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암 속에서 찾는 은혜 ②
(신 28:20) 네가 악을 행하여 그를 잊으므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여호와께서 저주와 혼란과 책망을 내리사 망하며 속히 파멸하게 하실 것이며
(신 28:21) 여호와께서 네 몸에 염병이 들게 하사 네가 들어가 차지할 땅에서 마침내 너를 멸하실 것이며
(신 28:22) 여호와께서 폐병과 열병과 염증과 학질과 한재와 풍재와 썩는 재앙으로 너를 치시리니 이 재앙들이 너를 따라서 너를 진멸하게 할 것이라
(신 28:23) 네 머리 위의 하늘은 놋이 되고 네 아래의 땅은 철이 될 것이며
(신 28:24) 여호와께서 비 대신에 티끌과 모래를 네 땅에 내리시리니 그것들이 하늘에서 네 위에 내려 마침내 너를 멸하리라
지난 시간에는 하나님께서 베푸신 복에 파묻혀 살다 정작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사는 것이 저주라고 말씀을 나눈바 있습니다. 저는 지난 시간에 에쿠아도르에 살고 있는18세 소녀인 안젤리카 잠브라노(Angelica Zambrano)라는 소녀가 23시간 동안 죽어서 천국과 지옥을 방문한 후에 겼었던 일들을 소개하는 간증을 동영상을 통하여 본적이 있습니다. 그녀는 2009년 죽은 상태에서 천사에 이끌려 천국에 들어가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천국은 믿음의 성도들을 영접할 모든 준비가 끝났으며, 상상할 수 없이 영광스러운 장소이며, 악이라고는 전혀 없는 것에 대해 말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그녀는 천사가 전하는 충격적인 말을 듣게 되었는데 지구상에 있는 대부분의 교회에 적은 수의 무리만이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과 교회 안에 가득 찬 죄악을 보여 주었답니다. 교회에 속한 성도 중에 80%는 주님 오실 때 지상에 남겨질 것이고 고작 20%만 들림 받아 올라 갈 것임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 이유는 오늘의 교회는 많은 축복을 누리고 삽니다. 멋진 건물에 냉난방 시설이 잘 갖춰있는 편안한 의자에 앉아 웅장한 오케스트라 그리고 아름다운 하모니의 천상의 노랫소리를 방불케 하는 찬양, 거기에 등장하는 목사는 화려한 조명 덕에 그지없이 거룩해 보이고 멋져 보입니다. 오묘한 음향장치에서 나오는 목사님의 설교는 닽콤하고 감동적입니다.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임재가 없습니다. 하나님께 간절한 호소도 없고 회개도 없습니다. 여기가 천국인데 더 이상의 무엇을 구합니까? 천국과 같은 속임수를 써서 오늘의 교회는 성도들을 속이고 하나님을 멀리하게 합니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말하고 찬양으로는 하나님을 높이는데 실제로는 하나님에 대한 애통함도 가난함도 없더라는 말입니다. 호화로움과 안락함이 가져다주는 저주입니다. 이것이 저주인줄을 모르고 그 안에 마물러 있는 것이 악입니다.
