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임내용 | 이태준선생님는 1904년 11월 04일 강원도 철원군 묘장면 산명리에서 1남 2녀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렸을 때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살았고 6살 때(1909년) 어버지를 잃고, 9살 때(1912년) 어머니를 잃는다. 호는 상허(오히려 상, 빌 허)이다. 1930년대 한국문단을 주도했던 그의 문학적 경향은 이상.박태원.이효석.김유정.김기린.정지용.유치진 등 당대 문단의 촉망 받는 젊은 작가들이 교류하던 ‘구인회’로 대변된다.
첫 장, 단풍철도 지나고 누르퇴퇴한...... 적막한 버스럭 소리만 울릴 것 같은 초겨울의 풍경이다. 허무하게 죽은 누이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으로 쓸쓸하게 읽힌다.
창섭은 어린 시절 누이 창옥이 의사의 오진 때문에 허무한 죽음으로 아버지가 원하던 고등농업학교가 아닌 의학 전문학교를 나와 맹장 수술로는 권위있는 의사가 되었다. 병원의 확장으로 아버지께 이참에 자식 될 도리로 할 겸 서울로 모시고 병원도 넓히겠으니 땅을 팔아 서울로 가자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아버지는 천금이 쏟아져도 땅을 못 팔겠다고 하며 말이 난 김에 유언이라며, 네 어머니가 먼저 가면 내가 묻을 거고, 내가 먼저 가면 네 어머니를 서울로 데려가고, 이 땅은 나 죽을 때가 돼서 동네사는 용문 문보 덕길이 같이 농사를 천직으로 알며 땅을 소중히 하는 그들에게 몇 해고 소출을 팔아 해마다 갚어 나가게 할 테니 그리 알구 있으라고 당부한다.
[농사천하지대본] 농업이 산업 가운데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백성의 생업이며 농민과 농촌을 사회 경제의 바탕으로 국가를 경영한다는 원칙이니 ‘땅은 목숨만큼이나 소중한 조상이 물려주신 터전 본래의 가치였음을 생각해본다.
아버지에게 땅이란 71쪽 [땅이란 천지만쿨의 근거야. 돈 있다구 땅이 뭔지두 모르구 욕심만 내 문서쪽으로만 사 모으기만 하는 사람들, 돈 놀이처럼 변리나 생각허구 제 조삼들과 그 땅과 어떤 인연이란 건 도시 생각지 않구 헌신짝 버리듯 하는 사람들, 다 눈엔 괴이한 사람들루밖엔 뵈지 않드라] 땅을 가꾸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땅의 본래적 가치를 중시함을 알 수 있다.
창섭은 ’개천에서 용났다‘라고 말할 수 있는 ’그애비에 그아들‘이라고 근검으로 소문난 영감님이자 우리네 옛선조의 정신 그대로 땅에 대한 큰 믿음과 땅이 전부라는 믿는 강인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땅을 파는 건 하늘을 파는 것과 다름없다. 땅을 밟구 가니니깐 땅을 우습게 들 여긴다]라는 창섭 아버자의 마인드는 어찌 보면 그 당시에는 당연한 결정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많이 권위적이었던 아버지들의 시대적 배경도 엿볼 수 있었다. 하지만 권위적인게 꼭 강압적이거나 독단적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 마을어귀 개울에 돌다리를 정비하면서 힘든 수고를 마다하고 마을사람들과 모든이들의 편안한 안위를 생각하는 깊은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