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환송예배, 추모예배, 추도예배 등 장례예배는 유교적 무속신앙에서 나온 귀신에게 제사지내는 우상숭배와 같은 것입니다.
죽은 사람에게 드리는 모든 예배는 우상숭배로 하나님께 범죄하는 것입니다.
마 8:21~22 제자 중에 또 한사람이 이르되 주여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니라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아버지가 죽어서 제자는 자기로 하여금 아버지 장사를 허락해 달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이 말씀은 틀림없이 제자의 아버지와 그의 가족들이 구원받지 못했음을 나타냅니다.
예수님은 부모를 공경하라는 성경의 명령을 분명히 지지하시지만 예수님 자신을 따르라는 부르심은 다른 모든 헌신을 초월합니다. 예수님과 새 언약의 믿음에 대한 헌신을 방해하는 것은 무엇이든 버려야 합니다.
계 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둘째 사망이 무엇입니까? 첫째 사망은 생명이 끊어졌을때 즉, 의사의 소견서에서 심장이 멋었을 때를 말합니다. 즉, 사망은 영혼이 몸에서 떠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몸에서 떠난 영혼은 무덤내지는 천국에 있게됩니다.
둘째 사망은 음부 또는 무덤에 있던 영혼이 예수님 재림하실 때 심판 받고 영원히 지옥불에 떨어지는 것을 둘째 사망이라합니다. 물론 이단.사이비종교 교주와 하나님께 대적하는 적그리스도들은 사망과 동시에 지옥불에 던져집니다. 이들에게는 예수님 재림하실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아깝습니다.
성경에서는 우상숭배자들도 지옥불에 떨어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섭고 두렵지 않습니까? 죽은 자에게 제사지내는것도 귀신에게 제사를 지내기에 우상숭배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모르고 한 일은 회개를 하고 하나님께 용서를 빌면 하나님은 자비가 많으시기에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십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면서도 행한다면 그것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는 모든 우상숭배에서 떠나 주님만 의지하여 첫째 부활에 참여해야 합니다. 사망에서 생명의 부활로 옮겨져 영원히 주님과 천국에서 살아야 합니다. 첫째 부활한 성도에게는 둘째 사망의 권세가 없습니다.
여러분 모든 장례예배는 우상숭배이고 인본주의적인 세상과의 타협 때문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마지막 때에 우리는 더욱 악에게 지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끝까지 이겨 구원에 이르러야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성도의 죽음을 그렇게 슬퍼할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본향 하나님 아버지가 계신곳에는 아픔도 슬픔도 없는 낙원입니다. 그곳에서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나그네와 같은 삶입니다.
천국환송예배 등 장례 예배는 모두 우상숭배입니다.
왜 우상숭배일까요?
피조물인 사람을 장사 지내는 것과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대한 예배는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만을 섬기고 찬양하며 하나님만을 예배하기로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무리들입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하나님께만 재단을 쌓는 사람들입니다.
고전 10:14, 18~20 그런즉 내 사랑하는 자들아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 육신을 따라 난 이스라엘을 보라 제물을 먹는 자들이 제단에 참여하는 자들이 아니냐 그런즉 내가 무엇을 말하느냐 우상의 제물은 무엇이며 우상은 무엇이냐 무릇 이방인이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을 가진 자가 세상 풍속을 따라 죽은 자를 섬기기 위해 제단을 만듭니다. 대형 교회 장례 예배 때는 한 술 더 떠서 제단 가운데 영정을 두고 각종 꽃과 제기들로 화려하게 장식을 합니다.
그리고 찬송가를 부르고 죽은자를 위한 기도를 합니다. 천주교에서도 죽은자에게 기도하는데 천주교와 다를바 없습니다.
그리고 가관인것은 불신자들을 비롯하여 빈소를 찾는 이들에게 분향하며 절하게 만들고 묵념하게 하며 꽃을 받치게 하는 등 우상 숭배를 조장하게 하는 일을 서슴없이 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정말 기가막힐 노릇입니다 여러분 성령님이 함께 하시면 자신도 알지 못하는 예배를 드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진정과 신령한 예배는 영으로 드리는 예배이기에 하나님만 예배를 받으실수 있습니다.
