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 무정 20

[좋은벗약초나라(원주)]

20 무적대군주(無敵大軍主)

이백십육 인은 뇌옥린과 영적으로 맺어져 있었다.
이들은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뇌옥린에게서 십(十) 리(里) 떨어진 곳으로는 가지 않는다.
수화불침(水火不侵), 만독불침(萬毒不侵)의 몸을 지닌 자들.

 이들에게 두려움이란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다.
이들이야말로 백도 최후의 저력이었다.
쓰으으… 쓰으으으…!
안개가 휘말려 올라가기 시작한다.
노을(霞)이 짙붉은 하늘 아래,

 백일신화의 첫날은 침묵의 행진으로 시작되고 있었다.

천소기는 비지땀이 뒤덮여 있었다.
그는 진세의 축(軸)이 되는 곳을 지키고 있었다.
그 자리는 묘묘가 이끄는 마도고수들의 외부로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출구이기도 했다.
"우라질! 어이해… 오지 않느냐?"
츠으으읏－!
천소기는 거의 감각적으로 검을 쳐냈다.
흰빛이 뿌려질 때마다, 피보라가 뿌려진다

. 꾸역꾸역 몰려들던 자들은 천소기의 검이 떠오를 때마다 수직으로 갈라져 버렸다.
시(屍)… 산(山)… 혈(血)… 해(海)!
천소기의 앞에는 수백 구의 시신이 널려 있었다.
검이 무디어질 때까지, 내력이 거의 탈진할 때까지 천소기는 검을 휘둘러 댔다.

 그는 단신으로 진세의 축이 되어 있었고,

 여타한 하오문 사람들은 정해진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그가 쓰러진다면 진세는 한순간 무너지고 말리라.

팔천 풍운검사(風雲劍士)들.
이들은 안개의 벽을 향해 몰려가다가는  배후에서 들이닥친 일만 마도고수들에게 

 새까맣게 뒤덮인 채 혼전(混戰)에 휘말리고 있었다.
벌써 이천 명이 죽었다. 마도인들은 오백 정도가 죽었을 뿐이고,

 그들은 풍운십천회의  마지막 한 사람마저 죽이기 위해 필살대진을 펼친 채 다가서고 있었다.
"카아아… 하나도 남기지 마라!"
"크크… 놈들은 독에 중독이 되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 것이다.

 어리석은 놈들! 우리가  대마혈성의 어르신네들이라는 것을 모르고,

우리들을 동맹자로 여기었으니… 크크크…!"
마풍을 일으키며 다가서는 자들.
이들은 대혈마성에서 정예급에 속하는 마영위검대(魔影衛劍隊)의 살수들이었다.
일 초, 일 식 모두 살인검이고… 소매를 휘저을 때마다 암기가 빗발치듯 날아오른다.
"크윽!"
"으으으… 하늘이 땅이고, 땅이 하늘이란 말인가?"
백도인들은 어처구니없이 쓰러져 나갔다.
군데군데 구덩이가 파여 있고,

 피 내음보다도 짙은 초연이 번지는 이유는 화탄이 폭발한 탓이었다.
풍운십천회는 약자가 아니다. 이들은 백도에서 소림사 다음으로 강하다.
이들이 이토록 허무하게 무너지는 까닭은,

지난 일 년  사이 풍운동맹의 위선자들에게 속아

알게 모르게 만성 독약을 섭취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들은 본연 내공의 반 정도밖에 발휘할 수 없다.

또한  내공을 쓸수록 약효가 발휘되는 까닭에, 갈수록 쇠약해지고 있는 것이다.
구대화(九大花)는 혈로(血路)를 뚫기 위해 선봉이 되었으나,

 십 대 일로 포위가 되어서 난도질당해 죽었고…

 수많은 고수들이 비참한 시신이 되어 쓰러졌다.
그리고 육천에 가까운 무사들은 탈진상태가 되어 사선을 향해 떠밀려가고 있었다.
묘묘라는 계집.
마각을 드러내자 속이 시원해진 듯 술에  묘약(妙藥)을 타서 마시어,

 미동자의 안마를  받고 있다.
"한 시진 안에 결판이 나리라! 호호…!"
묘묘는 안도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취기가 오르는 탓일까?
그녀의 양 볼은 발갛게 달구어지고 있었다.
"풍운십천회는 이제… 제명된다!

 나… 묘묘는 대혈마성의 일등공신  서열에 제일 먼저 끼이게 되리라!"
묘묘는 잔을 쳐든다.
향긋한 액체가 잔에 가득 고여 있다

. 마시면 성욕이 일어나고, 기분이 좋아지는 미약이 담긴 술이다.
"피바람 가운데 일배주를 드는 것은 운치가 있는 일이지."
묘묘가 중얼거릴 때였다.
돌연 천지 개벽하는 폭음과 함께

 마고성 쪽에서 단말마의 비명 소리가 요란히 시작되었다.
"크아아악…!"
"웨에에엑…!"
"진짜… 악마들이다! 으으윽…!"
혈우성풍이 돌연 강하게 부는 가운데, 일대가 오히려 조용해졌다.
보라! 안개의 바다가 스러져 가는 가운데 이백여 인이 둥둥 떠서 날아 나오고 있지 않는가?
맨 앞에는 두 가지 병기를 지닌 미청년이 있는데,