오늘 말씀은 “네가 악을 행하여 그를 잊으므로”라고 하셨습니다. 악이란 ‘로아’(['r)입니다. 이것은 ‘질적으로 나쁜 상태 또는 나쁜 성질’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보실 때 그 외모를 보시지 않으시고 내면을 보시는데 그 안에 하나님이 싫어하시고 불쾌하게 여기는 속성이 가득 담겨 있습니다. 그런 모습으로 기도를 하고 찬양을 드린다 하더라도 그의 행위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는 없습니다. 속이 깨끗해져야합니다. 청결한 마음이 하나님을 볼 수 있고 깨끗하고 순전한 마음에서 기도가 상달됩니다. 그런데 그런 더러움을 지닌 채 “악을 행한다.”고 했습니다. ‘행하다’는 ‘마알랄’(ll;[}m)입니다. 이 단어는 ‘모질게 또는 가혹하게 행하다’라는 단어인 ‘알랄’(ll'[;)에서 파생된 것으로 주로 악한 행실을 지속적으로 행할 때 사용합니다. 자기는 축복을 받고 있는 사람이요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 사람이라고 착각하여 자기 내면에 감춰진 더러움과 죄에 오염된 것을 전혀 인식하지 못합니다. 그런 상태로 찬송과 헌신이 하나님께서 받으실 것이라고 잘못된 판단을 하는 것이지요. 악을 돌이키지 못하고 계속적으로 행하는 종교인이 됩니다. 형식적인 믿음의 사람이 됩니다. 사람 보기에는 성경을 손에 들고 교회 다니기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그 마음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거나 사랑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입으로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데 그 마음에서는 ‘그를 잊으므로’라고 하나님은 단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잊었습니다. ‘잊었다’는 ‘아자브’(bz"[)의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이것은 ‘버리다, 놓아주다, 해방시키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 없어도 살 수 있다고 착각합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재산 명예가 나의 산성이 되고 방패가 되어 더 이상 하나님의 도움 없이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내게 둘러쳐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나는 정신적으로도 만족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놓아 버리는 거예요. 하나님을 자유롭게 하고 해방시켜 준다고 생각합니다. 얼마나 교만한 착상입니까? 사람이 하나님을 해방시키다니요? 하나님이 누구에게 구속되거나 잡힌 적이 있나요? 그런데 그를 잊어버린 사람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더 이상 그 분을 붙들고 있을 이유가 없어요. 하나님께 무엇을 달라고 무엇을 이루게 해달라고 떼쓰지 않고 나는 내 길을 가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이것이 바로 ‘그를 잊은’증거입니다. 여러분 그래요? 하나님 없이 한 순간인들 살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시편 121:4에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라고 하셨습니다. 한 순간도 그 분 없이 살 수 없는 인생이기에 그러합니다. 시편 139:13에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고 고백하였습니다. 나를 지으신 하나님으로부터 쉴 사이 없이 지켜 보호함을 받아야 되는 것이 인간입니다. 우리 몸은 심장에서 펌프 되어 나온 혈액이 동맥, 모세혈관, 정맥을 거쳐 다시 심장으로 돌아오면서 몸속의 모든 장기가 활성화 할 수 있는 영양분을 공급합니다. 사람의 모든 혈관을 이으면 약 120,000Km 되는데 이는 지구둘레의 3바퀴 정도 됩니다. 이를 한 바퀴 도는데 걸리는 시간은 단 46초밖에 지나지 않습니다.
내 영혼 속에 하나님을 밀쳐내는 순간 그 영혼은 썩게 됩니다. 썩은 것은 썩은 것을 받아들입니다. 요한복음 3: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영의 머물 수 없이 타락한 영혼을 성경은 죽었다는 표현을 합니다. 썩은 고기에는 파리 떼가 달라붙는 것처럼 죽은 영혼 육에 속한 사람에게는 히브리어로 ‘파리 떼의 대왕’이라 일컫는 바알세불 곧 사탄이 합법적으로 육에 속한 사람에게 달라붙어 갖은 악행을 저지르게 됩니다. 하나님을 떠나고 잊어버린 사람에게 나타나는 현상에 대하여 몇 가지로 나누어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여호와께서 저주와 혼란과 책망을 내리사 망하며 속히 파멸하게 하실 것이며”라 하였습니다.
‘네 손으 하는 모든 일’에서 손 ‘야드’(dy)인데 이것의 기본적인 의미는 ‘사람의 의지의 기능들을 수행하기 위해 사용된 팔의 끝부분'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잊은 사람의 특징은 그가 의도하는 것이 악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자신은 양심에 따라 옳은 것이라도 하나님은 그것을 악으로 보십니다. 잠언서 16:25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의도하고 이루고자 하는 것은 좌절과 혼란이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혼란은 ‘메후마’(hm;Whm) 이는 걷잡을 수 없이 불안하고 당황스러운 심리적인 상태를 말합니다. 평안이 그 안에 없어요. 무엇인가 그를 끌어가는 어둠 같은 것을 느끼고 죄책감도 같게 될 것을 말씀합니다. ‘책망을 내리사’라고 하였는데 책망은 ‘미그에레트’(tr,[,g]m)입니다. 무의미에서 오는 실패에 대한 좌절감을 말합니다.