성도가 죽어서 드리는 장례예배는 그 부모가 아니라 사실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기에 성경에서는 금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대형교회 목사가 죽으면 어떻습니까 무엇이든지 큰 교회, 이름있는 목사가 하면 사실이고 진리가 됩니다. 그러다보니 작은 교회들이나 일반 성도들도 따라서 합니다.
바울 사도는 무릇 이방인이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느라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교인들에게 가르쳐 주신 장례법은 죽은 그날에 장사지내고 매장하는것 입니다.
막 15:46 요셉이 세마포를 사서 예수를 내려다가 그것으로 싸서 바위 속에 판 무덤에 넣어 두고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으매
민 19:13 누구든지 죽은 사람의 시체를 만지고 정결하지 아니하는 자는 여호와의 성막을 더럽힘이라 그가 이스라엘에서 끊어질 것은 정결하게 하는 물을 그에게 뿌리지 아니하므로 깨끗하게 되지 못하고 그 부정함이 그대로 있음이니라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 장례법은 죽은 그날에 장사지내고 매장하는 것입니다. 죽은 나사로 뿐만 아니라 아나니아와 삽비라 때도 그랬고 예수님 조차도 당일에 장사지내고 매장하였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이렇게 당일에 서둘러 장사를 치르게 하셨을까요? 그것은 사람의 죽은 시체가 부정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에 의하면 시체를 만지거나 그 장막에 들어간 사람도 진영에 머무르지 못하게 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가르치는데 한국 교회는 초대 교회와 청교도 때의 신앙을 버리고 유교적 우상숭배사상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죽은 시체가 부정하다 했는데 부정한 시체를 두고 위로 예배를 드릴 뿐만 아니라 죽은 시체를 관에 넣기 위해 입관 예배, 시체가 나간다고 발인 예배 즉 천국환송예배, 땅에 묻는다고 하관 예배를 드립니다.
이 때문에 귀신들이 온통 몰려 들어 마음껏 저주하고 재앙을 퍼붓고 있는데도 전혀 모릅니다. 이는 이미 유교의 망자숭배 사상과 인본주의가 뼛속 깊이 뿌리 박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죽은자에게 예물을 드리지 말고 기념하지 말고 제사 음식도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신 26:14 내가 애곡하는 날에 이 성물을 먹지 아니하였고 부정한 몸으로 이를 떼어두지 아니하였고 죽은 자를 위하여 이를 쓰지 아니하였고 내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여 주께서 내게 명령하신 대로 다 행하였사오니
시 31:12 내가 잊어버린 바 됨이 죽은 자를 마음에 두지 아니함 같고 깨진 그릇과 같으니이다
시 106:28~29 그들이 또 브올의 바알과 연합하여 죽은 자에게 제사한 음식을 먹어서 그 행위로 주를 격노하게 함으로써 재앙이 그들 중에 크게 유행하였도다
하나님은 죽은 자에게 예물을 드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를 기념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대형교회에서 담임목사가 죽으면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목사와 장로들이 나와서 기념사를 낭독 합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 외에는 자랑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에게 제사 하는 것은 바알브올을 섬기는 우상숭배와 같은 죄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크게 노하셔서 재앙이 크게 유행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상과 관계되는 모든 종교적 행위를 저주하시고 심판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추모는 죽은 자를 사모하는 것입니다. 추도는 죽은 자를 생각하며 슬퍼하는 것입니다. 죽은 자를 사모하는 것이 어찌 예배가 될 수 있으며 죽은 자를 생각하며 슬퍼하는 것이 어찌 예배가 될 수 있습니까?
예배(제사)는 피조물인 인간이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리는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봉사하는 것입니다.
예배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 한분입니다. 하나님 외에 어떤 대상(우상이나 죽은 조상)도 예배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예배의 목적은 사람의 영광이나 만족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려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자의 하나님입니다. 마지막 때에 우리는 깨어 있어 기도해야 합니다.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지고 맙니다.
