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김태우 전 서울시 강서구청장이 10·11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국민의힘 후보로 확정됐다.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는 17일 국회 본청에서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경선 결과 김태우 후보가 승리했다고 발표했다. 알다시피 강서구가 40억 원에 이르는 혈세로(지방선거의 재·보궐선거 경비는 해당 지방자치단체 부담) 구청장 선거를 다시 치르게 된 이유는 김 후보에 대한 대법원 확정판결 판결 때문이다. 그런데 국민의힘은 보궐선거의 원인을 제공한 장본인을 재공천했다. 우리 헌정사에 전례가 없는 엽기적인 사건이다.
검찰 수사관 출신인 김 후보는 문재인 정부 시절 청와대 특별감찰반에서 일하다 각종 비위 혐의로 대검찰청 감찰을 받게 되자 특감반원으로 수집한 첩보를 바탕으로 언론을 통해 각종 폭로에 나섰다. 김 후보는 자신의 행위를 “공익신고”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그의 폭로 동기와 목적에 공익성이 없다고 판단했고, 지난 5월 공무상 비밀 누설 혐의로 유죄 확정판결을 내렸다. 지난해 대선 후보 경선 때 윤석열 캠프에 합류했던 김 후보는 작년 6월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공천을 받아 강서구청장에 당선됐으나 구청장직을 잃었다.
김 후보는 또 한 번 대법원 판결을 비판하며 자신의 재출마를 합리화했다. 그는 “저와 관련된 재판 때문에 선거를 다시 치르는 점은 죄송하다”면서도 “조국이 유죄면 저는 무죄”라는 논리를 폈다. 자신의 유죄 확정판결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재판과 무관한데도 억지 궤변을 늘어놓은 것이다. 범법에 대한 반성과 사죄는커녕 사법부의 판결을 부정하고 비난하는 오만불손과 후안무치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김 후보가 이처럼 오만무례하게 뻔뻔함을 과시하는 배경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있다. 윤 대통령은 유죄 확정판결 3개월 만인 8·15 광복절에 김 후보를 특별사면했다. 대법원판결을 부인하는 행위이자 법치주의 유린이라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윤 대통령은 사면권을 악용하여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의 원인 제공자가 다시 선거에 출마할 수 있게 만들어줬다. 법치도, 정치도, 국민도 모두 무시하는 안하무인의 독선이었다. 김 후보는 사면되고 3일 만인 8월 18일 강서구청장 예비후보 등록을 마친 뒤 곧바로 선거운동을 시작했다.
애초 국민의힘은 김 후보의 공천을 부담스러워했다. 국민의힘 당규는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의 공직선거법 위반 등으로 인하여 재보궐선거가 발생한 경우 당해 선거구의 후보자를 추천하지 아니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하지만 대통령실의 압박이 워낙 거세자 입장을 바꿨다. 국민의힘은 경선을 통해 보궐선거 후보를 뽑는 형식적 절차를 밟긴 했으나, 결과는 빤히 예견된 일이었다. 그러니 이번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는 사실상 윤 대통령의 선거나 다름없다.
어쨌든 10·11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는 국민의힘 후보가 확정돼 대진표가 짜인 상황이다. 김태우 후보를 재공천함으로써 국민의힘은 공당이 아니라 대통령의 꼭두각시 사조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시켜줬고, 이번 강서구청장 보선은 ‘윤 대통령에 의한, 윤 대통령의 선거’로 치러지게 되었다. 윤 대통령이 선거의 배후로 등장함으로써 10‧11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는 내년 4‧10 총선을 앞두고 서울 민심을 확인할 수 있는 선거가 되었다. 나아가 전국에서 유일하게 치러지는 단체장 선거인데다 추석 연휴를 끼고 치러지는 선거여서 내년 총선 민심을 가늠해볼 수 있는 전초전이 되었다.
강서구청장 보선은 아직 본 선거가 시작되지 않았고 여러 변수가 적지 않을 터라 섣불리 결과를 예단하긴 어렵다. 하지만 국민의힘 후보에 대한 비판의 여론이 강할 거라는 예측은 어렵지 않다. 보궐선거의 원인을 제공한 장본인을 후보로 재공천하는 헌정사 초유의 엽기적인 행각을 벌인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 그리고 당사자인 김 후보의 후안무치함에 대해 좋게 보아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정치 도의를 저버린 대통령실과 여당의 몰상식한 처사를 표로 심판해야 한다는 민심이 보통의 상식 아니겠는가.