그는 검미(劍眉)를 불끈 찌푸리고 있었다.
지금 돌연한 폭풍이 시작된 이유는, 

 그가 살심을 품는 동시에 그의  뒤쪽에 있던 이백십육 인이 일제히 떠오르며

 장권지(掌拳指)를 발출해 냈기 때문이었다.
소리보다 빨리 날아오르는 사람들,

  그들은 백도계에서 오랫동안 실전이  된 전대의 수법을 능숙하게 발휘해

찰나적으로 이백 명의 마도인을 쓰러뜨렸다.
미타분향지(彌陀焚香指)가 흐르며

 마도인의 가슴에 동전만한 구멍이 뚫리며 타는 연기가 피어 오르고,

 벽력제일권(霹靂第一拳)이 휘둘러지며 열  명의 마도고수가 묵사발이 되어  버린다.
콰르르－ 쾅－!
우레 소리가 날 때마다 수십 명이 널브러졌다.
썩은 집단처럼 쓰러지는 자들은 모두 마도인들이었다.
무적대성에서 나타난 이백십육 무적천군(無敵天軍),

이들은 본능적으로 마성을 알아 내는 후각을 지니고 있었다.
죽은 눈을 가진 사람들, 거의  호흡 소리도 내지 않는 불사의  의협(義俠)들.

 이들에게 남은 것은 탕마멸사의 불사혼 하나뿐일 것이다.
무적천군은 뇌옥린의 지혜심결에 따라 질풍노도 같은 기세로 사방으로 퍼져 나아가며 

 혈로를 내기 시작했다.
뇌옥린도 막지 못할 기세로 신형을 폭사시키는 사람들,

이들은  하나하나 현 구파일방의 장교지존(掌敎至尊)을 능가하는 무공을 지니고 있었다.
팔이 쭈욱쭉 길어지는 통비신공(通臂神功)을 자유자재로 쓰며,

 이십 장 안의 마도인을 격멸하는 사람.

 그는 사자천불의 제자 가운데 가장 강하다는 미천불(彌天佛)이다.
콰앙－!
매우 간단한 백보신권(百步神拳)으로 가공할 파괴력을 보이는  사람은 법천불(法天佛),

 그리고 녹슨 검으로 혈화(血花)를 자욱이 뿌리어 내는 노도사는 황학도장(黃鶴道長).
가공할 검도절기라는 어검비기(御劍秘技)를 아주  간단히 시전해 내어

 가장  많은 마도인을 참살하는 사람은 풍뢰도장(風雷道長).

 그는 무당파 사상 오 위 안에 끼이는 절정의 무인이었다.
무적천군에 가담하기 전에도 피를 흘리기를 주저하지  않던 사람들.

 이들의 일 수, 일  검은 너무도 가공했다.
쩌어어억－!
정수리에서 사타구니 사이까지 반으로 갈라져 죽는 자,
허리가 잘리어 창자를 쏟아 내며 죽는 자,
비명 소리도 지를 틈이 없이 몸이 부서져 버리는 자,
일지선공(一指禪功)에 심장이 으스러지며 쓰러지는 자…
"크아아악…!"
"케에에엑…!"
마고성 일대는 지난 여섯 시진의 혈겁을 백 배 능가하는 혈풍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풍운십천회 사람들은 넋을 잃고 손을 내리고 말았다.
"저… 저분들은…?"
"모두 백도인들이다. 한데 당세에 저런 고수들이 계시다니…?"
"아아, 설마 무적대군주가 출현하시었단 말인가?

 백도의 위대한  맹주(盟主)이신 무적대군주가 나타나시었단 말인가?"

－ 일진(一陣), 이진(二陣), 삼진(三陣)이 잇따라 격파했습니다!
－ 악마들입니다. 그들은…
－ 도망가야 합니다!

묘묘는 손을 바들바들 떨며 급보를 듣고 있었다.
한순간 수중의 옥배(玉杯)가 바스러졌고,

 도톰하고 선정적인 입술이 벌어지며 욕설이 튀어나왔다.
"지다니? 말도 아니 된다.

오백만(五百萬) 황군(皇軍)이 다  와도 꺾이지 않을 마영위검대가 어이해…

극소수 무리에 의해 꺾이느냐?"
묘묘는 치를 떨며 몸을 일으켰다.
'지다니… 그것은 있을 수 없다.

 이 싸움에서 진다면, 나는 혈마성의  율법에 따라 능지처참된다.'
묘묘의 살색은 새파랗게 질리고 말았다.
보라! 한 무더기 회색 바람이 다가서고 있지 않는가?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도륙내며  다가서는 사람들.

그들은 이만여  마도인들을 가차없이 도륙내며 묘묘가 있는 곳을 향해 다가서고 있었다.
"저… 저들은 꿈이다!"
묘묘는 모든 것을 환상이라 자위하며 눈을 비볐다.
그러나 다가서는 사람들의 영상은 절대로 지워지지 않았다.
노을보다는 정녕 붉은 피보라를 일으키며 나타나는 사람들은

 묘묘가 있는 곳을 향해 일직선을 그으며 다가서고 있었다.
"왜… 왜 하필이면 내 쪽으로…!"
묘묘는 겁을 집어먹고 우측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측근 호위들을 대동하고 일 마장 이동했다.
하나, 무적천군은 집요하게 그녀를 쫓았다.
그들은 벌써 칠천 명을 쓰러뜨렸다.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전설적인 수법들이고,

 그들에게는 아무리 써도 마르지 않을 진기가 있었다.
우르르르릉－ 쾅－!
"웨에엑…!"
"크으… 저들은 바로… 백도 최후의 전설이라는 무적대군주의 수하들이다!"
"전설은… 꿈이 아니었다. 그것은 현실이었다."
위로 날아오르는 팔다리들, 우박처럼 떠오르는 골편(骨片)과 혈육,

 일대는 죽음의 바다로 변화하고 있었다.
차를 한 모금 마실 때마다 백여 명씩이 쓰러졌다.
뒤쪽에는 기이한 기문진이 있고, 앞에는 무적천군이 있다.
분명 다수인 쪽은 대혈마성 쪽인데, 여기서는 다수인 것이 오히려 불리했다.
저희들끼리 떠밀고 도망가다가 밟혀 허리가 부러져 죽고,

 어떠한  자는 자신의 부하가 던진 암기에 머리가 부서져 죽는다.

