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과 맛, 풍성한 남도, 얼떨결에 2박 3일 번개여행!
노 종 해(CM리서치)
연일 30도를 넘는 불볕더위로 시달리는 때, 반가운 비 소식이 들렸고, 부술부술 여름비가 내렸다. 아내는 비 오는 날, 비를 맞으며 텃밭 뜨락을 걷고 돌보는 기분이 삼삼하다고 재촉하고 있다. 나는 아내와 함께 햇빛뜨락으로 향했다.(2024. 6. 15. 7am) 빗방울에 뜨락의 초목들이 생기를 받아 푸르름이 더욱 솟구치고 있었다.
우리는 햇빛뜨락의 에레모(Eremo, 개인 기도처)에 앉아 창밖으로 보이는 초목들을 바라보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던 중 6월은 문화체육부에서 KTX여행의 달이라 했는데, 우리는 텃밭 일하느라 매일 뜨락에 나왔지 않았는가? 아내는 몹시 서운해했고 포기 상태이기도 했다.
나는 불쑥 “어디 KTX 기차여행이나 떠날까?” 말했을 때, 아내는 “좋지요 우리 떠나요!”하며 반가워하는 것이 아닌가. 지난 4월 어머니 3주기 때 동생들과 이야기하며, “어머님이 마직막에 디아코니아 요양원에 계셨고, 개신교 수도사인 언님(어진이)들이 돌보아 주었는데, 3주기를 지내고 목포에 가서 감사의 시간을 가질까?”라고 물었고, 동생들은 “그렇게 하지요” 쾌히 승낙한 일이 있었다.
차일피일 미루워 왔는데 그동안 아내는 충주시 시민 정원사 과정을 마치고 수료증을 받았고, 순천 국가정원을 가 보자고 조르고 있었다.
나는 순천의 지인이 떠울라 전화해 보니, 지인은 반가워하며 “아무 때나 오세요 “, ”그럼 이번 월요일(6.17.)에 갈까? “, ”월요일에는 시간이 있어요, 좋습니다. “, ”그래요 그럼 생각난 김에 당장 가보지요! “ 답하고, 기차표 예매를 하고, 2박 3일 순천-목포여행을 감행한 것이다. 얼떨결에 결정이 되어 번개여행이 된 것이다.
첫째 날:순천만 습지와 짱뚱어탕, 꼬막 밥상!
(2024. 6. 17. 월. 11:30 am)-KTX 기차여행으로 충주에서 순천까지 여행을 떠났다. 순천역에 도착하니 지인이 마중 나와 있었고, 여수 순천 토박이 지인의 안내로 순천만 습지로 향했다. 습지 입구 앞에 도착하여 우선 점심부터 하자고 하였다.
지인은 순천 토속 음식을 맛보아야 한다며, 짱뚱어탕과 꼬막정식 등 전남도 전통 밥상을 예약해 두었다. 순천만 습지의 맛집이었다. 본래 맛집은 순천만 습지 가에 있었으나, 순천시에서 습지 시설을 조성하고 개방하며 습지 입구 앞으로 이전했다고 한다. 이미 특실 방이 준비되었고 전남 특징의 반찬이 차려져 있었다. 반찬 가지 수만도 감탄이다. 우와 대단하군요! 놀라고 기뻤다.
순천만 습지의 전통 토속 메뉴인 짱뚱어탕과 꼬막, 꼬막무침, 양념 대 피조개와 꼬막 등이 차려졌다. 순천만 뻘에서 나오는 식재료라 한다!
짱뚱어탕은 추어탕처럼 보였지만 맛은 달랐다. 짱뚱어탕은 부드럽고 감칠 나는 맛으로 입맛을 당기고 있었고 국물까지 남김없이 싹 비웠다. 꼬막무침은 무채와 함께 맵콥 달콤 짭짤한 맛이었다. 대 피조개도 부드럽고 푸근한 맛이 입맛을 돋우어 주었다.
청동 오리찜과 젓갈 반찬들도 입맛을 돋우고 온몸에 생기가 솟게 하고 있으며. 찹살 옥수수 한 토막과 삶은 감자, 부드러운 보리 개떡 빵 등 너무너무 배부르고 포만감에 행복하였다. 오랜만에 남도 여행에서 토속 별미로 즐기며 흐뭇하였다! 하하하!
