 「관봉석조여래좌상」이다. 갓바위는 하양에서 와촌을 지나 선본사가 있는 속 칭 뒷갓바위길로 오르면 한결 가깝다.
천년세월을 한결같은 청정한 부동의 자세. 관봉에 장중하게 가부좌 한채 속세를 굽어보는 갓바위부처. 그앞에 머리를 조아리는 숱한 중생들의 모습. 오늘도 이곳은 생생한 신앙의 현장이다. 민초들의 기원과 염원이 농축된 한시대의 풍속도이다. 선본사 108계단을 올라 종각옆에 서 면 노적봉에서 흘러내린 산줄기에 홀연히 모습을 드러내는 고탑 하나. 선본사 삼층석탑도 눈여겨 볼 일이다.
신라 흥덕왕때 세웠다는 고찰 환성사(環城寺)는 하양에서 청통쪽 다리를 건너자 마자 팔공 산 남쪽자락을 따라 6km쯤 떨어진 곳에 고즈넉히 자리하고 있다. 환상사는 입구에 늘어선 4개의 일주문만 보더라도 지난날 사찰의 규모를 짐작할수 있다.
선본사 3층석탑. 탑아래 보이는 절이 선본사다.
환성사로 오르는 길 또한 별천지. 같은 팔공산 자락의 사찰이지만 찾는이들의 걸음이 그리 번다한 곳이 아니어서 다른 절과는 미묘한 맛과 분위기의 차이를 읽을수 있다. 명부전 앞의 굴뚝과 대웅전 앞마당에 선 석등의 흔적이 특이하다.
왜 절 이름이 환성사인지를 묻자 진오(眞悟)스님이 주위의 산을 가리킨다. 정말 산봉우리들 이 성벽처럼 절을 에워싸고 있다. 경산은 오랜 역사를 지닌 고장이다. 옛날 삼한시대 압독국이 자리를 잡았던 곳이다. 조영동 과 임당동 고분군이 그 대표적인 유적. 이곳에서 금동관과 항 아리등 5천여점의 유물이 출토 됐다.
자인의 계정숲. 자인사람들의 긍지와 한장군의 얼이 깃든 성지이다. 푸른 잔디를 입은채 둔덕을 따라 봉곳봉곳하게 솟은 고분군 앞에 서면 영겁의 세월속에 찰나일수 밖에 없는 삶의 허무가 가슴을 저린다. 한여름 뙤약볕 아래서도 머잖은 가을 바람의 서늘함을 느낀다. 경산은 무형문화재 44호로 지정된 한장군 놀이의 고장이기도 하다. 자인면 일대의 주민들은 한장군이란 전설적인 인물을 신앙처럼 떠받든다. 실제 인물이었고 말고는 상관하지 않는다. 석류꽃이 붉게 피고 앵두가 알알이 익어가는 단오날이면 한장군놀이로 온 면민들이 축제 분 위기에 젖는다. 한장군이 왜적을 물리칠때 누이동생과 더불어 추었다는 여원무란 춤을 추고 가장행렬을 벌이며 사당에서 제사를 올린다.
자인면 소재지 입구의 계정숲이 바로 한장군의 성지. 40~1백20년 묶은 참나무와 이팝나무로 이루어진 3· 8ha의 천연보호림 안에는 한장군의 묘와 묘비, 그리고 한장군놀이전수회관 등 이 자리잡고 있다. 왜적의 침입을 스스로 힘으로 물리쳤던 자인사람들의 긍지와 마을의 수호신인 한장군의 얼 이 깃든 곳. 널따란 숲속길을 호젓이 걸어보면 시원한 매미소리가 신록보다 더 무성하다. 경 산에도 지금 여름이 한창이다.
예천에 가면...
산좋고 물맑은 곳 정도령도 탄복한 "명당중의 명당"...
때묻지 않은 산자수명의 고장 예천은 경북북부지역 북단에 충북 단양과 경계를 이루며 자리잡고 있다. 예천공항과 함께 북부지방 관문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예천. 지역특성을 최대한 이용, 우 래자연휴양림, 용두리 휴양공원, 선몽대, 내년 개관 예정인 국내유일의 천문과학관 건립 등 을 계기로 새로운 관광지로 변신을 하고 있다. 의성포마을엔 아직 교각이 없어 큰물이 지면 출입이 자유롭지 못할 정도다. 물맛이 너무 좋아 단술예(醴), 샘천(泉)에서 유래된 예천은 일찍이 정감록의 십승지중 한 곳인 금당(金塘)이 용문면에 있다.
7만여명의 인구중 60%이상이 농사를 생업으로 하는 전형적인 농업고장으로 무형문화재인 통명농요와 공처농요 등 농요가 잘 보전돼 있다. 예천참우, 참기름, 사과, 종마늘, 상리호도, 천연쌀등 청정농산물은 어디에도 손색이 없다.
예천읍에서 영주방면 28번 국도를 타고 7km쯤 가다가 풍기방면으로 20분 정도 더가면 감 천면 천향리에 천연기념물 2백94호인 석송령(石松靈)이 있다. 수령이 6백년을 넘으며 군의 상징물로 꼽힌다. 석송령은 높이가 10m, 둘레지름이 4.2m, 나무너비가 30m, 그늘면적만도 3백평에 달하며 마치 거대한 분재같은 형상을 이루고 있다.
용궁면 금남리의 황목근(팽나무)도 천연기념물 신청을 해두고 있는데 이 두 성목은 드물게 자기명의의 땅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이름나 있다. 석송령의 지분은 1천1백여평, 황목근 은 3천7백여평으로 해마다 세금을 내고 있다. 수령이 정확하지 않을 정도의 석송령은 세금을 내는 소나무로 유명하다. 군의 북쪽인 상리면 명봉리 백운봉 아래에 있는 명봉사는 신라말 고찰로 장엄한 영산을 배경으로 명봉계곡을 비롯한 천혜의 경관과 어우러져 있다.
문종대왕태실비, 명봉사사적비, 이두문자가 새겨진 자적선사, 능운탑비등 유적도 있다. 사찰 입구에 대형 야영장과 주차장, 담백한 토종닭을 맛볼 수 있는 식당도 있다.
예천읍에서 북쪽으로 16km정도 떨어진 용문면 내지리에 용문사가 있다. 경기도 양평, 남 해의 용문사와 함께 삼대 용문중 가장 번성한 사찰. 국보급인 고려때 건물 대장전을 비롯 하여 국내유일의 윤장대 2좌, 목불좌상, 목각탱, 교지, 자운루등 8점의 보물과 석조물및 15 동의 불전들이 선현들의 손때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충청북도와 경계지역인 상리면 용두리 「저수령」에는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용두리휴게 공원이 있는데 각종 휴게시설과 숙박시설, 주차장, 연회장 등을 갖추고 있어 휴식을 취하기 에 좋다.
예천읍에서 호명면소재지를 거쳐 10여분 정도 가면 내성천 명사십리와 천여평의 소나무숲을 자랑하는 강변유원지 「선몽대」가 나들이객을 유혹한다. 선몽대 아래를 흐르는 맑은 내성천과 주변의 기암절벽이 한여름 더위를 말끔히 씻어준다. 용궁면에 있는 「의성포」는 물돌이 마을로 유명하며 인근에 봉수대와 장안사, 등산로가 있어 산림욕및 가족나들이 코스로 적격이다. 예천군 용궁면 산택리 예천-문경사이 국도 34호선 옆에 위치한 산택저수지는 연꽃 테마공 원이다. 원래 연꽃 자생지였던 곳에 5천주의 연꽃을 더해 만들어 여름철 만개한 연꽃이 일품이다. 이곳에는 연꽃단지를 비롯해 소나무와 산철쭉, 야생화 등 2천여본이 있는 잔디 광장· 전망대· 파고라· 야생화단· 산책로 등의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대구서는 중앙고속도로를 이용 서안동 톨게이트를 거쳐 예천에 이른다. 숙박시설은 시내 파라다이스, 대연호텔, 한성장, 크리스탈 모텔등 20여곳이 있다.
청송에 가면...
청송하면 우선 주왕산과 달기 약수탕이 떠오른다. 주왕산은 주왕의 전설이 되살아나듯 붉은 수달래가 처연하게 계곡을 물들이는 5월이나 단풍철의 비경도 잊을수 없지만, 시린 계곡에 발을 담그고 세속에 찌든 마음을 추스려보는 한여름의 풍치 또한 빼놓을수 없다. 주왕산은 석병산이란 별명대로 병풍을 친 듯한 산봉우리 사이로 흐르는 계곡이 군데군데 폭포와 소를 이룬다. 주왕산은 산이름을 낳은 전설의 주인공인 주왕과 관련된 명소가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주왕산의 상징봉인 기암을 비롯한 무장굴과 자하성 연화굴 주왕굴 등. 늦은 봄이면 주방천 가에 붉은 꽃잎을 토해내는 수달래(水丹花)도 바로 주왕이 흘린 피의 화신이라고 한다.
고찰 대전사의 한여름. 보광전 용마루위로 주왕산의 상징인 기암이 수려한 풍광을 드러내고, 섬돌앞 미완성의 돌탑이 정겹다. 미답의 원시림으로 뒤덮인 주왕산은 야생동물의 천국이기도 하다. 노루· 오소리· 너구리 · 수리부엉이는 물론 산양· 수달· 붉은배새매등 천연기념물의 서식지다. 망개나무· 난 티나무· 복장나무· 솔나리· 투구꽃등 희귀식물의 보고이기도. 주왕산 산행길에 처음 만나는 고찰 대전사는 경내가 호젓하다. 보광전 섬돌앞에 부서진 탑 조각을 주워모아 얼기설기 쌓은 석탑이 정겹다. 근래들어 대전사에는 해맑은 동자승의 모습 이 지나는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네댓살은 되었을까, 파르라니 깎은 머리에 다소곳이 차려입은 승복, 아직 장난기가 가시지 않은 천진난만한 자태가 곧 부처의 심상이다. 신성계곡 바위절벽 위에 그림같이 자리한 방호정. 경북도 민속자료 제51호이다.
대전사를 지나 주방천 오솔길을 따라 얼마간을 걷다보면 학소대· 병풍바위· 시루봉· 선 녀탕 등 주왕산의 기암괴석과 시원스런 폭포가 나타난다. 깍아지른 바위벼랑을 타고 쏟아지 는 장엄한 폭포소리. 과연 주왕산은 경북내륙에서도 으뜸가는 명산이요 절경이다. 부산에서 왔다는 한 50대의 관 광객은 『젊은시절에는 멋모르고 지나갔는데, 이제사 와보니 그 아름다움이 새삼스럽다』며 감탄을 연발한다. 제3폭포에서 20분정도 더 발품을 들이면 내원마을로 들어갈수 있다. 약초와 산나물을 채취하고 농사를 지으며 사는 일곱 가구가 아직까지 전기도 없이 생활하고 있는데, 50~60년대 산촌 모습 그대로다. 청송은 곳곳이 심산계곡이다. 주왕산 입구 삼거리에서 영덕쪽으로 한참을 가면 한여름에도 얼음이 낀다는 얼음골과, 30여 그루의 왕버들이 물속에 자생하고 있는 신비로운 못 주산지 가 있다.
안덕면 신성2리의 맑은 물이 감도는 바위절벽 위에 그림처럼 앉아있는 방호정은 조선 광해 군 때 세운 함안조씨의 정자. 여기서 부터 안동 길안 송사리에 이르기 까지 수려한 계곡이 끝도없이 이어진다. 방호정서 8km쯤 떨어진 고와리 계곡의 백석탄은 새하얀 바위사이로 흐 르는 옥같은 물이 마치 정교한 예술조각품 같다. 세계최고의 맑은 공기를 자랑하며 국내에서도 손꼽히는 청정지역으로 알려진 청송. 청송은 자연을 훼손하는 개발은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쾌적하고 아름다운 종합관광휴양지로 자리 를 잡아가고 있다. 그런 곳에서 청송사람들 또한 푸른솔 처럼 순박하고 꿋꿋한 삶을 일구며 살아간다.
성주에 가면...
성주는 성산가야의 옛터전이다. 성산동 고분군이 그 흔적이다. 동방사지7층석탑은 신라가 성 주에 남겨놓은 자취. 미인의 고장을 대변하듯 늘씬하고 호리호리한 자태가 예사롭지 않다.
성주군청에서 왼쪽 길로 가다보면 떡버들이 우거진 강가의 숲이 나온다. 이것이 성주사람들 과 희노애락을 함깨 해온 성밖숲. 큰 바위돌에 앉아 더위를 식힐수도 있고, 각종 운동시설을 갖춰 여가를 즐길수도 있는 쉼터다.
성주군 대가(大家)면은 지명 그대로 큰인물을 많이 배출한 곳. 성주사람들이 양강(兩岡)이라하여 추앙하는 동강(東岡) 김우옹과 한강(寒岡) 정구 선생의 출생지가 곧 대가이다.
명당으로 알려진 대가의 사도실 마을에는 동강의 13대손으로 독립운동가이자 유학자인 심산 김창숙 선생의 생가가 있다. 마을 입구쪽의 청천서원 현판 글씨는 백범 김구 선생의 친필. 성주가 자랑하는 대학자로 조선후기 실학사상에도 큰 영향을 미친 한강 선생을 향사하는 회 연서원은 수륜면 신정리에 있다.
월항면 대산리,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지형인 한개마을은 성산이씨들이 대대로 살아온 집성 촌. 널찍이 늘어선 전통민속마을의 고가 사이로 고풍스럽게 난 토담길은 TV사극의 무대로 도 자주 등장한다. 한개마을의 맨 끄트머리, 영취산 자락에 있는 한주종택을 비롯, 한개마을의 가옥들은 독특한 건축구조를 가지고 있다. 각자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면서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가옥구조를 눈여겨 볼만하다. 축대를 높이 쌓아 지은 한주정사에서 옛선비의 체취가 물씬 풍긴다. 월항면과 칠곡군 약목면 경계에 있는 해발 742m의 서진산 태봉에는 세종대왕의 여러왕자와 세손인 단종의 태실 19기가 안장되어 있다. 벽진면 해평리는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동족마 을인 성산여씨들의 집성촌. 벽진이씨와 성주도씨의 동족마을이기도 하다. 성주댐 호수변도로. 대가천계곡과 이어지는 호젓한 드라이브길이다.
가천면에서 김천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성주댐의 시원스런 풍광이 눈앞에 나타난다. 댐물이 넉넉해 수시로 방류를 하는데, 수로를 타고 내려오는 물줄기가 마치 물고기 비늘 같이 희번 덕거리는 무늬를 만들어 눈길을 끈다. 성주댐은 맑은 물과 기묘한 바위절벽이 어우러지는 상류의 대가천계곡으로 이어지면서 호젓 한 드라이브 코스로도 각광을 받고있다. 경관이 수려한 대가천 계곡은 여름철 수많은 피서 객들이 몰리는 때묻지 않은 자연. 가천면 소재지에서 곡우물로 유명한 용사· 신계리 쪽으로 올라가면 포천계곡의 시원한 물줄기가 이어지고, 저만치 가야산 봉우리가 수려한 경관을 드러낸다.
만귀정이 있는 신계리 어귀에는 3백년된 노송이 곁가지 하나없이 꼿꼿이 버티고 서있다. 노송앞 너럭바위를 타고 쏟아져 내리는 만귀정 폭포. 물소리가 가슴까지 시원하게 적신다.
이곳은 해발 5백m의 가야산 자락. 사방의 풍광이 시원스럽고 이마를 스치는 바람이 상쾌하 다. 여기서 개발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가야산 본래의 모습에 흠뻑 취할수 있다. 성주는 역 시 가야산이 있어 더욱 아름답고 풍요로운 고장이다.
칠곡에 가면...
▨유학산
한국전쟁이 터진이후 후퇴를 거듭하던 국군이 전열을 가다듬고 1950년 8월 최후의 방어선을 친 곳이 유학산이 자리잡은 다부동. 아름다운 산수와 대조적으로 골짜기마다 우리 민족의 슬픈 역사가 배여있는 곳이다. 국군 1개사단과 인민군 3개 사단이 일진일퇴를 거듭, 전투가 끝난 뒤 한달이상 주변 하천이 피로 물들었다는 주민들의 증언이 당시 전투의 격렬함을 말해준다. 연합군의 B-29 폭격기가 인근에 투하한 폭탄만 9백60톤. 지금도 불발탄이 더러 발견되기 때 문에 정해진 등산로가 아니면 가지 않는 것이 좋다.
가산리 학산면 덤티고개에서 차로 도봉사까지 가서 산을 오르면 정상까지 어른걸음으로 40 분정도 걸리므로 어린이와 함께 가는 등산코스로 적당하다.
▨다부동 전적기념관
유학산 정상에 오르기전 기슭에 세워진 다부동 전적기념관을 찾아보는 것도 뜻깊다. 다부동 전투 당시 양측의 전투장비와 상황을 설명하는 모형들이 진열돼 있다. 규모도 작고 전시방 법도 세련되지 않아 아쉬움이 남긴 하지만 실전에 사용됐던 장갑차나 폭격기 등의 전시물은 어린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는 충분하다.
