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11일(토), 고교 동창회의 총산악회에서 기획한 남양주의 운길산 산행이 있었다. 코로나19의 기세가 꺾이지 않아서 총산의 정기산행, 기획산행 등이 올해에도 봄부터 시행되지 못하다가 송년을 기념하는 산행만은 꼭 시행하고자 하는 총산 집행부의 의지에 따라 금번 산행이 이루어졌다. 거기에 호응하여 187명(집행부 집계)의 동문들이 호응하여 남양주의 명산을 체험하고자 하는 열렬한 산사랑을 보여 주었다.
산꾼들은 남양주를 산행의 "샹그릴라"로 기억해야 한다고 나는 주장하고 싶다. 남양주시는 남쪽으로 한강이 흐르고 동북쪽으로는 산이 병풍처럼 감싸고 있어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오롯이 품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산길이 급하지 않고 온갖 나무들이 그 길을 호위하고 있어 우리나라 금수강산 경치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 산길에 발을 한번 들여 놓으면 얼굴에 와 닿는 산들바람과 눈앞에 펼쳐지는 멋진 경치와 멀리서 느리게 흐르는 한강이 보여서 이곳이 우리나라 금수강산의 모델이라는 것을 알게 되지 않을까? 산이 좋고 물이 좋고 인물이 좋다. 가히 산꾼들의 샹그릴라라 부를만 하다.
남양주시에는 걷기 좋은 길로 다산길이 있는데, 이곳의 크고 작은 산 대부분이 다산길과 접해 있어 다산길을 따라 걸으면 남양주의 거의 모든 유명한 산들을 밟을 수 있다고 한다. 그 산 이름들을 상기하고자 한 번 읊어보면 서울과 인접한 경계에 수락산, 불암산이 있고 주금산, 철마산, 천마산, 서리산, 축령산, 송라산, 백봉산, 문안산, 갑산, 예봉산, 예빈산 그리고 이번에 오른 운길산이 있다. 이렇게 멋진 산들이 많은 고장인 남양주에 사는 산꾼들은 축복받은 셈이다.(밑줄 친 산들에 가 보았다. 나도 언제 사정이 되면 우거를 남양주로 옮기고 싶은 심정이다.)
또한 두물머리에서 가까운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마재)에는 조선시대 실학자인 다산 정약용 선생의 생가. 사당, 묘가 있으며 실학박물관이 있어 남양주가 큰 인물을 낸 고장임을 알게 한다.(후술하는 조선 시대 명재상인 한음 이덕형선생도 인근 조안면 송촌리에서 관직을 물러난 후 생활하셨다.)
아침 일찍 집을 떠나 전철을 타고 미리 총산 카페에 통보되어 있는 산행집결지인 경의중앙선 운길산역에서 내리는 여러 동문들에 섞여서 역사를 나왔다. 집결시각인 10시 조금 전인데 낯익은 얼굴인 총산 회장(6년 후배)과 역시 낯익은 집행부의 후배 동문들이 맞아주는데 우리 동기도 산행을 약속한 인원 8인 중 7인이 도착하였다. 집행부가 마련한 테이블에 등록을 하고 선물(컵과 수건)을 수령한 후 동기 7인이 모여서 플래카드를 들고 기념사진을 찍은 후 10시가 채 안되어 산행에 나섰다.(조금 늦게 오는 친구가 이 산을 잘 알고 있으므로 우리가 먼저 가니 좇아오라고 카톡방에 남겼다.)
굴다리로 철로 아래를 통과하고 큰길을 따라 마을을 지나고 산길로 들어서는데 아직 콘크리트 포장길이다. 산행안내도가 크게 그려진 입간판에 도착해서부터는 산길이 낙엽이 깔린 멋진 오솔길로 변한다. 잘 생긴 소나무들이 나타나고 옷을 다 벗은 활엽수도 섞여 있다. 아늑한 계곡을 따라 올라가다가 좌측 능선으로 올라갔다. 숨을 거칠게 내쉬는 친구들과 능선에서 조우한다. 친구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가파른 비탈길을 올라가려니 땀이 솟아 겉옷을 벗어서 몸에 둘렀다. 사람들이 정성들여 쌓아 놓은 돌무더기 앞에서 친구 둘의 사진도 찍어 준다.
