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186: 은하문명에서 나온 책들을 두루 살펴보면 분명히 황금시대 은 시대 청동시대 철기시대 휴지기 ㅡㅡ>다시 황금시대 등등 이렇게 전개되는 주기가 있습니다.
현 시대가 황금기를 바로 앞두고 있다고들 하는 분도 있구요.
개인적으로는 현 시대의 모습을 보면 저 레무리아 아틀란티스 때의 막장 시대와 비슷함에도 최고신께서 그 비참한 때를
다시는 되풀이 하고 싶지 않아서인지 연착륙하는 느낌이
강한데요. 모두가 의견이 분분하니 도대체 지금 무슨 시대인지 아주 혼란이 많습니다. 지금 이 시대가 무슨 시대인지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답: 인간의 육안으로만 본다면 지금의 세상은 매우 탁하고 혼란스럽게 보입니다, 종교인들은 흔히 “말세”라고들 합니다. 자식이 부모를 학대하고, 학생이 선생을 구타할 정도로 인간의 도덕과 윤리가 땅에 떨어졌고, 또한 종교들마저도 타락하여 개인의 구원과 복락(福樂)을 구하는 저급한 수단으로 전락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물질주의와 이기주의만이 득세하여 돈벌이를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안 가리고 무슨 짓이든 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명이 동터오기 전, 새벽의 어둠은 가장 깊다고 했습니다. 지금은 새로운 세상의 개막을 앞둔 과도기적 암흑기입니다. 만약 인류가 이 암흑기를 무사히 넘어간다면, 오래전부터 수많은 예언자들과 선지자들, 마스터들이 예언했듯이, 머지않아 새로운 차원의 세상이 도래할 것입니다. 앞서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그 새로운 세상은 여러 가지 용어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그 시대를 후천시대라 하든, 빛의 시대, 또는 황금시대라 하든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은 시대적 섭리이고 예정된 노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구를 상위차원으로 상승시키려는 이 계획은 천상의 은총어린 결정에 의해 세워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현재 지구에는 그러한 새로운 세상과 시대의 개막을 돕기 위해 많은 빛의 영혼들이 태어나 있습니다. 이런 다양한 영혼들이 지구를 돕기 위해 와 있다는 사실 자체는 그만큼 이 지구라는 행성의 어둠이 깊고 진동주파수가 낮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인류 자력(自力)만으로는 영적 상승이 사실상 어렵기 때문이지요.
한편 지금의 70억 인류 전체가 새로운 세상에 동참하여 넘어가기는 아마도 어려울 것입니다. 거기에는 어느 정도의 분리작용이 있을 것이고, 수준미달의 영혼들은 따로 격리되어 다른 곳으로 옮겨지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새로운 세상이 자동적으로 열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육신을 쓴다는 것은 고등한 빛의 영혼들조차도 망각의 베일에 싸이게 만듭니다. 그런 까닭에 아직도 깨어나지 못한 많은 영혼들이 있습니다. 게다가 이 세상을 현재 장악하여 지배하고 있는 세력들은 자기들의 생존과 아젠다[agenda=계획 일정(日程)]를 실현하기 위해 마지막 발악과 함께 힘의 고삐를 더더욱 죄고 있는 상태입니다.
(이 마지막 발악이 바로 한국의 4.15 총선 부정과 미국의 대선 부정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선거의 부정이 시정되지 않고 그냥 지나갈 경우, 지구촌이 빛의 5차원 천국으로 되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트럼프 대통령이 ‘지구촌을 구하는 빛의 지도자’라는 것이다.---본인의 註)
미래에 대한 천상의 기본적 비전과 시나리오는 세워져 있을지라도 세부적인 모든 것이 정해져 있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거기에는 많은 변수들이 존재합니다. 빛의 영혼들이 현재 어떻게 움직이고 얼마나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느냐, 마느냐에 따라 혼란과 파국이 심해질 수도 있고, 반대로 완화될 수도 있습니다. 또 황금시대의 개막이 앞당겨질 수도, 무한정 지연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빛의 영혼들의 깨어남과 건투를 빕니다.
문187: 스포츠 게임도 카르마가 되는 것인지요?
답: 지구 상의 스포츠라는 것은 사실 인간의 강한 공격성과 호전성(好戰性)을 게임이라는 형태로 대신 발산시켜주기 위해 고안된 것입니다. 즉 공정한 게임의 규칙을 만들어 서로 간의 제한적인 경쟁을 통해 승패를 가르는 방식인 것이지요. 그러므로 스포츠의 이런 대리 발산 기능은 과거 같으면 인간 사이의 적의(敵意)나 공격성으로 인해 국가 간 인종 간 부족 간 유혈 전쟁이나 싸움으로까지 확대될 수 있는 사태를 어느 정도 완화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스포츠가 어디까지나 공정한 규칙 준수를 통해 선의(善意)의 경쟁을 하고, 또 그 결과에 깨끗이 쌍방이 승복하여 패자는 승자에게 축하를 보내고, 승자는 패자를 격려하고 위로하는 형태로만 된다면,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문제는 인간 세상에서는 그런 이상적인 형태로 스포츠가 운영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경기에서 반칙이 빈발하고 외국의 축구경기에서 흔한 훌리건(hooligan)들의 난동 같은 사태에서 보듯이, 상대에 대한 극렬한 경쟁심과 적의, 공격성 때문에 폭력사태가 종종 나타납니다. 심지어는 어떤 형태로든 사망사고가 일어나기도 하지요.