▨가산산성
과거와 현대의 피맺힌 역사가 함께 묻혀 있는 가산산성은 대구시와 가깝지만 행정구역상 칠 곡군이다. 임진왜란이후 산성에 대한 중요성이 커지면서 세워진 이 곳은 한국전쟁당시 다부 동과 함께 격전이 벌어진 대표적 장소로 꼽힌다.
남문까지 차를 타고 갈 수 있지만 거기서 돌아선다면 산성을 보지 못한 것과 다름 없다. 첫 번째 봐야할 곳은 동문. 평탄할 길을 택해 쉬엄쉬엄 오르면 어린이에게도 그다지 힘들지 않 은 등산로다. 잠시 숨을 돌린 후 나무사이를 바쁘게 옮겨 다니는 다람쥐의 환영을 받으며 짙은 녹음사이 로 난 산길을 걷다보면 가산바위가 보인다. 조선시대때 망루로 사용됐다는 80여평의 거대하 고 평평한 바위에 올라서면 칠곡군은 물론 대구 전체가 훤히 내려다 보인다. 곳곳에 우리 조상들이 사용하던 절구, 우물, 기와, 성벽이 무성한 풀숲에 가려진채 숨어있는 데 이를 꼼꼼히 찾아보는 것도 가산산성 등산의 의미를 더해준다.
산성에서 내려오는 길에 송림사에 들러 우리나라에서 희귀한 벽돌로 쌓은 탑인 오층전탑의 문화재적 가치를 살펴보는 것은 산성 나들이길의 보너스.
▨왜관 인도교
한국전쟁당시 낙동강을 건넌후 왜관읍을 거쳐 대구쪽으로 밀고 내려오려는 인민군과 국군의 공방으로 인해 파괴됐던 다리. 91년까지만 해도 전쟁때 모습 그대로 방치돼 있었지만 93년 보수돼 현재는 인도교로 사용되 고 있다. 차에서 내려 낙동강의 물결을 바라보며 다리 위를 천천히 걷노라면 전쟁당시 폭격 소리와 참혹함이 그대로 느껴지는 듯 하다.
인근에는 한국전쟁당시 사용됐던 무기와 피복 등이 여섯 개의 전시장에서 선보이는 왜관지 구 전적기념관이 있다. 다부동 기념관에 비해 UN군에 관한 자료가 많은 편이다.
청도에 가면...
청도는 940년(고려 태조23년)부터 불리워진 지명. 산자수명한 산수의 정령(精靈)이 인걸을 감돌고 사통팔달로 교통이 편리할 뿐 아니라 서민생활이 평화로워 부르게 된 것이라 전한 다. 운문사를 안고있는 호거산과 그아래 펼쳐진 삼계계곡.
운문댐이 생기고 곳곳이 주택지로 개발돼 옛 풍광은 어지간히 사라졌으나 물 맑은 동창천이나 한내천 가 산 자락에 엎디어 있는 마을들은 여전히 무던하고 평화롭기만 하다. 봄이면 복숭아꽃이 비탈진 밭을 온통 분홍빛으로 물들이고 초여름에는 때각때각 떨어지는 감꽃이 양반네들의 선잠을 깨우기도 하는 곳. 청도는 용각산을 기준으로 산동(山東)과 산서 (山西)로 나눠지며 북쪽으로 경산시와 대구 달성군, 동쪽으로 경주시와 울산광역시, 남쪽으 로는 밀양시, 서쪽으로 창녕시와 접한다. 청도의 관문 팔조령, 제 1터널 개통을 앞두고 있다.
대구서 경산을 거친 25번 국도가 청도읍을 지나 밀양으로, 창녕에서 뻗어온 20번 국도는 군 소재지를 거쳐 경주로 이어지고 지방도와 군도가 이리저리로 연결돼 있으나 험한 산세 탓에 재를 넘지 않고는 아무곳에도 갈 수 없다. 경산 자인서 지방도로를 따라 운문사를 향하다 보면 금천면 소재지인 동곡리 못미쳐 청도보 양(학일)온천이 청도의 물길을 자랑한다. 동곡을 지나 퍼렇게 다가서는 운문댐수는 산자락마 다에 숨겨져 있는 계곡들이 층층 속살로 걸러낸 생명수. 운문댐으로 흘러드는 물 줄기 하나 가 가 닿는 끝자리, 호거산 아래 운문사가 자리하고 있다. 원광· 일연· 원응 등 역사속의 인물들이 거쳐간 유서깊은 절이자 지금도 2백50여명의 비구니들이 불교경전을 공부하는 큰 도량(道場)이다. 신라 진흥왕때(557년) 창건한 이 사찰에는 삼층석탑· 석등· 청동호· 원 응국사비· 석조석가여래좌상· 사천왕 석주· 대웅보전 등 7점의 보물이 있고 천연기념물 인 처진 소나무(盤松)가 버티고 서 매년 막걸리 24말씩을 보약으로 받아 마시고 있다. 운문 승가대학 학인들은 매일 새벽 3시부터 오후 9시 취침전 까지 수도에 열중한다. 혹 새벽(3시 25분) 예불에 참석할 수 있다면 절 안에서 살아가는 수도자들의 내면세계를 한꺼번에 느껴 볼 수 있을 것이다.
운문사 입구 문명초교서 좌측으로 난 국도를 따라 6km쯤 올라가면 세개의 계곡이 합쳐진 삼계계곡이 펼쳐진다. 해발 1천2백40m의 가지산에서 발원, 급류와 폭포를 만들어 계곡을 씻어내는 물은 멀찍이에서도 냉기를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차갑다. 정상까지는 20km. 운문사를 빠져나온 금천면 신지리 섶말에서는 밀성 박씨들의 세거지 운강고택과 선암서원 등 몇몇 고택들을 볼 수 있다. 동창천을 따라 밀양쪽으로 향하다 보면 감나무가 즐비한 매 전면 장연리가 나온다. 장수골 입구 감나무 밭 속에 터를 잡은 통일신라시대의 장연사터 삼 층석탑(보물)은 모나지도 두드러지지도 않아 보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되돌아 나와 국도를 따라 용각산(곰티재)을 넘어 청도읍에 도착, 군청 왼쪽으로 난 길로 오 르면 신경통에 효험이 있다는 낙대폭포가 나타난다. 기암괴석과 울창한 숲이 어우러져 바윗 돌에 몸을 비벼대면서 녹음의 풋내음을 한껏 흡수한 물줄기가 일으킨 물보라는 계곡에서 불 어오는 바람과 어우려져 오싹함을 느끼게 한다.
화양읍 동천리 청도향교 가는 길 1백m쯤에서는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석빙고(石氷庫· 보물)를 볼 수 있다. 겨울에 저장한 얼음으로 아쉬운 대로 한여름의 더위를 다스린 조상들의 슬기를 엿볼 수 있는 이 얼음창고는 조선 숙종39년(1713년)에 축조된 것. 여기서 유등교를 지나 나즈막한 산을 하나 넘으면 용암온천과 테마랜드가 있어 지친 몸을 잠시 쉴 수 있다. 여유가 있다면 인근 송금리에 있는 보물 대적사 극락전을 들여다 보는 것 도 좋을 듯 싶다. 18세기 이후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건물은 계단 소맷돌이나 상부 기 단에 새겨진 여러가지 무늬가 눈길을 끈다. 여기서 빠져나와 국도를 따라 가면 각남면을 거쳐 예로부터 소가 많아 이름이 붙여진 풍각 (豊角)면이 나온다. 각북면 쪽 길목에 멀리 비슬산을 배경으로 덤덤히 서 있는 보물 삼층석 탑은 준수한 젊은이를 연상케 한다.
계곡마다에 산새· 들짐승· 풀벌레와 사람들이 보금자리를 틀고 자연을 벗 삼아 살아가는 고장 청도는 올 하반기 팔조령 터널 개설과 함께 온천과 전원주택이 있는 대구권 휴양단지 로 거듭나게 된다.
울진에 가면...
82km해안도로 굽이굽이 파도가 빚은 절경 즐비
산과 바다· 온천· 계곡이 어우러져 피로한 심신을 흠뻑 달랠 수 있는 곳 「울진」. 일찌기 김유신장군이 이 지역을 둘러보고 산림이 울창하고 바다에는 진귀한 산물이 풍부하다 하여 지명을 「蔚珍」이라 붙였다고 한다.
울진은 삼한시대에는 변한, 삼국시대엔 고구려에 속했다가 진흥왕 10년에 신라의 영토가 된것으로 전해진다. 고려· 조선시대땐 평해· 울진군으로 양분돼 있다가 1914년 강원도 울진군으로 통합, 63년도에 경북도로 편입됐다.
7만여명의 인구가 살고 있지만 대도시와 멀리 떨어져 있고 교통도 불편한 편이다. 그러나 천혜의 관광지를 유달리 많이 갖고 있으며 전국적으로 유명한 곳도 많다. 성류굴, 백암· 덕 구온천, 월송정, 불영계곡 등엔 연간 4백여만명의 관광객이 찾아들 정도다. 백암산, 응봉산을 포함 남으로 뻗은 태백준령은 동으로 내린 골마다 맑은 내를 이룬다. 82㎞ 에 달하는 청정해역 어디서든 일출장관을 볼 수 있으며 해안선 곳곳이 백사장과 함께 절경 을 이루고 있다. 왕피천 은어낚시꾼들. 도내에서 은어낚시를 할수 있는 흔치않은 곳이다.
▨성류굴
성류굴은 울진읍에서 남서쪽으로 약 5㎞거리의 근남면 구산리 성류산 밑에 있다. 성류산에 스며든 빗물에 석회석이 녹아내려 2억5천만년 동안 형성된 천연동굴이다. 길이 4백72m의 이 석회동굴은 「선녀동」 「지옥동」 등 12개의 크고 작은 광장과 5개의 연못으로 형성되 어 있다. 종유석과 석순이 성모마리아, 코끼리바위, 멧돼지 형상을 이루고 있어 「지하의 금강산」이 라고도 불린다. 성류굴에 이르는 도로옆은 왕피천 맑은 물이 1년내내 마르지 않는다. 은어와 연어가 번갈 아 올라오는 생물의 보고로 지금은 은어낚시꾼들이 강을 꽉 메우고 있다.
▨불영계곡
왕피천북쪽 근남면 행곡리서 서면 하원리까지 15㎞의 계곡이 바로 불영계곡(佛影溪谷). 단일계곡으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것으로 알려져 있고 깎아지른 듯한 절벽과 기암괴 석, 그 사이를 흐르는 맑은 물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사철 관광객을 부르고 있다.
특 히 불영계곡 골골이 늘어선 천연노송, 굴참나무숲, 희귀한 적송 등의 가을단풍은 한달 이 상 지속되며 구룡폭포의 장관을 연출한다. 덕구계곡의 용소폭포. 덕구계곡은 4~5㎞되는 암벽계곡으로 등산코스로 최적이다.
▨불영사
구룡폭포 남쪽 아름드리 소나무숲 안에는 신라 진덕여왕 5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불영사 가 고이 자리잡고 있다. 서쪽 맞은편 산중턱에 우뚝 선 부처님 형상의 바위 그림자가 경내 의 연못에 비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불영사 안에는 1천5백년전 양성법사가 세운 응진전(應眞殿)이 몇차례의 화재에도 특이한 건 축양식을 그대로 간직한 채 보물 7백30호로 지정돼 보존되고 있다. 사찰 경내에는 통일신라 말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삼층석탑과 창건 당시 유적으로 거북돌이 남아 있다.
▨망양정· 월송정
근남면 산포리에 자리잡은 망양정은 왕피천의 맑은 물이 정자 옆을 지나 동해 바다와 맞 닿는 곳에 있다. 은모래빛 망양해수욕장이 있어 경관이 더욱 수려하다. 평해읍 월송리에 있는 월송정과 더불 어 관동팔경의 하나로 손꼽힌다.
고령에 가면...
천년풍상에도 대가야 숨결은 영원
가야산 줄기와 영남의 젖줄 낙동강이 아우르며 빚어놓은 유서깊은 고장 고령(高靈). 고령은 대가야(大伽倻)의 5백년 도읍. 지산동 고분군을 비롯, 숱한 선사시대의 문화유적들이 대가야의 숨결을 전한다. 고령에 가면 질좋은 고령토로 구워낸 도자기와 기와가 있고, 특산품 우곡수박과 개진감자의 수확이 한창이다. 4년제 가야대학이 웅지를 품은 산자락 너머로 무지개 송어회와 한우고기 · 버섯메기탕등 맛깔스런 먹거리가 있는 곳.
고령에 가면 대가야가 번성했음을 알만하다. 고령읍과 성산면의 경계로 대가야와 신라군의 격전지이기도 했던 금산고개를 넘어서면 고령읍내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서쪽과 남쪽은 험준한 산줄기가 에워쌌고 동쪽은 낙동강이 가로막은 천연의 요새. 그곳에 대가야의 궁궐터 가 있다. 대구에서 30~40분거리인 고령에 가면 1천4백년 전에 멸망한 고대 왕조의 유물과 유적이 곳곳에 널려있다. 삼림욕장내 소나무숲길. 대가야의 유적탐방과 문화산책은 주산 등산로 입구인 대가야유물전시관에서 시작된다.
아담한 전시관에는 사적 79호인 지산동 고분군의 44· 45호분과 32~35호분 등에서 출토된 금관과 금은 장신구류· 가야토기등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전시장 출입구 쪽에는 제44호분의 모형을 만들어 놓아 순장묘의 특징을 살펴볼수 있고, 고 아동 벽화고분의 모사도도 전시되어 있다.
관람료가 없고 담당 공무원의 설명을 들을수 있어, 가야문화를 연구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데 특히 일본인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대가야유물전시관 주변은 대가야 국성지로 옛 대가야의 왕궁터로 알려지고 있다. 이 일대에 가야공원과 대가야국성지비· 대 가야국악당 등이 자리하고 있다.
지산동 대가야 고분군.
고령에 가면 대가야유물전시관을 관람한 후 널찍한 산길을 따라 삼림욕장과 주산정상을 거쳐 지산동 고분군을 둘러보고 되돌아 오는 등반코스를 꼭 권한다. 등산로가 가족들과 도란도란 정담을 나누며 걷기에 충분하고 시간도 1시간~1시간 30분이면 족하다. 꿀밤나무와 해송숲이 이어지는 주산 삼림욕장에는 중간중간 휴식공간과 체육시설이 마련되 어 있고, 녹음이 짙은 숲길을 따라 산새 소리가 해맑다. 고령의 진산인 주산정상(3백11m)에 오르면 북서쪽으로 가야산과 미숭산이 멀찌감치서 절묘한 자태를 드러낸다. 동쪽 산아래로는 고령읍이 한눈에 들어오고, 산능선을 넘나드는 한줄기 바람에 가슴까지 시원하다. 여기서 전망대를 거쳐 미숭산 자락에 있는 고찰 반용사까지 등산로가 마련되어 있으나 가족들과 걷기에는 다소 먼거리. 주산정상에서 고분군으로 내려오는 길 옆에는 명상의 숲을 꾸며 놓았다. 나무벤치 앞마다 주옥같은 명시를 기록해 나그네를 잠시 쉬어가게 이끈다. 대가야 유물전시관 내부 모습. 지산동 고분군에서 나온 각종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대가야 시대에 축조된 지산동고분군은 주산의 남동쪽 능선을 따라 내려가면서 낙타등 처럼 이어진다. 언뜻 보면 거대한 봉분들만 눈에 띄지만 능선 아래로 크고 작은 무덤들이 마치 잊혀진 역사처럼 풀숲에 수도없이 묻혀있다. 줄잡아 2백여기. 주산 전체가 고분으로 뒤덮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듯 하다. 높이 6m· 지름 25~27m 규모인 제51호 고분을 비롯, 32호 고분까지 규모가 큰 고분이 이어 지는데, 특히 지난 78년 발굴· 조사 결과 우리나라에서 첫 확인된 순장묘로 밝혀진 제44호 고분이 눈길을 끈다. 고분 주위를 걷다가 잠시 무덤가에 앉아 낙동강을 타고 오르는 바람결에 땀을 식히노라면, 여기서도 고령읍내가 훤하게 보인다. 능선을 따라 줄곳 내려가면 44호분의 실물 크기로 순 장묘 모형관을 짓는 공사현장이 나온다.
16대 도설지왕 때인 서기 562년에 신라에 멸망한 후기 가야연맹의 맹주국이던 대가야. 대가 야의 5백년 역사는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서도 어렴풋이 기록되어 있을 뿐. 정복당한 왕조 의 애달픈 사연을 고분 안에 묻은채 빛바랜 대가야의 찬란했던 문화는 아직도 우리 역사에 서 전설로 남아있다.
대가야 순장묘전시관 . 대가야 순장묘 전시관「조감도」
고령읍 지산리 고분군 능선끝 산자락에 7년에 걸쳐 건립중인 「대가야순장묘전시관」이 내년 말경이면 완공된다. 44호 고분인 순장묘의 내부를 원형과 똑같이 재현하는 이 돔식 전시관의 직경은 37m. 높이가 15.47m에 이른다. 고령군은 대가야문화의 역사를 재조명하고 당시의 사회문화를 살펴볼수 있는 산교육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전시관을 지산동 고분군과 연계한 사적공원으로 조성할 예정. 대가야순장묘 전시관의 기능과 특수성에 맞는 보조 전시연출과 교양· 문화 공간도 구성해 명실상부한 고령의 문화관광 명소로 조성할 계획이다.