미국의 제너럴일렉트릭(GE)회사는 발명왕 에디슨에 의하여 1878년에 세워져 미국 굴지의 다국적 복합기업이며 세계최대의 종합전기회사입니다. 이 회사는 제프리 이멜트(Jeffrey Immelt)가 회장직을 맡고 있고 그가 취임한 해에 무려 74억 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8조2,000억원에 이르는 액수인 수익을 올렸습니다. 그의 연봉은 282억 6,000만원입니다. 이 사람이 한국을 방문하여 국내의 쟁쟁한 경제인을 모아 놓고 연설한 내용은 ‘기업이 경쟁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첫째도 성장이요, 둘째도 성장이다’라고 강한 어조로 주장하였습니다. 만족할 줄 모릅니다. 뛰고 뛰어 끝을 알 수 없는 성장만이 있어야 한다는 이론입니다. 왜 그런 발상이 나올까요? 가만히 있으면 불안합니다. 가져도 이뤄도 불안합니다. 하나님이 없는 영혼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착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저주를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야고보서 1:13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라는 내용에서 시험은 ‘페라이조’(peiravzw)입니다. 이것은 ‘어떤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바를 살펴보기 위하여 흔들어 본다’라는 의미입니다. 제가 결혼해서 저의 아내와 아이들에게 자주 물어 본 말은 “나를 사랑해? 나를 좋아해?”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제 아내는 저에게 그런 말을 하지 않습니다. 여태껏 살아오면서 “당신 나 사랑해?”라는 표현을 안하는 겁니다. 제가 하도 많이 표현을 해서 그랬을까요? 그런 것도 있지만 이제와 생각해보면 내가 자기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믿고 있기에 물어볼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하나님도 내게 기대하는 것이 있습니다. 나만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도 나를 믿어주십니다. 여기서 ‘시험하지 않는다’는 말은 하나님이 나를 향한 믿음을 단 한시도 잊어버리신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과 여건 속에서도 나를 부르시고 택하신 하나님의 믿음은 변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치셨다기 보다는 내 속에 있는 속성들이 저주를 끌어들였다는 표현이 맞습니다.
더 시크릿(The Secret)이란 책에서 끌어당김의 법칙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마음에 무엇을 품고 있는가에 따라 우주의 에너지가 그에게 임한다는 내용입니다. 마음에 부요가 있으면 부요함이 그에게 이루고 가난이 있으면 가난이 나타난다는 이론입니다.
마태복음15장에서 흉악한 귀신들린 딸을 고쳐달라고 예수님께 나와 부르짖습니다. 예수님이 냉담한 반응에도 뒤로 물러나지 않고 구하는 그 여인을 향하여 예수님은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믿음은 ‘피스티스’(pivsti")입니다. 이 믿음이라는 것은 ‘경험과 분명한 지식을 통하여 얻어진 확신’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이런 확신이 있기에 흔들림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인격과 그 분의 능력을 분명하게 보이듯이 믿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밀쳐낸 사람들은 이런 확신이 없기에 물에 이리저리 떠다니는 부평초(浮萍草)같이 정함이 없습니다. 그래서 늘 불안하고 답답하고 원망과 불평이 나옵니다. 정함이 없는데 무엇을 이루겠으며 성공할 수 있겠습니까?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하더라도 이것은 모래위에 지은 집 같아 언제 쓸려나갈지 모르는 것들입니다. ‘망하며 속히 파멸하게 하실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망하다는 ’샤마드‘(dm'v)인데 피할 수도 방비할 수도 없을 정도로 급작스럽게 다가오는 재앙을 말합니다. 일본과 같은 첨단 문명과 문화를 자랑하는 나라에도 2011년 3월에 후쿠시마에 밀려든 쓰나미로 인하여 사망자와 실종자를 합쳐 1만명의 피해자가 생겼습니다. 이때가 하나님이 나를 찾는 시기입니다. 전능자 하나님을 찾아 그 분의 긍휼을 힘입고 그 분께 전적으로 나가야 됩니다. 호세아 6:1~2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했습니다. 이런 징조가 임하였는데도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않으면 그 다음에 오는 것이 파멸입니다. 이것은 ’아바드‘(db'a)란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이것은 ‘사라지다, 없어지다, 또는 죽다.’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간섭도 없고 하나님의 긍휼도 자비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사람은 내가 울 때 함께 울어 줄 사람이 없고 즐거워 할 때 함께 기쁨을 나누는 사람이 없는 사람입니다. 설령 세상에서 이런 사람이 없을지라도 하나님이 나의 기쁨이 되시고 나의 눈물이 되는 사람은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지옥이 어떤 곳이냐면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전혀 미치지 않는 곳입니다. 나는 고통스러워 불 가운데서 소금 치듯 하는데 아무도 나의 고통을 돌아봐주지 않습니다.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는데 그것을 닦아 줄 어떤 이가 없습니다. 이것이 지옥의 형벌입니다.