경기에서 이긴 승자는 환호하고 우월감으로 의기양양하지만, 패배한 쪽은 굴욕과 열등감, 패배의식에 사로잡히기 마련입니다. 그러다 보니 스포츠가 스포츠로 끝나는 게 아니라 결과적으로 전쟁처럼 상대에 대해 더더욱 강한 증오심과 적의를 가지게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런 경우에는 당연히 카르마(業)가 됩니다. 어떤 행위가 카르마가 되고 안 되고는 꼭 외적 행위 자체에 있다기보다는 어디까지나 우리의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다시 말해 앞서 언급했듯이 서로 경쟁하는 경기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경기를 행하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이 어떠하냐가 문제라는 것이지요. 예컨대 어디까지나 게임을 한다는 가벼운 마음과 선의의 마음으로만 경쟁을 한다면, 스포츠는 서로 간의 건전한 발전에 도움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안 되고 때때로 인간들이 스포츠를 통해서도 업을 지을 수 있는 것은 스포츠 자체의 탓이 아니라, 의식(意識) 레벨이 낮은 인간 자신에게 있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참고로 인류사회보다 진화, 발전된 외계 문명권에서는 인간처럼 경쟁하는 스포츠 게임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인간들과 같은 과도한 공격성이 없기 때문에 그런 것이 필요 없는 것입니다.
문188:임마누엘 탈무드가 있다고 해서 들었는데요
1.예수님 십자가에서 죽은 후에 부활 안하셨나요?
2.인도에 가서 인도여자랑 결혼해서 115세까지 살다 가셨나
요?
3.아담은 백인들의 조상 인가요? 전 인류의 조상이 아니었나
요?
답: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형(十字架 刑)과 사망, 그 이후의 부활여부를 둘러싸고 떠도는 여러 가지 설(說)들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 중 많은 것들이 교묘히 왜곡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지 않고 끌어내려진 후 살아났고, 인도로 가서 결혼해 115세까지 살았다는 주장도 그중 한 가지입니다.
내 개인적으로는 이 주장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으며, 예수님 계시서인 <예수 그리스도의 충격 메시지>와 <그리스도는 여러분 내면에서 탄생한다>에서 언급하는 내용을 신뢰하는 입장입니다.
이 두 가지 책 내용에 따르면,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분명히 육체적으로 사망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부활하셨다는 것이죠. 인도에 가서 요가수행을 했던 예수님은 특수한 호흡법을 통해 가사상태로 들어갔다가 얼마든지 다시 살아날 수는 있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그것이 하느님이 바라시는 뜻이 아님을 알고 죽는 길을 택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에 나오듯이 무덤에서 부활하여 제자들 앞에 나타난 것인데, 텔로스(3)권 내용에 의하면 예수님의 부활은 제6광선인 부활의 불꽃 에너지의 축적을 통해서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 부활한 몸은 사실 우리의 육신과 동일한 것은 아닙니다. 그 몸은 이른바 “빛의 몸(Light Body)"으로서 우주인들의 몸과 같은 높은 진동의 반-에텔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빛의 몸은 노화하지 않으며, 진동을 떨어뜨리면 육체처럼 물질화되어 단단해집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예수님의 2,000년 전의 모든 생(生)은 사실상 미래의 우리 인류에게 일종의 시범을 보이기 위한 본보기적인 삶이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도 예수님처럼 거듭나고 부활해서 새로운 불로불사의 빛의 몸의 단계로 진화해야함을 의미하는 것이죠. 보다 깊은 내용은 앞서 언급한 책들을 참고하기 바랍니다.
그리고 성경의 아담과 이브에 관한 이야기는 최초의 인간에 관한 일종의 상징적인 설화로 보면 좋을 것입니다. 고대 레무리아 대륙에서 인류는 5가지 오색인종으로 처음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굳이 따진다면 5명의 아담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성립될 수 있을 겁니다.
(책, ‘불제자였던 예수’를 읽어보면, 예수 그리스도는 14세~29세까지 인도와 티베트에의 사원(寺院)에서 수행하였으며, 인도에서의 이름은 성 이사(聖 Isa)라고 불렸다 한다. 그는 인도에서도 많은 설교를 하였다고 한다. 또한 책, ‘히말라야 聖者들의 삶’을 읽어보면(p322), 카시미르 지방의 높은 산 꼭대기의 어느 산 위에 지어져 있는 사원 사진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서 히말라야 지방에서 전통적으로 여러 동굴에서 거주하면서 수행하는 성자들로부터도 가르침을 받았던 것 같다. 그런데, 이 책에 나오는 여러 가지 성자들의 초능력 중에는 스승이 나이가 많아져서 제자들을 모아놓고서, 며칠 몇 시에 죽는다고 하니까, 제자들이 만류하는 장면이 나온다. 마침내 그 시간이 와서 죽으니까, 제자들이 굉장히 슬퍼하였다는 것이다. 그러자 시체 주변에서 스승의 말씀이 들리면서, 다시 육체 안으로 들어가겠다고 말하자, 시체에 서서히 생명이 들어와서 살아있는 스승이 되었다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런 현상은 매우 특이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죽음이란 유체(幽體)가 육체로부터 분리되고, 유체와 육체를 연결하는 혼 줄이 끊어지는 현상이며, 한 번 죽으면 다시 살아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 일반적인 현상인데, 요가를 깊이 하는 요기(yogee)들은 이처럼 완전히 육체를 떠나서 죽은 후에도 다시 살아날 수가 있다는 것이다. 성경에는 예수님이 죽은 사람을 다시 살려내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와 같은 기술은 위의 책을 읽어보면 잘 이해할 수가 있게 된다. ---본인의 註)
문189. 기독교에는 예수그리스도가 있습니다.