문경에 가면...
때묻지 않은 천혜의 비경을 간직한 곳. 문경에선 발길 옮기는 그대로 무엇이든 자연이 된다. 예천과 상주, 충북 괴산군, 충주시 등과 맞닿은 문경의 으뜸 볼거리는 당연 문경새재(조령). 문경(聞慶)이란 지명도 새재를 넘어 문경에 다다르면 맨처음으로 경상도 말을 듣는다고 해 서 붙었다고 전한다. 나는 새도 쉬어 넘곤 했다는 이 고갯마루는 예로부터 영남과 그 북쪽지역을 잇는 교통의 요 로. 문경읍 상초리「문경새재 도립공원」팻말에서부터 영남 제1관문인 주흘관(主屹關), 제2 관문인 조곡관(鳥谷關), 조곡관에서 3.5㎞거리인 제3관문 조령관(鳥嶺關)까지 새재계곡을 따 라 삼림욕을 즐기며 오르노라면 청운의 꿈을 품고 과거길을 재촉했던 옛 선비들의 기개가 느껴지는 듯 하다.
문경새재 제2관문인 조곡관, 뒤로 부봉이 보인다. 길 중간중간에 당시 경상감사가 교체될 때 업무와 관인을 인수인계하던 교구정(交龜亭)터 (복원 예정)와 주막터, 산신각, 여심폭포, 길손에게 숙식을 제공하던 시설인 조령원터 등이 있어 산책 재미가 쏠쏠한 편.
새재 입구에서 도예촌으로 유명한 진안리로 빠져나와 문경시내로 향하다보면 왼편으로 멀리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흰 바위봉우리가 자태를 드러낸다. 해발 999.1m 희양산.
희양산 남쪽 기슭엔 신라 헌강왕때 지증대사가 창건한 봉암사(가은읍 원북리)가 숨어있다. 아직껏 구산선문의 전통이 남아있는 깨끗한 절집 봉암사는 지난 82년 특별수도원으로 지정, 4월 초파일을 제외하곤 일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고 있다. 아쉽긴 하지만 지증대사와 정진 대사의 부도와 극락전, 삼층석탑, 백운대 마애보살좌상 등 볼만한 유적을 만나기 위해선 내 년 초파일까지 기다려야 할 듯.
영강변을 따라 기암괴석과 층암절벽이 이어지는 진남교반. 경북팔경의 으뜸이라 칭해진다.
새재 입구에서 3번 국도를 타고 문경시내 쪽으로 10분 남짓 달리다 보면 경북팔경의 으뜸이 라 칭하는 진남교반(鎭南橋畔· 마성면 신현리). 영강 변을 따라 병풍을 친듯 깎아지른 기암 괴석과 층암절벽이 이어진다. 명재상 유성룡이 뭇 묵객들과 시를 읊었다는 봉생정(정자)과 잘 어우러진 주변 산세는 그야 말로 한폭의 산수화. 그러나 지난해부터 시작된 점촌-문경간 4차선 확· 포장공사로 지금은 기암절벽이 동강난 채 강사이로 거대한 콘크리트 다리 받침대만 우뚝솟아 개발논리에 파괴 된 자연의 아름다움이 사무치도록 서럽다.
시간이 충분하다면 대야산 용추(龍湫) 계곡을 둘러봐도 좋다. 가은읍 선유동 입구에서 922번 지방도로를 따라 6백m쯤 가면 대야산 관광안내판이 나온다. 여기서 좌회전한 뒤 벌바위 마 을을 통과해 산길을 20분쯤 올라가면 용추계곡. 사계절 맑은 물이 계곡을 따라 흘러내리는 이곳엔 2단으로 이뤄진 용추폭포가 비경이다. 용비늘 흔적이 남아있는 거대한 화강암 바위 사이로 떨어지는 폭포 아래 하트형으로 깊게 패인 소(沼)의 형태가 절묘하다.
희양산 기슭에 고즈넉이 자리잡은 봉암사. 구산선문의 전통이 남아있는 깨끗한 절이다.
대야산은 해발 930m의 비교적 낮은 산. 연중 입산통제가 없다. 왕복 4시간이면 산행을 즐길 수 있어 가족단위의 행락객에게 권할 만하다. 냉골이라 불려지는 산북면 김룡사 계곡, 소백산의 숨은 비경 농암면 내서리 쌍용계곡, 수상 레포츠를 즐길 수 있는 동로면의 경천댐, 금박 목각후불탱으로 유명한 천오백년 고찰 대승 사(산북면 전두리)…. 한때 석탄산업으로 부와 영화를 누렸던 「탄광」문경은 수많은 아름다운 자연 경관과 옛 문 화의 숨결이 숨쉬는「관광」문경으로 거듭나고 있다.
문경새재 박물관
문경새재 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여러가지 민속자료들.
문경새재 관리사무소 앞 포장도로를 지나 제1관문 조금 못미쳐 길 오른쪽에 지난해 4월 개관한 문경새재박물관(0581-572-4000)이 있다. 부지 2천7백50여평, 건평 3백84평의 작은 규모지만 3개 전시실과 영상실, 수장고 등을 갖추 고 새재, 문경의 역사와 문화, 문경의 자연과 생활상 등을 주제로 2천여점의 유물 및 문경 도자기, 수석을 전시하고 있다. 최근 경북 각지에서 수집한 옹기 1천5백여점을 박물관 야외 에 전시해 볼거리를 더했다. 문경지역에 많은 성황당도 재현해 놓았으며 영상실에서는 보턴만 누르면 누구나 7분짜리 영 상물로「문경의 어제와 오늘」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연중무휴. 관람시간은 오전9시~오후6시. 입장료와 주차료는 새재도립공원 입장료와 주차료에 포함돼 있다. 도로 건너 맞은편엔 5백40평 규모의 쥬라기 공룡탐험관 에어돔이 있어 공룡 모형과 각종 화 석, 운석 등 1천2백여점을 전시중. 관람료 어른 3천원, 어린이 2천원.
상주에 가면...
도도한 낙동 굽어보며 "선비의 기개" 일깨워
발길닿는 곳마다 선조의 숨결이 숨쉬는 듯한 유서깊은 고도 상주. 이곳에 있는 경천대, 충의사, 문장대, 견훤산성, 남장사 등 수많은 볼거리들은 거의가 크게 알려지지 않은 채 태고의 신비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상주는 삼백(三白: 쌀· 누에고치· 곶감)외에도 그곳 사람들의 「하얀」 인정이 있어 그만큼 더 풍요로운 곳이다. 세종때에는 경상도감영이 설치 되었을 정도로 교통요지였으며, 여러군을 아우르는 경상도의 이름을 경주(慶州)와 상주(尙州)에서 한자씩 따온 것을 보아도 상주의 비중을 짐작할 수 있다.
◇국립공원 문장대
「국립공원 속리산」 하면 흔히 충북 보은을 통해야 하는 걸로 알지만 속리산의 비봉인 문 장대는 정작 상주에 속하고 있음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문장대는 해발 1,054m의 석대로 세조가 문무대신들과 함께 시를 읊었다는 데서 유래되었는데, 구름속에 묻혀있다 하여 「운 장대」 라고도 한다. 이곳을 세번은 다녀와야 극락정토에 갈 수 있다는 전설이 있을 만큼 문장대는 신선의 땅인 듯 신비로움을 갖고 있는 곳이다.
상주시내에서 문장대로 가는 길목에 정자와 폭포수가 그림처럼 잘 어울린 장각폭포, 고려시 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보물 제683호 상오리 7층석탑, 후백제의 견훤이 군사를 양병한 곳인 견훤산성이 있다. 견훤산성은 산의 정상부를 따라 축성한 퇴뫼식 산성으로 길이는 약 650m, 높이 5-7m로 과거 상주의 위상을 엿볼 수 있다. 버스로는 상주터미널에서 화북행을 타면 1시간15분 가량이 걸리고 하루에 7번 정도 다닌다.
◇경천대
「기이한 바위가 우뚝솟아 대(臺)를 이루고 푸른벽 동서에는 푸른물이 돌아간다. 우뚝우뚝 쌓은 것을 어찌 인력으로야 형용인들 하리…」 옛시인은 경천대의 아름다움을 이렇게 노래했다. 경천대는 절벽위에 유유히 서서 천년 풍상에도 변치않는 「낙동」 의 유유함을 바라보는 수 려한 경관이 일품이다. 병자호란후 봉림대군이 중국으로 볼모로 갈 때 주치의로 따라갔던 우담 채득기선생이 17세기초에 터를 닦았다고 전해진다. 요즘은 놀이동산과 인공폭포를 갖 춘 종합관광지를 겸하고 있다. 인근에는 조선선조때의 무장으로 상주목사, 삼도수군통제사 등을 맡으면서 숱한 전과를 세 운 명장 정기룡장군의 유적을 모신 충의사와 통일신라때 축성된 것으로 보이는 보물 제117 호인 화달리 3층석탑, 전사벌왕릉 등이 있다. 시내에서 멀지 않아 사벌행버스를 타고 40분정 도면 간다.
낙동강을 유유히 내려다보는 경천대는 강 전체를 통틀어 가장 절경으로 꼽힌다.
◇노악산 남장사 상주시 남장동 높이 725m의 그다지 높지 않은 노악산의 중턱에 신라시대에 창건된 남장사 가 자리하고 있다. 선교 통합을 실현한 서산대사의 제자인 사명대사가 당시 금당이던 보광 전에서 수련하면서 선교 통합의 도량으로 자리잡았다. 남장사는 임진왜란 때 불타 1635년에 중창했으나 절 전체의 모습은 비교적 잘 간직돼온 편이다. 이 절의 본전인 극락보전의 금단청 맞배지붕 겹처마는 아름다운 건축미로 유명하다. 극락보전 앞 석탑과 석등은 모두
요즘의 것들이다.
◇대산루
대산루는 상주시 외서면 우산리에 있다. 대제학까지 오른 성리학의 대가 우복 정경세 선생 이 독서, 강학및 장서보관을 위해 1603년에 지은 건물로 주변 동산에는 후손들이 살고 있는 우복종택, 사당, 서원, 계정 등이 모여있다. 옆과 뒤로는 조그마한 산을 의지하고 집앞엔 작은 개천이 흐르는 대산루는 「산을 대하는 마루」 라는 이름답게 주변의 풍광을 두루 감상할 수 있도록 지어졌다.
◇동학교당· 은척뽕나무
민족종교 동학의 남접주 김주희 선생이 교세부흥을 위하여 1916년에 지은 동학교당과, 1600 년쯤부터 자생한 것으로 추정되며 양잠의 고장을 상징하는 은척뽕나무도 상주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것들이다. 조선 태종때부터 자생한 것으로 일명 탑송이라고도 하는 화서면의 반송, 세계적으로 희귀 한 거북돌이라고 하는 구상화강암 등이 있듯이 상주는 가는 곳마다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영천에 가면...
유서깊은 유물·유적…명현들 숨소리 들리는 듯
사가 서거정(四佳 徐居正)이 일찌기 「이수삼산차제개(二水三山次第開)」라고 노래했던 영천. 사가는 두 강물 세 산이 차례로 펼쳐진 영천을 이렇게 읊었다.
두 강은 자양쪽에서 흘러오는 남천과 자천쪽에서 흘러오는 북천이요, 삼산은 작산(鵲山·완 산동 뒷산)과 마현산(馬峴山), 유봉산(遊鳳山·오수동 뒷산)이다.
시내 한복판의 조양각(朝陽閣). 서거정이 올라서서 영천을 보며 격찬을 아끼지 않은 이 누각 은 금호강 벼랑위에 장중한 모습으로 자리잡고 있는데 진주촉석루, 밀양영남루와 함께 영남 3루로 꼽힌다. 조양각에는 포은의 시를 비롯 율곡 등 명현들의 시문 60여편이 가지런히 걸 려 있다. 뜰에는 여류소설가 백신애를 기리는 문학비와 황성옛터의 작사자 왕평의 노래비도 있다. 치산폭포는 높이가 30m나 되는 3단폭포로 계곡의 절경이 유명하다. 시내에서 서쪽으로 16㎞ 떨어진 팔공산 동쪽 기슭에 조계종 10교구 본산 은해사가 있다. 이 사찰에는 거조암을 비롯, 백흥암, 운부암, 중암암, 기기암 등 8개의 암자가 있으며 거조암 영산전은 국보14호, 운부암 청동보살좌상·백흥암 수미단과 극락전은 보물로 지정돼 있다.
신령면 화남리 권응수 장군 유물전시관. 선조때의 무신 충의공 권응수장군의 업적을 기리는 곳이다. 임란때 영천성 복성, 문경 당교, 안동, 구담, 밀양 등지에서 왜군을 크게 무찌른 권 장군의 영정과 용연, 장검, 교지 등의 유물은 그 당시를 그대로 보는 듯하다.
시내에 위치한 조양각. 포은 정몽주를 비롯한 선현들의 시편이 나란히 걸려 있다.
신령면에서 남쪽으로 강변길을 따라 1. 5㎞ 가량 올라가면 수도사가 나온다. 이곳에서 계곡을 따라 1㎞쯤 가면 높이 30m가 넘는 3단의 치산폭포. 이곳은 군위 부계의 제2석굴암, 팔공산 도로와 연결되어 수도사~치산폭포~동봉~동화사로 이어지는 등산코스를 이룬다. 종합운동장앞 우측에 위치한 영천민속관에는 관혼상제, 고서적, 화폐류 등 민속자료 8백여점 이 전시돼 선조들이 살아온 발자취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민속관 옆에는 왜란때 화약을 개 발해 왜적을 크게 무찌른 최무선장군기념비가 늠름한 모습으로 서 있다.
고려말의 충신이자 한국유학의 조종인 포은 정몽주의 고향은 영천시 임고면. 장항동 임고장 터 옆에 포은을 주향하는 임고서원이 있으며 서원 앞에는 포은의 붉은 넋을 마시고 자란 듯 한 수령5백년의 은행나무가 우람하게 서 있다. 포은 정몽주를 기리기위해 세워진 임고서원. 시내에서 경주방면 국도를 따라가다 보면 북안 농산물직판장이 있다. 이곳에서 왼쪽으로 4㎞쯤 더 올라가면 돌할매 표지판이 보인다. 돌할매는 무게 10㎏, 직경 25㎝의 화강암으로 된 것으로 자신의 운세를 점치는 돌로 알려져 있다. 요컨대 이 돌에 자신의 소원을 말하고 난 뒤 돌을 들어 쉽게 들리면 성취하지 못하며 들리지 않으면 소원이 성취된다는 이야기를 갖고 있다고. 인구 12만의 크지 않은 도시 영천. 무한한 잠재력과 유서깊은 문화유적, 관광자원을 가진 곳.
영주에 가면...
구름속 내민 철쭉 미소에 낯붉히는 소백
높고 푸른 소백산. 맑은 강 유유히 흐르는 여유로운 곳.
낙동강 물줄기를 이루어 아래로 내리듯 소수서원으로 큰 학맥을 이루고 부석사를 세워 불교문화를 꽃피운 곳.「관광보고」 영주를 찾으면 가슴부터 벅차 오른다.
며칠을 둘러봐도 모자랄 것같은 아쉬움부터 들지만 욕심을 내서는 올바르게 못 볼 것같아 마음을 추스린다. 가는 곳마다 활짝 핀 흰사과꽃과 인삼밭이 찾는 이들을 먼저 반기는 것도 이곳만의 풍경이다.
소백산 비로봉에서 바라본 풍경. 굽이굽이 드리워진 운무가 일품이다. 소백산을 병풍으로 두르고 길게 이어진 풍기읍, 순흥면, 부석면일대가 보고중의 보고. 1,439m의 비로봉, 국망봉, 연화봉을 거느린 소백산맥의 맹주 소백산이 보고를 보호하는 듯하다. 능선을 따라 펼쳐진 주목군락과 5~6월에 절정을 이루는 철쭉은 장관을 이룬다.
영주시는 올해 소백산철쭉제를 예년보다 1주일 정도 앞당겨 내달 22일부터 산신제, 장승깎기, 소백사랑 등반대회 등 여러 행사를 가진다. 영주시에서 죽령쪽으로 12㎞정도 가면 인삼의 고장 풍기읍. 읍내를 한눈에 바라보는 산법리 동산에 대한광복단의 정신을 기리는 기념공원이 조성돼 있다. 일제하 무력으로 국권을 회복 하기 위해 전국의 의병들이 이곳 풍기에 모여 대한광복단을 결성, 친일부호 사살등 독립운 동을 벌인 것을 기념한 것이다. 풍기읍에 위치한 대한광복 기념공원의 광복탑 순흥으로 향하면 점차 엄숙한 분위기가 감돈다. 소수서원을 비롯 순흥향교, 초암사, 성혈사등 유불· 충절이 동시에 서려있는 유서깊은 곳이기 때문이리라. 순흥면사무소내에 들면 옛 순흥척화비 등 각종 문화재가 마당에 정갈하게 보존돼 있으며 순 흥도호부 현판을 비롯 여러가지 유물들을 전시하는 전시관도 있어 지역의 역사를 보는데 도움이 된다.