정상으로 가는 길과 수종사로 가는 길이 헤어지는 갈림길에 휴식처가 있고 그 아래 헬기장 같은 공터가 있었는데 공터를 지나 계속 올라갔다. 산 위쪽으론 소나무는 보이지 않고 낙엽이 져서 벌거벗은 활엽수들뿐이다. 드디어 정상에 설치된 목제 난간이 저 위에 보이더니 조금 힘을 들여 내쳐 올라가니 해발 610m의 운길산 정상이다.(11:23) 운길산역에서 여기까지 한 시간 반이 채 안 걸렸다. 비교적 쉽게 정상에 온 셈이다. 날은 겨울답지 않게 푹한데 하늘엔 구름이 끼어 정상에서 멋진 경관을 조망할 수가 없었다. 정상에는 목제 덱크를 깔고 목제 난간을 설치하여 평평하고 멋진 쉼터를 만들어 놓았기에 접이의자를 꺼내어 한쪽에 쉴 자리를 잡았다. 윗도리도 다시 걸쳤다. 먼저 온 3인이 와인을 마시고 간식을 즐기는 동안 나머지 4인의 동기도 속속 도착하였다.
동기 8인 전원이 다시 작은 파티를 시작했다. 아침에 늦게 도착해서 뒤를 따라 급히 왔던 하XX 동기가 막걸리를 두 병이나 가지고 와서 달게 나누어 마시고 이런저런 안주를 먹으며 즐기다가, 8인 전원이 정상석을 가운데 두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즐거운 자리를 파하고 산을 내려오기 시작하며 시계를 보니 12시 반이 거의 다 되어 정상에서 한 시간이나 쉰 셈이었다. 아까 온 길로 내려오다가 공터 바로 앞의 수종사로 갈라지는 삼거리를 만나서는 좌측의 급한 길로 수종사를 향했다. 길이 조금 급했지만 내려가는 길이기에 크게 힘들 일은 없었다.
12:50경 수종사에 도착했다. 입구에 새로 부처님 상을 화려하게 돌로 조각해 놓았다. 전망이 좋은 마당에서 서거정이 칭찬했던 남양주의 비경이라 할 두물머리 쪽 경관을 내려다보는데 흐린 날씨에 물안개가 옅게 끼어서 그 좋은 경치가 흐릿하게만 보였다.(아쉽지만 전에 본 적이 있기에 크게 섭섭하지는 않았다.) 세조가 심었다는 커다란 은행나무 밑에 가서 "수종사사적기"를 읽어 보고 수종사 이름의 유래와 은행나무에 대해 알아본다.
"두물머리에 왔던 세조가 산 위에서 들리는 종소리를 따라 새벽에 이곳에 와보니 그 종소리는 바위굴 속에서 떨어지는 물소리였고, 굴속에서 18나한을 발견하고 이곳에 절을 지으라고 명하였기에 절 이름이 '물이 내는 종소리'라는 수종사가 되었다고 한다. 그 때 은행나무 두 그루도 같이 심었다고 한다."
조선초기 학자이자 6조의 판서를 다 거친 관리였던 서거정은 이 절에 와본 후 이곳이 천하제일의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명당이라고 하였다 한다. 안개 속에서나마 그 경치를 유추해 보았다. 내려갈 시간이 되어 절을 떠나려 하는데 장XX 동기가 제안을 한다. 내려가는 길을 송촌리로 잡아서 한음 이덕형의 별서 자리를 가보자고 한다. 이미 운길산역으로 직행하는 하산길을 잡은 세 사람은 빼고 동기 5인은 동쪽으로 내려가는 길을 택하여 한음마을을 향했다.