그런데 불교를 믿는 사람들은 정서상 그리고 오랜 믿음으로
타종교에 관대한 사람은 희박합니다. 설사 타종교를 받아들인다 해도 정서상 거리감이 있지요. 불교 믿는 사람들을 위한 예수그리스도의 디크리와 같은 디크리는 없나요? 예수그리스도(석가모니) 디크리(진언) 이렇게 대비할 수 있겠는데, 불교도들이 그리스도화(성불)할 수 있는 디크리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운영자님의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답: 디크리에 불교 디크리와 기독교 디크리가 따로 있고, 예수님 디크리와 부처님 디크리가 다를 수가 없습니다.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이지만, 진리는 모두 하나로 통하는 것이고, 거기에 그 어떤 분리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일반 중생들은 용어 하나에 매이고, 생각 하나에 매이며, 또 오래 젖어있던 습(習)에서 벗어나지를 못합니다. 우리는 이런 것을 뛰어넘을 수 있어야 합니다. 적어도 기존의 무지한 기독교인들이나 불교인 수준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현재 영단의 여러 대사들로부터 오는 많은 가르침들이 있습니다만, 그중 가장 많은 가르침을 전하고 있는 대표적인 마스터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것이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예수님이 현재 영단 내에서 “행성 그리스도”이자 <세계의 스승(World Teache)>이라는 직책을 맡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직책은 말 그대로 인류를 교화하고 인류에게 가르침을 전하는 세계교사 역할입니다. 이런 연유로 지금 시대에 가장 중요한 가르침과 메시지들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전달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세계의 스승>직을 맡기 이전 약 2,000년 동안 그 직책에 있었던 분은 다름 아닌 지금의 미륵부처님인 마이트레야(Maitreya) 대사님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인식해야 합니다. 즉 미륵부처님이 현재의 “행성붓다” 직책에 오르기 전에는 “행성 그리스도”였다는 사실입니다.
또 한 가지는 이런 가르침들이 기독교 문화권의 서구의 채널러들을 통해 수신되다보니 어느 정도 그 용어가 기독교적 용어로 표현되어 기록될 수밖에 없다는 부득이한 한계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우리가 용어 하나하나에 매여서는 안 됩니다.
예컨대 그리스도의 메시지에 나오는 신(God)이라는 용어는 현재의 기독교들이 믿고 있는 여호와신이나 인격신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무한한 우주적 근원이나 에너지, 우주의식, 우주지성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또한 이를 불교적 표현으로 바꾼다면, 개체불(個體佛)이 아닌 법신불(法身佛)인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이나 <대일여래(大日如來)>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과연 진리를 향해 있는 진정한 구도자에게 굳이 “나는 불교인이다,” “나는 기독교인이다.”라는 외적인 이름표나 구분이 필요할까요?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떤 외형적인 상(相)이나 용어, 언어에 매여 있다면, 또는 그런 틀을 갖춰야만 마음이 편한 상태에 있다면, 그 사람은 구도자가 아니라 그저 교리를 믿는 수준의 특정 종교 신자라고 밖에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부디 용어에 얽매이지 말기 바랍니다. 즉 그것을 뛰어넘기 위해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문:190 관세음보살은 남성으로도 여성으로도 나타난다고 보고 있습니다. 은하문명의 책에서 보듯이 반드시 여성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설명 부탁드립니다.
A:남성, 여성이라는 구분은 어디까지나 영혼이 3차원 물질계에 육화했을 때의 겉모습일 뿐입니다. 그리고 보살과 부처와 같은 신성한 고차원의 존재들은 중생의 근기와 그때그때의 상황에 응해서 얼마든지 그 어떤 모습으로도 변모해서 나타날 수가 있습니다. 이를 불교에서“응화신(應化身)”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관세음보살을 주로 남성보다는 여성에 가깝게 보는 이유는 원래 영혼은 음양 에너지를 다 갖고 있습니다만, 관세음이 중생이라는 자식의 고통에 응해 자비심으로 구제하는 어머니와 같기 때문에 에너지적으로 여성 에너지를 많이 갖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관세음보살, 모든 질문에 답하다>에서도 관세음보살 자신은 자기가 거대한 에너지이고 대령(大靈)이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또한 관세음의 에너지가 고대에 중국의 "묘선"이라는 여성으로 육화한 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관세음보살이 과거 육화했을 때 여성의 몸을 취했었으므로 우리가 지금도 그 존재를 신성한 어머니적 존재로 본다고 해서 그것이 크게 틀렸다고 볼 수도 없고, 또 잘못된 것도 아닙니다. 불교에서 관세음을 <성모관음(聖母觀音)>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아울러 부처 보살들이 위대한 존재들이긴 합니다만, 우리가 마치 올려다보기도 힘들다는 듯이 너무 지나치게 신격화 우상화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도 과거에 다 인간의 육신을 입은 적이 있었으며, 오랜 윤회환생과 영적인 진화의 계단을 밟아 올라가 오늘날 부처 보살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각자도 앞으로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그리 될 수 있는 것이고요.
그리고 마치 기존의 불교 지식만이 옳고 우월하다는 식의 생각 역시 잘못된 고정관념입니다. 내가 보기엔 불교 교리나 경전들도 오랜 세월에 걸쳐 잘못 왜곡된 부분들이 많습니다. 따라서 기존의 경전이든 최근의 채널링 정보든 그 자체만 가지고 이분법적으로 무조건 옳다 그르다 예단(豫斷)해서는 안 됩니다. 또 비유와 상징인 경전의 표현들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것 역시 오류를 범할 수 있습니다.
자기가 믿고 싶은 대로 믿는 것은 각자의 자유겠지만, 아직 미완성의 중생이면서 마치 자신이 모든 것을 다 아는 양, 남에게까지 자기의 개인적 생각을 단정적으로 강요하거나 전파하려는 것은 오만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자기 나름의 판단력과 보는 눈이 있습니다. 따라서 개인의 자유의지를 존중해 각자의 판단에 맡기는 것은 가장 좋을 것입니다. 그리고 혜안을 가진 사람들은 누가 뭐라고 하든 무엇이 진리인가를 알아볼 것입니다.
문 191:안녕하세요.
요즘 분위기를 보면 남북통일 될 때가 가까이 온 거 같아요.
남북 통일되면 전 세계에 영적으로 어떤 영향을 줄까요?
그리고 남북 통일되면 우리나라 영적으로 급변하면서
많이 깨어날까요? 오늘 처음 글 남기지만 여기서 많이 배우고 갑니다. 운영자님과 여기계신 모든 분들 축복 드립니다.