두 번째는 본문 21~22 “여호와께서 네 몸에 염병이 들게 하사 네가 들어가 차지할 땅에서 마침내 너를 멸하실 것이며 여호와께서 폐병과 열병과 염증과 학질과 한재와 풍재와 썩는 재앙으로 너를 치시리니 이 재앙들이 너를 따라서 너를 진멸하게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영혼이 병들게 되었을 때 병든 영혼을 가지고 하나님께 돌이켜서 치료받지 않으면 그 다음에 이뤄지는 것이 육체에 질병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5:26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우리가 건강하게 사는 비결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 분의 뜻 안에 사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내 육체를 지키시되 세상 끝날 까지 지키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23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런데 염병이 걸렸습니다. 염병은 ‘데베르’(rb,D)라고 하였는데 이는 ‘역병, 페스트’라는 전염병으로 14세기 중기 전 유럽에 이 병이 창궐하여 유럽인구의 5/4가 죽었을 정도로 치명적이 병입니다. 그런데 이 병이 ‘네가 들어가 차지할 땅에서’ 걸리게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애굽에서의 430년 그리고 광야 40년 그들의 간절한 소원은 자기들의 영토를 갖는 것이었습니다. 집 없는 사람이 집을 가지기를 소원하는 것처럼 그들은 영원한 기업인 땅을 소유하기를 바라고 바랐는데 그 소원이 이뤄지는 땅에서 염병이 걸려 죽게 되었다는 표현은 우리로 오싹하게 만드는 말씀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약속의 땅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누려야 되는데 나로 인하여 그곳에 사는 사람까지도 전염병에 걸려 죽는 저주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는 이 땅에서 책임 있는 존재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아담 한 사람이 불순종하므로 죄가 이 땅에 들어와 사람의 영혼을 죽게 만들고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이 십자가에서 당신을 내주어 복종하셨더니 의로움이 세상에 들어와 생명을 얻게 된 것처럼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대한 책임이 있는 자입니다. 내가 깨어 밝은 빛 가운데 있으면 세상은 화평하고 밝게 빛나지만 내 안에 있는 등불이 꺼지면 세상은 어두워지고 소망이 사라진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오늘 말씀 가운데 하나님의 신실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입으로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지키시는 분입니다. 그 분은 신실하셔서 그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셨으며 그들에게 저주가 나타나는 것처럼 보이나 거기에는 구원하고 하시는 하나님의 애틋한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5:5 “이런 자를 사탄에게 내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 육체로는 질병이 들어 고통스러우나 하나님께 나와 철저하게 회개하고 돌이켜 하나님의 백성으로 보존시켜 주시기로 하시는 사랑의 손길입니다.
