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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 의식에 관심을 가진다는 일은 의식 없이 세계를 설명하는데
한계를 느꼈기 때문 일 것입니다.
아직까지는 관찰자라고 부르는 개인을 상정하고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많은 부분 보는 시각을 전환 해 나가고 있는 부분이 엿보여,
근본을 향한 한걸음 진일보 한다고 보여지며,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일도 흥미롭다 싶습니다.
오늘은 물리학과 우주론에 대한 새로운 접근방식을 제시하는 책,
천재 과학자인 로버트 란자 박사의 ‘바이오 센트리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유튜브 동영상(약 21분 분량)을 출처 링크하며,
관심있는 분을 위해 내용이 다소 길지만 한번쯤 음미해 볼만한 글들이다 싶어 스크립트를 아래 게재합니다.
참고바랍니다.
동영상을 보다 보면 우리가 듣는 현대적 강독이 훨씬 앞서가고 있음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 * * * * * * * * * * *
유튜브 동영상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mDMN9yNhZ-Y&t=11s
내용: [영상 순서]
1:30 암흑으로 가득한 우주
4:30 태초에 무엇이 있었던가?
7:00 나무가 쓰러지는 소리
9:20 우주는 어디에 있을까?
12:45 관찰하기 전까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14:30 시간은 허상이다
17:08 공간도 허상이다
19:10 의식의 미스터리
20:50 죽음은 존재하지 않는다
스크립트:
지금까지 우리는 우주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안다고 믿었다
그러나 최근 우주의 96%가 암흑물질과 아무 에너지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리고 우리는 그게 무엇인지 알지 못하며 여전히 빅뱅 이론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빅뱅이론은 왜 지구는 생명을 부양하기에 적합한 환경을 유지하고 있는가라는
우주의 신비에 관한 가장 기본적인 질문에도 대답하지 못 한다
세계적인 생명 공학자이자 줄기세포 분야 세계 최고 권위자이며
아인슈타인의 비견되는 천재 과학자인 로버트 란자 박사는
바이오 센트리즘을 통해 생명과 의식이 우주의 실체를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면서
양자 이론을 근거로 우리가 생각하는 현실은 의식을 수반하는 과정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기존의 이론들이 물리적 세상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으며
생명과 의식의 본질을 밝혀내지 않는 한 그 과제를 절대 해결할 수 없다고 한다
란자 박사는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서 물리학으로는 부족하다고 말하며
생명과 의식이 우주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한 핵심 요소라고 주장한다
바로 이와 같은 접근방식을 가리켜 생물 중심주의라고 부른다
오늘은 물리학과 우주론에 대한 새로운 접근방식을 제시하는 책, 바이오 센트리즘에 대해 이야기 해보겠다
우주는 최근까지도 그 기원이 신비로 둘러싸인 태초의 법칙에 따라 생명 없는 입자들이 서로 충돌하는 공간이다
여기서 생명체는 알 수 없는 모종의 과정을 거쳐 탄생한 존재로서
물리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다윈의 메커니즘에 따라 지속적으로 그 형태를 변모시켰다
그러나 이러한 생명체는 우리가 아직까지 제대로 밝혀내지 못한 의식을 포함하고 있다
과학이 어떤 영역도 물질이 어떻게 의식으로 전환되는지 밝혀내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의식의 존재를 부정하는 방식으로 대처해 왔으며
인간이 나타내는 가장 기본적인 현상에 대한 이해는 지극히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심지어 기존 물리학은 이러한 상황을 전혀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빅뱅 이론이 우주의 기원과 본질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설명해 주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물리법칙은 생명이 살 수 있도록 정확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일까
가령 빅뱅의 폭발력이 100만분의 1만큼 더 강했더라면
팽창 속도가 너무나 빨라 은하계와 생명이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강력이 2%만 더 약했더라면 원자핵은 생성되지 못했을 것이며
