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위하여
2017. 8. 27(주일오전예배) 누가복음 6:20-23
사람의 가치는 무엇으로 평가를 해야 하는가? 2차 세계대전 때 독일 나치의 한 연구소에서 사람의 몸을 원소별로 분류하여 가격을 따져 보았다. 그때 연구원들은 사람의 몸에서 비누와 몇개의 못을 만들 정도의 기름과 철밖에 없다고 하였다. 그래서 사람의 가격은 고작 1불(한화 1,200원)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과학의 발달은 사람의 물리적 가치를 많이 올려놓았다. 미국 예일대에서 사람의 가격을 다시 매겨 보았는데, 각종 장기와 단백질, 아미노산, 호르몬 등의 사용용도가 무궁무진해 졌기 때문에 사람의 가격은 600만불(한화 72억)의 가치가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우리의 정신세계를 제외하고 몸둥이만의 가치가 72억이다. 지금 옆의 분을 한번 보시기 바란다. 그리고 이렇게 인사하자.
당신은 고귀한 분이십니다. 72억 대단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면 저와 여러분은 우리 몸을 정말 가치있게 사용하고 있는가? 세바시에서 김미경강사가 유재석이 비싼 이유를 이야기하였다. 그 강의에서 김미경 강사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한시간 강의료가 얼마일까?를 물었다. 그 질문에 방청객 중에 한명이 천만원이다고 하였다. 그런데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한시간 강의료는 천만원보다 훨씬 더 많은 2억 5천이다고 김미경강사는 말하였다. 공상과학과 자연과학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쥬라기 공원을 만들 수 없고, ET와 같은 영화는 상상력이 없으면 결코 만들 수 없다. 그래서 그의 영화는 만원이면 되지만, 그의 머리 속에 있는 내용은 수억의 돈이 필요한 것이다. 결국 김미경강사는 지식사회에서 최고의 가치는 내 머릿속에 무엇이 들어있는가?가 그 사람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다고 하였다.
그런데 현대사회에서 지식만큼 나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 있다. 그것이 바로 리액션이다. 한 회사에서 여행이라는 주제로 신입사원을 6시간 동안 한 방에 넣었다. 그때 한 사람이 계속 말을 하였다. 아마 그 신입사원은 리더형으로 자신은 회사에 입사할 수 있을 것이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람이 제일 먼저 탈락하였다. 그리고 또 탈락한 사람들이 있는데, 그렇게 말많은 사람 옆에서 말을 하려다가 기회를 잡지 못하여 계속 머뭇거리는 사람도 탈락하였다. 결국 자신을 잘 표현하는 사람도 탈락하였고, 또 자신을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도 탈락하였다.
그러면 누가 합격하였겠는가? 유재석같은 사람이다. 유재석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보면 리액션을 통하여 모든 참가자가 골고루 참여하개 한다. 그래서 유재석은 참석자 중 그 누구도 나서지 못하도록 막아서고, 또 누구도 뒤로 숨지 못하도록 나오게 하여서 모두가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편안하게 할 수 있도록 진행하는 것이다. 이렇게 모든 사람이 편안하게 자기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도록 하는 사람이 가치있는 사람이다는 것이다.
이것이 현대사회에서 자신의 가치높이는 방법이다. 현대사회에서 자신의 가치를 높이려면 많은 지식을 소유하여서 사람들이 내 머릿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를 궁금하게 하면 가치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또 내가 가치있게 살려면 리액션을 통하여 주위에 있는 사람이 편안하게 자기 생각을 잘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러한 기술을 배우기 위하여 열심히 공부를 하고, 또 리더쉽에 대한 공부를 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그러면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땅을 사는 동안 정말 가치있게 사는 모습은 무엇인가? 사무엘상 8장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요구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그 후에 하나님은 사무엘을 통하여 사울을 왕으로 세우시는데, 사실 사울은 이스라엘 백성이 원하는 왕이 아니었다. 새벽기도 시간에도 말씀드렸지만, 이스라엘 백성이 원하는 왕은 카리스마를 가진 왕이었다. 그래서 전쟁이 일어나면 멋진 말을 타고 온 백성을 호령하는 그런 왕이었다. 그런데 사울은 카리스마를 가진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온 지파가 모인 자리에서 제비를 뽑아 왕을 세울 때 사울은 자신이 선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부끄러워서 짐봇따리 사이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백성의 기대에 부합하지 못한 사울은 왕이 된 후에 계속적으로 백성들의 전적 지지를 기대하는 삶을 살았다. 그런데 사울이 백성의 지지를 받는 일은 그렇게 쉽지 않았다. 사무엘상 17장에서 사울은 블레셋과 전쟁을 하게 되었다. 그때 블레셋은 골리앗이라고 하는 키가 3M가 넘는 장군이 있었다. 그 전쟁에서 사울은 소년 다윗을 통하여 승리의 기쁨을 가지게 되었다. 아마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이제 내가 성읍으로 돌아가면 모든 백성이 사울 만세를 외칠 것이다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사울이 성읍으로 돌아갔을 때 여인들은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다고 하면서 사울보다 다윗의 더 높이는 것이었다. 사울은 자신이 그렇게 기대하였던 백성의 전적지지를 블레셋 전투에서도 가질 수가 없었다.