"왜… 왜 나만 따라오지?"
묘묘는 울상이 되었다.
바로 그 때.
"너를 따라온 것이 아니다. 저분들은… 나를 따라온 것이다!"
그녀의 머리 위쪽에서 맑은 목소리가 들리며 푸른 그림자 하나가 표표하게 날아 내렸다.
옆구리에 여인 하나를 잡아 끼고 있는 미청년.
펄럭거리는 청포(靑袍)에 산발해 흐트러진 검은 머리카락이

 퇴락한  모습 대신 완전한 아름다움의 빛을 더해 주는 신비청년.
그의 눈에서는 신광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누… 누구냐? 너는?"
묘묘는 손을 쳐들며 소리쳤고

, 청년은 차갑고 아름다운 미소를 던지며 저벅저벅 다가섰다.
"할 말이 많다. 네게…!"
그가 삼 보 걸을 때, 묘묘의 손이 흔들렸다.
"쓰러져라!"
잔광비마추(殘光飛魔鎚) 수법으로 일 장이 날아가는데,

청년은 피하지도 않고 더 가가섰다.
콰르르르릉－!
폭음이 일어나며, 묘묘의 오른팔은

 너무나도 강하게 퉁기어지는 반탄력을 이기지 못하고 꺾이어졌고…
"푸우!"
묘묘는 입술에서 피를 뿜어 내며 휘청거렸다.
바로 그 순간, 묘묘의 어깨 위에 있던 흑응(黑鷹)은 날개를 떨치고

 하늘 높이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흑응은 너무나도 빠른 속도로 떠올랐다.
그 새는 애완동물이 아니라 신호조였다.

 그 새는 대혈마성의  지배층 고수들을 찾아 날아갈 것이고,

목에 걸고 있는 철통이 그제서야 벗기어질 것이다.
흑응은 일순 사라졌다.
"누… 누구냐? 너는?"
묘묘는 처음 한 말을 되풀이하며 서서히 무릎을 꿇었다.
"무명소졸이지. 하나, 이제부터는 조금 유명해질 것이다!"
청년은 말하며 이제껏 옆구리에 끼고 있던 장발미인 하나를 가뿐히 내려놓았다.
그녀는 바로 섰고, 묘묘는 그녀를 향해 애절한 눈빛을 던졌다.
"여협(女俠)이시여! 같은 여인으로 저분 신협을 향해…

 소녀를 용서해 달라는 말씀을 해 주신다면, 모든 것을 드리겠습니다!"
묘묘는 겁을 집어먹고 말하는데.
"묘묘랑(妙妙娘)! 나는 여협이 아니랍니다.

 나는 그대가 알다시피  철이 없고 어리석은 계집아이입니다! 그대에게 철저히 속은!"
장발여인은 교구를 틀며 산발했던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빗어 넘겼다.
뽀오얀 피부에 선명한 오관. 조금은 슬퍼 보이는 얼굴이고

, 입맞추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하는 도발적인 아름다움을 갖고 있다.
묘묘는 머리카락이 흐트러지며 나타나는 얼굴을 보고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월… 월방(月芳)! 으으, 네가 어떻게…!"
그녀의 얼굴은 숯덩어리처럼 새카매졌다.
나타난 여인은 그녀가 일 년에 걸쳐 속였었던 일검화(一劍花) 천월방이었다.
그녀가 슬픈 표정을 짓는 이유는, 자기 자신에 대한 회한이 강하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믿었는데… 그래도 믿었는데…!"
천월방의 눈에서는 이슬방울이 떨어져 내린다.
묘묘는 기가 막힌 듯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천월방을 보다가

이번에는 시선을 돌려 뇌옥린을 봤다.
뇌옥린은 팔짱을 낀 채 묘묘를 보고 있었다.
"너는… 누구냐?"
"몇 가지 이름이 있다만, 이 자리에서는 무적대군주이다!"
"무… 무적대군주?"
"후후…!"
뇌옥린은 고개를 끄덕였고,

그 순간 묘묘는 있는 힘을 다해 위로 날아오르며 몸을 팽이처럼 돌렸다.
휘리리리링－!
묘묘는 최후의 여력을 다해 마지막 활로를  찾아 쏘아진 화살보다도 빨리 신형을  폭사시켰다.
뇌옥린은 그녀를 뒤쫓지 않았다.

그는 여유 있는 자세로 묘묘가 사라지는 것을 보다가 천리전음술을 써서 말소리를 냈다.
"천(天) 형(兄), 여우 한 마리가 가는데 잡을 힘이 있소? 지치지 않았소?"
그의 목소리은 아주 멀리까지 퍼져 나갔고.
"우핫핫… 네녀석이 이제야 나왔구나.