행복하세요.
A:남북통일은 분단된 지 70년 가까이 된 우리민족이 단순히 국가적으로 하나가 된다는 의미 이상의 몇 가지 영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운영자 본인의 개인적 견해일 뿐이니 참고 정도만 하기 바랍니다.
첫째, 21세기 남북통일은 지구 5색인종의 장손민족이자 천손민족인 한민족의 갈라져 있던 힘이 하나로 통합됨으로써 세계 최강대국이자 지도국으로 올라설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적으로 한민족 DNA의 우수성은 이미 증명된 바가 있습니다. 6.25 전쟁으로 인한 완전한 페허 상태에서 그 잿더미를 딛고 2차 대전 후 세계 10위권의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동시에 이룩한 나라는 한국이 거의 유일합니다. 또한 스포츠분야에서도 반 쪼가리의 작은 나라와 인구를 갖고도 올림픽에 나가 6~7위권의 성적을 거둔다는 것은 인구비례로 따지면 사실상 우리나라가 세계 1위에 해당됩니다. 남북한 성적을 합치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게다가 “한류”라는 문화의 파동이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것도 하나의 중요한 신호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우리에게는 타민족이 갖지 못한 “홍익인간(弘益人間)” “이화세계(理化世界)”라는 국조 단군의 이타적인 위대한 정신적 사상과 <천부경(天符經)>이 있습니다. 이러한 뛰어난 한민족의 문화와 정신세계는 인류를 가르치고 인도할 수 있는 귀중한 자산입니다.
둘째, 남북한과 한반도는 지구상에 유일하게 남은 분단국가이자 마지막 냉전지대로서 지구와 전 인류의 공업(共業)을 짊어진 축소판과도 같은 상징적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남북통일과 상호왕래는 곧 우리민족이 이러한 집단적 카르마의 짐에서 풀려나 가로막혀 있던 지기(地氣)의 통일, 즉 에너지가 통일됨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갈라져 있던 남북의 힘이 비로소 하나로 될 때, 그 힘의 강도가 3~4배 이상 증대되는 상승효과가 나타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나라에서 세계를 리드하고 구원할 수 있는 정치와 경제 및 과학, 영성 등의 각 방면에서 뛰어난 인재와 지도자들이 우후죽순으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아울러 핵무기를 무력화시키고 인류의 난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과학기술과 원리가 등장할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이조말의 선각자 강증산 선생에 의해 “만국활계남조선(萬國活計南朝鮮)”이라고 예언되어 있습니다.
셋째, 남북통일은 “원시반본(原始返本)”하는 우주의 순환원리에 따라 고대 환인, 환웅시대에 전 세계로 퍼져 나갔던 한민족의 정신문화와 에너지가 원래의 자리인 한민족에게 수렴되어 다시 개화(開花)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하여 현재는 말살되고 매장돼 있는 인류의 부모국으로서의 한민족의 고대역사가 본격적으로 세계에 드러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유대민족 중심의 어둠의 세력은 패퇴하고 세계 모든 국가가 우리민족의 “공존공영(共存共榮)”의 밝은 정신적 지도 원리를 자발적으로 받아들여 따르게 될 것입니다.
타인종이나 민족, 국가를 배척하거나 지배하지 않고 서로 돕고 함께 번영할 수 있는 “홍익인간(弘益人間)” “이화세계(理化世界)” “공존공영(共存共榮)”의 원리는 사실상 5차원 이상의 외계문명권에서 채택하고 있는 우주원리와 동일한 것입니다.
앞으로 남북통일과 함께 전 인류가 순조롭게 이런 단계를 밟게만 된다면, 자연스럽게 우리나라는 세계의 지도국이 되어 지구인류 전체를 하나로 통합시켜 5차원의 문명으로 끌고 가는 선도국가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향후 있을 수 있는 여러 가지 난관 돌파 및 한민족 전체의 대동단결과 전심전력의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문192:카르마 법칙의 본질에 관하여 말씀해 주세요.
A:고의성이 없더라도 남에게 피해를 주었다면, 카르마 이전에 우리는 법적으로 책임을 져야하고 피해배상을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실수로 교통사고를 내서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사망하게 했을 경우, 법적으로 “과실치상”이나 “과실치사죄”가 되어 감옥에 가든가, 피해보상을 해줘야 하는 것입니다. 최근의 동양그룹 사태 마냥 기업이나 경영주가 잘못된 판단으로 투자자들에게 금전적으로 피해를 끼쳤을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또 법을 적용하기 이전에 만약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우리에게는 “양심”이라는 것이 있어서 남에게 피해를 끼친 것에 대해 스스로 자책감과 미안함, 반성의식을 갖게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잘못 또는 실수에 대해 법적처벌을 받거나 피해배상을 하고, 또 진정한 자신반성을 하는 이런 경우에는 그 실수로 인한 행위가 별 카르마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과정이 결여되어 있다면, 그 사람은 의도적인 양심불량자 내지는 양심이 마비된 자이므로 그에게는 거기에 상응한 카르마적 책임이 뒤따를 것입니다. 카르마가 적용되는 가장 핵심적인 기준은 단순히 외적인 행위보다도 이처럼 우리 내면의 마음상태에 달려 있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이 행하는 외적행위의 동인(動因)은 반드시 먼저 마음에서 생겨나고 시작됩니다. 따라서 카르마의 법칙이 인간에게 배우도록 요구하는 것은 자기행위에 대한 내면의 책임의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인간의 무책임한 행위, 즉 균형에서 벗어난 행위에는 우주가 필연적으로 그 상실된 균형을 잡고자 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카르마적 반작용이 뒤따르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가정이라고 하지만, 이 세상에서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고는 돈을 버는 게 불가능한 경우는 없습니다. 조물주는 인간을 애시당초 그렇게 창조하지도 않았고, 이 세상을 그렇게 만들어 놓지도 않았습니다. 누구나 정당한 노력과 성실성을 토대로 열심히만 움직인다면 얼마든지 기본적으로 먹고 살게는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잘못된 가정을 토대로 한 질문에는 답이 없다는 것을 인식하기 바랍니다. 한 가지만 더 부연한다면, 카르마를 더 짓지 않기 위해서 자살한다는 식의 가정적 이야기도 절대 합리화되거나 성립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그 자살 자체가 우주법칙을 어기는 것이므로 이미 무거운 카르마를 짓는 행위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 그저 영적무지에서 나온 인간적인 짧은 생각들일뿐입니다.
