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 남선 교수님과 함께하는 풍수답사입니다. *
정기답사는 홀수달 둘째주 일요일에 실시하며 일정에 변동이 생길 시 미리 공지하겠습니다. 제천은 충청북도의 동북부에 위치한 시이며, 남쪽에 월악산이 있고 의림지와 충주호가 있습니다. 동쪽은 단양군, 서쪽은 충주시, 남쪽은 경상북도 문경시, 북쪽은 강원도 영월군 · 원주시와 접하고 있는 분지형태의 도시입니다. 2013년 계사년 시산제를 '맑은 바람과 밝은 달-청풍명월'의 고장인 제천에서 지내려 합니다. 삼봉 정도전의 朝鮮 8道 "4字 品評論"을 보면 경기도는 鏡中美人(경중미인: 거울 속에 비친 미인), 충청도는 淸風明月(청풍명월: 맑은 바람과 밝은 달빛), 전라도는 風前細柳(풍전세류: 바람 앞에 하늘거리는 가는 버드나무), 경상도는 松竹大節(송죽대절: 소나무와 대나무 같은 굳은 절개), 강원도는 巖下老佛(암하노불: 바위 아래 늙은 부처), 황해도는 春波投石(춘파투석: 봄 물결에 던져진 돌멩이), 평안도는 山林猛虎(산림맹호: 산속 숲에 사는 거친 호랑이), 함경도는 泥田鬪狗(니전투구)라 했다가 태조 이성계의 얼굴이 벌게지므로 고쳐서 石田耕牛(석전경우: 돌밭을 가는 소)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지역을 거시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진실여부는 개인의 판단에 맡기겠습니다. 스승님께서 강조하시는 자연을 볼때는 현미경으로 봐야한다는 것을 사람을 볼때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을 세삼 깨닫습니다. 우리네 삶은 환경에 동화되어 가는 것인지라 자연을 올바로 보고 판단할 수 있는 지혜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계사년 시산제는 우리 '아풍동님'들 건강과 지혜를 주심사 정성을 들여 준비하오니 꼭 오셔서 좋은 시간 만드시길 바랍니다. 답사 당일 혹시 폭설로 인해 제천시를 못갈 경우를 대비하여 후보지를 물색하여 준비하오니 이점 또한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 1. 일시 : 2013년 1월 13일 (일)
2. 장소 및 시간 : 아주대 정문 오전 9시 출발
3. 답사지
1) 시산제 (충북 제천시 봉양읍 연박리)
보국이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는 좋은 곳에서 시산제를 올립니다.
2) 이정희 선생 묘 (충북 제천시 봉양읍 삼거리 산22-1)
이정희(李廷熙)[1712~1759]의 호는 화숙(和叔)이고, 천남 이씨의 입향 시조이다. 이정희의 묘와 두무실에 대한 풍수담이자 지명유래담이다. 이정희의 묘소는 청나라 사람인 두자미가 잡아 주었다고 한다. 옛날 청나라 두자미가 제천 천남리(泉南里)로 유배를 오게 되었다. 이때 인근에 살던 천남 이씨 문중에서 많은 은혜를 베풀어 주었다. 두자미가 유배에서 풀려 돌아갈 때 그 은혜를 갚고자 천석꾼과 재상이 교대로 나올 명당자리를 점지해 주기로 약속하고 길지를 찾아다녔다. 그러던 중 봉양읍 두무실 쌍폭포 지점을 지날 때 명당자리임을 알고 기뻐서 춤을 추었다. 그래서 이곳이 두자미가 춤을 춘 동네라고 해서 두무실이 되었다고 한다. 1982년 충청북도에서 발행한 『전설지』에 실려 있다. 또한 1999년 한국국악협회 제천시지부에서 간행한 『전설지』와 2004년 제천시지편찬위원회에서 발간한 『제천시지』 등에도 이를 참고하여 동일하게 수록하고 있다. 『전설지』에는 모두 「두무동(杜舞洞)」으로 되어 있고 『제천시지』에는 「두무실의 유래」로 수록되어 있다. 또한 『전설지』에는 청나라의 두(杜)씨 성을 가진 사람이 유배를 왔다고 하는데, 『제천시지』에는 ‘두자미’로 기록하고 있다. [출처] 한국학 중앙연구원
3) 박도수 가옥 (충북 제천시 금성면 구룡리 305)
안채에서 발견한 기록으로 미루어 조선 고종 1년(1864)에 안채를 지었고 사랑채나 아래채는 훗날 지은 것으로 짐작한다. 큰 농가집 형식의 민가로 'ㄱ'자형 안채, 사랑채, 아래채, 중문채, 헛간 등이 일곽을 이루고 있는 집이다. 안채는 평범한 'ㄱ'자형 구조로 되어 있다. 대청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고방과 건넌방을, 왼쪽에 안방과 부엌을 설치하였다. 안방의 사면에는 외짝문을 달아 드나들게 만들었는데 특색있는 구성이다. 가묘(家廟)가 없어 대청 1칸 뒷벽에 위패를 모시고 사당공간으로 사용하였으며, 대청 옆에 보기 드물게 고방을 두었다. 고방문은 대청쪽으로 달았고 앞쪽에는 창을 만들었다. 문간이 붙어 있는 사랑채는 왼쪽부터 광, 대문, 사랑방, 외양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랑방 앞으로는 높은 댓돌 위에 마루를 만들어 놓았다. 아래채는 안채 오른쪽에 자리잡고 있으며 2칸 방을 중심으로 양쪽에 각각 부엌과 2칸 광을 두었다.
4) 청풍김씨 시조 김대유 선생 묘 (충북 제천시 수산면 도전리 산8)
김대유(金大猷)는 경순왕의 손자 김정구(金正矩)의 16세손으로, 고려 말에 벼슬이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이르렀고 청성부원군(淸城府院君)에 추봉(追封)되었다. 이름난 후손으로는 조광조(趙光祖)와 함께 왕도 정치를 펴려다 해를 입은 성리학자 김식(金湜), 효종 때 영의정(領議政) 김육(金堉)과 유명한 청백리(淸白吏) 김신국(金藎國), 현종 때 전라도관찰사(全羅道觀察使) 김징(金澄), 김육의 아들 김좌명(金佐明)과 김우명(金佑明)이 있다. 근세의 인물로 독립운동가인 김윤식(金允植)과 김규식(金奎植), 소설 『동백꽃』의 작가 김유정도 빼놓을 수 없다.
5) 민기 선생 묘 (충북 제천시 백운면 도곡리 산25-1)
본관은 여흥(驪興)이고 자는 자선(子善), 호는 서한당(棲閑堂)이다. 정랑(正郞) 여준(汝俊)의 아들이다. 1597년(선조 30)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정자(正字)·전적(典籍)·제주목사·경주부윤 등을 역임하였다. 특히, 제주목사로 부임한 뒤 7개월 동안에 탐관오리를 숙청하고, 부역과 조세를 가볍게 하여 백성의 신망을 크게 얻었다. 황주석(黃株錫)의《신제전서(臣齊全書)》<동경수정안경명(東京水晶眼鏡銘)>에, 경주부윤 민기가 1630년경에 경주에서 만들어진 남석안경(南石眼鏡)을 착용했다는 기록이 보이는데, 이는 임진왜란 직후에 국내에서 안경이 제작되었음을 증명한다.
4. 회비 : 4만원 (차량 대여비 및 중식 석식 기타 비용 포함) (당일 총무에게 납부)
5. 연락처 : 총무 김 은 희 (010 - 3228 - 6489) 회장 김 종 대 (010 - 4234 - 707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