우핫핫… 여우가  아니라 용이라도 한 마리라면 때려잡을 수 있다.

한데, 껍질을 벗겨야 하느냐? 꼬리를 잘라야 하느냐?"
저 먼 곳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천소기의 목소리였다.
"껍질을 벗길 필요도, 꼬리를 자를 것도 없소이다.

 내게 필요한 것은 여우 뱃속의 황금일 뿐이오!"
"프핫핫… 잡아 비밀을 캐라는 것이구나?

좋아,  자청해서 너의 하수(下手)가 된 이상  네가 원하는 대로 놀아 보겠다."
천소기는 위로 떠오르고 있었다.
그는 허공에서 검과 몸을 하나로 합했고(身劍合一).
치리리릿－ 치릿－!
일순간 오십 장 방원이 검화(劍花)로 누비어지는 가운데, 묘묘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거의 찰나적으로 그녀의 가슴에는 스물여섯 개의 검흔(劍痕)이 새기어졌다.
그녀는 몸이 쩌릿함을 느끼며 눈을 까뒤집었다.
"뇌… 뇌왕류(雷王流)! 으으, 뇌왕의 후예로군?"
그녀의 앞가슴에는 그녀가 천월방을 복면 쓰고 기습하며 새긴

 가짜 뇌왕류의 검흔보다 예리하고 깊은 검흔이 무수히 새기어졌다.

뇌옥린은 이백십육 무적천군과 더불어 서 있다.
일대에는 뇌옥린을 신으로 여기게 된 풍운십천회 무사들이 모여  오체복지를 하고 있고,

 하오문 사람들은 뇌옥린의 명에 따라 대혈마성 무사들의 시체를

 땅에 깊이 묻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천소기는 뇌옥린 앞에서 머리를 긁적이고 있었다.
"알아 낸 것은… 하나뿐이네!"
"무엇이오?"
"안다 해 봤자, 별것 아닌 듯하네."
"…"
"소림(少林)과 뇌왕천이 동시에 무너질  듯하네.

 특히 소림사는  마마혼(魔魔魂)이라는 자가 이끄는 무사들에게 유리될 듯하네.

 그리고 뇌왕천은… 마검향이란 자가 이끄는 팔만 고수에 의해 뒤덮일 듯하고…"
천소기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는 별일이 아니라는 듯한 표정이었다.

 뇌옥린은 오히려 그 말에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오직 팔만(八萬)이오?"
그의 눈빛이 이상하게도 삼엄했다.
"그렇다네. 묘묘의 품에 있던 밀지에 그리 적혀 있었네!"
"으음, 이상하군요. 팔만이라니?

그들이 미친 자가 아니고서야 팔만으로  뇌왕천을 치겠습니까?"
뇌옥린의 말이 천소기의 얼굴을 일그러지게 했다.
사실 팔만의 세력으로 뇌왕천을 친다는  것은 미친 짓이다.

그런데  대혈마성은 호법들에게 그렇게 소문을 내고 있었다.
"그들은… 휘하 제자들이 잡혀 비밀을 토설할 것마저 우려하고 있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래서 가짜 정보를 흘리고 있는 것인 듯합니다!"
"그… 그럴까?"
"훗훗… 상대가 누구입니까? 상대는 강호제일인 팔황검제입니다. 

그들이 겹겹의 흑막을 치는 것도 당연합니다!"
"으음…!"
"대혈마성은 나타나지 않았어야 했습니다!"
뇌옥린은 야릇한 웃음을 흘렸다.
어딘지 모르게 신비한 구석이 있는 웃음이었다.
"자네가 정면으로 나설 것인가? 뇌왕천의 후계자로?"
천소기가 조심스레 묻자, 뇌옥린은 고개를 저었다.
"후후… 저는 무적대군주로서 백도를 구해야 합니다!"
"제길!"
"모든 것은… 백(百) 일(日) 안에 끝이 날 것입니다!"
"백 일? 단 일백 일? 자네는 여전히 백치(白痴)구먼?"
천소기는 어이없다는 표정이었다.
백 일이란 너무나도 짧은 시일이다.

그 안에 모든 것을 마무리짓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우라질! 묘묘, 그 마녀가  독단을 물고 죽지  않았더라면…

 보다 많은  것을 알아 냈을  텐데…!"
천소기는 거칠게 외친다.
대혈마성의 무사들은 타 방파의 무사들보다 비밀 유지에 지독하다.

그들은 휘하 제자들마저도 믿지 않고 있고,

 모든 것은 철저한 비밀 유지가 되어 바로 옆사람이 무엇을 하는지 누구도 알지 못한다.
묘묘는 잡히며 독단을 깨물고 자살했다.
천소기는 그녀의 암내나는 속옷을 뒤져 서찰 세 통을 찾아  냈고

, 그 가운데에서 비밀을 알아 낸 것이다.
"하여간, 대혈마성과 싸워 백 일 안에 이긴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네!"
천소기가 고개를 저을 때.
"불가능이란… 가능하다는 것보다  약간 어렵고,

 시간이  더 걸리는 일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뇌옥린은 활짝 웃어 보였다.
아주 자신 있는 표정이나, 그의 밝음 이면에 드리워진 암영(暗影)만은 감추어지지 않았다.
"저는 그분을 믿습니다. 그분을…!"
"나도 그러하네. 그분이 질 것이라는 생각은 눈꼽만치도 생각해 본 적이 없네. 