순흥면 내죽리 울창한 숲속에는 나라로부터 책· 토지· 노비를 하사받고 면세, 면책 특권 을 가졌던 사액서원의 처음인 소수서원이 있다. 고려말 유학자 회헌 안향(晦軒 安珦)이 태어 나 자란 곳으로 훗날 풍기군수 주세붕이 그의 뜻을 기려 세운 서원이다.
그 후 퇴계 이황이 군수로 부임해 백운동서원을 소수서원으로 개명하고 명종이 편액글씨를 하사하였다고 전한 다. 사료전시관에는 안향, 주세붕의 영정이 살아 숨쉬듯 모셔져 있다.
명륜당, 전사청, 일신 재, 직방재, 동몽재 앞에 조용히 서면 그때의 글읽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올여름 개장될 소백산자락 옥녀봉휴양림.
영주시는 소수서원 일대를 세계적인 충· 효· 예의 교육장으로 만들기 위해 종합개발에 착 수, 선비촌을 조성중이며 앞으로 소수학예원, 소수박물관등을 건립 명실상부한 역사유적지로 키울 계획이다. 소백산 자락을 왼쪽으로 두고 소수서원서 부석사로 향한다. 5대 명찰중 하나인 부석사는 태 백· 소백산맥이 갈라지는 경계에 위치한 봉황산 품에 안겨 있다. 의상대사가 676년(신라 문무왕16) 왕명에 따라 창건한 사찰이다. 의상대사는 「고구려의 먼 지나 백제의 바람이 미치지 못하며, 마소가 근접할 수 없는」 곳을 찾아 5년여를 헤맨 끝에 이곳 봉황산 중턱에 화엄경의 근본도량을 세웠다고 한다. 그래서 부석사와 주변경관은 범인의 눈에도 예사롭지가 않은 모양이다. 절집은 고려초 소실 되었고, 무량수전은 고려 중기에 세운 목조건물이다. 신록이 피어오르고 있는 부석사 무량수전.
부석사는 입구의 천왕문에서 안양문에 이르기까지 108개의 석계단을 밟아오르는데 이는 108 번뇌를 제도한다는 뜻. 또 부석사에는 우리나라 최고의 목조건물인 국보 제18호 무량수전을 비롯하여 석등, 조사당, 소조여래좌상, 조사당벽화 등 5점의 국보가 있고 석조여래좌상, 3층 석탑, 당간지주, 고려목판 등 4점의 보물이 있다. 이밖에도 부석사 곳곳에는 의상대사와 관련된 전설이 전해온다. 영주시에서 실시하고 있는 자원봉사 안내원을 통해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도 관람과 함께 의미있는 일이다.「영주의 하회」 문수면 수도리(水島里). 내성천이 삼면을 흐르는 그 가운데 있는 마을이다. 안동 하회마을을 연상시키는 이 마을은 고택과 정자로 이루어진 전통마을로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구미에 가면...
금오산-길재선생 충절 품은 경북의 숨은 "금강"
구미에 가면 금오산이 있다. 금오산(金烏山)을 빼놓고는 구미를 이야기 할수 없다. 구미시를 감싸안은 금오산은 산자락을 드리운 곳마다 각기 다른 모습으로 되살아나며 다양한 문화를 낳고 숱한 인재를 배출해 온 구미의 보배. 그래서 금오산에 대한 구미사람들의 애착은 각별할수 밖에 없다. 금오산은 보는 곳과 사람에 따라서 그 모습이 사뭇 다르다. 낙동강 쪽에서 보면 거인상이요, 선산에서 보면 붓끝(筆峯)처럼 생겼다. 김천 개령지역 사람들은 도둑이 무엇을 훔치려고 숨 어있는 모습과 같다고 해서 적봉(賊峯)으로 부르고, 인동 주민들은 부처가 누워있는 모습에 비유해 와불산(臥佛山) 또는 귀봉(貴峯)으로도 부른다. 금오산의 자랑거리인 대혜폭포의 장관. 금오산은 높이가 9백76m에 불과하지만, 평지에서 우뚝 솟은 옹골찬 바위산들이 기암괴봉을 이루고 곳곳에 수려한 경관을 자아내 경북의 금강으로 불린다.
금오산은 곧은 절개를 지킨 명현의 은거지이기도 했다. 고려말의 충신이요 대학자인 야은 길재를 추모하기 위해 산자락에 세운 채미정이 바로 그 표상. 금오산 등산은 주차장에서 채미정과 자연보호기념비를 거쳐 케이블카를 타고 해운사에 내려 서 대혜폭포~흘송대~내성북문을 지나 정상의 약사암에 이르는게 가장 일반적인 코스다. 도선굴에서 내려다 본 금오산 봉우리들 금오산에는 바야흐로 봄이 한창이다. 계곡에는 옥같이 맑은 물이 넘쳐 흐르고, 아기의 손길같은 여린 나뭇가지들이 코끝에 와닿을 듯 향그럽다.
산비탈 곳곳마다 물감을 흩뿌린듯 희고 붉은 꽃이 흐드러지고, 춘정에 겨운 연초록 잎사귀는 봄바람에 취해있다. 무엇보다 바위산인 금오산에 올봄은 전에없이 물이 넉넉해서 좋다.
산을 오르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거대한 석축성곽인 금오산성. 천연의 암벽을 적 절히 이용한 축성으로 왜적을 막아온 선조들의 호국의 의지가 배어있는 산성이다. 케이블카 종착점에서 대혜폭포로 오르는 길목에 해운사가 있다. 내력이 그리 오래된 절은 아니나, 병풍을 둘러친 듯한 바위절벽 아래 대웅전 제하당 종음각 삼성각 등이 옹기종기 모 여앉아 등산객들의 잰 걸음을 잠시 붙잡는다. 해운사는 「달을 가리키면 달을 봐야지 왜 손 가락 끝을 보나」라는 책을 쓴 정휴스님이 주지로 있는 절이다. 금오산성의 위용 절에서 조금 비껴 올라선 곳에 금오산의 자랑거리인 대혜폭포가 우렁찬 물소리를 토해내고 있다. 깍아지른 듯한 암벽을 타고 거침없이 쏟아져 내리는 폭포수가 올봄은 특히 장관이다.
폭포 오른쪽 절벽 중턱에 있는 도선굴에 오르면 금오산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도선굴 입 구는 더할나위 없는 자연전망대. 신라말 도선대사가 수도한 천연동굴로, 맑은 날이면 강건너 천생산까지 손에 잡힐듯 보인다. 대혜폭포에서 등산로를 따라 정상까지 오르는데는 1시간20~30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정 상인 약사봉 아래에는 신라고찰 약사암이 절벽위에 날아갈듯 자리하고 있다. 이곳이 금오산 최고의 절경.
내려올 때는 케이블카를 이용하는 것보다 일행과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며 걷는 것도 운치가 있다. 해운사 밑의 샘물로 목을 축이고 계곡물 소리 청아한 산길을 걷노라면 신록이 짙어가 는 명산의 체취가 온몸을 감싼다. 공원 어귀의 금오랜드에 갖가지 위락시설이 들어서 있고, 금오지의 푸른 물결 위에서 유람선과 보트 놀이를 즐기는 멋도 괜찮다. 호수를 굽이지어 돌면 갖가지 나무와 꽃을 알아보기 쉽게 꾸며놓은 자연학습원이 있어 가족들과 꼭 한번 찾을만 하다.
안동에 가면...
선비기질 곳곳에 밴 양반의 고장
안동(安東)에 가면 양반이 보인다. 선비가 보인다. 발길 닿는 곳 마다 명문 거족의 종택이요 유 서깊은 고가가 즐비하다. 「대추 한개 먹고 요기하고, 열끼 굶어도 내색 안한다」은 꼿꼿한 선비 기질을 가진 사람들이 살아온 곳이 바로 안동이다. 안동은 유교문화의 본고장 답게 도산서원과 병산서원이 있고, 제비원 석불과 봉정사 극락전·전 탑등 귀중한 불교문화 유산도 적잖다. 고려 태조 왕건과 견훤의 싸움에서 비롯되었다는 차전놀이 와, 공민왕비의 자취가 담긴 놋다리밟기의 고향도 안동이다. 봄철 하회마을을 찾은 관광객들. 안동하면 흔히들 「물돌이동」 하회(河回)마을을 먼저 떠올린다. 낙동강 물줄기가 태극모양으로 굽이치며 유장하게 흐르는 하회마을은 임진왜란때의 명재상 서애 류성룡 선생을 낳은 풍산류씨의 반촌.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내외국인 관광객들의 발길로 늘 붐비는 곳이다. 마을 안길 골목골목을 돌 며 하동고택, 남촌댁, 양진당, 충효당 등의 고가를 꼼꼼히 살펴보면 그안에 하회양반들의 삶이 엿 보인다. 화회마을은 보는 사람의 안목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보인다. 이경원 하회마을 관리소장(52)은 『하회 마을을 좀더 알고 볼 것』을 권한다. 입구에서 안내화보라도 미리 구해서 보고 들어가는 것이 좀더 알찬 관람의 요령이라고. 안동의 또다른 얼굴인 제비원마애석불 요즘 하회마을을 찾으면 볼거리가 넉넉하다. 매주 일요일 오후 2시부터 마을 입구에 있는 하회별신굿 탈놀이 전수장에서 하회탈춤이 벌어진다. 「초랭이의 조착걸음·이매의 히쭉걸음, 그리고 양반걸음·할미걸음…」 풍자와 해학의 하회별신굿 탈놀이에서 한국인의 잊혀져가는 몸짓들이 되살아 난다. 하회동 탈박물관과 장승야외전시장인 목석원도 하회마을을 찾은 걸음에 꼭 둘러볼 곳. 경북 북부지방에서 으뜸가는 곡창인 풍산벌 북쪽 가장자리에 안동김씨의 동족 부락인 소산동 시 미마을이 있다. 호란때 청나라에 잡혀가면서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보자 한강수야」란 시조를 남긴 척화파 김상헌의 고향. 「청을 멀리한다」은 뜻으로 세운 청원루가 있는 곳이다. 역시 풍산 벌의 한쪽인 오미동은 일본궁성에 폭탄을 던진 의열단원 김지섭 의사의 항일의지가 깃든 마을이다. 임하호의 일몰
서후면 태장리 천등산 자락에 호젓이 자리한 봉정사 극락전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 오른편 위의 영산암은 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의 촬영장소로 알려지면서 나그네의 발길을 끄는 곳이다. 영산암에서 개목사에 이르는 20여분 거리의 한갓진 산길은 산책로로 그만. 영주방면에서 안동시내로 넘어가는 고갯길 왼쪽 태화산 기슭에 제비원 마애석불이 있다. 마음씨 고운 여관집 딸의 전설이 얽힌 제비원 바위부처는 안동의 또 다른 얼굴. 안동사람들의 미륵불로 추앙을 받으며 숱한 세월 길목을 지켜왔다. 임청각 들머리에 선 신세동 7층석탑.가장 높고 오래된 벽돌탑이다. 안동에 오면 빼놓을수 없는 코스가 퇴계로. 영남유학의 본산인 도산서원이 있는 동북쪽 굽이길이 다. 광산김씨 예안파 소유의 문화재를 집단 이전해 놓은 오천문화재 단지를 지나 안동호의 푸른 물결이 건듯건듯 나타났다 사라지는 끝 지점에 도산서원이 있다. 서원에서 고개하나 넘어 퇴계 이황이 태어난 태실과 종택이 있고, 가까운 곳에 퇴계의 묘소가 있 다. 이곳은 실로 「퇴계 이황의 답사코스」라 할만 하다. 인근 온혜리에는 약알칼리에 중탄산나트 륨이 함유된 온천수가 솟고, 댐쪽 원천리 이육사의 고향 「강마을 그언덕」은 물속에 잠겼으나 시비가 호수변을 지키고 있다. 고성이씨의 종택인 임청각(臨淸閣)은 안동댐 입구 보조호수 옆에 자리하고 있다. 임시정부를 이끈 석주 이상룡 선생의 고택이기도 한 이집은 원래 아흔아홉칸 대저택이었다. 일제가 집 중간으로 철도를 놓는 바람에 지금은 50여칸만 남은채 퇴락해 가고있는 모습이 안타깝다. 임청각 들머리 에 서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고 오래된 신세동 칠층전탑. 잡초가 돋고 이끼가 낀 몸으로 지탱 해온 천년세월의 무게가 보는이의 옷깃을 여미게 한다. 호수 건너편 언덕에 있는 민속촌에 가면 드문 볼거리와 먹거리가 있다. 안동댐이 생기면서 수몰 위기에 처한 민속가옥 여러채를 옮겨 놓았는데, 까치구멍집·도토마리집 등 제마다 독특한 초가 집이 볼만하다. 이곳에서 안동의 별미 헛제사밥을 맛볼수 있다. 민속촌 초입에 있는 민속박물관에 가면 안동사람들의 삶의 자취를 한눈에 볼수 있다. 실감나게 전시된 갖가지 민속자료를 둘러보면 안동의 사대부와 서민들의 생활상이 피부로 느껴진다. 임하면 천전(내앞)리 임하댐 보조호수 앞에 의성김씨 종택이 있다. 일반주택에 궁전형식을 덧보태 어 지었는데 한국 상류주택으로는 가장 균형과 조화를 갖춘 집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종택앞 왼 편의 초등학교 자리가 바로 한말 독립운동의 산실이었던 협동학교가 있었던 곳. 안동은 이렇듯 어디를 가든 고풍과 옛향기가 남아있다. 그래서 안동에 가면 구경만 하고 와서는 안 된다.
하동~화개장터~쌍계사
「벚꽃터널」지나니 어느새 신선이 되었네!
하동(河東)에 가면…. 산이 없나, 강이 없나, 바다가 없나. 하동에 가면, 지리산이 솟아있고 섬진강 이 흐른다. 바다는 한려수도의 노량해협. 그리고 봄꽃이 흐드러진 하동 들녘 여기저기. 새벽안개 같은 잔물결이 눈에 밟힐 듯한 섬진강 하류. 요즘 하동포구를 찾으면 볼 것도 많고 먹 을 것도 많다. 강변을 따라 줄지어 앉은 식당마다 재첩국이 맛깔스럽게 끓고, 운좋은 날이면 금방 따내온 섬진강 굴(석화)의 상큼한 향미를 한입 그득 담을수 있다. 4~5월 민물과 바닷물이 엇섞이 는 섬진강 하류에서 나온 굴은 알이 꽉차고 맛이 최고. 섬진강 하류에서 갓 따내온 석화(굴). 바위조각 같은 껍데기속에 허연 알이 그득 찼다.
하동은 섬진강을 가로지르는 다리 하나 사이로 경상도와 전라도가 갈린다. 하동읍에서 길이 4백 20m의 섬진교를 건너면 전남 광양시 다압면 신원리. 다리를 건너자 마자 말씨가 거짓말처럼 다르 다. 하동에서는 「아따 행님 어디가십니꺼」란 말이 다리를 건너면 「워메 성님 워디가시요이」 로 바뀐다는 우스갯소리가 실감난다. 3월말에서 4월초순 사이면 하동읍에서 화개장터를 거쳐 쌍계사에 이르는 오십 리 길은 화사한 벚 꽃터널로 변한다. 도로변을 빼곡히 메운 벚꽃나무가 앞다투어 꽃망울을 터트리면 계곡 물소리 청 아한 꽃길은 그대로가 선경. 봄바람이라도 건듯 스치면 여린 꽃송이들이 눈발처럼 흩날리고, 새하얀 꽃잎을 띄운 쌍계사 계곡 은 애틋한 봄향기를 섬진강으로 실어 나른다. 만개한 꽃가지에 가로등 불이 어리는 화개천 기슭 의 봄밤은 꿈결처럼 애잔하다. 이번 주말에는 화개장터에서 벚꽃축제가 열린다. 하동~화개간 십리벚꽃길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섬진강 줄기따라 화개장터엔, 아랫마을 하동사람 윗마을 구례사 람 닷새마다 어우러져 장을 펼치네…」 가수 조영남의 노래로 더욱 유명해진 화개장. 옛날에는 장터 앞 섬진강 포구까지 부산서 소금배와 고깃배가 들어올 만큼 큰 장이었던 화개장은 시대의 변화와 함께 옛 영화를 거의 잃어버렸다. 장터에 세운 돌비석 하나만이 향수와 추억에 잠 겨 있을 뿐. 여느 시골장터와 다를바 없는 모습이다. 화개장터에서 구례쪽 큰 도로로 올라서는 길옆에 재첩국 식당이 하나 있다. 하동에서 구례로 가 면 경상도의 마지막 집이요, 구례에서 하동으로 오는 길에는 경상도의 첫집인 태봉식당 (0595~83-2466). 13년째 한집을 지켜왔다는 안주인 안외선씨(52)가 정이 뚝뚝 묻어나는 옛얘기를 늘어놓는다.
