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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강 다윗의 장막지기 : 이스라엘과 아랍과의 전쟁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단락 1> 1. 삼하 22:1 여호와께서 다윗을 모든 원수의 손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신 그 날에 다윗이 이 노래의 말씀으로 여호와께 아뢰어 2. 이르되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위하여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3. 내가 피할 나의 반석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높은 망대시요 그에게 피할 나의 피난처시요 나의 구원자시라 나를 폭력에서 구원하셨도다 4. 내가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받으리로다 5. 죽음의 물결이 나를 에워싸고, 파멸의 파도가 나를 덮쳤으며 6. 스올의 줄이 나를 동여 묶고, 죽음의 덫이 나를 낚았다
다윗은 모든 원수의 손에서 자신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을 높이고 있습니다 (1절). 그래서 사무엘하 22장의 제목을 ‘다윗의 노래’ 라고 합니다. 다윗은 자신을 모든 대적으로부터 구원해 승리하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을 '반석, 요새, 건지시는 자, 방패, 구원의 뿔, 높은 망대, 피난처, 구원자' 등으로 묘사합니다. 이는 모든 전쟁에서 자신을 지켜 주신 '보호자'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슈아의 십자가 은혜로 구원이 시작되어졌다면, 우리는 그 구원이 완성되어질 때까지 사단과 세상을 향해 영적전쟁해야 합니다. 창세기 1장 28절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말씀합니다. 정복 (히 : 카바쉬)의 뜻은 전쟁입니다. 즉, 하나님은 아담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혼돈스럽고 (히 : 토후), 공허하며 (히 : 보후), 흑암 (히 : 호쉐크)이 깊은 위에 있는 온 열방을 정복 (히 : 카바쉬 : 전쟁) 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 9장 27절에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말씀합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 다시 오실 길을 준비하기 위해 열방 가운데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러나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즉, 구원은 일회적인 사건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주님과 함께 구원의 여정을 걸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전쟁인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이는 신앙 생활을 평범하게, 편안하게, 세상 이들이 하는 것을 다 해가면서 하길 원합니다. 그리고 거룩의 기준을 본인들의 기준으로 낮추어 버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거룩의 반대말은 평범한 것 (히 : 홀)입니다. 이러한 삶이 당장은 쉽고 좋아 보일 수 있겠지만, 나중에 멸망이 올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사울의 손에서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을까를 먼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사울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 위대하신 하나님의 성품을 선포하였습니다 (삼하 22:2-6). 이처럼 우리가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올바른 계시를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 중 하나에만 집중한다면 이를 통해 하나님에 대한 왜곡이 생기게 되며 그 결과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게 됩니다. 그리고 다윗은 제일 먼저 하나님을 ‘반석 (히 : 추르)’이라고 말합니다. 반석은 하나님의 변함없으신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한결같고 흔들림이 없는 속성을 묘사한 칭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것은 우리의 잘못된 사고와 행동과 결론이 일어나는 것을 막아주는 방패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요한복음 14장 15절에 예슈아께서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말씀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기반하지 않는 하나님 사랑은 인본주의적 문화에서 나온 사랑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은 하나님 말씀에 과격한 순종의 삶을 살게 됩니다. 그리고 그 사랑에 빠진 사람은 누구도 막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창세기 49장 24절에 ‘요셉의 활은 도리어 굳세며 그의 팔은 힘이 있으니 이는 야곱의 전능자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말씀합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반석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반석이신 하나님을 경험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할까요?
1) 마 7:19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20.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24.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26.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우리가 예슈아를 믿고 있다는 증거는 무엇을 통해 알 수 있습니까? 우리의 삶 가운데 구원의 열매 (성령의 열매)를 통해 알수 있습니다 (마 7:19-23). 구원의 열매란? 하나님의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입니다 (엡 4:22-24). 그러나 예슈아의 재림의 때에 많은 사람들이 예슈아를 향해 ‘주여 주여’ 라고 외치지만 (22절), 교회 안에는 불법이 성행함 (매우 왕성하게 벌어지거나 널리 퍼짐)으로 구원받는 이들의 숫자는 적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예슈아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 즉,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는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의 집을 세우는데, 반석 위에 세우는 수고를 감내합니다. 그리고 집을 짓는 설계도나 설계명세서를 작성하고, 바른 방법을 알려고 합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은 이러한 일에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어쨌든 집을 짓자’라고 말할 뿐, 누구의 지도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고, 빨리 일을 끝내고 싶어합니다. 이 두 집의 외관만을 본다면, 동일해 보입니다. 그러나 모래 위에 지은 집은 시험이 와서 홍수가 밀어 닥치고 바람이 불게 되어지면 (심판의 때), 폐허가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진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자신의 믿음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행위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스스로 속고 있는 자들은 머리로는 하나님을 알고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행위를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반석 위에 집을 세우는 것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우리가 영원토록 살아갈 집을 이 땅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시간을 통해 세우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아가는 이유는 모든 사람 (죽어 있는 자와 살아 있는 자)은 하나님의 백보좌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이며, 모든 이들은 자기 행위를 따라 심판을 받게 될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단은 구원받는 일은 너무 쉬운 것이며, 교회만 다녀도 충분히 구원받을 수 있으니, 모래 위에 집을 세우라고 속삭입니다. 그래서 둘 중 어느 편을 선택할 것인지는 우리의 믿음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단락 2> 2. 삼하 22:10 그가 또 하늘을 드리우고 강림하시니 그의 발 아래는 어두캄캄하였도다 12. 그가 흑암 곧 모인 물과 공중의 빽빽한 구름으로 둘린 장막을 삼으심이여 14.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우렛소리를 내시며 지존하신 자가 음성을 내심이여
다윗은 반석이신 하나님은 말씀이시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은 일의 내용을 노래로 부르게 됩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신랑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 (결혼 서약서)를 받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통하여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삼하 22:10-14). 그리고 우리는 절대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지 않을 것이며, 하나님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신의 말씀에 불순종할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신명기 32장에 모세에게 장차 하나님의 언약을 버리고 배교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증거가 되도록 노래를 가르쳐 부르게 하십니다. 즉, 다윗이 사무엘하 22장에 부르고 있는 노래는 신명기 32장에 나온 모세의 노래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명기 32장에는 어떠한 내용이 담겨져 있을까요?