장례예배는 예배로 포장된 우상숭배이므로 금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인은 장례를 어떻게 치러야 할까요?
장례도 성경에 기록된 대로 해야됩니다. 돌아가시기 전에 임종예배가 아닌 임종기도회를 갖는것입니다. 그리고 별세하신 당일에 목사님의 집례로 위로예배가 아닌 고인의 가족을 위한 격려기도를 갖는것입니다.
물론 화환이나 영정사진 등 아무것도 없고 고인의 가족과 함께 찍은 가족사진과 십자가와 성경책만 있으면 될것입니다. 화장을 하면 그 역시 조율을하면 됩니다.
당일에 장사 지내어 매장하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3일정도 손님을 정성껏 맞아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면 얼마나 좋습니까? 성경대로 하면 틀림없는데 유교의 망자 숭배사상에 사로잡혀 죽은 자를 창조주 하나님의 반열에 올려놓고 우상 숭배하니 저주가 시작되고 우한이 그치지 않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난 사람의 유전과 장로의 전통을 끊임없이 경계하고 있습니다
마 15:3, 8.9.14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냐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하시고 그냥 두라 그들은 맹인이 되어 맹인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하시니
한국교회는 부모님의 기일에 거행해 왔던 제사를 우상 숭배라고 금지시키고 그 대신 추모예배라는 제도를 권장했습니다. 그러나 추모 예배가 이름과 방법만 바꿨을 뿐 의식구조는 부모님께 제사를 드리는 마음으로 드리는 경향들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죽은 부모가 예배의 대상이 됩니다. 한국은 유교적 문화가 뿌리깊게 박혀있어 돌아가신 부모에 대해 제사를 드리지 않는 것은 심각한 불효자로 여겨졌기에 한국교회는 추모예배라는 독특한 한국교회만의 제도를 정착시켜 왔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난 사람의 유전과 장로의 전통을 끊임없이 경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저 말씀을 하실 때는 유대인들이 하나님께만 예배드리면 부모한테는 아무렇게나 해도 된다는 것에 대한 잘못된 것을 책망한 것입니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효사상에 근거해서 부모가 죽은 후에 추모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와 관련해서 잘못된 전통입니다.
이 때문에 복음이 이 땅에 들어오고 난 후에 제사와 미신 그리고 신사참배 등 우상숭배로부터 신앙을 지키기 위해 그토록 많은 순교자가 나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에도 없는 장례예배가 한국 교회에 들어 왔습니다.
성경에서는 부모님 살아계실 때 공경하라고 하신 것이지 부모님 죽은 후에도 예배를 드리고 추모하라고 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산자의 하나님이지 죽은자의 하나님은 아닙니다.
샤머니즘에서 비롯된 한국식 기독교를 바로잡고자 한다면 먼저 선교 초기 한국 교회의 신앙이 어떠했는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한국의 기독교가 전래되었던 1800년대 말부터 1900년대 초의 상황은 민족적으로 고난의 시기였으며 사회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시대였습니다. 이때 한국인들이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적용하는 모습은 몇 가지로 정리가 됩니다.
그중 하나가 토속적 신앙으로 샤머니즘적인 한국의 토속신앙이 그대로 반영된 신앙 형태입니다. 무속적인 토속신앙의 요소들이 기독교라는 이름으로 옷을 바꿔 입고 교회에 그대로 유입되었기에 한국식 기독교를 형성하는 주된 요인이 되었습니다.
한국인의 뿌리깊은 신앙 "샤머니즘(무속신앙)"
"샤머니즘" (shsmanism)이란 용어는 17세기 후반에 통구스어 사만(saman)에서 유래한 샤먼(shaman)이란 용어가 유럽에 전해짐으로써 통용되었는데, 여기서 샤먼은 무당을 일컫는 말이며 샤머니즘은 우리말로 무속신앙(巫俗信仰)을 뜻합니다.
