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도에서 만난 작가와 언니 / 김 명 숙
대숲에 서서 / 신석정
대숲으로 간다
대숲으로 간다
한사코 성근 대숲으로 간다
자욱한 밤안개에 벌레소리 젖어 흐르고
벌레소리에 푸른 달빛이 배어 흐르고
대숲은 좋더라
성글어 좋더라
한사코 서러워 대숲은 좋더라
꽃가루 날리듯 흥근히 드는 달빛에
기적 없이 서서 나도 대같이 살거나
★ 담양 죽녹원 ★
죽녹원에서 유토피아를 흠모하는 목가적 시인 신석정님의 “대숲에 서서” 앞에 발길이 멈춰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문인에 대한 예의일까? 내 고향, 변산반도 시인 신석정의 시는 암울한 시대상황 속에서 비참한 현실에 대한 강한 거부로써 전원적, 자연친화적 이상향에 대한 시적 열망으로 그려졌음이 물씬하다.
대숲이 성글고 서럽기 때문에 대나무가 좋아서 온 것은 아니지만 이런 시 한편 만나면 그렇게 살고자 인간화된 자연을 떠올린다. 담양 땅엔 처음이다. 내가 총무로 있는 “대공원글밭”의 여류작가모임에서 2012년 5월 19일과 2일 1박 2일으로 남도여행, 전남과 경남으로 여행을 떠나왔다.
(언니랑) (왕대-설명) (노무현대통령방문기념사진)
각지에서 제 향기를 찾으며 고군분투하는 여류작가들과의 여행은 더할나위 없이 행복하다. 게다가 나는 건강이 좋지 못해 친언니가 동행했다. 처음으로 같이해본 언니와의 여행이 되기도 해서 평생을 두고 탁월한 여행으로 기억될 것 같다. 입구에는 미국 CNN선정, 한국의 아름다운 50곳에 죽녹원이 선정되었다는 플랭카드가 설치되어있다. 우리는 벌써 한 곳을 왔으니 이미 행복하지 않겠는가!
죽녹원은 전남 담양군이 성인산 일대에 2003년 5월 개원한 대나무 정원으로, 약 16만㎡의 울창한 대숲이 펼쳐져 있다. 죽림욕을 즐길 수 있는 총 2.2km의 산책로는 운수대통길·죽마고우길·철학자의 길 등 8가지 주제의 길로 구성된다. 죽녹원 전망대로부터 산책로가 시작되는데, 전망대에서는 담양천을 비롯하여 수령 300년이 넘은 고목들로 조성된 담양 관방제림과 담양의 명물인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 등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생태전시관, 인공폭포, 생태연못, 야외공연장이 있으며 밤에도 산책을 할 수 있도록 대숲에 조명을 설치했다.
식생과 기후가 대나무에 안성맞춤이어서 이곳에는 대나무가 잘 자란다. 그래서 이곳에서 대쪽 같은 선비를 많이 배출했나보다. 또한 슬로우시티로 선정된 곳이기도, 그래서인지 점심으로 먹은 대나무통밥은 어찌 그리도 맛있는지...전국을 답사하며 여행하는 매니아 입에서도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죽녹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구름다리”식당......
★ 광주생태공원 ★
넓이 18만 4,948㎡의 생태공원으로, 광주호의 호숫가에 있다. 2006년 3월에 개장한 후 아이들의 자연생태학습장이자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이용된다. 수생식물원·생태연못·야생화테마원·목재탐방로·전망대·수변관찰대 등이 있으며, 호수 안에는 버드나무군락지와 습지보전지역이 있다. 매자기·애기부들을 비롯한 수많은 수생식물과 다양한 종의 조류·파충류·양서류를 관찰할 수 있다. 입구에는 400년 수령의 왕버들 나무가 있고, 공원 가까이에 식영정·환벽당·소쇄원 등의 문화유적들이 있다.