문193 : 상대성 이론에서 아인슈타인 왈 ㅡ 미녀와 함께 1시간 있으면 10분도 안되게 느껴지지만 추녀와 함께하면 10분이 한나절 같이 느껴진다.
아인슈타인은 양자물리학의 최고봉입니다. 그가 설정하거나
깨달은 것을 다른 과학자들은 긴가 민가 확인하는 레벨이지요 빛 책 56페이지와 그 이하 페이지와 연관시켜서 제안합니다. 저는 양자물리학을 좀 배웠습니다. 전문적으로가 아닌 영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요. 그래서 원자에서 소립자 정도가 아니라 소립자도 또 쪼개 그 이상의 존재가 있으니 소립자 가지고 논하는 것은 좀 시대적으로 뒤떨어진 것이 아닐까요? 그런데 빛 책에서 예수님은 이것을 알기 쉽게 설파하셨습니다. 전체적으로 물리학과 영적 문제와 균형 있게 이해하고 싶습니다. 하오니 운영자님이나 독자 여러분 중에 이 글 첫머리의 아인슈타인의 말을 영적인 문제와 결부시켜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답: 이것이 적절한 답변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내 생각으로는 불교의 화엄경에서 언급하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가 그 한 가지 해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3차원 물질계 안의 모든 것은 가변적이고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것이 없습니다. 사실 물질계만이 아니라 우주전체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고 유동적으로 진화해가고 있습니다. 또한 과거에서 현재, 현재에서 미래로 일정하게 직선적으로 흐른다고 우리 인간이 생각하는 시간개념이라는 것도 얼마든지 옳은 것이 아닐 수가 있습니다. 더구나 우리는 아직 시간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모릅니다. 또 심지어는 시간이 없다는 말도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이 언급한 ㅡ “미녀와 함께 1시간 있으면 10분도 안되게 느껴지지만 추녀와 함께 있으면 10분이 한나절 같이 느껴진다.”는 말은 주관적 세계 안에서 시간의 흐름이 매우 가변적이고 상대적일 수 있다는 의미로 보입니다.
우리 속담에도 이와 비슷하게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알다시피 이른바 신선세계에 가서의 잠깐 동안의 놀음시간이 인간세계에서는 도끼자루가 썩을 정도로 긴 시간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즉 그쪽 세계와 이쪽세계는 시간의 흐름이 다르다는 것이죠. 이것은 시간이라는 것이 우리가 알고 있듯이 반드시 우주에서 일정한 속도로 절대적이고 객관적으로 흐르는 것이 아닐 수도 있음을 암시합니다. 그런데 양자물리학의 가장 중요한 특성 중의 하나는 인간의 의식(意識)이 객관 계에도 영향을 미쳐서 그것을 좌우할 수 있다는 개념입니다. 그러나 불교는 이런 개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미 이것을 수천 년에 전에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구절로 요약해 놓았습니다. 또한 이를 “만유유심소현(萬有唯心所現)” 혹은 "일체제법 유심소생(一切諸法 唯心所生)"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모든 것은 마음의 작용이며,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주관계와 객관계는 본래 둘이 아니며, 정신과 육체, 물질과 비물질이 둘이 아닙니다. 즉 책에서의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모든 것은 진동하는 에너지이고 주파수의 차이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리고 양자물리학의 실험에서 나타난 대로 우리의 주관적 마음에 의해 객관적 현상이 영향을 받아 거기에 반응하거나 좌우될 수 있다는 것은 만물을 구성하는 입자들이 살아있다는 중요한 암시입니다. 궁극적으로 우주 전체는 곧 거대한 의식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내 마음상태에 의해 나의 세계 안에서의 시간의 흐름마저도 달라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가정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참고가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문194: 열 역학 제 2의 법칙을 간단히 설명해 주세요.
답:<열역학의 제2법칙>이란 쉽게 말하면, 절대자의 법칙과 맞지 않게 창조된 인간의 불완전한 모든 것들(창조물)은 결국 우주의 힘에 의해 파괴되어 원래의 에너지 상태로 돌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원래의 상태로 환원시키려는 우주의 힘을 하느님 어머니의 힘, 또는 동양사상의 주역(周易)에서는 음(陰)의 힘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절대자의 법칙에 맞지 않게 창조된 불완전한 것"이란 의미는 일정한 진동주파수 이상의 높은 빛의 의식, 즉 그리스도 의식으로 창조되지 않은 것들을 말합니다. 성모님의 말씀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자연의 재앙이라든지 파멸, 국가나 문명의 멸망, 굶주림, 인간의 노화와 질병, 죽음 등의 모든 부정적이고 비극적인 것들은 모조리 이러한 임계점 이하의 저급한 인간의식 때문에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책에서 설명하다시피, 그런 불균형 상태의 것들은 우주의 힘에 의해서 개체적 생명체에서부터 사회, 국가, 행성에 이르기까지 모두 구조물들을 붕괴시켜 원래의 에너지 상태로 환원시켜버리는 작용이 시작되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따라서 우리 인간 개개인이 생노병사(生老病死)에서 벗어나는 것에서부터 지구행성의 문명 전체가 결코 멸망하지 않고 영속적으로 번영할 수 있는 길은 시급히 인류가 지금의 증오나 분노, 두려움, 같은 부정적 의식, 그리고 에고적인 낮은 의식상태에서 높은 의식으로 올라서는 길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한 예로, 고차원의 의식인 그리스도 의식을 성취한 존재, 다시 말해 그리스도화된 존재는 “빛의 몸(light body)”이라는 불로불사의 체(體)를 갖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존재는 바로 그것을 시범보이기 위해 이 지구 땅에 왔던 것입니다.