순천만 습지에서 짱뚱어탕과 꼬막으로 점심과 습지를 둘러보고, 짱뚱어와 뻘게 조형물과 기념 사진을 남겼고, 민속 줄다리기 모습 조형물을 흥미 있게 보았다.
짱뚱어들의 고향이요 놀이터인 순천만 습지의 뻘과 짱뚱어가 튀어오르는 구멍들이 눈길을 끌었다!
우리는 순천만 습지를 둘러보고 보성 녹차밭으로 출발했다.(2pm)
보성 녹차 대한다원 방문!
안내하는 지인은 "대한다원"을 가 봐야 한다고 적극 추천하였고, 아내는 생각지도 못한 꿈의 장소라며 기뻐하였다. 보성으로 향하는 차창 밖으로는 온통 짖은 초록 푸르름이었고, 햇볕도 가려있는 밝은 날이라 나들이하기에는 무덥지도 않고 최적의 날이었다. 보성에 들어서니 산등성에는 녹색의 차밭으로 싱싱하고 풋풋한 공기가 마음에 평안을 주고 있다.
"대한다원"(개원:1939년)은 활성산 자락 해발 350m 오선봉 일대를 차밭으로 일구고, 삼나무, 편백나무, 대나무 숲이 울창한 산림을 이루고 있었다. 하늘을 찌르듯 곧고 높이 뻗어 오른 삼나무 숲길을 걸으니 풋풋하고 향기로운 공기가 가슴을 시원하게 적셔오며 온몸이 편안해진다.
삼나무 길을 지나 다원에 들어서니 쉼터광장의 노란 파라솔과 탁자에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여름철 꽃과 푸르름 속에 쉼을 나누는 모습의 풍경이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수채화 같은 대한다원, 맑은 계곡물 소리를 들으며 차밭길괴 삼나무 오솔길, 산, 바다, 호수 그리고 풋풋한 차향이 있는 곳”이었다. 걷기 불편한 나는 쉼터 인근의 녹차 밭을 오르내리며 거닐었고, 녹차 밭은 푸르른 물결은 파도처럼 몰려내려오는 듯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대한다원 쉼터의 찻집에서 따듯한 녹차를 키오스로 주문하고, 녹차 한 컵을 들고 탁자에 앉아서 녹차밭과 삼나무 등 산림을 바라보았다. 녹차 향기가 은은한 쉼터에서 따듯한 녹차의 향과 맛이 온몸에 쉼을 주며 포근하게 감싸주었다. 그리고 녹차의 향과 맛의 매력에 빠져버렸다. 녹차 한잔은 2,500원으로 합리적인 가격이었다.
국내에도 이렇게 신선하고 평온하며 아름다운 공간이 있다니, 감탄이었다. 대한다원은 대한민국 대표 휴가명소일 뿐만 아니라, 세계인들이 찾는 명소라 한다! 드라마, 영화, 예능프로그램의 촬영장으로 인기가 있단다. 대한다원 뿐만 아니라 보성은 온통 차밭이었고 국가유산이며, 세계문화유산이었다. 보성은 녹차로 유명하며, "국가중요 농업유산"이었다.
우리는 “녹차 해안도로”를 통해 남도 섬들 사이로 구비구비 돌며 다리를 건너며 남도 여행을 만끽하다. 보성은 온통 녹차이다.
고흥 우주발사전망대~섬섬백리길로!
보성 녹차밭에서 나오며 지인은 "어디로 갈까요?" 물었고, 아내는 "여수 밤바다를 보고 싶어요!"라 하였다.(4pm) 지인은 고흥에서 "섬섬백리길"로 여수 밤바다로 갑니다"며, 드라이브코스로 유명한 곳이며 국내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드라이브 명소로 알려진 곳이라 하였다.
보성 ”녹차해안길“에서 고흥 해안 섬길에 들어서며, 지인은 ”우주로 가는 길“로 드라이브 하며, "꼭 가 볼 때가 있습니다. 우주발사 전망대이지요!"라며 소개하였다. 즉 우리호, 나라호 등 우주 발사 전망대이다.
