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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라포션 이름 (파라샤) | 모세오경 (토라) | 예언서 (하프타라) | 신약 (브리트하다샤) |
베훅코타이 / 내 규례 | 레 26:3-27:34 | 렘 16:19-17:14 | 눅 13:1-15:32 |
<단락 1> 1. 레 26:3 너희가 내 규례 (히 : 베훅코타이) 와 계명을 준행하면 (히 : 할라크 : 걷는다, 행하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맺은 시내산 언약은 순종에 대한 축복과 불순종에 대한 징계가 분명히 명시되어 있습니다. 이를 언약의 관계라고 말합니다. 이 언약의 내용을 어겨도 아무런 징계가 없다면, 그것은 언약의 관계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을 다 지켜야지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약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통하여 구원이 시작되어졌습니다. 동일하게 신약에 나온 성도들 또한 유월절 어린양 되신 예슈아의 피를 통하여 구원이 시작되어졌습니다. 구약의 성도들과 신약의 성도들 모두 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구원이 시작되어졌습니다. 즉, 하나님께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오직 믿음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롬 3:28). 그리고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를 경험한 이는 자신의 삶을 주님께 내어드리게 되어집니다.
1) 레 26:4 내가 너희에게 철따라 비를 주리니 땅은 그 산물을 내고 밭의 나무는 열매를 맺으리라 5. 너희의 타작은 포도 딸 때까지 미치며 너희의 포도 따는 것은 파종할 때까지 미치리니 너희가 음식을 배불리 먹고 너희의 땅에 안전하게 거주하리라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종이기 때문에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주인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종은 주인의 명령을 준행한 후에 어떠한 보상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보상을 주는 것은 주인의 은혜이지, 그것이 순종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켰을 때의 축복과 어겼을 때의 저주는 모두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종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삶에 헌신한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워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삶의 방향성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잃어버리면, 삶의 방향성을 잃어버리게 되어 혼란과 무질서를 따르게 됩니다.
시편 1편 1절에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말씀합니다. 시편 1편 3절에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의 말씀은 물질적인 차원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후에 열매를 맺게 되어지는 믿음의 성장과 성숙의 상태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형통’의 히브리어는 ‘찰나흐’이며, 그 뜻은 하나님의 계획이 뜻대로 진행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요셉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에게 다가온 것은 고난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를 형통한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는 그가 하나님의 계획과 뜻 가운데 있었기 때문입니다.
(1) 창 3: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원래 애덴동산의 삶은 하나님이 주인이시기 때문에 아무런 염려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 나라를 통치하고 다스리는 청지기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죄로 인해서, 더 이상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의 주인이 되어줄 수가 없습니다. 자신의 삶의 주인은 자신이였기 때문에, 자신이 책임져야 하고, 수고하고, 땀을 흘려야지만 먹고 살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공급해 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죄에서 우리를 건져내신 분이 예슈아이시고, 그 분은 살아있는 생명의 떡으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슈아의 십자가로 인해 하나님과의 깨어진 관계가 회복되어졌으며, 우리의 삶의 주인은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2) 마 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고 말씀 합니다. ‘재물’ 이라는 단어는 ‘맘몬’ (가나안 땅에 있었던 신의 이름)에서 왔습니다. 그래서 이 재물 뒤에서 사람을 조정하는 영이 있습니다. 돈이 조금만 더 있으면 좋겠다, 행복하겠다, 우리를 속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행복은 세상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재정훈련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부를 받을 것인가에 초점이 맞추어 있지 않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야 합니다. ‘누가복음 16장 11절에 (공동번역개정판) 만약 너희가 세속의 재물을 다루는 데도 충실하지 못하다면 누가 참된 재물을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말씀합니다. 예슈아는 우리가 세속의 재물 (세상의 재물)을 다루지 못한다면, 참된 재물 (하나님 나라의 재물)을 다룰 수 없다고 말씀합니다. 즉, 하나님의 방법으로 세상의 재정을 다스려야 하나님 나라의 재물을 맡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재물에 충성할 수 있겠습니까? 첫째, 재물의 노예가 되지 않고, 재물을 노예로 다루는 믿음으로 사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둘째, 재물을 보물처럼 소유하지 않고, 재물을 관리하는 청지기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셋째, 재물을 다루면서도 단순한 삶을 추구해야 합니다. 