『교통이 요즘처럼 좋지못할 때는 구례 학생들이 화개중학교에 다니면서 공부를 안했소. 구례와 하동간에 혼사도 흔하고 한동네 사람처럼 살았다아이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하동에서 구례로 장가는 많이 들어도, 시집가기는 꺼려한다나…. 그리고 대통령 선거철만 되면 괜시리 관계가 머슬 머슬해진다고. 화개는 우리나라 전통차의 산지. 쌍계사 부근의 야생차 밭에 차(茶)의 시배지(始培地)가 있다. 봄 기운과 더불어 화개천을 낀 산자락 차밭마다 파릇파릇 새순이 돋았다. 참새의 혀같이 생긴 새순 을 따서 만들어 작설차(雀舌茶)라고 하며, 대나무에 맺힌 이슬을 먹고 자란 야생차라 하여 죽로차 (竹露茶)로도 부른다.
우리나라 불교음악의 발상지인 쌍계사 팔영루. 붉은 동백꽃이 샘물위에 지며 봄날은 또 오고 간다. 쌍계사 입구의 황토집 쌍계초암(0595~84-6542)을 찾으면 그윽한 국악가락 속에 지리산 야생차의 부드러운 맛과 향기를 느낄수 있다. 차값도 싼 편. 차 만드는 전과정을 재래식 수작업에 의존하며 전통의 향기를 고집스레 지켜오고 있는 쌍계제다의 김동곤씨(51)가 운영하는 찻집이다. 쌍계사로 오르는 길. 지난주 내린 비로 계곡물 소리가 한결 해맑다. 쌍계사는 팔영루(八詠樓)가 있어 더욱 값진 고찰이다. 우리나라 불교음악(梵唄)의 산실이요, 숱한 범패 명인의 요람이 바로 팔영루이기 때문이다. 팔영루 주변에는 하얀 목련이 소담스런 꽃봉오리를 막 터트렸다. 제풀에 겨운 동백은 벌써 돌층 계 위로 후두둑 붉은 꽃잎을 떨군다. 하동의 봄도 이렇듯 벚꽃처럼 화려하게 피었다가 동백처럼 허망하게 저물어갈 것이다. 그 무상함을 달래려 뭇 사람들은 또 산사를 찾을 것이고….
송림사 5층전탑.기성동 3층 석탑
온갖 풍상에도 꿋꿋한 몸가짐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IMF 한파로 얼어붙은 이 산하는 오는 봄도 서럽다. 예년 같으면 꽃소식을 따라 동으로 남으로 떠날 채비에 분주했을 요즘, 올 봄맞이는 가까운 명산과 고찰 을 찾아 이지러진 마음이나 추스려볼 일이다. 송림사 경내에 우뚝선 5층전탑의 위용.
팔공산 서편 자락을 오르는 길에 늘 지나치기만 했던 송림사. 경내에 예사롭지 않은 5층탑 이 하나 우뚝 서있다. 송림사 윗길 기성삼거리 부근 둔덕에도 또하나의 석탑이 버티고 섰 다. 팔공산 남서쪽 기슭에 있는 2개의 고탑(古塔)을 눈여겨 본다. 탑이란 보다 나은 삶을 염원해온 민초들의 불심(佛心)의 결정체. 겨울이 비껴가는 팔공산 기 슭, 잿빛 하늘을 찌를듯 솟은 고탑 둘. 오랜 풍상에도 입술 한번 열지않고 몸부림만 한번 없이 오로지 한가지 몸짓으로 그렇게 서있다. 세월에 삭은 몸에 이끼를 두른 돌탑 하나에서도 어려운 시절을 이겨나갈 불사(不死)의 의지 를 배울수 있다. 매몰찬 겨울바람을 또 이겨내고 다시 봄 햇살을 기다리는 탑을 관찰하고 음미하며 IMF를 이겨나갈 힘이 얻는다.
▨송림사(松林寺) 5층전탑
송림사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아담한 고찰. 누구나 반겨줄 따뜻한 인정이 돌담안에 가득하 다. 절집안에 들어서면 우선 눈에 들어오는 것이 거대한 탑. 벽돌로 반듯이 쌓아올린 높이 16·3m의 5층전탑으로 통일신라 시대의 작품이다. 겁을 태워 빚은 형상. 천년의 풍상도 무색한 중후한 품격이 사뭇 든든하다. 고색창연한 대 웅전과 명부전에도 위엄이 서려있다. 절집과 탑 그리고 석등이 아름드리 나무와 잘 어우러 진 송림사는 또 작은 공원 같기도 하다. 봄내음이 언뜻 묻어나는 팔공산의 맑은 바람결에 탁한 가슴을 씻어본다.
▨기성동 3층석탑
야트막한 벌판위에 우두커니 선 흙향기 묻은 3층석탑. 겉보기와는 달리 전형적인 통일신라 때의 석탑으로 보물 제510호다. 높이는 5·2m. 원래는 5층석탑이었다고 전한다.
화강암으로 된 2중 기단위에 탑신을 세웠는데, 상층기단 4면에 커다란 안상(眼象)을 조각 한 것이 매우 독특하다. 돌보아 주는이 없이 들녘에 혼자 선 천년석탑. 세월에 할퀸 이마를 들면 그래도 팔공산 능선위로 파란 하늘이 보인다.
교통
대구에서 가까운 거리인 만큼 승용차를 이용하면 팔공산순환도로를 타거나, 한티재를 넘 어 군위 삼존석굴로 드라이브를 즐길수 있다. 대구에서 16번 버스가 하루 10여차례 송림사 와 기성동 삼거리를 지난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버스를 이용해도 좋다.
상주 경천대.남장사
▨노악산 남장사
노악산 품안에 아늑하게 안겨 있는 남장사는 불상과 건축물등 불교 문화 유적이 많이 남아 있는 천년 고찰.
특히 극락보전의 금단청 맛배지붕 겹처마는 건축미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극락보전 앞 석등도 고요한 가람의 운치를 더해 준다. 상주 버스터미널서 남장동행 시내버스로 20분정도. 요금은 좌석 9백 20원, 일반 6백원.
▨경천대
「기이한 바위가 우뚝 솟아 자연히 대(臺)가 이루어지고
푸른 벽 동서에는 푸른 물이 돌아간다.
우뚝우뚝 쌓은 것은 어찌 인력으로야 형용인들 하리…」
옛 시인은 경천대의 아름다움을 이렇게 노래했다.
낙동강을 발아래로 굽어 보며 절벽 위에 유유히 서서 천년풍상에도 변치 않는「낙동」의 유유함을 바라보는 수려한 경관이 일품. 병자호란후 봉림대군이 중국으로 볼모 갈 때 주치의로 따라 갔던 우담 채득기 선생이 17세 기 초에 터를 닦았다고 전해진다. 요즘은 놀이동산과 인공폭포가 갖춰진 종합관광지로도 유명하다. 놀이공원에는 회전그네, 바이킹등 각종 시설이 있어 아이들과 함께 즐길 수 있다. 상주 버스터미널서 사벌행 버스를 타면 된다. 하루 4회운행. 요금은 좌석 1천원, 일반 6백원. 택시를 이용하면 8천 6백원. 노악산 품에 아늑하게 안긴 남장사 극락보전앞 석등리 운치를 더해준다.
▨공갈못
「저승에 가도 공갈못을 구경 못한 사람은 이승으로 돌려 보낸다」는 속설이 옛부터 전해올 만큼 풍광이 아름다웠다는 저수지.
못 서쪽에는 몇 리에 걸쳐 연 꽃이 피어 장관을 이루었다고 한다.
지금은 대부분의 저수지가 논으로 변하고 4천평 정도만 남아 옛 모습을 많이 잃어버려 아쉬 움을 더해 준다. 상주시는 공갈못 복원을 위해 올해부터 부지매입에 나설 계획.
상주시내서 공검행 버스 이용. 20분 소요. 요금 6백원
교통
대구서 김천을 거쳐 상주로 가면 된다.
대구~김천은 경부선 열차가 하루 50회 가량 다니므로 언제라도 역에 나가면 기차를 탈 수 있다. 소요시간은 50분 정도. 상주~김천은 하루 5번씩 열차가 다닌다. 소요시간은 40분.
김천→상주행은 오전 5시(비둘기, 5백원), 9시 24분(통일, 2천 6백원), 오후는 3시 40분(통 일), 6시 45분(비둘기), 8시 57분(무궁화, 3천 8백원)등 5회.
상주→김천행은 오전 7시 31분(비둘기), 8시 41분(무궁화), 11시 52분(통일), 오후 4시17분 (통일).8시43분(비둘기)등 5회
경남밀양
밀양시내 굽어보며 우뚝선 영남루
봄의 문턱을 알리는 입춘이 지났다. 긴 겨울의 동면을 끝내고 모든 만물들이 기지개를 켠다. 하지만 아직은 완연한 봄을 느끼기엔 좀 이르다. 중간중간에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가 아직은 우리곁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 이번주는 기차 에 어린 옛추억을 가슴에 안고 대구에서 멀지않은 밀양을 여행해보는것도 좋을듯. 밀양의 대표적인 유원지인 긴늪숲. 밀양시 교동 동북쪽에 밀양천을 따라 너비 200m,길이 1,500m 에 걸쳐 1백년된 소나무들이 빽빽히 들어서 휴양객들이 많이 찾는다.
▨밀양
대구-부산의 중간에 위치한 밀양은 대구역에서 기차로 1시간정도 걸린다(통일호 기준). 20 분-30분간격으로 기차가 운행되고 있어 여행객들에게 기차시간에 대한 부담은 거의 없는 편. 요즘은 서민들의 애환이 깃든 삶의 소리로 시끌벅적하던 예전의 완행열차인 비둘기호의 역할을 통일호가 대신하고 있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열차내 김밥장사의 「김밥」하는 목소 리가 유난히 정겹고 차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에 포근함이 느껴진다.
언뜻 밀양하면 작은도시로 생각되지만, 새마을호가 정차하는 큰 역이고 경남의 대표적인 도 시중 하나다. 시내풍경은 시골읍내의 추억을 생각나게 하는 아기자기한 맛도 간직하고 있다. 특히 2, 7일 열리는 장날 풍경은 우리를 수십년전의 옛날로 되돌려 놓기에 충분하다. 밀양에 는 국내최대의 억새풀밭인 사자평을 비롯, 얼음골, 표충비등 신비로운 경관이 많아 연인의 데이트나 가족나들이 하기에 좋다.
▨영남루
밀양역에서 버스로 10여분거리로, 밀양시내를 조망하며 산절벽에 우뚝서있어 관광객의 시선 을 모으는 영남루. 진주의 촉석루, 평양의 부벽루와 함께 우리나라 3대누각의 하나로 꼽힌 다. 영남루 경내에는 국화꽃무늬를 이루고 있는 석화(石花)가 산발적으로 분포 관광객들의 눈길 을 끈다. 비온후에 더욱 자태가 선명한 이 석화는 이곳에서만 볼수있어 이채롭다. 영남루가 세워진 밀양강 기슭 또한 빼어난 풍치를 자랑한다. 멀리 다리를 건너는 기차의 모습과 열심 히 자맥질을 하는 오리의 모습에서 여유로움을 느낄수 있다. 영남루안에는 박물관과 아랑각 등이 있다. 입장료 5백원. 밀양의 관문인 영남루. 촉석루.부벽루와 함께 우리나라 3대 누각의 하나이다.
▨사자평
밀양을 구경하면서 결코 놓칠수 없는곳. 표충사를 안고있는 재약산정상에 오르면 국내최대 의 억새풀밭이 펼쳐진다.밀양군 산내면에 있는 재약산은 7개의 산능선이 이어지는 속칭 영 남알프스의 대표격인 명산. 사자평에 오르는 등산코스는 표충사의 옥류동천계곡을 끼고 오 르는 길이 비교적 잘 닦여있다. 1시간 30분정도 오르면 96년 폐교된 하늘아래 첫 학교인 고 사리분교가 나온다. 여기서부터 1백만평의 광활한 부지에 나무한그루 없는 대초원의 장관이 펼쳐진다. 내려올때 는 능선을 따라 얼음골로 내려오면 두가지명소를 한꺼번에 볼수있다.총6시간정도 소요.
진주 진양호.촉석루
▨진양호
「 삼천리 방방곡곡 아니간 곳 없다만은 비봉산 품에 안겨 남강이 흘러가는 내 고향 진주만은 진정 못해라 유랑천리 십년만에 고향 찾아왔노라 그 이름 부르면서 달려왔노라」
진주교에서 바라본 남강과 진주성의 모습.진주성내에는 촉석루,의기사당,순절단,의암등 각종 사적과 문화재들이 있다. 진양호 선착장 기슭에 세워져 있는 「 남인수 노래기념비」에 새겨져 있는 「 내 고향 진주 」. 기념비는 마침 겨울비에 촉촉히 젖고 있었다. 비내리는 진양호. 잔잔한 수면은 푸른 융 단을 깔아놓은듯 가없이 펼쳐져 산기슭 사이로 아득해지고 있었다. 진주역에서 택시를 타면 불과 10분여 거리. 진주의 명물 진양호 공원은 휴일이긴 했지만 비가 내려 가족 단위나 아 베크족만 눈에 띄일 뿐. 소나무에 듣는 빗방울 소리만 고요를 깨뜨리고 있었다. 공원 정상에 있는 팔각정. 한 쌍의 연인이 낯선 이방인이 나타난 줄도 모르고 어깨를 낀 채 사랑을 속삭 이고 있었다. 선착장에서는 비가 와 배를 탈 수는 없었다. 하지만 비오는 진양호의 운치를 즐기려는듯 사람들이 속속 주변의 레스토랑에 모여들고 있었다. 「 에나벨 리」「 헤밍웨이」「 피아노」「 풍경이 있는 집」「 폭풍의 언덕」등. 아름답고 전망좋은 건물들에서 커피나 홍 차 한 잔을 마시는 여유도 좋을 듯. 진양호 공원에는 동물원, 놀이시설, 산책로등이 있어 어 린이를 동반한 가족이나 연인, 친구끼리 오기에 적당하다. 진양호는 남강 상류를 댐으로 막 아 조성한 인공호수. 28㎢에 이르는 방대한 면적과 호수를 둘러싼 산자락이 장관을 이룬다. 호수를 붉게 물들이는 해넘이도 좋고 가을엔 단풍도 아름답다. ▲가는 길:진주역 동쪽에서 버스로 30분 거리. 입장료 5백원.
▨진주성. 촉석루
푸른 빛을 띠고 유유히 흘러가는 남강을 끼고 진주성은 그렇게 빗속에 고즈넉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바람부는 촉석루와 임진순절기념단. 그리고 의기(義妓)사당. 역사의 현장을 보러 비 오는 날씨에도 방문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진주성은 시내에 위치, 진주 시민의 일 상생활 속에 충절로 그대로 녹아 있는듯 했다. 진주의 젊은 여인들은 저 유명한 변영로의 시, 이동기의 노래에 나오는 「 논개」의 충절과 널리 알려진 가사 「 진주낭군」에 나오는 임을 기다리는 진주 아낙네의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듯 했다.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이 성에서 김시민 장군은 10배가 넘는 왜군에 대승을 거뒀다. 이른바 3대첩의 하나인 진주대첩. 그러나 이듬해 왜군이 재침, 중과부적으로 여성을 포함한 민.관군 7만명이 장열히 순절했다. 본성동 남강면 절벽위에 서있는 촉석루. 우리나라 3대 루의 하나로 유명하다.
촉석루는 남원 광한루, 밀양 영남루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 누각의 하나로 꼽히는 아름다운 건축물로 한국전쟁 때 불탔으나 복원됐다. 의기사당은 2차 진주성 싸움 뒤 왜장을 껴안고 남강에 투신한 논개의 영정과 위패를 모시고 있다. 논개의 영정은 김은호 화백의 작품. 촉석 루에서 강 쪽으로 가파른 길을 따라 내려가면 논개가 적장을 껴안고 투신했다는 의암(義岩) 이 있다. 의암은 편평한 윗면의 크기가 2.65m ×3.3m로 강물 속에 솟아있다. 진주성 내에 있는 국립진주박물관에는 가야시대의 유물이 집중적으로 전시돼 있다.
▲가는 길:진주역 북동쪽 약 1㎞. 도보 20분, 버스 5분. 진주성 입장료 3백30원. 박물관입장 료 일반 4백원.
▨태정민속박물관
조선시대등의 손때묻은 생활용구들이 전시된 사설박물관. 관장 김창문씨가 평생을 바쳐 모 은 것으로 손으로 만져보고 쓰임새를 직접 들을 수 있다.
▲가는 길:진주성 촉성문 옆.관람료 어른 2천원.
열차시각 및 요금
▲동대구역 -> 진주 : 02:00(무궁화), 11:44(새마을), 16:01(무궁화), 20:58(무궁화)
▲진주 -> 동대구역 : 07:20(무궁화), 09:32(무궁화), 12:45(무궁화), 16:15(새마을)
▲소요시간 : 2시간 24분~2시간 49분.
▲요금 : 무궁화 7천원, 새마을 1만8백원(주말기준)
영양 - 봉감모전 오층석탑, 선바위
봉감모전 오층석탑
청송 진보에서 월전 검문소 삼거리를 지나 영양으로 가는 길목, 가을걷이가 끝난 이곳 빈 들녘 산 자락에도 늦가을의 잔영이 머물고 있다.
영양지방의 어귀인 석보와 입암. 이시대 최고의 작가중 한사람인 이문열의 고향집, 천년고탑 봉감모전오층석탑, 그리고 영양의 입간판인 선바위등…. 무심코 지나칠 수 없는 몇몇 곳들. 계절의 갈림길에 서서 무상한 세월과 어찌할수 없는 시간의 무게를 조용히 반추해 볼만한 곳이다.