나는 고흥 섬 해안 길을 돌며, 목일신 선생의 자전거 동시(1933년), 동요가 떠올랐다. "따르릉 따르릉 비켜나세요. 자전거가 나갑니다 따르르릉. 저기 가는 저 노인 꼬부랑 노인, 우물쭈물하다가는 큰일 납니다."
나는 고흥 목일신 선생(1913~1986)의 아버지 목치숙(목홍성, 1885~1928) 목사가 보성, 고흥 등 전남 섬 교회들을 개척하신 분인데 선교부에서 준 자전거를 타시고 집으로 오는 것 보고, 자전거 동시를 5학년 때 지으셔 동아일보에 게재된 동시라고 설명해 주었다. 지인과 아내는 처음 듣는 이야기라 하였다.
나는 목일신 선생께서 자전거뿐만 아니라 "누가누가 잠자나"(1936년) 등 400여편 동시를 지으신 분이라며 노래를 불렀다.
넓고 넓은 밤하늘엔 누가누가 잠자나
하늘나라 아기별이 깜빡깜빡 잠자지.
깊고 깊은 숲 속에서 누가누가 잠자나
산새들새 모여 앉아 깜빡깜빡 잠자지.
포근포근 엄마 품에 누가누가 잠자나
우리아기 예쁜 애기 새근새근 잠자지.
목일신 선생은 일제 강압시대 학교에서 일본말만 사용하도록 강요하며 단속할 때, 어린 학생들이 우리말의 아릅다움을 잊지 않도록 동시를 지었고, 동요로 노래 부르도록 운동하셨다. 당시 아동 문학가들은 동시, 동요 부르기로 항일운동하였다. 목일신 선생은 순천여고, 목포여중 등 국어교사로 재직하였으나, 일제는 항일로 감시하여 학교 선생도 못하게 되었으며, 해방 후 상경하여 이화여중고, 배화여중고 선생이셨고 정년퇴직(1978년) 한 후 소사(부천)에서 별세하셨다. 그래서 목일신 문학 기념관이 고흥에도 있고, 부천에도 있다고 알려 주었다.
우리는 우주발사 전망대에 이르렀다. 바다와 섬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노을로 물들며 아름다웠다. 지인은 섬을 잇는 다리들을 가리키며, 섬섬백리길로 드라이브할 것이라 하였다. 우주발사 전망대 상층에는 회전 전망대로 바다와 섬들, 우주발사를 전망하는 좋은 카페가 있는데, 입구에 가서 보니 조용하였다. 월요일은 휴일이란다. 그래서 주차장에 차들이 없고 조용했음을 알았다.
우리는 전망대를 한 바퀴 돌며 남도 바다와 섬들을 바라보고, 고흥 팔영대교로부터 여수 돌산도까지 펼쳐지는 ”백리섬섬길“ 드라이브 코스로 들어섰고(5:30 pm), 고흥에서 여수까지의 "섬섬백리길"은 이순신 장군의 좌수영이 있던 역사적인 해전 바닷길이며, 섬마다 해전의 사적이 있는 섬섬길을 드리이브한 것이다.
고흥 섬섬백리길~여수 밤바다!
고흥 영남면에서 섬섬백리길을 다리를 놓아 드라이브 관광명소로 지역 산업과 교류 발전을 이루고 있다. 남도 "섬섬백리길"은 1차로 고흥군 영남면 우천리 팔영대교에서 여수시 화양면 돌산도까지 10개 섬 11개 해상교량으로 연결하고 있다.
남도 낙도를 교량으로 잇는 섬 해안도로 명소로, 팔영대교~낭도대교~적금대교~둔병대교~화양조발대교 등 환상적인 풍광의 섬길이 펼쳐지는 장관을 이루고 있다. 곳곳에 먹거리와 볼거리, 즐길거리가 넘쳐나고 있었다.
우리는 여수 여객선 터미널 앞 이순신 광장 골목길에는 토속 민속 먹자골목에 도착하였다. 밤바다를 보기 위해, 우선 전통 맛집에서 아귀찜과 서대회로 저녁 식사부터 하였다.(오후 6시) 서대회를 밥에 비벼 먹으니 입맛을 돋우었고 감칠맛이었다. 아귀찜도 쫄깃쫄깃한 살에 구수하고 감미로운 국물도 환상적인 맛이었다.