 하지만… 너무도 지독하네. 대혈마성은!"
"일단 천 형이 금사탄 쪽으로 가십시오.

 그 사이, 저는 소림을 구하고 합류하겠습니다.

소림사는 상징적으로 귀중한 장소입니다

. 대혈마성이 그곳을 쓰러뜨린다면, 백도는 일어서지  못합니다!"
"시간도 없고, 인원도 부족하네! 백 일 안에 이기기에는!"
천소기가 안타까워 말하자.
"형도 이제는 완전히 무사가 되었군요?"
"우라질! 속 뒤집는 소리는 그만하게. 그분이 우려가  되어 미칠 지경인데,

 자네는 거만하기만 하니!"

마고성의 폭풍은 서곡에 불과했다.
구만 리 천하는 이미 대혈마성에 반쯤 장악되어 있었다.

  풍운십천회의 패배는 그들에게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죽은 귀래혼 묘묘는 마도 서열 백 위에 불과하다.

 진짜  고수들은 금사탄과 소림을 향해 가고 있다.
"연경의 그들을 부르겠습니다. 그들은 한 달  안에 금사탄에 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사이는… 그분이 알아서 하겠지요."

2

이틀 후.
마고성이 칠야(漆夜)의 어두움에 휘감기고 있을 때였다.
고요하던 대기가 흔들리는 가운데 차디찬 기운이 다가서기 시작했다.
하나, 둘… 넷… 여덟… 열여덟…
꽤 많은 그림자들이 어둠을 뚫고 마고성 일대로 다가섰다.
수없이 많은 봉분들이 북망산(北邙山)을  방불케 하며, 아직도 혈향(血香)과  초연이 일대에
머물러 있었다.
대혈마성의 최초 패배라는 수치의 장소로 다가서는 자들의 수는 정확히 일백구(一百九)였다.
휘리리릭－ 휘리리릭－!
너무나도 경미한 파공성을 일으키며 일대를 뒤지고 다니는 자들,  대체 이들은 무엇을 찾아
다니고 있는 것일까?

반시진 후, 일백팔 인은 하나의 흑영을 중심으로 동심원을 이룩했다.
장도(長刀)를 허리에 비껴 멘 자들, 이들은 아무런 감정도 없는 눈빛을 던지고 있다. 이들에
게 느껴지는 것은 죽음의 칙칙한 내음뿐이다.
심해에서 바늘을 건져 낼 정도로 추적술을 익힌 자들이다.
이들은 반년 전의 마차 자국을 찾아 내고, 인분(人糞) 한  덩어리만 갖고, 그가 어디 사람이
고, 어떠한 성질이며, 어떤 체격인지를 알아 낸다.
인간은 살아 움직이는 동물이고, 그로 인해 필연적으로 흔적을 남기게 된다. 신이 아닌 이상
사람은 그 누구이건 흔적을 남기며, 그 흔적은 사람에 따라 각기 다르다.
죽음의 추적자들, 이들은 하나의 지극히 미세한 흔적을 따라 여기에 왔다.

<나이 : 이십(二十).
성별 : 남자(男子).
이름 : 옥린(玉鱗).>

이들은 수십 가지의 기록을 갖고 있었다.
"…!"
"…!"
죽음의 추적자들은 시립하고 있고, 흑의여인 하나만이 팔짱을 낀  채 일대를 둘러보고 있었
다.
"신기(神氣)가 머물렀던 흔적이 느끼어진다!"
감정이 없는 목소리이다.
아아, 가장 지독한 살인술을 터득하고 중토로 들어선 잔화영!
대혈마성 최후의 살인병기라고 불리고 있는 그녀가 마고성에 오다니?
그녀의 눈빛에는 묘한 의혹이 있었다.
부상국의 추적술과 중원의 자객술을 모조리 익힌 밤의 여인.
그녀는 육감이 지극히 발달된 여인이고, 가혹한 훈련 가운데 악마의 감각을 갖고 있었다.
지금 그녀는 아주 밝고 거대한 힘의 흔적을 느끼고 있었다.
"어디서 모르게 다른 혼(魂)이 머물렀었다!"
감정이 없던 목소리가 야릇하게 흔들린다.
잔화영은 십 년 만에 처음으로 하나의 대상에 대한 사적(私的)인  흥분을 느끼기 시작한 것
이다.
개인적이라는 것은 그녀에게는 없던 단어였다.
그런데 누군가로 인해 그러한 감정이 약간이나마 살아난 것이다.
죽음의 추적을 시작한 잔화영, 그녀의 앞으로 바람이 다가서며  흑의 자락이 가늘게 펄럭거
렸다.
"좋아, 기왕 죽을 자로 선택이 되었다면 강자일수록 좋지!"
잔화영이 서 있던 자리는 바로 뇌옥린이 머물렀던 그 자리였다.
그녀는 작은 초상화 한 장을 갖고 뇌옥린의 종적을 결국 찾아 낸 것이다. 악마의 더듬이 같
은 일백팔살(一百八殺)은 금릉 일대를 뒤지는 가운데, 뇌옥린의 흔적을 알아 내고 여기까지
온 것이다.
"북쪽으로 가고 있다. 자아, 가자!"
쓰으으… 스으으…!
그녀는 검은 유성이 되어 호선을 끌며 날아올랐고, 일백팔살 역시 검은 그림자가 되어 그녀
를 뒤따르기 시작했다.
죽음의 바람이 되어 뇌옥린을 따르는 자들, 그들은 너무나도  가는 흔적을 따라서 북쪽으로
치달리기 시작했다.
바람(風), 또 하나의 바람은 이렇게 시작이 되고 있었다.