그랬던 사울이 드디어 백성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 기회가 바로 아말렉전투이다. 하나님은 사울이 아말렉과 전쟁할 때 아말렉을 진멸하라고 하였다. 그런데 사울은 백성들에게 자신을 인정받기 위하여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았다. 약한 짐승은 죽였지만, 살찌고 건강한 짐승은 살려두었다. 그리고 아말렉의 아각왕을 살려둔 것이다. 그래서 사무엘이 왔을 때 짐승 우는 소리를 듣고 이것이 무슨 소리냐고 물었을 때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하여 남겨 두었다고 사울을 말하는 것이다.
지금 사울이 사무엘에게 하는 말은 거짓말이 아니다. 사울은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성읍으로 돌아갈 때 제일 앞 설 것이다. 그리고 그 뒤에 자기 병사들을 세우고, 그 병사들 뒤에 아각왕과 포로들을 묶어서 끌고 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그 뒤에는 전리품을 수레에 실어서 들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성읍으로 들어가면 그 많은 포로와 전리품을 보면서 백성들은 사울의 위대한 승리를 노래하는 것이다. 그때 사울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서 전쟁에 승리를 주심에 감사합니다 하고 제사를 드리는 것이다. 그리고 사울은 모든 백성이 보는 앞에서 아각왕을 죽이면 백성들은 모두 우리 왕은 하나님을 잘 섬겨서 큰 승리를 얻었다는 인정을 기대한 것이다. 이러한 사울을 하나님은 사무엘을 통하여 내가 버렸노라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하나님이 자신을 버렸다고 하는데 그 사실에 대하여 힘들어 하지 않는다.
그러면 정말 사울이 힘들어 한 것은 무엇이겠는가? 그 부분을 읽어보기 바란다.
(삼상 15:24-25)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 25청하오니 지금 내 죄를 사하고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나로 하여금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하니
사울을 왕으로 세우신 분은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사울은 자신을 왕으로 세우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모습을 가져야 했다. 그런데 사울은 하나님이 아니라, 백성을 두려워하여서 백성에게 인정을 받으려 했던 것이다. 그 결과 하나님이 사울을 버렸다고 하는데, 사울은 자신의 계획대로 온 백성앞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수 있게 해 달라는 부탁만 하는 것이다.
지금 사울의 이 모습이 어리석어 보이지 않는가? 두근두근의 저자인 신영준박사는 그의 책에서 어리석은 사람은 모두를 만족시키는 사람이다고 하였다. 그리고 다수를 만족시키는 일은 부질없는 짓이고, 원하는 사람을 만족시키는 사람은 현실적인 사람이다고 하였다. 그런데 우리는 어리석게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려 한다.
이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 주변 사람 실수 10개를 적어보기바란다. 우리는 생각보다 다른 사람에 대하여 신경쓰지 않는다. 그런데 어리석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보여지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면 저와 여러분은 이런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않고 사는가? 저는 지난 주에 블라디보스톡과 우스리스크 선교여행을 다녀왔다. 선교지에 도착한 첫째날에 선교사님은 우리에게 우리나라 독립운동가들을 설명해 주었다. 그 중에 최재형선생은 안중근 선생님을 비롯하여 연해주 지역에서 독립운동을 하는 거의 모든 사람을 도왔던 인물이다. 어린 시절 러시아 사람의 양아들로 자란 최재형선생는 러시아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부요함을 누리며 살 수 있었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하여 독립군을 후원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며 살았다가 결국 1920년 일본헌병대에 의하여 학살을 당하였다.<최재형 집 사진1,2,3>
또 이상설선생은 1905년 을사늑약이 있은 후 1907년 7월에 고종의 밀지를 받아 이위종, 이준과 함께 네덜란드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하려 하였다. 그러나 러시아와 네덜란드의 도움을 받지 못한 이상설 선생은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하지 못하였다. 그러한 상황에서도 이상설선생은 비공식적인 경로를 통하여 일제의 침략의 전세계에 알리는데 최선을 다하였다. 그런데 헤이그 밀사사건으로 고종이 폐위되고, 순종이 왕이 되었기 때문에 조국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상설 선생은 우스리스크로 와서 임시정부를 세우고, 계속적으로 독립운동을 하였다. 그리고 1917년 3월 2일 48세의 나이에 순국하면서 이렇게 유언을 남긴다.
동지들은 합심하여 조국 광복을 기필코 이룩하라. 나는 광복을 못보고 이 세상을 떠나니 어찌 고혼인들 조국에 돌아갈 수 있으랴. 내 몸과 유품은 남김없이 불태우고 그 재도 바다에 버리고, 제사도 지내지 말라.