(광주호 호수생태원)
참으로 많이 가물구나! 장성댐과 호수에 물이 많이 줄어있다. 아직 어린 메타쉐콰이어 나무길도 예쁘게 조성되어있다. 수 년 전 친정 가족들과 이곳 장성으로 여름휴가를 왔던 그 때가 갑자기 그리워진다.
(여류작가들) (작 약) (400년된 왕버들)
★ 보성 녹차밭 ★
지난 겨울, 중국의 항주에서 만난 녹차 밭을 기억한다. 중국이 제아무리 자랑을 한다 해도 내 눈에는 우리 보성 녹차만큼은 못한 것 같다. 여기는 우선 깔끔하다. 마당을 쓸어놓은 듯 말쑥하다. 마침 제38회 보성 다향제, 녹차 대축제 마지막 날이다. 보성땅에는 처음 와본다. 이렇듯 전국을 다니다보면 지역축제와 맞아 떨어질 때 가 있다.
여름의 향기가 느껴지는 녹색 카페트를 깔아 놓은 듯 정갈하고 아름다운 보성 녹차밭의 대표라 할 수 있는 ‘대한다원’은 활성산 자락 해발 350m, 오선봉 주변의 민둥산에 자리하고 있다. 1957년 대한다업 장영섭 회장이 6.25전쟁으로 황폐해진 차 밭을 일대 임야와 함께 인수하여 ‘대한다업주식회사’를 설립하고, 약 300여만 그루의 관상수와 방풍림을 식재하여 현재는 170여만 평의 면적 중 약 50여만 평의 차밭이 조성되어 580여만 그루의 차나무가 자라고 있다. 대한다원 보성 녹차밭은 주민들에 의해 ‘큰 다원’, ’대한다원’으로 불리어 오다가 언제부터 인지 "대한다원"으로 불리어지고 있는 "국내유일의 녹차관광농원"이며, 수십 년 전 차밭 조성과정에서 방풍림으로 식재한 삼나무는 다원의 또 다른 명물로 자리하고 있다.
(녹차축제“보성다향제”) (녹차밭안내판) (그림 같은 녹차밭)
더불어 ‘녹차만들기체험’도 해보았다. 여류작가이기전에 주부인 우리 일행은 신이 났다. 공동 작업을 한 후에 녹차를 가져가는 게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녹차잎을 여러차례 가마솥에 넣어 눌러 익히고, 꺼내어 펼쳤다가 꾹꾹 눌러 둥글게 둥글게 말아 돌리면 수분이 빠지면서 증발한다. 그러기를 1시간 남짓 반복하면 귀한 녹차가 만들어진다.
(녹차만들기 체험장) (녹차밭 이정표)
깔깔거리며 건진 우리들의 귀한시간들!!! 그 속에서 그간 23년의 우정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1990년 서울 성동구 주부백일장 시상식에서 처음으로 만난 인연, 대공원글밭의 입회 자격은 백일장 수상자여야 했다. 당시 조남호 구청장님의 주도하에 한 달에 한번 뷔페에서 대접을 받고 작품을 내어 일년에 한번씩 책 한권을 발간했다. 20여명의 여류작가들이 있었지만 전국각지로 흩어지면서 지금은 5명의 회원으로 대폭 줄었다. 차갑수 작가님, 김지영 작가님, 이세령 작가님, 차애자 작가님, 그리고 나. 멋진 여성들은 특산물인 꼬막 정식으로 저녁을 먹고 벌교에서 여장을 풀었다. 밤새 아쉬운 인생 얘기를 귀담아 들으며 오늘도 무사함의 감사기도를 올린다.
(녹차밭-언니랑) (“봇재식당”-벌교꼬막정식)
★ 통영 미륵산 ★
아침 일찍 통영을 깨우러 간다. 나는 1990년 오늘, 여기 통영으로 신혼여행을 왔었다. 그 때 이 도시의 이름이 충무였다. 성웅 이순신을 기리는 도시, 충무공의 충무!!!
아침 식사로 매생이국을 시원하게 해결하고 미륵산을 향해 간다.