3

구야(九夜)의 달은 조금 이지러진 상현월(上弦月)로 떠서 흑천고공에 걸리어 있다.
흐르는 달빛 아래, 중악(中嶽)  숭산(嵩山)은 백설의 영봉(靈峰)으로  준험한 모습을 드러내
보이고 있었다.
교교(皎皎)하게 흐르는 달빛 아래 한 줄기  푸른 유성(流星)이 설곡을 가로지르며 나아가고
있고, 그 뒤로 이백여 개의 회색 선이 가공할 속도로 뒤따르고 있었다.
탄지지간마다 수십 장씩을 지나쳐 나아가는  일단의 괴영(怪影)들은 준극봉(峻極峯)을 지나
소실봉(少室峯) 쪽을 향해 질주해 나아가고 있었다.
"저기… 소림(少林)이 있다!"
제일 앞에 서 있는 미청년.
그는 답설능공의 절기를 능가하는 허무비행공(虛無飛行空)을 발휘해 십여 장마다 눈을 슬쩍
슬쩍 스치며 지나가고 있는데, 눈에는 기이하게도 발자국이 남지 않았다.
휘리리리－ 휘리리－!
미청년이 지나간 후, 이백십육(二百十六) 인(人)이 거의 같은  속도로 설원를 스치고 지나간
다.
너덜너덜한 장포(長袍)에, 녹이 슨 고검(古劍)을 멘 사람도 있고, 삭아 버린 목어(木魚)를 들
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가공할 속도로 치달리면서도 전혀 지치지 않았다.
이들은 유성우가 밤하늘을 꿰뚫고  지나가는 듯이, 설원과 설곡을  가로질러 소림사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천 년에 걸쳐 무림계의 태두(泰斗)가 되었던 소림사.
거대한 전각(殿閣)이 소실봉의 중턱을 뒤덮고 있고, 무수한 승려들이 주야를 가리지 않고 불
도에 정진하고 있는 거대한 불도장(佛道場).
한데 소림사는 언제부터인가 기묘한 공기에 휘어감겨 있었다.
향화(香火)가 끊어졌고, 범패(梵貝) 소리와 독경(讀經) 소리가 사라졌다.
대신, 죽음의 정적만이 일대를 뒤덮고 있었다.

대웅보전(大雄寶殿) 안.
드넓은 마루 바닥은 정갈하게 닦여져 있고,  벽면에 걸려 있는 탱화는 고색(古色)보다  더한
비색(秘色)을 뿌리고 있다.
언제부터일까? 대웅전 안에는 무수한 승려들이 포단을 깔고 좌정하고 있었다.
도합 칠십이불(七十二佛).
이들은 바로 당세의 소림사를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소림사는 속가제가(俗家弟子)를 제외한다 하더라도 그 수가  이만(二萬)을 넘어선다. 강호계
에 활약을 하지 않을 뿐이지, 소림사가 갖고 있는 힘은 그 어떤 방파보다도 가공스럽다.
소림사의 승려들은 사법에 따라 무공을 익히어야 하고, 나이 십오 세가 될 무렵에는 자질에
따라 선승(禪僧)이 되거나 무승(武僧)으로 갈라지게 된다.
머리에 계인(戒印) 아홉 개가 선명한 노선사들, 이들 가운데 오십여 명은 삼십여 성상이 지
나는 동안 소림을 벗어난 적이 없다.
그리고 십여 명은 일 갑자 동안 하산을 하지 않았고, 세 명의 금색 가사를 걸친 노선사들은
벌써 백 년 이상의 강구한 세월 동안 하산을 하지 않았다.

상좌(上座).
그 자리에는 자공선사(慈空禪師)라는 법호를 갖고 있는 백 세 노승이  합장한 채 앉아 있었
다.
그는 바로 소림사의 장교지존(掌敎至尊)이고, 사내의 모든 불제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장
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는 방장이 된 탓에 자신의 용맹정진(勇猛精進)이 깨어지게 되었다며, 방장 지위를 십오 년
에 걸쳐 이런저런 이유로 피하다가 하는 수 없이 방장 자리에 앉은 인물이었다.
그의 눈빛이 은은한 금색(金色)인  이유는, 그가 면벽(面壁)하는 가운데  얻은 항마금광진결
(降魔金光眞訣)이 극치의 경지에 이르렀기 때문이었다.
그는 소림사의 이십칠대(二十七代) 제자이다.
이십칠대라는 계보는 소림사 안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끼이는 계보이다.
소림사에는 타파보다 지독한 배분(拜分) 서열(序列)이 있다.
배분 서열은 나이보다 우선하고, 그  사람의 무공 실력보다도 맡은 바  책무에 따라 지위가
결정되어진다.
자공선자는 공자배(空字拜)의 배분 가운데에서 가장 나이가 적은 사람이다.
공자배의 위쪽 배분은 방자배(方字拜).
방자배의 배분을 갖고 있는 사람은 셋이었는데, 그 중 천방(天方)과 계방(戒方)은 이미 원적
했다.
현재 남아 있는 방자배 승려는 십방천불(十方天佛) 한 사람뿐이었다.
나이 이백 세의 노승. 그는 이 갑자  동안 폐관 면벽을 한 활불(活佛)로 소림사에서는 이미
살아 있는 전설이 된 사람이었다.