중력이 조금이라도 약했더라면 태양과 같은 항성이 불타오르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빅뱅과 강력 중력은 기껏해야 태양계와 우주 안에 존재하는
그리고 너무나 정교해 감히 무작위라고 주장할 수 없는 200개가 넘는 물리적 상수들 중 3가지에 불과하다
아직 어떤 이론으로도 정확하게 예측하지 못하는 이러한 상수들 모두 치밀하게
그리고 생명과 의식의 존재를 허용하기 위해 신중하게 계산된 것처럼 보인다
오늘날의 과학은 모든 구성요소가 제각각 어떻게 작동하는지 놀랍도록 정확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과학은 하나의 영역에서 만큼은 허점을 드러낸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 영역에는 대단히 중요한 질문이 포함되어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우주의 실체는 무엇인가
종교는 우주의 실체에 관한 근본적인 물음에 회피하거나 무시하는 태도를 유지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위기를 잘 넘겼다
그러나 신은 이미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스티븐 호킹이나 칼세이건 같은 몇몇 과학자들은 오히려 모든 것에 이론이 완성될 것이며
그때가 오면 우리는 우주를 완전히 이해하게 될 것이라 주장했다
하지만 그 순간은 아직 우리를 찾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 이유는 우리의 근본적인 세계관 자체 결함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해결책에 도달할 수 있다
지금까지 과학자들은 우주를 이루는 한 가지 중요한 요소를 어떻게든 외면하고자 했다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의식이다
생명은 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 있다
이 생명은 유물론으로 설명할 수 있는 존재일까
세포와 분자를 들여다본다고 생명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지각과 경험이 얽힌 인지 구조를 외면하고서는 생명을 설명하지 못한다
내가 내 자신의 물리적 세상에서 중심이듯 애벌레 역시 자신의 세상에서 중심일 것이다
우리 둘은 함께 상호작용을 하고 39억 년의 생물 역사의 한 순간에 동시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뿐만이 아니라 우주의 근간을 이루는 신비로우면서 암시적인 패턴으로 연결돼 있었다
보편적 이론 대부분은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그것은 그 이론을 창조한 것이 바로 인간이라는 점이다
인간은 세상을 관찰하고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생물학적 존재다
물리학자들은 흥미롭고 매력적인 대통일 이론을 완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우주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에 대답을 내놓았지만 미스터리의 핵심은 여전히 비켜가고 말았다
그 핵심이란 우주의 법칙이 태초에 관찰자를 창조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생물 중심주의의 핵심 주제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바로
그 관찰자의 존재에 의해 비로소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우리는 생명체가 없어도 우주는 저쪽 바깥에서 틀림없이 존재할 것이라고 쉽게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하나의 사고 과정이며 사고 과정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두뇌라는 사고 기관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러한 사고 기관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논의를 위해
우리가 분명하게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모든 사물이 인식 활동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는
결론을 받아들여보자. 그렇다면 아무런 인식 주체가 없을 때 존재는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상이 독자적으로 그리고 우리가 보는 것과 비슷한 형태로 존재한다고 믿는다
이러한 관점에서 인간이나 동물의 눈은 외부 세상을 정확하게 받아들이는 창문에 불과하다
나무는 그 자리에서 있고 다른 똑같이 빛난다
우리가 나무와 달을 인식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말이다
이들 모두 우리와 무관하게 존재한다
시각 기관이 없는 생명체도 근본적으로 현실에 존재하는 동일한 대상을 지각한다