식당 문을 나서니 좌측으로는 이순신 장군 광장이었고, 거북선과 이순신 장군 동상이 우뚝 서 있었다. 섬섬백리길과 여수 앞 바다는 이순신 장군 승전의 역사적인 바닷길이기도 하다.
지인의 안내로 돌산대교 건너서 돌산공원 전망대에서 노을이 지며 불빛이 반짝이는 여수 밤바다를 바라보았다. 장군도를 휘도는 바다 물결과 유람선의 불빛, 돌산대교의 불빛 등이 어우러지는 여수 밤바다가 아늑하고 아름답게 펼쳐지고 있었다.
우리는 여수 밤바다를 보고, 대규모 산업단지의 휘황찬란한 불빛을 지나, 순천만 국가정원 앞 호텔에 도착(9pm)하여 나른한 하루 밤을 묵었다. 이로써 남도여행 첫날, {충주~순천~보성~고흥~여수~순천} 여행을 마치고 내일을 위해 단잠을 청하였다. 내일은 목포로!
둘째 날 순천만 국가정원~목포 스카이브리지!
(2024. 6. 18. 화)-아침 9시 개원하는 순천만 국가정원 동문에 도착했다. 65세 이상은 무료입장이었으나, 신분증을 제시해야 했다. 아내는 그렇게 방문해 보고 싶던 국가정원이지만 정작 신분증을 가지고 오지 못했다.
나는 전날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국가정원 동문에는 민원발급기가 설치되어 있다는 정보를 알았다. 정말 동문 사무실 한구석에 민원발급기가 있었으며, 아내는 민원기에서 주민등록초본을 발급받을 수 있었다.(수수료 200원) 우리 부부는 국가정원 정문 입구에서 신분증을 제시하고 무료입장 하였다.
불볕더위 여름 날씨는 35도를 오르며 거세게 뜨거웠다. 걷기 불편한 나는 국가정원에 들어서서 왼쪽, 오른쪽으로 나무 그늘 밑을 걸었고 호숫가 의자에 앉아 한가롭게 쉼을 가졌다. 오른쪽으로 장미정원, 노을정원, 두다하우스를 둘러보았고, 왼쪽으로는 호수정원 공연장, 나루터, 식물원이 있었으며, 나무 그늘 아래의 의자에서 쉼을 가졌다. 아내는 국가정원 한 바퀴를 돌며 자세히 꽃과 나무, 가꾸어 놓은 세계 각 나라 정원을 관찰하며 학습하였다.
어느덧 점심시간이 다가와서 여미락 로칼후드매장에서 점심하였다. 어제 순천만 습지에서 짱뚱어탕을 맛있게 즐겼음을 기억하고 다시 짱뚱어탕을 주문하였다. 역시 부드럽고 고소한 짱뚱어탕이 일품이었고, 짱뚱어가 사랑스러워졌다.
점심을 마치고 내리쬐는 햇볕이 너무너무 강열하고 따가워서 식물원 2층 에어컨 카페에서 시원한 차를 마시며 쉬기로 했다. 스마트폰 검색도하고 SNS도 하며 사진들을 정리하였다. 오후 2시에 국가정원 동문을 나와 택시를 부르고 고속버스터미널로 갔다.
오후 3:40분 순천 출발, 목포행 버스에 올랐으며 남해고속도로로, 순천~고흥~벌교~조성~보성 녹차~화순~장흥~강진~서영암/영산강 대교 건너서 목포 터미널에 도착하니 5:30분이었다. 남해고속도로를 난생처음으로 달려보았기에 싸인보드를 눈여겨보며 남도의 풍경을 눈여겨보았다.
목포에 선 디아코니아 자매회 언님들과 만나기로 하였다. 언님(어진이)들은 디아코니아 요양원에서 치매의 어머니를 돌보아 주셨고, 소천하시어 장례도 언님들과 함께 했으며, 올해가 어머니 소천 3주기였다.