숲길을 따라 한참 내려가니 송촌리 마을이 나오고 은행나무가 있는 한음이 거주하던 별서(별장)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나는 10여 년 전에 친구가 전원생활하려고 사놓았다는 이 집과 은행나무를 보려고 승용차를 타고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 때에 친구는 이 집을 세놓고 있었는데, 친구가 몸이 안 좋아서 전원생활의 실현은 못하고 지금도 남에게 세를 주고 있었다.)
역사적인 유물로는 한음선생이 이용했다는 하마석과 손수 심은 은행나무 두 그루가 남아 있고 집은 그때의 집이 아니다. 새로이 실물 크기의 말의 모형을 만들어서 하마석 옆에 세워 놓았고 정자도 지어 놓았다. 하산길을 다르게 잡아서 한음선생의 흔적을 만나게 되니 좋은 경치의 좋은 고장에서 좋은 사람을 만난 셈이었다.
운길산역으로 직행하는 짧은 하산길로 우리보다 먼저 운길산역에 가서 기다릴 친구들을 생각해서 빨리 가려고 버스시간을 알아보니 1시간 가량 기다려야 한다거 한다. 버스를 기다려 타는 대신 빨리 걸어서 가기로 하고 길을 재촉하여 차가 달리는 큰길로 30분 가량을 걸어서 운길산역에 도착하여 이미 도착한 3인의 친구들과 합류하였다.(14:22)
산행이 무사하게 다 끝났다. 뒤풀이는 역에서 600m쯤 떨어진 "돌미나리집"을 찾아가서 미나리전을 시켜 놓고 소주와 막걸리를 마시고 묵사발과 잔치국수를 지켜서 식사를 대신했다. 운길산역으로 다시 걸어와서 집으로 가는 전철을 타고 즐거웠던 산행을 끝냈다.
- 후기 -
산과 물이 빚어내는 비경으로 이름 높은 남양주에서 대표적인 명산을 고교 동문들과 같이 올랐다. 운길산으로 오르는 산길은 조금은 급했으나 발에 밟히는 낙엽소리와 양쪽에 도열한 나무들의 자태가 귀와 눈을 즐겁게 하여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산길이라고 할 정도로 그 질이 높았다.
나무 덱크와 난간으로 깔끔하게 꾸며놓은 정상은 멀리 한강과 사방의 명산을 조망할 수 있는 장소이자 편히 쉴 수 있는 장소였다.
천하제일의 절경이라는 수종사에서 두물머리를 내려다보는 경치는 안개에 가려있어 조금은 섭섭했으나 반쯤 개인 안개 속에서 그 면모를 약간은 엿볼 수 있었다. 수종사 입구에는 새롭게 커다란 부처의 상을 조성하여 절을 꾸미고 있어서 이 절이 세조 때부터 지금까지 사람들이 많이 찾고 번성하고 있음을 짐작하게 하였다.
인근의 예봉산(철문봉)이 다산 정약용선생과 연관된 산이라면 운길산은 한음 이덕형선생과 연관된 산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조선 역사에서 자랑할 만한 매우 참신한 이미지를 지닌 두 분을 모신 남양주는 자연도 아름답지만 인문환경에서도 빼어난 이상향, 샹그릴라라고 할 수 있겠다.
▼동기 참가자들 7인의 모습(1인은 전철 타고 오는 중)
▼ 동기 산행참가자 8인이 다 모였다.
▼ 수종사 바로 밑에 도착
▼ 새로 조성한 불사
▼ 천하제일경이 안개 속에.....
▼ 커다란 은행나무
▼ 송촌리(한음마을)에 도착
▼ 한음 이덕형 별서가 있던 곳에 하마석과 말의 조각상이 설치됨
▼ 별서에 딸린 은행나무
▼ 정자를 새로 지었다.
▼ 운길산역으로 원점회귀
▼ 바이커들이 많이 오는 저렴한 식당, "돌미나리"
▼ 다시 걸어서 운길산역으로 와서 전철을 탔다.
- 끝 -