고향(古香)이 가득 배인 대웅보전 안.
자공선사는 합장한 채 입 속으로 불경만 외우고 있다.
대체 그는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보라! 성좌 위쪽의 대상좌는 비어 있지 않은가?
소림사에서 최고 배분이 되는 사람이 앉는다는 대상좌의 자리, 그 자리는 텅 비어 있었다.
자공선사의 무릎 앞에는 핏빛 배첩이 하나 놓여 있었다.

<혈마첩(血魔牒)>

섬칫한 필체의 글씨가 거기 적혀 있다.
배첩은 열려진 상태인데, 안의  내용은 선사에는 어울리지 않는  피비린내를 자욱이 뿌리고
있었다.

<소림은 완전 포위되었다!
녹옥불장(綠玉佛杖)를 바치고 항복하지 않는다면, 삼만 고수들이 소림을 피로 씻으리라!
기한은 십 일.
십 일의 안개가 사라지기 전, 항서(降書)를 바치고 사문(寺門)을 열고 우리들을 마중하지 않
는다면… 불행히도 소림사는 무림계에서 사라지게 된다.
대혈마성(大血魔城) 중군총사(中軍總師) 마마혼(魔魔魂).>

배첩은 십 일 전에 전해졌다.
그리고 소림사는 그 순간부터 침묵에 휘어감기고 있었다.
뇌왕천이 패도(覇道)의 거인이라면, 소림사는 불도(佛道)의 거인이다.
대혈마성은 가공할 세력을 천하에 입증하기 위해 뇌왕천과 동시에 소림사를 힘으로 눌러 버
리려 하는 것이다.
소림, 소림이여!
천 년의 거인, 소림사는 대체 그 무엇을 기다리고 있단 말인가?

딱－!
산방(山房)에서는 타석(打石) 소리가 들린다.
대웅보전 뒤쪽의 달마선원(達磨禪院). 이곳은 소림사에서 가장 배분이 높다는 십방천불(十方
天佛)이 친히 기른 오백(五百) 나한(羅漢)과 더불어 은둔해 있는 곳이다.
하늘에는 달(月)이, 그리고 드넓은 뜨락에는 눈(雪)이 가득하다.
딱－!
"으음, 무너지려 하는군!"
착잡한 목소리가 들리고.
"사부(師父), 대군(大軍)이 전멸한 듯합니다. 이제… 항서(降書)를 써야 하지 않겠습니까?"
매우 맑은 목소리가 들려 온다.
"허무(虛無)! 승패는 최후에야 판가름이 나는 것이다! 어이해 조급하게 생각을 하느냐?"
창노하고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린다.
대웅보전 안에 있는 승려들은 달마선원 안에서 내려지는 결정을 학수고대하는 상태였다.

 그 안에서 어떠한 결정이 내려지든 소림사 이만여 승려들은 따를 것이다.
소림사 전역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까닭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이다.
달마선원 안, 그 안은 대웅보전의 긴장감을 무시하듯 은은한 다향(茶香)이 감돌고 있다.
벌써 열흘째, 아주 질긴 싸움이 이어지고 있었다.
소림사에서는 배분이 가장 높은 두 사람이 반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었다.
계피학발의 노선사가 하나 있고,

그의 맞은편에는 낡은 백색 승복을 걸친 청년 승려 하나가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의 시선은 한 곳에 모으고 있었다.
"활로(活路)는 잘 보이지 않는군!"
"투석(投石)하십시오. 그리고 제자 허무의 뜻대로 나한대진을 치도록 윤허하여 주십시오!"
"아직… 진 것은 아니다."
두 사람은 반상(盤上)을 바라보고 있었다.
십방천불과 허무승.
이들은 소림사의 노년배와 후기지수를 대표하는 양대산맥(兩大山脈)이다

. 십방천불은 소림사 사람이 된 지 이백 년이 되며,

 제 발로 소림사에 들어와 소림사의 승려가 되기를 자청한 기재(奇才) 허무승은

 소림사 사람이 된 지 이제 삼 년이다.
이들은 형식적이나마 사제지간(師弟之間)이나,

 이들의 사이는 무공을 전수하고 지도하는  사이가 아니라…

 차를 나누어 마시며 대화를 하고, 바둑을 두며 세상을 이야기하는 사이였다.
그 이유는 하나, 십방천불이 의발(衣鉢)을 선뜻 전한 허무승은

 이미 완전한 천재이기에 가르칠 것이 없었다.

아주 차가운 인상이고, 예리한 눈을 갖고 있는 이십 세 중반의 청년 승려 허무승.
그는 소림사가 무림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을 하는 쪽이었다.
반면 십방천불은 정반대 되는 의견을 갖고 있었다.

－ 허무! 너의 천재성은 아나, 너의 뜻대로 하면 이미 소림은 소림이 아니다.

 소림이 소림인 이유는, 소림사답게 행동하기 때문이다

. 때리는 대로 응수하다가는 피를 얻고 복수의 윤회를 얻을 뿐이다!

그리고 우리들에게는하나의 전설이 있다! 우리들은 그 전설의 실현을 기다려야만 한다!

십방천불은 일생 동안 벌레 한  마리도 죽이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는  가공할 무공을 갖고 있으면서도 무림계에 나가지 않았다.
해서, 소림사와 더불어 무림계의 태두라는  무당파(武當派)에서는

 장문인이 네 번  바뀌도록 십방천불과 일면식도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 밤이 된다고 두려워 마라! 밤은 바로 새벽을 알리는 것이다!

