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氏(이씨)의 本貫(본관): 출처 - 大東韻府群玉(대동운부군옥)
1. 全州(전주): 신라 때 李翰(이한)이 司空(사공)이 되었다. 이한은 신라 29대 왕인 太宗武烈王(태종무열왕)의 10대손인 金敦義(김돈의)의 딸을 취하여 侍中(시중) 李自延(이자연)을 낳았는데, 이때부터 세상에 드러났다. 이 성씨가 조선의 國姓(국성)이다.
2. 仁川(인천): 신라 때 어떤 大官(대관)이 사신의 명을 받들고 당나라에 들어가니, 천자가 가상히 여겨 李氏(이씨) 성을 하사하였다. 그 자손이 대대로 邵城(소성)에 살았다. 李許謙(이허겸)이 상서좌복야에 임명되어 마침내 유명해졌다.
3. 淸州(청주): 王 太祖(왕 태조)의 공신 李能希(이능희)의 후손이다.
4. 慶州(경주): 赫居世(혁거세)의 공신 가운데 楊山村長(양산촌장) 이알평(李謁平)이란 자가 있었다. 月城(월성)의 李氏(이씨)들은 모두 그의 후손이다.
5. 延安(연안): 세상에 전하기를 당나라의 蘇定方(소정방)이 백제를 정벌할 때, 郎將(낭장) 李茂(이무)라는 자가 왔는데, 돌아가지 않고 남았다. 후에 자손들이 연안 이씨로 편입하여 마침내 토성이 되었다.
6. 德水(덕수): 李敦守(이돈수)가 中郞將(중랑장)이 되고, 아들 李劭(이소)가 집안을 일으켰다.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은 文林郞(문림랑) 知三司事(지삼사사)에 이르렀으니 마침내 유명해졌다.
7. 韓山(한산): 고려 때 贊成事(찬성사) 李穀(이곡,1298~1351)의 후예이며, 그 선대는 郡吏(군리)이다.
8. 廣州(광주): 그 선대는 광주의 관리였다. 李集(이집,1314~1387)이 처음으로 과거에 급제하였고, 벼슬은 判典校寺사(판전교시사)에 이르렀으며, 자손이 가장 번창하였다. 또 고려 左參議(좌참이) 李養中(이양중)의 후손도 있는데 그 선대는 모두 같다.
9. 全義(전의): 王 太祖(왕 태조)의 공신 太師(태사) 李棹(이도)의 후손이다.
10. 禮安(예안): 檢校僉義政丞(검교첨의정승) 禮安君(예안군) 李之氐(이지저,1092~1145)의 후손이다. 세상에 전하기로는 全義(전이) 李氏(이씨)에서 나뉘었다고 하는데, 확인할 수 없다.
11. 興陽(흥양): 그 선대는 縣吏(현리) 李彦林(이언림)이다. 아전으로서 生員試(생원시)에 합격하여 士族(사족)이 되었고, 그 후로 李舒原(이서원)에 이르렀다. 벼슬은 贊成(찬성)에 이르렀으며, 자손이 대대로 유명해졌다.
12. 星州(성주): 星州(성주) 李氏(이씨)는 두 파가 있는데, 하나는 碧珍將軍(벽진장군) 李悤言(이총언)의 후손인데, 司空(사공) 李能一(이능일)의 후손이라고도 한다. 혹은 이능일과 이총언은 그 선대가 같다고 한다. 또 하나는 府吏(부리) 李長庚(이장경)의 후손이다. 이장경은 다섯 아들을 두었는데, 모두 과거에 급제하여 마침내 유명해졌다.
13. 益山(익산): 고려의 좌복야 李周衍(이주연)의 후손이다.
14. 咸安(함안): 元帥(원수) 이방실(李芳實)의 후손이다.
15. 眞城(진성): 고려의 密直副使(밀직부사) 李碩(이석)의 후손이다. 이석은 縣吏(현리)로서 유명하다.
16. 光州(광주): 李日英(이일영)의 아들 李弘吉(이홍길)은 벼슬이 密直提學(밀직제학)에 이르렀으며, 마침내 세상에 드러났다.
17. 陽城(양성): 金吾衛(금오위) 上將軍(상장군) 李秀匡(이수광)의 후손이다.
18. 陜川(합천): 그 선대는 慶州(경주) 사람이다. 고려 초에 李開(이개)가 開國戶長(개국호장)으로서 합천에 옮겨 봉해지고서 비로소 토성이 되었다.
19. 龍仁(용인): 고려의 工部郎中(공부낭중) 李惟靖(이유정)의 후손이다.
20. 固城(고성): 及第(급제) 李璜(이황)의 후손이다.
21. 驪州(여주): 戶長(호장) 李仁德(이인덕)의 후손이다. 또 鄕貢進士(향공진사) 李世貞(이세정)의 후손이다. 晦齋(회재) 이언적에 이르러 크게 드러났다. 또 相國(상국) 李奎報(이규보)의 후손이 있었는데, 河陰(하음)으로 관향을 옮겼다.
22. 永州(영주): 대장군 李大榮(이대영)의 후손이다. 또 고려의 領同正(영동정) 李磚(이전)의 후손이다.
23. 載寧(재령): 경주 李氏(이씨)에서 나뉘어 나왔다. 李禹偁(이우칭)이 載寧君(재령군)으로 봉해지자 비로소 귀한 집이 되었다.
24. 牛峯(우봉): 兵部尙書(병부상서) 李公靖(이공정)의 후손이다.
25. 原州(원주): 경주 李氏(이씨)에서 나뉘어 나왔다. 고려 말에 禮部尙書(예부상서) 李攀桂(이반계)가 고려의 운세가 끝나갈 것을 알고 原州(원주) 치악산으로 숨었다. 조선 태종이 불러들이고 방문하였으며, 慶原君(경원군)에 봉하니, 그로부터 관향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