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엔데믹… 코로나 끝나니 의료 민영화로 간다?
시민언론 민들레 2023.05.12 15:3
기재부 반대로 울산의료원 설립 좌절돼 / 시민 발의로 세운 성남의료원은 민간에 위탁
수익성 논리 앞세워 공공의료 후퇴 조짐 / 공공의료기관, OECD 평균 52%… 우리는 5.7%
정부가 5월 11일 코로나19 사태는 사실상 끝났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유행 당시 환자 치료에 핵심 역할을 한 공공의료원의 증설은 무산시켰다. 향후 닥쳐올 또 다른 팬데믹을 대비해 ‘소 잃고 외양간’을 잘 고쳐야 하지만, 이를 역행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획재정부 재정사업평가위원회는 ‘엔데믹(endemic·일상적 유행)’을 선언하기 3일 전인 9일, 울산의료원 건립 사업을 경제성 부족을 이유로 예비타당성(예타) 조사에서 탈락시켰다.
이에 대해 의료·시민단체로 구성된 울산건강연대는 기자회견을 열어 “울산 인구 5분의 1인 22만여 명이 예타 조사 면제에 서명한 것만 봐도 시민들이 얼마나 의료원 설립을 원하는지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2020년 12월~2021년 6월 코로나19 환자를 치료할 공공병원이 없어서 시민 819명을 다른 시로 보내야 했고, 요양병원에서 집단 감염 사태가 발생했을 때도 민간병원은 병실 하나 내어주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17개 전국 시·도 가운데 지방의료원이 없는 곳은 울산과 광주 2곳뿐이다. 2021년 기준 울산의 공공의료기관 비중은 1%로, 전국에서 가장 낮다. 이에 따라 울산시는 2027년까지 2880억 원을 들여 500병상 규모의 공공의료원 건립을 추진했다.
공공의료원을 추진하던 광주시도 낙담하고 있다. 광주시는 한국개발연구원(KDI) 검토, 기재부 재정사업 분과위원회 평가를 거쳐 올해 8월 예타 조사 통과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기대했다.
코로나19·메르스 사태 벌써 잊었나
현 정부 들어 공공의료 축소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공공의료원의 상징인 성남시의료원은 민간 위탁 움직임이 나오면서 시민단체가 반발하고 있다. ‘성남시의료원 위탁운영 반대 및 운영 정상화 시민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는 9일 의료원의 위탁 운영을 추진하는 신상진 성남시장을 직무유기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시는 2020년 3월 개원한 의료원의 의료진 부족, 원장 공석 등을 이유로 대학병원에 위탁운영 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공대위는 “시는 의료원을 시민 건강에 대한 책임을 갖고 운영해야 하는데, 시장은 취임하면서부터 위탁하겠다고만 얘기하고 정상화 조치 최종 책임자로서 직무를 저버렸다”고 주장했다.
성남 시민단체는 2003년 성남병원, 인하병원 등 본시가지 종합병원 두 곳이 문을 닫자, 의료 공백을 우려하며 전국 최초로 시민 발의를 통해 공공의료원 설립을 추진했다. 성남시의료원은 옛 시청 건물터에 2013년 11월 착공돼 2020년 7월 문을 열었다.
코로나19 유행 초기에 봤듯이 공공의료원은 재난적 의료 상황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2020년 2월 대구·경북지역에서 환자가 대량 발생하자 이들을 치료할 병상이 부족했다. 해당 지역 공공병원 병상으로도 부족해 전국 공공병원으로 감염자를 이송했다.
서울연구원의 자료에 따르면, 국내에서 코로나19 사태 초기인 2020년 1월~2021년 7월 입원치료 환자 10명 중 7명이 공공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특히 서울의 경우 입원 환자 4만 4319명 가운데 3만 2651명이 공공병원에 입원했다.
의료 체계의 민간 의존도 과도하게 높아
이를 계기로 공공의료원 확충이 보건의료 정책의 중요 주제로 떠올랐다. 코로나19 환자를 주로 치료한 음압 병실과 중환자실, 소아응급실 등은 시설유지 비용이 많이 드는 반면 수익성은 낮다는 이유로, 민간병원이 설치를 꺼린다. 2015년 메르스 사태 당시에도 음압병실의 부족 문제가 제기되며, 공공의료원 확충에 대한 목소리가 높았다.
하지만 우리 의료 체계는 민간 부분의 비중이 과도하게 높다.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의 자료를 보면, 병상수 기준 우리의 공공의료 비중은 2019년 8.9%에 불과했다. 병원 수 기준으로는 전체의 5.1%에 그친다. 공공의료 비중은 해마다 감소해 병상 수 기준 2015년 9.2%에서 2019년 8.9%로 떨어졌다. 민간 의료의 천국인 미국이 21.5%이며, 일본도 27%에 이른다.
신영전 한양대 의과대 교수팀의 연구에 따르면, 의료서비스 제공량을 기준으로 공공의료기관의 전국 평균 점유율은 11%인 반면, 민간 의료기관의 점유율은 89%인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이 누리는 의료서비스의 90%를 민간이 담당하고 있다는 얘기다.
2018년 12월 말 기준으로 전체 의료기관 수에서 한국은 3924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253개보다 많지만, 공공의료기관 비중은 5.71%(224개)로 OECD 평균인 51.79%(461개)에 한참 못 미친다.
신영전 교수팀은 “자체 입원 충족률과 치료 가능한데도 사망률이 높은 진료권에 공공병원을 증축하거나 신축해야 한다”며 부산동부, 대구동북, 인천서북 또는 인천동북, 광주광서, 울산동북, 진주권, 김해권 등 14개 진료권에 신축을 제안했다.
현 정권은 인수위 시절 감염병 대응체계 강화, 필수 의료 국가 책임제, 지역 응급·필수 의료 인력 확보 등을 약속했다. 하지만 공공병원보다는 민간을 활용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래서 민간 병원에만 혜택이 돌아가는 ‘의료 민영화’를 의심하는 시선이 많다.
출처; https://www.mindle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0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