그래서 이상재선생의 시신은 화장되어서 수이푼강에 뿌려지게 되었다. <기념비와 수이푼강사진>
저는 이번 선교여행을 통하여 우리 선조들이 이 조국을 지키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희생과 헌신을 하였는지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조국을 위하여 자신의 재산과 목숨을 버린 이들의 가족과 후손은 국가가 지켜주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이들은 애국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만을 위하여 사는 사람은 이기주의자라고 하고, 또 돈만을 위하여 사는 사람을 욕심쟁이라고 한다. 무엇을 위하여 살았느냐? 하는 것이 우리 삶을 바꾸고, 또 역사의 평가를 다르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저와 여러분은 무엇을 위하여 살아야 하겠는가? 이제 오늘 본문을 보시기 바란다. 오늘 본문은 마태복음 5장의 팔복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예수님은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셔서 산상수훈을 말씀하였는데, 그 처음이 팔복이다. 저는 설교를 준비하면서 팔복의 기준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내 삶에 아무런 어려움이 없고, 부요한 사람은 그 마음에 넉넉함이 넘칠 수 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넉넉함을 빼앗겨서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삶에 기쁨이 넘치는 것이 아니라, 슬픔이 가득한 삶을 사는 사람이 복이 있다는 것이다.
왜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이 가난과 핍박을 받는 것이 복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는가? 이 말은 의도적으로 가난한 삶을 살아라는 것이 아니다. 또 아들이 대학에 합격했는데, 그 아들을 보면서 아이고 우리 아들 서울대학에 합격했으니 슬퍼서 우짜노! 하면서 울라는 말이 아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언제나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사모하며 살라는 것이다. 그래서 가난하고 힘든 상황에서 내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몸부림치는 것이 아니라, 내게 부함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아름다운 모습을 행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저와 여러분은 복있는 삶을 살고 있는가? 1700년대 미국 로스캐로라이나의 한 섬은 뱃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왜냐하면 그 주위를 지나가는 배는 모래톱에 걸려서 좌초하기 때문이다. 섬사람들이 밤이 되면 말에다 렌튼을 달고 해변을 왔다갔다고 한다. 그러면 뱃사람들은 그것이 등대불인 줄 알고 가까이 다가가다가 모래톱에 걸려서 좌초하는 것이다. 그때 섬사람들이 달려들어서 약탈을 하는 것이다. 등대의 불빛인 줄 알고 달려갔던 선원들은 자신이 가진 것을 다 빼앗기고 또 목숨의 위협까지 받게 된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 신앙의 길에도 이런 유혹의 불빛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 세상은 화려한 불빛으로 여기에 참 위로와 안식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 빛은 가짜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참빛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래서 우리가 사랑하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시고, 또 우리가 인정받아야 할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신 줄 알아서 늘 길늘 걷는 사람이 하나님의 참 위로와 복을 받는 것이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길과 방법을 찾아가는 바른 삶의 목적을 가진 성도가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이제 말씀을 맺는다.
밀러드 퓰러는 성공한 사업가이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퓰러는 열심히 사업을 하여서 29세의 나이에 백만장자가 되었다. 커다란 저택과 250만 평의 토지를 소유하고, 호숫가의 별장과 호화로운 보트, 최고급 승용차를 소유하여 부를 누릴 수 있는 자리에 오른 것이다. 그런데 너무 가난하게 자란 퓰러는 부를 누리지 못하였다. 결혼하여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지만, 그는 여전히 돈을 벌기 위하여 가족과 함께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5년의 시간이 지났을 때 아내는 퓰러에게 별거를 요구하고 집을 떠나 버렸다.
이제 아무도 없는 집에 홀로 남은 퓰러는 자신의 지나간 삶들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자신이 왜 자신이 그렇게 바쁘고 힘든 삶을 살아야 했는지를 생각해 보았다. 그때 퓰러는 자신이 돈을 얻기 위하여 잃어버린 것이 너무 많이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래서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삶을 후회하던 사업가는 아내를 찾아가 용서를 구하였다. 그리고 자기 인생의 설계를 다시 그리면서 유년시절의 한 노부부의 허름한 집을 고쳐주며 뿌듯해하던 아버지와 너무도 고마워하던 노부부의 모습이 생각났다. 그래서 이 퓰러는 자신의 모든 재산을 정리하여 국제기구를 헤비타트를 창설하였다. 그리고 퓰러는 74세로 죽는 날까지 망치를 들고 집 없는 사람들의 집을 지어주고, 그들이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면서 같이 기뻐하는 삶을 살았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이 보기에 헤피타트를 창설한 밀러의 삶이 어리석어 보이는가? 밀러는 부요한 생활보다 집 없는 사람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는 삶을 살았다. 이렇게 살았던 밀러는 세상이 알 수없는 기쁨을 가지고 살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저와 여러분의 삶이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동안에 세상의 부요함과 평안을 찾는 것이 아니라,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와 복을 받아 살 수 있는 주의 백성이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