우리 부부가 목포에 온 것은 언님들의 수고와 돌봄이 고마워 식사라도 접대하려고 온 것이며, 언님들이 좋아하는 메뉴로 감사의 밥상 시간을 갖게 된 것이다. 목포 구도심 정육식당에서 등심 등 특수부위로 즐겼고, 점주는 육회 등을 제공 봉사해 주며 언님들을 환대해 주었다. 목포 지역 분들도 언님들의 섬김과 봉사를 알아주고 있었다.
우리는 만찬 후 목포 바다의 해지는 황혼과 야경을 보러 ”스카이브리지“로 갔다. 목포대교가 보이는 바닷물결 위를 걷도록 브리지를 놓았고, 걷는 길 다리 아래로는 출렁이는 바다 물결이 보였는데, 나는 가슴이 졸여와서 걷지 못했다. 어둠이 덮이고 불빛이 반짝이는 목포 브리지의 야경은 환상적이었다. 우리는 바다야경을 바라보는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즐겼다.
목포 디아코니아 자매회 숙소에 도착하니 오후 9시였고, 2증 숙소에서 노곤한 몸을 쉬었다. 감사합니다!
세쨋날, 목포 김대중 기념관~목포 최초의 양동교회 방문!
(2024. 6. 19. 수)-목포 디아코니아 자매회는 개신교 초교파 여성독신 수도공동체로써 "한국 디아코니아 자매회 본원"으로, 목포시내 분기점 부근 대로에서 소로로 접어들고, 산길 좁은 길로 통해 울창한 나무들의 아치 사열을 받으며 들어서면 2층의 아담한 본원이 보인다. 2층 숙소에 들어서니 고요함이 평온해진다.
아침에 자매회 뒷동산 동백꽃 길과 앞 뜰을 거닐었고, 단촐하고 정갈한 둥근 밥상에서 언님들과 맛있게 식사를 한 후, 동생 언님의 운전으로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으로 향하였다.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 방문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은 목포 1항을 바라보며 삼학도에 위치하고 있었고, "평화의 나래, 세계를 품다"라는 주제로 개원 되었으며(2013. 6. 15.) , 김대중 대통령의 정신인 "민주주의와 인권, 평화의 가치"를 펼치는 일대기를 전시하고 있었다.
기념관 2층 전시실을 관람하고, 1층 카페에서 차 한잔의 시간을 가졌다. 창밖으로 목포1항을 바라보며 김대중 선생과 민주화투쟁으로 함께한 젊은 시절을 회상하였다. 학창 시절, 대학시절, 목회시절을 회상하였고, 해외 선교지 쿠알라룸루르(Kuala Lumpur)에서 김대중 대통령 환영 리셉션에 참여하여 김대중 대통령과 손을 마주 잡았던 그 시절도 떠올랐다.
목포 바닷가 평화의 광장에서 오찬을
어느덧 점심시간이 다가와서 목포시내 평화의 광장 바닷가 맛집거리로 향했다. 주차할 곳이 없어 길가에 겨우 세우고 도로 옆 식당에 들어갔다. 메뉴를 보고 제철 병어 졸임을 주문하였으며 푸짐한 남도 생선탕 밥상이 펼쳐졌다. 새우튀김과 고구마튀김, 정갈한 밑반찬 등이 입맛을 돋우고 있었다.
나는 반찬 중 처음 보는 고추장 같은 것을 가리키며 종업원에게 물으니 "갈치속젓"이란다. 갈치속젓을 밥 비벼 먹으니, 그 달콤 매콤 상큼한 맛이 입맛을 돋우고 모든 음식에 맛을 주었다. 푸근한 병어 졸임 남도 밥상으로 즐거운 오찬이었다.
목포의 최초 교회인 양동교회를 찾아서
오후 들어 서니 불볕더위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목포 구도심 유달산을 마주 보이는 "양동"으로 향했다. 양동 골목길을 굽이굽이 돌며 양동교회를 찾았고, 스쳐 가는 골목 길가에 "이난영 노래비"도 보였다. 양동 소로 길가 언덕 골목에 "양동교회" 간판이 보였으며, 차를 길가에 주차하고 작은 언덕길로 마주 보이는 양동교회를 찾았다.(오후 2시)
양동교회는 고색창연한 돌 교회로 "선교백칠 주년 기념비"가 마주 보였다. 역사적인 교회 전경을 경내가 좁아서 찍을 수 없었으나 이리저리 돌아보며 옛 건물의 사적 사진을 찍었다.