행 17:22~24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다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가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우리나라의 미신들과 무속적인 풍습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습니다. 특히 철학의 본고장이라고 하는 그리스 아테네 사람들에 대해 사도 바울이 "매사에 너무나 미신적"이라고 지적한 것과 같이 한국인도 매우 미신적이며, 이러한 성향은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정착시키는 데 토대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초기 기독교 상황 속에서 추모예배는 1897년에 발행된 조선그리스도인 회보 9월호에 의하면 선교사가 가지고 들어온 것이 아니라 당시 정삼품 벼슬을 하던 이무영이라는 자가 가문의 핍박을 피하기 위해 예배와 절충하여 시작한 것이 그 시작입니다.
이런 이유로 처음 감리교단이 1934년에 추모 예배를 채택할 때 그토록 반대했던 타 교단들이 그것을 본받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끝까지 신앙을 고수하던 장로교단도 1970년대 말에 추모 예배를 받아들였으며 그 와중에 장례 예배도 언제부턴가 드리게 되었습니다.
1970년 기독교가 부흥하면서 교권주의자들에 의해 세가지를 만들거나 부활시켰는데 장례예배, 추모예배, 십일조 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뜻이 아닌 사람들과의 타협이었습니다. 십일조는 교회를 기복주의와 세속화, 물량주의로 만들게 됩니다.
일단 교회를 세우면 십일조와 각종헌금으로 돈이 되었고, 이는 종교 사기꾼인 무수한 사이비와 이단을 양산하는 결과물을 낳았습니다.
1970년대 교회부흥은 온전한 복음적인 말씀으로 부흥이 아닌, 비정상적인 부흥이었습니다. 당시에
여의도에서 엄청난 인파가 몰리면서 부흥이 일어났지만, 당시 순회웅변가이며, 가톨릭 교황을 따르던 빌리 그레함(WCC.종교다원주의.혼합종교)의 연설이 한몫했습니다. 빌리 그레함의 종교사상을 봤을때 과연 한국교회가 진정한 하나님의 역사로 부흥이 된것인지는 하나님만이 아실 것입니다.
어찌됐던 한국교회의 부흥의 시작은 기복주의와 혼합종교, 자유주의신학(개방적신학)으로 부터 시작되었으니 지금의 한국교회 80%가 타락의 길로 빠지게 된것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일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천국환송예배는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샤머니즘 무속종교인 우상숭배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상의 형상인 불상등으로 제단을 만들어 놓고 절하는 것이나 조상에게 제사 지내는 것을 우상 숭배라 합니다.
그렇다면 생명도 없고 호흡도 없는 죽은 이를 신격화하여 영정을 두고 꽃으로 장식하여 제단을 만들어 섬기는 것은 우상숭배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또 죽은 자의 제단앞에서 꽃을 바치고 묵념하는 것과 일제시대 신사참배는 무엇이 다를까요?
구원받은 성도들은 발인예배 등 장례예배에 대한 의미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참혹한 십자가 형으로 모든 인간의 죄를 씻고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가 십자가에서 만났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피로 새로운 언약을 맺은 구원받은 성도들입니다.
눅 23:43에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우편강도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에 이르렀을때 영혼이 떠나시고 우편강도와 함께 천국에 올라가셨고 하늘 보좌에 앉으셨습니다. 이렇듯 교인들도 죽음이 오면 즉시 천국에 올라가거나 음부로 내려갑니다.
결론입니다
현재 한국교회에서 행하고 있는 기독교 장례예배는 다음과 같이 진행됩니다.
1) 임종예배 2) 위로예배 3) 입관예배 4) 발인예배 5) 하관예배. 각 순서에 대해서 정리하면 이렇게 진행이 됩니다.
1) 임종예배: 우선 의사나 가족을 통하여 성도가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 시간을 가지게 될 때, 임종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이 과정 속에서 가족들로 하여금 성도와 함께 마지막 인사를 나눌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2) 위로예배: 성도가 별세하면 장례식장으로 안치되게 됩니다. 장례식장이 정해지게 되면 이제 교회 목사님이 성도들과 함께 와서 위로예배를 드립니다.
3) 입관예배: 성도가 별세한 다음날 그 시신을 입관하게 됩니다. 전문 장례지도사들이 염을 하게 되고 마지막으로 고인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시간을 유가족들이 가지게 됩니다.