그래도 하나님께 돌이키지 않으면 하나님의 징벌은 더욱 적극적으로 나타납니다. “여호와께서 폐병과 열병과 염증과 학질과 한재와 풍재와 썩는 재앙으로 너를 치시리니 이 재앙들이 너를 따라서 너를 진멸하게 할 것이라”하셨습니다. 이 병들은 점차적으로 그 증상이 심해지는 것을 나열하고 있습니다. 폐병은 몸의 기력이 잃게 되어 점점 야위어 가고 열병은 심한 열로 염증이 몸으로 돋아나게 되고 학질은 열병과 마찬가지로 심한 고열로 시작되다가 한재를 입게 되는데 이 병은 ‘아주 극심한 가뭄’을 의미하므로 내 몸에 수분이 빠져 나가므로 온 몸이 비틀어지고 견딜 수 없는 갈증을 느낍니다만 물을 마실 수도 없고 입의 혀에 축일 수도 없는 질병이며 풍재는 온 몸의 살과 뼈가 바싹 말라 결국은 몸이 썩어 들어가 진멸하게 될 것을 말합니다. 진멸을 의미하는 ‘아바드’(db'a)는 또 다른 표현으로 말하자면 ‘소망이 사라진다, 기억에서 지혜와 기억을 상실한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원어적인 의미로 살펴보면 죽기를 원하여도 죽을 수 없는 병을 말합니다. 욥이 극심한 질병이 들어 죽기를 바라도 죽을 수 없는 것처럼 죽으려고 하여도 죽음이 그를 피해가는 것을 말합니다.
누가복음 23:30에서 마지막 때에 환난의 날이 덮치게 되면 사람들의 이렇게 외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그 때에 사람이 산들을 대하여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하며 작은 산들을 대하여 우리를 덮으라”하였고 요한계시록 9:6에서는 “그 날에는 사람들이 죽기를 구하여도 죽지 못하고 죽고 싶으나 죽음이 그들을 피하리로다” 했습니다. 택하신 자녀들이 이 땅에서 영원한 형벌이 기다리고 있는 지옥을 잠깐 동안 경험하게 하서서 죄를 회개하고 주께로 돌아오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열심히 나타납니다. 고린도후서 11:2에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연단의 풀무 속에 집어 넣으셔서 죄를 회개하고 돌이키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입니다.
세 번째는 하늘의 문이 닫히고 하늘에서 내리는 재앙이 임합니다.
신명기 28:23~24“네 머리 위의 하늘은 놋이 되고 네 아래의 땅은 철이 될 것이며 여호와께서 비 대신에 티끌과 모래를 네 땅에 내리시리니 그것들이 하늘에서 네 위에 내려 마침내 너를 멸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애굽의 바로 왕이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르고 마음을 완강하게 하면 할수록 애굽에 내리는 재앙의 수위(水位)가 점차 높아졌던 것처럼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 회개하기를 더디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을 더디 하게 되면 영혼에서 육으로 그리고 환경으로 저주가 임합니다. “네 머리 위의 하늘은 놋이 되고 네 아래의 땅은 철이 될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지난 시간에도 말씀드린바와 같이 머리는 ‘로쉬’(varo)입니다. 성경에 흐르고 있는 문맥으로 살펴 볼 때 육체의 머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도력을 상징하는 통치력을 말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권위가 상실되었습니다. 모든 권세는 하나님이 베푸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13:1~2에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가정에서 아버지의 권위가 떨어지고 학교에서는 교사가 그리고 직장에서는 윗사람이, 정치에서는 지도자의 권위가 형편없이 떨어졌습니다. 50대 이상 여자들을 대상으로 가장 인기 있는 남편을 고르라고 했답니다. 그랬더니 '요리 잘 하는 놈' 도 아니고 '싹싹한 놈' 도 아니고 '집안 일 잘 도와주는 놈' 도 아니고 '가정적인 놈' 도 아니고 '잘 생긴 놈' 도 아니고 '힘 좋은 놈' 도 아니고 '집에 없는 놈' 이었답니다. 