▨이문열의 고향집
소설가 이문열이 태어나 어린시절을 보낸 곳은 석보면 원리. 석보파출소 왼쪽으로 난 언덕길을 올라 석보예배당 앞에서 오른편 둔덕을 넘어서면 작가의 고향마을이 고풍스런 모습을 드러낸다. 그의 작품속에 등장하는 자전적인 나 를 비롯, 숱한 소설속 인물들의 삶의 역정이 펼쳐지는 무대가 바로 여기. 이문열의 생가는 석천서당 뒤편 향나무 한그루가 꼿꼿하게 버티고 선 고가이다. 군데군데 보수의 흔적이 있긴 하지만, 빈 집으로 형편없이 퇴락한 옛집 마당에는 마른 잡초가 무성하다. 뒷 울타리 대숲을 스치는 마른 바람 소리. 빛바랜 기왓골을 처연히 비추는 파란 하늘. 앙상한 가지위로 점점히 박힌 붉은 감. 시제(時祭)를 모시기 위해 몇일전 다녀갔다는 작가의 평소 회고대로 언제나 마음속에 담고 살아온 늦가을 고향의 이미지 그대로다. 쇠락한 고택 마당에 서면 작가의 인생과 문학이 모두 손에 잡히는 듯 하다.
늦가을에 찾은 작가 이문열의 퇴락한 고가. 작가의 옛집은 소설속의 무대로 자주 등장한다.
▨ 봉감모전오층석탑
입암중학교 옆길로 난 농로를 따라 강쪽으로 1.3km쯤 들어가면 웅장한 규모의 석탑 하나가 우뚝 서있다. 국보 187호 봉감모전오층석탑(鳳甘模塼五層石塔).통일신라때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탑은 지난 90년초 보수작업때 흔히 철주가 나오는 여느 탑과는 달리 목주의 흔적이 발견되어 학계의 관심을 모았다. 탑 이름에 봉감 이란 말이 붙은 것은 아마도 오래전 이자리에 봉감사(鳳甘寺)란 큰 절이 있지 않았겠느냐는 추측을 낳고있다. 천년 풍상에도 육중한 몸을 의연히 추스려온 석탑. 이 골짜기에 자리한 후로 얼마나 많은 사람과 시대의 늦가을을 지켜봐 온 것일까. 저녁 햇살 탓인가, 고탑이 황톳빛을 머금었다.
▨ 선바위
입암에서 저만치 강너머 청기로 가는 길옆 절벽에 선 깍아세운 듯한 큰 바위. 영양읍으로 곧장 향하는 길에 얼핏 보고만 지나치기 쉬운 이 바위가 바로 조선세조 때 남이(南怡)장군의 전설이 담긴 선바위(立巖).반란군을 평정하러 내려온 남이장군이 역모자를 물리친 후, 거친 지세를 무마하기 위해 큰 칼로 산맥을 잘라 물길을 돌리면서 마지막 칼질을 한 흔적이라고 전한다. 입암(立巖)이란 지명의 모태가 된 바위인 듯.
팔공산 일대
군위삼존석불은 풍광이 좋아 평일에도 찾는 사람이 많다.
한반도의 등줄기인 백두대간을 타고 달려온 붉디붉은 가을의 전령 이 팔공산 자락에도 상륙했다. 지난달 말 설악산 대청봉에서 시작된 단풍이 이달 하순들면서 팔공산 중턱까지 예쁜 옷을 입히고 있는 것. 설악산 단풍이 화려하고 내장산 단풍이 아기자기하다면 팔공산 단풍은 화려하면서도 아기자기한 양면을 모두 갖췄다. 이번 주말은 색동옷으로 갈아 입은 팔공산의 가을 정취를 즐기며 가족과 함 께 가벼운 드라이브를 나서보면 어떨까. 산자락을 따라 곳곳에 숨어 있는 사찰과 유적도 한번 둘 러보면서. 붉게 물든 숲속 길을 부부, 연인끼리 한번 걸어보는 것도 더없는 추억이 될듯.
▨선본사(禪本寺)
예쁘게 자리잡은 절집들. 깔끔한 풍경. 선본사는 단아한 가람이다. 단풍에 뒤덮인 극락전서 건너편 산을 바라보면 숨이 막힐 정도. 산중턱까지 번져 내려온 붉은 물 결 이 가을 나그네의 시선마저 온통 붉게 물들인다. 5세기말 극달화상이 창건한 후 다섯번이나 중창했을 정도로 유구한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고찰. 갓바위 뒷길 주차장 위쪽에 있다.
원효대사가 처음 수도 했다는 바위굴이 유명한 불굴사
▨부인사(夫人寺, 符仁寺)
신라의 여걸 선덕여왕이 소원을 빌던 원당(願堂)이라는 부인사 돌계단에도 가을색이 완연하다. 고려때 초조대장경을 보관했던 이 곳은 석등, 석탑, 부도등 각종 석조 문화재가 많아 한번쯤 들러 볼 만하다. 대구시민들이 생수를 떠가는 곳으로 유명해진 부인사는 비구니 사찰. 종각, 누각등의 보수, 증축공사가 한창이라 소음이 귀에 거슬리는게 아쉽다.
▨불굴사(佛窟寺)
원효대사가 처음으로 수도했다는 바위굴이 유명한 사찰. 고색창연한 3층 석탑(보물 429호) 위에 쌓이는 샛노란 낙엽이 정겹다. 7세기 말 창건 당시에는 와가(瓦家)만 5백여동에 달하는 큰 사찰이었다고 한다. 부처님 진신사리 를 모셨다는 적멸보궁이 있다. 대구시내서 출발하면 갓바위 뒷길 삼거리 1백m쯤 못미쳐 표지판을 만날 수 있다.
▨군위 삼존석불 (제2석굴암)
청산은 나보고 말없이 살라하고창공은 나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바스락거리는 낙엽을 밟으며 걷다 마주치는 삼존석불 계단앞의 경구(驚句).탐욕에 찌들린 우리네 모습을 되돌아 보게 해준다. 장중한 중앙여래상, 몸·허리·다리 3곡(曲)의 날씬한 몸매를 자랑하는 좌우 보살상은 꼭 한번 봐 둬야 할 불교 예술작품. 통일신라 장인들의 뛰어난 예술감각이 눈에 보이는 듯 하다.
창녕 화왕산, 관룡사
5만6천평 정도 되는 정상의 대평원은 온통 억새로 장관을 이루고 있다.
가을의 한가운데에 선 장부의 뚝심인가. 어떤 바람에도 꺾이지 않는 오로지 억새만이 있는 정상. 이 때가 가장 믿음직스러워 보인다. 연한 홍조를 머금은 억새들의 밭. 하얀 꽃을 한껏 피운 것, 이미 떨구어 버린 것, 모두가 가을 나그네를 몸짓으로 부르고 있다.
경남 창녕 화왕산. 불이나야 창녕이 번창한다는 전설을 간직한 산. 정상의 십리 억새밭은 어쩌면 다가올 멈춤의 긴 시간을 예감한듯 지금 최고의 자태를 뽐내고 있다. 5만6천평의 대평원이 온통 억새다. 가르마처럼 난 등산로. 억새 사이사이를 오가는 등산객이 너무도 작게 보인다. 인간이 이 렇게 작아 질 수도 있구나. 산은 해발 757m로 그리 높지 않다. 정상은 남쪽의 배바우, 북쪽의 산정, 동쪽의 화왕산성이 둘러 싸고 있는 대평원. 평원 안에는 화산의 분화구로 추정되는 3개의 연못이 있어 아무리 심한 가뭄 에도 물이 마르지 않고 있으니 신기하기만하다. 삼한시대때부터 이곳에 사람이 살았다는 흔적이 산성의 동쪽에 남아 있다. 넓은 평원을 감싸고 있는 화왕산성은 신라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2.6km에 이르는 성이 아직도 남아 있다. 의병장 곽재우 장군이 정유재란시 가등청정의 왜군과 싸워 승리한 곳이기도 하다. 사람 키만큼 자란 억새밭 곳곳에는 캠핑을 할 만한 장소도 많다. 초원의 풍경과 어우러지는 가을 바람, 햇빛이 쉽게 무념의 세계로 빨려들게 한다. 일출과 일몰을 한곳에 앉아서 볼 수 있고 서쪽 방향으로 보이는 광활한 우포늪은 지는 햇빛을 사정없이 산정으로 되비춘다. 산에 오르는 주등산로는 창녕 시내에서 말흘리로 들어가면 나오는 화왕산장 옆길에서 시작된다. 천천히 걸어 1시간 30분 정도면 오른다. 길은 거의가 돌계단으로 어려움은 없지만 만만하지는 않 다. 특히 정상을 50m 정도 남겨둔 고개에서는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오르다 보면 이런 산꼭대기 에 과연 널찍한 평원이 있을까하는 의구심도 든다.
하산길에 관룡사를 들러볼 수도 있지만 차를 가지고 갈 경우엔 이동이 어려워 곤란하다. 창녕읍 에서 계성면까지 8km를 더 달려 옥천 방향으로 들어가면 관룡사가 나온다. 이곳에서 정상까지의 등산로는 임도를 이용해 편한 편이다. 마음 편히 거닐 수 있는 널찍한 평원. 곳곳에 출렁이는 억새풀. 이곳이라면 정상에 오르는 모든 이의 마음이 평원만큼이나 넓어질 것같다.
관룡사
화왕산 중턱에 자리를 잡은 관룡사(觀龍寺). 거찰은 아니지만 아담하고 조촐하여 운치가 있다. 얼 핏 한눈에 전경이 다 들어온다. 깨끗하게 비질된 안뜰은 이곳 스님들의 정갈함을 엿보게 한다. 잎 은 모두 떨군 채 익은 감만을 매달고 있는 한 그루의 감나무는 세속인들에게 버리라 고 조용하 게 얘기하는듯 하다. 이 절에는 보물인 약사전, 대웅전, 용선대 석조석가여래좌상등이 있어 범상한 절이 아님을 알 수 있으나 아쉽게도 절의 창건에 관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단지 신라 진평왕 5년(583년), 이 절을 지을 때 화왕산 정상 3개의 못에서 아홉마리의 용이 뇌성 벽력과 함께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보고 절이름을 관룡사라 불렀다고 한다. 원효대사가 한 때 이 절에서 1천명의 제자에게 화엄경을 설파했다고 전해지는 신라 8대사찰의 하나다. 관룡사는 문화재뿐만 아니라 주변의 아름다운 경관도 빼놓을 수 없는 자랑거리. 뒷편의 관룡산 (구룡산)은 깎아지른듯 하고 병풍을 두른 것같은 절벽이 일품이다.
봄엔 진달래, 여름은 초원과 계곡, 가을엔 억새, 겨울은 넓은 평원을 덮는 설경. 이만큼 조화로움 을 가진 곳도 많지는 않을 것이다.
대중 교통 숙박
화왕산군립공원은 창녕군 창녕읍 옥천리 일원. 버스는 대구서부터미널에서 창녕까지 30분 간격 으로 다닌다. 읍에서 공원까지는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수시로 운행.
1박을 할 경우 창녕읍내에 여관이 많으나 대게는 부곡온천에서 숙박한다. 온천은 읍에서 영산 방면으로 21km를 더 가야 한다. 관룡사 입구에는 분위기가 괜찮은 옥천산장여관 (0559-521-2500)과 옥천관광농원식당(521-2400)이 있어 숙식을 해결할 수 있다.
군위 지보사·법주사
가을속에 잠긴 절집정취 일반 맷돌의 2배가 넘는 크기인 법주사 왕맷돌. 보광명전 앞 석탑과 소나무도 눈길을 끈다. 가을은 산내음 그윽한 고즈넉한 산사(山寺)를 찾기에 더없이 좋은 때. 산골짜기를 스치는 가만한 바람결에 귀 기울이며 이 가을 해맑은 상념에 젖어보자. 불타(佛陀)의 향내는 명산대찰(名山大刹)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대구에서 가까운 군위, 가을색이 차곡차곡 개켜진 산기슭 마다 크지는 않지만 유서깊은 절이 더러 있다. 선방산 지보사와 청화산 법주사. 관광객들의 발길로 늘 번잡한 유명 사찰과는 달리 찾는 이가 드물어 고요에 잠긴 절집의 가을 정 취. 가족들과 조용히 찾으면 그만한 감흥을 안고 돌아올 수 있다.
지보사 3층석탑. 지보사에서 가장 큰 보물인 석탑 앞뒤로 접시꽃과 백일홍이 붉은 꽃망울을 터트렸다.
▨선방산 지보사
선방산 중턱에 자리잡은 고찰 지보사 가는 길목은 참으로 정겹다. 풀벌레 소리 애잔한 오솔길로 들어서면 투닥 이따금씩 풀숲에 도토리 듣는 소리. 절집 주변에는 감과 밤도 살갑게 익었다. 온갖 가을꽃들이 시샘하듯 피어있는 절집 뜰안으로 들 어서면 합장하며 나그네를 반기는 여승의 잔잔한 미소. 지보사는 신라 문무왕때 의상대사가 창건한 고찰이다. 지보사에 있는 가장 큰 보물은 입구에 선 3층석탑. 기단부에는 동물상이, 탑신에는 연꽃이 조각되어 있는데 화려하면서도 단정한 고려초의 석탑양식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석탑 뒤로는 백일홍이 붉은 꽃망울을 터트렸다. 대웅전 뒤 대숲을 스치는 바람소리는 산사의 청 정한 기운을 더해준다. 지보사는 어디를 둘러봐도 정감나는 절이다.
▨청화산 법주사
소보면 달산리에 자리한 청화산은 군위에서도 가장 높은 산. 산세가 너그러워 찾는 이의 마음 또 한 넉넉해진다. 법주사는 원뿔처럼 뾰족하게 솟아오른 초봉 남쪽 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법주사는 신라 소지왕때 심지왕사가 창건했다는 오래된 절. 법주사에도 볼만한 명물이 하나 있다. 보광명전 앞마당의 왕맷돌. 크기가 우리나라에서도 최고로 손꼽히는 것이라 한다. 3백년전의 것이 라 하니 당시 법주사의 규모를 알만하다. 또하나 눈길을 끄는것. 보광명전 앞 5층석탑과 소나무 한그루. 석탑의 고색창연함과 용트림하듯 줄기를 비튼채 서있는 소나무의 푸른 기상이 묘한 대조를 이룬다.
청도 남산,적천사
갖가지 들풀 자태 뽐내고...신둔사쪽으로 올라가다 중간에 있는 인공폭포. 시원한 물줄기에 늦더위가 싹 가시는듯 하다.
청도에는 산이 많다. 그중에도 청도·화양·각남의 3개 읍·면에 걸쳐 있는 남산(870m)은 높진 않지만 철철이 사람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일단 능선에 올라서면 뛰어난 주변 경관에 숨이 막힐 지경. 능선 곳곳엔 갖가지 들풀들이 자태 를 뽐낸다. 봄이면 철쭉, 가을엔 억새가 어우러지고…. 청도 8경중 최고라는 낙대약폭(폭포)을 품고 있는 명산. 옛부터 청도의 중심지였던 탓에 인근에 는 석빙고, 신둔사등 문화 유적도 흔하다.
남산을 오르는 산행 코스는 대략 대여섯 가지. 그중 죽림사-헬기장-정상-한재고개-봉수대-상여 듬바위-체육공원 코스(5시간)와 신둔사-헬기장-정상-한재고개-봉수대-거북바위-낙대폭포 코스(4 시간)가 남산의 정취를 제대로 느낄 수 있어 무난한 편.
죽림사출발 코스 는 정상까지 비교적 가파르다. 신둔사출발 코스 는 정상까지 거리도 짧고 힘이 덜 들어 가족산행도 권할 만하다. 이외에도 낙대폭포서 정상으로 오르는 코스등 다양한 등산로가 많아 시간, 체력에 따라 마음에 맞는 코스를 택할 수 있는 것이 남산 등산의 매력. 청도군 화양읍 동천리에 있는 석빙고 입구는 서쪽으로 트였고 천정이 훼손돼 무지개 다리만 남아있다.
▨죽림사출발 코스
화양읍 신봉리를 지나면 길 건너편의 죽림사 푯말과 만난다. 시멘트 포장길로 가다 홍도골과 신기마을 갈림길서 홍도골을 택해 가다보면 죽림사. 여기서 차를 세워두고 죽림사의 시원한 우 물물을 미리 준비해 둔다. 죽림사를 지나면 산행이 끝날 때까지 물을 구하기 어렵기 때문. 30분쯤 오르면 8부 능선. 시야가 갑자기 확 트이면서 청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급경사를 따라 잠깐 걷다보면 정상. 청도 산악회가 세워 놓은 표지석이 등산객을 반긴다.
올라가는 길은 약간 지루한 느낌이 들지만 내려오는 코스는 좁은 능선길. 절벽사이로 멋진 풍광 이 나타나는가 싶더니 금새 가을억새가 장관을 이루는 한재고개와 만난다. 한재고개를 지나 20 분쯤 걸으면 봉수대. 갈림길서 상여듬 바위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체육공원으로 내려가는 하산 길 이다.