이러한 삶은 자동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결심만으로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특별한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재물에 노예가 되지 않고, 재물을 노예로 다룰 줄 아는 삶은 믿음으로 사는 삶을 훈련할 때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재정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연결되어져 있습니다. 마음이 있는 곳에 보물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8장 15절에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말씀합니다. 착한 마음은 헬라어로 ‘칼로스’이며, 목적이 올바른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좋은 마음은 헬라어로 ‘아가데’, 목적 (하나님의 나라)를 성취하기 위해서 권리포기할 줄 아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착한 마음과 좋은 마음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인내하지 못하는 하는 돌맹와 가시덤불과 길가에 있게 하는 것들을 우리의 마음에서 뽑아내야 합니다. 하나님은 투자할 곳을 이 땅에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투자는 절대 손해 보는 장사를 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착한 마음과 좋은 마음을 가진 사람을 지금도 찾고 계십니다. 그 자를 통해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30배의 축복, 60배의 축복, 100배의 축복을 주시길 원하십니다. 그리고 다니엘 11장 43절에 ‘그가 권세로 애굽의 금과 은과 모든 보물을 차지할 것이요’ 말씀합니다. 적그리스도는 이 세상의 금과 은과 보물로 많은 이들과 연합할 것이며, 영혼들을 미혹케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물질에 노예가 되지 않고 물질을 노예로 다스릴 줄 아는 삶은 믿음으로 사는 삶을 훈련할 때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주 ‘규례 (히 : 베훅코다이)’의 히브리어는 히브리어 ‘하카크 (~ 안에 새기다)’ 에서 파생되어졌습니다. 그리고 히브리어 ‘하카크’는 히브리어 ‘호크마 (실천적 지혜)’에서 파생되어졌습니다. 실천적 지혜라는 것은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지혜를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규례 (말씀)를 우리의 마음에 새기는 훈련을 지속적으로 하게 되어졌을 때에 그 지혜가 ‘호크마’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마음에 새긴다는 것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반복하고, 또 반복하여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감동을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 가운데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 어떤 사람이든 침체되며, 일상이 진부해지고 지루하며, 따분해 집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항상 유기적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으며, 좌우의 날선 어떠한 검보다 예리하고, 영과 혼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합니다. 즉, 그리스도인의 삶은 어제와 오늘이 동일할 수 없으며,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변화되어진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개인의 행복만을 위해 살아가는 자 (이기주의와 자기 중심적으로 사고하는 사람)는 자가 아닌,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하는데 뜻을 두어야 합니다. 진정한 자유와 해방은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누리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이 하나님께 드리고, 이웃들에게 나눔으로써 하나님의 의를 행할 때 맛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심는 것은 절대 손해 보는 것이 아니라 재물을 하늘에 쌓아두는 것입니다 (마 6:19-21). 이번 주 하프타라 (예언서)는 예레미야 17장입니다.
<단락 2> 2.렘 17:5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13. ... 이는 생수의 근원이신 여호와를 버림이니이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보이는 것을 믿기 때문에 힘과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믿게 됩니다. 그러나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와 수치를 받게 될 것입니다. 그 이유는 생수의 근원되신 하나님을 버린 결과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영혼이 생수의 근원되신 하나님을 가까이 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영혼은 점점 메말라 죽게 됩니다. 마태복음 5장 6절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풍성한 삶으로 초대하고 계십니다. 왕이신 하나님의 초대를 받은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배고픔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세상의 것으로 배를 채운다면, 어떠한 배고픔도 느끼지 못하게 됩니다. 디모데전서 4장 7절에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말씀합니다. 운동이 사람의 식욕을 자극하는 것처럼 세상과 분리되어진 거룩한 삶은 우리의 영적인 식욕을 증대시킬 것입니다.
1) 렘 17:7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8. 그는 물 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10. 나 여호와는 마음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하나님을 의지하고 의뢰하는 자는 모두가 기근에 시달릴 때에도 걱정 없이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이들은 우리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고 인정하는 자들이며, 매일 필요한 양식을 하나님께 구하는 기도를 한 자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거치른 광야 (세상)에서 물가 (생수의 근원되신 하나님)에 심겨진 나무가 되어졌습니다. 이제부터 이 나무가 해야 하는 것은 열매를 많이 맺으려고 노력하는 것보다는 생수의 근원되신 하나님께 깊이 마음의 뿌리를 내리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