반면 생물 중심주의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아인슈타인은 실제 세계가 어떤 지각 행위에 대해서도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전제는 물리학의 기본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전제가 옳은 것인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란자박사는 이런 질문을 한다
숲에서 나무가 쓰러질 때 아무도 없어도 소리는 나는 것일까
대부분의 사람은 당연히 소리가 난다고 할 것이다
사람들의 이러한 반응은 객관적이고 독립적인 현실에 대한 그들의 믿음을 드러낸다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근본적인 태도는 우리와 무관하게 그렇게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미물인 나는 우주 속에서 별로 중요한 존재가 아니라는
성서 시대 이유로 이어져 내려온 서구 세계관과 잘 맞아 떨어진다
소리는 매질의 교란에 의해 발생한다
일반적으로 매질은 공기다 숲에서 나무가 쓰러질 때 공기는 빠르게 진동한다
그렇다면 나무가 쓰러질 때 우리가 실질적으로 감지하는 대상은 공기의 진동이다
과학적 설명에 따르면 크고 작은 공기압의 변화는 두뇌와 귀로 이뤄진
청각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을 때에도 지속된다
이 변화는 작은 바람이 빠르게 부는 것과 같다 하지만 그 바람 속에 소리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나무가 쓰러질 때 누군가 근처에 있다면 공기 파동이 물리적으로 고막을 진동 시킨다
공기파동은 그 자체로 소리를 만들지 않는다
가령 1초에 15의 진동하는 파동은 주변에 아무리 많은 사람이 있더라도 듣지 못하고 침묵 속으로 사라진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청각적 경험에서 관찰자의 귀와 두뇌는 공기 파동만큼 필수적인 요소다
바로 이러한 형태로 우리의 의식은 외부 세상과 긴밀하게 얽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도 없는 숲에서 나무가 쓰러지면서 만들어내는 것은 적막한 공기의 파동뿐이다
그럼에도 누군가 콧방귀를 뀌며 아무도 없어도 나무는 쓰러지면서 소리를 낸다라고 주장한다면
그건 아무도 없다는 말이 정확하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의 마음은 여전히 나무 주변을 맴돌고 있다
그는 여전히 그곳에 있는 자신을 가정하는 것이다
우리가 달을 보지 않을 때 다른 사라진다
다른 내 자신과 무관하게 지구 주위를 돌고 내가 아닌 다른 이들이
달을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하더라도 그것은 사고과정의 산물에 불과하다
중요한 사실은 인식 주체가 없을 때 다른 어떤 의미로도 그리고 어떤 형태로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보는 것은 오로지 인식된 세상뿐이다
그리고 그러한 인식 외부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하나의 시각적 현실만이 존재한다
바로 우리 두뇌 속의 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외부 세상은 분해 또는 마음 속에 있다
그렇다면 태어날 때부터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의 경우는 어떨까
사물이 외부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감촉을 느낄 수 있단 말인가
시각은 현실을 바꾸지 않는다
촉각 역시 마찬가지로 우리의 의식이나 마음속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다
우리가 마주하는 것이 오로지 자신의 의식이라면 우리의 의식은 우리가 인식하는 모든 공간을 따라 확장하게 된다
우리가 경험하는 유일한 세상이 자신의 의식이라면 우리는 과학의 초점을
차갑고 기계적이고 외적인 우주로 부터 하나의 의식이 다른 의식과 맺는 관계로 전환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팔다리는 외부 세상과 달리 고유한 자기 통제력에 따라 의식적으로 움직인다고 믿는다
그러나 최근 실험 결과는 뉴런의 자극이 시속 390km 속도로 이동하는 두뇌의 전기화학적 연결망 덕분에
의사결정이 우리의 인식보다 훨씬 빨리 이뤄진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다시 말해 우리의 두뇌와 마음 역시 생각이라고 하는 의식적 간섭 없이 자동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가 하는 생각 또한 스스로 일어나는 자율적 과정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통제는 환상에 불과하다 아인슈타인은 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스스로 행동할 수 있지만 스스로 의지할 수는 없다
