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절친
김하임
나무의 초록 잎새가 하루가 다르게 진한 색으로 바뀌고 있다. 유월이다.
어느 사이 저렇게 달라졌을까. 뜨거운 햇살에 초록 잎들이 반사되어 바람에 휘정휘정 거리며 시멘트벽에 음양의 그림을 그리고 있다. 크기가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였는데 언제 잎새가 저렇게 달라졌을까.
작은 동네에 있는 작은 헬스장 회원들 모습이 그러하다. 이른 아침에는 나이든 남자 회원들이 많다. 여름을 향해 녹음이 짙어지는 그런 싱싱한 나무가 아닌 그들이다. 몇 달 만에 보니 달라진 것이 별로 없는 듯한 데, 달라져 있다. 머리 염색을 그만 멈춘 것인지 머리카락이 희어지고 얼굴에는 주름살이 늘었다. 직장처럼 아침이면 이곳에서 서로가 만난다. 역기를 드는 모습 속에서 그들은 돌아올 젊음을 기대하고 있는지 알 수 없으나 그 성실함이 지금도 여전한 것 같다. 한때 출근으로 서둘렀을 아침에 그들은 이제야 남는 게 시간이라고 바삐 돌아가려고 하지 않고 여유로워졌다. 그런데 힘이 부친단다. 병원에서 수술했다는 말을 하고 아직도 아프다는 이야기를 나눈다. 남 일이 아니다.
유튜브에는 건강에 대한 정보가 많아 오히려 혼란스럽다. 그래도 끊기 어려운 알코올 중독처럼 보게 된다. 믿을 만한 재활 의사는 “육 십 대가 되면 팔십 프로 이상이 아프든, 아프지 않던 척추가 협착되거나 디스크가 있다.”라고 했다. 무엇을 한다고 금세 낫는 것이 아니니 바른 자세로 앉고 일어서고 조언을 한다. 지난번 찾아간 정형외과 의사는 “건강한 젊음과 건강한 노인은 다르다는 것을 명심하세요. 옛날 얘기하지 말고 지금처럼 아프면 약 먹고 더 아프면 수술하고 그러고 살면 되니까 염려하지 말고 살아요.” 그는 명의가 틀림없다. 마음을 내려놓고 지나친 염려에 사로잡히지 말라는 뜻이었다.
나무는 뜨거워지는 태양으로부터 영양분을 만든다. 염록소가 없는 개미는 나무에 바삐 오르내리며 나무로부터 에너지를 공급받는다. 하얗게 늘어진 밤나무의 수꽃 타래에서 비리한 진한 향기가 풍긴다. 벌레는 옹이를 안고 있는 나무에게 요즘 어떻게 지내냐고 묻는다. 병원을 자주 다녀. 위험한 단계인가 봐. 위험이란 잘못될 가능성이 있거나 안전하지 못한 상태이다. 여러 생명이 어울려 살아가는 생태계이다.
여자 샤워실에서 만난 연세 든 분에게 물었다.
“얼마 전 편찮으셔서 못 나온다고 하시더니 지금은 어떠세요?”
“기운이 없어요. 날마다 몸이 힘드네요. 그래도 걸어야 하니까 와요.”
작은 동네, 작은 헬스장에서 만나는 우리도 생태계 일원이다. 순리대로 가고 있을 뿐이다. 지금 육체적 아픔은 평생을 지켜준 건강도 힘에 부쳐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 절친이다. 서로 보듬고 천천히 가야 할 듯하다. 눈부신 태양이 휘정휘정거리는 우리에게도 음영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는 날이다.
첫댓글 땡큐 김하임 선생님! 어느새 내 방에 들어와 한말씀 하셨네.
나도 지금 이 방에 들어와 선생님의 글 읽었어요. 헬스장에 모인 사람들과 주변의 전경을 잘 표현했네요.
글감을 찾는 열성이 돋보입니다.
헬쓰장의 풍경을 어쩌면 이렇게 영화 장면처럼 편하고 쉽게 묘사하셨을까요.. 오늘 아침에야 영화보듯 읽고 갑니다. 죄송~~
“건강한 젊음과 건강한 노인은 다르다"는 것을 명심하겠습니다. 김하임 선생님 글을 읽으며 하루가 달라지는 제 건강 상태에 신경이 갑니다. 매우 공감이가는 글입니다. 영화처럼 쓰시는 글---쉽고 편안하고 맑고 힐링이 되는 글---미소가 절로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