미륵산은 높이 461m. 산봉우리에 옛날 통제영의 봉수대터가 있고, 산 아래 계곡에는 통영시 상수도의 제1수원지가 있다. 고려 태조때 도솔선사가 창건한 도솔암, 조선시대 창건된 관음사와 통제사 윤천빈이 산 일대에 축성한 산성과 함께 창건한 용화사 등이 있다. 정상에 오르면 한려수도일대가 장쾌히 조망된다. 특히, 미륵산 정상에는 <토지> 박경리 작가의 묘소가 보이는 전망 쉼터와 <향수> 정지용 시인의 시비가 있다.
(박경리 묘소 전망 쉼터)
3년전, 박경리 선생을 보러 원주문학관을 다녀오면서 통영에 가면 박경리 선생의 묘를 꼭 보리라 했던 기억 속에 나는 이렇게라도 약속을 지킨 셈이다. 박경리 선생은 1926년 10월 28일 경상남도 통영에서 태어났다. 1945년 진주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50년 황해도 연안여자중학교 교사로 재직, 1955년에 김동리의 추천을 받아 단편 《계산》과 1956년 단편 《흑흑백백》을 《현대문학》에 발표함으로써 문단에 나왔다. 1957년부터 본격적으로 문학활동을 시작한다. 단편 《전도(剪刀)》 《불신시대》 《벽지》 등을 발표하고, 이어 1962년 장편 《김약국의 딸들》을 비롯하여 《시장과 전장》 《파시》 등 사회와 현실에 대한 비판성이 강한 문제작들을 잇달아 발표함으로써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 특히 1969년 6월부터 집필을 시작하여 1994년에 5부로 완성된 대하소설 《토지(土地)》를 발표한다.
대하소설 《토지》는 1969년 6월부터 집필을 시작하여 1994년에 5부로 완성되었다. 한 집안의 몰락과 재기과정이 경상남도 하동군 평사리와 간도의 용정, 그리고 진주와 서울 등 도시를 무대로 펼쳐진다. 만석꾼 최씨 집안의 주인인 최치수가 마을 건달들에게 교살되면서 최씨 집안이 몰락의 길을 걷게 되고, 마침내는 일제의 눈을 피해 용정으로 야간도주하게 되며, 그곳에서 재기, 다시 옛땅과 집을 사들여 귀향한다는 것으로 되어 있다. 한국 근·현대사의 전과정에 걸쳐 여러 계층의 인간들이 등장하는 까닭에 이야기의 중심에 존재하는 최서희라든가 길상·월선·용이 등이 주인공이라기보다는 그들이 어울려 사는 역사와 사회가 주인공이라고 보아야 된다. 최씨 집안의 몰락과 재기도 한민족의 몰락과 재건을 뜻할 수 있다. 각계각층의 인물들이 저마다 개성 있게 등장하면서 시대사의 의미를 부여하고 의미 있는 존재로 인식되는 점도 특색이다.
통영의 작가 청마 유치환은 한국의 시인이자 교육자. 교육과 시작을 병행, 중·고교 교장으로 재직하면서 통산 14권에 이르는 시집과 수상록을 간행하였다. 대표작으로는 허무와 낭만의 절규를 노래한 《깃발》을 비롯하여 《수(首)》 《절도(絶島)》등이 있다. 호 청마(靑馬), 교육과 시작(詩作)을 병행하면서 도도하고 웅혼하며 격조 높은 시심(詩心)을 거침없이 읊었다. 자칫 생경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어떤 기교보다도 더 절실한 감동을 준다. 제1회 시인상을 비롯하여 서울시문화상·예술원공로상·부산시문화상 등을 받았다. 부산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하였다. 사후에 그의 오랜 연고지인 경주에 시비가 세워졌다. 오랜 세월 동안 시조시인 이영도에게 보낸 사랑의 편지 중 200통을 추려 모은 서간집 《사랑했으므로 행복하였네라》가 있다.