 마(魔)의 별이  떴음을 분노하지 마라!

 모든 마를 불사르는 무적의 별이 떠오르는 천기를 봤다.

십방천불은 그러한 말로 대혈마성과 맞서  싸우자는 허무승을 달랜 다음,

십  일 전 하나의 내기를 제안했다.

－ 바둑(碁)에서 이기는 사람의 말에 따라 하기로 하자!

그리고 바둑이 시작되고… 벌써 열흘째 이어진 것이다.
현재 바둑은 허무승 승리로 마무리지어지고 있었다.

  허무승은 육예(六藝)에 달통했고, 천하의 모든 잡기에 능통했다.
그는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적은 천재이고, 소림에 온 지  삼 년도 아니 되어 장경각 안
의 서적 가운데 반을 읽어 치운 서치(書痴)이기도 했다.
'다섯 점(點) 안에 이긴다. 그러면… 된다.

 그래도 새벽 이전이니, 진세를  일으킬 여유는 있다.

일대에 온 자들은 감히  안으로 난입하지 못하고 있다. 

 그자들은 여전히 오(五) 리(里) 밖에 머물러 있다.'
허무승은 바둑을 두면서도 일대의 정황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이미 수백 개의 기문대진이 펼쳐지고 있고, 

소림사의 승려들이 외부로 쏟아져 나아가서

 대혈마성의 무사들과 혈전을 벌이는 장면이 그려지고 있었다.
'많은 사람이 죽으리라. 사만 명이 죽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소림사는 계속될 것이다!'
허무승은 십방천불이 돌을 던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십방천불은 땀을 쏟고 있었다.

그는 허무승의 바둑수에 말려 돌을  둘 데가 하나도 없는 최악의 상태에 이르고 만 것이다.
'결국 피를 뿌리어야만 하는가? 아아, 전설은 실현이  되지 않고…

 소림사 안에서 피보라가 일어나야 하는가?'
십방천불은 웃음 뒤에 번뇌를 숨기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죽는다 하더라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사람이었다.

 그가 번뇌하는 이유는, 천하에 번져 있는 악마의 기운과

소림사 일대의 전운이 무르익는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혈막(血幕).
거대한 핏빛 천막은 소림사의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천왕정(天王頂) 위에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일대에는 독검(毒劍)을 빼들고

비스듬히 내린 자세로  서 있는 혈의무사들이 득실거리고 있다.
혈막 안, 수백 명의 마도고수들이 포검(抱劍)한 채 무릎을 꿇고 앉아 있고…

 혈막 한가운데는 꽤나 짙은 휘장이 드리워져 혈막을 반으로 가르고 있다.
뒤쪽, 그곳에서는 야릇한 전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구릿빛 앞가슴을 드러낸 백발거한 하나가 무릎 위에 엉덩이가 아주 커다란 미녀 둘을 올려놓고

손으로 두 계집의 가슴을 떡 주무르듯 주무르고 있었다.
취옥(醉玉)과 녹옥(綠玉).
몸매가 풍만하고 얼굴이  아름다운 두 여인은 

대혈마성의 마교방(魔敎坊)에서 미염술(美艶術)을 터득한 마녀들이다.
대혈마성의 우두머리들은 하위무사들이 강호에 나아가  여색에 빠져 실수할까 우려한  나머지,

 첩(妾)을 딸려 주었다.
호법에게는 세 명, 타주에게는 두  명,

그리고 백 명의  제자를 거느리고 있는 자에게는  한 명.

마마혼(魔魔魂).
그는 다섯 명의 첩을 거느릴 수 있는 자격을 갖고 있으나,

 취옥과 녹옥 둘만을 데리고 소림사에 왔다.
"여체란 남자에게는 좋은 영약이지.

후후… 여체 안에는 남자의 지혜를 일으키는 샘이 있기 때문이다.

소림사를 진세로 포위해 버리고, 땡땡이 중들을 사면초가로 몰아넣은 위대한 계략은

 계집의 살을 만지는 가운데 생기지. 후후…!"
마마혼은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그는 마검향이란 자의 심복이 되는 자로,

소림사를 향해 올 때 마검향이 친히 기른 오백(五百) 살수(殺手)를 대동하고 왔다.
어디 그뿐이랴?
화전(火箭)을 이십 리까지 쏘아 낼  수 있는 마전궁대(魔箭弓隊) 삼천(三千)이  그를 따라왔고,

 독강시(毒疆屍) 오천(五千), 화강시(火疆屍) 사백(四百)이 그를 따라왔다.
소림사가 굴복하지 않는다면 악마의 무리들은 일시에 소림사로 난입해 들어가

소림사의  모든 것을 멸살해 버리리라.
"하아아… 간지러워요."
"흐으으응… 너… 너무해요!"
몸을 비트는 요희들, 그리고 마마혼의 게슴츠레해지는 눈빛…
그러는 가운데 하늘은 차츰차츰 밝아지고 있었다.
여명이 시작되는 동천(冬天).
한데, 전에는 없던 하나의 별이 떠오르고 있지 않는가?
계명성(啓明星)보다도 밝은 기이한 신성(新星).

그 별은 소림사의  여명과 더불어 소림의 하늘 위로 떠오르고 있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놀러오셔]

즐감합니다수고하세요

즐감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잘 읽고 갑니다. 방랑자

즐독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정남]

rt

[십분만]

재미 있게 읽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sanuro114]

*^*

[cjcj]

감사합니다

[불청객]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