내가 보기에는 그리스도 의식까지는 아니더라도 인류의 20~30%만이라도 지금의 지극히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의식 상태에서 벗어나 전체를 위해서 조금이라도 기여할 줄 아는 어느 정도의 집단의식, 또는 공동체의식 수준으로 올라서기만 해도 인류의 비극의 상당부분은 해결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대부분의 인간들은 영적으로 무지하며, 깨어나지 못한 채로 있습니다. 여기에 이 지구의 모든 문제와 비극이 잠재해 있는 것입니다.
문195: 지구의 극이동에 관한 종합적인 견해를 부탁해요.
답: 지축 문제에 대해 아는 한도 내에서 종합적으로 답하겠습니다.
사실 지축이 똑바로 서있어야 하는 것이 정상이라는 말은 옳습니다. 현재 지축이 23.5도 기울어져서 기우뚱하게 자전과 공전을 하고 있다 보니 지구는 현재 정원궤도가 아닌 타원궤도로 공전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지축의 기울어짐은 곧 인류의 비뚤어져 있는 집단의식의 비정상성을 상징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고대 레무리아와 아틀란티스 문명의 멸망과 더불어 초래된 된 것이죠.
그리고 그런 지축의 기울어짐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 남북극과 같은 극한(極寒)지역과 적도지방의 극서(極暑)지역의 출현 및 기상난동, 사계절의 변화입니다. 그런데 이 기울어져 있는 지축이 장차 똑바로 서게 됨으로써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공전궤도가 정원(正圓)이 되며, 지구의 기후가 4계절 내내 봄 날씨 같은 온화한 날씨로 바뀌어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는 사상이 바로 <정역(正易) 사상>입니다. 이조 말기의 역학자인 우리나라의 김일부 선생이 주창한 사상이지요.
이렇게 되면 1년이 지금과는 달리 정확히 360일 되어 현재의 불완전한 역(易)으로 인해 4년마다 오는 윤달이 없어지게 됩니다. 이처럼 지축정립과 더불어 지구의 역(易) 자체가 바뀌어 지구의 에너지 주파수가 완전히 달라지게 될 때가 소위 새로운 정역시대인 후천세상이고, 5차원 시대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전에 답변한 대로, 급격한 지축변동을 통해 오염된 지구를 정화함으로써 새로운 세상을 개막하려던 것이 원래의 천상의 시나리오였고, 예정된 수순이었습니다. 그래서 노스트라다무스나 에드가 케이시, 루스 몽고메리 같은 예언가들이 미래를 내다보고 1999년 멸망설이나 2000 년경의 지축변동을 미리 예언했던 것이지요. 또 아쉬타 사령부와 같은 외계인 함대 쪽에서도 1980년대부터 그런 예측을 토대로 채널링 정보를 송신했던 것이고요.
그런데 만약 이런 급격한 지축변동이 일어났다면, 대부분의 문명이 붕괴되고 인류의 약 90% 가량은 그 과정에서 모두 사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확인했다시피, 다행히 이것은 발생하지 않았고 인류의식의 변화에 따라 천상의 원래 시나리오는 변경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개인적으로 나는 장차 지축이 점차 이동하여 서게 된다고 보기는 하지만, 아마도 급격히 변동되지는 않는다고 예상합니다. 급격한 지축의 이동은 극단적인 대륙의 침몰과 융기, 해일 등으로 파멸적 상황을 불러올 수 있겠으나, 지축이 서서히 움직여 조금씩 서게 된다면, 변화가 오더라도 완만하게 덜 피해가 오는 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만, 향후의 지구의 모든 변화과정과 인류의 미래는 절대 미리 결정돼 있지 않습니다. 앞서 언급한 것은 단지 나의 개인적인 조심스런 예측일 뿐입니다. 우리 인간의 집단의식의 깨어남의 여부와 그 향배에 따라 많은 변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즉 천지인(天地人)이 각각 별개가 아니라 하나로 연결되어 함께 움직이고 작용하는 우주원리를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문196: 성령에 관하여 설명부탁해요.
답: 성령(聖靈)이 무엇인가에 관해서는 책, <그리스도는 여러분 내면에서 탄생한다>에 명확히 언급되어 있습니다.
한 마디로 성령은 우리 인간 내부에 있는 “개인적인 구세주”로서 우리들 각자를 구원과 천상의 고향으로 인도하는 “진리의 영(靈)”을 말합니다. 이 성령을 성경에서 예수님은 <보혜사(保惠師)>라고 호칭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보혜사 성령을 다르게 표현해서 “그리스도 자아(Christ self)" 또는 “고등한 자아(higher self)”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합니다.
창조주 하느님으로부터 분화된 우리의 거대한 신성(神性) 자체는 “신적자아(I AM Presence)”라고 하는데, 이를 줄여서 “신아(神我)”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신아는 “그리스도 자아" 또는 “고등한 자아”와는 다른 것입니다.
신적자아(神我)는 진동이 너무 높아서 물질세계의 낮은 진동 속으로는 내려올 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높은 신적자아와 지상에 육화한 우리의 개체적 영혼 사이에서 중개역할을 해주고 메신저로서 작용하는 것이 바로 이 “그리스도 자아" 내지는 “고등한 자아”, 또는 <보혜사 성령>이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보혜사 성령은 영혼의 구원을 목적으로 파견된 일종의 영(靈)이며, 우리에게 하나의 “직관(直觀)”내지는 “영감(靈感)”으로서 주로 작용한다고 하지요.