행복 / 유치환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 더 의지 삼고 피어 흥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망울 연련한 진홍빛 양귀비꽃 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통영 출신이 아닌 정지용 시인은 한국전쟁 발발 전 통영을 여행하고 ‘통영1~통영6’의 기행문 여섯편을 남겼다. 기행문을 통해 경남 통영 풍광을 예찬한 시인 정지용(1902-?) 선생의 문학비가 통영 앞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2010년 미륵산에 세워졌다. 오석(烏石)을 다듬어 만든 문학비에는 정 시인이 미륵산 정상에서 바라본 통영과 바다풍경을 글로 옮긴 ‘통영5’ 기행문과 그의 약력이 새겨졌다. 정 시인은 당시 부산에서 여객선을 타고 통영을 찾았고, 통영이 고향인 청마 유치환 선생의 안내를 받아 충렬사와 세병관, 미륵산 정상 등 곳곳을 둘러보며 깊은 인상을 받아 기행문을 썼다고 전해진다. 통영의 풍광을 보고 정지용 시인은 “통영과 한산도 일대의 풍경 자연미를 나는 문필로 묘사할 능력이 없다”라고 극찬하고 있다. 정지용시인이 그랬듯 나 역시도 나의 문학적 능력으로는 더 이상 표현할 방법이 없구나!!
(정지용시비-통영5)
향수/ 정지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섶 이슬에 함초롬 휘적시든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물결같은
검은 귀밑거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성근별
알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옯기고,
서리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 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 외도 - 다도해 위에 떠 있는 초록빛 천국
섬 전체가 이국적인 정원으로 꾸며진 해상공원이다. 거제시에서 약 4㎞ 떨어진 곳에 위치한 외도는 겉으로 보기에는 하나의 섬 같지만 실제로는 동도와 서도, 두 개로 이루어진 섬이며 이 중 33㎢의 서도가 공원으로 꾸며져 있으며 동도는 자연 상태 그대로 동백숲이 섬 전체를 덮고 있다. 사계절 풍부한 수량을 가진 후박나무 약수터가 있는 우물을 중심으로 일고여덟 가구가 모여 살았던 외도는 척박한 바위투성이의 섬으로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곳이었다. 1960년대 말 이 섬을 사들인 개인이 30년에 걸쳐 가꾸어 세계적인 관광지가 된 것이다.
(성게를 다듬는 아낙들) (거제도-외도간) (한려해상국립공원안내도)
거제도에서 유람선을 타면 해금강의 절경을 감상한 후 외도로 들어가게 되는데 외도선착장에서 안내 표지판을 따라 언덕을 올라가면 한겨울에도 초록의 잎사귀를 자랑하는 야자수가 푸른 바다와 선명한 대조를 이루는 식물의 천국을 만나게 된다. 선샤인, 야자수, 선인장 등 아열대 식물이 가득하여 이국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1.3㎞의 산책로를 따라가면 주제별로 꾸며진 스파리티움, 마호니아 등의 희귀식물을 볼 수 있다. 편백나무 숲으로 만든 천국의 계단과 다양한 크기와 형상의 비너스 조각이 인상적인 비너스공원은 명물로 꼽힌다.
(외도-여류작가들)
봄부터 늦가을까지 약 200여 종의 꽃들이 피고 겨울인 11월에서부터 다음해 3, 4월까지도 동백꽃을 감상할 수 있다. 섬에 자생하는 동백, 대나무, 후박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동박새, 물총새가 그 안에 둥지를 튼다. 전망대에 서면 푸른 바다 위에 그림처럼 펼쳐진 해금강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 여유 있게 차 한 잔을 마실 수 있는 카페도 운영하고 있다. 사계절 초록을 감상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한겨울 남도 여행지로 특히 각광받고 있는 곳이다.
영화 속 유럽의 백작이 나올법한 정원에서, 언니와 기념사진 찍기에 시간을 많이 투자했다. 언니는 나를 예쁘게 찍어주려고 무척 애를 쓴다. 늘 언니는 그래왔다. 다행인 것은 그것을 내가 모두 기억하고 또 그때마다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언니와 처음으로 분명, 나는 여행을 온 것이다.