신경과학자 벤저민 리벳의 연구를 비롯한 여러 다양한 실험 결과는
두뇌가 먼저 무의식적인 차원에서 자율적으로 의사결정을 내리고
그 이후에 우리가 스스로 의식적인 의사결정 과정을 내렸다고 인식하게 된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럼에도 우리는 심장이나 신장에 축복 받은 자동 기능과는 달리 두뇌 활동은
나 자신이 의식적으로 통제한다고 믿는다
리벳은 자유의지에 대한 이러한 착각은 분해해서 일어나는 연속적인 사건들을
습관적으로 해고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기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첫째 우리는 종종 죄책감을 자극하는 부정적인 자기 통제력이나
혼란스런 상황을 수습하려는 강박적인 집착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이 전개되는 과정을 느긋하게 즐길 수 있는 자유로운 존재라는 뜻이다
둘째 두뇌에 관한 오늘날의 연구 결과는 외부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현실이
사실은 우리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이야기를 들려 준다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은 자신의 마음속에 있다
다시 말해 외부 세상과 내부 자아를 구분하는 경계란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에 우리의 인식은 경험적 자아와 우주의 편재하는 에너지장이 만난 결과물이다
아원자 입자를 관찰하는 과학자는 스스로 관찰 대상에 영향을 미친다
관찰자와 관찰행위는 관찰 대상 및 관찰 결과와 필연적으로 긴밀하게 얽혀있다
가령 전자는 입자이자 파동으로써 존재를 드러낸다
하지만 전자가 어떠한 방식으로 그리고 어디에 존재하는지는 관찰 방법에 따라 달라진다
양자물리학이 등장하고 객관주의에 대한 믿음이 허물어지면서
과학자들은 비로소 세상이 우리 마음의 창작물이라는 오랜 주장의 다시 한번 주목했다
미국 표준기술연구소 과학자 빅터커브니는 이렇게 말했다
원자를 관찰하는 행위는 원자가 변화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역할을 한다
이론적으로 볼 때 충분히 집중적으로 관찰하기만 한다면 핵폭탄의 폭발도 막을 수 있다
단 백만조 분의 1초마다 모든 원자를 감시해야 한다
이는 물리적 세상 그리고 물질과 에너지의 근본적인 구조가
관찰행위의 영향을 받는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또 하나의 근거다
20세기 위대한 물리학자 유진 위그너는 이렇게 말했다
관찰자의 의식을 가정하지 않고서 물리학 법칙을 일관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양자 이론이 의식의 존재를 필요로 한다는 말은 우리의 마음이야말로 궁극적인 현실이며
관찰 행위만이 우리를 둘러싼 모든 현실에 형태와 색채를 부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암묵적으로 의미하는 것이다
관찰자가 없을 때 물질은 확정되지 않은 확률 상태에 머물러 있다
의식 이전의 우주는 오로지 확률로만 존재한다
철학자와 물리학자들은 이미 오래 전 부터 시간의 개념의 의문을 품었다
철학자들은 과거란 마음속에서 개념으로서만 존재하는 것이며
지금이 순간에만 떠올릴 수 있는 신경 회로적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미래 역시 생각과 추측으로 이뤄진 정신적 산물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생각은 그 자체로 지금이 순간 일어나는 사건이다
그렇다면 시간은 어디에 있는가
시간이 없으면 열역학 제2법칙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과학에서 엔트로피 개념은 시간의 방향성을 전제로 한다
엔트로피가 없다면 시간은 존재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많은 물리학자들은 엔트로피와 관련해 이와 같은 전통적지에 의문을 던졌다
우리는 엔트로피를 시간의 구체적 방향성을 드러내는 구조의 해체가 아니라
무작위적인 움직임이 나타나는 현상으로 볼 수 있다
물질과 분자는 움직이며 그 움직임은 지금이 순간 아무렇게나 일어난다
우리는 이러한 움직임을 반드시 시간으로 설명해야 할까
이처럼 무자기한 엔트로피를 시간의 허구성을 드러내는 사례로 삼아서는 안 되는 것일까
두 기체 분자들이 이동했다고 할 때 이동은 시간에 따른 것이 아니다
분자들은 이동했고 그에 따라 완전한 혼합이 이뤄졌다
그뿐이다 그 밖에 다른 요소는 우리가 질서를 부여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추가한 개념에 불과하다
이러한 관점으로 보게 된다면 엔트로피 과정이나 구조의 해체는 패턴과 질서를
파악하려는 우리 마음의 특성에 따른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란 어떻게든 실체로 인정하려는 과학의 절박한 요구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우리는 오로지 우리가 바라보는 것만 확인할 수 있다