기독교식 표현으로 우리의 “영혼이 구원받는 것”, 또 이를 불교식으로 달리 표현하면 “깨달아서 해탈하는 것”인데, 이런 모든 과정을 인도하는 것이 우리들 각자의 내면에 있는 “고등한 자아”, 또는 <보혜사 성령>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리를 깨달아 신성 또는 불성(佛性)을 완전히 구현하는 길은 오직 “고등한 자아” 또는 <보혜사 성령>과의 소통 및 융합을 통해서인 것입니다.
부연해서 이른바 <삼위일체(三位一體)>에 관해서 개인적인 의견을 말한다면, 현재 기독교에서 말하는 성부, 성령, 성자라는 삼위일체적 개념은 약간 왜곡돼 있다고 봅니다. 다시 말하면, 위에서 설명한 성령에 대한 개념을 토대로 생각해 볼 때, 성령의 자리에 대신 성모(하느님 어머니)가 들어가는 것이 옳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삼위일체는 성부(하느님 아버지), 성모(하느님 어머니), 성자(하느님의 자녀들)로 구성되어야하는 것이 정상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삼위일체는 창조주 하느님이 표현된 3가지 상태와 위격으로서 궁극적으로는 이 3가지가 하나라는 의미니까요.
문197: 영적자아. 신적자아. 그리스도자아. 신아. 참나. 대아. 깨달음.해탈.부처.성령.보편적그리스도. 개체화그리스도---
이렇게 많은 비슷하면서도 다르지만 서로 비슷한 낱말이 너무 많아서 딱 한 가지 낱말만 가지고 책의 내용이 구성되면 혼란이 거의 없을텐데요. 그러니 비슷한 낱말끼리 집단을 만들어 주시길 바랍니다. 물론 영혼이라는 뜻은 착오나 혼란 없이 이해하는 분들이 대부분일 것이니까 신아와 성령 이 두 분야를 나누어 간추려 주시길 운영자님에게 부탁드립니다.
답:*신적자아=신아=참나=진아=대아=영적자아
*고등한 자아=그리스도 자아=성령
깨달음의 경지는 첫 단계인 견성(見性) 이후에도 최종적인 완전한 성불(成佛)에 이르기까지 그 중간의 수 십 가지 단계로 분류됩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한 마디로 단정해서 말할 수가 없습니다.
다만 지구권의 윤회환생을 벗어날 수 있는 단계를 말한다면, "아나함(阿那含)"의 경지라고 하며, 이는 중생의 탐, 진, 치(분노와 욕망과 어리석음) 삼독(三毒) 가운데 2가지인 모든 욕망과 분노를 초월하고 약간의 집착과 무명(無明)의 뿌리가 남아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참고로 그리스도의 경지보다는 부처(佛)의 경지가 더 높습니다. 그리스도의 경지는 불교로 치면, 보살의 단계 정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문198:여호와증인 교인들 중 일부는 군대를 안 가려고 소송까지 내는데요. 물론 살인하지 말라는 교칙에 따른 것이긴 한데 지금 하느님의 새 왕국 건설을 앞두고 이 시대 군대 입영에 대한 최선의 방책이 무엇인지 운영자님의 뜻은 어떤지 알려주십시오.
답: 군대 안 가려고 소송까지 하고, 감옥에 가는 것도 불사하는 여호와 증인들의 태도는 너무 극단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이 전쟁 상태가 아닌 이상 군대 간다고 무조건 살인하게 되는 것도 아니잖습니까? 정 살인하기가 싫다면, 전쟁이 났을 때 살인을 거부해도 늦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해야 한다고 보며, 우리가 편안히 발 뻗고 잘 수 있는 것은 추우나 더우나 국가를 지키고 있는 군인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종교적 교리를 내세워 군복무를 거부하는 것은 일반인들의 눈에 일종의 핑계거리 및 이기주의로 보일 수 있습니다. 종교인이기 이전에 우리는 대한민국의 한 국민입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국민이면, 3대 의무 중 하나인 병역은 반드시 이수해야 합니다. 북한의 침략에 나라가 멸망하게 되면, 종교고 신앙이고 존속할 수 없는 겁니다. 즉 국가가 있어야 편안히 신앙생활도 할 수가 있는 것이며, 만약 남한이 적화 통일될 경우, 가장 먼저 처형되는 것이 정부 관료와 기독교 계통의 종교인들임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공산주의는 기본적으로 무신론주의이므로 기독교를 가장 싫어하고, 북한의 경우는 하느님 대신에 오직 김일성 부자와 김정은만을 신격화해서 숭상하는 유일독재체제이기 때문입니다.
199:Q&A 135줄 317번에는 신선도에 관한 해설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초자연 현상이 수련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다고 하며, 그 초자연 현상 중 양신, 출신도 있다고 설명하고 있는데요, 이 용어는 처음 들어보는 것이라 설명 부탁합니다. 한자로는 養神, 出神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만---.
답: 정확하게 “양신출신(陽神出神)"이라고 합니다. 양신은 “음신(陰神)”에 반대되는 개념으로서 이것은 선도(仙道) 수련을 통해 최종적으로 생성되는 일종의 에너지체이며, 자신의 또 다른 분신(分身)을 말합니다. 또 여기서 음신은 보통 “유체(幽體)” 즉 아스트랄체에 해당되는데, 이 양신출신은 소위 “유체이탈”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선도에 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잠시 설명하자면, 선도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불로불사하는 신선(神仙)이 되어 하늘로 우화등선(羽化登仙), 즉 승천하자는 것입니다.
선도는 성불(成佛)을 목표로 한 불도(佛道)와 더불어 동양에서 나름대로의 오랜 역사적 전통과 정교한 체계를 갖고 있습니다.