▨신둔사출발 코스
화양읍 동천리 개천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신둔사까지는 차로 15분내외. 중간에 인공폭포도 있 다. 신둔사서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A·B·C 세가지 코스. 정상서 봉수대까지는 죽림사출발 코스와 같다. 갈림길서 거북바위 쪽으로 방향을 잡아 능선을 타고 내려가면 낙대폭포와 만난다. 화양읍 동천리 화양정비공장 뒤쪽에 있는 석빙고도 청도에 가면 들러 볼만한 문화유산. 청도 석 빙고는 길이 14.7m에 폭이 5m나 되는 대형. 가운데 배수구를 통해 물이 흘러가게 하는등 과학 적으로 만들어졌다. 1713년에 완공, 2백년이 훨씬 넘었지만 원형이 상당부분 남아 있다. 하지만 당국의 관리부실로 내부에 병조각, 담배꽁초등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이 아쉬운 점. 가는길 괘불탱화가 유명한 고찰 적천사도 청도에서 가볼만한 곳. 고려때 보조국사가 심었다는 둘레 11m 의 은행나무가 8백년의 세월을 안고 절집을 지키고 있어 운치를 더해준다. 청도읍서 밀양쪽으로 6km쯤에 있다. 진입로 일부가 농로여서 조금 불편한 것이 흠.
지리산 심원마을,천은사
심산유곡에 둥지. 하늘아래 첫동네 천은사 극락보전. 뒷산능선에 걸린 뭉게 구름도 가을을 머금었다. 대구에서 지리산을 찾으려면 흔히들 88고속도로 지리산IC에서 빠져나와 인월~반선을 경유하기 마 련. 자주가는 길을 피해 함양IC에서 나와 진주쪽 팻말을 따라 휴천.유림 방향(서강대 지리산연수 원 가는 길)으로 핸들을 잡아본다.
여기서 7km쯤 달리다 산청.유림 쪽으로 5km 가량 더가서 마천 쪽으로 우회전 하면 된다. 오솔길 처럼 이어지는 한적한 길, 가을이 영글어가는 들녘이 여느때 보다 넉넉하다.
군데군데 절경을 이루는 계곡을 따라 18km 정도 달리면 마천과 실상사.산내를 지나 반선으로 가 는 길(지리산 IC~인월을 경유해 들어오는 코스와 합류)이 나온다. 낯선 길을 대하는 설레임. 지리 산 자락을 수놓은 한갓진 전원풍경이 그림같다. 여기서 반선까지는 8km.
하늘아래 첫동네인 심원마을. 여름내 피서객들의 북세통에서 이제사 평온을 되 찾았다.
▨ 심원마을
지리산 심산유곡에 둥지를 친 하늘아래 첫동네 심원마을. 해발 7백50m의 심심산천에 10여가구의 주민들이 약초 캐고 벌을 키우며 옹기종기 모여살던 별천지. 지금은 관광농원이 조성되어 여행객들의 발길이 연중 끊이질 않는 곳이다. 가을에 심원마을을 찾는 멋스러움. 여름내 피서객들의 북새판에 찌들었던 산골 마을이 초가을 바 람결에 평온을 되찾았다.
귓전을 넘나드는 시린 계곡물 소리, 산 허리를 감싸안은 짙은 안개, 이따금씩 골짜기를 뽀얗게 뒤 덮는 장엄한 빗줄기, 어느새 비갠 산봉우리 뭉게구름 사이로 언뜻 나타난 거울처럼 투명한 하늘. 광대무변한 대지리의 서편 한자락 심원계곡에도 가을색이 완연하다.
심원마을에는 먹거리도 풍성하다. 심원관광농원 일번지(전화:0664-782~6226)주인 송진홍씨(41)가 기르는 송어회(1kg 2만5천원) 맛이 일품이고, 토종닭 요리(1마리 2만5천원)도 쫄깃쫄깃하다. 무엇보다도 귀한 것은 지리산 산나물. 반야봉과 만복대까지 오르내리며 힘겹게 뜯어온 것이라 많이 내놓지 못하는게 늘 아쉽다는 주민들의 얘기다. 갖가지 약초로 담근 술도 제마다 독특한 향기 를 머금고 있다. 술 한잔에도 헤아릴수 없는 영산의 체취가 스민다.
가는길
▨천은사(泉隱寺)
구례 쪽으로 넘어가는 길에 성삼재 휴게소 부근에서 잠시 차를 멈추면, 운무서린 지리산 연봉들 이 벅찬 감흥으로 다가선다. 지리산 파노라마가 한눈에 들어오는 천혜의 드라이브길을 굽이굽이 내려서면 연못위로 나붓이 자리한 고찰. 천은사는 인근 화엄사의 유명세에 가려 그냥 지나치기 쉬운 곳이나, 비교적 옛모습을 많이 간직한 유서깊은 절이다. 계곡위 수홍루의 그윽한 정취와 극락보전의 고색창연함이 가을햇살에 한결 돋보인다. 절 마당에 점점이 내려앉는 노란 은행잎도 어느새 찾아온 산사의 가을을 전한다.
비슬산 유가사·자연휴양림
울창한 나무사이로 가을 정취 느끼며...정상에서 바라본 비슬산의 절경. 비슬산을 한번 찾은 사람이면 산세의 아기자기함에 이끌려 다시 찾는 이들이 많다. 추석을 지나면 아침저녁이면 오슬오슬한 한기를 느낄정도 이다. 바야흐로 하늘은 높고 말이 살찌는 천고마비 의 가을중턱에 와 있는 셈. 이번주는 교통체증으로 인해 짜증났던 추석 성묘 길을 뒤로하고 대구에서 가까운 비슬산을 가보는 것도 좋을 듯. 사실 비슬산은 대구의 명물인 팔공산에 가리어 크게 알려지지 않았으나 산세의 아기자기함과 포근함에 한번 찾은 등산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 비슬산에 가기위해서는 화원톨게이 트에서 마산방면으로 곧바로 내달리면 된다. 약 20여분정도 달려 현풍IC에서 비슬산휴양림표 지판을 따라가면 된다.
▨비슬산 유가사
비슬산은 꼭 들러불만한 곳이 두곳있다. 유가사와 자연휴양림이다. 비슬산 천왕봉아래에 위치 한 유가사는 신라 흥덕왕때 창건된 절로 1천2백여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절이 크고 웅장 하지는 않으나 이웃집 아주머니 같은 친근함을 가지고 있어 절을 처음찾는 관광객에게도 부담감 이 느껴지지 않는다. 뜨거운 여름 피서객과의 한차례전쟁을 치른탓인지 더욱 성숙한 모습으로 나그네를 맞이한다. 담장에서 익어가는 박은 완연한 가을이 왔음을 느끼게 해준다. 유가사의 대웅전. 1천2백년된 고찰로 절을 처음찾는 이들에게도 포근함을 준다.
비슬산 자락에 고즈넉히 자리한 유갓 대웅전 인적이드문 겨울 산사에 정적이 감돈다. 세밑과 설 연휴동안 몸과 마음을 씻고 가다듬을 만한 대구인근 드라이브 코스를 또 한군데 소개 해 본다. 영남의 젖줄 낙동강이 굽이치며 빚어놓은 들판을 따라 남서쪽으로 내달리다, 보면 옥포. 논공.현풍.유가등 달성군 지역 6개면의 산봉우리를 아우르는 비슬산이 우뚝 솟아있다.
최고봉 1천84m의 비슬산에는 그 산자락마다 수많은 사찰과 약수를 품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대구 에서 쉽게 갈수있는 고찰 유가사와 인근에 새로 생긴 약산온천을 경유하는 길을 택해본다.
▨유가사(瑜伽寺)
구마고속도로를 타고 현풍IC로 빠지거나, 서부정류장에서 화원.옥포.논공.현풍을 거치면 왼쪽으로 유가사 가는 길이 나온다. 유가면 사무소 부근에서 5km쯤 떨어진 곳에 음리(陰里)라는 마을이 있는데, 여기서부터는 언덕길이다. 겨울바람에 서걱대는 갈대의 여윈 몸짓만이 애잔한 계곡, 적막한 둔덕 너머로 비슬산은 그 드넓 은 가슴을 병풍같은 절벽으로 가린채 겨울잠에 빠져있다. 등산로가 폐쇄되었기 때문에 절집 안으로 들어가자면 입구에 차를 세워두고 조금은 걸어 올라가 야 한다.
천왕문(天王門)을 지나 절 마당위로 올라서면 돌담위로 아담하게 자리한 대웅전과 나한전이 앞 옆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대숲을 스치는 맑은 바람만이 이따금씩 절집의 정적을 깨트릴뿐, 겨울 유가사는 고요속에 잠겨있 다. 한갓진 절집 분위기가 마음을 한결 편안하고 차분하게 쓰다듬어 준다.
▨자연휴양림
휴양림은 작년 8월 개장돼, 대구시민은 물론 인근의 관광객도 자주 들러는 명소로 자리잡았다. 약 3백40헥타에 광장 정자 잔디밭 수련관 방갈로등 60여종의 위락시설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비 슬산의 참맛은 휴양림이 아니라정상으로 통하는 등산로 길을 밟아 보는 것. 정상인 천왕봉으로 가는 등산로는 2개. 제2물놀이터에서 왼쪽 등산로길을 택해 약 1시간 정도 올라가면 정상에 도달한다. 길이 크게 험하지 않고 울창한 수목들이 쭉 뻗어있어 등산뿐만 아니라 삼림욕도 곁들일수 있다. 특히 비 슬산에는 천연기념물 황조롱이를 비롯, 오색딱따구리와 솔부엉이등 희귀종들이 서식하고 있는 것 으로 알려져 운이 좋으면 마주칠수도 있다. 그러나 비슬산은 뱀이 많이 있어 등산화를 신는것 은 필수이고 어린이를 동반할경우 주의가 요망된다. 다른 하나의 등산로는 제2물놀이터에서 임 도를 따라 우측편으로 올라 가는 길.
약 4km정도이고 1시간30분에서 2시간정도 걸린다. 비슬산 정상에는 고려시대의 절로 추정되는 대견사지 절터와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3청석탑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정상에서 하산하는 길 은 크게 3가지. 왔던길을 되돌아 오는 방법과 용연사, 가창정대로 빠지는 등산로가 있다. 2시간 정도 걸린다.
석남사·얼음골
경남서 손꼽히는 비구니 수행도량의 하나인 석남사는 보물369호 석조부도등이 보관돼 있다 겨울 가뭄에 하얀 속살을 드러낸 조약돌의 향연. 앙상하게 알몸만 남은 이름모를 나무들의 합 창...말라버린 노란 억새풀이 소한(小寒)의 을씨년스러운 바람에 서걱서걱 흐느끼는 소리를 들으며 황량한 겨울 벌판을 달리노라면 한동안 잊었던 가슴속의 시심(詩心)이 되살아 날 것도 같다. 이번 주는 호젓하게 드라이브를 즐기면서 겨울 산·절집의 정취를 느낄수 있는 가지산 석남사와 밀양 얼음골로 가 본다.
▨ 가지산(加智山) 석남사(石南寺)
대구서 경산 자인·용성을 경유 운문사 조금 못 미친 삼거리서 우회전하면 언양 24km라는 표지 판이 나타난다. 이 길로 곧장 14km(비포장 구간 1.5km포함)쯤 내달으면 가지산 도립공원과 만날 수 있다. 울산시 울주구 상북면과 밀양군 산내면, 청도군 운문면의 경상남·북 2개도 3개 구·군에 걸쳐 있는 가지산(1,240m)은 태백산맥의 주능선이 동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계속 달려나가다가 마지막 남은 힘을 모아 솟구친 영남 알프스 의 우두머리 산.
정상에서 사방으로 둘러쳐진 7개의 1천m급 연봉과 산 능선을 둘러보는 맛이 스위스 알프스 산맥 의 연봉 못지않은 장관으로 유명해 사시사철 등산객이 몰린다.
신라 헌덕왕 16년(824)에 도의국사가 창건했다는 석남사는 경남지역에서 손꼽히는 비구니 스님 수행도량. 청아하고 단정한 절집, 보물 369호 석조부도와 부처님 사리가 봉안돼 있는 삼층석탑이 겨울정취를 더해준다. 또 천명이 넘는 대중 공양때 사용했다는 대웅전 뒷편 나무 구유는 사찰의 옛 영화를 잘 대변해주 고 있다. 운문댐서 석남사로 가는 길에 있는 계곡의 물이 소한추위로 꽁꽁얼어 붙었다
▨ 밀양 얼음골
석남사서 밀양쪽으로 방향을 잡고 석남터널을 지나 15km쯤 가면 얼음골 사과를 선전하는 붉은 깃발과 식당들이 즐비한 얼음골 입구가 나그네를 맞는다.
가지산 남쪽 산내천에 위치한 얼음골은 입구 식당들의 꿩 요리(3-4인분에 3-4만원 정도)와 염소 불고기가 별미인데다 얼음골 사과(최상품 16kg들이 1상자당 5만원선)가 유명한 곳.
얼음골 영농조합법인 관계자는 얼음골 사과는 가격은 조금 비싸지만 당도가 높고 육질이 단단하 면서도 부드러워 국내 최고 품질을 자랑한다 고 자랑에 열을 올린다. 얼음골을 출발 재약산-사자평뒤-표충사 코스나 백운산-가지산-석남사로 내려오는 길을 택하면 한나절정도의 겨울 산행도 즐길 수도 있어 겨울에도 여 름못지 않게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 고 있다.
선조들의 숨결…
창원 성산패총·주남지
<야철지는 거의 원상복원돼 관람객들에게 공개되고 있다.>
공업도시, 계획도시로 대변되는 창원은 요즘은 4차선으로 넓어진 구마고속도로를 이용하면 그야 말로 지척이다. 우리나라 최대의 군수공업지인 창원을 들어서면 시원하게 뚫린 도로와 잘 정돈된 거리가 특징 적이다. 창원에는 문화유적이나 명승지가 타도시에 비해 많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시내에 위치한 성산 패총이나 창원의 집, 성주사등은 꼭 둘러볼 만하다.
성산패총은 창원시청에서 3Km정도로 초기철기시대의 대규모 조개무덤이 74년 발굴되었으며 창원의 집은 시가 고가(古家)를 매입 옛 선조들의 삶의 모습을 재현해 놓은 곳이다.
성산패총에서 약 3Km쯤 가면 불모산 자락에 자리잡은 성주사는 입구에 축조해놓은 돼지 석조상 이 퍽 인상적이다.
철새도래지로 유명한 주남저수지는 창원에서 약 20분거리. 창원에서 진영으로 가다 용잠리서 동 읍방향으로 좌회전하면 된다. 지금 주남지에는 청동오리등 수많은 철새가 겨울나기를 위해 내려 와 장관을 이루고 있다. <불모산 성주사입구에는 돼지의 조각상이있는데 이는 맞은편 산세가 뱀의 형상이라 액을 막기위한 것이라고한다.>
▨ 성산패총
공업단지 조성을 위한 흙채취작업중 유적이 드러나 발굴된 것으로 74년 서울대와 부산대가 공동 조사했다. 선사시대에서 초기철기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에 의해 이룩된 것으로 조개무지위에 돌 로 쌓은 석축성이 있는 시기를 달리하는 복합유적으로 당시의 생활상을 밝힐 수 있는 자료가 된 다.
유물은 현재 전시관에 보관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 특히 이 유적에는 당시 철을 생산했던 것으 로 여겨지는 야철유구(冶鐵遺構)가 발견돼 우리나라 삼한시대에 철을 생산하여 수출했다는 옛기 록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이 야철지 주변에 창원공업단지가 들어섰다는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는 것으로도 볼 수 있 다. <창원의 집 내부에는 밀납으로 옛선인들의 모습을 재현 현실감을 더하고있다.>
창원시 퇴촌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지금으로부터 약2백년전 대한광무2년 순흥안씨 5대조인 퇴은 두철선생이 기거하던 집으로 전해지고 있다. 창원시가 사라져가는 우리고유 한옥의 소멸을 방 지하고 아울러 우리 조상들의 전통문화의 풍습을 새롭게 하여 후세들의 산교육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단장한 곳이다.
본채, 사랑채, 민속교육관, 정자 , 팔각정등이 있으며 옛선비의 모습이나 안방마님, 훈장등 여러 인물이 밀납으로 만들어져 생생하게 당시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화왕산-관룡사
가을 바람에 춤추는 「10리 억새밭」
가을은 갈대의 속삭임과 더불어 짙어간다. 추석연휴 다음인 이번주에는 갈대 제 가 열리는 경남 창녕 화왕산(火旺山)으로 떠나본다. 화왕산은 경남지방에 있 기는 하나 대구에서 구마고속도로를 타면 불과 40분거리로 사실은 그리 멀잖 다.<서문에서 배바위로 오르는 길을 가득메운 억새숲. 갈대제가 열리는 이번 주말부터 화왕산 갈대가 절정을 이룬다.> 기왕 나선 걸음에 가창댐을 지나 청도 풍각을 거쳐 창녕으로 여유있게 넘어가 는 가을 드라이브 코스도 운치가 있다. 가을꽃이 절정을 이룬 들판과 단풍이 물들어 가는 산기슭을 스쳐 달리면서 좀더 가을정취에 젖어볼수 있기 때문이다. 화왕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크게 두갈래. 창녕여고 뒤편 주차장에 차를 세우 고 산 입구에 있는 어욱새 산장을 지나 환장고개를 넘어 서문으로 오르는 것과, 마산.영산 방면으로 읍내를 벗어나 6km쯤 떨어진 계성면 소재지에서 왼쪽으로 돌아 관룡사 쪽에서 동문으로 오르는 길이 그것이다.