시간은 공간적인 세상에 모든 정지 화면을 움직이게 만들어주는 내적 기능이다
우리의 마음은 영사기처럼 필름을 살아 있게 만든다
시각을 비롯한 모든 경험은 분해 안에서 정보가 조직화 되면서 일어나는 소용돌이다
생명이 없으면 시간도 움직임도 없다
현실은 발견될 때까지 고유한 특성을 갖고 외부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관찰자의 관찰행위에 의해 존재하게 된다
거북이가 껍질 속에 살든 우리는 언제나 그러한 개념 속에 산다
그러나 생명체와 무관하게 사건이 일어나는 객관적인 외부 세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시간은 생명체를 떠나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우리가 주변의 변화를 인식하기 위한 도구이다
우리는 시간과 공간이 존재한다고 배웠다
그리고 그 가르침은 일상적인 경험을 통해 강화 된다
다른 곳으로 이동할 때마다 우리는 공간에 존재를 느낀다
시간과 공간은 물리적인 실체가 아니라 개념이다
생물 중심주의는 공간이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투영이며 이를 통해 경험이 시작된다고 말한다
공간은 생명체의 개념적 도구로써 감각 정보를 통합해 인식된 대상에
특성에 대한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해주는 외적 감각의 요소를 갖추고 있다
공간은 그 자체로 물리적 실체가 아니며 그렇기 때문에 화학물질이나
움직이는 입자와 동일한 방식으로 다뤄서는 안 된다
생명체는 외적 감각의 요소로 부터 얻은 감각 정보를 바탕으로 경험을 조직화한다
시간과 공간은 물리적인 세상이 아니라 우리 내면의 존재한다
그리고 이를 입증하기 위해 굳이 새로운 차원을 추가하거나 획기적인 수학을 개발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물체의 운동을 예측하기 위한 수학적 편의성을 어떻게 바라보든 간에
시간과 공간은 여전히 생명체의 특성으로 존재한다
우주 학자들은 빅뱅 당시에 모든 것이 연결돼 있었고
모든 것이 동시에 함께 태어났다고 말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텅 빈 공간 속에 떨어져 존재하는 모든 것이
원래는 서로 얽혀 있으며 다른 모든 것들과 직접적인 접촉을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공간의 본질은 무엇일까
텅 비어 있음 에너지로 가득한 물질적 존재 아니면 마음 속에 장일까
만약 외부 세상이 우리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개념이라면
그리고 지금이 순간 저기에 있다고 인식한 사물이 사실은 우리 머릿속에 있는 것이라면
당연하게도 모든 것은 다른 모든 것들과 연결돼 있다
우리가 광속으로 이동할 때 우주 속 모든 것은 하나로 연결돼 우리 눈앞에 펼쳐질 것이다
과학은 궁극적으로 우주 속에서 어떤 사건이 어떻게 일어나는지에 집중한다
우리의 일상생활을 보다 편리하게 만드는 과제에서 과학만한 것은 없다
하지만 과학에게 궁극적인 질문에 대한 대답을 내놓거나
존재의 본질을 알려달라고 요청하는 것은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이다
그건 물리학자에게 예술의 가치를 평가해달라고 부탁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우주학과 같은 학문을 통해 존재에 대한 심오한 질문의 대답을 내놓을 수 있다고 믿는다
생물 중심주의를 이루는 핵심 요소인 의식은 과학의 중대한 문제를 안겨다준다
의식은 우리에게 친숙한 존재이지만 설명하기는 대단히 어렵다
많은 과학자들이 의식은 두뇌의 기능과 관련된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두뇌의 어떤 부위가 어떤 기능을 담당하는지 밝혀내기만 한다면
의식의 문제를 모두 해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경험과 관련해 대단히 심오하고 복잡한 의식의 측면은 단지 부분의 기능을
모두 밝혀냈다고 해서 의식의 문제를 해결했다고 말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신경정보를 어떻게 분류하고 통합하고 보고하는지 이해한다고 해서
경험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스탠포드 대학교 물리학자 안드레이 린드는 이렇게 말했다
우주와 관찰자는 쌍으로 존재한다
의식의 존재를 외면하고서 우주에 관한 일관적인 이론을 완성할 수 없다
관찰자 없이 우주의 존재를 주장할 수 없다
우리는 죽음을 믿는다 인간은 모두 죽는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과 자신의 육체가 연결돼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언젠가 육체가 쓰러질 때 모든 이야기가 끝날 것이라고 믿는다
종교는 앞으로도 끊임없이 사후세계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사후세계의 존재를 확신할 수 있는가?