최근 여론조사의 흐름을 봐도 상식적인 민심이 확인된다. <리얼미터>가 <미디어트리뷴> 의뢰로 지난 11~12일 이틀간 만 18세 이상 강서구 유권자 8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진행해 17일 공개한 결과에 따르면, 강서구청장 후보 지지도에서 더불어민주당 진교훈 39.4%, 국민의힘 김태우 28.1%로 나타났다. (※주1) 이어 진보당 권혜인 6.2%, 정의당 권수정 4.4%, 자유통일당 고영일 2.8%, 우리공화당 이명호 2.4%, 민생당 김영숙 2.2%, 녹색당 김유리 1.9% 순으로 조사됐다. 부동층은 12.6%(없음 7.0%, 잘 모름 5.6%)였다. (※주2)
내년 4월 총선 전망도 정권 심판 여론이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갤럽>이 지난 5~7일 사흘간 전국 유권자 1,000명을 상대로 진행해 8일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내년 총선에서 ‘현 정부를 견제하기 위해 야당 후보가 많이 당선돼야 한다’(50%)는 응답이 ‘현 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여당 후보가 많이 당선돼야 한다’(37%)는 응답을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14%는 의견 유보). 현재 지지하는 정당이 없는 무당층에서도 48%가 야당 승리를 원했고, 여당 승리는 22%였으며 30%는 의견을 유보했다. (이상 여론조사 관련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민심이 정부·여당에 대해 비판적인 이유는, 윤 대통령의 일방통행 독주와 국민의힘이 ‘대통령실의 여의도 출장소’로 전락해 정치가 실종된 탓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단식 19일째인 18일 건강 악화로 병원으로 이송됐는데, 대통령실과 여권은 철저히 무시와 조롱으로 일관했다. 17일 대통령실 관계자는 일부 언론에 이 대표의 단식에 대해 “누가 (단식 중단을 하지 못하게) 막았느냐. 아니면 누가 (단식을) 하라고 했느냐”라고 냉소했다. 비정하기 짝이 없다. 윤 대통령은 취임 이후 단 한 번도 야당 대표를 안 만났고, 지난달 국민의힘 의원 연찬회에선 야당과 협치할 생각이 없다고 공언하기까지 했다.
검찰이 곧 이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고 체포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할 것이라는 언론 보도가 이어진다. 하지만 검찰의 행태에 대해 강한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검찰은 왜 굳이 국회 회기 기간에 맞춰 구속영장을 청구하는가. 만일 검찰 주장대로 이 대표의 혐의 입증에 자신이 있으면 국회 비회기 기간에 구속영장을 청구하면 될 일 아닌가. 그러면 국회 표결 핑계 댈 일 없이 간단히 처리할 수 있는 사안이다. 야당 대표에 대한 정치 탄압과 무관한 수사라면 국회 비회기 기간에 구속영장을 청구해 간단히 처리할 수 있는데도 검찰은 굳이 국회 회기 기간을 고집하고 있다. 그러니 검찰에 대해, 국회를 체포동의안 표결로 몰아가 야당을 분열시키고 국회 본연의 역할인 정부 감시와 견제의 기능을 마비시키려는 불순한 정치적 공작을 벌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
정치에서 최소한의 정치 도의와 상식마저 실종되고 말았다. 윤석열 정부의 냉엄한 정치 현실이다. 대통령과 여당이 권력 놀음에 몰두한 나머지 정치가 실종된 결과는 고스란히 그 피해가 국민에게 돌아간다. 국민을 이기는 권력은 없다. 권력이 민심을 거슬러 국민과 맞서 싸우는 것은 스스로 제 무덤을 파고 파멸을 재촉할 따름이다. 보궐선거의 원인을 제공한 장본인을 후보로 재공천함으로써 헌정사에 길이 남을 엽기적 행각을 벌인 윤 정부와 국민의힘에 대한 단호한 심판은 깨어있는 시민의 몫이다. (2023년 9월 18일)
※주1. 지난 8월 28~29일 조사에선 더불어민주당 진교훈 후보와 국민의힘 김태우 후보가 각각 30.1%, 29.9%로 초접전 양상을 보였으나, 이번 조사에서는 진 후보는 9.3%포인트 상승, 김 후보는 1.8%포인트 하락한 양상을 보이며 격차가 오차범위(±3.5%포인트) 밖으로 벌어졌다.
※주2. 이 여론조사는 무선가상번호(80%)·유선RDD(20%) 자동응답 방식으로 실시됐으며, 응답률은 2.0%,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5%포인트다.
※주3. 이 여론조사는 무선가상번호(100%) 전화조사원 인터뷰 방식으로 실시됐으며, 응답률은 14.6%,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