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손에 이끌려 들어온 키는 멀대만큼 크고, 얼굴은 아주 순하게, 그리고 참 잘생긴 남학생 중 3이었어요 경주에서 과외할 때 였는데, 대부분은 과외가 소개로 이어지니까, 내가 과외하던 여학생의 어머니랑 그 아버지는 같은 직장에 다니는 분이셨어요 고등학교, 인문계 좀 보내달라고.. 연합고사가 있었던 당시, 그래도 경주는 비평준화 지역이라, 경주고, 계림고, 신라고 순이었죠 신라고가 인문계였기에 거기라도 들어가게 해 달라고 꼭 좀 부탁한다고 말씀하시는데, 어찌 거절하겠습니까?
다행히 3월이라 시간은 넉넉했죠. 첫날 수학을 시키는데, 정말 모르더군요. 그나마 더하기 빼기는 할 줄 알아서, 방정식부터 새로 가르쳐서 인수분해까지 시켰습니다.
숙제 무진장 내고, 덜해오면 무지막지하게 때리고... 아마도 제일 많이 때렸던 학생이었을겁니다. 늘 종아리에 멍 떠날 날 없었죠.
근데 참 착했어요. 반항한번 안하고 내 말을 참 잘들었어요 빗나갈법도 한데... 할머니랑 아버지랑 같이 산다고 들었는데, 어머니는 왜 안계신지는 기억이 안나네요
혼자 맞는게 억울해선지 친구들도 두어명 같이 공부할거라고 데리고 왔는데, 친구들은 제가 안때렸어요 제 철칙이 내가 정말 사랑하지 않는 학생은 때리지 않는다. 화가 났을땐 때리지 않는다. 부모님이 허락하지 않으시면 때리지 않는다. 아이가 반성하기 전에는 때리지 않는다.
좀 이상한가요? 그 녀석은 내가 아주 좋아했던 아이고...처음부터 끌렸어요 너무 너무 잘해주고 싶은 아이, 엄마가 되어주고 싶은 아이...보기만 해도 사랑해주고 싶은 아이
원래 사랑은 자기가 타고 난다는 말이 있잖아요? 아이들 가르치다보면 내 아이 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 아이들이 있었어요 편애가 되겠죠?
그러나 인간인지라... 다른 아이들 앞에서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저역시 편애하는 마음이 드는것을 어쩔 수 없더라구요
일년을 죽도록 공부시켜 반에서 거의 꼴찌하는 아이, 연합고사 잘보고 그래도 세번째 인문계 고등학교인 신라고등학교 합격시켰습니다. 그때 제가 얼마나 기뻤던지...
그렇게 고등학교 입학하고 그 아이는 과외를 그만두었어요 목표달성 했으니까요
그리고 몇년이 흘러 그 아버지가 전화가 오셨더군요 약주 한잔 하시고서..
"선생님, 그때 왜 선생님이 우리 아이 인문계 넣어줘서,.. 지금은 훈이 인문계 들어간게 후회가 됩니다."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지금도 이해가 안되지만, 결과가 나빠서 마음은 아직도 씁쓸합니다. 지금 뭘하며 어떻게 지내는지... 십년전에 중3이었으니 지금쯤은 군대도 다녀왔겠죠?
그러나 그 이후로는 소식이 끊겼어요 저도 대구로 이사를 왔고, 대구 와서도 여러번 이사를 하면서 전화번호도 바뀌고 해서..
그러나 지금도 경주에서 공부하던 아이들이 자주 생각이 나요. 참 인간적으로 친했던 아이들, 그리고 참 좋았던 부모님들...
하나 하나 다 적어두고 싶은 아이들이 참 많이 있거든요
도훈이 아빠를 닮아 키도 훤칠하게 크고 잘 생겼던 아이였는데, 꼭 인문계 넣는것이 전부는 아니었을거란 생각이 문득 드네요
어떻게든 인문계 가서 대학 가야 한다는 사고가 꽉 박힌 제 머리속으로 인문계 억지로 보내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이 들게끔 한 사건이어서
요즘도 공부 좀 못하는 아이들보면 제가 우겨서 인문계 넣으려고 하다가도 제동이 걸립니다 나중에 원망이 돌아올까봐서...
좋은 고등학교, 좋은 대학만이 인생의 성공이 아님을... 아이 적성에 맞는 일 찾아 시킬 수 있는 부모가 되어야 할텐데, 부모의 욕심이 늘 앞서게 되고
내 아이는 다른 아이보다 공부도 잘해야하고 키도 더 커야하고 얼굴도 더 잘생겨야 한다는 생각이 내 마음속에도 항상 웅크리고 있는 그런 엄마일뿐입니다.
쓰면 쓸수록 자식 농사엔 정답이 없다는 생각이 자꾸 드네요 처음엔 과외 보따리 풀어두면 죽을때까지 할말이 있을 줄 알았는데, 명쾌한 결론이 나올줄 알았는데 이렇게 공부시켜야 한다라고 정리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갈수록 어려워지네요
함께 이런 아이 저런 아이 얘기 나누며 함께 정답을 찾아나가리고 해요
괜찮으시죠? 여러분의 지혜도 꼭 보태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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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우리나라 사회 구조상으로는 원래 재산이 있어서 사업을 할 수 있든지 한 분야에 정말 특출나든지..기발한 발명이나 아이디어가 있든지+ 끈기집념...이 아니라면 공부 잘 하는 것 밖에 더 나은 직업이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다고 울 신랑이 그러더군요 - 고등학교 교사임
근데 공부로 안되는 아이는 무조건 공부로 밀어 부치는 것보다 그 아이의 소질과 적성을 찾아서 그쪽으로 계발하는 게 좋은 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 같은 경우는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서 하게 되는데, 무엇보다도 재미있게 공부를 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버지 생각은 후회할지 몰라도 도훈학생은 인문계 잘들어갔다고 생각하고 있을겁니다...인문계가 배울것 많은데...
도훈아번님이 야주까지 하시고 그런 전화를 한것이 약간 걸리긴 해도 그때 선생님의 가르침을 얼씨미 따라온 아이에게 만큼은 행복했던 기억으로남았으리라 생각됩니다 후회스러운결과가 나오긴해도 공부할땐 공부하는법을 커득하는것도 인생에있어서 꼭 경험해봐야하는 과제라고 ..지나보니 학창시절 그렇게 기억됩니다
저도 그맘이해합니다.우리아이가 실력이 안되서 일찌감치 실업계고로 보냈더니 의외로 거기서 자신감얻어 좋은 전문대 수시로 들어가 대학생활을 활기차게합니다. 과도 시각디자인과라 시험이 실기라 그아이에게 일부러 맞춘것같은 과에요. 우리부부는 이게 바로 기적이라고 생각하고 하느님께 감사한답니다. 억지로안되요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