4) 발인예배: 3일장으로 치뤄지는 마지막 3일째 되는 날 발인식을 하게 됩니다. 이때는 우선적으로 발인예배를 먼저 드리고 발인을 합니다. 운구행렬때 일반적으로 관에 봉해진 시신을 리무진이나 버스에 싣게 되고 그 후에 화장터나 장지로 이동합니다.
5) 하관예배: 요즘에는 시신을 직접 땅에 묻기보다는 화장터로 보내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입니다.
이렇듯 대부분의 교회가 이러한 형태로 성도가 별세하면 목회자의 집례로 장례예배를 드립니다. 성경에서는 죽은 시체가 부정하다 했는데 입관예배에 부정한 시체를 두고 위로 예배를 드릴 뿐만 아니라 어떤 목회자는 고인의 가족들에게 관주위를 한바퀴 돌게하고 마지막 가는길이니 손으로 한번 만져주라는 말도 서슴치 않고 합니다.
성경에서는 죽은 시체를 만지면 부정하고 심지어 하나님의 자녀로도 끊어질 것이라 했는데 부정한 시체를 만지라고 하니 정말 기가막힐 노릇입니다.
시체가 나간다고 발인 예배 즉 천국환송예배는 정말 가관입니다. 영혼이 없는 빈 몸인데 기념사를 낭독하고 수많은 사람이 묘지까지 따라갑니다. 그리고 땅에 묻는다고 하관 예배를 또 드립니다. 이 때문에 귀신들이 온통 몰려 들어 마음껏 저주하고 재앙을 퍼붓고 있는데도 전혀 모릅니다.
여러분 100여년간 이어온 장례예배를 바꾸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현실을 직시하시기 바랍니다. 전쟁과 테러, 알수없는 감염병들의 창궐, 세계적인 식량부족과 에너지부족, 지구이상기후 등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대로 되고 있습니다. 주님의 재림이 가까워 졌는줄 알아야 합니다.
계 22: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대로 갚아 주리라 13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14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 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 15 개들과 술객들과 행음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밖에 있으리라
예수님은 곧 오시겠다고 약속하시고, 자신의 신적 영원성과 메시아적 권위를 주장하시고 책의 일곱 번 축도 가운데 마지막 축도를 선포하시며 말씀하십니다.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예수님은 신실한 종들에게는 상 주시고 악을 행하는 모든 자는 벌하시며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대로 갚아' 주러 오실 것입니다.
상은 신자들에게는 보상의 정도, 불신자들에게는 형벌의 정도를 가리킵니다.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영원한 생명과 주님 되심은 하나님과 곧 오실 예수님의 특징입니다.
"복이 있으니", 천국가는 복입니다. 요한계시록의 일곱번의 축도 가운데 마지막은 양심을 깨끗케 하는 '어린 양의 피로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 을 위한 것입니다. 즉 성화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자기 몸을 깨끗하게 한다는것은 죄가 없는 상태입니다. 우리는 나약한 육신을 입고 있어 죄를 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 앞에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고, 용서를 비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항상 거룩함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성안에서 '생명나무'에 나아갑니다. 즉 영생을 보장 받습니다. 마귀적인 '거짓말', 무속적인 '우상숭배', '음행', '살인'을 좋아하는 자마다 성문 밖에서, 즉 지옥에서 영원한 고통을 당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계 1장1절에서 약속하셨듯이 자신의 천사와 요한을 통해 자신의 교회들을 위로하고 경고하기 위해 자신의 계시를 전달했습니다.
주님께서 재림하시면 새하늘과 새땅을 볼것이고 아픔과 슬픔, 죽음도 없는곳에서 열두가지 과일과 생명수 강이 흐르고 사자도 풀을 띁는 낙원에서 하나님 아버지와 주님의 얼굴을 보면서 영원히 삽니다.
제가 이 글을 쓰는 목적은 모든 성도님들이 우상숭배를 멀리 해서, 생명책에 이름이 지워지지 않고 하나님의 거룩한성인 천국에 들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