나는 벌써 35년 전으로 기억이 멈춘다.
언니는 추석날 힘들게 표를 구해 비둘기호 기차를 타고 고향에 내려와서는 동생과 나를 데리고 달맞이 구경가자 했었다. 미리, 편지로 동생과 나를 설레게 했었다. 하루하루 손꼽아 언니를 기다린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남의집살이를 떠난 아버지를 단 하루, 단 한번 만나는 날이기 때문이다. 우리 동네를 지나 산을 넘어가면 거기에 아버지가 계셨다. 난 지금도 그 동네 이름을 모른다. 주인은 행랑채에 살고 있는 ‘일하는 사람’의 자식이 왔다며 쌀밥을 고봉으로 담아주시면 허겁지겁 쌀밥 먹기에 바쁜 우리를 흐뭇해하시며 바라보시던 아버지, 그 아버지는 지금 안 계시는데..... 달맞이 하던 그 언덕, 양지바른 곳에 계시는데....
기차타고 정읍역에 내려서 다시 버스를 타고 흥덕면소재지를 지나 선물꾸러미를 무겁게 들고 오는 언니를 동네입구까지 마중을 나가 그렇게 기다렸었다. 저멀리 힐을 신고 날씬한, 서울 물 먹어서 살결이 뽀얀 언니가 우린 눈에 보이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명절을 제대로 쇠고 있구나를 실감했다. 늘 우리집의 자랑이요. 힘이었던 언니가 이제는 내가 기억하던 중년의 엄마 나이보다 더 들었다.
그간에 난 언니와 여행하면서 같이 찍은 사진이 단 한 장도 없었다. 회원들의 배려로 함께 할 수 있어서 고맙고 다행스러웠다. 언니는 늘 부모님 같은 존재다. 나와 오빠와 동생은 유년기․청소년기동안 언니가 서울에서 벌어서 부쳐준 준 돈으로 학교를 마쳤다. 그리고 서울에 있는 예쁜 언니가 늘 자랑스러웠다. 이런 저런 옛 생각을 하면서 정해진 시간에 모두 보고 나오려니 빠듯했지만 어린시절 언니가 명절을 보내고 다시 서울로 가던 날, 뒤에서 언니 몰래 숨죽여 울었던 마음으로 아름다운 섬을 놓고 나와야만 한다.
(2012.5.19-5.20 여행)
그 언덕, 달맞이 (시)/ 김명숙
서울에서
언니는 추석 전에 편지를 보내왔다.
몇 월 몇 일 동구 밖에서 기다리라고
그리고 달맞이 가자며
일 년 동안 뼈골 무너지게 일한 새경으로
나락 한 구루마
싣고 오던 날, 아버지는 태평양 같은 등으로 날 업어주셨다.
그리고 바삐 가셨다. 그 집으로
주인집으로
아버지 가신 그 길 따라 달맞이!
너비가 좁은 툇마루에서
맘씨 고운 주인은 고봉밥 차려놓고 기다리게 해주셨다
새끼 주라며 차려놓은
추석빔 같은 쌀밥을
쌀강아지처럼 비우고 나면
아버지는 흐뭇하게 이마 주름을 만지며
다시 또 1년 후 달맞이를 기다리셨다.
지금
달맞이 가던 언니도 중년
새경 받아 자식 기르던 아버지는 그 언덕, 달맞이 언덕
예쁜 봉분 속에서
노랗게 환한 달맞이꽃만 지키신다.
|
첫댓글 사진을 올리는데만 해도 3~4일이 소요됩니다. 사진 올리다가 다른일 하고, 다른 일 하다가 사진 올리고를 반복....
그래서 가끔은 사진이 깨져 있었을 겁니다.
양해해주시기를.....
양해 하다마다....그 점 잘 이해하지요.
감사합니다.
마음에 맞는 여류작가님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정겨운 친언니와의 행복한 여행....
전라도와 경상도를 완전히 섭렵하셨군. 경하드립니다.
경하씩이나요......
친언니와는 처음으로 여행을 했더랬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