동생이 약속한 장로님이 도착하여, 양동교회 좌측의 하층 역사자료실로 안내받았다. 역사자료실 양 벽면에는 양동교회 역대 선교사와 목회자 사진, 교인들의 역사적인 사진과 기록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당회록 등 유물들과 유품들도 전시되고 있었다.
우리는 역사자료실 중앙의 긴 탁자를 마주하고 앉아 장로님의 역사 이야기를 경청하였다. 목포 양동교회는 1897년에 설립되었며, 남 장로교 유진벨 선교사가 1년 전(1896년)에 양동에 선교지를 매입하고, 매서인 변창연 조사를 파송하여 천막 교회로 창립하게 되었단다. 이미 목포 사람들은 경성(서울)을 왕래하며 언더우드 등 선교사로부터 복음을 받아들인 분들이 있었고 양동교회를 창립할 수 있었다. 선교사들은 양동교회와 인접하여 학교와 병원을 세우고 복음 전파 되어 교회는 전남 인근으로 퍼져 나갔으며 3.1 독립운동, 항일운동, 신사참배 반대 운동 등 중심을 이루었다.
양동교회는 해방과 한국전쟁 후 교단분열에 의해 양동교회(기장), 양동제일교회(통합), 새한교회(합동)로 분리되었으나, 역사는 공유하고 있단다. 장로님은 "교회역사를 자기편 입장에서 편견으로 자료를 보고 기술하지 말 것을 강조하며,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조명하고 돌아보며 협력해 나가야 함을 강조하셨다.
양동교회는 문화재 등록 교회이며, 전주~광주~목포~순천을 잇는 역사적인 선교벨트와 전남 교회들을 유네스코 역사문화 등재를 준비하고 있다 하였다.
자료를 찾는 내게 장로님은 급히 일어나서 교회 사무실로 향하여 자료집을 제공해 주었다. 즉, "등록문화재 목포 양동교회 기록화 조사 보고서"(목포시, 2020)로 최근 자료집을 제공받은 것이다.
얼떨결에 남도 2박 3일 번개여행을 마치며
오후 3시에 양동교회를 나서서 근대역사문화의 거리에서 카페를 찾아 쉼과 정리의 시간을 가지고, 목포역에 도착하여 KTX기차로 충주로 귀가하여 얼떨결에 번개여행 2박 3일을 마치었다.
첫날(6.17)에는 KTX로 충주출발 순천~보성~고흥~여수~순천 여행이었다. 국가정원 앞 호텔에서 첫날밤을 지냈다.
둘째 날(6.18)에는 순천~목포 여행으로 국가정원을 방문하고, 남해고속도로로 목포에 도착하여, 디아코니아 자매회 언님들과 만찬도 하고 스카이브리지의 노을 지는 바다를 보고, 자매회 본원에서 묵었다.
세쨋날(6.19.)은 남도여행 마지막 날로, 김대중 기념관과 목포 최초 양동교회를 방문하고, KTK로 목포에서 오송을 경유하여 충주 집으로 향하는 일정이었다.
얼떨결에 떠난 2박 3일 번개여행은 우리 부부에게 깨달음과 즐거움을 누리며 잊지 못할 여행이었다. 한국의 아름답고 풍성한 축복받은 나라임을 보았고, 남도 민들의 여유 있는 삶과 멋, 다정한 삶의 모습을 체득할 수 있었다.
또한 고난과 수탈 압박의 역사 속에서도 근면하며 묵묵히 인내하며 일구어 온 끈질긴 민초들의 삶을 남도여행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글:노종해-2024. 6. 24. 월)
*****[얼떨결에 번개여행 화 보]*****
*순천만 습지에서
*보성 녹차밭
*섬섬백리길-고흥에서 여수 돌산도까지!
*여수 밤바다 풍경!
*순천만 국가정원
*목포 디아코니아 자매회
*목포 김대중 노벨상 기념관
*목포 최초의 양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