시간과 공간이 사라진 의식의 우주를 바라보는 생물 중심주의는
어떠한 측면에서도 완전한 죽음을 인정하지 않는다
육신이 소멸할 때 우리는 무작위의 원칙이 지배하는 당구대가 아니라
모든 것이 필연적으로 살아있는 세상에 존재한다
나는 누구인가 내가 곧 육체라면 나는 틀림없이 죽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의식이라면 즉 경험과 감정의 주체라면 다양한 형태로 변화할 지언정 죽지는 않을 것이다
의식은 무한한 존재이며 의식이 소멸할 수학적 확률은 제로다
우리는 특정한 사물이 나타났다 사라지고 만물이 탄생의 순간을 갖는 일상을 살아간다
죽음은 탄생의 순간의 모습을 드러낸 모든 제한적인 존재 주어진 운명이다
하지만 과학이 가장 자신 있게 내세우는 한 가지 원칙은 에너지는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과학은 에너지가 생성되지도 소멸되지도 않는다고 말한다
다만 그 형태가 달라질 뿐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에너지의 형태는 끊임없이 변화하지만 절대적인 양은 변화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존재를 이루는 핵심 에너지 또한 늘어나거나 줄어들지 않는다
이처럼 우리는 닫힌 에너지 시스템 속에서 살아간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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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생명과 의식이 우주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한 핵심 요소라고 주장한다.
*우주와 관찰자는 쌍으로 존재한다.
의식의 존재를 외면하고서 우주에 관한 일관적인 이론을 완성할 수 없다.
관찰자 없이 우주의 존재를 주장할 수 없다.
*시간과 공간" "공간의 본질" "죽음"에 대한 정의.
*나는 누구인가 내가 곧 육체라면 나는 틀림없이 죽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의식이라면 즉 경험과 감정의 주체라면 다양한 형태로 변화할 지언정 죽지는 않을 것이다. 의식은 무한한 존재이며 의식이 소멸할 수학적 확률은 제로다.
*우리는 특정한 사물이 나타났다 사라지고 만물이 탄생의 순간을 갖는 일상을 살아간다.
죽음은 탄생의 순간의 모습을 드러낸 모든 제한적인 존재 주어진 운명이다.
하지만 과학이 가장 자신 있게 내세우는 한 가지 원칙은 에너지는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과학은 에너지가 생성되지도 소멸되지도 않는다고 말한다.
다만 그 형태가 달라질 뿐이다.
또 한분의 선각이 과학분야에서 단일의식에 대한 포인팅을 하는 것 같아 놀랍기만 합니다.
얼마전 스피커님께서 강독하신 "우리는 이미 죽어 있습니다!" 라는 제목의 강독 텍스트를 읽는 듯 합니다.
"우주와 관찰자는 쌍으로 존재한다."
즉 단일 의식의 포인팅 같은데~
그냥 하나다~ 라고 표현 or 번역 되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원문 텍스트 번역도 아주 잘 된 것 같아 읽고 이해하는데 큰 무리가 없었습니다.
스피커 교수님의 현대적 강독과 은하수 도반 벗님의 노력 덕분인 것 같습니다.
두분 항상 건강하십시오.
대단히 감사합니다.
긴 내용 중 중요 핵심 부분을 이처럼 잘 간추려 요약 정리 멘트해 주시니,
동영상을 한 번더 보는 것과도 같은 효과입니다.
언급하신 내용들 공감하고 정성이 담긴 긴 댓글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