선도의 출발은 호흡을 통한 하단전 축기(蓄氣)부터 시작됩니다. 그리고 장기간에 걸쳐 완전한 축기가 되면, 그 충만은 기운은 서서히 인체의 경락을 통해 흐르기 시작합니다. 그리하여 먼저 우리 몸의 앞 뒤 정중선에 해당되는 임맥(任脈)과 독맥(督脈)을 개통시키게 되는데, 이렇게 해서 막힌 임독맥을 뚫어 유통시키게 되면, 선도에서는 이를 “소주천(小周天)”이라고 합니다. 이는 선도에서 이르게 되는 첫 경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주천 단계에 이어 그 다음에는 온 몸의 기경팔맥(奇經八脈)을 모두 개통해서 전신으로 기를 돌리는 수련에 도전하게 되며, 이에 성공하면 “대주천(大周天)"에 도달한 것입니다.
이런 대주천 단계만 되어도 일반인의 눈으로 볼 때에는 거의 “도인(道人)”에 해당되는 능력을 구사할 수 있습니다. 대주천에 이어서 수련이 심화되면 단전에 “소약(小藥)”이라고 하는 작은 에너지 덩어리가 처음으로 형성됩니다. 계속적인 수련을 통해 이 소약을 점차 양생해 나가게 되는데, 이 소약이 점진적으로 “대약(大藥)”이라는 커다란 양기(陽氣) 덩어리로 발전하게 되며, 이 대약이 바로 양신의 원천이 되는 것입니다.
이윽고 이 대약이 양신으로 변화되는 단계에 이르게 되면, 이를 선도에서는 “도태(道胎) 했다.” 또는 “선태(仙胎)했다.”라고 표현합니다. 즉 신선이 될 자신의 분신인 아이를 배게 된 것입니다. 이 양신이라는 것은 처음에는 갓난아기처럼 매우 작고 미약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계속적으로 수행을 하게 되면, 점점 더 자라나고 강해지게 됩니다. 그리고 양신이 어느 정도 성장하게 되면 이 양신을 자신의 몸 밖으로 내보내는 훈련을 하게 되는데, 바로 이를 “양신출신”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양신이 최종적으로 완성되면, 선도 수행자는 나비가 누에의 허물을 벗고 날아오르듯이 육신을 기화(氣化)시켜 벗어 던져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비로소 신선(양신체)이 되어 하늘로 승천하게 되는 것입니다. 고대에 역사적으로 이렇게 신선으로 백주 대낮에 승천한 실제의 기록들이 남아 있으며, 이는 서양의 마스터들의 승천 사례들과 더불어 동양 나름의 승천의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수행이 마찬가지이지만, 선도수련 역시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평생을 수련해도 소주천이나 대주천 단계에도 도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욕망 자제가 안 되는 사람들은 아예 수련을 시작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왜냐하면 쓸데없는 시간낭비에 불과하게 될테니까요.
문200 : 안녕하세요 운영자님 지금 "나는 금성에서 왔다" 라는 책을 읽고 있습니다. 거기에서 불간섭의 원칙 이라는 게 있는데 이것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개인의 모든 행동에 대해서 타인이 간섭하거나 강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입니까? 책에서는 개인의 행동에 대해선 자신이 모두 책임져야 한다는 원칙인거 같은데. 아니면 타인의 권리를 침해 할 때만 강제하거나 간섭할 수 있는 겁니까? 예를 들어 지나치게 pc게임에만 빠져 있는 사람에게 자제할 것을 권유하는데도 무시하고 계속하는 경우 이런 문제로 서로 의견충돌로 다투거나 하는 것도 그냥 그 사람의 문제로 내버려 두어야 하는지 아니면 강제력을 동원해서라도 막아야 하는지.... 이와 비슷한 문제들이 우리의 일상생활에 많이 있는데 판단하기가 애매할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또 어떤 사람이 폭력을 행사 하고 있는데 그냥 그것을 무관심하게 지나쳐 가는 게 그것도 카르마로 남는지 등등 판단하기가 어렵습니다. 불간섭원칙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 할 것 같습니다.
답: 우주의 기본원리로서의 <불간섭의 원칙>을 이해함에 있어서 우리가 자칫 잘못 오해할 수 있는 소지가 많다고 생각됩니다. 타인의 행위를 무조건 방치하고 무관심하게 관여하지 않는 것이 <불간섭의 원리>는 아닙니다. 이것은 너무 융통성이 없는 고지식한 해석이지요. 만약 그렇다면, 부처님과 그리스도가 가르친 이웃에 대한 자비나 사랑의 행위는 전혀 무의미한 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리고 금성 정도 영적으로 진화된 문명세계와 온갖 범죄와 오염, 악이 판치는 지구세계를 똑같은 선상에 놓고 불간섭원리를 논할 수는 없습니다.
내가 보기엔 <불간섭의 원리>는 <카르마의 법칙>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습니다. 진화된 문명세계에서 기본적으로 불간섭주의를 견지하는 것은 타인이나 다른 세계의 카르마에 간섭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들이 잘 알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타인이나 다른 세계에 너무 과도하게, 또는 불필요하게 개입을 할 경우, 우선은 그들의 천부적인 권리인 자유와 자유의지에 의한 자기결정권을 침해할 수가 있습니다. 또 그 영혼이나 세계가 어떤 경험을 통해 모종의 교훈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빼앗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그런 균형을 잃은 간섭 행위는 필히 카르마를 짓게 되고, 또 자신들이 나중에 그 업보를 받을 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타인에 대한 긍정적인 행위, 즉 어려운 상황에 놓인 사람을 돕는 자비나 사랑의 행위는 어떨까요? 물론 이 또한 어떤 의미에서는 일종의 간섭이고 카르마가 되지만, 이것은 좋은 카르마, 즉 선업(善業)이 됩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우리는 어떤 경우의 행위가 악업(惡業)을 짓는 불필요한 간섭이 되고, 반대로 어떤 경우가 긍정적인 선업이 되는지를 잘 분별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아는 바로는 이 세상의 보편적인 도덕과 윤리, 상식선에서 그 판단기준을 찾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