1) 신 32:9 여호와의 분깃은 자기 백성이라 야곱은 그가 택하신 기업이로다
하나님은 모든 나라들 중에 야곱 (이스라엘)을 선택하시고, 모든 땅 중에 이스라엘 땅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분깃으로 이스라엘 땅을 선택하셨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의 쉐키나 영광을 돌 곳으로 삼으시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온 열방 가운데서 이스라엘 민족과 이스라엘 땅을 선택하신 하나님의 선택은 영원히 취소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신명기 32장 15절에 ‘15. 여수룬 (이스라엘의 애칭)이 기름지매 발로 찼도다, 네가 살찌고 비대하고 윤택하매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버리고 자기를 구원하신 반석을 업신여겼도다 17. 그들은 하나님께 제사하지 아니하고 귀신들에게 하였으니 곧 그들이 알지 못하던 신들, 근래에 들어온 새로운 신들 너희의 조상들이 두려워하지 아니하던 것들이로다’ 말씀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배가 부른 결과 마음이 느슨해지고 하나님을 찾지 않게 되며, 결국 귀신들을 예배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당신의 얼굴을 돌리시게 되며, 그들은 원수의 공격에 그대로 노출되게 됩니다 (신 32:22-23). 그리고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을 약속의 땅에서 쫓겨나서 온 열방에 뿔뿔이 흩어지게 되는 것을 예언합니다 (신 32:25-30).
(1) 신 32:34 이것이 내게 쌓여 있고 내 곳간에 봉하여 있지 아니한가 35. 그들이 실족할 그 때에 내가 보복하리라 그들의 환난날이 가까우니 그들에게 닥칠 그 일이 속히 오리로다 41. 내가 내 번쩍이는 칼을 갈며 내 손이 정의를 붙들고 내 대적들에게 복수하며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보응할 것이라
하나님의 징계를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지막 때에 다시 약속의 땅에 모이게 될 것이며,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나라들에게 보복하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이스라엘의 원수에게 보복하시는 것일까요?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훈계하시기 위해 열방 가운데 흩으신 것이지, 그들을 미워하고 진멸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원수된 나라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온 땅에서 진멸하고자 한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보다 높아지는 교만인 것이며, 하나님은 그들의 교만을 심판하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스라엘을 위해 축복하고 기도하는 이유는 이스라엘 나라의 모든 정치와 정책이 옳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기 때문에 그들을 지지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편에 서는 길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41절에 보면, 하나님은 ‘내 대적들과 나를 미워하는 자들’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을 미워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미워하는 것임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슈아께서 재림하시기 전에 아랍 국가들과 이스라엘을 미워하는 나라들은 이스라엘을 없애기 위해 몰려들 것입니다. 이 전쟁의 이름은 아마겟돈이 될 것입니다.
(2) 신 32:41 내가 내 번쩍이는 칼을 갈며 내 손이 정의를 붙들고 내 대적들에게 복수하며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보응할 것이라 42. 내 화살이 피에 취하게 하고 내 칼이 그 고기를 삼키게 하리니 곧 피살자와 포로된 자의 피요 대적의 우두머리의 머리로다 43. 너희 민족들아 주의 백성과 즐거워하라 주께서 그 종들의 피를 갚으사 그 대적들에게 복수하시고 자기 땅과 자기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시리로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대적을 복수하시고, 백성들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 오시는 분이 예슈아이십니다. 이 날은 대속죄일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43절의 시작을 보면, ‘너희 민족들아 주의 백성과 즐거워하라’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민족들’은 이방 교회들을 뜻합니다. 이는 예슈아의 피로 이스라엘과 접붙임 받은 열방의 수 많은 영혼들이 이스라엘과 함께 하나님의 구속하심을 즐거워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입니다. 로마서 11장 12절에 ‘그들의 넘어짐이 세상의 풍성함이 되며, 그들의 실패가 이방인의 풍성함이 되거든 하물며 그들의 충만함이리요’ 말씀합니다. 즉, 이스라엘의 넘어짐이 이방인에게 복음의 비밀이 전해지는 기회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혈통적 이스라엘과 비혈통적 이방인이 예슈아의 속죄의 피로 인해, 한 새 사람을 이루어 온 열방과 이스라엘의 구원이 성취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열방을 구별은 하시지만, 차별 하시지 않습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에 보면 모세의 노래가 등장합니다.
(3) 계 14:7 그가 큰 음성으로 이르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의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 15:2 또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순교자들) 유리 바다 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3.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불러 이르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놀라우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순교자들이 유리 바다 가에서 모세의 노래 (신 32장)를 부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모세의 노래가 어린 양의 노래로 불리우게 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심판이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열방에 대해 보복하시고 이스라엘을 구속하시는 분이 ‘어린양 예슈아’ 이시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32장과 사무엘하 22장과 요한계시록 15장은 서로 연결되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신명기 32장에 나온 모세의 노래를 부르며, 이 땅에 완성되어질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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