▨ 화왕산
이름하여 환장고개 로 불리는 가파른 오르막길을 넘어서면 바위 낭떠러지 위 로 10리 억새밭이 홀연 웅자를 드러낸다. 청량한 가을하늘을 이고 소슬바람에 파도처럼 출렁대는 갈대숲. 따사로운 햇살에 하얀 이를 드러내고 깔깔대며 속 삭이는 갈대, 순정어린 갈대의 손짓과 고적한 갈꽃의 노래는 한없는 설레임으로 가슴을 적셔온다. 드넓은 평원이 더없이 넉넉해 보이는 화왕산은 망우당 곽재우 장군과 의병들 의 우국충정이 서린 호국영산이기도 하다. 남쪽 배바위에 올라 산성안의 억새 밭을 내려다보며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르고 산성을 따라 동문쪽으로 걸어내 려 오는 것도 화왕산만이 가져다 주는 산행의 묘미다. 동문 가까이에 있는 창 녕조(曺)씨 득성비와 산성 가운데의 선사시대 분화구였던 3개의 연못도 눈여겨 볼 일. 5일(토요일) 밤이면 이곳 5만평 억새숲에서 국내최대의 산악인 야간축제가 벌 어진다. 이번 갈대제에도 전국각지에서 1만여명이 운집한 가운데 산신제와 의 병추모제를 비롯, 통일기원 횃불행진이 펼쳐져 7백50 고지의 가을밤을 수놓으며 일대장관을 이룬다. 때문에 조용한 산행을 원한다면 이번주말은 피하는것이 좋을 듯. 동문을 빠져나가 오솔길을 1km 남짓 걸으면 옥천마을로 내려가거나, 관룡산정 상으로 이어지는 종주길을 알리는 표지판이 서있다. 널찍한 산길을 호젓히 걷 노라면 풀벌레 소리 애잔한 산자락에는 단풍빛 머금은 가을이 벌써 밀물처럼 젖어들고 있다.
▨ 관룡사.용선대
석조석가여래좌상
<관룡사 서쪽 용선대 마루에 정좌한 석조가여래좌상. 천년의 풍상에도 자비 가득한 미소는 변함이 없다.> 성에서 6km쯤 떨어진 옥천마을을 지나 관룡사로 오르는 길 오른쪽에는 무심 히 지나칠 수 없는 옛 절터가 하나 있다. 향토문화재 5호인 옥천사(玉泉寺) 터. 옥천사는 바로 고려 공민왕때 권세가 대단했던 승려 신돈(辛旽)이 태어나서 수 양하던 역사적인 사연을 담고 있는만큼 유명한 절이었다. 화려했던 절집은 간 곳이 없고 빈터에 남은 석축만이 인간사 흥망성쇠의 덧없음을 바람결에 전한 다. 신라 진평왕때 창건되었고 원효대사가 화엄경을 강설한 도량이었다는 관룡사 (觀龍寺)는 대웅전과 약사전 3층석탑등 여러점의 보물과 문화재를 보유한 고 찰이다. 관룡사는 돌계단과 돌담으로 지은 입구부터가 특이하다. 대숲과 은행나무 그 리고 노송과 아름드리 느티나무로 둘러쌓인 관룡사는 뒤편 관룡산(일명 구룡 산)의 수려한 기암괴봉을 병풍처럼 두르고 천년을 그렇듯 고즈넉히 자리하고 있다. 관룡사에서 1km쯤 떨어진 서쪽 봉우리인 용선대 마루에 동향으로 앉아있는 석 조석가여래좌상도 관룡사에 들른 사람이라면 빼놓지 않고 찾는 곳이다. 이곳에 불공을 드리면 한가지 소원은 성취된다는 이야기도 전해오고 있다. 용선대 널찍한 바위에 걸터앉아 절집을 품은 관룡산의 비경을 조망하는 멋과 가을색이 짙어가는 솔숲을 시원스레 내려다 보는 운치도 일품이다. 단풍철에 찾는 관룡사는 한폭의 추경산수화로 다가온다. 화왕산을 오를 여력이 없더라도 가족들과 함께 용선대까지는 걸어볼만 하다. 솔향기 그득한 숲속길이 그만이다.
안동 봉정사, 봉화 청량산
울창한 솔숲... 의연한 「소금강 열두봉」
말복을 이틀 앞두고 피서가 절정을 이루면서 유명 피서지마다 피서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촤근들어 소문난 피서지의 각종 공해에 식상한 피서객들이 드라이브.등산.견학. 야영을 모두 즐길수 있는 실속 위주 피서지를 찾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이같은 추세를 반영 하듯 경북도내 중소 도시를 중심으로 관광 자원 개발에 눈 을 돌리면서 피서지로서 손색없는 곳이 속속 그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안동시를 중심으로 사적지 도립 공원을 잇는 경북 북부 지역 피서 코스가 최근들어 경향 각지 피서객들로부터 인기를 끌고 있다.
▨천등산 봉정사
<대웅전 입구가 마루로된 사찰은 전국에서 안동 천등산 봉정사가 유일한 곳으로 최초 목조건물인 극락전과 함께 방문객의 눈길을 끌고 있다.>
이 사찰은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에 자리한 고찰로 최근 사찰내 극락전이 우리 나라 최초의 목조 건물로 확인 되면서 주목 받고 있다. 국보 15호로 지정된 극락전이 주로 사학자나 학생들의 시선을 끈다면 장경각은 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촬영 장소로 일반 시민들의 발길을 머물게 한다. 보호수로 지정된 4백년 수령의 은행나무등 노송이 사찰 주변을 에워싸 깊은 그 늘을 만드는 바람에 웬만한 더위는 떨칠수 있다는 것도 이점. 봉정사 대웅전은 규모에 비해 짜임새가 독특하며 입구가 마루로 된 곳도 전국 에서 이곳 뿐이라는 것.
천등산은 맑고 고운 토산으로 솔숲이 울창, 송이버섯 생산지로 유명하며 화원으 로 불리울 만큼 꽃이 많아 연중 등산을 즐기기에 적당한 곳. 안동시내서 영주 방면 국도로 10분쯤 가다보면 서후면 진입 표시가 나오고 이 표시를 따라 또 다시 10분쯤 가면 봉정사 입구가 나온다. 절 입구 까지 승용차가 들어 갈수 있으며 시내버스도 하루 7차례 왕복 운행된 다.
▨청량산 도립 공원
<기암괴석을 끼고 흐르는 강 가운데 은어낚시꾼이 온종일 낚시를 드리우는 청량산 도립공원입구. 강성 아루터가 최근 참신한 피서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청량산 육육봉을 아는이 나와 백구.」
조선조 거유 퇴계 이황선생의 도산 12곡의 산실인 청량산. 소금강으로 불리우며 의상봉을 비롯 12개 봉우리가 의연히 솟아 누구든지 입구 에 서는 순간 산에 대한 애착을 느낄 정도.
이산에 27개 사찰이 산재해 있었으나 모두 소실되고 현재 청량사 한곳만 남아 있다.
청량사 등산로는 기암 괴석이 줄줄이 이어져 전문 등산인이나 초보자 모두 싫 증을 느끼지 않는 다는 것. 산 정상에서 내리는 계곡물은 비록 수량이 적은 편이나 연중 그칠적이 없으며 깊은 그늘을 안고 있어 낮더위를 떨치기엔 충분하다. 강성 나루터를 시작으로 6Km 비포장 길을 걷다보면 김생폭포를 비롯, 어풍대 등이 의엿하게 자리하고 있다.
안동시내를 출발 한시간 쯤이면 은어 낚시로 유명한 강석 나루터에 도착하고 이곳에서 야영한후 새벽등산을 통해 청량사를 둘러 봄직하다. 이곳 인근에는 관창 폭포,부석사, 오전 생수, 청옥산 자연 휴량림등을 연계 관람 할수 있다.
울진 진복해안-망양정-광천계곡
'바다 밧근 하늘이니 하늘 밧근 므서신고'
◀경북 동해안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진복해안. 바닷속이 들여다 보일정도로 맑은물이 자랑.장마가 끝나고 그야말로 불볕더위가 시작되었다. 7월말 ~ 8월초가 피서의 절정 이고보면 그동안 장마로 개장하고도 손님이 크게 없었던 해수욕장이 피서객들 로 붐빌 터. 이번 주에는 경북 동해안에서는 최고의 청정 해수욕장인 울진 망 양정 아래의 해수욕장과 그림같이 아름다운 진복해안, 우리나라 계곡중 으뜸인 불영계곡을 거쳐 소문나지않은 곳인 광천계곡을 찾아간다.
▨진복해안
울진은 강원남도라 농을 할만큼 강원도와 경상도 산천의 특색이 멋지게 어우러 지고 여행을 떠나기 다소 먼 거리인 만큼 피서철에도 비교적 조용한 곳 이다. 또 월송정.망양정.성류굴.백암온천.불영계곡.통고산.죽변의 청정해안등 주변에 값 진 명소와 절경을 갖고 있어 강원도의 강릉.낙산과 함께 동해안 최고의 풍광을 자랑한다.
대구출발, 영천 - 기계 - 청하를 거쳐 7번국도를 탄다. 울진군으로 들어와 망양 휴게소를 지나 울진읍으로 들어서기 전 덕신해수욕장.수산종묘배양장 안내 판이 보이면 우회전 한다. 이곳 울진군 원남면 덕신리에서 근남면 구산리(성류 굴 뒷쪽 주차장입구)까지의 14㎞구간이 포장이 완료되어 그중 진복해안을 낀 5.4㎞가 1천여리 동해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안이다. 도로포장이 다 끝나 드라 이브에도 불편이 없고 7번국도를 타고 오면서 보던 바닷물 빛깔과는 비교도 안 되는 투명한 남빛바다가 시원함을 더한다. 밋밋하지도, 오밀조밀하지도 않은 완 만하고 그윽한 맛을 풍기는 해안선은 동해의 넉넉함과 어울려 자연의 미를 최 대한 내보이는 해안선 이다. 앞으로 피서객이 끓어 그 해안에 벼라별 위락시설 들이 포진하게 되면 그 은근한 아름다움도 반으로 줄어 들고 말것이니 여간 염 려스러운 일이 아니다. 해수욕을 잠시 뒤로 미루고 그 휘었다 뻗어나간 해안선 과 멀리 수평선을 바라보라. 그 시원함은 가슴속까지 넓게 트이는 그런 맛 이다.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에 바다 밧근 하늘이니 하늘 밧근 므서신고. 로 언급 되는 망양정. 그 아래 왕피천이 바다와 만나는 지점쯤은 물이 깊지않아 조무래 기들이 물 장난에 바쁘고 윈드서핑을 즐기는 젊은이들의 구리빛 얼굴이 건강하 다.
▨광천계곡
◀소문나지 않아 비교적 조용한 피서지 광천계곡
망양정을 지나 수산교를 건너 불영사 쪽으로 좌회전 한다. 이곳에서부터 25㎞ 에 이르는 계곡이 우리나라 최고의 경치를 자랑하는 불영계곡 이다. 불영계곡 의 아름다움이야 더 이야기 할것없이 널리 알려져 있으니, 게다가 피서객으로 붐비니 그곳을 지나쳐 삼근 1,2리를 거치면 소광1리를 만난다. 짧은 다리(광천 교)를 건너 표지판쪽으로 우회전 한다.
그곳에서부터 13㎞의 비포장 길이 광천계곡을 끼고 올라 가는 길이다. 깊고 급하고 우람한 불영계곡을 방금 지나쳐 온 길이라 이 광천계곡은 평범해 별 특 색을 찾을 수 없지만 13㎞를 천천히 훑어 가다 보면 계곡이 갖는 갖가지 - 넓 고도 좁고 느리다가 급하고 넓은 바위와 자갈등을 갖춰 조용히 가족들과 며칠 보내기에 안성맞춤임을 알게 된다. 게다가 그 주변의 산들이 온통 적송으로 뒤덮여 진한 솔향이 바람에 실려 오고 인가가 몇곳 없는데다 사람 기척이 적어 호젓하기 이를데 없다. 해수욕으로 소금기 젖은 몸을 쉬기엔더없이 좋은 곳. 계곡이 깊지않아 어린이 들도 안심하고 풀어 놓을 수 있다. 멀리 1119m의 삿갓재에서 불어오는 바람도 시원하고 잡목없는 적송림을 구경 하는 맛도 각별하다.
▲올라가다 대촌교를 만나면 공사중인 왼편 길로 들어서지말고(그 길은 소광리 - 옥방으로 간다) 오른편으로 올라가야 대광천이다.
문경경천호-단양팔경
문경시에서 예천군으로 가는 국도를 따라 10분쯤 가다보면 산양면소재지에 이 르기 전 좌측편으로 나오는 금강주유소를 보고 좌회전하면 비로소 단양으로 통 하는 외길에 접어들어 첩첩산중 풍광과 마주할 수 있다. 이곳에서 10Km 남짓 가다보면 산북면 김용리 운달산의 신라고찰 김용사, 전두 리 사불산 중턱의 대승사입구로 통하는 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우측으로 동 로면을 향해 호젓한 시골풍정을 맘껏 음미하며 달리다보면(구곡양장이라 과속 은 하지 못함) 느닷없이 태백준령의 맑은 물을 한껏 머금고 있는 경천댐이 나 타난다.
첩첩산경을 배경으로 한 경천댐을 우측으로 넋을 놓고 가다보면 금새 상류에 다다라 한껏 시장기를 느끼게 한다. 담수한지 10년이 되었어도 오염이라곤 모 르는 물에서 나오는 메기, 피라미매운탕집이 도저히 그냥 지나치게 하질 않기 때문이다. 이곳 용지수영장,방갈로의 관계자들이 간판없는 훌륭한 매운탕집 전 화번호(52-6115)를 슬쩍 일러준다.
슬슬 동로면을 향해 8Km정도를 가다보면 평화롭다고만 할 수 밖에없는 전형적 인 시골면소재지가 정겹게 나타나지만 들러볼 여유가 없다. 단양이정표가 보이 기 때문. 여기서 충청북도 도계까지는 오르막길 8Km. 쉬엄쉬엄 오르다 정상부 근에 다다르면 왼쪽으로 월악산의 남동끝자락과 오른쪽으로 기암과 단풍의 도 락산이 코앞에 들이닥쳐 깜짝놀란다.
어느정도 내려왔다 싶으니 곧바로 단양팔경의 상선암, 중선암, 하선암까지를 내 닫는 선암계곡이 펼쳐진다. 단양팔경을 두루 섭렵하고 죽령을 넘어 영주방향을 택하든지 아니면 이암자 저명소를 두루 둘러볼려면 가을의 하루해가 너무짧아 아쉽기만하다.
▨경천댐
동로면 마광리에 위치한 경천댐은 낙동강 지류인 금천을 막아 만든 전형적인 계곡형 저수지로 물이 맑고 수심이 깊은 광활한 호수다. 적성리 황장산맥에서 발원한 수원이 골짝마다 흐르던 개울과 함께 경천호를 가 득 채우고 물넘이를 통해 쏟아지는 물기둥에서 피어나는 물보라는 햇빛에 반사 되어 오색영롱한 무지개를 일으킨다.
이 댐은 첩첩산중 한적한 곳에 위치하며 아름다운 자연속에 둘러싸여 있고 봄 이면 진달래가 호수연안을 붉게 수놓으며 여름이면 녹음이, 가을엔 호수병풍을 치는 단풍, 겨울설경 또한 장관이다. 용지수상레저(52-9873)에서는 모터보트, 젯트스키, 수상스키, 윈드서핑, 방갈로 30동, 수영장등을 완비하고 개인 가족, 법인회원을 모집하고 있다. 이설도로쪽 연안에서의 붕어낚시도 제격이다.
▨ 상·중·하선암
<선암계곡의 단풍은 계곡의 명경지수와 이어지는 산봉우리와 잘어울리고 있다.>
상선암은 조선 명종조 수암 권상하가 명명하였다고 전하며 만척의 청단대석이 벽을 이루고 계수는 반석사이로 용출하여 평평히 흐르다가 좁은 골에 이르러서 폭포가 되니 그 경관이 일품이다. 중선암은 효종조때 문신 김수증이 이름지었다고 전해지며 삼선구곡의 중심지로 암계류에서 쌍룡이 승천하였다하여 쌍용폭이라 하며 백색의 암석이 2개 있어 하나는 옥염대 다른 하나는 명경대라 부른다.
하선암은 삼선구곡의 첫 경승지로 3층으로 된 흰바위는 그 형상이 완연히 미륵 같아 불암이라 부르던 것을 조선 성종조 임재광이 선암이라 개칭하였다고 전한 다.
이퇴계는 그의 기행문에서 하선암의 경승을 골짜기에 들어가 청류를 건너 고 산에 올라가 절벽에 임하니 사람으로 하여금 초연히 속계를 떠난 느낌을 자아 내게 한다 고 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