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27일 째다. 카미노도 며칠 안 남았다.
아쉬운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아무 근심도 없다. 불안도 없다. 부담도 없다. 여자 혼자 걸어도 되는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고 거룩한 길이다. 이런 길을 행복하게 걸었다.
여기서부터가 문제다.
갑자기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몰려 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은카미노를 시작한 이래 처음이다.
계속해서 저쪽큰길에 관광버스, 일반 버스가 몰려와 사람들을 토해낸다. 기차역 쪽에서도 사람들의 물결이 몰려오고 있다. 무슨 일인가?
카미노의 프랑스 길은 800km다. 그러나 800km를 다 걷지 않아도, 도보로 100km, 자전거로 200km를 하면 카미노를 한 것으로 인정한다. 인증서도 준다.
여기가 100km 바로 전이다.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저 많은 사람들은 100km만 걷고 인증서를 받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돌벽. 길안내 표시판이 성실하게 붙어있다.
와-, 거의 고등학교 수학여행 수준이다.
외다리를 건너갈 때는 병목현상이 일어나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아침과 점심을 먹어야 하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 주문할 수가 없다.
어제저녁, 알베르게 예약이 잘 안 되었다. 원래는 27km 바깥에 있는 알베르게에 예약을 하려 했는데, 22km로 떨어진 곳을 예약할 수밖에 없었다.
늘 조용히 혼자 걸었는데 이게 웬일인가? 바람과 함께 비까지 쏟아진다. 마음이 어수선해진다. 그러나 이내 마음을 잡았다.
어차피 카미노 길은 인생길이 아닌가? 좋은 일, 궂은일, 즐거운 일, 괴로운 일이 다 섞여 있는 인생길. 어려움, 고난, 슬픔, 괴로움, 이 모든 것을 감사로 받으면 행복이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평온해졌다.
그리고 몸이 힘을 받았다.
갑자기 순례자들이 엄청 많아졌다. 외나무다리에서 병목 현상이 나타난다.
이런 마음으로 계속 걸었다.
바람 속을 걸었고 빗속을 걸었다. 어느덧 날이 저문다. 이제 5일도 남지 않았다.
조바심이 났다.
내 남은 날도 이렇게 빨리 끝이 날 터인데, 어떻게 살아야 하나? 잘 살아야지,
반듯하게 살아야지,
정성을 다해 살아야지,
새삼 마음을 가다듬는다.
글·사진=송희섭 애틀랜타 시온한인연합감리교회은퇴목사
첫댓글 살다보면 사람이 모일 때도 떠날 때도 있지요. 많이 알려져 점점 사람이 느나 봅니다
십년전에도 성수기에는 잠자리 전쟁이 있었는데 요즘은 더 많아요
특히 한국사람이 왜 이리 많냐고 서양인들이 너무 많이 물어봐서 피해 다녔던 기억이 나네요
어떤 독일남자는 한국사람은 다 부자냐고 ㅎㅎ
자기는 2주 오는데도 오랫동안 계획 하고 휴가내서 왔는데
지구 반대편에서 많이들 와서 놀래요
마치 내가 걸어왔던것처럼
100키로 남은게 많이 아쉽네요. ㅎ
그러니까요 매일매일 그 딱딱한 길을 걷는것도 힘든데 매일 기록 남기시고
정말 대단하시네요
이런일 저런일을 경험하며 사는 것이 삶인데
단순할 것 같은 순례길에서도 같은 경험을 하게 되네요.
100km 순례길이면 저도 해볼만 하겠네요. ㅎㅎㅎ
에그, 여행사랑님은 천키로도 하실거 같은데요 막일이라 하면 매일 목적지 까지 가실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