물론 유머입니다만 이 속에 뼈아픈 진실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 만큼 남편의 권위가 곧두박질 쳤음을 반증(反證)하는 내용 아니겠습니까? 최근 3년간 교육현장에서 발생한 교권침해 사례가 확인된 것만 1만8334건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일부 교사는 학생에게 매 맞고, 성희롱까지 당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하는데요. 이래서야 학교교육이 제대로 되고 바른 인성을 길러 낼 수 있겠습니까? 대통령에게 이명박 대통령은 쥐명박이라고 부르지 않나 박근혜 대통령에 대하여 함부로 욕설을 퍼붓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권위를 바르게 사용하지 못할 때 화가 옵니다. 먼저는 주의 종들이 하나님께 나와 회개해야 합니다. 요즘은 종의 모습이 아닙니다. 종으로서의 겸손이 사라졌습니다. 얼굴에는 개기름이 끼기 시작했고 옷은 최상급의 옷에 차도 최신형의 차를 타고 다니며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 자기 것으로 삼고 있습니다. 교회가 먼저 하나님께 바짝 긴장하여 돌아가지 않으면 하늘의 놋과 같이 단단한 족쇄로 걸어 잠가 그 권위를 땅에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목회자가 하나님이 주시는 권위가 없으면 그 말씀을 아무리 잘 전하려고 애를 쓴다 할지라도 사람들의 마음은 철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창세기 4:22에서 철의 사용에 대하여 최초로 언급되었는데 “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으니 그는 동철로 각양 날카로운 기계를 만드는 자요”라고 하였습니다. 권위 없는 지도자의 말은 사람에게 깊은 상처를 줄 뿐입니다. “여호와께서 비 대신에 티끌과 모래를 네 땅에 내리시리니 그것들이 하늘에서 네 위에 내려 마침내 너를 멸하리라” 하늘로부터 은혜의 단비가 내려야 되는데 티끌과 모래가 내려서 사람들의 영혼을 더욱 황폐화하게 만듭니다. 도무지 선한 면을 찾아 볼 수 없고 예수 믿는 사람들이 더 인색하고 더 악을 행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믿음의 성도들이 은혜를 받고 변화를 받아야 땅은 하늘로부터 적절한 비를 내리고 모든 조건을 갖추어 평화를 누리도록 합니다. 회개치 않으면 “마침내 너를 멸하리라” 마침내는 ‘아드’(d[)입니다. 아드는 전치사와 접속사의 역할을 하며 범위를 나타낼 때 사용합니다. 충분한 시간과 환경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하심으로 참아주셨습니다. 그럼에도 완악한 마음을 변하지 않고 하나님을 거역하면 이제는 ‘멸하리라’선언하십니다. 멸하다는 ‘샤마드’(dm'v)인데 무서운 전쟁으로 대적들이 몰려와 그가 쌓아 놓은 모든 것을 싹쓸이 하듯 파괴하는 대량학살과 같은 비교적 갑작스런 큰 재해를 의미합니다. 이뤄 놓으면 뭐하고 노력하여 쌓아 놓으면 뭐합니까? 다 물거품처럼 사라질 것들뿐입니다. 이처럼 비천하기 짝이 없는 것은 이 세상에 어디에도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선언하신 축복을 이루는 비결은 전적인 하나님의 신뢰입니다. 나의 의도 온전함도 하나님의 손길에 의하여 이뤄지는 것이기에 우리는 날마다 그 분의 손길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기뻐하는 것이 절대로 필요합니다. 천국은 어린아이들같이 받들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처음 우리가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고 믿을 때에 어린아이 같은 마음을 주셨기에 구원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어린아이는 숨김이 없습니다. 어린아이는 절대 의존적입니다. 예수를 잘 믿고 믿음의 성숙이 되면 어린아이의 기질이 되살아납니다. 다른 사람보기에는 유치하게 보일지라도 잘 웃고 있는 그대로를 표현하고 때로는 울기도 잘합니다. 어린아이처럼 하나님을 의지합시다. 그리고 그 분 안에서 내려놓고 겸손 합시다. 조그마한 것도 감사하고 즐거워합시다. 이것이 예수님을 잘 믿어 축복을 이루는 비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